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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윤석열’과 함께 사라져버린 검찰개혁의 본질(시사인, 2021.03.2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4-02 17:25
조회
80

“개혁적인 윤석열 검찰이라면 수사권을 남겨두어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정부·여당의 판단은 안이했고, 검찰권은 계속 남용됐으며, 검찰총장은 검찰 기득권 수호를 위한 정치인이 됐다.


‘검사 윤석열’은 퇴장했다. 3월4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임기를 4개월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출근길 기자들 앞에 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동시에 ‘정치인 윤석열’을 예고했다.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 대선 1년, 보궐선거 한 달을 앞둔 시점에 나온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내린 징계 청구에 반발하면서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파장은 컸다. 사퇴 나흘 후 발표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1위(32.4%)를 차지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3월5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23명(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를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규정한 이후 지지율 하락세를 겪다 반등했다.


정치권에서는 비판과 환영이 엇갈렸다. 전례 없는 검찰총장의 정치권 직행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제2의 ○○○’이 될 거라는 식의 예측이다. 지지율 1위를 자랑하다 귀국 후 20일 만에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한 반기문 모델, 50% 지지율을 가지고 5% 지지율의 박원순을 지지하며 서울시장 선거를 포기한 안철수 모델, 검사 출신으로 정치권에 들어와 선거에 패하고 퇴장한 황교안 모델 등. 정치는 흔히 명분 싸움이라 일컬어지기에 그가 검찰총장직을 던지며 밝힌 사퇴의 변에 눈길이 우선 모인다.


윤석열 전 총장이 내세운 사퇴의 명분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반대다. 사퇴 당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그는 ‘검찰 가족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사직 사유를 A4 용지 4장 분량으로 올렸다. “검찰의 수사권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는 검찰개혁이 아니다.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권을 지켜내는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라는 논리였다.


사퇴 이틀 전인 3월2일 윤 총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검경 수사권 분리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여당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은 “검찰이 밉고 검찰총장이 미워서 추진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사퇴 바로 전날인 3월3일에는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해 “‘검수완박’이라고 하는 것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 완판’이다”라고 주장했다.


수사와 기소 분리는 검찰개혁이 아닐까? 윤 전 총장의 주장을 살피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공약부터 짚어봐야 한다. 2017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집에 나온 검찰개혁안의 핵심은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결과적으로 검경 수사권 분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검찰개혁을 주장해온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의 계획이었다. 3월8일 문 대통령은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는 앞으로도 꾸준히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직접 언급했다.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까지 검찰을 비판하는 말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무리한 기소와 제 식구 감싸기였다. 무리한 기소는 기소하지 말아야 할 사건을 기소해서, 제 식구 감싸기는 기소해야 할 사건을 기소하지 않아서 생긴 검찰의 문제였다. 각기 다른 방식의 검찰권 남용이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으로 견제가 가능해졌다. 2021년 검사·판사·고위 경찰관 등은 따로 수사하고 기소하는 기관이 생겼다. 검찰의 기소 독점이 깨졌다. 공수처가 출범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까지도 검찰은 ‘김봉현의 전·현직 검사 술접대’ 사건에서 제 식구를 감쌌다는 비판을 샀다. 먼저 자리를 뜬 검사 두 명이 접대받은 술값이 100만원이 안 된다는 이유로 불기소했다. 부패 척결에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윤석열 검찰도 내부 부패에 관대했다.


현재 남은 검찰개혁 파트는 ‘무리한 기소’다. 지금까지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견제할 수 있는 곳은 법원뿐이었다. 하지만 법원 단계에서 무죄를 받은 피고인이 그 과정까지 겪은 유무형의 피해는 보상되지 않았다. 심지어 무죄가 나도, 윗선의 뜻에 따라 기소한 검사는 승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검찰권 남용의 근본은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져서라는 진단이 꾸준히 이어졌다. 수사한 기관이 기소까지 하면 유죄 확증편향을 가지기 쉽다는 지적이다. 결론을 정해놓고 수사와 기소를 하는 검사들의 행태에 대해서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이 곧잘 따라붙었다.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정연주 KBS 사장 사건, MBC 〈PD수첩〉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법원에서 무죄가 나왔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상호 견제가 필요하다. 즉 수사권과 기소권은 각기 다른 권력기관이 가져야 한다. 한국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기소 두 권한을 모두 쥐고 있었다. 선거로 뽑혀 민주적 통제를 받는 미국 검찰과, 수사 지휘를 하더라도 직접 수사 인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독일 검찰 사례와도 비견된다. 한국 검찰에는 권한(수사개시권,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형집행권)이 집중되어 있고 별도의 수사 인력(검사 2000여 명, 검찰 수사관 6000명가량)이 있는 데 비해 법원 외에는 통제장치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6월 처음 검경 수사권 조정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부여했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은 경찰에 대해 보완수사만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개정돼 2021년부터 일정 부분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모양새였다.


문제는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6대 범죄(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는 검찰이 수사부터 기소까지 할 수 있게 남겨뒀다. 2018년 당시에도 검찰권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은 대부분 6대 범죄에 속한 특수 사건을 검찰이 직접 수사하고 기소하면서 불거졌다.


지난 2월23일 열린 ‘중수청 설치를 위한 입법 공청회’ 자리에 참석한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도 이를 비판했다. 검찰에 6대 중대범죄 수사권을 남겨둬 검찰개혁이 미진했다는 지적이었다. 오창익 국장은 “많은 사람들이 왜 여러 개혁이 많은데 (문재인 정부가) 다른 개혁은 하나도 안 하고 검찰개혁만 하냐고 하는데,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오히려) 검찰개혁다운 검찰개혁을 뭘 했느냐고 묻고 싶다.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라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현실론을 꼽는 사람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8년 당시 여당은 123석이었다. 입법부에서 여야 합의로는 관철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는 행정부 사이 합의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처리하는 전략을 잡았다. 당시 법무부와 행정안전부가 서로 원하는 걸 취하면서 합의해버렸다.”


결과적으로 1차 검경 수사권 조정이 패착이었다는 말은 여당 안에서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 특별위원회의 한 관계자 얘기다. “윤석열 검찰이 개혁적이라서 (6대 범죄 수사를) 남겨놓아도 될 거라고 착각을 한 건데 ‘이게 아니구나’ 하는 걸 1년 반 동안 깨달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같이 있더라도 개혁적인 검찰이라면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잘못된 판단이었다. (검찰개혁은) 사람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다. 수사를 공정하게 잘할 거라는 믿음이 무너졌다.”


정부·여당 검찰개혁의 미진함 혹은 안이함을 고백한 것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월성원전 수사 등을 지휘했다. 검경 수사권은 조정에 머물 게 아니라 분리로 가야 한다는 비싼 수업료를 정부·여당이 치르는 사이, 검찰개혁은 윤석열이라는 강한 캐릭터를 둘러싼 ‘친문재인’ ‘반문재인’ 대결처럼 보이게 했다. 검찰권 남용 방지라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사라져버렸다.


정부·여당의 검찰개혁에 디테일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또 다른 더불어민주당의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2018년 6월 1차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고 앞으로 수사·기소 분리를 좀 더 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모델에 대해서는 공백이었다. 2단계로는 중수청을 만들어서 분리하자는 안이 지금 나왔는데, 3단계가 또 있을 수도 있다. (검찰개혁은) 수사·기소 분리라는 큰 흐름으로 가는 거고, 구체적 모델이 명확히 정해진 게 없다. 혹시 더 좋은 모델이, 수사·기소 분리 쪽으로 더 갈 수 있다면, 그런 (검찰개혁)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윤석열 검찰총장


더불어민주당이 명명한 ‘검찰개혁 2단계’는 지난해 12월29일 당내 검찰개혁 특별위원회를 꾸리면서 시작되었다. 검경 수사권 분리의 구체적인 안으로 현재 중수청 설치가 논의되고 있다. 중대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별도의 기관을 만들고 검찰은 기소만 하는 곳으로 두겠다는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주로 논의되던 ‘궁극적으로 검찰은 기소, 경찰은 수사를 맡되, 경찰권을 견제하기 위해 경찰은 행정경찰·자치경찰·국가수사본부로 나눈다’와는 다른 안이다.


이에 대해 여당의 한 관계자는 경찰개혁 이야기를 꺼냈다. 중수청의 등장은 경찰개혁 이슈와도 관련이 있다는 의미다. 검찰개혁은 경찰개혁·국정원개혁 등 권력기관 개혁안 전체와 맞물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한다. 지난해 우수수 통과한 법안 중에서 경찰개혁안은 ‘무늬만 자치경찰’에 머문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찰의 권한이 더 강해지는 데 비해, 견제장치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시사IN〉 제697호 “‘한 지붕 두 가족’ 시대, 경찰 힘만 더 커졌는데?” 기사 참조).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 수사권 전체를 다 떼어줄 수 없다는 우려가 더해져 기존 검경 수사권 분리안 중 하나였던 중수청 신설안이 테이블 위로 본격 올라왔다는 뜻이다.


이렇게 나온 중수청 안은 결과적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되었다. 윤 총장은 중수청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며 3월4일 옷을 벗었다. 같은 날 참여연대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도 포함되어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논의되어온 검찰개혁의 방향이다. 오늘 우리는 검찰 기득권을 위해 중도 사퇴한 또 한 명의 검찰총장을 보게 되었다”라고 논평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애초에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파트너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며 서초동을 떠난 셈이 되었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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