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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때때로 나도 드라마 같은 복수를 꿈꾼다(김형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1-11 09:24
조회
299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보통 1월은 현장인권강의하는 활동가에게는 가장 한가한 때이다.


입시 상담이나 차별 상담도 없고 현장 인권 강의를 요청하는 곳도 거의 없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는 마치 일년을 준비하듯 책상과 서랍을 정리하고 그동안 모아온 자료 등과 명함등을 정리하고 버리고 치운다.


그렇게 밀린 원고쓰다가 책상 서랍등을 정리하다가, 물건 등을 버리다 보면 어느새 오른쪽 창밖으로 아침해가 밝아온다. 그제서야 주섬 주섬 안방 침실로 옮길 물건 등을 보행기에 담아 소나기 만난 토끼처럼 추적추적 들어간다. 그렇게 기절하듯 침대로 몸을 뉘여서 엉덩이 중심으로 반바뀌 돌려서 잠이들면 까무룩 까무룩 잠이 들어왔다 나갔다 불면증인지 가위눌림 인지 모를 좀비 같은 꿈을 꾼다.


그렇게 오는 꿈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쫒기다가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높은 빌딩에서 하염없이 추락하거나 무엇에게 무지막지하게 물어 뜯기는 내용이다. 너무나도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이제 그런 꿈을 꾸어도 식은 땀조차 흘리지 않는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불현듯 궁금한 것은 얼굴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나를 절벽으로 던져 버리는 이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넉넉해진 꿈시간에도 요즘 인기있는 복수 드라마처럼 꿈에서라도 초중고에서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학교 때 그 추운 학교 복도에서 삼색 슬리퍼 한짝으로 내 뺨에 싸대기를 날리던 동급생 녀석의 능글맞은 얼굴, 도망치며 신나하던 그 목소리, 그 순간 기절할 것 같은 차가운 공기 냄새까지 생생하다. 정작 그 동창의 이름은 아무리 해도 기억 안나는 걸 보면 그 때 내가 당한 것은 요즘에 비하면 정말 애교스러운 수준이었으나 그 드라마의 예고만 보고도 온 몸의 아드레날린이 정맥주사로 맞는 것처럼 용솟음치는 걸 보면 피해자이긴 했나보다. 그러나 드라마처럼 복수를 꿈꾸기엔 그것을 치밀하게 기획하기엔 나는 너무 귀찮고 피곤했다. 그 가해자 녀석의 괴롭힘보다 진학하는 학교가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입학을 거부하지 않을까 더 두려웠기 때문에 얼굴에 남은 슬리퍼 자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나 초등학교 때 고등학교 때 능글맞게 나를 괴롭히던 친구는 전교 1등을 하는 언어 실력으로 놀렸고 서울대 갈 성적으로부터 얻은 선생님들의 신망을 방패삼아 벌을 피해 갔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받아쓰기는 여전히 빵점이었다. 언제부터 다른 아이들이 나를 공룡이라 불러댔다. 아마 체육시간에 음악에 맞춰 무용을 할 때부터였다. 다른 친구와는 달리 당시 유명했던 마징가 Z 만화 주제가조차 나는 몰랐다. 아이들의 익숙하고 빠른 율동에 나의 흐느적 거리고 휘젖는 팔다리는 걸려서 넘어질 뿐이었다. 나는 분단별로 아이들이 서 있는 곳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들을 바로 보며 앉아 있었다. 그 때, 드디어 나는 안전해 졌고 편안해 졌다..


학력고사 시절 중간고사를 보던 고등학생 때에는 아무도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수능으로 대학 입시가 바뀌고 연산 로터리 재수학원에서 일년동안 본고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시인이었던 학과장이 이 점수면 합격이란 전체 7명만 얻은 언어 영역 점수를 들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홀로 입성했다.


서울에 오면서 제일 먼저 일년 일찍 그 대학에 갔던 그 가해자 녀석이 떠올랐던 것은 혼자라는 불안감이 주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알 수 없이 짜릿하게 승리한 것 같은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입학식 바로 다음날 점심 때 대학교에서 행정학과를 다닌다는 그를 만났다. 선배라고 1900원짜리 청경관 식판 밥을 사주었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는 사과 비슷한 것을 한 것 같긴 한데 진정 내가 용서했다는 감정도 경험도 남아 있지 않다. 그 녀석에 비해 내가 일년 늦게 대학을 왔지만 그 당시에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아무도 믿어 주지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던 내가 어릴 때부터 꿈꾸던 전공에 내 실력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대학 내내 형언할 수 없는 만큼의 내 엔돌핀이었다.



출처 -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중


지금 그 드라마로 인해 태국의 유명 배우가 학창시절에 같은 반의 자폐인 학생을 괴롭힌 것이 재조명되어 사과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피해자와 가해자는 어떤 심정일까? 그것을 방조하고 방임했던 교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런 복수극이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는 것은 그만큼 현실은 암담하기 때문일까?


그 드라마에서 학교 폭력으로 자퇴하려는 피해 학생을 더 때리고 겁박했던 교사가 장학사 시험을 앞둔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굉장히 자의적인 듯 하면서도 아주 현실적이며 상징적이다. 의무교육의 최고 관리자가 단지 장애인 학생이란 이유만으로 입학을 거부하고 그들을 지역사회서 함께 교육 하기를 거부하면서 특수학급조차 만들지 않는 교육계의 현실에서 그런 설정은 절대 황당하거나 기괴하지만은 않다. 그 드라마에 고데기로 인한 학교 폭력사건이 17년이 지난 2006년의 과거이지만 오늘날 학교는 과연 이런 폭력이 사라졌거나 줄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다만 변한 것은 귀신의 복수로만 그 아픔과 피해를 호소하던 8,90년대를 지나 가족과 남자들의 복수로 점철되었던 막장드라마를 거쳐 치밀한 작전과 사고, 사람들과의 공감 연대를 통해 함울아비와 같은 복수극을 펼친다는 판타지가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학교 폭력의 피해 경험자로서 그 드라마의 가해자의 행위에 재경험을 통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도 복수극을 펼쳤던 여주인공을 통해서는 그렇게 많은 카타르시스 공감하지 못하겠다. 웃기게도 여주인공이 복수에 집중하기 위해 오로지 김밥만 먹는 것이 식판을 들수 없어 김밥만 먹었던 나에게 가장 공유하는 판타지가 되었다. 피해자인 주인공이 물리력을 거의 쓰지 않고 가해자들이 스스로 자멸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나와 같은 약자들의 욕망들이 충분히 투영된 것이지만 여전히 나와 같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펼치는 복수극은 그 드라마에 없다. 장애인 학생들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너무 많은 일이어서 오히려 우리 사회는 둔감한 것일까? 학교인권교육에서 나도 가끔 복수심이 올라올 때가 있다. 장애인 학생을 괴롭힌 가해자를 향해 인권교육을 진행할 때 가끔은 인권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에 날려드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모욕과 혐오를 마주하다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너도 장애인이 되거나 이동약자가 되면 두고 보자라고 하는 것 외에 더 드라마 같은 보다 더 인권적인 복수는 과연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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