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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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법적으로 나이에 따른 선거권을 갖게 된 건 1990년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실제 투표장에 가 본 건 1998년 지방자치단체선거가 처음이다. 집 근처 성당에 마련된 투표장에 갔다. 문 앞에서 쫓겨났다. 내 신분증을 선거인 명부와 대조하던 공무원은 잠시 나를 밖으로 불러내고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선거권이 없다”는 취지로 내게 말해줬다. 집행유예 기간이라는 거였다. 나는 선거 몇 개월 전 특별사면과 복권 조치를 받았다고 반박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공무원은 “복권 사실을 주소지에 신고하지 않았다.”면서 당시 주소지였던 면사무소에서 나온 공문을 보여줬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해해 달라.”는 말과 함께. 사실 자세하기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서 1996년 국회의원선거, 1998년 대통령선거에 투표를 못했다. 1995년 지방선거도 비슷한 상황. 이번에는 투표할 수 있겠지 하며 아침 6시에 들뜬 마음으로 투표장에 갔던 20대 중반 복학생은 결국 기분만 잡친 채 학교에 갔다가 도저히 책이 눈에 들어오질 않아서 곧 짐을 싸서 집에 돌아와 버렸다. 2000년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미국에 있었다. 부재자 투표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또 투표를 못했다. 결국 나에게 최초 투표는 2002년 지방선거가 돼 버렸다. 20대 후반에야 처음으로 투표를 하게 됐을 때 심정은 투표일을 그냥 하루 쉬는 날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해 못할 ‘감동’이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1994년 가을과 겨울 언저리로 기억한다. 당시 서울대에서 ‘학우들의 반란’이 벌어졌다. 무효표가 규정 이상으로 많이 나왔다. 규정상 재투표를 해야 했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사람들, ‘찍어봐야 다 똑같더라’는 분들에게 간곡하게 권하고 싶다. 차라리 박지성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13번을 찍는 한이 있더라도 투표는 해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건 그저 ‘밥 먹으면 배부르다’ 처럼 아무짝에 쓸모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사회를 움직이는 건 목소리를 내는 소수다. ‘침묵하는 다수’는 ‘침묵하지 않는 소수’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오로지 ‘침묵하는 다수’가 침묵을 깨고 어떤 식으로든 ‘침묵하지 않는 다수’가 될 때만 뭔가 변화가 있다. 민주주의는 결국 ‘침묵하는 다수’에서 최대한 많은 이들을 끌어내서 ‘침묵하지 않는 다수’로 만들어내는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떤 이들은 ‘국민들은 투표일에만 민주주의를 누리고 그 다음 투표일이 있는 몇 년 동안 노예 상태로 돌아간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말은 투표일에도 노예가 돼서 백년만년 노예가 되라고 권하는 말이 아니다. 대표를 뽑은 사람들이 노예가 될지 주인이 될지는 그 다음 문제다. 일단 하루라도 주인이 되고 다음 투표일까지도 계속해서 주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1992년 겨울 대통령선거 다음날 한겨레신문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사설이 실렸던 기억이 난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대표를 갖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를 갖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많이 공감이 간다. 만약 당신이 후보가 도저히 마음에 안 들어서 투표를 안하는건 어디까지나 당신 자유다. 하지만 잊지 말자. 우리가 그토록 욕하는 정치인들, 바로 우리가 뽑아준 후보였다. 어떤 나라 모 대통령 가카가 하는 게 눈뜨고는 못 봐주겠다며 ‘꼼수’ 어쩌고 하는 방송 들으며 피해자 의식을 공유하는 우리들. 그 대통령 뽑아준 건 바로 우리였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 때 또 다른 가카 뽑지 말란 보장 없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87 | 추천: -1
이상재/ 대전시민아카데미 운영위원 대전에 위치한 모 대학교 재학생 김아무개씨가 지난 10월 13일 오전부터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15일 오후까지 3일에 걸쳐 무려 7천800배의 절을 하고 대전으로 갔다고 한다. 불상도 아닌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김 씨는 왜 8천배에 가까운 절을 했던 것일까? 오마이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김 씨가 당초 1만 배를 목표로 절을 한 이유는 대학 당국에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허가 해 달라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등록금 인하요구가 아니라 ‘등록금인하 서명운동 허가’를 위한 1만 배라니........ 처음부터 찬찬히 기사를 다시 읽어봐도 김 씨가 대학 당국에 요구한 주장은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 허가’였다. 게다가 김 씨는 1만 배 후에도 자신의 요구사항을 대학당국에서 들어주지 않을 경우 분신자살하겠다는 “서명운동 허가를 위한 1만배 후 분신자살”이라는 자극적인 내용의 현수막을 동상 근처에 내걸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전도 아닌 20여 년 전에 내가 대학을 다녔던 때에는 국가보안법철폐, 구속노동자석방과 같은 정치적 요구사항은 물론 대학당국이 접하면 민감한 사항인 비리재단퇴진과 총장퇴진과 같은 것들도 너무나 당연하게 서명운동을 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서명운동은 많은 투쟁방법 중에 가장 약한 방법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별로 선호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집회하고 시위하면 될 일을 굳이 표도 안 나는 서명운동을 할 이유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목원대생 김아무개씨가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허가해달라'며 1만 배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런데 2011년 10월 대학생 김 씨는 대학 내 서명운동 허가를 얻기 위해 1만 배와 분신자살이라는 방법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 씨가 서명운동을 허가해 달라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학교 당국이 3개월여 동안 지속적으로 김 씨의 서명운동이 학칙에 위반되어 징계를 받는다고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대체 대학생의 서명운동까지 막는 대학교의 학칙이 궁금해서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해당 대학의 학생준칙을 살펴보았다. 7조 - 학생은 교내외를 막론하고 항상 학생증을 휴대하고 본교 교직원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이를 제시하여야 한다. 12조 - 학생회 조직 외는 학생단체는 인정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학칙 제 60조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3조 - 학생은 종교(기독교), 봉사, 학술, 예술, 체육, 친교, 기타 학생회 임무 수행의 목적 이외의 단체를 조직할 수 없다. 19조 - 총장은 학생단체가 설립목적이 위배될 때, 학내 질서를 문란케 할 때, 단체 활동이 부진할 때, 기타 단체 존속을 인정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임원개선이나 해산을 명할 수 있다. 20조 - 학생 또는 학생단체가 교내·외 10인 이상의 집회를 할 때는 학생처장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 신청서는 행사 10일전, 등록된 학생단체의 정기집회는 2일전까지 제출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 모든 단체의 활동은 학기말 시험개시 1주일 전부터 시험 종료일 까지 금지한다. 집회 종료 후 즉시 학생처에 집회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 23조 - 학생 또는 학생단체가 발간하는 정기, 비정기의 간행물은 총장의 사전 승인 없이는 발행할 수 없다. 48조 - 학생회 선거 실시 절차에는 학생처 직원이 참관할 수 있다. 놀라지 마시라. 위에서 열거한 조항은 중·고등학교 교칙도 아니고(중·고등학교 교칙이 그러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7,80년대의 군사정부시절의 대학교칙도 아닌 김 씨가 다니는 대학의 2010년 4월 26일자 개정 학생 준칙이다. 혹시나 해서 지역의 또 다른 사립대학인 B대학과 서울의 Y대학의 학칙을 살펴보았다. 일부 조항이 시대 상황에 맞지 않거나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었지만 이 대학과 같이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제약하고 있지는 않았다. 학교 밖의 일반 사회에서도 집회는 신고제인데 학생들이 집회를 하려면 열흘 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과 모든 학내 간행물의 총장 사전승인 조항은 출판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 학생단체의 결성에 관한 조항은 학내 정치성향의 단체 결성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고 단체 해산을 명시한 규정의 모호함은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를 연상시킬 정도로 규정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해 놓았다. 학생증 소지와 학생회선거의 학생처 직원 참관조항에는 흘러간 흑백영화의 어색한 연기를 보는 듯 한 헛웃음만 나온다. 1990년대 중반이후 학생운동의 퇴조와 연이어 닥친 IMF경제위기로 인해 한국의 대학가는 급속한 탈정치화의 행로를 밟아왔다. 해마다 치솟는 등록금과 좁아지는 취업문은 다수의 대학생들을 아르바이트와 토익시험장으로 내몰았으며 총학생회 역시 비운동권이 잡는 경우가 점차 늘어났다. 그러한 환경에서 대학생들의 비판정신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까지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 같아 보였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나름대로의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예전 같은 강도는 아니지만 다양한 사회문제와 특히 최근의 반값등록금 문제에 대해서 나름의 발언과 행동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은 신자유주의화의 특징을 그대로 닮아 가면서 기업화의 논리(기업이 대학을 인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속에 대학재정의 90%이상을 등록금으로 충당하면서 대학생을 대학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등록금을 내는 소비자의 수준으로 밀어 내고 있는 것이 2011년의 대학가 풍경인 것이다. 87년 이후 국가는 형식적이나마 민주화를 진행해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학은 비민주화와 반인권의 반대방향으로 걸어 온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새삼 사회 속에서 대학의 기능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자기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학칙이 부끄럽지 않은 대학에서 학생들이 대학을 다니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김 씨가 다닌 대학에도 법학을 가르치고 사회학을 가르치고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교칙을 놔두고 대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오마이뉴스의 후속기사에도 나왔지만 대학생 김 씨는 다행히 학교 측에서 서명운동을 허가해 주기로 약속하면서 1만배를 채우기 전에 대전의 대학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서명운동을 하지 말라는 학교 측의 경고 때문에 김 씨가 서명운동 과정에서 느꼈을 분노와 외로움에 대해 깊은 위로를 전하며 이후 김 씨가 계획하는 서명운동이 많은 학우들의 관심 속에 진행되길 바란다. 또한 이번기회에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학칙 개정운동도 함께 해보기를 권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50 | 추천: 0
김현진/ 에세이스트 학생인권조례라는 것이 생겨서 일선에 계신 선생님들은 꽤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녹즙 배달을 들어가긴 했지만 녹즙 배달원과 그런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시진 않으니 잘 몰랐는데, 강연 때문에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나 뵙게 되었을 때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일단 체벌이 금지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몇 십 명씩 되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를 선생님들도 곤란할 것 같아 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배들은 얼마든지 하키 채 같은 것을 휘두르며 정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은 그렇게라도 때려잡아 왔었는데 하필 내 때에 그런 곤란한 숙제가 떨어지면 잘못 걸렸다는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때에 교사가 된 것을 사명이라 여기고 부디 힘들 내시길. 아이들 때문에 너무 상처를 받았다는 어떤 남자 선생님이 고민을 토로하셨는데 하필 이 선생님은 학생주임 선생님이셨다. 아이들의 교복 단속 같은 걸 맡고 있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복장이나 두발 규정 같은 것은 인권조례 없던 시절에도 정 튀고 싶은 아이들은 그냥 몇 대 맞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녔는데 그냥 잔소리 몇 번 들으면 되는 요즘이야 나라도 내 마음대로 할 것 같다. 교복을 입고 오지 않는 학생, 교복을 입고 오더라도 소녀시대처럼 미니스커트로 마음대로 고쳐 입고 오는 아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선생님은 매를 때릴 수도 없으니 마음을 담아 지적 대상이 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한다. 이러저러한 면이 문제니 고쳐 보지 않겠니? 선생님이 정성 들여 그렇게 쪽지를 썼는데 통한 아이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극소수,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를 당하고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보란 듯이 편지를 내버려서 이 학생 주임 선생님이 너무 상처를 받으셨다고 이런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냐고 나에게 물으셨다. 요즘 애들 참 문제라고,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그렇게 말씀드리기는 쉬웠을 것이다. 얼마나 힘드시냐고, 애들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때문에 발랑 까졌다고 대답하는 게 대답하는 쪽에서도 가장 편하다. 그러나 뜬금없는 대답을 드려 선생님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딴에는 정말 간곡하게, 진심으로 드린 말씀이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그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상처 주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 교칙을 어기려는 반항적인 마음에서 미니스커트 교복을 입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선생님 편지를 보란 듯 내버린 아이들은 못됐다, 그러나 어른들이 생각하는 단정한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고 눈에 띄게 매력적이고 섹시하게 입으려는 아이들을 자연의 법칙으로 바라보시면 덜 상처를 받지 않겠는가, 이 아이들이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이전에 인간이고 여성이다. 고로 자연이 이 아이들에게 개체를 남기려는 속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대자연의 본능이 복장 규정보다 우선이 아니겠는가, 걔들이 선생님께 상처를 주려고 작정을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매력적인 개체가 되어 경쟁력을 갖추려는 본능이 DNA에 쓰여 있는데 얘들이 거기 저항해서 자연의 본능을 복장규정에 때려 맞추는 게 어디 쉽겠는가. 걔들을 학생으로만 보지 마시고 자연을 이루는 하나의 개체로 보시라. 선생님은 내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서 민망했지만, 몹시 진심이었다. 인간, 남자, 여자, 학생, 선생, 이런 것들 떼고 상대를 본능을 가진 ‘개체’로 이해했을 때 상처도 조금 덜 받게 되지 않을까. 의성여고 미남 학생주임 선생님, 부디 힘내시길.
2017-07-12 | hrights | 조회: 311 | 추천: 0
전국완/ 중학교 교사 요즈음 2학기 중간고사가 코앞인데도 수업분위기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어수선한 수업을 마치고 머리뒤꼭지가 뻐근해져서 교실문을 나서면 한참동안 우울해진다. 수업을 좀 더 재미있게, 입체적으로 준비했어야 했는데……. 여느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확 잡는 카리스마가 내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북의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은 일에도 까르르 윗몸을 젖히며 웃어젖히곤 하는 그 친구의 웃음소리에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간까지 수업준비를 하고 있던 그 친구의 목소리에도 피곤이 묻어 있었다. 도무지 교사의 지도가 먹히지 않는 한 아이 때문이었다. 교과공부는 작파한 지 오래고, 금품 갈취에 폭행까지 일삼아서 수차례의 선도위원회와 폭력자치위원회를 통해 사회봉사에 등교정지까지 받았는데도 나아지지 않아서 결국 다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전출’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에 어머니는 교무실에 찾아 와서 연일 무릎을 꿇고 울면서 용서를 빌고 있다고 하고……. 담임교사인 친구의 고민은 다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전출’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아이를 위한 근본적인 처방은 되기 어려울 거라는 데 있다. 생계부담에 이미 지쳐있는 홀어머니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거칠어져 있는 이 학생이 다른 학교에 간다고 해서 스스로 개과천선해서 자기 몫의 삶을 찾아 살아갈 수 있을까? 얼마 전 본교에서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반복되는 비행으로 아이를 인근학교에 강제전출을 시켰다. 그런데 결국 그 곳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아 본교로 돌려보내진 것이다. 그리고는 학교와 어른들을 조롱이나 하듯 말썽을 그치지 않다가, 끝내는 학교를 뛰쳐나갔으며,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퇴학이 없다. 결국 학교가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 다른 학생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경우에 일단 다른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고, 보내져서 적응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아예 가출을 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그나마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들은 그야말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우리 사회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그야말로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부적응학생의 문제는 물론 예전에도 있었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사회 전체가 극심한 경쟁시스템으로 돌아가고, 경제적인 여건으로 많은 것이 결정되는 세상이다 보니, 가족의 해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이로 인한 ‘가족해체형 부적응아’들이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기본적인 삶 자체가 흔들리게 되면서 따라오는 이들의 부적응은 잠시 질풍노도기를 맞아 성장통처럼 겪는 방황이 아니라 언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한 열 몇 살짜리 아이들을 되돌아갈 수 없는 나락으로 내모는 심각한 경우들이 많다. 지역교육청별로 Wee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학교마다 상담인턴교사를 배치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그리고 비단 이런 극단적인 사안만이 아니더라도, 학력위주의 사회에서 교과 성적으로 줄을 세워야 하는 학교교육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아이들은 현재 심각한 부적응을 앓고 있다. 친구가 고민 끝에 도달한 곳은 ‘대안학교’이다. 실제로 친구는 앞에서 언급한 그 학생의 전출이 결정되면서 일반학교로의 전학은 그에게 같은 실패를 안겨줄 게 뻔하다는 생각에 대안학교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입학 가능한 대안학교가 있었지만 사립학교인 그 곳의 월 5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이 또 문제였다. 일반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 뛰쳐나오는 아이들을 끌어안는다는 취지로 설립되기 시작한 대안학교는 현재 전국적으로 30여 개교(중·고등학교 과정)이고, 이 중 9개 정도가 공립이다. 다만, 많은 사립대안학교들이 설립 초기와는 다르게 고액의 등록금을 받는 ‘귀족학교’ 가 되어가고 있고, 또한 ‘입시 대비’에 치중하면서 본래의 설립 취지와 다르게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결국 위 사례에 해당하는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진짜 ‘대안’은 ‘공립 대안학교’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공립대안학교(중학교)들이 긍정적인 결실을 보이면서 지원자가 늘어나 입학경쟁률이 해마다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보다 많은 공립대안학교의 설립이 요구되는 것이다. 대안학교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 이유는 일반학교와는 다른 소질·적성 계발교육, 체험활동 위주의 교육프로그램 등 교육과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작은 학교’라는 조건일 것이다. 아이들 개개인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존감을 되찾으면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꿈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권영길 의원의 보고서(2010년)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의 특목고 예산지원이 일반계 고등학교의 3배가 넘는다고 한다. 정작 각별한 지원이 필요한 부적응학생들은 외면한 채 특별한 영재들에게만 지원을 쏟아 붓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기회균등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부당한 차별이다. 또한 요즈음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른 ‘복지’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문제이다. 부적응의 문제는 당사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악화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의지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사회갈등의 문제를 예방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상위 5%에 해당하는 부유층 학생들을 위한 특목고 등 귀족학교에 쏟아 붓는 만큼의 예산을 하위 5%에 해당하는 부적응학생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전국 곳곳에 다양하고 창의적인 공립대안학교들이 많이 세워져서, 가족해체나 과중한 교과공부에 힘들어하는 많은 학생들이 낙오자가 아닌, 우리 사회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68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공개하면서 다시금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이 노골화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반면,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교권침해’를 조장해 학교교육을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일부 보수단체들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성인식을 왜곡’시키고,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러한 억지가 부담스러웠는지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회는 조례 초안에서 ‘성소수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관한 권리조항을 삭제하는 ‘굴복’을 결단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담고 있는 내용은 학생 또한 사람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미 헌법에서 확인하고 있고 법률에 의해 보장되고 있는 권리들을 조례를 통해 재확인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반대하는 세력들은 마치 없는 내용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처럼 호들갑이다. 체벌금지에 대해서도 조례가 초중등교육법에 위배된다는 섣부른 주장을 하면서, 나아가 체벌이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근거 없는 비방과 비난만 퍼부을 뿐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지도 정책자문위원회 한상희 위원장과 박영미 부위원장이 지난 9월 7일 시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 초안과 학생생활교육혁신 시안' 등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렇지만 이런 비방과 비난은 그나마 ‘무지의 소치’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교권조례’에 대한 논의이다. 전라북도교육청은 얼마 전 학생인권조례와 함께 교권조례를 입법예고했고, 전라남도교육청은 아예 학생, 교사, 학부모의 권리를 모두 담은 ‘교육공동체 인권조례’라는 정체불명의 조례를 추진 중이다. 광주에서도 모 교육의원이 교권조례를 추진하고 있다. 학생인권 보장과 함께 교권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말은 위험한 의도를 담고 있다. 교권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교사의 교육권’으로 정치나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주적으로 교육할 권리를 의미한다. 여기서의 외부는 학교 이외의 세력, 학부모집단, 나아가 교육행정당국도 포함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교사의 권력 또는 권위’로 교사라는 전문성과 역량에 기반해 지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이 두 가지는 엄밀히 다른 의미임에도 교권이라는 애매한 말로 한꺼번에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교권조례를 통해 보장하려는 것이 ‘교육권’인지 ‘권위’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학생인권조례 논의 속에서 나온 것을 고려하면 정황상 ‘권위’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교사의 권위는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사의 전문성과 역량,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자연스럽게 형성되거나 인정되는 것인가. 권위주의를 내세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형성되고 인정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폭력과 억압을 앞세워 복종을 강요하는 무시무시한 공권력의 얼굴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의 교육구조 속에서는 교사의 권위가 형성되기 어렵다. 경쟁과 일등주의의 강요에 침묵하고, 학생들을 억압하는 교육행정에 동조하며, 교육자로서 자주적인 교육을 포기하도록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의 권위는 강요가 아닌 이상 형성될 수 없는 것이다. 교권조례는 바로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을 외면한 채 교사들을 ‘순응하는 객체’로 두려는 것이다. 교사의 권위가 인정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는 학교 구조 속에서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의 인권이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 학생인권 존중을 통해 일방적 주입식 교육에서 소통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교사와 학생 간 대립 구조가 해소되고, 상호 존중하는 학교문화가 조성될 수 있다. 다음으로 ‘교육권’이 학생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교육행정당국과 부당한 교육제도를 향해 행사되어야 한다. 자주적 교육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교육활동의 기능인으로 전락한 교사에게 권위는 있을 수 없다. 왜곡된 교육구조를 해소하지 않고 모순의 현실에 안존하는 한 교사의 권위는 포장될 수는 있어도 형성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인권을 기반으로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가 만들어지고, 부당한 교육에 대한 저항이 본격화될 때 교사의 권위는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외면한 채 교권조례로 권위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또 다시 교육행정당국이 제시하는 ‘당근’을 덥석 무는 꼴이다. 학생인권을 교권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는 순간 교권을 보장하겠다는 본말은 전도되고, 단지 학생인권을 억압하는 결과만 남게 될 것이다. 결국 교권조례는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92 | 추천: 0
임아연/ 한밭대 학생 "영어 좀 늘었겠는데." 단풍이 한창 무르익어갈 10월, 필리핀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온지 1년 3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적어도 첫인사로 이 말은 듣지 않았으면 싶다. 여전히 부끄러운 내 영어 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가보지 못한 다른 세상을 한참이나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가장 궁금해 할 게 영어라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기 때문에.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필리핀에서의 영어공부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보다 이 나라의 사람들과 사회는 어땠는지, 내 20대에서 이 경험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긴 여행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게 훨씬 흥미로울 것 같다. 나처럼 취업을 눈앞에 둔 대한민국의 많은 청춘들이 대세에 떠밀리듯 외국행 비행기를 탄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필리핀을 택하는 많은 이들이 품은 목적은 아마도 영어일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 필리핀 여행을 끝내고 공항에서 친구를 배웅하는 중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한국 학생을 봤다. 수화물 무게가 넘쳤는지 그는 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큰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거의 대부분 무거운 토익 책과 영어(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취업용 영어) 관련 서적들이었다. 그가 짊어진 취업의 무게, 영어의 무게를 그대로 보는 듯 했다. 관계 맺기 위한,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언어는 애당초 없었다. 필리핀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타갈로그어를 비롯한 필리핀 전통 언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누군가는 필리피노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얼굴 시커먼 애, 냄새나게 생겼어" 따위의 어이없는 댓글도 서슴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가장 큰 깨달음은 '말'이 통한다고 마음조차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창한 영어실력보다 낯선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열려있는 마음이 더욱 절실했다. 토익 900점이 한 사람의 의사소통 능력, 대인관계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부끄러웠다. 거세게 몰아치는 한류열풍으로 이들에게 한국이 '꿈의 나라'처럼 그려질 때, 그러다 가끔씩 "한국 학생들이 영어 공부하러 많이 오죠. 다른 나라에 비해 싸니까."라는 필리피노의 말을 들을 때면 속 빈 강정 마냥 겉만 번지르르 해 보이는 한국이 부끄러웠다. 수많은 한국인이 이곳을 거쳐 가지만, 이들이 갈구하듯 서로 친구가 되려 하기보다 영어를 위한 수단으로서 대상화시키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느껴왔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낯선 내가 딸의 친구, 심지어 7촌 조카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보름씩이나 집에 묵고 간다고 해도 흔쾌히 방을 내어주고, 따뜻한 밥을 지어 줄 만큼 이들은 한국인에게 호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원고를 청탁받고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적잖이 고민했다. 글을 쓰기에 앞서 이곳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고, 앞으로 한국에서 펼쳐질 나의 새로운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했다. 나의 처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의 바람, 사회적 요구에 의해 결국 귀결된 것은 취업이었다. 내가 제 아무리 1년 여 시간 동안 필리핀이라는 다른 사회를 보면서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내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한들, 결국엔 '필리핀 교환학생' 이 한 줄로 이곳에서의 내 삶이 표현될 것이다. 기껏해야 '영어 좀 할 줄 알겠거니' 하는 정도로 나를 파악하게 될 테지. 참으로 우울한 일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77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 요 며칠 뒤숭숭하다. 요행이 무상급식 정책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거대 보수정당의 정쟁 속에서 겨우 살아남자, 이번에는 무상급식 정책을 추진하는 교육감에게 “후보매수”혐의로 사퇴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왜하는 무상급식이고 복지정책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중요한 쟁점토론도, 추진할 주체세력(또는 출신 계급)에 대한 사상과 전력의 검증절차도 없이 反 한나라당, 反 MB로 똘똘 뭉친 정당들의 선거연합이 부른 결과이다. 더욱이 교육감 사퇴여론에 편승해서 사퇴압박만을 하는데, 정작 본인들의 과오에 대한 성찰이 없는 것도 꼴불견이다. 결코,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의 모습으로 보기 어렵다. 더는 진보니, 민주니, 개혁이니 하는 요란한 구호를 남발하는 세력에게 속아서 주도권을 넘기는 우를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마음에서 몇 자 적는다. 세금으로 배를 채우는 자본이 있는 한 무상이 아니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등등의 사회복지 정책은 절실하다. 반드시, 헌법상 보장된 보편적인 권리 때문만이 아니라, 빈부격차가 날로 격증하는 공황기의 한국에서 시민들의 경제생활상 최소한 생존요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를 두고, “무상시리즈”라는 보수정당들의 폄훼와 왜곡은 그들의 정치책략이라 치더라도, 남는 문제는 있다. ‘어떤 무상’인가 하는 것이다. 교육이나 의료를 제공받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얼핏 보면 같은 것일지 몰라도, 공급자가 어떤 자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즉, 공급자가 사적자본이고 그 사적자본은 변함없이 균질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하더라도(그런 경우도 거의 없지만) 해당 서비스의 비용을 결국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이기에 그렇다. 이 경우, 실제로는 사적자본이 단순 서비스 비용 뿐 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윤도 함께 청구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미 사적인 수용시설을 운영하는 여러 민간단체와 종교단체가 관계 공무원과의 비리유착은 이미 널리 알려진 한국사회 진실이다. 더욱이,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고, 심지어 인권유린까지 자행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따라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사적 자본이고, 그 사적 자본의 이윤을 세금으로 메워주는 방식의 복지정책은 사기에 가깝다. 또한, 서비스 제공업체로 선정되지 못하여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받지 못하는 불운한 자본의 입장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불공정거래”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에서 주장되는 “반값 등록금” 주장은 잘못이다. 현재의 탐욕스러운 사립학교 재단을 그대로 두고 절반의 등록금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다. 작년에 유행하던 의료보험 “하나로”도 이해할 수 없는 소리이다.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병원자본, 제약자본에게 보험료 1만원 인상으로 그들의 탐욕이 채워질 것이라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이제, 진실된 목소리를 내어 시민사회운동을 새롭게 건설해야한다. 그것은 “국유화”이다. 영국식의 무상의료도, 프랑스식의 무상교육도 국유화 위에서 가능하다. 더는 혹세무민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의 기본적인 생활영역에 대한 서비스는 반드시 공적인 서비스이어야 하며, 공급주체는 반드시 국가여야 가능하다. 또한, 그래야 “공공성”도 유지된다. 그러므로 이제 필요한 논의는 국유화이다! 이는 해방정국에서 일어난 토지몰수 논쟁과는 다르게 이것은 항구적인 국유화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고려가 필요하다. 그 하나는 공급자로서 국가, 공적영역의 확대가 가져올 효과에는 반드시 시장에 대한 통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실의 시장은 탐욕스런 자본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 판이며, 거대 자본의 독재이다. 결코, 대통령의 공약으로 통신비 인하나 반값 등록금 실현, 전세 값 안정을 이룰 수 없다. 기름 값도, 자장면 값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생존에 필요한 주요 생필품과 시민의 기본적인 생활영역에 대한 서비스의 상당부분을 국가 제공하고 세금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가격을 통제하고, 자본의 자본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분야, 어느 정도의 국유화가 우리 시민사회에 합리적인지 고민하자. 물론, 그 절차도 말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의 세금이 대학생 등록금 같이 특정 계층에게만 수혜가 돌아가는 경우, 다른 계층(대학을 못가는 계층)과 비교해 불공평하다는 점이다. 대학교육 기간 뿐 아니라 대학졸업 후를 생각하면 더욱 불공평하다. 따라서 대학교육을 무상으로 받은 혜택을 누린 자에게 반드시 사회에 무상으로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프랑스도 엘리트 영재교육기관 수료자에게는 고위직 진출 전에 반드시 해당 영역의 공직(평교사, 공무원)에서 10년 봉직을 의무화하고 있다. 최소한 무상교육 수혜 대학생에게는 같은 기간 정도의 무상으로 시민사회에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대학졸업의 영예를 개인에게 주고 그가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진출의 기회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꽁짜 복지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자.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도시 몽펠리에의 의과대학에서 1학년 학생들이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 채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불로소득을 먼저 몰수하자 복지정책과 관련해서 ‘더 이상의 증세 없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보수정당의 말은 거짓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나 공공지출 감소를 의미하는 균형재정이니, 재정 건정성이니 하는 주장과 동시에 보편적 복지 주장을 하는 시민단체들도 거짓이다. 분명히 복지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더 많은 세금 밖에는 답이 없다. 더욱이 노령화 사회진입으로 복지비용은 계속 늘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세금을 누구에게 왜 징수하는 가를 복지정책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과세하는 “소비세” 같은 것은 반대한다. 세금 징수의 목적에는 우리사회의 불공평한 경제력 집중의 해소가 있다. 흔히들, 우리사회는 사회양극화가 심화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고, 더불어 가계부채는 900조에 이른다고 한다. 동시에 우리사회 극소수는 부동산과 금융에서 불로소득으로 천문학적인 수입을 얻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에서의 투기목적으로 떠도는 부동자금이 한국에만 800조니, 900조니 한다. 15대 재벌집단의 사내 유보금은 56조9000억 원에 이른다. 즉, 우리사회 다수가 노동의 대가를 소수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것은 점점 더 자명한 일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세금을 (조금씩 좀 더)걷자하자는 것은 우리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철저한 불관용의 입장에서 견결이 반대한다. 이미, 한국은 소수의 부자에게 덜 걷고, 다수의 빈자에게 많이 걷은 불공정 과세를 정부수립 이래 지속해 왔다. 그런데도, 더 내라니! 이것이 어찌 용납할 소리인가! 또한,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과세는 징벌적으로, 철저하게 무자비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몰수하고 불법화해야 한다. 그들의 존재자체가 경제의 불안전성이고, 우리사회 부패의 근원지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요즘 그들은 정부의 과세와 시민들의 감시와 비판에서 숨고자 “00재단”을 잘 만든다. 또는, 이런저런 기부행위도 한다. 그런데, 평소 기부조차 인색한 그들이 공익재단을 만든다니 기쁜 일이라고 언론은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또, 시민단체 명망가들 중에는 자신의 명함을 빌려줘 탐욕스런 자본가의 얼굴에 분칠하는데 일조하는 사례도 있어 개탄스럽다. 심지어, 중세 유럽의 면죄부 판매처럼 금융•투기자본과 악덕 재벌의 기부로 운영되는 아름답지 못한 재단도 있다. 시민사회의 감시와 과세의 영역에서 달아나 만들어지는 자본들의 모든 재단들을 반대해야 옳다. 그들에게 편승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로소득을 몰수하라고 외쳐야 한다! 아무튼, 시민사회의 과세에 대한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 그 합의는 자신의 노동소득 이외의 것에 대해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자소득이나 펀드수익, 부동산에서의 수익 등등을 말한다. 노후가 불안한 것은 안다. 하지만, 불로소득에 대한 용인 하에서는 사회 양극화와 사회 불평등 해소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로소득 문제는 단지 정책적 태도를 넘어 윤리적, 정치적 입장인 것이다. 또는 계급적인 태도이다. 몰수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징벌적이고 철저한 과세를 해서 사회 불평등을 해소해야 옳다. 더불어,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과세로 발생한 세원이 복지의 재원이 되어야 한다. 세목도 “사회연대세”같은 추한 것을 억지로 아름답게 꾸민 이름 보다는 “장물세”나 “횡재세”, 또는 “홍길동세(로빈후드세)”같이 진실된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연후에 모든 시민들이 공평하게 부담해서 복지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 주장은 그 때 가서 논의하면 된다. 그런데, 이것이 선후가 바뀌어서 미사여구로 언제나처럼 가난한 시민들에게 세금 더 걷어 십시일반(十匙一飯)하듯 복지재원을 만들자는 주장하는 것과 공공지출을 줄여 복지예산을 확보하자는 것에 반대하며, 오히려 그런 자들을 금융·투기자본 앞잡이라고 나는 비난할 것이다. *이상은 본인의 생각과 양심에 따라 어떤 꺼리김 없이 썼으나 본인이 속한 단체의 공식입장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6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올해 6월 3일 프랭크 라 뤼 유엔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17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 표현의 자유 보고서(8개 분야, 16개의 권고안)를 발표하였다. 한국 상황에 대해 보고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많지만 결론적으로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이명박 정권이후에 한국에서의 전반적 표현의 자유는 후퇴되었고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두드러지게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권고안을 이행하기 위해 정부 측과 국회(천정배 의원실), 그리고 인권시민노동단체들이 공동으로 8월 17일에 국회에서 보고서 후속이행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로써 2008년 8월 유엔특별보고관에게 최초로 한국에 인권침해 조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한 이후 3년여의 유엔인권활동(엄밀히 말하면 유엔 특별절차에 진정한 이후 진행되는 프로세스)이 마무리 되었다. 지난 5월 말 유엔인권이사회 17차 세션 한국 NGO 참가단 출국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지만 이 활동은 2008년 촛불집회로부터 시작되었다. 2008년 광우병수입협상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그해 6월을 정점으로 정부의 심각한 탄압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 상황에서 민변을 포함한 인권시민노동단체들은 유엔이라는 상대적으로 공신력이 높은 외부기구에 한국 인권침해상황에 대해서 정식으로 조사방문을 요청하는 유엔특별절차(UN Special Procedures)를 활용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국내단체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대표적인 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와 함께 2009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과 아시아 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결국 한국의 상황을 인식한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2010년 직접 한국을 조사 방문하였고, 이를 2011년 6월에 보고서로 발표한 것이다. 이를 위해 꼬박 3년 동안 국내 수십여 인권, 시민, 노동단체들이 연대활동을 하였고 국제인권단체들도 많은 수고를 기울였다.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보고서에서 한국 단체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고 나름 상세하게 한국 표현의 실상에 대한 언급과 함께 적절한 권고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단체들 간에는 성공적인 활동이라는 평이다. 하지만 다른 평가도 있다. 다른 유엔활동인 유엔 조약기구 활동(한국이 가입한 국제인권조약의 이행을 감시하는 기구에 NGO 보고서를 제출하는 활동)도 그렇지만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안이 강제력이 없기에 정부에서 이행하지 않겠다고 하면 별다른 도리가 없다. 이번 권고안에도 포함되었지만 유엔의 권고안들의 상당수가 1995년도부터 반복되고 있다.(특히 국가보안법 폐지, 기존 유엔권고안에 대한 이행 등) 그래서 유엔권고안에 대한 실효성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되고 있다. 또한 이행평가 토론회에서 정부담당자는 “특별보고관 보고서의 권고사항 이행계획을 수립할 예정이 없다”고 발언했다. 또한 이번에 같이 활동했던 활동가는 “유엔의 활동은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고 얻어지는 결과(권고)도 나쁘지 않지만 들어가는 품은 많은데 비해 실효성이 부족하여 피로함이 높은 활동인 듯하다”라고 평을 하기로 하였다. 일리 있는 평가이다. 상반된 평가 속에서 유사하지만 또 다른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유엔 UPR(국가별인권상황정례검토)활동이다. 아직 제대로 된 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시작한다. 누군가는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활동은 활동가의 상상력을 빼앗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든다고 한다. 나 역시 스스로 내적인 평가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사한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한 번의 시도로 잘못된 구조와 현실이 변화된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정말 비현실적인 기대일 뿐이고, 몇 번을 해도 여전히 국가보안법과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면, 국가보안법이 폐지 될 때까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때 까지 계속 맨땅에 헤딩도 하고 계란으로 바위도 치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남들이 뭐라고 해도 지금은 냉정한 평가와 이성적 판단보다는 우직하게 한 우물을 깊게 파내려가는 우공이산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분명히 내 자신의 합리화임이 틀림없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11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이스라엘은 적입니다. 그들은 내 고향인 레바논, 그리고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이웃이 아닙니다.” 와엘 사브 회장은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다. 레바논이 고향이지만 아랍에미리트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그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반응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오랫동안 체득한 처세술인 듯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스라엘은 중동 평화 문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웃나라인 레바논 사람으로서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란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 5월22일부터 28일까지 8일 동안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를 방문했다. 6주에 걸친 순회특파원 일정 중 첫 단추를 중동으로 꿴 셈이다.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를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격변과 침묵, 경제적 번영과 답보를 대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만나는 중동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이스라엘과 관련한 많은 질문을 던져보려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만나본 ‘중동’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막강한 무력을 앞세워 이웃나라를 힘으로 위압하고 영토를 불법점령하고 수백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강요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그리고 그런 깡패 짓을 대놓고 하는데도 말리는 건 고사하고 편만 들어주는 미국에 대한 불만이 두 번째였다. 그것은 마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모든 학생들이 미워하지만 ‘완력’에 밀려, 그리고 학교가 채워준 ‘완장’에 눌려 불만을 삭일 수밖에 없는 학교 규율부장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사업가로 일하는 한 이라크인 알리 가잘은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이건 누구건 우리처럼 사업하는 사람에겐 아무 상관없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미국은 십년 넘게 사담과 친구로 잘 지냈고, 그 뒤로도 딴 짓 못하게 막아만 놓고는 건드리지 않고 그냥 뒀다. 그러다가 왜 갑자기 쳐들어와서 이라크를 난리판굿으로 만드는가. 사담이 대통령일 때 나는 이라크에서 기업하는데 아무 문제없었다. 오히려 사담이 무너지고 나니까 극단주의자들이 내 공장을 불질렀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이민 올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업관계인 다른 이집트인 이햅 옴란의 말은 더 냉정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나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믿지 않는 것처럼 미국도 믿지 않는다. 왜 중동 평화가 안 되는가. 우리는 평화적 해결을 원하는데 이스라엘이 평화를 원치 않는다.” 두 사람은 종교간 갈등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단호히 손을 저었다. 가잘은 “이라크에 유대인이 많이 산다. 천년 넘게 아무 문제없이 다들 어울려서 평화롭게 살았다. 중동 국가 어디에나 유대인들이 산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인은 지금 어떤 처지인가.”고 반문한다. 이집트인 에즈딘 엘하산은 미국의 이스라엘 편향이 미국에게도 손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아랍은 원래 상인문화가 발달해서 미국과 정서상 더 잘 맞는 곳”이라면서 “미국이 이스라엘만 옹호하면서 중동권에 반미 정서가 퍼졌고 결국 많은 중동국가가 소련과 가까워졌다”고 지적했다. 결국 그는 “미국은 이스라엘을 얻는 대신 전체 중동권을 잃었다.”는 것이다. 6주간 순회특파원의 핵심 주제는 ‘공공외교’였다. 공공외교는 한국에선 생소한 개념이지만 간단히 말해 ‘상대방 국민의 마음을 직접 얻는 외교’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외교가 외교관 대 외교관, 정부 대 정부라면 공공외교는 주체가 정부일 수도 있고 시민단체일 수도 있다. 대신 대상은 상대국 정부가 아니라 상대국 국민의 ‘이해와 공감’인 셈이다. 문화외교, 학술교류는 물론 개발원조단체들의 활동도 공공외교에 포함된다. 한국 같은 나라에게 공공외교가 필요한 건 무엇보다도 4대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분단된 상황에선 힘으로 밀어붙이는 외교는 물론이고 한류 자랑만 하거나, ‘자랑스러운 1만년 역사’같은 허황된 국수주의 경쟁을 벌이거나, 다른 이웃은 나몰라라 하고 특정 이웃만 ‘편애’하는 행태 모두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이란 문제의식 때문이다. 가령 ‘한미동맹’을 되살린다며 남의 나라 대통령 골프차량 운전이나 해주고 쇠고기 받아오는 방식은 접어두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상대국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는 걸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나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각인시킬 것인가, 이는 우리는 어떤 나라를 알릴 것인가란 주제로 직결된다. 고민은 근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란 토론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이해와 공감’을 얻어냈다. 이스라엘계 로비단체인 AIPAC는 미국 내에서도 최대 최고 로비단체다. 아무도 이 단체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중동인들의 ‘불신’을 보면서, 그리고 이집트 다음으로 찾아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한 각국 문화축제에서 팔레스타인 부스 앞에서 땡볕에 길게 늘어서 있는 헝가리 시민들을 보면서 나는 이스라엘 ‘공공외교’의 빛과 그림자를 본다. 9월 런던에서 열리는 ‘템즈 페스티벌’에 초청받은 YG 가수들의 공연을 촉구하는 영국 팬들의 플래시몹 시위 사진 출처 - YG엔터테인먼트 하긴 멀리 볼 것도 없을 것 같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점령’하고 있다는 한류를 통해 달러 좀 더 많이 벌어보겠다고 해외에서까지 ‘K팝 공연 촉구 플래시몹’이란 신종 관제데모까지 만들어내고 한류를 무슨 신성장동력이나 되는 듯이 난리치는 정부를 보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한류에 취한 한국의 슬픈 조급증과 물욕을 본다. 우리는 한류가 세계 만방을 '점령'해서 그 덕에 이수만 같은 사람이 달러 많이 벌어들이는 나라를 원하는건가? 독도 문제를 이슈해 보려는 일본 의원 세 명에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며 군복입은 아저씨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나라를 원하는가? 동계올림픽 한다고 개발업자들 배불려 주고 이건희 회장 사면에 면죄부를 주는 나라를 원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182억원을 들여 단계적 무상급식을 할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단계적 무상급식을 할 건지 물어보는 걸 주민투표랍시고 하는 나라를 원하는가?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 것일까. 그게 해결이 안되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외국에 알릴지가 해결이 안된다. 그게 안되면 글로벌만이 살길이니 해외 인재 영입해야 한다며 인도 사람 채용해놓고 고작 한국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며 삼겹살에 소주로 밤샘시키는 짓이나 벌이는 어떤 나라 대기업처럼 되기 십상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25 | 추천: 0
이상재/ 대전시민아카데미 운영위원 단군 이래 최대 국운상승의 기회라고 떠들어 대던 1988년 서울올림픽이 마침내 열리던 그 해, 올림픽을 위해 몇 년간 아침 길거리 청소도 하고, 버스 탈 때 줄도 섰지만 올림픽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치러지지 않았고 아마 한 명의 외국인 관광객도 들리지 않았을 작은 도시의 고등학교에 나는 입학했다. 작은 도시라고는 하지만 지역에서 하나밖에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약간의 자부심과 입학식 날부터 밤 11시까지 진행되는 야간자율학습의 고통이 그 시절 내 기억조각들의 대부분이었다. 그때 내가 중학생과는 다른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던 것은 실제 소총 무게와 비슷한 플라스틱 모형 총을 들고, 허리에는 수통까지 차며, 군복을 입은 선생님에게 제식훈련을 받았던 ‘교련’과목의 등장이었다. 학년 간 위계질서가 군인들의 계급 간 차이처럼 아주 엄격했던 당시의 고등학교 분위기와 학생들을 예비 군인처럼 취급했던 교련과목은 묘하게 어울렸던 것 같다. 1970년대 "목총 들고 분열" 1944~2008년재까지 교육활동 홍보사진과 추억의 교육관련 사진전 입선작 전시회 가운데 1974년 태백 기계공고학생들이 교련시간에 목총을 들고 분열을 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교련시간도 입시위주의 학교정책 때문에 다른 예체능계 과목과 같이 자율학습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일 년 중에 단 하루 ‘교련’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확실하게 각인되는 날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교의 오랜 전통으로 내려온다는 ‘교련검열’이었다. 교련검열은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토요일 오후 1학년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2학년 학생회간부와 교련간부들이 실시하는 일종의 생활지도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단순한 생활지도에서만 끝나지 않고 선배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동반되었기 때문에 1학년 학생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런 시간중의 하나였다. 바로 옆 반의 매 맞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앉아서 조를 이뤄 끊임없이 들어오는 선배를 맞이하는 1학년들의 심정은 공포 그 자체였다. 선배들은 머리길이와 옷차림에서부터 교실 청소상태, 심지어 개인의 소지품까지 검사 했고 규정에 벗어난 학생이 있으면 어김없이 뒤로 불려나가 걸레자루로 매타작을 당했다. 그나마 교칙을 위반했다던가 해서 맞으면 좀 나은 경우였고, 이유 없이 불려나가 매를 맞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나 같은 경우는 키가 크다고 다른 큰 친구들과 함께 불려나가 맞았다. 어떤 경우는 아예 반 전체가 대답소리가 작다고 단체로 맞기도 했다. ‘검열’을 빙자한 선배들의 공식적인 폭력행사는 교사들의 묵인아래 이루어졌다. 내가 2학년 때 어떤 교사는 수업시간에 웃으면서 “이번 교련검열은 좀 살살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한 선배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오래된 전통이라는 명목아래 학교 구성원들 중 누구하나 문제제기가 없었다. 폭력행위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1학년들조차도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는 분위기 속에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지나갈 정도였다. 그러한 교련검열은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도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이번에도 중간고사를 치룬 어느 토요일, 학생회 간부를 포함한 수 십 명의 2학년들은 자율학습 중인 같은 반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환호를 받으며 긴 걸레자루를 들고 1학년 교실로 향했다. 그리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1학년들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는 아련한 추억의 노랫소리와 같이 2학년들을 미소 짓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다음 월요일 학교에 갔을 때 담임은 싸늘한 시선과 함께 다짜고짜 지난 토요일 교련검열 갔었던 학생들을 불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난 교련검열 때 걸레자루에 맞은 1학년 학생 중 몇 명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식적인(?) 묵인으로 일관했던 교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학생들을 다그쳤고 결국 몇몇 가해자 학생들은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수 십 년을 내려왔다는 전통의 교련검열은 더 이상 실시되지 않았다.(그 때 교련검열을 하지 못했던 2학년들은 안도했을까? 아쉬워했을까? 아니면 분개했을까?) 고작 1년의 차이지만 너무나 엄격한 선후배간의 위계질서, 그래서 선배들의 명령이라면 잘못되고 비상식적이어도 전통이란 명분아래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분위기, 자기가 선배가 되어서는 불과 1년 전 자신들의 모습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완벽하게 악습의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며 방치하다가 정작 사고가 터지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관리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그래서 귀신도 잡는다는 어느 부대의 총기사고 전후사정을 들으면서 문득 생각난 아주 오래전 나의 경험담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9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