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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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부장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제도 하에서 살아가고 있다. 더불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도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왜 그럴까? 한번 살펴보자. 정치 시민적 권리 신장으로 제도적, 형식적 민주화는 가져왔지만, 경제 불평등의 심화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위기가 심각하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소유의 쏠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 기득권만 쏠림 현상이 있는게 아니다. 대의정치 하에서 우리를 대표한다는 인물들, 정당들도 그 놈이 그 놈이다. 대표의 위기다. 죄다 서울대를 포함해 일부 대학 출신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08년 자료를 살펴보면 현 18대 국회 경우 141명(47.2%)이 서울대 출신이다. 법조인 출신이 노동자 출신의 20배를 차지한다.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요원할 뿐이다. 여기에 보수정당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은 여전히 극소수다. 최근 민주당이 개혁과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는 많다. 결국 정당 지도부,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우리의 민주주의가 휘둘리고 있다. 그래서인가. 투표율은 갈수록 낮아져가고 있다. 선거를 독려해야할 선관위는 오히려 투표 참여호소를 제재하고 있다. 집권여당 한나라당은 SNS 미디어를 통한 투표독려행위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그들의 장기집권을 위해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기를 기원한다. 이번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실의(선관위 디도스 공격이 알려진 뒤 한나라당 탈퇴) 선관위 디도스 공격사태에서 그들의 정치철학이 명백히 밝혀졌다. 의원실 관계자는 이 사건을 이제야 알았고, 본인들도 황당할 뿐이라고 밝혔다. 참 뻔뻔하다. 몰염치하다. 최구식 의원은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출신 재선 의원으로서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거기에 10.26재보선 당시 나경원 후보캠프의 홍보본부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수개월 전부터, 수억 원의, 수백대의 좀비 PC로 추진했던 일을 9급 막내 수행비서의 돌출행위로 꼬리를 자르려는 최구식 의원과 한나라당, 이게 저들의 실체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7일 오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3명의 동반사퇴 표명 후 당사에서 자신의 거취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사실 이번 선관위 디도스 공격은 과거 자유당 3.15부정선거와 다를 바 없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이정재, 유지광이라는 정치깡패가 난무한 것이다. 더불어 이승만 독재 일당이 아직도 집권여당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물론 과거에는 그 결과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하야했고, 관계자들은 사형에 처했다.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오늘 한나라당 최고위원 3명이 줄사퇴를 했다. 홍준표 대표 체제가 붕괴하고 있다. 디도스 사건 이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과 당 해체, 신당 창당을 언급하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 간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 분명히 해두자. 간판만 바꾸면 내년 총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저들의 간교한 술책에 이제는 마침표를 찍어줘야 한다.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 소수 집단의 이익만을 위한 정당, 보수라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정당, 반칙과 특권만이 난무한 정당은 더 좋은 민주주의에 해가 될 뿐이다. 결국 한나라당 해체는 당명만을 바꿀게 아니라 정당 존재자체를 역사 속에서 폐기시켜야 한다. 이제 자유당 - 공화당 - 민정당 - 민자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의 비상식, 비양심, 반칙과 특권의 수구정당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게 곧 더 좋은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2년 전쯤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라디오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언급했다가 다음날 해고되었던 오프닝 멘트를 약간 바꿔서 글을 마친다. 갑자기 집권여당이 생각이 납니다. 집권여당은 친미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집권여당은 친일파를 위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집권여당은 정적을 정치적 타살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집권여당은 북한을 자극해 결국 도발하도록 조장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습니다. 집권여당은 야당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치는 날마다 꼬였습니다. 집권여당 주변에는 아첨꾼들로 들끓었습니다. 집권여당은 시민들의 시위가 일어나니까 경찰을 앞세워서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집권여당은 부정선거를 저질렀습니다. 집권여당은 그러다가 정치판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집권여당은 해체됩니다. 집권여당은 결국 국민들의 외면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쓸쓸하게 세상과 작별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권여당은... 자유당입니다. 현재까지는...
2017-07-12 | hrights | 조회: 323 | 추천: -1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 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 지난 10월 15일, 전 세계 1500여 개 이상의 도시에서 “월스트리트 점령”에 연대하는 99%의 점령운동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필자가 속한 투기자본감시센터를 포함하여, 금융소비자협회, 사회당, 저축은행피해대책위원회, KIKO 피해기업공동대책위원회 등이 모여 “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를 결성하였고, 한국 금융 1번지인 “여의도 점령”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6차례의 집회와 7차례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1차 행동의 날에도 300여명의 참가자들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앞의 투쟁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었다. 그들이 외친 슬로건은 세 가지이다. “금융자본 규제!”, “금융관료 처벌!”, “금융피해 구제!”이다. 한국이나 미국, 세계 어느 곳이든 지배하는 것은 금융·투기자본이다.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바로 1% 대 99%의 수탈구조이다. 그런데, 여기서 99%의 분노가 향한 첫 대상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라는 점이 중요하다. 금융자본과 관료의 결탁 금융·투기자본이 세상을 지배하고 수탈하도록 한 자는 국가이고, 그 국가의 영원한 주인인양 군림하며 관료집단과의 더러운 결탁이 없으면 금융·투기자본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금융·경제 관료에 주목해야 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이번에 금융위원회가 론스타에게 내린 “단순매각명령” 결정의 이면을 보자. 투기자본 론스타는 주가조작이라는 중대범죄를 저질렀고, 사법부의 확정판결도 있었다. 그 결과, 외환은행의 대주주 자격은 박탈된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단순히 6개월 내에 외환은행을 팔라고만 했다. 유죄판결로 대주주가 아닌 자가 금융위원회의 이 결정으로 대주주로 인정되어 소위 “경영권 프리미엄”이란 것을 누리게 되었고, 5조원 정도의 고가로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게 재매각하고 유유히 한국을 탈출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먹튀이다! 금융위원회가 투기자본의 먹튀를 조력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 대부분이 그 결정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런 결정을 내린 금융위원회의 금융위원이 누구냐는 점이다. 현재, 총 5인의 금융위원 중 3인이 “론스타게이트”와 깊숙이 관련된 자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2003년 외환은행 불법매각의 주요 책임자로서 감사원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바 있고 검찰에 수차례 고발되어 현재까지 수사를 받고 있으며, 추경호 부위원장 또한 당시 매각 책임자였던 변양호 금융정책국장과 함께 외환은행 매각을 담당하였던 실무 책임자였다. 또, 심인숙 금융위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시기인 2002년 말부터 2003년 10월30일 사이에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근무했으며, 같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박준 변호사와 함께 한 팀을 이뤄 론스타의 핵심적인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했다. 즉, 심인숙 금융위원 또한 론스타 사건의 당사자인 것이다. 그러니, 론스타 먹튀 결정이 가능한 것이다. 금융위원회 임시회의가 열린 지난 11월18일 오후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에서 장내에서 주식을 강제매각하는 방식인 ‘징벌적 론스타 매각’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위는 이날 론스타에 대해 외환은행 지분 51.02% 가운데 10%를 초과하는 41.02%에 대해 조건 없이 6개월 안에 매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런 예는 여전히 진행 중인 저축은행사태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저축은행사태의 본질은 저축은행 대주주가 저지른 불법대출, 고배당, 회계조작 등 불법행위로 저축은행을 부실로 몰고 갔고, 그 결과 무수히 많은 금융 피해자를 양산한 것이다. 여기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다. 대주주와 공모해서 저축은행 자산을 도둑질하고, 피해자들에게 금융수탈을 한 자들이 바로 금융관료이다. 드러난 공모과정에는 앞서 거론한 론스타게이트와 마찬가지로 전관예우, 방조, 불법로비가 있었다. 지금도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앞에 가면 쉽게 만나는 사람들이 금융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금융강도원”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금융회사와의 강고한 결탁 때문이다. 특히, 금융감독원의 인적구조나 재정구조를 들여다보면 더욱 명확히 보인다. 반면, 금융 피해자는 여타 상품 피해자의 피해정도나 구제정도와 비교해 보면 거의 일방적으로 인생자체가 몰락한다. 상황은 매우 심각하지만, 피해자들은 대부분 곧 사라진다. 피해자들의 구제는커녕, 저항조차 하기 힘든 이런 구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관료는 잠시 피해자들에게 욕 좀 얻어먹지만, 결국 승진해서 장관도 하고 국회의원도 해먹는다. 정권에 관계없이 이런 구조는 지속된다. 민주화 이제는 금융·경제 관료와 금융·투기자본의 부패를 위한 결탁, 먹튀 동맹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 방법 중의 하나는 금융 정책결과 감시감독기구의 “민주화”이다. 먼저, 금융위원회를 민주화해야 한다. 금융자본과 결탁한 부패한 금융관료와 금융자본을 대변하는 민간 전문가들에게 금융위원회를 더 이상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금융위원회는 마땅히 해체되어야 하고 현 금융위원들은 처벌되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최소한 지금의 방송통신위원회처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추천으로 소비자 대표와 노동자 대표가 절반 이상의 금융위원이 되어서 금융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다음은 독립적인 금융소비자 보호 기구를 만들어야한다. 명칭은 “금융소비자보호청”도 좋고,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도 좋지만, 핵심은 금융관료(금융위원회던, 금융감독원이던, 어떤 정부기관이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금융소비자 보호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금의 국가인권위원회처럼, 관료가 아닌 금융소비자 보호운동을 한 시민운동가를 중심으로 금융감독원 바깥에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기구를 세워야 한다. 특히, 이 보호 기구는 금융감독원과 경제 관료, 국가를 감시해야 하며 금융자본의 탐욕으로부터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 조치를 내릴 권한을 지녀야 한다. 아울러, 현 금융감독원도 해체되어야 한다. 특히, 민간 금융회사에서 파견되어 공무원인양 거들먹거린 자들의 책임규명과 형사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금융 피해자들의 억울한 눈물이 멈출 것이다. 이 정도 제도개선이라도 되어야 여의도 점령운동이 표방한 목표에 어느 정도 근접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금융·투기자본의 폐해는 직접 처절하게 당한 사람들만 인식하고 저항하고 행동할 뿐이다. 또, 시민사회운동의 주요 과제도 아니다. 하지만, 늘 금융 피해자는 양산된다. 그러나, 좀 더 사회적 문제의 본질을 캐보면 금융·투기자본이 근저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점점 그런 대중적 각성이 늘고 있음에 희망을 가진다. 12월 8일. 8차 여의도 점령 집회의 큰 주제는 “파생금융상품 폐지 또는 거래 중지”일 것이다. 어느덧 한국의 파생금융상품 규모는 3경(30,000,000,000,000,000)원이다. 세계 1위란다. 그 날은 이미 망한 KIKO 피해기업이나 투기자본 대리인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협박에 굴하지 않는 피해기업들이 많이 참가할 것을 예상한다. 또, 경영진의 강요로, 실적경쟁으로 이른바, “불완전 판매”에 나섰던 은행노동자들도 참가가 예상된다. 99%의 저항으로 금융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희망한다. 보다 많은 시민들의 참가를 기다린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14 | 추천: -1
- “왕재산 사건” 구속자 가족 인터뷰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검찰은 8월 23일과 25일, 이른바 왕재산 사건으로 구속된 5명의 양심수들을 국가보안법상 ‘반국가 단체 구성 및 가입’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보면 레임덕에 빠진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터뜨린 ‘공안 탄압’ 사건이라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대개의 국가보안법 사건이 그렇듯, 국정원과 검찰이 입증되지 않은 피의 사실을 마구 퍼뜨리면서 여론을 호도하기 때문에,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은 재판도 받기 전에 이미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혀 ‘사회적 매장’을 강요받는다. 지난 9월 20일 이른바 왕재산 사건 수사로 고통 받고 있는 네 분의 가족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는 최근 다른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가족 분도 있었다. 남편이 한미연합사령부에 근무하고 있는 조수진(가명)씨는 얼마 전 황망한 일을 겪었다. 8월 19일 기무사 요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남편을 연행하더니 집안을 압수, 수색했다. 나흘 동안 기무사를 오가며 조사를 받던 남편은 결국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조사를 받게 된 이유는 성공회대 노동대학원에 다니면서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고, 남북 평화협정 체결을 지지하는 서명에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앙과 양심에 따라 참여한 것뿐인데 기무사는 ‘직업 군인이 이런 거 하면 되냐’며 국가보안법으로 엮어 넣으려 하고 있다. 국정원은 구속자 가족과 지인들을 지금도 내사하고 있다. 국정원이 계좌 추적을 하면 일주일 안에 은행에서 보내는 ‘수사 목적으로 계좌 정보를 제공했다’는 내용의 통지서가 본인 앞으로 날아온다. 가족들은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항의 전화를 받는다. 강유미(가명)씨는 시어머님이 병환으로 입원해서 살던 집을 세놓았는데, 얼마 전 국정원이 세입자의 계좌까지 뒤졌다고 한다. “월세가 입금된 게 분명한데도 이렇게 하는 건 주변 사람들한테 우리를 알리겠다는 것밖에 더 돼요? 만일 우리가 세입자라면, 집 주인이 (임대)계약을 하겠어요?” 지난 3개월 동안 남편이 구속되고 한밤중에 압수 수색을 당하는 등 여태껏 겪어 보지 못했던 온갖 폭력적인 인권 침해를 받은 가족들의 정신적 외상은 심각했다. 대부분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룰 정도라고 한다. “지나가다 ‘정원 갈비’라고 쓴 간판을 봐도, ‘어 국정원!’ 요즘 ‘왕새우’ 라고 쓴 간판도 많은 데, ‘어 왕재산!’ 하고 깜짝깜짝 놀라요. 아무래도 머리가 어떻게 된 거 같아요.” “머릿속에 온통 국정원, 국가보안법, 이 생각밖에 없어요. 누구를 의심하며 살아오지 않았는데, (요즈음) 보는 사람들마다 의심을 하게 돼요. 양복 입은 사람을 보면 저 사람도 국정원 사람이 아닐까? 지하철에서 쳐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 왜 날 쳐다보지? 저 사람도 국정원 사람인가? 심지어 국정원에서 우리 아이들을 납치해 가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시어머니 시아버지한테 아이들 데리고 나갈 때 혼자 놔두지 말고, 꼭 손 붙잡고 다니시라고 말씀드려요!”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는 여전히 건재하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언론이 쏟아 내는 왜곡 보도가 이를 더 부추긴다. 국가보안법으로 낙인찍힌 가족들은 자의반 타의반 주변에서부터 고립돼 갈 수밖에 없다. “진짜 상처받는 건 ‘옆에서 그걸 몰랐어?’ 하고 물어볼 때에요. 20년 이상 같이 살았는데도 몰랐으면 그건 아닌 거고 결백한 건데, 언론(조·중·동)에선 ‘와이프도 모를 정도로 치밀하게 (활동)했다’고 우겨요. 국정원에서 면회를 안 시켜 줘서 (우리가) 1인 시위 한 적 있는데 그것 가지고도 ‘간첩인 주제에 찾아 먹을 거 다 찾아 먹으려 한다’고 비아냥거리죠 ” “주변에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겁이 나요. 혹시나 ‘저 사람이 신문에 나온 걸 다 믿으면, 분명히 나를 의심할 텐데’라는 생각이 드니까, 점점 사람들을 안 만나게 돼요.” “국가보안법 수사를 받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주변에서 기피 대상이 돼 버렸어요. 차라리 남편이 사기를 치고 구속 되었어도 이보단 나을 거예요.” “저희 애 아빠가 수사 받다 쓰러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잖아요. 그런데 시댁에서 병문안을 안 오는 거예요. (형제들이) 수술 다 끝나고 실밥 풀 때 쯤 와 가지고는 ‘우리 애들 직장 가고 대학 가야 하고 공무원 시험도 봐야 하는데 불똥 안 튀게 해라’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가 버렸어요. 수사 받은 지 3일밖에 안됐고,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았는데도.” 지난 9월 14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진행된 '왕재산 사건 공정재판 촉구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검찰총장 한상대가 이 사건을 언급하며 “종북 좌익 세력을 척결”하겠다고 외친 뒤 우익 단체들의 망동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첫 재판 때 ‘어버이 연합’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은 일부 가족들은 혹시나 불상사라도 생길까 봐 재판 방청마저 포기해야 했다. “나이 든 할아버지들 보면 솔직히 무서워요. 내가 ‘간첩 마누라’로 낙인찍힌 걸 알면 머리채를 잡아 뜯으려 할 텐데……. 화가 나는 건 누가 내 머리채를 잡아 뜯으면 같이 잡아 뜯고 싶어도……. 그러면 언론에 어떻게 나겠어요. 재판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잖아요. 우리는 모욕을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남편들이 재판만 잘 받을 수 있다면.” 구속된 양심수 가운데 세 분은 ‘차량 번호 자동 인식 시스템’을 생산하는 벤처기업을 만들어 함께 운영해 오던 학교 선·후배들이다. 구속 이후 회사는 당연히 풍비박산이 났다. “중국이랑 사업을 하는 회사거든요. 여태까지 고생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제품화되고 나서, 2년 동안 발품 팔아 영업 다 해 놓고 올해 말이면 열매를 딸 수 있었는데……. 언론에서 회사 실명까지 거론해 가며 기정사실인 양 공론화시켜 버리는 바람에 거래처 다 끊어지고, 받을 돈마저 안 들어오고……. 이 회사는 그냥 ‘왕재산 회사’가 돼 버린 거죠. 벌어먹지 말라는 거 아니겠어요.” “벌어먹지 말라가 아니라 굶어 죽으라는 거지. 나라에선 우리가 죽어 주기를 바라는 거야. (남편들) 면회도 오지 말고…….” 가족들은 “이 사건 이전과 이후의 인생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신문 같은 데서 누가 구속됐다고 하면 전에는 ‘고생 하겠구나’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구속자 가족이 돼보니까 구속자 가족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알겠더라구요.” 그러면서 일말의 아쉬움도 토로한다. 촛불항쟁이나 희망버스를 보면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이 많이 올라갔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여전히 ‘간첩’이라는 딱지가 붙는 국가보안법 사건에는 둔감한 듯하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안됐다’고만 하지 말고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지지 않도록 어깨 걸고 함께 싸워 나가는 노력들이 모아져야 한다. 인터뷰 하는 내내 가족들은 농담을 섞어 가며 쾌활한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다 설움이 복받쳐 오르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빨리 나와서 집도 좀 치워 주고, 못도 박아 주고, 컴퓨터도 고쳐 줬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가족들이 원하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절실할 소망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법정 투쟁하고 있는 남편들에겐 한 말씀 하시라고 했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싸워!”, “어쨌거나 평생 같이 있을 거니까, 마누라 걱정은 하지 마” “힘든 일은 겪을 만큼 겪었으니까, 무슨 일이라도 다 이겨낼 수 있어. 당신만 잘하면 돼!”
2017-07-12 | hrights | 조회: 316 | 추천: -1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법적으로 나이에 따른 선거권을 갖게 된 건 1990년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실제 투표장에 가 본 건 1998년 지방자치단체선거가 처음이다. 집 근처 성당에 마련된 투표장에 갔다. 문 앞에서 쫓겨났다. 내 신분증을 선거인 명부와 대조하던 공무원은 잠시 나를 밖으로 불러내고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선거권이 없다”는 취지로 내게 말해줬다. 집행유예 기간이라는 거였다. 나는 선거 몇 개월 전 특별사면과 복권 조치를 받았다고 반박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공무원은 “복권 사실을 주소지에 신고하지 않았다.”면서 당시 주소지였던 면사무소에서 나온 공문을 보여줬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해해 달라.”는 말과 함께. 사실 자세하기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서 1996년 국회의원선거, 1998년 대통령선거에 투표를 못했다. 1995년 지방선거도 비슷한 상황. 이번에는 투표할 수 있겠지 하며 아침 6시에 들뜬 마음으로 투표장에 갔던 20대 중반 복학생은 결국 기분만 잡친 채 학교에 갔다가 도저히 책이 눈에 들어오질 않아서 곧 짐을 싸서 집에 돌아와 버렸다. 2000년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미국에 있었다. 부재자 투표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또 투표를 못했다. 결국 나에게 최초 투표는 2002년 지방선거가 돼 버렸다. 20대 후반에야 처음으로 투표를 하게 됐을 때 심정은 투표일을 그냥 하루 쉬는 날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해 못할 ‘감동’이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1994년 가을과 겨울 언저리로 기억한다. 당시 서울대에서 ‘학우들의 반란’이 벌어졌다. 무효표가 규정 이상으로 많이 나왔다. 규정상 재투표를 해야 했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사람들, ‘찍어봐야 다 똑같더라’는 분들에게 간곡하게 권하고 싶다. 차라리 박지성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13번을 찍는 한이 있더라도 투표는 해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건 그저 ‘밥 먹으면 배부르다’ 처럼 아무짝에 쓸모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사회를 움직이는 건 목소리를 내는 소수다. ‘침묵하는 다수’는 ‘침묵하지 않는 소수’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오로지 ‘침묵하는 다수’가 침묵을 깨고 어떤 식으로든 ‘침묵하지 않는 다수’가 될 때만 뭔가 변화가 있다. 민주주의는 결국 ‘침묵하는 다수’에서 최대한 많은 이들을 끌어내서 ‘침묵하지 않는 다수’로 만들어내는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떤 이들은 ‘국민들은 투표일에만 민주주의를 누리고 그 다음 투표일이 있는 몇 년 동안 노예 상태로 돌아간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말은 투표일에도 노예가 돼서 백년만년 노예가 되라고 권하는 말이 아니다. 대표를 뽑은 사람들이 노예가 될지 주인이 될지는 그 다음 문제다. 일단 하루라도 주인이 되고 다음 투표일까지도 계속해서 주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1992년 겨울 대통령선거 다음날 한겨레신문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사설이 실렸던 기억이 난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대표를 갖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를 갖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많이 공감이 간다. 만약 당신이 후보가 도저히 마음에 안 들어서 투표를 안하는건 어디까지나 당신 자유다. 하지만 잊지 말자. 우리가 그토록 욕하는 정치인들, 바로 우리가 뽑아준 후보였다. 어떤 나라 모 대통령 가카가 하는 게 눈뜨고는 못 봐주겠다며 ‘꼼수’ 어쩌고 하는 방송 들으며 피해자 의식을 공유하는 우리들. 그 대통령 뽑아준 건 바로 우리였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 때 또 다른 가카 뽑지 말란 보장 없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98 | 추천: -1
이상재/ 대전시민아카데미 운영위원 대전에 위치한 모 대학교 재학생 김아무개씨가 지난 10월 13일 오전부터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15일 오후까지 3일에 걸쳐 무려 7천800배의 절을 하고 대전으로 갔다고 한다. 불상도 아닌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김 씨는 왜 8천배에 가까운 절을 했던 것일까? 오마이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김 씨가 당초 1만 배를 목표로 절을 한 이유는 대학 당국에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허가 해 달라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등록금 인하요구가 아니라 ‘등록금인하 서명운동 허가’를 위한 1만 배라니........ 처음부터 찬찬히 기사를 다시 읽어봐도 김 씨가 대학 당국에 요구한 주장은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 허가’였다. 게다가 김 씨는 1만 배 후에도 자신의 요구사항을 대학당국에서 들어주지 않을 경우 분신자살하겠다는 “서명운동 허가를 위한 1만배 후 분신자살”이라는 자극적인 내용의 현수막을 동상 근처에 내걸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전도 아닌 20여 년 전에 내가 대학을 다녔던 때에는 국가보안법철폐, 구속노동자석방과 같은 정치적 요구사항은 물론 대학당국이 접하면 민감한 사항인 비리재단퇴진과 총장퇴진과 같은 것들도 너무나 당연하게 서명운동을 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서명운동은 많은 투쟁방법 중에 가장 약한 방법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별로 선호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집회하고 시위하면 될 일을 굳이 표도 안 나는 서명운동을 할 이유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목원대생 김아무개씨가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허가해달라'며 1만 배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런데 2011년 10월 대학생 김 씨는 대학 내 서명운동 허가를 얻기 위해 1만 배와 분신자살이라는 방법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 씨가 서명운동을 허가해 달라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학교 당국이 3개월여 동안 지속적으로 김 씨의 서명운동이 학칙에 위반되어 징계를 받는다고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대체 대학생의 서명운동까지 막는 대학교의 학칙이 궁금해서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해당 대학의 학생준칙을 살펴보았다. 7조 - 학생은 교내외를 막론하고 항상 학생증을 휴대하고 본교 교직원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이를 제시하여야 한다. 12조 - 학생회 조직 외는 학생단체는 인정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학칙 제 60조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3조 - 학생은 종교(기독교), 봉사, 학술, 예술, 체육, 친교, 기타 학생회 임무 수행의 목적 이외의 단체를 조직할 수 없다. 19조 - 총장은 학생단체가 설립목적이 위배될 때, 학내 질서를 문란케 할 때, 단체 활동이 부진할 때, 기타 단체 존속을 인정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임원개선이나 해산을 명할 수 있다. 20조 - 학생 또는 학생단체가 교내·외 10인 이상의 집회를 할 때는 학생처장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 신청서는 행사 10일전, 등록된 학생단체의 정기집회는 2일전까지 제출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 모든 단체의 활동은 학기말 시험개시 1주일 전부터 시험 종료일 까지 금지한다. 집회 종료 후 즉시 학생처에 집회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 23조 - 학생 또는 학생단체가 발간하는 정기, 비정기의 간행물은 총장의 사전 승인 없이는 발행할 수 없다. 48조 - 학생회 선거 실시 절차에는 학생처 직원이 참관할 수 있다. 놀라지 마시라. 위에서 열거한 조항은 중·고등학교 교칙도 아니고(중·고등학교 교칙이 그러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7,80년대의 군사정부시절의 대학교칙도 아닌 김 씨가 다니는 대학의 2010년 4월 26일자 개정 학생 준칙이다. 혹시나 해서 지역의 또 다른 사립대학인 B대학과 서울의 Y대학의 학칙을 살펴보았다. 일부 조항이 시대 상황에 맞지 않거나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었지만 이 대학과 같이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제약하고 있지는 않았다. 학교 밖의 일반 사회에서도 집회는 신고제인데 학생들이 집회를 하려면 열흘 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과 모든 학내 간행물의 총장 사전승인 조항은 출판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 학생단체의 결성에 관한 조항은 학내 정치성향의 단체 결성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고 단체 해산을 명시한 규정의 모호함은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를 연상시킬 정도로 규정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해 놓았다. 학생증 소지와 학생회선거의 학생처 직원 참관조항에는 흘러간 흑백영화의 어색한 연기를 보는 듯 한 헛웃음만 나온다. 1990년대 중반이후 학생운동의 퇴조와 연이어 닥친 IMF경제위기로 인해 한국의 대학가는 급속한 탈정치화의 행로를 밟아왔다. 해마다 치솟는 등록금과 좁아지는 취업문은 다수의 대학생들을 아르바이트와 토익시험장으로 내몰았으며 총학생회 역시 비운동권이 잡는 경우가 점차 늘어났다. 그러한 환경에서 대학생들의 비판정신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까지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 같아 보였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나름대로의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예전 같은 강도는 아니지만 다양한 사회문제와 특히 최근의 반값등록금 문제에 대해서 나름의 발언과 행동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은 신자유주의화의 특징을 그대로 닮아 가면서 기업화의 논리(기업이 대학을 인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속에 대학재정의 90%이상을 등록금으로 충당하면서 대학생을 대학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등록금을 내는 소비자의 수준으로 밀어 내고 있는 것이 2011년의 대학가 풍경인 것이다. 87년 이후 국가는 형식적이나마 민주화를 진행해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학은 비민주화와 반인권의 반대방향으로 걸어 온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새삼 사회 속에서 대학의 기능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자기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학칙이 부끄럽지 않은 대학에서 학생들이 대학을 다니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김 씨가 다닌 대학에도 법학을 가르치고 사회학을 가르치고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교칙을 놔두고 대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오마이뉴스의 후속기사에도 나왔지만 대학생 김 씨는 다행히 학교 측에서 서명운동을 허가해 주기로 약속하면서 1만배를 채우기 전에 대전의 대학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서명운동을 하지 말라는 학교 측의 경고 때문에 김 씨가 서명운동 과정에서 느꼈을 분노와 외로움에 대해 깊은 위로를 전하며 이후 김 씨가 계획하는 서명운동이 많은 학우들의 관심 속에 진행되길 바란다. 또한 이번기회에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학칙 개정운동도 함께 해보기를 권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60 | 추천: 0
김현진/ 에세이스트 학생인권조례라는 것이 생겨서 일선에 계신 선생님들은 꽤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녹즙 배달을 들어가긴 했지만 녹즙 배달원과 그런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시진 않으니 잘 몰랐는데, 강연 때문에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나 뵙게 되었을 때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일단 체벌이 금지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몇 십 명씩 되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를 선생님들도 곤란할 것 같아 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배들은 얼마든지 하키 채 같은 것을 휘두르며 정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은 그렇게라도 때려잡아 왔었는데 하필 내 때에 그런 곤란한 숙제가 떨어지면 잘못 걸렸다는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때에 교사가 된 것을 사명이라 여기고 부디 힘들 내시길. 아이들 때문에 너무 상처를 받았다는 어떤 남자 선생님이 고민을 토로하셨는데 하필 이 선생님은 학생주임 선생님이셨다. 아이들의 교복 단속 같은 걸 맡고 있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복장이나 두발 규정 같은 것은 인권조례 없던 시절에도 정 튀고 싶은 아이들은 그냥 몇 대 맞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녔는데 그냥 잔소리 몇 번 들으면 되는 요즘이야 나라도 내 마음대로 할 것 같다. 교복을 입고 오지 않는 학생, 교복을 입고 오더라도 소녀시대처럼 미니스커트로 마음대로 고쳐 입고 오는 아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선생님은 매를 때릴 수도 없으니 마음을 담아 지적 대상이 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한다. 이러저러한 면이 문제니 고쳐 보지 않겠니? 선생님이 정성 들여 그렇게 쪽지를 썼는데 통한 아이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극소수,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를 당하고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보란 듯이 편지를 내버려서 이 학생 주임 선생님이 너무 상처를 받으셨다고 이런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냐고 나에게 물으셨다. 요즘 애들 참 문제라고,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그렇게 말씀드리기는 쉬웠을 것이다. 얼마나 힘드시냐고, 애들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때문에 발랑 까졌다고 대답하는 게 대답하는 쪽에서도 가장 편하다. 그러나 뜬금없는 대답을 드려 선생님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딴에는 정말 간곡하게, 진심으로 드린 말씀이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그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상처 주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 교칙을 어기려는 반항적인 마음에서 미니스커트 교복을 입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선생님 편지를 보란 듯 내버린 아이들은 못됐다, 그러나 어른들이 생각하는 단정한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고 눈에 띄게 매력적이고 섹시하게 입으려는 아이들을 자연의 법칙으로 바라보시면 덜 상처를 받지 않겠는가, 이 아이들이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이전에 인간이고 여성이다. 고로 자연이 이 아이들에게 개체를 남기려는 속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대자연의 본능이 복장 규정보다 우선이 아니겠는가, 걔들이 선생님께 상처를 주려고 작정을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매력적인 개체가 되어 경쟁력을 갖추려는 본능이 DNA에 쓰여 있는데 얘들이 거기 저항해서 자연의 본능을 복장규정에 때려 맞추는 게 어디 쉽겠는가. 걔들을 학생으로만 보지 마시고 자연을 이루는 하나의 개체로 보시라. 선생님은 내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서 민망했지만, 몹시 진심이었다. 인간, 남자, 여자, 학생, 선생, 이런 것들 떼고 상대를 본능을 가진 ‘개체’로 이해했을 때 상처도 조금 덜 받게 되지 않을까. 의성여고 미남 학생주임 선생님, 부디 힘내시길.
2017-07-12 | hrights | 조회: 322 | 추천: 0
전국완/ 중학교 교사 요즈음 2학기 중간고사가 코앞인데도 수업분위기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어수선한 수업을 마치고 머리뒤꼭지가 뻐근해져서 교실문을 나서면 한참동안 우울해진다. 수업을 좀 더 재미있게, 입체적으로 준비했어야 했는데……. 여느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확 잡는 카리스마가 내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북의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은 일에도 까르르 윗몸을 젖히며 웃어젖히곤 하는 그 친구의 웃음소리에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간까지 수업준비를 하고 있던 그 친구의 목소리에도 피곤이 묻어 있었다. 도무지 교사의 지도가 먹히지 않는 한 아이 때문이었다. 교과공부는 작파한 지 오래고, 금품 갈취에 폭행까지 일삼아서 수차례의 선도위원회와 폭력자치위원회를 통해 사회봉사에 등교정지까지 받았는데도 나아지지 않아서 결국 다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전출’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에 어머니는 교무실에 찾아 와서 연일 무릎을 꿇고 울면서 용서를 빌고 있다고 하고……. 담임교사인 친구의 고민은 다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전출’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아이를 위한 근본적인 처방은 되기 어려울 거라는 데 있다. 생계부담에 이미 지쳐있는 홀어머니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거칠어져 있는 이 학생이 다른 학교에 간다고 해서 스스로 개과천선해서 자기 몫의 삶을 찾아 살아갈 수 있을까? 얼마 전 본교에서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반복되는 비행으로 아이를 인근학교에 강제전출을 시켰다. 그런데 결국 그 곳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아 본교로 돌려보내진 것이다. 그리고는 학교와 어른들을 조롱이나 하듯 말썽을 그치지 않다가, 끝내는 학교를 뛰쳐나갔으며,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퇴학이 없다. 결국 학교가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 다른 학생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경우에 일단 다른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고, 보내져서 적응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아예 가출을 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그나마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들은 그야말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우리 사회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그야말로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부적응학생의 문제는 물론 예전에도 있었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사회 전체가 극심한 경쟁시스템으로 돌아가고, 경제적인 여건으로 많은 것이 결정되는 세상이다 보니, 가족의 해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이로 인한 ‘가족해체형 부적응아’들이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기본적인 삶 자체가 흔들리게 되면서 따라오는 이들의 부적응은 잠시 질풍노도기를 맞아 성장통처럼 겪는 방황이 아니라 언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한 열 몇 살짜리 아이들을 되돌아갈 수 없는 나락으로 내모는 심각한 경우들이 많다. 지역교육청별로 Wee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학교마다 상담인턴교사를 배치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그리고 비단 이런 극단적인 사안만이 아니더라도, 학력위주의 사회에서 교과 성적으로 줄을 세워야 하는 학교교육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아이들은 현재 심각한 부적응을 앓고 있다. 친구가 고민 끝에 도달한 곳은 ‘대안학교’이다. 실제로 친구는 앞에서 언급한 그 학생의 전출이 결정되면서 일반학교로의 전학은 그에게 같은 실패를 안겨줄 게 뻔하다는 생각에 대안학교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입학 가능한 대안학교가 있었지만 사립학교인 그 곳의 월 5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이 또 문제였다. 일반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 뛰쳐나오는 아이들을 끌어안는다는 취지로 설립되기 시작한 대안학교는 현재 전국적으로 30여 개교(중·고등학교 과정)이고, 이 중 9개 정도가 공립이다. 다만, 많은 사립대안학교들이 설립 초기와는 다르게 고액의 등록금을 받는 ‘귀족학교’ 가 되어가고 있고, 또한 ‘입시 대비’에 치중하면서 본래의 설립 취지와 다르게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결국 위 사례에 해당하는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진짜 ‘대안’은 ‘공립 대안학교’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공립대안학교(중학교)들이 긍정적인 결실을 보이면서 지원자가 늘어나 입학경쟁률이 해마다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보다 많은 공립대안학교의 설립이 요구되는 것이다. 대안학교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 이유는 일반학교와는 다른 소질·적성 계발교육, 체험활동 위주의 교육프로그램 등 교육과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작은 학교’라는 조건일 것이다. 아이들 개개인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존감을 되찾으면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꿈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권영길 의원의 보고서(2010년)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의 특목고 예산지원이 일반계 고등학교의 3배가 넘는다고 한다. 정작 각별한 지원이 필요한 부적응학생들은 외면한 채 특별한 영재들에게만 지원을 쏟아 붓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기회균등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부당한 차별이다. 또한 요즈음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른 ‘복지’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문제이다. 부적응의 문제는 당사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악화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의지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사회갈등의 문제를 예방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상위 5%에 해당하는 부유층 학생들을 위한 특목고 등 귀족학교에 쏟아 붓는 만큼의 예산을 하위 5%에 해당하는 부적응학생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전국 곳곳에 다양하고 창의적인 공립대안학교들이 많이 세워져서, 가족해체나 과중한 교과공부에 힘들어하는 많은 학생들이 낙오자가 아닌, 우리 사회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82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공개하면서 다시금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이 노골화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반면,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교권침해’를 조장해 학교교육을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일부 보수단체들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성인식을 왜곡’시키고,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러한 억지가 부담스러웠는지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회는 조례 초안에서 ‘성소수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관한 권리조항을 삭제하는 ‘굴복’을 결단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담고 있는 내용은 학생 또한 사람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미 헌법에서 확인하고 있고 법률에 의해 보장되고 있는 권리들을 조례를 통해 재확인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반대하는 세력들은 마치 없는 내용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처럼 호들갑이다. 체벌금지에 대해서도 조례가 초중등교육법에 위배된다는 섣부른 주장을 하면서, 나아가 체벌이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근거 없는 비방과 비난만 퍼부을 뿐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지도 정책자문위원회 한상희 위원장과 박영미 부위원장이 지난 9월 7일 시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 초안과 학생생활교육혁신 시안' 등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렇지만 이런 비방과 비난은 그나마 ‘무지의 소치’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교권조례’에 대한 논의이다. 전라북도교육청은 얼마 전 학생인권조례와 함께 교권조례를 입법예고했고, 전라남도교육청은 아예 학생, 교사, 학부모의 권리를 모두 담은 ‘교육공동체 인권조례’라는 정체불명의 조례를 추진 중이다. 광주에서도 모 교육의원이 교권조례를 추진하고 있다. 학생인권 보장과 함께 교권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말은 위험한 의도를 담고 있다. 교권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교사의 교육권’으로 정치나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주적으로 교육할 권리를 의미한다. 여기서의 외부는 학교 이외의 세력, 학부모집단, 나아가 교육행정당국도 포함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교사의 권력 또는 권위’로 교사라는 전문성과 역량에 기반해 지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이 두 가지는 엄밀히 다른 의미임에도 교권이라는 애매한 말로 한꺼번에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교권조례를 통해 보장하려는 것이 ‘교육권’인지 ‘권위’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학생인권조례 논의 속에서 나온 것을 고려하면 정황상 ‘권위’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교사의 권위는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사의 전문성과 역량,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자연스럽게 형성되거나 인정되는 것인가. 권위주의를 내세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형성되고 인정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폭력과 억압을 앞세워 복종을 강요하는 무시무시한 공권력의 얼굴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의 교육구조 속에서는 교사의 권위가 형성되기 어렵다. 경쟁과 일등주의의 강요에 침묵하고, 학생들을 억압하는 교육행정에 동조하며, 교육자로서 자주적인 교육을 포기하도록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의 권위는 강요가 아닌 이상 형성될 수 없는 것이다. 교권조례는 바로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을 외면한 채 교사들을 ‘순응하는 객체’로 두려는 것이다. 교사의 권위가 인정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는 학교 구조 속에서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의 인권이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 학생인권 존중을 통해 일방적 주입식 교육에서 소통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교사와 학생 간 대립 구조가 해소되고, 상호 존중하는 학교문화가 조성될 수 있다. 다음으로 ‘교육권’이 학생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교육행정당국과 부당한 교육제도를 향해 행사되어야 한다. 자주적 교육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교육활동의 기능인으로 전락한 교사에게 권위는 있을 수 없다. 왜곡된 교육구조를 해소하지 않고 모순의 현실에 안존하는 한 교사의 권위는 포장될 수는 있어도 형성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인권을 기반으로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가 만들어지고, 부당한 교육에 대한 저항이 본격화될 때 교사의 권위는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외면한 채 교권조례로 권위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또 다시 교육행정당국이 제시하는 ‘당근’을 덥석 무는 꼴이다. 학생인권을 교권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는 순간 교권을 보장하겠다는 본말은 전도되고, 단지 학생인권을 억압하는 결과만 남게 될 것이다. 결국 교권조례는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05 | 추천: 0
임아연/ 한밭대 학생 "영어 좀 늘었겠는데." 단풍이 한창 무르익어갈 10월, 필리핀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온지 1년 3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적어도 첫인사로 이 말은 듣지 않았으면 싶다. 여전히 부끄러운 내 영어 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가보지 못한 다른 세상을 한참이나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가장 궁금해 할 게 영어라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기 때문에.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필리핀에서의 영어공부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보다 이 나라의 사람들과 사회는 어땠는지, 내 20대에서 이 경험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긴 여행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게 훨씬 흥미로울 것 같다. 나처럼 취업을 눈앞에 둔 대한민국의 많은 청춘들이 대세에 떠밀리듯 외국행 비행기를 탄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필리핀을 택하는 많은 이들이 품은 목적은 아마도 영어일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 필리핀 여행을 끝내고 공항에서 친구를 배웅하는 중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한국 학생을 봤다. 수화물 무게가 넘쳤는지 그는 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큰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거의 대부분 무거운 토익 책과 영어(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취업용 영어) 관련 서적들이었다. 그가 짊어진 취업의 무게, 영어의 무게를 그대로 보는 듯 했다. 관계 맺기 위한,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언어는 애당초 없었다. 필리핀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타갈로그어를 비롯한 필리핀 전통 언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누군가는 필리피노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얼굴 시커먼 애, 냄새나게 생겼어" 따위의 어이없는 댓글도 서슴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가장 큰 깨달음은 '말'이 통한다고 마음조차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창한 영어실력보다 낯선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열려있는 마음이 더욱 절실했다. 토익 900점이 한 사람의 의사소통 능력, 대인관계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부끄러웠다. 거세게 몰아치는 한류열풍으로 이들에게 한국이 '꿈의 나라'처럼 그려질 때, 그러다 가끔씩 "한국 학생들이 영어 공부하러 많이 오죠. 다른 나라에 비해 싸니까."라는 필리피노의 말을 들을 때면 속 빈 강정 마냥 겉만 번지르르 해 보이는 한국이 부끄러웠다. 수많은 한국인이 이곳을 거쳐 가지만, 이들이 갈구하듯 서로 친구가 되려 하기보다 영어를 위한 수단으로서 대상화시키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느껴왔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낯선 내가 딸의 친구, 심지어 7촌 조카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보름씩이나 집에 묵고 간다고 해도 흔쾌히 방을 내어주고, 따뜻한 밥을 지어 줄 만큼 이들은 한국인에게 호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원고를 청탁받고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적잖이 고민했다. 글을 쓰기에 앞서 이곳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고, 앞으로 한국에서 펼쳐질 나의 새로운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했다. 나의 처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의 바람, 사회적 요구에 의해 결국 귀결된 것은 취업이었다. 내가 제 아무리 1년 여 시간 동안 필리핀이라는 다른 사회를 보면서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내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한들, 결국엔 '필리핀 교환학생' 이 한 줄로 이곳에서의 내 삶이 표현될 것이다. 기껏해야 '영어 좀 할 줄 알겠거니' 하는 정도로 나를 파악하게 될 테지. 참으로 우울한 일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90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 요 며칠 뒤숭숭하다. 요행이 무상급식 정책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거대 보수정당의 정쟁 속에서 겨우 살아남자, 이번에는 무상급식 정책을 추진하는 교육감에게 “후보매수”혐의로 사퇴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왜하는 무상급식이고 복지정책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중요한 쟁점토론도, 추진할 주체세력(또는 출신 계급)에 대한 사상과 전력의 검증절차도 없이 反 한나라당, 反 MB로 똘똘 뭉친 정당들의 선거연합이 부른 결과이다. 더욱이 교육감 사퇴여론에 편승해서 사퇴압박만을 하는데, 정작 본인들의 과오에 대한 성찰이 없는 것도 꼴불견이다. 결코,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의 모습으로 보기 어렵다. 더는 진보니, 민주니, 개혁이니 하는 요란한 구호를 남발하는 세력에게 속아서 주도권을 넘기는 우를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마음에서 몇 자 적는다. 세금으로 배를 채우는 자본이 있는 한 무상이 아니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등등의 사회복지 정책은 절실하다. 반드시, 헌법상 보장된 보편적인 권리 때문만이 아니라, 빈부격차가 날로 격증하는 공황기의 한국에서 시민들의 경제생활상 최소한 생존요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를 두고, “무상시리즈”라는 보수정당들의 폄훼와 왜곡은 그들의 정치책략이라 치더라도, 남는 문제는 있다. ‘어떤 무상’인가 하는 것이다. 교육이나 의료를 제공받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얼핏 보면 같은 것일지 몰라도, 공급자가 어떤 자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즉, 공급자가 사적자본이고 그 사적자본은 변함없이 균질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하더라도(그런 경우도 거의 없지만) 해당 서비스의 비용을 결국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이기에 그렇다. 이 경우, 실제로는 사적자본이 단순 서비스 비용 뿐 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윤도 함께 청구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미 사적인 수용시설을 운영하는 여러 민간단체와 종교단체가 관계 공무원과의 비리유착은 이미 널리 알려진 한국사회 진실이다. 더욱이,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고, 심지어 인권유린까지 자행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따라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사적 자본이고, 그 사적 자본의 이윤을 세금으로 메워주는 방식의 복지정책은 사기에 가깝다. 또한, 서비스 제공업체로 선정되지 못하여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받지 못하는 불운한 자본의 입장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불공정거래”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에서 주장되는 “반값 등록금” 주장은 잘못이다. 현재의 탐욕스러운 사립학교 재단을 그대로 두고 절반의 등록금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다. 작년에 유행하던 의료보험 “하나로”도 이해할 수 없는 소리이다.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병원자본, 제약자본에게 보험료 1만원 인상으로 그들의 탐욕이 채워질 것이라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이제, 진실된 목소리를 내어 시민사회운동을 새롭게 건설해야한다. 그것은 “국유화”이다. 영국식의 무상의료도, 프랑스식의 무상교육도 국유화 위에서 가능하다. 더는 혹세무민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의 기본적인 생활영역에 대한 서비스는 반드시 공적인 서비스이어야 하며, 공급주체는 반드시 국가여야 가능하다. 또한, 그래야 “공공성”도 유지된다. 그러므로 이제 필요한 논의는 국유화이다! 이는 해방정국에서 일어난 토지몰수 논쟁과는 다르게 이것은 항구적인 국유화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고려가 필요하다. 그 하나는 공급자로서 국가, 공적영역의 확대가 가져올 효과에는 반드시 시장에 대한 통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실의 시장은 탐욕스런 자본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 판이며, 거대 자본의 독재이다. 결코, 대통령의 공약으로 통신비 인하나 반값 등록금 실현, 전세 값 안정을 이룰 수 없다. 기름 값도, 자장면 값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생존에 필요한 주요 생필품과 시민의 기본적인 생활영역에 대한 서비스의 상당부분을 국가 제공하고 세금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가격을 통제하고, 자본의 자본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분야, 어느 정도의 국유화가 우리 시민사회에 합리적인지 고민하자. 물론, 그 절차도 말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의 세금이 대학생 등록금 같이 특정 계층에게만 수혜가 돌아가는 경우, 다른 계층(대학을 못가는 계층)과 비교해 불공평하다는 점이다. 대학교육 기간 뿐 아니라 대학졸업 후를 생각하면 더욱 불공평하다. 따라서 대학교육을 무상으로 받은 혜택을 누린 자에게 반드시 사회에 무상으로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프랑스도 엘리트 영재교육기관 수료자에게는 고위직 진출 전에 반드시 해당 영역의 공직(평교사, 공무원)에서 10년 봉직을 의무화하고 있다. 최소한 무상교육 수혜 대학생에게는 같은 기간 정도의 무상으로 시민사회에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대학졸업의 영예를 개인에게 주고 그가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진출의 기회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꽁짜 복지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자.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도시 몽펠리에의 의과대학에서 1학년 학생들이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 채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불로소득을 먼저 몰수하자 복지정책과 관련해서 ‘더 이상의 증세 없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보수정당의 말은 거짓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나 공공지출 감소를 의미하는 균형재정이니, 재정 건정성이니 하는 주장과 동시에 보편적 복지 주장을 하는 시민단체들도 거짓이다. 분명히 복지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더 많은 세금 밖에는 답이 없다. 더욱이 노령화 사회진입으로 복지비용은 계속 늘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세금을 누구에게 왜 징수하는 가를 복지정책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과세하는 “소비세” 같은 것은 반대한다. 세금 징수의 목적에는 우리사회의 불공평한 경제력 집중의 해소가 있다. 흔히들, 우리사회는 사회양극화가 심화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고, 더불어 가계부채는 900조에 이른다고 한다. 동시에 우리사회 극소수는 부동산과 금융에서 불로소득으로 천문학적인 수입을 얻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에서의 투기목적으로 떠도는 부동자금이 한국에만 800조니, 900조니 한다. 15대 재벌집단의 사내 유보금은 56조9000억 원에 이른다. 즉, 우리사회 다수가 노동의 대가를 소수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것은 점점 더 자명한 일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세금을 (조금씩 좀 더)걷자하자는 것은 우리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철저한 불관용의 입장에서 견결이 반대한다. 이미, 한국은 소수의 부자에게 덜 걷고, 다수의 빈자에게 많이 걷은 불공정 과세를 정부수립 이래 지속해 왔다. 그런데도, 더 내라니! 이것이 어찌 용납할 소리인가! 또한,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과세는 징벌적으로, 철저하게 무자비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몰수하고 불법화해야 한다. 그들의 존재자체가 경제의 불안전성이고, 우리사회 부패의 근원지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요즘 그들은 정부의 과세와 시민들의 감시와 비판에서 숨고자 “00재단”을 잘 만든다. 또는, 이런저런 기부행위도 한다. 그런데, 평소 기부조차 인색한 그들이 공익재단을 만든다니 기쁜 일이라고 언론은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또, 시민단체 명망가들 중에는 자신의 명함을 빌려줘 탐욕스런 자본가의 얼굴에 분칠하는데 일조하는 사례도 있어 개탄스럽다. 심지어, 중세 유럽의 면죄부 판매처럼 금융•투기자본과 악덕 재벌의 기부로 운영되는 아름답지 못한 재단도 있다. 시민사회의 감시와 과세의 영역에서 달아나 만들어지는 자본들의 모든 재단들을 반대해야 옳다. 그들에게 편승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로소득을 몰수하라고 외쳐야 한다! 아무튼, 시민사회의 과세에 대한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 그 합의는 자신의 노동소득 이외의 것에 대해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자소득이나 펀드수익, 부동산에서의 수익 등등을 말한다. 노후가 불안한 것은 안다. 하지만, 불로소득에 대한 용인 하에서는 사회 양극화와 사회 불평등 해소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로소득 문제는 단지 정책적 태도를 넘어 윤리적, 정치적 입장인 것이다. 또는 계급적인 태도이다. 몰수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징벌적이고 철저한 과세를 해서 사회 불평등을 해소해야 옳다. 더불어,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과세로 발생한 세원이 복지의 재원이 되어야 한다. 세목도 “사회연대세”같은 추한 것을 억지로 아름답게 꾸민 이름 보다는 “장물세”나 “횡재세”, 또는 “홍길동세(로빈후드세)”같이 진실된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연후에 모든 시민들이 공평하게 부담해서 복지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 주장은 그 때 가서 논의하면 된다. 그런데, 이것이 선후가 바뀌어서 미사여구로 언제나처럼 가난한 시민들에게 세금 더 걷어 십시일반(十匙一飯)하듯 복지재원을 만들자는 주장하는 것과 공공지출을 줄여 복지예산을 확보하자는 것에 반대하며, 오히려 그런 자들을 금융·투기자본 앞잡이라고 나는 비난할 것이다. *이상은 본인의 생각과 양심에 따라 어떤 꺼리김 없이 썼으나 본인이 속한 단체의 공식입장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4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