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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사람 살려! (경향신문, 2021.01.0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1-05 10:56
조회
254

2008년 처음으로 교도소에 들어가 보았다. 교도관 뒤를 졸졸 따라가는데, 얼마나 긴장했던지, 예닐곱 개의 철문을 지나치는데 가슴이 예닐곱 번 철렁댔다. 볕이 드는 1층 복도를 따라 걷는데도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수인이 아니라 강사였는데도 그랬다.


나는 인권연대가 주관한 재소자 인문학 프로그램(평화인문학)의 강사였다. 이 프로그램을 따라 안양, 수원, 여주, 영등포, 남부 등 여러 구치소와 교도소를 다녔다. 강의를 거듭할수록 처음의 긴장과 두려움은 사라졌다. 하지만 철문들이 닫히는 소리에는 어떻게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전자장비가 부착되어 예전보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닫히는데도 그랬다. 그것은 사람을 가두는 문들이 닫히는 소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주관 단체가 10여년간 분투했음에도 프로그램 규모는 계속 축소되었다. 겨우 한 차례 특강만 하게 되면서부터 내 강연 주제는 똑같아졌다. 제목들은 조금씩 달랐지만 주제는 모두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가’였다. 단 한 번의 강연으로 인문학 연구자인 나를 소개해야 했고 교도소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를 납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 작가 루쉰의 글에 많이 의지했다. 특히 ‘철방에 잠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즐겨 인용했다. “철로 된 방이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에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 막혀 죽겠지. 하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는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도 이 사람들을 깨워야 하는가.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강의할 때


처형을 앞둔 ‘아Q’ 이야기를 한다


저 ‘비명’이 철학·인문학이라고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게 시작이다


나는 이것이 인문학 공부의 이유에 대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철방을 탈출하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빵 부스러기 구해오지 못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부자유하고 배고픈 현실을 깨닫게 하는 그런 일깨움, 그런 공부가 필요한가.


교도소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의 아찔함이 떠오른다. “여러분이 만약 깨어났는데 철방에 갇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봅시다.” 그때 한 재소자가 말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 그래요.” 나만 당황했고 모두가 웃었다. 철방 안에서 여기가 철방이라고 가정해보자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곳이 철방이었기에 철방 이야기는 언제나 활발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모두 깨워서 어떻게든 나갈 길을 찾아봐야 한다’라거나, ‘굳이 고통에 빠뜨릴 필요가 있겠냐’는 식의 모범생 같은 답변도 있지만, ‘나만 이 고통을 당할 수는 없으니 모두 깨워야 한다’거나, ‘상황을 알면 그 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왜 깨우느냐’는 식의 답변들도 나온다. 어떤 사람은 내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깨우러 온 거예요?”


또 하나의 인기 있는 이야기는 <아Q정전>이다. 아Q의 찌질함에 모두가 ‘아휴’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이야기를 즐긴다. 그런데 한 대목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Q가 처형장에 끌려가는 장면이다. 처형 장면을 보기 위해 몰려든 구경꾼들을 보고 아Q는 자신이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늑대의 눈빛을 떠올렸다. 산기슭에서 계속 따라오던 굶주린 늑대의 눈빛. 여기가 중요한 대목이다. ‘정신승리법’의 대가인 아Q가 정신승리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처형장에서 구경꾼들의 눈요깃거리가 될 자신을 꾸며낼 말이 없었다. 이때 아Q는 자기 영혼의 비명 소리를 듣는다. ‘사람 살려!’ 교도소에서 지난 2~3년간 인문학 공부가 무엇인지 말할 때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했다. 정신승리가 불가능한 저 네 글자가 철학 혹은 인문학이라고. 평생 단잠에 빠져 있던 아Q의 영혼이 처형을 앞두고 깨어나 내지른 저 비명 소리가 우리의 공부 주제라고.


그런데 내가 이 이야기를 나누던 곳, 동부구치소의 창문에 며칠 전 ‘살려주세요’라고 적힌 종이가 나타났다. 바깥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거대한 가림막까지 설치된 건물, 겨우 몇 개의 창문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을 뿐인 건물 바깥으로 어느 재소자가 ‘살려주세요’를 내보낸 것이다. 철창살 안쪽에서 ‘살려주세요’를 붙들고 있는 두 손, 철방 안에서 사람들이 숨 막혀 죽어가고 있음을 알린 저 두 손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난, 자고 있었던 건가.


사람 살려! 이것은 정신승리가 불가능한 비명 소리다. 허황된 그 어떤 말로도 지금의 우리를 치장할 수 없게 하는 비명 소리다. ‘K’ 뒤에 어떤 말을 붙여도 정당화가 안 된다. 정부가 쫓는 토끼가 두 마리든 세 마리든 상관이 없다. ‘사람 살려’가 나오는 곳으로 가야 한다.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철학이든, 인문학이든, 정치든, 새해든 모두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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