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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 이주노동자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1 17:24
조회
237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보호”라는 단어는 참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사전을 찾아보니 영어로는 “protection", "잘 돌보아 지킴”, “잘 돌 보아 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다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요즈음 들어 부쩍 한국 사회에서 “보호”라는 말이 권력관계를 상징하며 특정한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는 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위선적인 용어로 쓰인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다. 출입국 관리법(제51조)을 보면 “불법 체류 외국인”이라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도주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는 경우” “보호명령서를 발부받아 그 외국인을 보호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출입국관리법은 “불법 체류 외국인”, 주로 이주노동자를 단속할 근거가 되는 모법이고, 실제 법이 운용되는 현실을 볼 때 위에 있는 법조항에서 “보호명령서”는 “체포영장”으로, “외국인을 보호할 수 있다.”는 “외국인을 체포 또는 구금할 수 있다.”로 정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법무부는 “출입국관리법상 외국인의 단속 및 보호는, 불법 체류 외국인 출국이라는 행정목적을 담보할 대체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출국시까지 출국준비를 위한 여권·항공권 마련, 체불 임금 해결 등을 위한 최단기간의 집행보전수단을 의미”하므로 “신체의 자유 제한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형사범의 구금과는 그 목적이 달라” “외관만으로...형사사법절차의 인신구속과 동일한 선상에서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한겨레 신문 “왜냐면”/박재완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사무관]


 하지만 전국의 교도소(구치소), 경찰서 유치장 등을 돌아다니며 활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외국인 보호소”라고 하는 곳이 적용받는 법규가 다를 뿐 인권침해 정도가 훨씬 더 심하기 때문에 “형사사법절차상 인신구속”과 내용적으로 다르다고 볼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지난 1월 4일 나는 화성 외국인 보호소를 다녀왔다. 슈바슈 부타토키는 네팔출신 이주노동자이고 ‘이주노동자 노조’ 조합원이다. 그는 지난 7월 3일경 수원지역에서 열렸던 “경기지역 차별철폐 대행진”에 참가하려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단속” 자격이 없는 경찰관에 의해 강제 연행되었다. 그는 구금되자마자, 절차상 하자가 있는 법 집행에 항의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그 결과를 기다리며 7개월째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슈바슈의 경우처럼 ‘강제단속’ 과정에서는 무수히 많은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당연히 자기 방어권 차원에서 이의제기를 할 수 있고 이러한 절차는 지금보다 더 충분히 보완되고 강화될 필요가 있다. ‘강제단속’을 당해 “보호소”에 잡혀 온 이주노동자들은 권리 구제절차(알량한 수준이지만)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문제를 제기해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 무엇보다 감옥과 다를 바 없는 “보호소” 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워 분노스럽지만 정부의 강요에 따라 순순히 강제출국을 당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직도 전국의 “외국인 보호소”에는 슈바슈를 비롯한 상당수 이주노동자들이 난민신청과 “보호 해제”등 권리를 찾기 위해 고통스런 수감생활 속에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에게 “보호소”는 잠시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 ‘형사범’이 생활하는 감옥이나 다를 바 없는 역할을 한다. 설사 그들 대다수가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이라 하더라도 출입국관리법에도 규정되어 있듯이 “피보호자의 인권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며 국적,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등에 의한 차별”은 없어야 한다.


 지난 해 12월 24일, 슈바슈는 크리스마스이브 종교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신청을 했지만 직원으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슈바슈가 항의하자, 담당 직원은 “너 죽을래!”라는 말과 함께 옷소매를 끌어당겨 주저앉힌 다음, “여기서 기도해”라며 소리쳤다고 한다. 화성보호소 측에서는 ‘폭언, 폭행한 사실은 없다.’며 강력 부인했고, 종교행사에 참석 못한 것도 슈바슈가 그 시간에 면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슈바슈는 그날, 면회를 하지 못했다. 누군가 면회를 왔다 그래서 면회실로 달려갔지만 아무도 없어서 곧장 방으로 되돌아 왔다고 했다. 양쪽의 말이 전혀 다르다. 나를 비롯해 “화성보호소”를 항의 방문했던 경기지역 노동, 인권 단체 활동가들은 소장에게 슈바슈를 면담했느냐고 물어 보았다. 소장은 대뜸 “내가 어떻게 일개 보호 외국인을 면담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는 사건이 있은 지 열흘이 지났지만 “보호소” 직원들의 이야기만 들어보고는 우리들에게 “사실 무근”이라며 발뺌을 계속했고, 슈바슈를 “NGO 빽”만 믿고 거만하게 구는 사람쯤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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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여수외국인 보호소 화재참사 추모식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화성보호소는 전국에서 가장 큰 “보호 외국인” 수용시설이다. 하지만 수감된 이주노동자들의 처우는 감옥 수준에도 못 미친다. 감옥에서는 1일 1시간 이내의 운동시간이 주어지는데 화성보호소에서는 1주일에 2~3회, 그것도 30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난방시설도 열악하다. 보일러가 아니라 하루에 세 번 가량 천장에 있는 스팀을 통해 더운 바람이 나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방안에서도 몸이 으슬으슬 떨릴 정도라고 한다. “보호소” 측에서는 그동안 난방비 예산이 부족해서 그랬는데 최근에는 도시가스를 유입해서 평균 18~20℃의 실내온도를 유지시켜 놓았으니 괜찮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따뜻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을 감안한다면 인색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화성보호소에는 파키스탄 출신인 라나 박타르 칸, 이란 출신인 이라즈, 가나 출신인 마이클 오키네 등 난민신청을 요구하며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여러 명 있다. 이들은 모두 2년 넘게 이곳에서 ‘생 징역’을 살고 있다. 법무부는 ‘경제적 이유’에 따른 난민은 아예 인정되지 않고 ‘정치적 이유’에 따른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간혹 인정해줄 뿐이다. 이들은 모두 개종에 따른 본국의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한국에 난민신청을 해왔는데 법무부가 이들의 난민 신청을 기각시켜서 기나긴 법정소송이 진행하고 있다.


 감옥보다 못한 곳에서 2년 넘게 갇혀 있다 보니 건강상태가 말이 아니게 나빠져 있다. 이라즈는 위염을 앓고 있고, 라나는 눈병과 피부병, 마이클은 눈병과 전립선 비대증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 아플 때마다 의무실에 가지만 의무실에서는 제대로 된 치료를 해주지 않고 적당히 약만 지어준다. 고통을 계속 호소하면 외부 병원에 가라고 하는데 진료비는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하므로 돈이 없으면 갈 수 없다. 2년 넘게 일도 못하고 수감생활만 해온 이들에게 돈이 있을 리 없다. 구속노동자후원회에서는 2~3개월에 한 번씩 영치금을 넣어 주긴 하지만, 비싼 병원비를 충당하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


 한 번은 마이클의 치료 문제 때문에 화성보호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의무과장에게 이럴 경우 국가에서 보조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의무과장 하는 말,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그게 가능한데 이렇게 오셨으니 한 번 힘써 보지요!’ 며칠 후 “보호소”는 마이클을 가까운 수원지역의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이렇게 가능한 일을 누군가 따지고 항의해야만 마지못해 처리해 주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라나는 말한다. “반장이 매일 와서 ‘난민 안 둬!’, ‘파키스탄으로 가!’라고 말해요! 맞는 것보다 말로 때리는 게 더 아파요!”


 수감된 이주노동자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서 권리 행사를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것을 우리는 “보호”라고 말할 수 없다. “보호소”의 역할이 진정 보호에 있다면 무엇보다 그들의 인권 보호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아니면 위선적인 간판은 그만 내려 버리던가?


 이런 문제는 비단 화성보호소만의 문제만도 아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수용하고 있는 전국의 모든 “외국인 보호소”가 안고 있는 문제이며 더 심각한 곳도 많이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아무런 재판절차도 없이 오로지 정부의 “강제추방 정책” 때문에 이곳으로 잡혀왔다. 그렇기 때문에 형사범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최대한의 인권보장”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지난 해 2월 11일, 이주노동자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이후 비난 여론이 빗발쳤지만 “외국인 보호소”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수용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엔 예산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정부가 “강제추방”을 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잡아들이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김영삼 정권 때부터 시작된 ‘산업연수생 제도’와 노무현 정권이 도입한 ‘고용허가제’에 이르기까지 역대 한국정부가 취해 왔던 이주노동자 정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실패의 근거는 체류 가능 기간 3년을 넘기고도 계속 체류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가 22만여 명(전체 이주노동자의 절반)에 이르고 있고, 국제인권규범마저 무시한 야만적인 수급조절 정책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인권 후진성이 만 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고용허가제” 실패의 책임을 이주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며 “노예무역” 시대에나 있을 법한 야만적인 “인간 사냥”을 백주대낮에 거리에서 버젓이 자행하고 있다. 최근 법무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주적인 노동조합 조직을 말살하기 위해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극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까지만 위원장 등 이주노조 핵심간부들을 표적연행 한 후 강제추방 시켰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출입국 규제와 강제추방 정책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계속해서 헐값에 착취하고 더 나아가 한국노동자들의 노동조건마저 하향 평준화시키려는 기업주들의 이윤 욕구에서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교활하고 야만적인 규제정책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세계 노동자들의 권리와 욕구를 짓밟고 있기 때문에 거대한 저항에 직면하고 말 것이다.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우리들의 친근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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