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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호] 정치의 실종? 민주주의의 실종?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0-20 10:28
조회
107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나는 정치학자는 아니다. 정치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매일 뉴스를 듣고 다소라도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해갔으면 하고 바라는 평범한 시민이다. 물론 7년 여전 촛불혁명에도 열심히 참여했고 문재인 정부를 성원했으며, 현 정권이 탄생했을 때 한탄을 금치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향은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을 보면 무어라고 한마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독자가 이 글을 읽을 즈음이면 이미 결과가 나와 있겠지만 10월 11일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일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다른 지역 주민들은 잘 알지도 못했을 구청장 선거에 온 나라의 관심이 쏠려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여당의 후보가 바로 이 보궐선거에 원인을 제공했던 전 구청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을 지냈고 이른바 ‘조국 관련 의혹’을 폭로했다가 공무상 비밀 누설죄로 지난 5월 형이 확정돼 구청장직을 상실했다. 그런데 단 3개월 만에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 되더니 급기야는 여당의 후보로 다시 출마까지 한 것이다.


그 배경에 어떤 복잡한 정치공학의 셈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후보 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져있는 걸 보면, 이건 좀 지나친 오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그리고 지금도)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 했다고 해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을 3개월 만에 사면해서 다시 선거에 내보내는 배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법부를 무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법률(공직선거법) 자체를 평가절하하는 것인가? 더 중요하게는 이래도 괜찮다는 혹은 이래도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강서구 주민, 나아가 국민 전체를 깔보는 것인가?


이런 대통령의 오만은 최근 개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민주 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 같은 정치관을 가진 인사를 국방장관에 임명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문화‧예술인들을 배척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진 인물을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기용하였다. 주식 통정 매매 의혹을 받고 있는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 도중 퇴장하는 초유의 행동을 보여주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장관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높다고들 한다).


이뿐인가. 1년 전 이태원 참사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은 행안부 장관은 아직도 건재하고,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령의 개정을 통해 법률로 규정한 ‘검찰개혁’을 무력화시켰다. 법인세를 줄인 기획재정부 장관은 60조에 가까운 세수 결손이 발생하고 여러 복지 혜택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또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통일부 장관은 대화의 길을 모색하기는커녕 남북관계발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기화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자제요청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한다. 하긴 대통령부터 나서서 ‘이념 전쟁’이 필요하고 각 부 장관에게 반국가세력과 용감하게 싸우라고 하니 각료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취임 1년 반이 다 되가도록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는 것을 두고 ‘정치의 실종’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안하무인격인 대통령과 장관들의 인식과 행동을 보면 가히 ‘민주주의의 실종’이라고도 할 만 하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30% 내외의 국민들 밖에는 보이지 않나 보다. 대통령 자신부터 단지 0.7%의 차이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것 같다.


다시 강서구청장 선거로 돌아가 보자. 아마도 민주당이 승리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여당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것 같다. 지금까지 보여준 대통령의 스타일이 그렇고 정치인 이전에 오직 검사의 경력만 갖고 있는 그의 경험이 이를 추측케 한다는 것이다(이를 두고 ‘소시오패스(sociopath)’를 빙의한 ‘사시(사법시험)오패스’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만약 이런 전망이 맞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불행하고 암담한 3년 반을 지내야 할 것이다. ‘실질적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어떤가. 역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민주당 자신에게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혹은 적어도 문재인 정부 시절에, 민주당의 한계가 드러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대화 이외에 지난 정부가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적어도 2016년 겨울에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시민들이 원했던 것이 이렇게 지지부진한 개혁이나 역사적인 반동 세력에게 집권을 허용하는 빌미를 내어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년에는 다시 총선이 있다. 여당도 야당도 대안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개혁적인 제3의 정치세력은 등장할 수 없는 것일까. 한국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보수 양당의 독점구조 때문이라는 데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리라 믿는다.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선거법을 개정하여 ‘공정하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의회를 구성하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절실하다. 우리나라 정치도 이제 좀 선진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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