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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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책’이 쉽게 출간되지 못하고, 출간 된다 해도 독자들을 만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인권 책’이 단 한권이라도 더 출간되고, 단 한명의 독자라도 더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보다 자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책’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나눌 만한 책을 소개해주실 각계의 연구자, 선생님, 언론인을 모셨습니다.
‘인권-책 위원회’에는 강대중(서울대 교수), 김상미(너머북스 대표), 김종진(삼인출판사 편집장), 김진규(초등교사), 방효신(초등교사), 서유석(호원대 교수), 손하담(중등교사), 안혜초(중등교사), 은종복(서점 ‘풀무질’), 이광조(CBS 피디), 이제이(방송작가), 장의훈(중등교사), 정상용(초등교사), 주윤아(중등교사), 최보길(중등교사), 홍성수(숙명여대 교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후쿠시마 이후의 삶> 글 한홍구,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옮김 이령경 - 이광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5:08
조회
885
「후쿠시마 이후의 삶」 글 한홍구,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옮김 이령경, 출판사 반비
2004년 프랑스와 영국, 독일의 원자력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처리장들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취재 내용은 논쟁적이고 골치 아팠지만 오가는 내내 눈은 엄청난 호강을 누렸다. 대부분의 시설들이 자연 경관이 빼어난 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동화 속에 나올만한 아름다운 숲길. 프랑스의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 있는 오브 근처 숲은 사슴들이 노닐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한 가지 힘들었던 건 이 시설들이 수도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취재 내내 장거리 운전을 해야 했다는 점이다. 새벽에 숙소를 나섰다 자정 가까이 숙소에 들어오는 일정이 계속 이어졌다. 이 취재를 통해 원전의 지정학이라 부를만한 원자력 시설 입지의 논리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수도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을 것, 바다를 끼고 있을 것, 인구가 적을 것 등등.
기술의 발달로 혐오시설로 분류되던 쓰레기 소각장 중에는 도심에 버젓하게 자리를 잡는 경우도 없지 않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원자력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처리장도 이런 대접을 받는 날이 올까? 위험도에 대한 인식에서도 차이가 크지만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라도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은 공동체 안에서 차별의 논리를 발전시키고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 정도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희생의 요구가 보다 폭력적인 양상을 띠느냐 아니면 경제적인 보상이 중심이냐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프랑스 오브에서 만났던 한 주민은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에 찬성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줍게 ‘돈’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꺼리는 시설을 유치함으로써 지역이 잘 살게 됐다는 얘기다.
위험과 불안을 안고 산다는 것. 분명 좋은 일은 아니지만 별 탈이 없으면 그런대로 괜찮다. 문제는 확률이 낮아도 가끔 탈이 생긴다는 거다. 사고가 발생하면 원자력산업이 기반하고 있는 희생의 논리가 보다 뚜렷하고 냉혹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의 세 지식인(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 도쿄대학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 도쿄 게이자이대학 서경식 교수)이 동북아시아의 핵 문제를 고민하며 나눈 연속 좌담을 정리한 책 <후쿠시마 이후의 삶>에는 산업으로서의 원자력발전소, 그리고 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핵무기가 안고 있는 ‘희생의 시스템(다카하시 데쓰야)’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에 어떤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지가 그려져 있다.
원전사고로 후쿠시마는 오랫동안 씻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피해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 지점에서 멀어질수록 피해 정도는 낮고 경각심은 희석된다. 결국 후쿠시마 사람들만 대대로 피폭지역이라는 멍에를 안고 살아가야할 것이다. 반면에 국가적 필요를 앞세워 후쿠시마에 희생을 요구했던, 안전관리와 사고수습의 책임을 안고 있는 일본정부와 원전업계는 피폭한계량을 높이는 걸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후쿠시마 안에서도 피해의 강도는 균등하지 않다. 피해의 강도와 무게는 사회계층적 위계의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더 세고 무겁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에 따르면 후쿠시마에는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 구제나 보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다수 살고 있다. 이들은 필리핀에서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들, 외국인 노동자들로 피해 구제나 보상에서 소외돼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처지는 68년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에 희생된 조선인들과 다르지 않다. “일본인 희생자는 구체적인 숫자가 한 명 단위까지 정확하게 나와 있는데, 조선인은 거기에 몇 명 있었는지조차 정확하지 않다는 겁니다.”(한홍구) 조선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대략 10만 명, 5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고 그 중 히로시마에서 3만 명, 나가사키에서 1만 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거칠게 추산만 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피폭자 중에 죽음에 이른 사람의 비율이 일본인의 경우에는 3분의 1 정도인데 비해 조선인의 경우 2분의 1 이상으로 추산된다는 것도 피해가 어떻게 불균등하게 전파되는지를 보여준다.
핵무기로 시선을 돌리면 차별의 논리, 희생의 시스템은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2천회가 넘는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중 대기 중 핵실험만 5백회가 넘는다. 악명 높은 대기 중 핵실험의 상당수가 자국의 경계 밖에 있는 식민지에서 이뤄졌고 일부 실험에서는 원주민들을 방사능 피폭의 영향을 파악하는 실험대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미국의 핵실험에 투입됐다가 방사능에 피폭돼 고통을 겪고 있는 미국 군인들만 해도 30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알제리 사하라 사막에서 프랑스가 실시한 17차례의 핵실험으로 알제리, 폴리네시아 주민들과 군인 15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모두 아는 대로 한반도는 핵실험이 아니라 실제 핵전쟁의 무대가 될 뻔 했다. 한국전쟁 당시 만주 일대에 대한 핵공격을 주장했던 맥아더의 주장이 좌절된 걸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전쟁 이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머리위에 드리웠던 핵전쟁의 위험을 살펴보다보면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주가 지난 1950년 8월에 이미 원자폭탄 사용이 검토되었고 1950년 11월 30일 트루먼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한반도에서는 핵무기 사용이 본격적으로 검토되었다(당시 이미 한반도에 40개의 원자탄이 배치됐었다는 증언도 있다). 1951년 9월과 10월에는 미국의 B-29 폭격기가 평양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시뮬레이션을 수행했고 1952년 여름 미국이 전술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이후에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전술핵무기 사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1953년 들어서는 개성을 타깃으로 핵공격계획이 마련되기도 했다. 만약 정전협정이 체결되지 않고 전쟁이 계속되어 개성에 핵폭탄이 투하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핵무기 개발이라는 군사적 목적 없이 원자력발전을 추구하는 나라가 몇 나라나 될까? 핵실험과 원전사고로 인해 극명하게 드러나는 희생의 시스템은 차치하더라도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쌓이기만 하는 방사성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원전산업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인류는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을까? 결국 피폭허용치를 계속 올려서 방사능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희석시키는 것 말고 다른 해법이 있기는 할까? 오늘 우리가 당면한 북핵문제의 기원과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책을 읽으며 떠오른 질문들이다. 역사, 철학, 예술을 공부하는 학자들의 좌담을 기록한 책이라 원자력발전과 핵무기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와 분석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원자력발전과 핵무기의 정치학, 지정학이라 부를만한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대화에 한번쯤 귀를 기울일만하다.
원자력의 지정학
이광조/ CBS PD
2004년 프랑스와 영국, 독일의 원자력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처리장들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취재 내용은 논쟁적이고 골치 아팠지만 오가는 내내 눈은 엄청난 호강을 누렸다. 대부분의 시설들이 자연 경관이 빼어난 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동화 속에 나올만한 아름다운 숲길. 프랑스의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 있는 오브 근처 숲은 사슴들이 노닐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한 가지 힘들었던 건 이 시설들이 수도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취재 내내 장거리 운전을 해야 했다는 점이다. 새벽에 숙소를 나섰다 자정 가까이 숙소에 들어오는 일정이 계속 이어졌다. 이 취재를 통해 원전의 지정학이라 부를만한 원자력 시설 입지의 논리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수도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을 것, 바다를 끼고 있을 것, 인구가 적을 것 등등.
기술의 발달로 혐오시설로 분류되던 쓰레기 소각장 중에는 도심에 버젓하게 자리를 잡는 경우도 없지 않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원자력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처리장도 이런 대접을 받는 날이 올까? 위험도에 대한 인식에서도 차이가 크지만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라도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은 공동체 안에서 차별의 논리를 발전시키고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 정도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희생의 요구가 보다 폭력적인 양상을 띠느냐 아니면 경제적인 보상이 중심이냐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프랑스 오브에서 만났던 한 주민은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에 찬성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줍게 ‘돈’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꺼리는 시설을 유치함으로써 지역이 잘 살게 됐다는 얘기다.
위험과 불안을 안고 산다는 것. 분명 좋은 일은 아니지만 별 탈이 없으면 그런대로 괜찮다. 문제는 확률이 낮아도 가끔 탈이 생긴다는 거다. 사고가 발생하면 원자력산업이 기반하고 있는 희생의 논리가 보다 뚜렷하고 냉혹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의 세 지식인(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 도쿄대학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 도쿄 게이자이대학 서경식 교수)이 동북아시아의 핵 문제를 고민하며 나눈 연속 좌담을 정리한 책 <후쿠시마 이후의 삶>에는 산업으로서의 원자력발전소, 그리고 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핵무기가 안고 있는 ‘희생의 시스템(다카하시 데쓰야)’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에 어떤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지가 그려져 있다.
사진 출처 - yes24
원전사고로 후쿠시마는 오랫동안 씻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피해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 지점에서 멀어질수록 피해 정도는 낮고 경각심은 희석된다. 결국 후쿠시마 사람들만 대대로 피폭지역이라는 멍에를 안고 살아가야할 것이다. 반면에 국가적 필요를 앞세워 후쿠시마에 희생을 요구했던, 안전관리와 사고수습의 책임을 안고 있는 일본정부와 원전업계는 피폭한계량을 높이는 걸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후쿠시마 안에서도 피해의 강도는 균등하지 않다. 피해의 강도와 무게는 사회계층적 위계의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더 세고 무겁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에 따르면 후쿠시마에는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 구제나 보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다수 살고 있다. 이들은 필리핀에서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들, 외국인 노동자들로 피해 구제나 보상에서 소외돼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처지는 68년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에 희생된 조선인들과 다르지 않다. “일본인 희생자는 구체적인 숫자가 한 명 단위까지 정확하게 나와 있는데, 조선인은 거기에 몇 명 있었는지조차 정확하지 않다는 겁니다.”(한홍구) 조선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대략 10만 명, 5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고 그 중 히로시마에서 3만 명, 나가사키에서 1만 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거칠게 추산만 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피폭자 중에 죽음에 이른 사람의 비율이 일본인의 경우에는 3분의 1 정도인데 비해 조선인의 경우 2분의 1 이상으로 추산된다는 것도 피해가 어떻게 불균등하게 전파되는지를 보여준다.
핵무기로 시선을 돌리면 차별의 논리, 희생의 시스템은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2천회가 넘는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중 대기 중 핵실험만 5백회가 넘는다. 악명 높은 대기 중 핵실험의 상당수가 자국의 경계 밖에 있는 식민지에서 이뤄졌고 일부 실험에서는 원주민들을 방사능 피폭의 영향을 파악하는 실험대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미국의 핵실험에 투입됐다가 방사능에 피폭돼 고통을 겪고 있는 미국 군인들만 해도 30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알제리 사하라 사막에서 프랑스가 실시한 17차례의 핵실험으로 알제리, 폴리네시아 주민들과 군인 15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모두 아는 대로 한반도는 핵실험이 아니라 실제 핵전쟁의 무대가 될 뻔 했다. 한국전쟁 당시 만주 일대에 대한 핵공격을 주장했던 맥아더의 주장이 좌절된 걸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전쟁 이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머리위에 드리웠던 핵전쟁의 위험을 살펴보다보면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주가 지난 1950년 8월에 이미 원자폭탄 사용이 검토되었고 1950년 11월 30일 트루먼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한반도에서는 핵무기 사용이 본격적으로 검토되었다(당시 이미 한반도에 40개의 원자탄이 배치됐었다는 증언도 있다). 1951년 9월과 10월에는 미국의 B-29 폭격기가 평양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시뮬레이션을 수행했고 1952년 여름 미국이 전술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이후에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전술핵무기 사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1953년 들어서는 개성을 타깃으로 핵공격계획이 마련되기도 했다. 만약 정전협정이 체결되지 않고 전쟁이 계속되어 개성에 핵폭탄이 투하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핵무기 개발이라는 군사적 목적 없이 원자력발전을 추구하는 나라가 몇 나라나 될까? 핵실험과 원전사고로 인해 극명하게 드러나는 희생의 시스템은 차치하더라도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쌓이기만 하는 방사성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원전산업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인류는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을까? 결국 피폭허용치를 계속 올려서 방사능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희석시키는 것 말고 다른 해법이 있기는 할까? 오늘 우리가 당면한 북핵문제의 기원과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책을 읽으며 떠오른 질문들이다. 역사, 철학, 예술을 공부하는 학자들의 좌담을 기록한 책이라 원자력발전과 핵무기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와 분석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원자력발전과 핵무기의 정치학, 지정학이라 부를만한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대화에 한번쯤 귀를 기울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