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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주목받는 벌금형 집행유예... 판사도 잘 모른다 (경향신문, 2020.12.1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2-22 11:05
조회
180

노역 선택 어려운 취약층 위해 도입


올해 전체 1심 판결의 ‘2.9%’ 불과


약식절차서 선고 가능한지 불분명


명확한 기준 세워 제도 활성화해야


A씨는 생계를 위해 도박장에서 심부름을 하다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벌금을 내지 못해 지명수배자가 됐다. 그러던 중 취객에게 폭행을 당해 경찰서에 가게 됐으나 친구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벌금형 전과를 들킬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A씨는 죄책감을 느꼈고, 결국 자수했다. 도박장 심부름과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과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벌금 낼 돈이 없어 최근까지 교도소에서 노역해야 했다.


차상위 계층으로 생후 8개월 된 딸과 함께 사는 B씨는 자신의 통장을 대포통장으로 사용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생계 위기에 내몰려 한 선택인 데다, 자수한 점이 감안돼 지난 10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딸과 생이별 처지에 놓였다. 형법 69조에 따라 벌금형을 선고받고 30일 이내 납부하지 못하면 교도소 노역으로 대신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어린이집이 문 닫아 딸을 두고 취업할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벌금을 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장발장은행의 도움으로 벌금을 완납하고 위기를 모면했다. 재판 과정에서 이들의 처지를 감안해 숨통을 틔워주는 방법도 있었다. 벌금형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이다.


징역이나 금고형과 마찬가지로 벌금형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노역을 하거나 징역형을 받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여전히 벌금형에도 집행유예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직 2개월 의결을 받은 직후 일선 검찰청에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약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벌금형의 집행유예 구형 등을 적절히 활용하라고 지시하면서 주목받게 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17일 발간한 ‘벌금형 집행유예제도 시행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를 보면 올 1~10월 형사재판 1심 선고 가운데 벌금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경우는 1591건으로 전체 벌금형 선고(5만4873건)의 2.9%에 불과했다. 1심 기준 벌금형 집행유예 비율은 2018년에 1.4%였고, 2019년에는 2.8%에 그쳤다. 징역형과 금고형의 집행유예 비율은 2018년 57.2%, 2019년 56.4%로 전체 선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최근 법원이 자가격리를 이탈한 60대 여성에게 치매 증세를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시간을 어긴 업주에게 경제적 형편이 어렵고 가족의 병수발 등을 든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 제도를 활용한 사례로 꼽혔다.


벌금형의 집행유예 선고는 판사들에게도 낯선 제도로 꼽힌다.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그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기준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은 점을 들었다.


또 다른 이유로 현행법상 공판을 거치지 않고 서면심리만으로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약식절차를 통해서도 집행유예가 가능한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꼽았다. 집행유예를 적용할 수 있는 벌금형은 상당부분 약식명령으로 부과된다. 일본은 형사소송법에 약식명령으로도 벌금형의 집행유예가 가능하다고 명시한다.


법원행정처도 벌금형 집행유예 제도의 활성화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다만 요건이 안 되는데도 집행유예 선고를 권장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될 여지가 있어 고민하고 있다. 서울의 한 판사는 “집행유예 선고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선택지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고민하면 좀 더 판결에 신중하게 접근하게 된다”며 “다만 판사로서는 변호인이나 검사가 먼저 집행유예를 요구하거나 구형하지 않는데 먼저 나서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벌금형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별도 기준을 마련하고, 약식절차에도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한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업무과중이 예상되면 전담법관을 두거나 인력을 확충하는 등의 대응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은하·이보라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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