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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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길주희(인권연대 간사),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라영(문화평론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전국완/ 중학교 교사 요즈음 2학기 중간고사가 코앞인데도 수업분위기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어수선한 수업을 마치고 머리뒤꼭지가 뻐근해져서 교실문을 나서면 한참동안 우울해진다. 수업을 좀 더 재미있게, 입체적으로 준비했어야 했는데……. 여느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확 잡는 카리스마가 내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북의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은 일에도 까르르 윗몸을 젖히며 웃어젖히곤 하는 그 친구의 웃음소리에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간까지 수업준비를 하고 있던 그 친구의 목소리에도 피곤이 묻어 있었다. 도무지 교사의 지도가 먹히지 않는 한 아이 때문이었다. 교과공부는 작파한 지 오래고, 금품 갈취에 폭행까지 일삼아서 수차례의 선도위원회와 폭력자치위원회를 통해 사회봉사에 등교정지까지 받았는데도 나아지지 않아서 결국 다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전출’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에 어머니는 교무실에 찾아 와서 연일 무릎을 꿇고 울면서 용서를 빌고 있다고 하고……. 담임교사인 친구의 고민은 다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전출’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아이를 위한 근본적인 처방은 되기 어려울 거라는 데 있다. 생계부담에 이미 지쳐있는 홀어머니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거칠어져 있는 이 학생이 다른 학교에 간다고 해서 스스로 개과천선해서 자기 몫의 삶을 찾아 살아갈 수 있을까? 얼마 전 본교에서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반복되는 비행으로 아이를 인근학교에 강제전출을 시켰다. 그런데 결국 그 곳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아 본교로 돌려보내진 것이다. 그리고는 학교와 어른들을 조롱이나 하듯 말썽을 그치지 않다가, 끝내는 학교를 뛰쳐나갔으며,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퇴학이 없다. 결국 학교가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 다른 학생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경우에 일단 다른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고, 보내져서 적응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아예 가출을 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그나마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들은 그야말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우리 사회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그야말로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부적응학생의 문제는 물론 예전에도 있었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사회 전체가 극심한 경쟁시스템으로 돌아가고, 경제적인 여건으로 많은 것이 결정되는 세상이다 보니, 가족의 해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이로 인한 ‘가족해체형 부적응아’들이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기본적인 삶 자체가 흔들리게 되면서 따라오는 이들의 부적응은 잠시 질풍노도기를 맞아 성장통처럼 겪는 방황이 아니라 언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한 열 몇 살짜리 아이들을 되돌아갈 수 없는 나락으로 내모는 심각한 경우들이 많다. 지역교육청별로 Wee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학교마다 상담인턴교사를 배치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그리고 비단 이런 극단적인 사안만이 아니더라도, 학력위주의 사회에서 교과 성적으로 줄을 세워야 하는 학교교육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아이들은 현재 심각한 부적응을 앓고 있다. 친구가 고민 끝에 도달한 곳은 ‘대안학교’이다. 실제로 친구는 앞에서 언급한 그 학생의 전출이 결정되면서 일반학교로의 전학은 그에게 같은 실패를 안겨줄 게 뻔하다는 생각에 대안학교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입학 가능한 대안학교가 있었지만 사립학교인 그 곳의 월 5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이 또 문제였다. 일반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 뛰쳐나오는 아이들을 끌어안는다는 취지로 설립되기 시작한 대안학교는 현재 전국적으로 30여 개교(중·고등학교 과정)이고, 이 중 9개 정도가 공립이다. 다만, 많은 사립대안학교들이 설립 초기와는 다르게 고액의 등록금을 받는 ‘귀족학교’ 가 되어가고 있고, 또한 ‘입시 대비’에 치중하면서 본래의 설립 취지와 다르게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결국 위 사례에 해당하는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진짜 ‘대안’은 ‘공립 대안학교’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공립대안학교(중학교)들이 긍정적인 결실을 보이면서 지원자가 늘어나 입학경쟁률이 해마다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보다 많은 공립대안학교의 설립이 요구되는 것이다. 대안학교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 이유는 일반학교와는 다른 소질·적성 계발교육, 체험활동 위주의 교육프로그램 등 교육과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작은 학교’라는 조건일 것이다. 아이들 개개인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존감을 되찾으면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꿈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권영길 의원의 보고서(2010년)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의 특목고 예산지원이 일반계 고등학교의 3배가 넘는다고 한다. 정작 각별한 지원이 필요한 부적응학생들은 외면한 채 특별한 영재들에게만 지원을 쏟아 붓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기회균등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부당한 차별이다. 또한 요즈음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른 ‘복지’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문제이다. 부적응의 문제는 당사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악화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의지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사회갈등의 문제를 예방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상위 5%에 해당하는 부유층 학생들을 위한 특목고 등 귀족학교에 쏟아 붓는 만큼의 예산을 하위 5%에 해당하는 부적응학생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전국 곳곳에 다양하고 창의적인 공립대안학교들이 많이 세워져서, 가족해체나 과중한 교과공부에 힘들어하는 많은 학생들이 낙오자가 아닌, 우리 사회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52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공개하면서 다시금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이 노골화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반면,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교권침해’를 조장해 학교교육을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일부 보수단체들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성인식을 왜곡’시키고,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러한 억지가 부담스러웠는지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회는 조례 초안에서 ‘성소수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관한 권리조항을 삭제하는 ‘굴복’을 결단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담고 있는 내용은 학생 또한 사람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미 헌법에서 확인하고 있고 법률에 의해 보장되고 있는 권리들을 조례를 통해 재확인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반대하는 세력들은 마치 없는 내용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처럼 호들갑이다. 체벌금지에 대해서도 조례가 초중등교육법에 위배된다는 섣부른 주장을 하면서, 나아가 체벌이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근거 없는 비방과 비난만 퍼부을 뿐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지도 정책자문위원회 한상희 위원장과 박영미 부위원장이 지난 9월 7일 시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 초안과 학생생활교육혁신 시안' 등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렇지만 이런 비방과 비난은 그나마 ‘무지의 소치’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교권조례’에 대한 논의이다. 전라북도교육청은 얼마 전 학생인권조례와 함께 교권조례를 입법예고했고, 전라남도교육청은 아예 학생, 교사, 학부모의 권리를 모두 담은 ‘교육공동체 인권조례’라는 정체불명의 조례를 추진 중이다. 광주에서도 모 교육의원이 교권조례를 추진하고 있다. 학생인권 보장과 함께 교권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말은 위험한 의도를 담고 있다. 교권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교사의 교육권’으로 정치나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주적으로 교육할 권리를 의미한다. 여기서의 외부는 학교 이외의 세력, 학부모집단, 나아가 교육행정당국도 포함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교사의 권력 또는 권위’로 교사라는 전문성과 역량에 기반해 지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이 두 가지는 엄밀히 다른 의미임에도 교권이라는 애매한 말로 한꺼번에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교권조례를 통해 보장하려는 것이 ‘교육권’인지 ‘권위’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학생인권조례 논의 속에서 나온 것을 고려하면 정황상 ‘권위’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교사의 권위는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사의 전문성과 역량,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자연스럽게 형성되거나 인정되는 것인가. 권위주의를 내세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형성되고 인정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폭력과 억압을 앞세워 복종을 강요하는 무시무시한 공권력의 얼굴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의 교육구조 속에서는 교사의 권위가 형성되기 어렵다. 경쟁과 일등주의의 강요에 침묵하고, 학생들을 억압하는 교육행정에 동조하며, 교육자로서 자주적인 교육을 포기하도록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의 권위는 강요가 아닌 이상 형성될 수 없는 것이다. 교권조례는 바로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을 외면한 채 교사들을 ‘순응하는 객체’로 두려는 것이다. 교사의 권위가 인정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는 학교 구조 속에서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의 인권이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 학생인권 존중을 통해 일방적 주입식 교육에서 소통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교사와 학생 간 대립 구조가 해소되고, 상호 존중하는 학교문화가 조성될 수 있다. 다음으로 ‘교육권’이 학생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교육행정당국과 부당한 교육제도를 향해 행사되어야 한다. 자주적 교육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교육활동의 기능인으로 전락한 교사에게 권위는 있을 수 없다. 왜곡된 교육구조를 해소하지 않고 모순의 현실에 안존하는 한 교사의 권위는 포장될 수는 있어도 형성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인권을 기반으로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가 만들어지고, 부당한 교육에 대한 저항이 본격화될 때 교사의 권위는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외면한 채 교권조례로 권위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또 다시 교육행정당국이 제시하는 ‘당근’을 덥석 무는 꼴이다. 학생인권을 교권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는 순간 교권을 보장하겠다는 본말은 전도되고, 단지 학생인권을 억압하는 결과만 남게 될 것이다. 결국 교권조례는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82 | 추천: 0
임아연/ 한밭대 학생 "영어 좀 늘었겠는데." 단풍이 한창 무르익어갈 10월, 필리핀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온지 1년 3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적어도 첫인사로 이 말은 듣지 않았으면 싶다. 여전히 부끄러운 내 영어 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가보지 못한 다른 세상을 한참이나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가장 궁금해 할 게 영어라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기 때문에.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필리핀에서의 영어공부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보다 이 나라의 사람들과 사회는 어땠는지, 내 20대에서 이 경험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긴 여행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게 훨씬 흥미로울 것 같다. 나처럼 취업을 눈앞에 둔 대한민국의 많은 청춘들이 대세에 떠밀리듯 외국행 비행기를 탄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필리핀을 택하는 많은 이들이 품은 목적은 아마도 영어일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 필리핀 여행을 끝내고 공항에서 친구를 배웅하는 중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한국 학생을 봤다. 수화물 무게가 넘쳤는지 그는 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큰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거의 대부분 무거운 토익 책과 영어(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취업용 영어) 관련 서적들이었다. 그가 짊어진 취업의 무게, 영어의 무게를 그대로 보는 듯 했다. 관계 맺기 위한,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언어는 애당초 없었다. 필리핀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타갈로그어를 비롯한 필리핀 전통 언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누군가는 필리피노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얼굴 시커먼 애, 냄새나게 생겼어" 따위의 어이없는 댓글도 서슴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가장 큰 깨달음은 '말'이 통한다고 마음조차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창한 영어실력보다 낯선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열려있는 마음이 더욱 절실했다. 토익 900점이 한 사람의 의사소통 능력, 대인관계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부끄러웠다. 거세게 몰아치는 한류열풍으로 이들에게 한국이 '꿈의 나라'처럼 그려질 때, 그러다 가끔씩 "한국 학생들이 영어 공부하러 많이 오죠. 다른 나라에 비해 싸니까."라는 필리피노의 말을 들을 때면 속 빈 강정 마냥 겉만 번지르르 해 보이는 한국이 부끄러웠다. 수많은 한국인이 이곳을 거쳐 가지만, 이들이 갈구하듯 서로 친구가 되려 하기보다 영어를 위한 수단으로서 대상화시키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느껴왔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낯선 내가 딸의 친구, 심지어 7촌 조카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보름씩이나 집에 묵고 간다고 해도 흔쾌히 방을 내어주고, 따뜻한 밥을 지어 줄 만큼 이들은 한국인에게 호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원고를 청탁받고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적잖이 고민했다. 글을 쓰기에 앞서 이곳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고, 앞으로 한국에서 펼쳐질 나의 새로운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했다. 나의 처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의 바람, 사회적 요구에 의해 결국 귀결된 것은 취업이었다. 내가 제 아무리 1년 여 시간 동안 필리핀이라는 다른 사회를 보면서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내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한들, 결국엔 '필리핀 교환학생' 이 한 줄로 이곳에서의 내 삶이 표현될 것이다. 기껏해야 '영어 좀 할 줄 알겠거니' 하는 정도로 나를 파악하게 될 테지. 참으로 우울한 일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51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 요 며칠 뒤숭숭하다. 요행이 무상급식 정책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거대 보수정당의 정쟁 속에서 겨우 살아남자, 이번에는 무상급식 정책을 추진하는 교육감에게 “후보매수”혐의로 사퇴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왜하는 무상급식이고 복지정책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중요한 쟁점토론도, 추진할 주체세력(또는 출신 계급)에 대한 사상과 전력의 검증절차도 없이 反 한나라당, 反 MB로 똘똘 뭉친 정당들의 선거연합이 부른 결과이다. 더욱이 교육감 사퇴여론에 편승해서 사퇴압박만을 하는데, 정작 본인들의 과오에 대한 성찰이 없는 것도 꼴불견이다. 결코,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의 모습으로 보기 어렵다. 더는 진보니, 민주니, 개혁이니 하는 요란한 구호를 남발하는 세력에게 속아서 주도권을 넘기는 우를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마음에서 몇 자 적는다. 세금으로 배를 채우는 자본이 있는 한 무상이 아니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등등의 사회복지 정책은 절실하다. 반드시, 헌법상 보장된 보편적인 권리 때문만이 아니라, 빈부격차가 날로 격증하는 공황기의 한국에서 시민들의 경제생활상 최소한 생존요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를 두고, “무상시리즈”라는 보수정당들의 폄훼와 왜곡은 그들의 정치책략이라 치더라도, 남는 문제는 있다. ‘어떤 무상’인가 하는 것이다. 교육이나 의료를 제공받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얼핏 보면 같은 것일지 몰라도, 공급자가 어떤 자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즉, 공급자가 사적자본이고 그 사적자본은 변함없이 균질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하더라도(그런 경우도 거의 없지만) 해당 서비스의 비용을 결국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이기에 그렇다. 이 경우, 실제로는 사적자본이 단순 서비스 비용 뿐 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윤도 함께 청구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미 사적인 수용시설을 운영하는 여러 민간단체와 종교단체가 관계 공무원과의 비리유착은 이미 널리 알려진 한국사회 진실이다. 더욱이,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고, 심지어 인권유린까지 자행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따라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사적 자본이고, 그 사적 자본의 이윤을 세금으로 메워주는 방식의 복지정책은 사기에 가깝다. 또한, 서비스 제공업체로 선정되지 못하여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받지 못하는 불운한 자본의 입장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불공정거래”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에서 주장되는 “반값 등록금” 주장은 잘못이다. 현재의 탐욕스러운 사립학교 재단을 그대로 두고 절반의 등록금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다. 작년에 유행하던 의료보험 “하나로”도 이해할 수 없는 소리이다.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병원자본, 제약자본에게 보험료 1만원 인상으로 그들의 탐욕이 채워질 것이라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이제, 진실된 목소리를 내어 시민사회운동을 새롭게 건설해야한다. 그것은 “국유화”이다. 영국식의 무상의료도, 프랑스식의 무상교육도 국유화 위에서 가능하다. 더는 혹세무민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의 기본적인 생활영역에 대한 서비스는 반드시 공적인 서비스이어야 하며, 공급주체는 반드시 국가여야 가능하다. 또한, 그래야 “공공성”도 유지된다. 그러므로 이제 필요한 논의는 국유화이다! 이는 해방정국에서 일어난 토지몰수 논쟁과는 다르게 이것은 항구적인 국유화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고려가 필요하다. 그 하나는 공급자로서 국가, 공적영역의 확대가 가져올 효과에는 반드시 시장에 대한 통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실의 시장은 탐욕스런 자본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 판이며, 거대 자본의 독재이다. 결코, 대통령의 공약으로 통신비 인하나 반값 등록금 실현, 전세 값 안정을 이룰 수 없다. 기름 값도, 자장면 값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생존에 필요한 주요 생필품과 시민의 기본적인 생활영역에 대한 서비스의 상당부분을 국가 제공하고 세금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가격을 통제하고, 자본의 자본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분야, 어느 정도의 국유화가 우리 시민사회에 합리적인지 고민하자. 물론, 그 절차도 말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의 세금이 대학생 등록금 같이 특정 계층에게만 수혜가 돌아가는 경우, 다른 계층(대학을 못가는 계층)과 비교해 불공평하다는 점이다. 대학교육 기간 뿐 아니라 대학졸업 후를 생각하면 더욱 불공평하다. 따라서 대학교육을 무상으로 받은 혜택을 누린 자에게 반드시 사회에 무상으로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프랑스도 엘리트 영재교육기관 수료자에게는 고위직 진출 전에 반드시 해당 영역의 공직(평교사, 공무원)에서 10년 봉직을 의무화하고 있다. 최소한 무상교육 수혜 대학생에게는 같은 기간 정도의 무상으로 시민사회에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대학졸업의 영예를 개인에게 주고 그가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진출의 기회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꽁짜 복지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자.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도시 몽펠리에의 의과대학에서 1학년 학생들이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 채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불로소득을 먼저 몰수하자 복지정책과 관련해서 ‘더 이상의 증세 없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보수정당의 말은 거짓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나 공공지출 감소를 의미하는 균형재정이니, 재정 건정성이니 하는 주장과 동시에 보편적 복지 주장을 하는 시민단체들도 거짓이다. 분명히 복지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더 많은 세금 밖에는 답이 없다. 더욱이 노령화 사회진입으로 복지비용은 계속 늘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세금을 누구에게 왜 징수하는 가를 복지정책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과세하는 “소비세” 같은 것은 반대한다. 세금 징수의 목적에는 우리사회의 불공평한 경제력 집중의 해소가 있다. 흔히들, 우리사회는 사회양극화가 심화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고, 더불어 가계부채는 900조에 이른다고 한다. 동시에 우리사회 극소수는 부동산과 금융에서 불로소득으로 천문학적인 수입을 얻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에서의 투기목적으로 떠도는 부동자금이 한국에만 800조니, 900조니 한다. 15대 재벌집단의 사내 유보금은 56조9000억 원에 이른다. 즉, 우리사회 다수가 노동의 대가를 소수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것은 점점 더 자명한 일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세금을 (조금씩 좀 더)걷자하자는 것은 우리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철저한 불관용의 입장에서 견결이 반대한다. 이미, 한국은 소수의 부자에게 덜 걷고, 다수의 빈자에게 많이 걷은 불공정 과세를 정부수립 이래 지속해 왔다. 그런데도, 더 내라니! 이것이 어찌 용납할 소리인가! 또한,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과세는 징벌적으로, 철저하게 무자비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몰수하고 불법화해야 한다. 그들의 존재자체가 경제의 불안전성이고, 우리사회 부패의 근원지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요즘 그들은 정부의 과세와 시민들의 감시와 비판에서 숨고자 “00재단”을 잘 만든다. 또는, 이런저런 기부행위도 한다. 그런데, 평소 기부조차 인색한 그들이 공익재단을 만든다니 기쁜 일이라고 언론은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또, 시민단체 명망가들 중에는 자신의 명함을 빌려줘 탐욕스런 자본가의 얼굴에 분칠하는데 일조하는 사례도 있어 개탄스럽다. 심지어, 중세 유럽의 면죄부 판매처럼 금융•투기자본과 악덕 재벌의 기부로 운영되는 아름답지 못한 재단도 있다. 시민사회의 감시와 과세의 영역에서 달아나 만들어지는 자본들의 모든 재단들을 반대해야 옳다. 그들에게 편승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로소득을 몰수하라고 외쳐야 한다! 아무튼, 시민사회의 과세에 대한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 그 합의는 자신의 노동소득 이외의 것에 대해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자소득이나 펀드수익, 부동산에서의 수익 등등을 말한다. 노후가 불안한 것은 안다. 하지만, 불로소득에 대한 용인 하에서는 사회 양극화와 사회 불평등 해소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로소득 문제는 단지 정책적 태도를 넘어 윤리적, 정치적 입장인 것이다. 또는 계급적인 태도이다. 몰수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징벌적이고 철저한 과세를 해서 사회 불평등을 해소해야 옳다. 더불어,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과세로 발생한 세원이 복지의 재원이 되어야 한다. 세목도 “사회연대세”같은 추한 것을 억지로 아름답게 꾸민 이름 보다는 “장물세”나 “횡재세”, 또는 “홍길동세(로빈후드세)”같이 진실된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연후에 모든 시민들이 공평하게 부담해서 복지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 주장은 그 때 가서 논의하면 된다. 그런데, 이것이 선후가 바뀌어서 미사여구로 언제나처럼 가난한 시민들에게 세금 더 걷어 십시일반(十匙一飯)하듯 복지재원을 만들자는 주장하는 것과 공공지출을 줄여 복지예산을 확보하자는 것에 반대하며, 오히려 그런 자들을 금융·투기자본 앞잡이라고 나는 비난할 것이다. *이상은 본인의 생각과 양심에 따라 어떤 꺼리김 없이 썼으나 본인이 속한 단체의 공식입장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14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올해 6월 3일 프랭크 라 뤼 유엔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17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 표현의 자유 보고서(8개 분야, 16개의 권고안)를 발표하였다. 한국 상황에 대해 보고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많지만 결론적으로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이명박 정권이후에 한국에서의 전반적 표현의 자유는 후퇴되었고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두드러지게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권고안을 이행하기 위해 정부 측과 국회(천정배 의원실), 그리고 인권시민노동단체들이 공동으로 8월 17일에 국회에서 보고서 후속이행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로써 2008년 8월 유엔특별보고관에게 최초로 한국에 인권침해 조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한 이후 3년여의 유엔인권활동(엄밀히 말하면 유엔 특별절차에 진정한 이후 진행되는 프로세스)이 마무리 되었다. 지난 5월 말 유엔인권이사회 17차 세션 한국 NGO 참가단 출국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지만 이 활동은 2008년 촛불집회로부터 시작되었다. 2008년 광우병수입협상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그해 6월을 정점으로 정부의 심각한 탄압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 상황에서 민변을 포함한 인권시민노동단체들은 유엔이라는 상대적으로 공신력이 높은 외부기구에 한국 인권침해상황에 대해서 정식으로 조사방문을 요청하는 유엔특별절차(UN Special Procedures)를 활용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국내단체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대표적인 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와 함께 2009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과 아시아 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결국 한국의 상황을 인식한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2010년 직접 한국을 조사 방문하였고, 이를 2011년 6월에 보고서로 발표한 것이다. 이를 위해 꼬박 3년 동안 국내 수십여 인권, 시민, 노동단체들이 연대활동을 하였고 국제인권단체들도 많은 수고를 기울였다.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보고서에서 한국 단체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고 나름 상세하게 한국 표현의 실상에 대한 언급과 함께 적절한 권고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단체들 간에는 성공적인 활동이라는 평이다. 하지만 다른 평가도 있다. 다른 유엔활동인 유엔 조약기구 활동(한국이 가입한 국제인권조약의 이행을 감시하는 기구에 NGO 보고서를 제출하는 활동)도 그렇지만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안이 강제력이 없기에 정부에서 이행하지 않겠다고 하면 별다른 도리가 없다. 이번 권고안에도 포함되었지만 유엔의 권고안들의 상당수가 1995년도부터 반복되고 있다.(특히 국가보안법 폐지, 기존 유엔권고안에 대한 이행 등) 그래서 유엔권고안에 대한 실효성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되고 있다. 또한 이행평가 토론회에서 정부담당자는 “특별보고관 보고서의 권고사항 이행계획을 수립할 예정이 없다”고 발언했다. 또한 이번에 같이 활동했던 활동가는 “유엔의 활동은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고 얻어지는 결과(권고)도 나쁘지 않지만 들어가는 품은 많은데 비해 실효성이 부족하여 피로함이 높은 활동인 듯하다”라고 평을 하기로 하였다. 일리 있는 평가이다. 상반된 평가 속에서 유사하지만 또 다른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유엔 UPR(국가별인권상황정례검토)활동이다. 아직 제대로 된 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시작한다. 누군가는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활동은 활동가의 상상력을 빼앗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든다고 한다. 나 역시 스스로 내적인 평가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사한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한 번의 시도로 잘못된 구조와 현실이 변화된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정말 비현실적인 기대일 뿐이고, 몇 번을 해도 여전히 국가보안법과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면, 국가보안법이 폐지 될 때까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때 까지 계속 맨땅에 헤딩도 하고 계란으로 바위도 치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남들이 뭐라고 해도 지금은 냉정한 평가와 이성적 판단보다는 우직하게 한 우물을 깊게 파내려가는 우공이산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분명히 내 자신의 합리화임이 틀림없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85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이스라엘은 적입니다. 그들은 내 고향인 레바논, 그리고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이웃이 아닙니다.” 와엘 사브 회장은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다. 레바논이 고향이지만 아랍에미리트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그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반응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오랫동안 체득한 처세술인 듯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스라엘은 중동 평화 문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웃나라인 레바논 사람으로서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란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 5월22일부터 28일까지 8일 동안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를 방문했다. 6주에 걸친 순회특파원 일정 중 첫 단추를 중동으로 꿴 셈이다.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를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격변과 침묵, 경제적 번영과 답보를 대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만나는 중동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이스라엘과 관련한 많은 질문을 던져보려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만나본 ‘중동’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막강한 무력을 앞세워 이웃나라를 힘으로 위압하고 영토를 불법점령하고 수백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강요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그리고 그런 깡패 짓을 대놓고 하는데도 말리는 건 고사하고 편만 들어주는 미국에 대한 불만이 두 번째였다. 그것은 마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모든 학생들이 미워하지만 ‘완력’에 밀려, 그리고 학교가 채워준 ‘완장’에 눌려 불만을 삭일 수밖에 없는 학교 규율부장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사업가로 일하는 한 이라크인 알리 가잘은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이건 누구건 우리처럼 사업하는 사람에겐 아무 상관없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미국은 십년 넘게 사담과 친구로 잘 지냈고, 그 뒤로도 딴 짓 못하게 막아만 놓고는 건드리지 않고 그냥 뒀다. 그러다가 왜 갑자기 쳐들어와서 이라크를 난리판굿으로 만드는가. 사담이 대통령일 때 나는 이라크에서 기업하는데 아무 문제없었다. 오히려 사담이 무너지고 나니까 극단주의자들이 내 공장을 불질렀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이민 올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업관계인 다른 이집트인 이햅 옴란의 말은 더 냉정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나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믿지 않는 것처럼 미국도 믿지 않는다. 왜 중동 평화가 안 되는가. 우리는 평화적 해결을 원하는데 이스라엘이 평화를 원치 않는다.” 두 사람은 종교간 갈등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단호히 손을 저었다. 가잘은 “이라크에 유대인이 많이 산다. 천년 넘게 아무 문제없이 다들 어울려서 평화롭게 살았다. 중동 국가 어디에나 유대인들이 산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인은 지금 어떤 처지인가.”고 반문한다. 이집트인 에즈딘 엘하산은 미국의 이스라엘 편향이 미국에게도 손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아랍은 원래 상인문화가 발달해서 미국과 정서상 더 잘 맞는 곳”이라면서 “미국이 이스라엘만 옹호하면서 중동권에 반미 정서가 퍼졌고 결국 많은 중동국가가 소련과 가까워졌다”고 지적했다. 결국 그는 “미국은 이스라엘을 얻는 대신 전체 중동권을 잃었다.”는 것이다. 6주간 순회특파원의 핵심 주제는 ‘공공외교’였다. 공공외교는 한국에선 생소한 개념이지만 간단히 말해 ‘상대방 국민의 마음을 직접 얻는 외교’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외교가 외교관 대 외교관, 정부 대 정부라면 공공외교는 주체가 정부일 수도 있고 시민단체일 수도 있다. 대신 대상은 상대국 정부가 아니라 상대국 국민의 ‘이해와 공감’인 셈이다. 문화외교, 학술교류는 물론 개발원조단체들의 활동도 공공외교에 포함된다. 한국 같은 나라에게 공공외교가 필요한 건 무엇보다도 4대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분단된 상황에선 힘으로 밀어붙이는 외교는 물론이고 한류 자랑만 하거나, ‘자랑스러운 1만년 역사’같은 허황된 국수주의 경쟁을 벌이거나, 다른 이웃은 나몰라라 하고 특정 이웃만 ‘편애’하는 행태 모두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이란 문제의식 때문이다. 가령 ‘한미동맹’을 되살린다며 남의 나라 대통령 골프차량 운전이나 해주고 쇠고기 받아오는 방식은 접어두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상대국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는 걸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나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각인시킬 것인가, 이는 우리는 어떤 나라를 알릴 것인가란 주제로 직결된다. 고민은 근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란 토론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이해와 공감’을 얻어냈다. 이스라엘계 로비단체인 AIPAC는 미국 내에서도 최대 최고 로비단체다. 아무도 이 단체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중동인들의 ‘불신’을 보면서, 그리고 이집트 다음으로 찾아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한 각국 문화축제에서 팔레스타인 부스 앞에서 땡볕에 길게 늘어서 있는 헝가리 시민들을 보면서 나는 이스라엘 ‘공공외교’의 빛과 그림자를 본다. 9월 런던에서 열리는 ‘템즈 페스티벌’에 초청받은 YG 가수들의 공연을 촉구하는 영국 팬들의 플래시몹 시위 사진 출처 - YG엔터테인먼트 하긴 멀리 볼 것도 없을 것 같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점령’하고 있다는 한류를 통해 달러 좀 더 많이 벌어보겠다고 해외에서까지 ‘K팝 공연 촉구 플래시몹’이란 신종 관제데모까지 만들어내고 한류를 무슨 신성장동력이나 되는 듯이 난리치는 정부를 보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한류에 취한 한국의 슬픈 조급증과 물욕을 본다. 우리는 한류가 세계 만방을 '점령'해서 그 덕에 이수만 같은 사람이 달러 많이 벌어들이는 나라를 원하는건가? 독도 문제를 이슈해 보려는 일본 의원 세 명에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며 군복입은 아저씨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나라를 원하는가? 동계올림픽 한다고 개발업자들 배불려 주고 이건희 회장 사면에 면죄부를 주는 나라를 원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182억원을 들여 단계적 무상급식을 할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단계적 무상급식을 할 건지 물어보는 걸 주민투표랍시고 하는 나라를 원하는가?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 것일까. 그게 해결이 안되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외국에 알릴지가 해결이 안된다. 그게 안되면 글로벌만이 살길이니 해외 인재 영입해야 한다며 인도 사람 채용해놓고 고작 한국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며 삼겹살에 소주로 밤샘시키는 짓이나 벌이는 어떤 나라 대기업처럼 되기 십상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00 | 추천: 0
이상재/ 대전시민아카데미 운영위원 단군 이래 최대 국운상승의 기회라고 떠들어 대던 1988년 서울올림픽이 마침내 열리던 그 해, 올림픽을 위해 몇 년간 아침 길거리 청소도 하고, 버스 탈 때 줄도 섰지만 올림픽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치러지지 않았고 아마 한 명의 외국인 관광객도 들리지 않았을 작은 도시의 고등학교에 나는 입학했다. 작은 도시라고는 하지만 지역에서 하나밖에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약간의 자부심과 입학식 날부터 밤 11시까지 진행되는 야간자율학습의 고통이 그 시절 내 기억조각들의 대부분이었다. 그때 내가 중학생과는 다른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던 것은 실제 소총 무게와 비슷한 플라스틱 모형 총을 들고, 허리에는 수통까지 차며, 군복을 입은 선생님에게 제식훈련을 받았던 ‘교련’과목의 등장이었다. 학년 간 위계질서가 군인들의 계급 간 차이처럼 아주 엄격했던 당시의 고등학교 분위기와 학생들을 예비 군인처럼 취급했던 교련과목은 묘하게 어울렸던 것 같다. 1970년대 "목총 들고 분열" 1944~2008년재까지 교육활동 홍보사진과 추억의 교육관련 사진전 입선작 전시회 가운데 1974년 태백 기계공고학생들이 교련시간에 목총을 들고 분열을 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교련시간도 입시위주의 학교정책 때문에 다른 예체능계 과목과 같이 자율학습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일 년 중에 단 하루 ‘교련’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확실하게 각인되는 날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교의 오랜 전통으로 내려온다는 ‘교련검열’이었다. 교련검열은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토요일 오후 1학년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2학년 학생회간부와 교련간부들이 실시하는 일종의 생활지도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단순한 생활지도에서만 끝나지 않고 선배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동반되었기 때문에 1학년 학생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런 시간중의 하나였다. 바로 옆 반의 매 맞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앉아서 조를 이뤄 끊임없이 들어오는 선배를 맞이하는 1학년들의 심정은 공포 그 자체였다. 선배들은 머리길이와 옷차림에서부터 교실 청소상태, 심지어 개인의 소지품까지 검사 했고 규정에 벗어난 학생이 있으면 어김없이 뒤로 불려나가 걸레자루로 매타작을 당했다. 그나마 교칙을 위반했다던가 해서 맞으면 좀 나은 경우였고, 이유 없이 불려나가 매를 맞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나 같은 경우는 키가 크다고 다른 큰 친구들과 함께 불려나가 맞았다. 어떤 경우는 아예 반 전체가 대답소리가 작다고 단체로 맞기도 했다. ‘검열’을 빙자한 선배들의 공식적인 폭력행사는 교사들의 묵인아래 이루어졌다. 내가 2학년 때 어떤 교사는 수업시간에 웃으면서 “이번 교련검열은 좀 살살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한 선배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오래된 전통이라는 명목아래 학교 구성원들 중 누구하나 문제제기가 없었다. 폭력행위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1학년들조차도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는 분위기 속에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지나갈 정도였다. 그러한 교련검열은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도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이번에도 중간고사를 치룬 어느 토요일, 학생회 간부를 포함한 수 십 명의 2학년들은 자율학습 중인 같은 반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환호를 받으며 긴 걸레자루를 들고 1학년 교실로 향했다. 그리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1학년들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는 아련한 추억의 노랫소리와 같이 2학년들을 미소 짓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다음 월요일 학교에 갔을 때 담임은 싸늘한 시선과 함께 다짜고짜 지난 토요일 교련검열 갔었던 학생들을 불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난 교련검열 때 걸레자루에 맞은 1학년 학생 중 몇 명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식적인(?) 묵인으로 일관했던 교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학생들을 다그쳤고 결국 몇몇 가해자 학생들은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수 십 년을 내려왔다는 전통의 교련검열은 더 이상 실시되지 않았다.(그 때 교련검열을 하지 못했던 2학년들은 안도했을까? 아쉬워했을까? 아니면 분개했을까?) 고작 1년의 차이지만 너무나 엄격한 선후배간의 위계질서, 그래서 선배들의 명령이라면 잘못되고 비상식적이어도 전통이란 명분아래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분위기, 자기가 선배가 되어서는 불과 1년 전 자신들의 모습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완벽하게 악습의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며 방치하다가 정작 사고가 터지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관리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그래서 귀신도 잡는다는 어느 부대의 총기사고 전후사정을 들으면서 문득 생각난 아주 오래전 나의 경험담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09 | 추천: 0
임아연/ 한밭대 학생   사람들은 높은 담장 안에 스스로 갇힌다. 더 크고 굵고 튼튼한 자물통을 찾는다. 이렇게 자유를 떠나 불행을 택한다. 장담할 수 없는 성공, 부에 대한 욕심, 그 알 수 없는 맹신에 기대어 사람들은 도시로 밀려든다. 그 도시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면 그들은 새로운 도시들을 만들어 낸다. 필리핀에서 지내온 1년 가까운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의 삶이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우스갯소리처럼 답했다. "아주 좋아요, 마닐라만 빼고." 필리핀 북부에 있는 평균 2천 미터가 넘는 까마득한 산맥을 여행하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두 형제를 만났다.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곳은 어디냐고 물었다. 형제가 대답했다. "다 좋은데… 파리 빼고는." 파리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확실히 마닐라보단 서울이 좀 더 번듯하긴 하다. 그런데 이런 비교가 무의미 할 만큼 서울도, 마닐라도 너무 복잡하다. 매일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대의 교통은 끔찍하다. 도심 한복판에서 크게 숨 한 번 들이마시기엔 폐 건강이 염려되고, 잊을만하면 살인사건 뉴스로 세상 흉흉하다. 서울에선 CCTV가, 마닐라에선 정복차림의 경비원들이 수시로 감시하고, 모든 집들의 문들은 둔탁하게 잠겨있다. 시골로 떠났다. 온 가족이 외출을 하는데 허름한 나무문을 대강 닫아 놓는다. 담은 말 그대로 담의 역할을 하기보다 외관을 꾸미기위한 장식에 더 가깝다. 허리 높이 쯤 되게끔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놓거나 나지막한 꽃나무가 담을 대신하기도 한다. 콘크리트로 두껍게 쌓아올린 벽이 아니라 더운 기후에 맞게 사방이 트인 니파 오두막을 짓는다. 밥 때가 되면 근처 바다 양식장에서 잡아온 물고기와 새우를 바나나 잎에 올려 낸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니고 있는 필리핀의 민다나오섬 사진 출처 - 한겨레 적어도 내겐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두 세 개의 문을 지나야만 하는 마닐라보다 바람도 참새도 개구리도 마음대로 집 안에서 쉬었다 가는 시골 마을이 좋았다. 에어컨 빵빵 나오는 기숙사 방 보다 야자나무 그늘 아래 해먹에 누워 낮잠 한 숨 늘어지게 자던 그 시간이 더 행복했다. 사람들은 지켜야 할 게 많을수록 더 높이 담을 쌓고 여러 겹의 문을 만들어 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들은 더욱 서로를 믿지 못해 감시하고 경계해야만 했다. 흙과 나무보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더 많아진, 도시화된 곳으로 밀려든 사람들이 그랬다. 누군가가 말했다. "'sugar-free.' 있는 게 아니라 없는 게 자유로운 것"이라고.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2018년 동계 올림픽이 우리나라 평창에서 유치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이 김연아가 프리젠테이션 할 때 입고 나온 옷 브랜드가 어디냐고 관심을 가질 때, 문득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던 나의 20대 초반 그 어느 무렵에 무작정 혼자 찾아간 강원도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큰 품으로 가만히 나를 위로하던, 평화롭던 자연이 생각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 곧 몇 년 사이에 그 깊고 울창한 산을 관통하는 터널이 만들어 질 것이다. 결국엔 자연에게도, 사람에게도 그 터널 굵기 만한 상처가 가슴에 뻥 뚫리겠지. 더구나 개발엔 항상 투기가 쫒아 오기 마련일 테니, 머지않아 '지켜할 게 많은 사람들'이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고속철도가 지나는 길목을 따라 담을 쌓고 두꺼운 자물통으로 스스로 가두려 할 것이다. 개발로 인한 편리함이 꼭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내가 그러했듯 누군가는 손 때 묻지 않은 자연의 품에서 위로받을 텐데,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 그 풍요로웠던 자연이 도시의 모습으로 냉랭하게 돌아서 버릴까 두렵다. 4대강 사업 지역에서 폭우에 쓸려 내려가던 시뻘건 강물이 피눈물 같았는데 이제 강원도의 눈물까지 보게 될까 마음이 무겁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72 | 추천: 0
김현진/ 에세이스트   <제 5도살장>의 작가 커트 보네거트는 에세이집 <나라 없는 사람>에서 불과 백여 년 동안 인류가 교통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보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석유고 석탄이고 다 꺼내 썼고 심지어 일본 쓰나미에 원자로까지 걱정할 일 천지다. 소위 결혼 적령기를 좀 넘어섰는데 하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바람에 장례식에 오신 손님들이 하나같이 이럴 때 사위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 이럴 때 결혼을 했었어야지, 그 자리에서 누굴 덮칠 수도 없고 어차피 없는 거, 당장 어디서 사올 수도 없는 바람에 잔소리만 잔뜩 들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것만 해도 충분히 속상한데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신랑이 없다고 슬퍼할 정신까지는 없었으므로 아유 그럼요 사위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하고 넘겼지만 별로 마음이 급하지 않은 걸 보니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충분히 살겠나보다. 물론 어른들이야 걱정이 늘어진다. 서른이 넘었는데 시집도 안 가고, 외로워서 어떡하냐, 애도 낳아야지, 그런 말씀들 들을 때마다 그냥 귀나 후비게 되는 게 내가 철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나도 요즘 유행하는 <삼포세대>인 모양이다. 삼포세대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나는 귀나 후비적거리고 있으니 이를테면 살짝 변종 삼포세대인 셈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게 삼포세대라는데 연애는 포기가 안 되는 건지 내가 별 인기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눈이 좀 낮은 덕에 아무거나 걸리면 그냥 닥치는 연애하는 덕을 보는 건지 아예 간택이 안 되는 날까지는 안 할 생각은 별로 없고, 연애 대신 취업을 포기했다. 이것도 투철하게 포기한 건 아니고 회사 생활도 나름 해보고 이력서 냈다 떨어져도 보고 그러면서 증명사진을 보니 관상부터 아, 회사에 충성할 얼굴이 아니구나 싶어 일찌감치 현실에 적응하고 말았다. 결혼 까짓 거, 남자친구가 있어도 외롭고 제일 친한 친구가 있어도 외로운데 결혼한다고 뭐 그리 안 외로울까, 싶기도 하고 결혼하면 결혼한 대로의 좋은 점이 있고 안 하면 또 안 한 대로의 좋은 점이 있겠지, 하고 나쁘게 말하면 심드렁하게 좋게 말하면 태평해지는 것이 나이 먹는 것의 장점인 모양이다. 출산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이미 인류는 온 지구에 차고 넘치는데, 지구의 인구 대폭발을 걱정하면서 조국의 저출산을 동시에 근심할 수 있는 이들의 심리를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 이미 60억이 있는데 나까지 보탤 필요가 뭐가 있나 싶다. 앞에서 커트 보네거트가 말했던 대로, 지금까지 있었던 인류가 이미 지구를 충분히 망쳤다. 그런데 뭐 그리 아득바득 낳을 일이 있겠는가 싶은 것도 있고 생명은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큰마음을 먹으면 내 새끼 낳겠다는 생각이 별로 안 생긴다. 게다가 인류가 꼭 존속되어야 할 건 뭐람, 인간이 없다면 지구는 평화로울 텐데. 지난해 4월 한 청년단체 회원이 20대의 팍팍한 삶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주간경향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 맘대로 내 재미만 보면서 살겠다는 건 아니다. “나에게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뉜다, 그것은 회원과 회원이 아닌 사람이다!!!!!!” 라는 인권연대 오창익 국장님의 사자후에 깊은 감명이랄까 위협이랄까 뭐 그런 것을 받아 인권연대에 당장 가입한다거나 사회적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역시 연대투쟁의 최고는 입금이지, 뭐 이런저런 다짐을 할 때의 마음은 항상 같다. 어차피 모두가 모두의 가족이다. 라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물론 그들이 나를 가족으로 쳐주지 않을 때는 약간 서글프지만 어쨌거나, 굳이 억지로 내 아이 낳을 필요도 없고 굳이 법적으로 누군가와 가족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어슬렁어슬렁 살다가 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지 싶다. 물론 이것은 이종 삼포세대의 변이다.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애들이 골비고 나약하고 의지가 부족해서 굳이 삼포세대가 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88만원 세대니 44만원 세대니 삼포세대니 하고 너무 가엾이 여길 것도 없다. 모든 세대는 그 나름대로의 고통을 지닌 법이니까, 모든 세대는 그 나름대로 포기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냥, 너무 착취하거나 너무 잔소리만 하지들 말아 주십사고 하는 소리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88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독일 베를린 시내 외곽을 달리던 전철이 한적한 시골역같은 곳에 멈춰 섰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문은 안 열리고 전철이 다시 움직인다. 그때서야 뭐가 문제였는지 깨닫는다. 독일 지하철에선 문에 달린 단추를 눌러야 문이 열린다. 다음 역에서 전철을 반대방향으로 갈아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이번엔 제대로 단추를 눌렀다. 단추가 빨간 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며 문이 열렸다. 전철역 바로 옆 주택가로 들어섰다. 초인종을 누른다. 현관문이 열렸다. 3층에 다다르자 7년 만에 만나는 반가운 분들이 따뜻하게 안아주며 어서 들어오라고 잡아끈다. 송두율 교수와 정정희 여사를 그렇게 7년만에 다시 만났다. 두 분을 처음 만난 건 2003년 9월이었다. 만났다기 보다는 직접 얼굴을 본게 처음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그 해 9월 22일 두분은 두 아들을 데리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1967년 유학 이후 35년 만에 어렵게 성사된 귀향이었다. 196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던 송 교수는 그 해 독일로 유학을 갔다. 처음엔 5년 있다 돌아올 생각이었다고 한다. 1972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두 위르겐 하버마스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곧바로 돌아왔다면 그의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즈음 두 분은 해외에서 유신독재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귀향의 꿈을 가득 한켠에 묻어둬야 했다. 그렇게 35년이 흘렀다. 두 분은 독일 국적을 취득하고 두 아들은 독일인으로서 자라며 부모의 고향에 왜 가지 못하는지 묻기도 했다. 35년 만에 돌아온 고국은 이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집요하게 송 교수를 심문하고 그와 관련한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 일부 언론은 여기에 적극 개입했다. 국정원·검찰·언론은 핑퐁 게임하듯이 그를 ‘해방 이후 최대 간첩’으로 몰아가는 노골적인 프로파간다 작업을 벌였다. 결국 송 교수는 구속됐다. 법원은 2004년 3월 징역 7년을 선고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다행히 그 해 7월 2심에서 일부 무죄 및 집행유예로 석방이 됐고 송 교수 부부는 곧 독일로 돌아갔다. 지난 2일 만났을 때 정 여사는 “당시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 몸으로 겨우 독일로 돌아왔다.”고 회상했다. 결국 대법원은 2008년 독일 국적취득 이전의 방북을 뺀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해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고 이는 그해 8월 확정됐다. 1972년 이후 교편을 잡았고 1982년엔 교수자격까지 취득한 학자를 “알고보니 교수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몰아가며 기자회견장에선 대놓고 “송 교수님이 아니라 송 선배님께 질문하겠다.”는 뻔뻔한 말을 하던 언론들은 구속 직전까진 나라가 백척간두에 선 양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구속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른 체했다. 송두율 교수와 정정희 여사 사진 출처 - 필자 교수 은퇴 이후 더 바빠 독일로 돌아가고 나서 송 교수는 2009년 가을 정년퇴임했다. 하지만 교수 당시보다 지금이 더 바쁘다고 했다. “한국에선 교수란 자리가 빨리 늙어버리는 것 같아요. 제 지인들을 봐도 그렇죠. 이 곳 독일에선 나이를 먹을수록 학자로서 더 정열적으로 글을 씁니다. 저 역시 힘이 없어 글을 못 쓰는 날이 오기 전에는 계속 글을 쓰려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하루 종일 책을 쓰는게 요즘 일과라고 했다. 대략 6시간 정도 집필에 몰두한다. 작업은 주로 조용할 때인 저녁 늦게 하는 편이란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게 대여섯 권입니다. 그 가운데 독일어로 쓰는 책이 세 권이죠. 하나는 비엔나에 있는 출판사에서 곧 출간할 예정인데 내가 맡은 부분은 탈고를 거의 했습니다. 1910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이 지난 100년 동안 겪어온 정치와 사회 역사를 다뤘습니다. 전문서는 아니고 유럽에서 여전히 한국에 대해 잘 모르니까 핵심 문제를 짚어서 정리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독일어로 쓰는 마지막 한국 관련 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더 이상 한국 문제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그래도 내 고향이 한국이니까 쓰게 됐습니다. 두 번째는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1967년 유학온 뒤 45년 동안 독일에서 겪었던 내 지적편력을 정리하고 고찰하려고 합니다. 현대성(모더니티)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책도 준비중이죠.” 몇몇 한국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자며 제안이 들어온 적이 있다고 했다. 현재 두 가지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하나는 한국에서 여전히 ‘경계인’의 의미에 대해서 오해도 많고 궁금증도 많다며 그에 대한 대중서를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동의한 뒤 대략 ‘경계인과 세계인’이란 주제로 대학생을 위한 교재 형식으로 구상중이다. “독일에서 반백년 가까이 지내다보니 한국어로 글을 다듬는 게 말처럼 쉽진 않다.”면서 “정리는 얼추 해놨는데 출간을 언제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또 하나는 살아온 과정을 되짚어보는 자서전을 쓰기로 한 출판사와 약속을 했다. 독일에선 오래되고 천장 높은 게 비싼집 두 분은 지금 집에서 살기 시작한지 수십 년이 됐다. 뮌스터대 등에서 교수로 일할 때는 송 교수가 기차로 대학에 가서 며칠 지내다가 집으로 오곤 했다고 한다. 집 근처에 김나지움도 있는 등 교육여건이 좋은데다 집 자체도 마음에 들어서 이사 갈 생각을 안했다고 한다. 한국과는 정 반대로 독일에선 오래되고 천장이 높은 집이 비싼 집으로 통한다는 얘길 들었다며 아는체를 하자 송 교수는 무심한 듯 자세하게 집자랑을 했다. “천장 높이는 3.5m”이고 거실 바닥의 목재는 “길이가 8m”이고 “19세기 프로이센 장교들이 살던 집”이었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집은 가운데 거실을 중심으로 양쪽 끝을 다 개방할 수 있다. 손님들을 저녁에 초대할때는 작은 파티장이 될 수 있다.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공기도 맑고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에 잠을 깬다. 건축양식도 현대 양식으로 넘어오기 직전이라며 ‘희소성’을 강조했다. 자제들을 낳으며 수십 년을 산 집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집 얘기를 듣다가 그가 한국에서 10개월 가까이 겪었던 서울구치소 독방을 떠올렸다. 35년 동안 입식 생활을 해서 한국식 독방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너무 힘들어하는 그를 위해 변호인단과 주한독일대사관은 책상을 넣어달라고 요구했더. 1990년대 윤금이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한국 교도소에 수감됐던 케네스 마클 이병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국의 기준에 준한 감옥에서 인터넷까지 즐기며 감옥생활을 했지만 당국은 송 교수에 대해서는 선례가 없다며 거절했다. 송 교수가 수감돼 있을 당시 두 번 그를 면회할 수 있었다. 한번은 정 여사와 둘째아들을 따라서 갔고, 두 번째는 혼자서 갔다왔다. 면회시간은 짧고 가족끼리 할 말이 많은데 끼어드는게 예의가 아니라서 뒤에서 세분이 독일어로 대화하는걸 멀뚱히 지켜보기만 했다. 정 여사는 “당시 그게 마음에 걸려서 대책위원회에 얘기해서 면회날짜를 하루 잡아달라고 했다.”고 했다. 사실 송 교수와 만났다고 할 수 있는 건 두 번째 면회에서였다. 그러고보니 송 교수와 대화를 나누는 건 그 때 이후 베를린에서 처음이었다. 구속 이후 언론 관심이 멀어질 때 나는 꾸준히 취재를 계속했다. 법정심리가 있는 날은 어김없이 기자회견이 열렸고 나는 거의 모든 자리를 함께했다. 사실 정 여사가 나를 기억하고 단독인터뷰에도 응해줬던 게 다 그 덕분이었다. 정 여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기자 같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두 분은 나를 위해 장을 보고 손수 음식을 준비했다. 오랜 해외취재일정 동안 한국 음식을 못먹었을까봐 고기쌈을 준비했다. 집에서 직접 기른 채소도 꺼냈다. 참 맛난 저녁이었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는 김치를 담그고 싶어도 재료가 없었다고 한다. 궁여지책으로 중국인 가게나 인도인 가게에서 비슷한 걸 사다가 김치 대용으로 하기도 했단다. 그렇게 몇 십년을 지내다보니 이제는 한국요리를 하면 전통적인 맛이 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라고 한다. 한편으론 옛 맛을 간직하고 있단 뜻이고 다른 한편으론 평균적인 한국인의 입맛도 많이 바뀐 탓이리라. “가위의 양쪽 끝이 벌어지며 서로 멀어지듯이” 두 분은 가슴속에 간직한 한국과 실제 한국의 거리는 멀어져 있었다. 그 덕에 한국에 와서 상당한 문화충격을 받았다. “초대장을 못 받았다”며 지인의 회갑잔치에 갈 엄두를 못내기도 했다. 정작 두 분이 기대했던 변화는 너무 더뎠다. 두 분은 민주화된 한국에 용기를 얻어 귀국했지만 고국은 그들이 한국을 떠날 때도 말많고 탈많았던 바로 그 국가보안법으로 송 교수를 잡아넣었다. 정작 송 교수는 수십년 동안 통일이란 화두를 철학적으로 고찰했지만 고국은 그에게 ‘친북인사’란 딱지를 붙였다. 하버마스나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 등 전 세계 석학들까지 송 교수 구명운동에 나섰지만 정작 한국에선 송 교수를 아는 사람 중에서도 짐짓 고개를 돌려 모른척했다. 그나마 송 교수 비난에 동참한 사람들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해야 할까. 거실에서 송두율 교수와 함께. 벽에 걸린 액자는 "깨끗함은 결국 화해와 기쁨으로 통한다"는 뜻이다. 사진 출처 - 필자 밤늦게까지 이어진 이야기꽃 저녁 7시에 초대를 받았는데 저녁을 먹으며, 또 와인을 곁들여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11시나 돼 버렸다. 두 분에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셋이서 당시 얘기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었다가 가슴 아팠던 얘기에 먹먹해 했다. 고국에 대한 섭섭함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송 교수는 “한국에 대한 책은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인터넷을 통해 한국 소식을 왠만큼 파악하고 있었다. 정말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서 들었던 많은 얘기 가운데 상당수는 이 글에 담을 수 없다. 예민한 문제들이라서 두 분은 자신들이 한 얘기가 널리 퍼지기를 원치 않았다. 그저 가슴에 묻어둘 밖에. 오랫동안 두 분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처음 송 교수 책을 읽었던 1995년 이후, 그리고 두 분이 망명하듯 한국을 떠날 당시부터 언제나 나는 이 날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7년 만에 다시 만났다. 하지만 얘기를 하다보니 벌써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몇 시에 오겠느냐며 약속시간을 정할 때 낮에 가겠다고 할 걸. 이제 베를린을 떠나고 나면 또 언제 다시 그 분들을 뵐 수 있을까. 그래도 ‘공식’ 인터뷰를 빌어 소개할 수 있는 얘기는 건졌다. 40년 가까이 교편을 잡은 교육자로서 송 교수는 최근의 한국의 교육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독일의 경우 대학 교육은 모두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다. 최근 일부 주에서 등록금을 부과하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한 학기 500유로에 불과하다. 대학생들에게 버스와 지하철을 무료로 해준다거나 하는 등 각종 혜택도 많다. 한국 사립대학들이 한 학기에 800~1000만원 수준의 등록금을 받는다는 건 상대적인 국민소득을 감안할 때 엄청난 부담이다. 이는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반값 등록금’ 논쟁에 대해서는 “문제는 단순히 등록금이 많고 적고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면서 “대학 졸업자 대부분이 실업자가 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등록금을 반의 반으로 줄이더라도 문제는 고스란히 남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고학력 실업문제, 즉 교육과 고용 정책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장기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계화니 국제화니 하는 이름으로 영어수업을 의무화하는 곳이 늘고 있다. 심지어 영어수업 가능자를 교수 임용 조건으로 내거는 곳도 있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미쳤다”며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에서 유학했다고 하기만 하면 미국에서 빌빌대던 사람도 한국에선 교수로 대접받는다. 이래가지고 학문이 어떻게 발전하고 사회가 어떻게 발전한단 말인가.” 그는 ‘학문의 주체성’이란 측면에서 이 문제를 꼬집었다. “영어를 잘 구사해야 한국 학문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한다거나 교육 수준이 높아진다는 생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어떤 내용을 채우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교수라 해도 문제는 어떤 내용을 강의하느냐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는 수단이다. 수단을 목적으로 삼는 건 말 그대로 ‘주객전도’라고 할 수 있다.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전문인력을 적극 육성해야 하는건 맞지만 5000만 국민 모두가 영어 도사가 될 필요가 있겠나. 자국어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독일이나 프랑스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는 세계화는 없다.” 송 교수의 비리(?)를 폭로합니다 얘기를 하다가 정 여사는 내게 송 교수의 엄청난 비리(?)를 폭로했다. 유학 뒤 정 여사는 사서로서 독일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송 교수가 논문 준비와 유신반대운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데다 아이들까지 생기자 도저히 직장을 계속 다니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워낙 대우가 좋은 자리인 데다가 일을 하고 싶은 욕심에 고민이 정말 많았단다. “어렵게 사표를 쓰셨겠네요.” “아녜요. 나는 사표를 도저히 못 쓰겠더라고요. 결국 나는 아쉬워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저 양반이 대신 사표를 썼어요.” 정 여사는 이어 “그렇게 뒷바라지해서 교수 시켰는데. 한국 가서는 또 옥바라지에 1년 가까운 세월 보내며 내가 폭삭 다 늙어 버렸죠.” 내가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엄청난 반응이 나오겠는데요. 이제 집안일은 왠만한건 다 떠넘겨도 되겠네요.”하며 맞장구를 치자 정 여사는 그 말이 맞다고 하면서 송 교수를 흘겨보며 이렇게 말했다. “후식은 당신이 좀 가져오시죠.” 송 교수, 멋쩍게 웃더니 말없이 부엌으로 가서는 예쁜 유리컵에 아이스크림을 담아왔다. 우리는 후식을 먹으며 또 수다를 떨었다. 그러고 보니 거실 한가운데 운치 있게 자리잡은 원목책상을 보고 송 교수에게 “멋진 서재네요. 저기서 글을 쓰시면 글이 더 잘 써지겠습니다.”라고 하자 송 교수가 “아니 이건 저 사람꺼고, 나는 저 옆방에.”했던 게 떠올랐다. 송 교수가 구치소에 있을 당시 바짝 바짝 말라가던 때를 생각하면 송 교수는 앞으로도 안방마님을 잘 봉양해야 할 듯하다. 추 신: 정 여사는 얼마 전 발코니에 오이를 심었다. 원래는 꽃만 길렀는데 최근 새로 생긴 취미생활이다. 까맣게 윤기 있는 독일 흙은 토질이 워낙 좋아 따로 거름을 안해도 잘 자란다. 올 여름에는 두 분이 하루 종일 먹고도 남을만큼 오이가 열릴 것이다. 하늘 높이 줄기를 뻗으며 풍성하게 열릴 오이처럼 두 분에게 행복과 기쁨이 넘쳐나길 빈다. 그리고 언젠가, 두 분을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 초대해 점심을 대접할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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