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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5-20 19:31
조회
35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춘천이라고. 이건 오롯이 지난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결과 덕분이다. 지난 8년 동안 나만이 아니라 춘천 출신 지인들도 고향을 밝히는 게 창피했다고 한다. 고향을 밝히면, 대개는 ‘춘천 사람은 도대체 뭔 생각으로 그런 사람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는 거냐’는 힐난이 섞인 질문이 ‘훅’하고 들어왔다. 그때마다 김진태 의원이 안하무인격으로 마구 막말을 내뱉는 데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주눅이 들곤 했다.


 내가 체험하고 기억하는 한, 춘천의 선거는 보수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행해졌다. 선하고 정의로운 의정활동으로 유명한(famous) 게 아니라 모질고 독한 언행으로 유명한(notorious) 그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 전에도 춘천에서 민주당 계열의 후보자가 당선된 적이 없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13대 총선이후열린 8차례 선거에서 모두 보수(수구) 정당 후보가 승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태 씨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춘천 출신이라는 게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고 말하는 지인은 없었다. 춘천이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곳이지만, 8년 전까지도 춘천 출신의 보수계열 의원이 누군가에게 몹시 부당한 인격적 모멸감을 주거나 인간적 공분을 자아내는 행위를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남달리 빼어난 선량(選良)도 아니었지만 유별난 언행-탄핵반대와 숱한 망언-을 일삼는 ‘아스팔트 우파의 아이콘’도 아니었다.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되어 가지만, 새벽녘까지 내 고향 춘천(엄밀하게는 춘천․철원․화천․양구갑 선거구)의 개표방송을 보면서 느꼈던 불안과 긴장, 흥분과 기쁨은 아직도 남아있다. 춘천의 개표는 전국 어느 선거구의 개표보다도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게 나를 더욱 애달게 했다. 개표 당시에는 몰랐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표 초반에는 민주당 허영 후보의 약세지역부터 개표가 되었기 때문에 새벽 1시까지도 김진태 후보가 앞선 결과가 나왔다. 순간적으로 이번에도 춘천은 안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일반화하자면, 21대 국회에서도 수구세력의 정치적 파워가 유지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살짝 들었다. 그러다가 개표가 45%를 넘어서면서 역전이 이루어지고, 최종적으로는 7.4%, 약 9,600표 차이로 <민주진보 계열 허영 후보의 당선, 통합당 김진태 후보의 패배>가 확정되었다.


 사사로울 수 있는 고향의 선거이야기를 하는 것은, 춘천이야말로 이번 21대 총선의 결과와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문자를 쓰자면 ‘구체적 보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춘천에서 진보진영 후보가 당선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춘천의 선거결과는 집권여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집권당의 승리보다는 수구적 야당의 패배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국민은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미래통합당을 버렸다’는 세간의 평가는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왜 미래통합당에게 패배를 안긴 것일까? 춘천의 선거는 그 이유의 일단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춘천의 두 후보의 대결은 ‘공안검사 대 학생운동권’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김진태 후보는 공안검사 출신이고, 허영 당선인은 1991~1992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고 김근태 의원의 비서관을 지냈다. 김진태 후보의 이력은 통합당과 잘 어울린다. 통합당은 70여년 적대적 남북관계를 고수하며 분단구조를 지속시키고 분단을 정략적으로 ‘악용’하기도 한 수구기득권세력이 주축이다. 김진태 후보의 패배는 레드콤플렉스를 부추겨서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세력에게 내려진 퇴장명령인 셈이다. 춘천의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지역을 기준으로 보면, 이번에 당선된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시의원, 도의원, 시장, 도지사, 대통령까지 모두 미래통합당 쪽에서 ‘빨갱이’, ‘종북좌파’라고 매도했던 정당 소속이다.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이분법적 냉전사고에 매몰된 정치집단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다.


 또한 이번 선거는 현실과 동떨어진 의식, 즉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세력에게 국정을 맡길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미래통합당과 그 주변의 세력들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자신들에게 마이너스가 된다는 정략적 셈법에 따라 정부의 코로나 방역을 맹비난했다. 그것은 마치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방역에 실패하기를 바라는 열성기도 같았다. 그러나 정부가 시행하는 코로나 방역대책이 무너지면 우리들 생명과 생활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더욱이 외국 정부와 해외 언론을 통해 우리 정부의 방역대책이 전 세계에서 거의 독보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자는 미래통합당의 외침은 ‘아스트랄(astral)한’ 비현실적 메아리가 되어 사라졌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을 심판 대상이 아니라 자부심을 안겨주는 ‘우리의 정부’로 받아들였다. 문재인 정권 타도를 외쳤던 김진태 후보와 같은 부류는 표를 얻기 어려웠다. 격하게 정리하자면, 정부가 잘하면 우리 모두가 살고 정부가 잘못하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그저 정부가 잘못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세력에게 표를 주기보다는, 등을 돌렸다. ‘코로나 사태’ 국면에서 지 잘할 궁리는 하지 않고 그저 남 잘못되기만을 바라는 심보가 들통나는 바람에 저들은 졌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 해도 놀부 편보다 흥부 편드는 사람이 많은 게 세상인심일 것이다. 아흔이 다 된 춘천의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모두 이번에는 사전투표를 하셨다고 했다. 자식들이 어디 가서도 내 고향은 춘천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도록 투표하고 싶은 마음에 급하셨단다. 같은 마음이었던 춘천 시민들, 국민들 덕분에 이제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K-방역’에 이어 ‘K-투표’도 모범적으로 했다고!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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