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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호] 이름을 이름한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8-27 11:49
조회
72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1.
 지리산 화엄사에서 노고단 가는 길에는 코재도 있고 눈썹재도 있으며 무넹이길도 있다. 코가 닿을 정도로 오르막길이 너무 힘들다는 말이며, 눈썹 무게라도 줄여야 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름철이면 물이 넘쳐 흐르는 무넹이길에는 가문 여름에도 물이 풍성하다.


 무넹이라는 말은 여름 장마철이면 홍수로 물이 넘쳐 흐른다는 물넘이의 와음이란다. 서울 수유리는 물넘이의 한자어이기도 한데, 무넹이 무너미 수유리 전국에서 비슷한 지명을 보곤 한다.


 북한산 도선사에서 백운대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하루재 고개가 있다. 미아리에서 걸어 하루가 걸려야 도착했다는 하루재. 하루재 바로 아래는 둥근 커다란 바위가 있다. 그 바위쯤에 이르면 안심이 된다고 하여 안심바위라고 한단다. 하루재 옆으로는 휴식년제에 묶여 지금은 가지 못하는 깔딱고개도 있다,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정도로 힘들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무넹기에서 바라본 구례와 섬진강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
 부천(富川)은 내[川가] 부자[富]인 동네다. 높은 건물로 가려진 지금이야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부천에는 개울이 많았다. 부천을 대표하던 예전 이름은 소사(素沙)다. 기차역이 전철역으로 바뀌고 군 단위 행정구역이 시로 바뀌면서 소사라는 지명은 부천이라는 지명 뒤로 이름하게 되었다. 소사 복숭아는 나주 배, 대구 사과와 함께 지역 특산물로 교과서에도 나왔던 거로 기억하는데,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복숭아밭을 밀어내고 지어 올렸다. 학교 담은 나무가 대신했고 여름철 장마 때면 물이 넘치는 학교 앞 개울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을 선생님이 손잡아 건너편으로 건네주곤 하였다. 공동묘지를 밀어내고 지어 공포의 전설이 많았던 예다른 학교와 달리 소풍 가는 날에도 비 한번 오지 않았다.


 소사라는 지명의 유래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지만, 소사는 모래밭의 한자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바탕 소(素)에 모래 사(沙)라는 한자어에 그 뜻이 담겨있다. 흰 모래밭. 부천이라는 지명과 아주 잘 어울린다 싶기도 하다. 개울에서 물장구치며 놀다가 지칠 때면 햇볕 가득 받아 뜨거운 모래밭에 누워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설핏 잠이 들기도 했으니까…. 비가 오면 진창이 된 길에서 신발 벗어 던진 아이들이 맨발로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느끼던 벌터는 바닷가의 펄과 같다는 말에서 유래되었을 거라 짐작해 보곤 한다. 지금은 그러한 지명이 낯설 정도로 개울도 모래밭도 벌터도 흔적조차 없다.


3.
 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 800년 된 보호수이다. 보호수 주변으로는 높은 건물이 들어섰다. 그 모양을 보자면 발을 뻗지 못할 좁은 공간에 갇힌 느낌이다. 주변으로는 옛것을 기억하고 추억하려는 기념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이 우시장 자리였음을 알리는 조형물도 있고, 복사꽃 마을 소사를 설명하는 새긴돌도 있다. 지금은 개울도 없고 모래밭도 없으며 더욱이 복숭아나무가 사라진 지는 더 오래다. 그저 기념물과 설명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4.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으로 높이높이 쌓아 올리면서, 물장구치려고 수영장을 찾아가고, 꽃이름을 알려고 식물원이나 수목원엘 간다. 휴가철이면 많은 자동차의 긴 행렬에 지쳐 어느 다리 밑 물 흐르는 개천에서 쉼에 목마른 욕구를 달랜다. 내가 사는 자리에서 물장구도 치고 꽃이름, 풀이름을 되뇌며 뜀박질하는 개발은 없는 것인지…. 풀빛 가득한 세상을 찾아가고 떠나온 그 자리에는 또 어떤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 건지….


 아시아드대로, 메트로시티 롯데캐슬카이저 마린시티로 월드메르디앙 베스토피아 센텀에스케이뷰 월드컵로 등등 우리가 새로 지어내는 지명과 아파트 이름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바라는 이 유토피아(?)는 이미 오래전에 와 있으니, 우리는 흙을 밟지 못하는 세상에서 벌써부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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