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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민낯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한겨레21, 20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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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ights
작성일
2021-10-05 15:27
조회
86
그들은 공익의 대표자다. 검찰청법 제4조는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로 시작한다. 현실에선 ‘정치 검사’란 오명을 쓴 지 오래다. 전국 검사 약 2천 명 중 극소수 엘리트 집단 얘기다. 그들은 진실과 공익보다는 정치권력이나 검찰 조직 이익에 복무한다. 그 대가로 검찰 기득권과 보은 인사(승진)를 얻는다. 검찰이 권력을 오·남용해온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범여권 인사와 언론인 고발을 야당에 사주했다는 ‘정치 검사’는 아직 나온 적이 없다.
“이번처럼 구체적인 고발 사주 의혹은 처음”

최근 ‘검찰 고발 사주 의혹’은 그동안 ‘정치 검사’들이 보여준 검찰권 오·남용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수사·기소권을 선택적으로 행사하는 걸 넘어, 정치권에 고발장을 작성·전달하는 방식으로 검찰이 수사할 사건을 직접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렇다.‘검찰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최창민)는 2021년 9월30일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사건에 관여한 사실을 확인하고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이첩했다고 밝혔다. 검사 비위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다. 이전까지 서울중앙지검과 공수처 수사3부(부장 최석규)는 같은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손 검사는 이날 “관여한 사실이 전혀 없다. 공정한 수사가 진행된다면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확신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검찰권 오·남용을 감시·견제해온 법학자와 활동가들은 검찰의 뿌리 깊은 악습의 연장선에서 이번 의혹을 바라본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그동안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단체나 정당과 암묵적으로 공모해 고발을 사주하고 수사에 착수한다는 의심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인 의혹이 제기된 건 처음”이라며 “현직 검사들이 직접 고소·고발이 가능하도록 법리적인 쟁점을 발굴하고 논리를 작성해 친절하게 고발장을 작성해 넘겼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특이한 점”이라고 말했다.오병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홍익대 법학부 교수)은 “검찰 스스로 인지수사 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모양새를 취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의혹이 사실이라면 통상적인 직권남용 선을 넘은 위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역시 “국민이 부여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한 극단적인 사례”라며 “검찰은 여전히 총장과 가족, 검찰 기득권을 위해서라면 ‘주문 고발’이든 뭐든 할 수 있다는 놀라운 발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궁지에 몰리자 등장한 고발장

검찰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내용은 2020년 4월15일 총선을 12일 앞두고 대검 참모가 야당 국회의원 후보에게 범여권 인사 등의 범죄 혐의를 적은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2020년 4월3일과 4월8일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에게 텔레그램으로 범여권 인사와 언론인 고발장 2건과 관련 기사 링크, 페이스북 화면 캡처본 등을 전달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4월3일 전송한 고발장은 황희석·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국회의원 후보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언론인, 제보자 등이 ‘윤석열 검찰총장과 그 가족, 측근을 비방’하는 허위 사실을 제보, 보도, 논평함으로써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명예훼손 피해자는 ‘윤석열, 김건희, 한동훈 등’이라고 적시했다.고발장이 언급한 ‘윤석열 검찰총장과 그 가족, 측근을 비방’하는 보도는 2020년 2~3월 보도된 윤 총장 부인 김건희씨의 불법 주가조작 의혹, 윤 총장 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채널A 기자와 공모해 유시민 이사장 비리를 캐내려 했다는 의혹이다. 4월8일 전송한 고발장은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이다. 최 후보가 2020년 4월2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이 자신의 법무법인에서 인턴 활동을 했다는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이유다. 최 후보는 고발장 전송 하루 전인 4월7일 서울중앙지검에 김건희씨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당시 검찰은 사면초가였다.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가족 비리 수사에 착수했는데, 검찰의 ‘과잉 수사’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셌다. 그 와중에 2020년 2~3월 김건희씨의 ‘주가조작’ 의혹 보도, 윤 총장 장모 최아무개씨가 2013년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작성한 혐의에 대한 의정부지검의 수사 착수, 윤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당시 부산고검 차장)의 ‘검언 유착’(채널A 사건) 의혹 보도 등이 이어졌다. 2020년 4월2일엔 법무부가 대검 감찰부에 ‘검언 유착’ 의혹 사건 진상 확인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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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 전 사장이 2008년 8월12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검찰 수사관들에게 전격 체포돼 검찰로 향하며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KBS 화면 갈무리




“무죄 나와도 괜찮으니 기소하라”

지난 10여 년간 ‘정치 검사’들은 독점적인 수사·기소권과 기소 재량이라는 양날의 칼로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표적 수사’와 ‘봐주기 수사’가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검찰은 ‘표적 수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08년 8월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당시 부장 박은석)는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을 긴급체포해 불구속 기소했다. KBS가 국세청을 상대로 낸 세금 소송 1심에서 승소하고도, 정 사장이 항소심 재판부의 조정에 응해 “회사에 1892억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였다.(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기소 9일 전 이명박 대통령은 정 사장을 해임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에 발맞춰 검찰이 무리한 수사·기소에 나섰다는 논란이 일었다. 정 사장은 1·2심 무죄 판결에 이어 2012년 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1월 정 사장 기소에 대해 “유죄 판결의 가능성이 없음에도 공소가 제기돼 적법한 공소권 행사의 범위를 일탈했다”며 검찰총장 사과를 권고했다.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보도한 MBC 시사 프로그램 <피디수첩> 제작진을 기소한 사건도 ‘표적 수사’ 사례로 꼽힌다. 2009년 6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전현준)는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판매업자들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명예훼손·업무방해)로 피디수첩 제작진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2008년 4월 방송한 피디수첩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문제 삼은 것이다. 피디수첩 제작진은 1·2심 무죄 판결을 받고 2011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1월 피디수첩 수사·기소 과정에서 ‘기소와 무관하게 체포하라’ ‘무죄가 나와도 좋으니 기소하라’는 검찰 수뇌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밝혔다.‘봐주기 수사’는 ‘부실 수사’나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말과 함께 다닌다. 2010년 6월 처음 제기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가 대표적이다. 김종익 전 케이비(KB)한마음 대표가 2008년 7월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비판한 ‘쥐코’ 동영상을 올린 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이었던 김 전 대표를 사찰한 사건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은 사찰 ‘몸통’으로 의심받은 청와대 수사에 소극적이었다. 국무총리실과 청와대 연결고리로 지목된 최종석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을 서울 시내 한 호텔에 불러 조사하는 데 그쳤다. 결국 2010년 8월 수사 한 달여 만에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공직윤리지원관실 간부와 직원 3명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하고 수사를 마무리했다.부실 수사, 꼬리 자르기 수사였음은 이후 검찰 스스로 증명했다. 2012년 3월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수사 당시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재수사에 착수했다. 결국 최종석 전 행정관과 직속 상급자인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 박영준 당시 지식경제부 차관을 민간인 사찰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기소했다. 이들은 2013년 9월 대법원에서 모두 징역형이 확정됐다.검찰은 수사·기소권을 선택적으로 행사해 정국을 정치권력에 유리하게 이끌기도 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 권력의 핵심을 ‘사회적 사건의 공식적·법적 실체를 규정짓는 것’으로 지적했다.(‘담론권력으로서 검찰’, 2009년) 검찰의 수사 대상과 방향 설정에 따라 사건 성격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사건의 실체 규정짓는 검찰의 권력

2014~2015년 ‘정윤회 국정 개입 보고서’ 수사를 봐도 그렇다. <세계일보>는 2014년 11월28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동향감찰 보고서를 입수해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2014년 1월6일 작성한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 등을 통해 청와대 비선 실세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수사 가이드라인을 언급했다. 2015년 1월12일 신년 담화에서 ‘정윤회 문건’ 사건에 대해 “나라를 위해 헌신과 봉사를 해야 할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강을 무너뜨린 일은 어떤 말로도 용서할 수 없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문건 유출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검찰 수사도 ‘국정 농단’보다 ‘문건 유출’에 방점을 찍었다. 결국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임관혁)는 2015년 1월 청와대 문건 작성·유출에 관여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 등)로 박관천 전 행정관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을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수봉)는 비선 실세 의혹은 풍문을 짜깁기한 내용이라고 결론 냈다. 그 뒤 상황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2016년 11월20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은 구속기소됐고, 2017년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됐다.최근 ‘검찰 고발 사주 의혹’은 검찰이 수사·기소권 틀 안에서 검찰권을 오·남용한 사례들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그동안 드러난 ‘정치 검사의 민낯’이 전부가 아니었단 얘기다. 서보학 교수는 “공수처는 본래 존재 이유가 검찰권 남용 견제인 만큼 이번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며 “21세기 대한민국에 검찰이란 조직이 왜 필요한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왔다”고 지적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09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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