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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호] 제54차 수요대화모임 - 황운하 총경(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1 14:24
조회
197

내가 바라는 경찰상


황운하/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 총경


 나는 1981년에 경찰대학에 입학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입학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왜 힘든 경찰을 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그리 넉넉지 못했던 집안 사정이 경찰이 되고자 하는 결심에 한몫을 하긴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10.26 사건’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대통령을 죽일 수 있는가’라는 의문보다는 그 동안 유신정권을 훌륭한 정부라고 믿어왔던 내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반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후 다양한 사회과학도서를 접하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권력의 민주화’를 위해서 경찰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맺은 경찰과의 인연이 올해로 26년이 된다.


 경찰개혁을 위해 경찰이 되다


 1985년에 경찰대학을 졸업했을 때 경찰로서의 삶을 기약하며 두 가지 큰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가 경찰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경찰개혁의 중요한 과제로 머물러 있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다.


 두말할 필요 없이, 정치적 중립성은 경찰이 본래의 업무를 정상적으로 해 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다. 지금처럼 경찰이 정권의 하수인격으로 시위진압에 집중하는 것은 결코 경찰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 내각이 경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할 경우 경찰의 수장이 직접 온 몸으로 그러한 시도를 막아 왔다. 이러한 노력이 오늘날 일본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낸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검찰의 경우 청와대로부터 독립해서 정치적 중립성을 획득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경찰의 경우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의 예가 한화 김승현 회장 보복 폭행 사건이다. 이 사건의 발생과 진행, 처리 결과 전 과정을 통해 과연 경찰청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 내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였다. 김승현 회장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하라는 청와대의 말 한마디에 아무런 고뇌의 과정도 없이 바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사람을 상급자로 모시고 있는 경찰에게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라’라는 요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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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하 총경


 경찰청장 스스로 경찰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면서 ‘정치의 시녀’라는 오명을 벗고 ‘시민의 공복’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아무런 고뇌의 과정도 없이 일순간에 날려버리는 현실. 그리고 그러한 경찰청장에게 조직의 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퇴진하라는 요구를 한 하급자를 하극상이라고 몰아세우면서 징계하는 현실. 이것이 2007년 한국 경찰의 현주소다.


 수사권 독립은 인권보호 위해 반드시 필요


 정치적 중립성 못지않게 중요한 두 번째 목표는 바로 검찰로부터의 수사권 독립이다. 즉, 수사권을 검찰로부터 독립해서 경찰조직의 책임 하에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에 대해 조직이기주의나 조직보호주의로 몰아세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형사사법제도의 민주화와 선진화에 기여하고 검찰의 횡포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개인의 인권보호에도 기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목표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경우 검찰은 기소를 담당하는 공소제기 기관으로, 경찰은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 기관으로 탄생됐다. 기소와 수사를 한 기관이 독점하고 있는 곳은 선진국 중에서도 오직 한국뿐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오래전에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실현되었고 검찰과 경찰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예외적인 경우에만 검찰에게 수사권을 주고 있다.


 한국처럼 검찰이 기소와 수사를 모두 독점할 경우 ‘기소를 목표로 하는 수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고 그 과정에서 인권 침해 소지 또한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내가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는 이유는 공소제기 기관인 검찰과 수사 기관인 경찰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을 때만이 경찰 수사 활동의 정상화를 실현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인권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수사권 독립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비관론과 낙관론이 동시에 존재한다. 비관론의 경우 노무현 정권이 대선공약으로 수사권 독립을 약속했고 그에 따라 2000년 당시 사회의 화두가 될 정도로 관심이 높았지만 뚜렷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냄으로써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아마도 두 번 다시 그런 좋은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검찰의 조직적인 방해도 수사권 독립을 어렵게 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낙관론은 최근의 형사사법제도의 국제화 경향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로스쿨 제도와 배심제 도입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의 공판중심주의 강화 추세는 기소와 수사를 모두 독점하고 있는 검찰에게 상당한 정도의 업무 부담을 줄 것이고, 이러한 업무 부담으로 인해 결국은 수사할 여력이 없는 검찰이 경찰에게 자연스레 수사권을 넘겨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비관론이든 낙관론이든, 중요한 것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가 지속적으로 사회적 관심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무엇이 한국의 사법개혁발전을 위해 필요한지 진지하며 열린 토론이 진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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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이 사퇴해야 옳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경찰청장 퇴진 요구와 그에 따른 징계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입장을 밝혔으면 한다. 어떠한 조직이든 그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에게 표현의 자유를 통한 건전한 비판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 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조직, 특히나 경찰 조직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홍세화 선생이 지적한 것처럼 18세기 계몽사상가인 볼테르의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견해를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는 똘레랑스적 관점이나 “자유로운 논쟁의 결과, 진리는 생존하고 허위는 도태된다.”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 모두 건전한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징계와 관련해서 단순히 경찰 내부의 논리가 아니라, 민주 사회에서 상식이라 할 수 있는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 민주화를 위한 선례가 되기를…”


 그렇다면, 과연 경찰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키면서 경찰에 대한 불신을 스스로 자초하고 한화 김승현 회장 보복 폭행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경찰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될 정도로 조직의 위상을 무너뜨린 경찰청장에 대해 책임을 지고 퇴진을 하라고 요구한 것이 하극상인가? 나는 아직도 이택순 경찰청장이 사퇴했어야 옳았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 퇴진 요구가 공무원의 복무규율과 품위유지의무 등의 위반이라는 이유로 최근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이 징계에 대해 현재 소청을 제기한 상태이다. 그러나 소청의 결과에 관계없이 행정소송이라는 사법적 판단을 통해 이번 퇴진 요구와 징계에 관련된 쟁점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퇴진 요구가 과연 표현의 자유의 한계 내에서 보호되는 경찰조직의 민주화를 위한 건전한 비판인가 아니면 조직 기강의 해이에 해당되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 밖인가에 대한 분명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이번 사안과 비슷한 경우가 또 다시 발생할 경우 그것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고 조금 더 넓게 본다면 경찰 조직의 민주화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선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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