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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모해위증교사(서보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5-08 14:30
조회
143

서보학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위증죄는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기로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할 때 성립한다.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려는 국가의 사법기능을 방해하는 범죄로서 매우 중한 죄에 해당한다. 이런 단순위증죄 보다 더 중하게 처벌되는 죄가 있다. 바로 모해위증죄이다. 이 죄는 피고인을 형사처벌 받게 하려는 모해목적으로 위증하는 경우에 성립하는데, 단순위증죄 보다 두 배 중하게 처벌된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을 유죄로 만들기 위해 허위의 내용을 진술하는 경우 대부분 모해위증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모해목적으로 위증하는 사람을 사주하는 사람은 이 죄의 교사범으로 처벌된다. 그런데 만약 뒤에 숨어서 모해위증을 교사하는 사람이 검사라면 기함(氣陷)할 일이 아닌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범죄인을 수사ㆍ기소할 책임을 갖고 있다. 검사는 피의자ㆍ피고인의 적이 아니기 때문에 불리한 증거만이 아니라 유리한 증거도 찾아내어 신중하고 공정하게 판단함으로써 무고한 시민이 억울하게 유죄 판결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검사가 특정인을 표적 수사하고 유죄로 만들기 위해 사건관계인의 진술을 조작한다면 이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중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최근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검찰에 의한 모해위증교사가 있었다는 의혹을 폭로하여 파장이 크게 일고 있다. 그의 주장의 요지는 수원지검이 자신과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방용철 전 부회장 등을 검사조사실에 모아 놓고 여러 차례 연어회, 요리, 술을 곁들인 식사자리를 열어주고 진술을 맞추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실제 술자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수원지검과 이화영 측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여론은 검사조사실에서 피의자들이 술을 마셨다는 자극적인 내용에 주목하고 있지만 이 사건의 심각성은 피의자들이 실제 검찰청에서 술을 마셨는지 여부에 있지 않다.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다 보면 식사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설렁탕 등을 시켜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때문에 거기에 술 한잔이 곁들여졌다고 해서 특별히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검사실에서 수사에 순순히 협조하는 피의자들에게 외부와의 통화, 가족과의 면담 등 다양한 편의가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비밀 아닌가.


이 사건의 심각성은 이화영의 주장에 드러난 김성태의 진술에 있다. 이화영의 전언에 따르면 김성태는 검찰 수사의 목적이 이재명을 감옥에 보내는 것에 있기 때문에 모두가 입을 맞추어 수사에 협조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검찰의 선처를 받을 수 있다면서 이화영을 회유했다고 한다. 함께 입을 맞추어 이재명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나머지는 빠져나가자는 취지인 것이다. 거기에 검사의 소개로 고위직 검사 출신 변호사가 이화영을 찾아와 선처를 미끼로 이재명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회유하였다는 사실도 추가로 폭로되었다. 만약 이화영의 폭로 진술이 사실이라면 수원지검이 공범들을 한 자리에 모아 진술을 맞추면서 사건을 조작하도록 자리를 깔아준 셈이 된다. 사안의 진위 여부에 따라서는 명백히 모해위증교사와 사건조작에 해당할 수 있다. 현재 수원지검이 검사조사실의 회유 목적 술파티 의혹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사건의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언론보도를 보면 일부 법률전문가들, 법조 출입 기자들, 심지어 현직 검사도 이화영 측의 술파티 주장에 개연성이 있다고 진술하고 있기도 하다.


믿기지 않겠지만 현실에서는 검사가 허위진술을 교사하며 사건을 조작한다는 의혹을 받는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한다. 특히 물증 확보가 쉽지 않고 사건관계인의 법정 진술이 유죄의 결정적 증거가 되는 사건들이 타깃이다. 대표적으로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사건을 들 수 있다. 지난 2010년 한 전 총리는 중소 건설회사 한신공영의 대표 한만호로부터 9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당시 한만호는 회사부도에 대한 형사책임이 확정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였다. 검찰의 소환조사에서 한만호는 자신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한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으로 제공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1심 법정에서는 이를 전면 번복하여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정치자금 제공 사실은 부인하였다. 이에 1심은 한만호가 불법적으로 조성한 비자금이 한 전 총리에게 전달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한만호가 법정에서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검사실에서는 검찰의 협조를 받아 부도난 회사를 되찾겠다는 개인적인 이해관계에서 거짓자백한 것이라고 의심되기 때문에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2심은 변호인측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만호에 대해서 직접 증인신문을 하지 않은 채 – 따라서 2심에는 필요한 증거조사와 심리를 다하지 않은 위법이 인정된다 – 검사 작성 조서에 기재된 한만호의 자백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하면서 이 진술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후 대법원도 2심의 판결을 수용하여 결국 한 전 총리에게는 최종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런데 수사단계에서 검사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한만호를 73차례나 검찰청에 불러 조사하였는데 실제 작성된 조서는 5회에 불과하였다. 나머지 68차례 소환조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한만호는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하였던 것일까?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난 한만호가 옥중에서 남긴 비망록에서 대강의 사건 경과를 짐작할 수 있다.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전문을 입수해 보도한 한만호의 비망록에 따르면, 한만호는 자신이 다른 죄로 추가 기소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사업의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사의 약속 때문에 거짓진술을 했다면서 자신을 검찰의 ‘개’로 표현했고, 또한 검찰이 처음 약속과는 달리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한 전 총리를 떨어뜨리기 위해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리고 서울시장 선거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보면서 진술번복을 결심했다고 기록했다. 또한 한만호는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을 때 “실수 없이 잘하면 칭찬해주고 저녁(식사). 그 능멸, 모멸감을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한만호가 소환조사를 받았던 대부분의 시간이 검사에 의한 회유와 협박, 진술 맞추기, 편의 제공 등으로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다. 검사에 의한 모해위증교사 및 사건조작이 있었음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종 대법원 판결에 의해 한명숙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었다고 하여 검찰수사에 문제가 없었다거나 법원의 판결이 옳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명숙에 대한 유죄를 확정한 양승태 대법원은 당시 숙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 문제로 박근혜 정부와 모종의 사법거래를 하고 있었음이 후일 드러났고 따라서 한 전 총리에 대한 재판에서도 모종의 정치적 거래가 개입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자의 눈에는 삶이 파탄 난 한 기업인을 검찰이 회유ㆍ협박하여 모해위증을 하도록 함으로써 사건을 조작하고 유력 야당 정치인을 억울하게 감옥에 보낸 사건으로 명확하게 읽힌다. 이런 검찰의 악의적인 탈법수사를 대법원이 고의든 실수든 바로 잡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법원도 공범의 죄책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허위진술을 사주함으로써 사건을 조작하면 그 누구든 감옥에 보낼 수 있는 권한과 영향력,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 현재의 거대권력 검찰이다. 이런 점에서 이화영을 회유하여 위증을 끌어내기 위한 수원지검의 진술조작모의 술파티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사건으로 받아 들여진다.


검찰에 의한 이런 사건조작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가.


첫째, 재소자 관리를 검찰 및 법무부의 영향력에서 독립 시켜야 한다. 회사부도로 유죄를 선고 받은 한만호는 원래 통영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런데 통영 교도소에 간지 21일 만에 갑자기 서울구치소로 이감되었고, 한 달 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출정을 나가 조사를 받기 시작하였다. 검찰 특수부에 의한 사건조작 의혹의 시작이었다. 교정본부가 법무부에 속해 있고 법무부가 검사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한 재소자를 통한 사건조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교정청을 설립하여 교정본부를 법무부로부터 독립시켜 구치소ㆍ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의 관리에 검찰의 입김이 미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독립된 교정청이 설립되기 전이라도 구치소ㆍ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는 즉시 중지되어야 한다. 현재 경찰을 비롯한 다른 수사기관은 재소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한 경우 교정기관에 출장수사를 하고 있다. 반면 검찰만 재소자를 검찰청으로 소환하여 조사하고 있다. 검찰의 권위적이고 오만한 수사관행이다. 검찰청 소환조사는 법적으로도 근거가 없다. 구속되어 있는 재소자가 검찰청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경우 호송을 위해 동원되는 교정 인력의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검사실에서 회유ㆍ협박을 통한 진술조작과 사건조작, 불법적인 편의제공이 있어도 외부에서 이를 감시ㆍ예방할 방법이 없다. 검찰의 소환조사 관행은 즉시 금지되어야 한다.


셋째,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검사에게서 수사권을 분리하여 기소업무만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하면 검찰이 범죄의 실체가 있어서 수사ㆍ기소한 것인지 아니면 실체가 없는데 수사단계에서 사건을 조작하여 가짜 시나리오에 기초해 기소를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외부에서는 검찰 수사와 기소의 구체적인 경과와 내부 정보를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기소가 되면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검찰은 항상 법원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서 판사들을 비난하고 빠져나간다. 청부 수사ㆍ기소를 한 검사는 승진으로 보답받고 - 예컨대 2023년 9월에는 고발사주 당사자 의혹을 받는 손준성 검사가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 억울한 피해자에게는 악전고투 끝에 상처뿐인 승리가 남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항상 검찰의 몫이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한 손에 쥐고 있는 한 모든 시민, 모든 단체와 기관은 언제든지 검사들의 권한 남용과 거짓된 혀에 놀아날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서로 분리되어 감시ㆍ견제할 때 투명성이 확보되고 남용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검찰의 사건조작을 근본적으로 근절하는 방안은 수사기관ㆍ기소기관을 완전히 분리하는 데 있다. 제22대 국회가 수사ㆍ기소 분리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 검찰개혁을 완성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