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인권연대

home > 활동소식 > 언론에 비친 인권연대

위장 납북 어민, 침묵 38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7:05
조회
243
침묵 38년 "이젠 말해야 겠다"
[속보, 정치, 사회] 2004년 01월 15일 (목) 12:57
 
  (::위장납북어민 3명 회한의 세월 증언::) “당시가 어떤 시대인데. 한 마디도 못했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니까. 아무한테도 말 못하다가 북파공작원이 언론에 나오 고 하기에 이제 우리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지.” 14일 부산에서 만난 백평조(78), 박장순(68), 정정웅(64)씨 등 3 인은 시종 착잡한 표정으로 4개월간의 북한체류기간등 지난 38년 세월의 회한을 털어놨다.◈위장납북 과정〓백씨는 “1965년 12월말쯤 고향(경남 통영 욕 지도) 후배이자 해군 방첩부대장이었던 이모(사망) 소령이 찾아 와 북한에 위장납북되어 갔다가 건물위치 등 보고 들은 것을 상 세히 알려주면 보수를 주겠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백씨는 당시 이소령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어 그가 마련해준 북 파어선인 순평호의 선장을 맡기로 약속을 했고, 선원으로 정정웅 씨 등 2명을 모집했다. 역시 욕지도 출신인 박장순씨 등 3명은 당시 이 소령의 친형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참여했다. 이모 소령 의 친척인 박경열(77)씨도 합류했다.

백씨는 3개월간 비정기적으로 부산 진구 부전동 캠프하야리아 미 군부대에서 관찰력과 기억력 등을 교육받았다. 박경열씨도 이 소 령으로부터 위장납북과 백평조씨 감시 등의 지시를 받고 1주일간 하야리아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백씨 등 8명은 순평호를 타고 1966년 3월 말쯤 욕지도에서 출항 해 일반 어선들과 함께 조업을 하면서 연평도까지 갔다. 조업을 하던 중 5월14일 오전 1시쯤 이모 소령 등으로부터 침투지시를 받고 북방한계선을 넘어 고기를 잡던 중 오전 4시쯤 북한경비정 에 나포되어 해주로 이송됐다.

◈북한에서의 조사〓해주여관에서 1박을 한 이들 8명은 다음날 평양에 있는 국제호텔로 옮겨졌고 이후 월북경위 등에 대해 조사 를 받았다. 박씨는 “무조건 고기잡으러 왔다고 했다”며 “밥 먹을 때마다 모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리며 서로 ‘쉿’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2개월 동안 심문이 계속 되었고 제철소 등 산업시찰과 김일성대학, 모란봉 등의 관광 등이 이어졌다. 정씨는 “당시만 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 살 던 때인데 좋은 곳을 보여주면서 눌러 살라고 했다. 맹장수술도 시켜줬고 나를 비롯해 총각이 2명 있었는데 여자도 소개해 주면 서 결혼해서 눌러 살라고 했다”고 말했다.

◈송환과 그 이후〓“고기 잡으러 왔을 뿐이다. 집으로 보내달라 ”고 주장한 덕분에 8명은 모두 1966년 9월13일 남한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백씨는 2개월간 부산호텔에 감금된 채 미군 등 의 참여하에 북한에서 보고 들은 것을 상세히 보고 했고, 나머지 7명도 일단 집으로 돌아간 뒤 경찰, 미군 등의 참여하에 조사??받았다.

그러나 이후 이들은 그 어떤 보상도 받지를 못했다. 납북송환자 명단에 올라가 요시찰자로 어디를 가든 경찰이 따라다녔으며 본 인뿐만 아니라 친척들까지 신원조회에 걸려 외항선을 탈 수도, 공무원이 될 수도 없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월 8만원의 단칸방 에 살고 있는 백씨는 “2~3년전까지도 경찰이 찾아왔다”며 “배 를 타려고 하면 경찰이나 정보부에서 따라붙어 선주들이 이를 알고 계약을 파기하곤 해 일을 할 수가 없었고, 돈을 못버니 아내와 아들, 딸도 모두 떠나 지금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진상공개〓세월이 흘러 8명중 4명만 살아남았고, 그 동안 자신 의 증언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어 막막했는데, 지난 해 12월말 백씨를 담당했던 이모 형사가 진술서를 써주며 법정진술도 해 줄 수 있다고 해 새롭게 힘을 내고 있다. 이 형사는 진술서에서 “대공과를 방문한 군 정보사 근무 이모 소령으로부터 ‘경남 통 영 욕지도 출신 백평조씨와 선원 8명은 어선 순평호로 납북되었 다가 귀환한 어부로 조사받은 바 있으나 사실은 유공자이니 잘 봐달라’며 ‘해군 소속 대북정보활동 중이던 다른 이모 소령으 로부터 교육을 받고 위장납북되어 4개월만에 귀환했는데 정보를 수집해온 공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백씨는 “그 동안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여전히 우리에 대한 기 록이 남아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며 “국가는 이제 이름 삭제 는 물론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심은정기자
전체 3,238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7
인권단체, 생체정보수집에 반발(참세상뉴스 2004.2.5)
hrights | 2017.06.28 | | 조회 200
hrights 2017.06.28 200
76
전두환악법, 사회보호법 폐지하라(프레시안 2004.2.4)
hrights | 2017.06.28 | | 조회 412
hrights 2017.06.28 412
75
의문사위, 노태우정권의 노동탄압 문서 공개(문화일보 2004.2.4)
hrights | 2017.06.28 | | 조회 245
hrights 2017.06.28 245
74
조.중.동 - 오마이뉴스 정면 충돌(한겨레 2004.2.4)
hrights | 2017.06.28 | | 조회 222
hrights 2017.06.28 222
73
"낙천·낙선운동으로 제2의 유권자 혁명 달성"
hrights | 2017.06.28 | | 조회 278
hrights 2017.06.28 278
72
국가인권위, 독립성 훼손 우려 - 인권위원 퇴직후 2년간 공직제한 위헌판결(동아일보 2004.1.30)
hrights | 2017.06.28 | | 조회 227
hrights 2017.06.28 227
71
인권위원 공직취임제한 위헌판결에 `술렁'
hrights | 2017.06.28 | | 조회 239
hrights 2017.06.28 239
70
경찰 82%, "범죄자 인권보장하면 범죄 악화'(연합뉴스 2003.12.12)
hrights | 2017.06.28 | | 조회 212
hrights 2017.06.28 212
69
'어부 북파공작원' 명예회복과 보상을(한겨레 사설 2004.1.17)
hrights | 2017.06.28 | | 조회 244
hrights 2017.06.28 244
68
위장 납북 어민, 침묵 38년
hrights | 2017.06.28 | | 조회 243
hrights 2017.06.28 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