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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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책’이 쉽게 출간되지 못하고, 출간 된다 해도 독자들을 만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인권 책’이 단 한권이라도 더 출간되고, 단 한명의 독자라도 더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보다 자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책’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나눌 만한 책을 소개해주실 각계의 연구자, 선생님, 언론인을 모셨습니다.
‘인권-책 위원회’에는 강대중(서울대 교수), 김상미(너머북스 대표), 김종진(삼인출판사 편집장), 김진규(초등교사), 방효신(초등교사), 서유석(호원대 교수), 손하담(중등교사), 안혜초(중등교사), 은종복(서점 ‘풀무질’), 이광조(CBS 피디), 이제이(방송작가), 장의훈(중등교사), 정상용(초등교사), 주윤아(중등교사), 최보길(중등교사), 홍성수(숙명여대 교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 사사키 다카시 지음, 형진의 역 - 손하담
원전만이 해답일까? 공멸(共滅)은 막아야 한다.
손하담/ 서울 오산중학교 교사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뉴스를 지켜보면서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원전에 관한 기본 지식이 없다보니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얼마나 큰 사고이고, 앞으로 일어날 재앙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2012년 겨울 인권연대 교사 직무연수에서 김종철님(녹색평론 발행인)의 원전에 관한 강의를 듣고 나서야 새롭게 눈을 뜰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될 것 같은 의무감까지 들게 되었다.
연수를 들으며 많이 놀랐던 것은 우리나라가 어느덧 세계 최고 수준의 고밀도 원자력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하여 원전 사고의 피해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을 우리 정부가 이미 사용 연한이 지난 원자로를 수리해서 쓰겠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원전 사고는 원자력 발전소가 많은 나라 순으로 나고 있다. 미국, 러시아, 일본, 그 다음은 프랑스 또는 한국일 것 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2011년 9월 11일 프랑스 마쿨 지역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어난 폭발로 적어도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프랑스 경찰이 발표했다. 프랑스 원자력안전기구(ASN)는 방사능 누출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전 사고로 인한 피폭은 당장은 입증이 어렵기에 정부가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후유증은 세월이 흐른 다음 나타난다.
갑상선암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체르노빌 사건 이후 25년이 지나 나타난 후유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유럽에서 원전과 관련되어 폐기된 우유나 농·축·수산물들이 불법적으로 한국에 수입되어 이미 소비되었다면 그 후유증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해결책 없는 전 세계의 442기나 되는 원자로를 폐기할 때, 그 처리는 어떻게 할 것 인가? 학자들이 정부의 입맛에만 신경 쓰지 말고 양심적으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관한 진실만 밝혔어도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원전 건설이 있었을까. 방사능 수치가 반감되기 위해서는 2만 4천 년이나 소요된다는 등, 김종철님의 강의를 듣고 많은 의혹들과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다.
최근엔 서울 노원구 월계동 방사능 도로 사건, 원전 짝퉁 부품 사건 등이 우리 뉴스의 중심에서 한참 동안이나 다뤄졌던 기억도 있지만 이도 어느 순간에 조용히 사라져 갔고 우리 모두는 원전에 관해 또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다시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강의를 통해 들은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스페인 사상사, 인류학을 전공한 교수였던 사사키 다카시가 쓴 치열한 삶의 결과물이다. 다카시 교수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의 행정편의적인 피난 지시를 거부하고, 치매에 걸린 아내와 함께 ‘자택 농성’을 벌였다. 이 책은 ‘자택 농성’ 과정에서 하루하루를 써내려간 일기 형식의 글이다. 저자가 쓴 글은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고, 각계각층의 독자들이 다카시 교수에게 격려를 보냈다. 이 책은 블로그의 독자들과 소통하는 과정들도 소개하고 있다.
만약 우리에게 후쿠시마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국가는 어떤 재난 대비 시스템을 갖고 있으며, 재난 속에서 우리들의 삶은 또 어떻게 전개될 건인가? 평소엔 상상조차 않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실제상황과 실제 상황에 처한 한 인간의 치열한 기록이 우리에게 그 답을 찾아주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재난 수기가 아니다. 한 지식인이 엄청난 재앙에 맞서며, 오랜 연륜이 묻어나오는 지극히 인간적인 깊은 고뇌와 사색이 담겨 있다. 국가관, 국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 일본 재난 시스템의 문제, 개인의 자유와 존엄, 학교, 종교,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민거리를 현장의 치열한 고투(苦鬪)와 함께 생생하게 또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다.
“쓰나미 피해뿐 아니라 원전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미나미소마 시의 절반은 옥내대피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가옥이 파손되는 것을 면하고 전기와 수도를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지만, 이 지역 3만 명 정도의 주민 중 80퍼센트는 현 내의 30킬로미터 권역 외 지역이나 니가타 등 다른 현의 대피소로 자발적으로 피난을 가서 지금 우리 집 주변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인지대로 변했다.” (24쪽)
작가는 자신의 황폐하고 쓸쓸한 삶을 마치 흑백사진처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재난 속에서 방치되거나 밀려난 사람들이 받는 고통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아직 방사선으로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내돌려지다 사망하는 환자나 노인들이 벌써 40-50명이나 발생했다. 장모님이 다니시던 시설을 관할하는 병원에서는 간병인도 없이 이리저리 내돌려진 환자가 몇 십 명이나 죽었다. 그 누구도 아무 말도 안 하지만 이거 명백한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범죄 아닌가?” (27쪽)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주인이 두고 간 듯 한 흰 늙은 개가 거리를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소란 중에 피해를 입는 것은 언제나 병자, 고령자, 동물들이다!” (40쪽)
지진을 자주 겪는 일본이기에 재난에 대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발전된 나라로서의 시스템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후쿠시마의 재난 앞에 얼마나 초라하게 무너져가는지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번 지진을 계기로 우리가 얼마나 제각각이었나 하는 자각과 그 거리는 서로의 노력 없이는 앞으로도 메워질 리 없다는 냉혹한 현실도 알게 된 것은 아닐까.” (91쪽)
“우리는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가, 예측할 수 없는 사태를 만나 한순간에 뿌리째 뽑혀버리는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라는 자각이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그러한 불안정한 위상으로 인간을 내몬 것은 자연이 아니라 어리석은 정치와 투기적인 욕망을 정당화하는 국제경제인 것이다. 그런 것들에 희생만 당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가 인다.” (91쪽)
원전은 안전하다고 주장해 온 전력회사와 지역 단체장 등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도 가감 없이 표출한다.
“원자력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이래, 인류는 늘 파멸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107쪽)
“만일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다고 주장한다면 전력회사 회장, 사장 이하 임원급 사원의 가족들이 원전 주변에 거주할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 같은 이유로 원전 추진자는 꼭 원전 주변에 살기 바란다.” (111쪽)
개학식을 맞아 학생들에게 인사말을 하는 교장이 된다는 상상으로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이제부터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생 여러분, 그리고 2학년과 3학년이 되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 기회를 빌려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세상의 잘못된 일, 부정한 일에 대해 정당하게 분노하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아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라는 말은 들어왔겠지만 필요할 때 화를 내라는 소리는 처음 듣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 정당하게 분노하는 것이 이 나라를 좀 더 나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189 - 190쪽)
또한 행정당국의 어리석은 결정을 따른 학교 현장의 고충도 잘 나타나 있다.
“후쿠시마 시나 고리야마 시의 초등학교에서는 창문을 꼭꼭 닫아 푹푹 찌는 교실에서 창 쪽이 방사선량이 높기 때문에 평등하게 하려고 매일 줄을 바꿔 앉는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창문을 열어도 방사선량은 똑같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는데,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 부모들에 대한 배려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8쪽)
사진 출처 - yes24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반핵의사회> 운영위원으로 일하는 김익중 동국대 의과대학 교수에 의하면 전 세계 442기의 원전(한국에는 23기가 가동중) 중 8기에서 노심용융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한국정부는 “일본과 우리나라는 원자력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저런 일은 안 일어난다. 한국은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럼 일본은 어땠을까? 1979년에 미국 스리마일에서 첫 핵사고가 나자 일본 정부는 “우리는 미국과 달라 안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안전하다는 말은 거짓말이 되었다.
후쿠시마 원자로가 체르노빌 원자로의 11배라고 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후쿠시마가 체르노빌과 비슷한 규모라고 인정하는 데만도 4-5개월이 걸렸다.
한국의 원전,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핵발전소는 2012년 이전까지 영광 6기, 울진 6기, 월성(경주) 4기, 고리(부산) 5기 등 21기가 운영되었고, 8기가 공사 중이었다. 하지만 2012년 중에 신고리 4기 중 1기가 완공되고, 신월성 2기 중 1기가 완공되어 현재 23기가 작동중이다. 5기가 추가로 공사 중인데, 그러면 한국의 핵발전소는 모두 28기가 된다. 뿐만 아니다. 2024년까지는 42기로 늘어날 계획이다. 그게 한국 정부의 계획이다. 그 계획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새롭게 삼척과 영덕에 신규 부지를 결정했다. 이제 한국의 핵발전소는 56개로 늘어날 것이며, 이는 일본의 2배나 되는 규모다.
핵발전소가 늘어날수록, 무서운 사고가 날 가능성도 커진다. 지금 수준에서도 한국은 전 세계에서 핵발전소 밀집도가 두 번째로 높은 나라인데, 2024년 42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면, 핵발전소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된다. 최근 북핵 사태를 맞아 우리 대통령은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단호하게 대처하겠단다. 머리 위의 핵도 문제지만, 당장 우리 발등에 떨어진 핵도 심각하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는 이 난감한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이 발등의 불을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핵발전소의 사고 원인은 다양하다. 미국은 실무자의 실수로, 구 소련은 과학자의 실수로, 일본은 자연재해로 폭발했다. 다음엔 어떤 원인으로 사고가 날까? 한국의 핵발전소가 그동안 관련 사고를 숨기려다 들킨 크고 작은 사고만 653건이었단다. 문제가 있어도 진실을 공개하기는커녕, 그저 비공개와 은폐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참으로 큰일이다.
이제 핵발전소 문제는 일부 원자력 전문가나 이해 당사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도 참여한 가운데, 투명하게 열린 논의를 통해 국가 원자력 안전체계를 다시 수립해야 한다.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녹색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생에너지(태양광, 풍력, 바이오메스, 지열)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바꾸고 대체하고, 준비하고 대비하면서 핵발전소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또한 한반도에서 핵발전소가 모두 폐기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내 삶이 계속되는 한, 내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분노할 것이고, 그 정당한 분노를 에너지 삼아 끝까지 꿈을, 희망을, 이상을 이야기할 것이다”라는 사사키 다카시의 말이 귀에 맴돈다.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 이 책을 여러분께 추천한다. 꼭 읽어보기 바란다. 나를 지키고, 우리나라를 지키고, 이 아름다운 조국을 후손들에게 온전히 넘겨주기 위해, 후손들에게 병들어 신음하는 지구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 우리 모두 핵발전소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는 지킴이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