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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호] 언제까지 약한 고리가 타격받는 것을 봐야 할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5-20 18:20
조회
213

임아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경향신문 기자


 어떤 인터뷰는 오랫동안 머리를 묵직하게 한다. 인터뷰이의 말이 어딘가에 계속 남아서다. 지난 4월 17일 인천 주안역 앞에서 만난 한지선씨(55·가명)는 만나자마자 팔을 살짝 잡고 눈물을 보였다. “우리 같은 사람은 서럽다”라는 말을 하면서였다. 그는 2시간여의 인터뷰 내내 이 말을 여러 번 했다.


 한씨는 대한항공 기내 청소노동자다. 인터뷰 이후 ‘우리 같은 사람’이라는 말과 ‘서럽다’는 말이 떠오를 때마다 머리가 묵직하다.


 그때 나는 그 서러움 앞에서 어떻게든 정부가 방법을 찾아보지 않겠느냐고 어설프게 답했다. 그래서 빨리 기사를 쓰려 한다고 허둥허둥 말했다.


 가끔 취재하는 내 일이 곤욕스러울 때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저 기사를 쓰고 알리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느낄 때다.


 5차 비상경제회의를 며칠 앞둔 때였다. 급하게 기획을 했다. 위기가 오면 늘 먼저 타격을 받는 건 ‘약한 고리.’ 그중에서도 제일 약한 고리에 있는 노동자들부터다.


 2월부터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되면서 항공·여행·관광 등의 업종부터 타격을 받았고 고사 위기에 몰린 항공업계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그 약한 고리였다. 또 고용보험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예술인, 프리랜서 등도 그 약한 고리였다.


 대통령이 5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고용 대책을 발표한다고 알려졌고 약한 고리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자세하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항공업계 하청 노동자, 대리운전기사, 연극인을 급하게 만날 약속을 잡고 ‘코로나로 드러난 노동의 그림자’ 기획을 후배들과 함께 3회차로 보도했다.


 그 직후 정부는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항공지상조업 등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고 고용보험 가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유지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사각지대 노동자들을 위해 월 50만 원씩 3개월간 생계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다행이었지만 안타까웠다. 그걸로 과연 충분한가.


 한씨는 말했다. “제일 서러운 건 회사에 출근하면 ‘야 너 그만둬’ 그런 말을 들을까봐요. 집에 있다가도 문자가 오면 겁이 나요. ‘그만두라’는 문자일까봐요.”


 한씨의 바람은 크지 않았다. 해고되지 않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작은 바람.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5월 11일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에서 정리해고, 희망퇴직을 실행했다. 기사는커녕 정부 대책과도 상관없이 ‘약한 고리’는 다시 타격받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늘 그랬듯이 바이러스는 약한 고리의 위기를 더 생생하게 드러냈다. IMF 외환위기 때도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경제는 위기를 극복했지만 개인들의 희생은 보답받지 못했다. 다시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위기를 우리는 20년 전과 다르게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까.


 2015년 입사해 5년 동안 대한항공 비행기를 청소하는 일을 했지만 한씨는 ‘대한항공’이 아니라 ‘이케이맨파워’라는 하청업체 소속이다.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국공항이 기내 청소, 수화물, 세탁 등 서비스를 다시 12개 하청업체에 맡기고 있는데 이 중 하나다.


 210~220만 원 정도 받던 월급을 4월에는 87만 원밖에 받지 못한 한씨는 말했다. “한 달 벌어서 한 달 살죠. 4월을 일해야 5월을 살고 5월을 일해야 6월을 사는데 다음 달은 월급을 얼마 주려는지 모르겠어요.”


 25세 아들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23세 딸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기본 생활은 엄마인 자신이 챙겨야 했다. 전남편 신용 문제를 일부 떠안아서 신용회복 프로그램도 진행해야 했지만 그는 말했다. “내년까지 갚으면 끝나는데 못 갚는 거 아니겠죠?”


 인터뷰 후 일주일이 지나고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원청’ 대한항공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 2,000억 원을 지원받았다.


 역시 ‘원청’인 아시아나항공도 4월 21일 산업은행으로부터 1조 7,000억 원의 한도 대출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5월 11일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는 정리해고, 희망퇴직을 실행했다.


 “비행기 청소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우리는 비행기 청소하고 내려오는 걸 ‘비행기 한 대 잡고 내려왔다’고 해요.” 일에 대해서 설명하던 한씨의 표정은 밝아졌다.


 30여 명의 청소노동자들은 화장실, 갤리(부엌), 담요 등으로 역할을 나눠 각자 분담한 일을 한다고 했다. 급히 다시 떠나야 하는 비행기는 10분 만에 청소를 끝내야 해서 40~50명이 올라가기도 했다고 했다. 한씨가 이렇게 하루에 청소한 비행기는 20여 대.


 비행기에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은 ‘폴리백’ 하나라고 했다. 그는 가방 속에서 대한항공 로고가 박혀있는 지퍼백 하나를 보여줬다. “비즈니스 좌석 책을 넣어두는 용으로 쓰는 건데요. 청소를 해서인지 관절이 아픈 사람이 많아요. 다들 사무실에서 이 폴리백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핫팩으로 써요. 쉬는 날 좀 쉬라고 하면 다들 ‘내가 안 벌면 안 돼’라고 하죠.”


 남편이 아파서 병원비가 많이 든다며 화장실에서 우는 동료를 봤다며 한씨는 더 불안해했었다. 그의 꿈은 언젠가 동료들과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는 것. “우리가 탄 자리 표시하고 나중에 청소할 때 확인하자고 농담하며 웃었죠. 그런데 다른 분들이 많이 그만뒀네요. 크게 바라는 거 없어요. 저 안 다치고 안 아프고 매달 돈 벌면 이자를 내는 삶이죠.”


 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는 해결할 수 있고 이들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당장 해고 위기에 내몰려야 할까.


 정부 지원 발표 직후 대한항공 측은 입장문을 냈다. “정부의 지원방안에 부응해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선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한 3자 연합과의 소모적인 지분 경쟁을 중단하겠습니다.”


 코로나19 위기로 항공업계가 어려워졌던 3월 주주총회 때까지도 조원태·조현아 남매는 경영권을 가지고 갈등했다. 약한 고리의 위기와 상관없는 자들의 경영권 다툼은 연일 언론에 보도됐다.


 ‘원청’ 두 회사는 1조 7,000억, 1조 2,000억 원으로도 연말까지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는 기간산업을 살리겠다며 조성한 40조 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으로 지원하게 될 것이다. ‘원청’인 국적항공사는 전후방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산업’이니까.


 정부는 5월 12일 기간산업안정기금 설립을 위한 산업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발표하면서 항공업 등의 협력업체 지원은 ‘기간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항공기 청소는 기간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필요한 업체일까, 아닐까. 고용유지지원금도 신청하지 않는 하청업체의 악덕 사업주들 책임이 다인 걸까.


 언제까지 약한 고리에 있는 사람들이 더 타격을 받는 것을 봐야 할까. 한씨의 상황이 어떤지 궁금하지만 전화할 용기는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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