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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그만 좀 이야기하고 일 좀 하자(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0-26 11:13
조회
278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팔레스타인 올리브 수확 체험활동을 조직한 싸이드(가명)가 일은 하지 않고 자꾸 이야기한다. “이곳 올리브 농장이 이스라엘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팔레스타인)에 와서 현실을 봐야 한다. 이스라엘 어쩌고저쩌고 팔레스타인 어쩌고저쩌고…” 듣기 싫은 건 아니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올리브를 하나라도 더 따고 싶은데 자꾸 싸이드의 설명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다. 설명이 멈추자 다시 사람들이 올리브를 딴다. 따다 보니 재미도 있고 올리브를 담은 통이 차는 모습에 보람도 느낀다. 탄력받아서 나무 위로 올라가 올리브를 따고 있는데 또 싸이드가 “올해에도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농부를 공격해서 어쩌고저쩌고…” 일장 연설을 한다. 아 놔, 그래서 싸이드와 17년 지기인 나는 “싸이드,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일 좀 해. 올리브 따란 말이야!” 싸이드는 나를 보면 씨익 웃으며 “내 입은 말하고 있지만 내 손은 올리브를 따고 있어”라고 말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팔레스타인 올리브 농장 주인 아들은 웃으면서 “한국 사람, 올리브 진짜 잘 딴다. 여기서 계속 있어라”라고 치켜세워준다.


올리브를 수확하는 모습(출처 - 작성자)


 

팔레스타인은 요즘 한참 올리브 수확 철이다.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첫 비가 내리는 10월부터 11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올리브를 수확하여 기름도 짜고 비누도 만들어서 판다. 올리브 수확을 통해 전체 팔레스타인의 10~15%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매년 올리브 수확 철에 팔레스타인 농부는 위기에 직면한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안에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한(이를 이스라엘 정착촌이라 명명하고 국제법상 불법임) 이스라엘 정착민과 군인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올리브 나무를 공격하고 훼손한다. 특히 수확 철에 공격이 집중된다. 그렇기에 싸이드와 같은 현지 활동가들은 외국 활동가들과 팔레스타인 내 자원활동가들을 불러모아 이스라엘 공격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농부들을 지키고 실재 수확에도 도움이 되는 ‘올리브 수확 체험활동’을 십수 년 전부터 조직하였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팔레스타인에 방문한 나는 지난 10월 10일에 아씨라 마을 올리브 수확 체험활동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 활동에는 나를 포함한 한국인 2명, 영국인 2명, 몬테네그로, 프랑스 출신 여성 활동가 5명, 현지 대학생 6~7명 정도가 함께 했다.

 


올리브 수확 체험활동에 참여한 국제활동가들과 현지 자원활동가들(출처 - 작성자)


 

싸이드와의 웃음 섞인 오전 디스전을 여러 차례 하고 나자, 농장 가족들이 노지에서 직접 끓인 ‘샤이’(홍차)와 커피, 짭조름한 양념이 입혀진 동그라한 빵들(호브스), 물과 음료수를 점심으로 내어주셨다. 2시간도 제대로 일하지 않았는데 내어준 음식에 살짝 미안함이 생긴다. 싸이드는 사람들을 삥 둘러앉게 해서 또 연설을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표해서 여기에 참석한 국제활동가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또 어쩌고저쩌고...” 속으로 ‘이야기하는 건 좋은데 나에게 소감 이야기하란 소리만 말아라’ 하고 있는데 싸이드가 “이제부터 각국 활동가들의 소감을 들어봅시다. 먼저 제일 멀리서 온 한국 친구들부터 박수 (짝짝짝)” ‘아 쫌 ㅠㅠ’

 

괴로운 점심 식사가 끝나고 팔레스타인 자원활동가들과 일부 국제활동가들은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춘다. 나와 농장 주인집 아들들은 계속 올리브를 땄다. 두 시간쯤 지나니 싸이드가 돌아가자고 한다. 아쉬웠다. 해질 때까지 일해야 하는데. 헤어지면서 농장주 아들들과 힘찬 포옹을 하고 서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나는 생존으로 저항하는 이들에게 경의를, 그는 미친 듯이 일(?)만 하는 한국인(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만)에 감탄을 담은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를 태운 버스는 마을 인근의 이스라엘 정착촌이 보이는 곳에 우리를 내려주고, 참가자들은 이스라엘 정착촌을 멀찍이 쳐다보았다. 가까운 듯 먼 듯싶었다.

그다음 날 10월 11일, 나블루스 내 데이 샤라프 (Deir Sharaf)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의해 사망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나블루스로 통하는 모든 도로는 봉쇄됐다고 현지인들이 전했다. 인구 15만 명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중북부 최대 도시는 하루아침에 고립된 것이다. 나블루스 밖에 거주하던 여성지원센터 활동가는 출근하지 못했고 내부의 사람들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출장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여성지원센터의 교육참가자 졸업식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역 언론은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사망 사건을 보도했다. 긴장감이 높아졌고 봉쇄된 검문소를 전전하다가 이스라엘 군인들이 쏜 최루탄을 몇 번 경험하기도 했다. 10월 16일 출장 일정은 하루 앞당겨 마무리됐고 현지 운전사의 놀라운 기지와 정보력 덕분에 평소보다 2배의 시간이 걸렸지만, 무사히 나블루스를 빠져나와 다음날 이스라엘 공항으로 이동했다.

나블루스 데이 샤라프에서 북부지역으로 연결된 도로, 이스라엘군이 도로를 흙으로 막은 모습(출처 - 작성자)


 

이후 한국에 돌아온 10월 25일, 나블루스 시내로 이스라엘 군인들이 난입하여 4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 당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외부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과의 충돌이라 보도되지만 애초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나블루스에 난입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을 사건이다. 현실은 이스라엘 군인 1명이 사망하면 15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단 처벌을 받는다. 현실은 있는 그대로 드러나지 않고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