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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활동가들을 위한 고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8 12:11
조회
222

서정민갑/ 문화활동가(bandobyul@hanmail.net)


 대학을 졸업하고서부터 작년까지 예술운동 조직에서 몸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음악운동 조직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저런 행사에 음악인 섭외를 부탁하는 전화를 수도 없이 많이 받았다. 사실 전화비도 남지 않는 일인데 단지 우리 편에서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내 일인 듯 나서서 전화하고 설득해서 기꺼이 도와주곤 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내가 그렇게 열심히 나서서 일을 도와주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서로 생각하는 게 너무 달랐던 것이다.


 음악인 섭외를 부탁하는 경우 대부분의 생각은 이랬다. 행사장의 분위기 띄울 장치가 필요하거나, 아니면 행사에 사람들이 많이 오게 하고 싶을 때, 혹은 딱딱하지 않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을 때 여러 단체에서는 제일 먼저 음악 프로그램을 생각해내곤 했다. 물론 다른 어느 장르보다 음악을 먼저 생각해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음악이 단지 그들 단체의 행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다.


 여러 음악인들이 각종 행사의 좋은 의미에 공감해서 행사장을 찾았을 때 맞닥뜨려야 했던 황당한 상황은 한둘이 아니었다. 집회장에서 쓰는 마이크 하나만으로 모든 공연을 다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고, 으리으리한 후원회장에 가서 노래하는데 다들 식사를 해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시간이 없다고 공연이 잘리는 경우도 여러번이었고 또한 파업현장에서 그네들의 일당보다 적은 수고비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가난해서 생기는 문제야 그렇다고 치자. 어차피 함께 운동하는 동지인데 그 정도도 이해 못할 정도로 음악인들의 속이 좁지는 않다. 문제는 단지 돈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해서 그들을 위해 음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음악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노동운동이건 통일운동이건 환경운동이건 여성운동이건 자신들이 하는 운동이 중심이고 문화운동은 그냥 부문운동이거나 운동의 선전대이기 때문에 부르면 무조건 와서 노래해야 하고 어떤 조건이든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좋은 뜻으로 함께 하려 했던 음악인들이 도리어 상처받고 돌아오는 것을 참 많이 보았다.


060426web02.jpg


 2005년 광명음악밸리축제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공연 모습
사진 출처 - 광명음악밸리축제 홈페이지(http://www.mvalley.org)


 정권이 바뀌고 법이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이 대안적 가치를 지닌 문화와 예술의 따뜻한 감동과 향기로 채워질 때 비로소 혁명은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부디 문화예술인들을 그에 걸맞게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문화예술운동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활동가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서는 고민하면서 ‘의미있는’ 행사의 문화관련 비용은 줄이려고만 하고, 어렵고 급할 땐 동지를 찾다가 여유 있으면 나몰라라 하며 유명 연예인을 찾고, 민중가수들 몇 징발해서 공연하는 문화제를 남발해서는 더 이상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이 행복하게 만날 수가 없다. 문화운동도 다른 사회운동과 결합하는 방식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하겠지만 우리 운동의 꿈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제는 ‘높은 문화의 힘’ 에 대해 다들 공부도 좀 하고 얘기도 좀 했으면 좋겠다. 문화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고,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형식이 아니라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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