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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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몇 년 전, 출근하다 내가 탄 택시가 운전사의 부주의로 신호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뒤에서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말았다. 꽤 빠른 속도로 가던 터라 운전사는 크게 다쳐서 의식을 잃고 뒷좌석에 앉아있던 나도 조수석의 시트가 찢어질 정도로 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온 몸에 타박상을 입어 병원에 한 열흘 정도 입원했었다. 퇴원 후에도 몇 번의 물리치료 끝에 거의 다 나았다는 생각이 들 즈음, 사고 후 처음 택시를 탔는데... 나는 그야말로 식겁을 하고 말았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택시기사의 격한 운전과 한 박자 늦게 밟는 브레이크는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나의 발에 힘이 잔뜩 들어가게 했고 가슴은 몇 번이나 철렁 내려앉았다. 이러한 증세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가급적 택시를 타려고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타게 되면 “내 돈 내고 이게 무슨 고생이람......”을 몇 번이나 되뇌게 된다. 93년, 전국을 그야말로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대전엑스포’가 열리던 기간에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대전을 찾았는데 그 틈에 나의 친인척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삼촌께서 그 당시 일흔 즈음이셨던 외할머니와 때마침 방학을 맞은 외사촌동생과 조카를 비롯한 예닐곱 명의 코흘리개들을 데리고 대전의 이모님 댁으로 오셨다. 한 번 가봤다는 이유로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낮에는 엑스포 구경을 갔었고 저녁밥을 먹고 나서는 외할머니까지 모시고 그 당시 엑스포 개최를 축하하며 매일 밤 벌어졌던 불꽃놀이 구경을 하러 둔산 방면의 신시가지 쪽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대포소리와 함께 화려한 불꽃놀이가 벌어지자 아이들은 제각기 탄성을 질러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외할머니는 승합차 안에서 꿈쩍을 하지 않고 나오시질 않는 것이다. 진짜 대포가 아니라고, 괜찮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나중에는 아예 고개까지 숙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아이들은 불꽃놀이도 재미있지만 할머니의 이런 반응도 재미있는지 자기들끼리 깔깔거리고.....나 역시 아무리 시골할머니지만 아기같이 너무 순박하신 것 같아 실없는 웃음만 흘리고 말았다. 사진 출처 - 세계일보 그리고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그때 할머니를 모시고 왔던 외삼촌과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우연하게 예전 엑스포 때의 얘기가 나와서 다들 웃는 중에 삼촌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너그 할머니가 그리 대포소리를 무서버 하능 거는 6.25때 폭격하는 비행기 피한다고 엉겁결에 논 옆 고랑에 빠져서 겨우 살아나신 경험이 있어서 그런 걸 거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사전적 정의로는 충격 후 스트레스장애·외상성 스트레스장애라고도 한다. 전쟁, 천재지변, 화재, 신체적 폭행, 강간, 자동차·비행기·기차 등에 의한 사고에 의해 발생하며 생명을 위협하는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이라고 한다. 택시만 타면 간이 콩알만 해지고 놀라는 나의 증상이 ‘트라우마 증상’이라는 걸 안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외삼촌의 말씀을 듣고 나서는 불꽃놀이 당시의 할머니에 대한 나의 웃음이 정말 죄송스러웠다. 나는 겨우 타박상정도에도 후유증이 남았는데 생사를 오고갔던 전쟁터에서 할머니의 충격과 후유증은 얼마나 심각했을 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50년이나 지났는데도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의 끈질김에 놀라기도 했었다. 문득 해방이후부터 한국전쟁을 포함한 우리의 현대사가 민중들 개개인에게 얼마나 깊은 트라우마를 입혔을까 생각해 본다. 커다란 재난을 비롯한 사고도 많았지만 특히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국가권력에 의한 폭압과 고문, 심지어 살인까지, 민중들에 대한 국가의 가해와 위협은 ‘군사’와 ‘독재’라는 말이 ‘정부’라는 단어와 결별하기까지는 계속해서 우리의 현대사 곳곳에 상존하고 있었다. 커다란 충격후의 트라우마 증상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나와 할머니의 경우처럼 비슷한 경험을 다시 겪을 경우에, 히스테리성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억압, 언론통제, 민간인 사찰 등의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요즈음 독재와 군사정부 때의 기억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시민들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47 | 추천: 0
전국완/ 중학교 국어교사 지난 밤 동료들을 배웅하고 집 앞을 산책하면서 만난 촉촉한 봄비. 참 신기하기도 하지. 이제 막 돋아난 새순 다치지 말라고 요렇게 보드랍게 내리는구나. 자연의 조화란 참 ……. 이 비(혹은 는개?)를 온몸으로 맞으며 공원을 몇 바퀴 돌면서 보니, 아침에는 산수유 몇 그루만 꽃을 피웠었는데 어느새 나무들마다 꽃망울이 영글어 내일쯤이면 꽃을 볼 수 있겠다 싶다. 울타리에 심어 놓은 쥐똥나무, 그 작은 새 잎들도 알알이 물방울 하나씩 보석처럼 달고 있는 모습이 어찌 그리 어여쁜지 소리 없는 탄성을 질렀다. 그 팍팍한 겨울동안 온몸으로 추위를 받아내며 서 있던 나무들, 이제는 축복처럼 내리는 봄비에 한껏 힘을 내고 있다. 결전의 날이 밝았다. 머리맡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이른 기상을 했다. 괜시리 어정댄다. 지난 몇 년 간, 살다 살다 별 해괴한 일들이 자고 나면 뻥 뻥 터져서 이제 웬만한 일 앞엔 눈 하나 껌벅이지 않은 정도로 단련이 됐다 싶은데도 밤새 뒤척이다 일어났다. 가슴만 두근거리는 게 또 증상이 도졌지 싶다. 스스로 기대는 이제 그만! 이라 구겨박는데도 이놈의 희망이란 놈이 또 슬금슬금 밑에서부터 기어오른다. 지난 80년대엔 그래도 상대할 괴물들이 이렇게 많진 않았던 것 같다. 무식한 군부독재 앞에 넥타이부대까지 스크럼 짜고 외치면 매운 최루탄을 마셔도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뭐 사방이 괴물들이다. 국민의 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 시민들 뒷조사에 겁박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오만무식한 정권에, 선거철에만 국민 운운하고 여의도가면 기득권이나 챙기는 금배지분들에, 정권에 개노릇이나 하는 검찰에, 서민들 삶이야 어찌 되든 제 배불리는데 혈안이 돼 있는 재벌에, 이 괴물들 변호하느라 진실왜곡에 여론조작까지 못할 짓이 없는, 이미 또 다른 괴물이 돼 버린 언론까지 ……. 하지만, 이 괴물들을 이만큼 키운 건 정작 우리들 자신이었음을 뼈아프게 인정해야 한다. '부자 되세요!’, ‘1% 당신을 위한 차’,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을 말해 준다’ 는 자본의 달콤한 독약에 취해서 자신의 계급정체성도 망각한 채 그 괴물들이 빨대 꽂고 우리를 빨아먹도록 내버려 둔 건 우리 자신이다. 지난 세월 수많은 청춘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얻은 민주주의의 많은 것들이 부정되고 헌 걸레처럼 발에 채이도록 방기한 것도 우리들이다. '4.11민주항쟁'이 52주년이 되었다.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점 지금, 그렇게 ‘부자’가 되고 싶었던 우리 국민들은 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고용유연성을 위해 많은 우리들은 해고자가 되고, 사교육비 · 아파트 대출금에 빚더미에 앉았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또 철거민이 되고, 이제는 우리의 산하까지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파헤쳐지고 있다. 눈뜬 장님처럼 달콤한 유혹에 빠져 참·거짓도 분간하지 못하도록 어리석었던 우리들 탓이다. 기득권세력들이 귀신같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선점한 정보들을 총동원해 날쌔게 그들의 파이를 늘려가는 동안에 우리는 그저 침 흘리고 바라보고만 있었던 거다. ‘나도 언젠가는 저 파이를 먹을 수 있겠지.’ 하고 말이다. 10년 전 우리를 흥분케 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거대한 몸집의 괴물이 끔찍스럽게 큰 입을 쩍 벌리고 많은 것들을 삼켜대던 장면, 끝내 괴물에게 먹힐 뻔한 딸을 구해내던 아슬아슬한 장면 ……. 어리석었던 만큼 잃었던 걸 되찾으려면 할 일이 많다. 문제는 시스템일 것이다. 지금 괴물들이 합동으로 만들어 낸 시스템이 더 이상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계급정체성을 제대로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다행히 아직 빼앗기지 않은 우리의 단추를 제대로 누르는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입에 빨려들어가지 않도록 이제는 단추를 제대로 누르자. 그래서 저 잔혹한 시스템을 멈추게 하자! 그것만이 기득권의 철옹성에 균열을 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절망하지 말자. 다들 내맘같지 않다고 섣불리 냉소적이 되지도 말기로 하자. 그들의 철옹성이 어디 쉽게 허물어질 수 있겠는가? 수십 수만 개의 균열이 모여 허물어지는 그 때까지 마음의 스크럼을 짜고 버텨야 할 것이다. 어째 점점 글이 비장해지고 있을 즈음, 경남에 계신 지인으로부터 아름다운 메시지를 받았다. 어제 내린 봄비를 맞으며 보았던 꽃망울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오늘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봄은 올 것이고, 피어날 것이다. 그 분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우리에게는 아직 절망할 권리가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오늘은 김주열 열사의 시신인양 52주년일입니다. 불의를 미워하고 선을 실현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습니다. 3·15와 4·19의 사이에서 열사의 선한 눈빛을 마음에 담습니다. 아침 대한통운 앞 바닷가에 왔습니다. 벌써 누군가가 하얀 국화꽃을 바쳤군요. 저도 집 앞을 예쁘게 장식하고 있던 동백꽃과 목련을 제단에 올렸습니다. ‘악에 분노하고 선의 실현을 위해 행동하라’ 열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명복!
2017-07-12 | hrights | 조회: 332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민간인 사찰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총선 정국을 요동치게 할 정도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서로를 질타하고 있다. 민간인에 대한 불법적인 사찰은 흔히 도덕적 문제로 인식돼 선거에서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성격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보여준 사회적 파장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여야는 서로 인정도 하지 않거니와 먼저 나서 사과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뭐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탓하는 격이다. 물론 현 정부에서의 사찰과 지난 정부에서의 정보활동은 성격에서 차이가 있다. 현 정부에서의 사찰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자행되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소위 공직윤리를 바로잡기 위해 있는 기관이다. 이러한 성격의 기관은 이름만 달리 했을 뿐 참여정부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찰의 범위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혹 공직비리와 관련된 민간인이 있을 경우에는 민간인에 대한 조사권한이 있는 기관으로 이첩해서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이를 민간인 조사에 대한 법적 권한이 없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직접 ‘암약’하며 사찰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직비리와 특정한 연관이 없는 연예인들까지 포함해 광범위하게 사찰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공직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 전근대적이고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을 통해 ‘국민기강’을 바로잡으려 했던 셈이다. 정말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아니 ‘막걸리보안법’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뒷덜미가 서늘해질 일이다. 그런데도 관련자들은 입 다물고 있고, 관련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검찰이 칼을 빼어 들었으니 이번에는 제발 무라도 자르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이번일과 관련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사찰파문에 기름을 부은 것은 ‘KBS 새노조’가 ‘리셋 KBS 뉴스9’에서 사찰보고서를 공개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이중 80%는 지난 참여정부 때 작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정부와 여당이 ‘사찰은 참여정부에서도 자행되었다’며 물타기를 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공개된 보고서가 경찰에 의해서 이루어진 통상적인 정보활동이라고 일축했다. 다시 말하면 법적 권한이 있는 경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니 현 정부에서의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과는 차원이 다르고, 내용도 사찰이 아니라 정보활동이라는 얘기다. 물론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각계 인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news1 하지만 문 후보가 한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현대자동차 노조 동향에 관한 보고서, 화물연대에 관한 보고서, 전공노 동향에 관한 보고서 3건을 보면 불법사찰에 관한 자료가 아니라 일선 경찰의 정보보고, 통상활동, 직무범위 내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활동 보고서”라고 했다. 즉 경찰이 노조활동에 대해 정보활동을 빌미로 ‘합법적인 사찰’을 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사실 이런 식의 경찰 정보활동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노조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동향을 살피고 있다. 심지어는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걸거나 찾아와 행사의 성격과 목적 등을 ‘캐묻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한다. 사찰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동향보고’ 또는 ‘정보활동’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만 했을 뿐 그 내용은 사찰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찰은 사회갈등을 최소화하고 평화적 조정자가 되기 위해 정보활동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노조활동이, 시민단체의 활동이 사회갈등으로 치부되는 것이 정당한가? 그리고 경찰이 평화적 조정자를 자임할 이유 또한 뚜렷하지 않다. 그보다는 정권에 대한 충실한 ‘하수인’이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런 활동에 대해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사람이 문제가 없다고 인식하는 것은 실망스럽다. 현 정부에서 이루어진 민간인 사찰과는 성격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리고 ‘물타기’도 적절치 않다. 그렇지만 경찰에 의한 광범위한 정보수집이 과연 꼭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권력의 입장에서는 매일매일 간략하게 정리된 동향보고서가 매력적인지 몰라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공포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경찰에 의해서 건 아니면 검찰 또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정보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는 공포다. 따라서 지금의 논의는 민간인 불법사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합법의 탈을 쓰고 있는 불필요한 정보활동 전체가 재검토되어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16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2012년 3월 20일,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지 정확히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짧지 않은 시간이다. 10년 전을 되돌아보면 나와 우리(주변 소위 운동권이라 불리는이들)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이라크에 평화를 소리높여 외쳤다. 그리고 그해 여름 1차 파병, 그리고 그 다음해 2차 파병(자이툰 부대),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파병, 우리의 외침은 조금씩 사그라졌다.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지만 한국의 운동권(?)에게 시작은 뜨겁다. 뜨겁다 못해 과열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 뒤를 받쳐주고 이어나갈 책임감과 진득함은 매번 아쉽다, 또한 누구의 시각과 입장에서 외쳤는지도 의문이다. 2003년 3월, 우리는 미국에 의한 이라크 전쟁에 분노하였다.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로(납득이 된다고 하여도 그것이 전쟁의 이유가 될 순 없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할 때 우리는 계속 거리에서 규탄했다. 미국을 규탄하며, 미국의 뒤에서 눈치 보며 전쟁의 한 몫을 담당한 한국 정부를 규탄하였다. 오랫동안 이라크를 독재하였던 사담과 그의 군대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무력하였고 전쟁은 빨리 마무리 되었다. 기회가 닿아 이라크에 가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만난 이라크 인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분노 못지않게 독재자 사담일가에 대한 분노도 가득했다. 우리는 그들의 절반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고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2004년 겨울, 한국의 자이툰 부대 파병안이 국회에서 통과 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군대로 평화를 유지한다는 모순적인 이유도 그렇고, 실재 파병이 된 곳도 이라크 내에서 교전지역이 아닌 곳으로, 도무지 무엇 때문에, 가서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한 곳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을 매년 수천 명씩 보내는, 국익이라는 블랙홀 같은 명분으로 파병이 정당화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분노했고 거리로 나가 정부와 국회를 규탄하며 치열하게 투쟁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이라크인들도 분노했다. 그들에게 한국의 자이툰 부대를 물으면 그들은 반대했다. 동시에 이라크는 급격히 무너지고 있었다. 지속되는 폭탄공격, 무력과 폭력이 이라크를 지배하게 되었다. 법과 질서는 너무도 무력했고, 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을 포함한 파병국의 군인들도 무력했다. 초기 파병을 반대했던 이라크인들에게 파병국의 군인들은 점점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졌다. 본인들의 생존이 가장 시급했을 것이다. 그 이후 2008년 한국의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에서 철수했고, 2011년 미군 역시 이라크에서 소수의 인원만 남기고 철수하며 전쟁종료를 선언하였다. 수년이 지났다. 하지만 우리의 외침에서 더 이상 이라크의 평화와 점령 반대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2005년 이후 이라크 난민은 이라크 내부적 상황으로 인하여 급증하게 되었고, 2009년도 유엔난민기구추산 인구의 17%인 약 450만 명에 이르게 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후 최대의 난민 숫자이다. 2009년 WHO 집계 약 10만에서 22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였고, 종파간 분쟁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이라크 정부 추산 8만 5천명이다. 최근 SNS로 접하는 현재의 이라크인들의 모습은 2003년에 비교해서 그리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여전히 하루의 절반시간정도 정부가 제공하는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곳을 한국 정부는 2007년부터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하였다. 이라크는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외침에는 큰 변화가 있다. 물론 어떠한 운동도 처음의 치열함을 지속하기란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것이 미국에 의한 전쟁, 한국 군대의 파병, 한미관계, 국익 정도였지 않았나? 그리고 우리가 전쟁 후 점령, 점령이 가져다주는 수많은 인권침해, 폭력과 무력에 의한 지배, 불처벌(impunity) 현실에 대해서 직시하고 함께 나누려는 노력이 부족 않았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라크 전쟁은 우리 시대의 커다란 불행이었고, 이를 막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치열한 투쟁과 노력을 기울였다. 비록 전쟁을 막지도 점령을 멈추지도 못했고 이라크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점령은 끝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지난 노력과 투쟁이 헛되지 않고 다른 차원의 운동을 만들고 연결하기 위해서 지난 운동에 대해 우리는 한번 쯤 가슴 아프게 되돌아 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시 한걸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41 | 추천: -1
권력의 사유화가 넘쳐나는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 - 그리고 시민권력 확대를 시작하자.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부장 요즘 개그 유행어 중에 “어렵지 않아요~”가 있다. 어제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의 민간인 불법사찰 기자회견이 딱 그꼴이다. 민간인 사찰하고 입 막는거, 그거 어렵지 않아요~ 먼저 대포폰 사용 등 온갖 불법으로 사찰한 후, 조용히 있으면 돼요~ 만약 알려지면 증거 및 자료를 없애면 되요. 또 없애면 되요. 혹시 모르니 담당 주무관에게 입막음용 돈 몇 억과 다른 공무원 자리 제공해주고 꼬리 자르면 돼요~ 그래도 안 되면 한참 뒤에 최종 윗선과 뒤처리 조율을 마치세요. 이후 실무 윗선에서 역정을 내면서 억울하다고 울먹이며, 또 정치공작이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기자회견을 하면 돼요~ 보세요~ 민간인 불법사찰 하는거,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딱 여기까지다. 누가 봐도 몸통이 아닌데 본인이 몸통이라며 난리를 쳤다. 이게 지금 청와대 권력의 현 주소이다. 권력의 사유화를 여실히 보여준 꼴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 자르려고 했던 꼬리 담당 주무관이 평생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권력의 유혹을 뿌리치고 양심선언을 했다. 견제 받지 못하는 권력이 이제 심판을 받을 때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말한 이명박 정권의 권력의 사유화. 참 염치도 없다. 너무도 막 나간다. 검찰, 언론 등 견제할 곳도 없다.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이다. 공공성 확대를 위해 공정한 힘을 행사해야 할 권력이 어느덧 사적 권력 프렌드리가 되어버렸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런게 한 둘이 아니다. 행정, 사법부의 사유화, 견제기관 검찰, 언론사 등 사유화, 4대강, 용산, 제주 강정 등 위법 행위와 경찰의 폭력, 10.26 선관위 부정 선거, 내곡동 사저, 저축은행과 이국철 게이트, 형님, 영부인, 아들, 사위, 조카, 사돈 등 온갖 친인척 비리에 최시중, 박희태 등 측근 비리까지 너무 많아 나열하기도 힘들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12일 4ㆍ11 총선과 관련해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우선 먼저, 이번 4.11 총선에서 이들을 심판하자. 국민을 섬기고 봉사한다고 말하던 권력, 새누리당의 거짓이 드러났으니 다시 이 권력에게 정당성을 주지 말자. 간판은 새누리당으로 바꿨으나, 결국 ‘이명박근혜 정책’이 나돌듯이 또 다시 속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 심판만으로는 권력의 사유화를 모두 막을 수 없다. 일회성 정치참여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한 정치인이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권력은 어떠한 경우건 견제되어야 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오로지 시민을 위해서만 작동되어야만 한다. 권력의 사유화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위협이다.” 결국 권력에 대한 시민의 통제가 상시적으로 추진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아래로부터의 이해와 요구, 즉 시민 및 민중권력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소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게 바로 권력의 사유화를 감시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자 보자. 이번 총선을 앞두고 몇 달 사이에 새로운 정당들이 나타났다.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녹색당, 청년당 등 다양하다. 앞에 세 당은 기존 정당에서 새 옷을 입은 곳이다. 강령에 국민행복, 복지를 강조한 새누리당, 경제민주화를 강조한 민주통합당, 정권심판을 위해 진보정치연대를 강조한 통합진보당. 이들이 왜 이름도 정책도 바꾸고 전반적으로 좌클릭을 했을까? 결국 지금의 현실, 양극화 시대 속에서의 경제민주화 해결이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했고, 이것이 표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책지형 변화의 핵심과 동력은 여전히 시민, 민중에게 있다는 것임을 2012년 3월에 우리는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대의제로 대표되는 정당정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차별화된 각 정당의 정책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투표하는 정치행위도 권력의 사유화를 막는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에 한국 정당정치의 작동기제가 이렇지 못하다보니 부정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당정치 대의제와 함께 시민, 민중들이 권력을 더 견제, 감시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의 구조를 만드는 것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이번 4.11 총선에서 권력의 사유화를 행했던 정치조직을 철저히 심판하자. 그리고 권력의 사유화를 막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시민권력 확대를 고민하자. 풀뿌리운동과 시민운동의 확대, 선거 추첨제, 주민, 국민 발의, 권력감시 시민기구 확장, 민관 거버넌스 협력 확대 등의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시작하자. 시민권력의 확대, 이게 진짜 권력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3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 정치부 기자 나는 직업 앞에 ‘여’자가 붙는 것을 싫어한다. 남성은 무표, 여성은 늘상 유표인 표현법에 대한 거부감이다. 그러나 이번 글엔 어쩔 수 없이 ‘여기자’라는 단어를 쓴다. 여성 기자로서 겪는 소회와 반성을 담은 까닭이다. 지난 4일 저녁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6층 회의실 앞에서 ‘뻗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날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공천위)는 4·11 총선 공천자 심의를 새벽까지 벌일 기세였다. 오후 5시께 회의실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다른 기자들과 잡담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에 통증이 몰려왔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생리통이 확실했다. 평소 생리통을 심하게 앓았기 때문에 급하게 진통제를 찾았지만 없었다. 일요일이라 주변 약국 문은 모두 닫힌 상태였다. 겨우 동료 여기자에게 진통제 한 알을 얻었지만 약효가 떨어지는 4시간 뒤의 일이 두려워 쉽게 먹을 수가 없었다. 보통 ‘뻗치기’는 말진(막내) 기자의 몫이기에 생리통으로 집에 간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날도 4명의 팀원 가운데 말진인 나와 선배 기자 1명이 새벽까지 공천위 뻗치기를 해야했다. 저녁 7시께 먼저 퇴근하는 선배들에게 “생리통이 심하니 대신 남아줄 수 없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말하지 못 했다. 마침 퇴근하는 선배가 “혹시 저녁에 약속이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면, 난 이날 새벽 1시까지 아픈 배를 움켜쥐고 뻗치기를 해야했을 거다. 굳이 저녁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일찍 퇴근한 것은, 선배들이 ‘생리통’을 ‘여성으로서의 핸디캡’이라고 생각할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정치판에서 여기자들은 좀더 치열해질 것 을 요구받는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불편한 마음으로 집에 오면서 더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3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면서 생리휴가를 써본 기억이 없다. 동료 여기자가 생휴를 써봤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 그동안 힘들 게 얻어낸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계속 마찬가지일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마음 먹었지만, 다음 날도 생휴 대신 출근을 했다. 하루하루 피말리는 정치부 생활 속에서 당당하게 “난 오늘 생휴를 쓰겠다”는 말이 차마 안 나왔다. 사실 이런 일들은 고충이랄 것까지도 없는 일상이다. 정치부 여기자로 생활을 하다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특히 정치부에서 남자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하다보면 ‘이건 아니다’싶은 일들을 자주 겪게 된다. 남자 정치인들의 ‘이대 계집애’나 ‘자연산’ 발언 등은 20년 전 얘기가 아닌 현재의 얘기다. 술 한 잔 들어가면 경계가 더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어떤 정치인은 노래방에 가서 여기자들에게 나이순으로 앉아보라는 제안(?)을 하기도 하고, 어떤 정치인은 여기자 한 명 한 명의 외모에 대한 품평을 하기도 한다. ‘사람 장사’라고 불리는 정치부 생활에서는 이런 일들을 적당히 웃어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때로는 정치부 ‘남기자’들이 고충을 토로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너무 여기자들에만 친절하다”는 것이다. 일부 중년 정치인들의 태도를 보면 그 불만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남기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여기자들에게만 얘기하는 정치인들이 가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한 마디 더 듣게 되는 것이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는 거의 못 본 데다, 여기자들은 그런 식의 친절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주로 ‘예쁜 여기자’들을 정치부로 보내는 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해 7월 정치부로 옮기면서 한 선배가 진지하게 충고했다. “학연, 혈연, 지연 등을 최대한 동원해서 취재원을 만나야 한다. 권력을 가진 남자는 무조건 마초라고 보면 된다. 선을 지키되 너무 튀지 않게 적당히 조절해가며 관리해라.” 이런 한국 정치계의 현실속에서 나는 오늘도 ‘적당한 여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113 | 추천: 0
임아연/ 한밭대 학생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한국전쟁의 끝자락에 태어났다. 포화도 비켜간 충청도 어느 깊은 시골마을에서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책가방 대신 지게를 지기 시작했다. 드라마처럼, 6남매 가운데 장남이라는 무게를 어깨에 이고 학교라는 문턱을 넘어 본 적 없이 청년이 됐다. 사람들을 따라 상경했다. 배움이 없는 그에게 주어진 건 온갖 잡일과 궂은 일뿐. 몇 푼 되지도 않는 돈벌이로 가족을 부양했다. 모래알만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삶, 농약도 마셔봤지만 죽는 것조차 그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날들이었다. 결혼을 했다. 배움에 한 맺힌 그에게 서울에서 이름난 상고출신의 여자는 꿈 같은 일이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란 여자는 가족과 일에 대한 그의 성실함이 좋았다. 딸 셋을 낳았다. 사글세 단칸방에 행복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우유배달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서울에서 대구, 대구에서 대전으로 안 가본 곳 없이 십 수 번씩 이사를 다녔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구김 없이 자랐고 드디어 몇 일 전, 막내딸까지 대학공부를 마쳤다. 나는 그의 막내딸이다. 자신을 위한 치장이라곤 로션 하나 바르지 않는 엄마, 그런 ‘아내 바보’ 아빠. 매일같이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일터로 향하는 부모에게 “집이 가난해서 부끄럽다”고 불평할 만큼 철없는 자식들은 아니었다. “돈이 없어도 마음이 부자라야 진짜 부자”라는 말을 가훈처럼, 아니 신앙처럼 믿었다. 다행히 가족은 돈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을지언정 불행하진 않았다.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의 부모는 “우리에겐 자식이 노후 연금”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나는 더럭 겁이 났다. 학위와 함께 내게 쥐어진 건 천 만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 빚이었다. 지금까지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피부로 느낄 만큼 구체적인 상황으로 인지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닌 부모의 일로 미루어 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스물 여섯, 막 사회로 접어드는 내가 갚아야 할 빚이 천 만원이 넘는다니. 그나마 사립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해야 하나. 막막하다. 행인들이 서울역 인근의 한 대부업체 앞을 지나가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뉴스 속 한 꼭지 짜리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우리 집에선 연쇄반응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십 여 년 전부터 해 온 두부장사가 최근 5, 6년 사이 계속해서 늪으로 빠져드는데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터 인근에 대형마트만 세 개다. 작은 틈새까지 비집고 들어온 SSM(슈퍼슈퍼마켓)까지 합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용할 지경이다. 명절 밑이면 줄 서서 두부를 사가던 사람들을 추억할 뿐, 그렇다고 이제 와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용기가 나지 않는다. 빈 몸으로 결혼한 큰언니 부부는 박봉으로 소문난 사회복지사다. 늦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한 그들은 학자금 5천만 원을 빚으로 안고 시작했다. 아이가 둘인데 더 낳고 싶어도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사람들은 지금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아이마저 불행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했다. 돈으로 행복을 치환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상황이 계속 된다면 아이들도 우리와 같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몇 천 만원의 빚으로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둘째 언니는 올해 결혼하고 싶어한다. 5년 차 교사인데 모아둔 돈이 없다. 부모의 상황을 외면할 수 없어 언니가 벌어놓은 돈의 상당 부분이 엄마가 빚을 갚는데 쓰였다. 벌어도, 벌어도 모이지 않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만 같았다. 지난 겨울 초입, 함께 백화점에 갔다가 언니는 5년동안 일했는데도 겨울코트 한 벌 못 사 입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돈을 모아 결혼하려면 올 한해, 새 옷은커녕 ‘돌봄 교실’과 같은 업무 외 일을 더 맡아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하는데 이렇게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몰랐다. 허니문 푸어(Honeymoon Poor)가 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때때로 답답할 때가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빚이 우리가족 모두를 이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조여오는지 대상 없는 원망을 할 때가 있다. 가족들 누구 하나 나태하게 살아본 적 없고,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이자 때문에 다시 빚을 지는 상황이 온 적도 있었다. 물가든, 대형마트 규제든, 대학 등록금이든, 취업이든, 복지이든 사회 어느 한 부분에서 악순환의 고리 하나만 끊어지면 조금이나마 나아질텐데,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이 견고하게 돌아갈 뿐이다. 그리고 힘겨운 상황은 반복되고, 심화되고, 대를 잇는다. 최근 들어 엄마의 입에서 로또와 연금복권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은 일확천금에 대한 꿈으로 옮겨 갔다. 어떤 때는 사주팔자를 탓하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를 찾는다. 나만의 일, 우리 가족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내고 있다. 정책에 대한 신뢰보다 운명을 믿는 게 차라리 위로가 되는 사회에서 말이다. 곧 총선이다. 우리가 힘겨워 하는 이 현실들이 어찌 보면 우리 손에서 나온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선거만으로 세상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겠지만 사회의 작은 고리 하나를 끊어낼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었으면 한다. 다가오는 4월이 또다시 ‘잔인한 달’이 되지 않았으면 싶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64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 지난 해 10월 15일부터 지금까지 나와 우리센터, 여러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그리고 금융피해자들은 “여의도 점령”이라는 새로운 운동을 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가 요구사항인데, “금융·투기자본 규제”, “금융·투기자본을 위한 정책의 수립, 집행을 한 경제금융관료 처벌”, 마지막이 “금융피해자 구제”이다. 나름 성과도 있다고 평가한다.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 사회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목소리는 작고, 우리를 조롱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 시민사회 진영의 호응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다. 다만, “월스트리트 점령”과의 국제연대 차원에서 한 차례 할 만한 행사로 취급당했다. 아니면, 반MB를 위한 행동 중의 하나로 규정 당했다. 진보적인 매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취급했다. 오히려, 경제신문, 심지어 “스포츠”신문이나 보수언론에서 자주 다뤄준다. 우리를 거론하지 않지만 금융관료들과 금융자본가들, 심지어 여야의 보수정당들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 ‘카드 수수료가 과도하다’, ‘은행 고배당을 자제해야 한다’고. 그러나 우리를 지칭할 때는 “미국 점령시위의 짝퉁”이니, “한국(의 금융자본)과 미국(의 금융자본)의 상황은 다르다”라는 식의 조롱을 해왔다. 최근에는 우리 대오에 있는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과 소상공인들을 향해 모욕을 가하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은 흔히 말하는 “금융 투자자”가 아니다. 자신의 노년의 생활자금, 퇴직금 같은 것을 저축은행에 예치한 사람들이다. 국가가 허가해 준대로 저축은행이 정상적인 영업을 했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예금자로, 금융소비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은 저축은행 대주주와 그들과 결탁해서 사익을 추구한 금융관료들이다. 그리고 그 저축은행의 불법 부당한 영업을 허가해준 정부, 금융당국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들이 공모해서 저축은행의 자산을 횡령했기에 저축은행이 망한 것이지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 때문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피해구제, 자신의 피 같은 예금을 전부 돌려달라는 것이 탐욕인양, 한국의 금융시스템과 관련법을 부정하는 것인 양 취급한다. 카드 수수료도 마찬가지이다. 금융회사들의 카드를 무조건 받아야 하게 법으로 정해 놓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고율로 금융수탈을 하도록 카드 수수료를 소상공인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KIKO사태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KIKO에는 “환헷지” 기능이 없다. 그걸 정확히 알고 만든 미국에서도 사기판매라고 법정판결이 난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르다. 은행과 그들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그리고 사법부가 공모해서 피해 수출업체 모두에게 패소판결이 내려졌다. 사장들은 자살하고,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news1 사실, 처음에는 다른 것은 몰라도 구체적으로 드러난 이 금융피해자들은 어느 정도 구제될 것으로 나는 믿었다. 사안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자본과 금융관료, 그들과 한편인 언론은 피해구제가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선거를 앞두고 피해자 환심을 산다는 것이다. 물론, 피해구제에 나선 국회의원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른 해법을 제시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피해액의 100% 보상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55%하겠다는 것을 그토록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저의가 불순하다. 비판의 선봉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자신의 정부의 관료, “금융강도원”이라고 피해자의 비난을 받고 있는 금융감독원과 금융관료에 대해 처벌하는 것이 대통령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불법과 탐욕의 금융자본과 그들과 결탁한 금융관료 집단의 입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비판의 대열에는 한국노총의 금융노조도 있다. 또, 정부가 과도한 카드 수수료 규제에 대해 민주노총의 사무금융연맹도 반대 기자회견을 했다. ‘영업의 자유’를 방해한다나... 그동안 금융피해자들이 여의도 금융가를 다니며 피해구제와 금융규제를 외칠 때는 외면하다가 규제와 보상이 현실화 되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금융자본(영업의 자유)과 금융관료(법규정)를 위한 것이다. 아니, 침묵하는 그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영업의 자유”를 위한 앞잡이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투기자본 론스타 먹튀에 5조원을 바친 하나금융의 품에 다시 안겨, 장미 꽃 다발 속에서 환하게 웃는 외환은행노조의 사진이 언론지면을 도배했다. 론스타에게 500%의 위로금인지 상여금인지를 받는다니 참으로 기쁠 것이다. 결국, 금융권 노조라는 것이 금융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고액연봉과 고용보장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니 슬픈 일이다. 금융 피해자는 금융자본주의 시스템, 금융자본의 수탈로 직접 희생된 이들이다. 그들은 노년의 시민이고, 생활하는 노동자이거나 그들을 고용한 소상공인이다. 금융 1번지 여의도 거리에서 만난 그들의 하루하루는 지옥이었다. 이들에 대해서 한국의 금융자본주의는 피해보상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아마도, 금융자본과 관료들은 이들이 소수이고 분노도 조직할 수 없어서 며칠 시끄러워도 곧 사라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 금융 시스템은 평범한 금융 소비자를 피해자로 만들어 거리로 내몰고 있다. 결국, 여의도에는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직 희생되지 않는 다수의 금융 소비자들, 자각하지 못해 행동하지 않는 99%의 처지는 어떨까? 답은 없다. 앞으로도 여전히 금융수탈 시스템 하에서 빚으로 허덕이며 살아가고, 복지 시스템이 부재한 한국에서 노년을 위해 모아 노은 알량한 금융자산도 금융자본에게 잃기 쉽다. 모두가 불안하다. 부디, 불안들 딛고 1% 금융수탈자들, 그들의 금융 시스템을 정확히 인식하고 싸우기를 바랄 뿐이다. 금융피해자들과 함께 여의도를 점령하라!
2017-07-12 | hrights | 조회: 307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 지난 해 10월 15일부터 지금까지 나와 우리센터, 여러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그리고 금융피해자들은 “여의도 점령”이라는 새로운 운동을 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가 요구사항인데, “금융·투기자본 규제”, “금융·투기자본을 위한 정책의 수립, 집행을 한 경제금융관료 처벌”, 마지막이 “금융피해자 구제”이다. 나름 성과도 있다고 평가한다.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 사회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목소리는 작고, 우리를 조롱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 시민사회 진영의 호응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다. 다만, “월스트리트 점령”과의 국제연대 차원에서 한 차례 할 만한 행사로 취급당했다. 아니면, 반MB를 위한 행동 중의 하나로 규정 당했다. 진보적인 매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취급했다. 오히려, 경제신문, 심지어 “스포츠”신문이나 보수언론에서 자주 다뤄준다. 우리를 거론하지 않지만 금융관료들과 금융자본가들, 심지어 여야의 보수정당들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 ‘카드 수수료가 과도하다’, ‘은행 고배당을 자제해야 한다’고. 그러나 우리를 지칭할 때는 “미국 점령시위의 짝퉁”이니, “한국(의 금융자본)과 미국(의 금융자본)의 상황은 다르다”라는 식의 조롱을 해왔다. 최근에는 우리 대오에 있는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과 소상공인들을 향해 모욕을 가하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은 흔히 말하는 “금융 투자자”가 아니다. 자신의 노년의 생활자금, 퇴직금 같은 것을 저축은행에 예치한 사람들이다. 국가가 허가해 준대로 저축은행이 정상적인 영업을 했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예금자로, 금융소비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은 저축은행 대주주와 그들과 결탁해서 사익을 추구한 금융관료들이다. 그리고 그 저축은행의 불법 부당한 영업을 허가해준 정부, 금융당국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들이 공모해서 저축은행의 자산을 횡령했기에 저축은행이 망한 것이지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 때문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피해구제, 자신의 피 같은 예금을 전부 돌려달라는 것이 탐욕인양, 한국의 금융시스템과 관련법을 부정하는 것인 양 취급한다. 카드 수수료도 마찬가지이다. 금융회사들의 카드를 무조건 받아야 하게 법으로 정해 놓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고율로 금융수탈을 하도록 카드 수수료를 소상공인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KIKO사태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KIKO에는 “환헷지” 기능이 없다. 그걸 정확히 알고 만든 미국에서도 사기판매라고 법정판결이 난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르다. 은행과 그들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그리고 사법부가 공모해서 피해 수출업체 모두에게 패소판결이 내려졌다. 사장들은 자살하고,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news1 사실, 처음에는 다른 것은 몰라도 구체적으로 드러난 이 금융피해자들은 어느 정도 구제될 것으로 나는 믿었다. 사안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자본과 금융관료, 그들과 한편인 언론은 피해구제가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선거를 앞두고 피해자 환심을 산다는 것이다. 물론, 피해구제에 나선 국회의원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른 해법을 제시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피해액의 100% 보상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55%하겠다는 것을 그토록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저의가 불순하다. 비판의 선봉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자신의 정부의 관료, “금융강도원”이라고 피해자의 비난을 받고 있는 금융감독원과 금융관료에 대해 처벌하는 것이 대통령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불법과 탐욕의 금융자본과 그들과 결탁한 금융관료 집단의 입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비판의 대열에는 한국노총의 금융노조도 있다. 또, 정부가 과도한 카드 수수료 규제에 대해 민주노총의 사무금융연맹도 반대 기자회견을 했다. ‘영업의 자유’를 방해한다나... 그동안 금융피해자들이 여의도 금융가를 다니며 피해구제와 금융규제를 외칠 때는 외면하다가 규제와 보상이 현실화 되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금융자본(영업의 자유)과 금융관료(법규정)를 위한 것이다. 아니, 침묵하는 그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영업의 자유”를 위한 앞잡이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투기자본 론스타 먹튀에 5조원을 바친 하나금융의 품에 다시 안겨, 장미 꽃 다발 속에서 환하게 웃는 외환은행노조의 사진이 언론지면을 도배했다. 론스타에게 500%의 위로금인지 상여금인지를 받는다니 참으로 기쁠 것이다. 결국, 금융권 노조라는 것이 금융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고액연봉과 고용보장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니 슬픈 일이다. 금융 피해자는 금융자본주의 시스템, 금융자본의 수탈로 직접 희생된 이들이다. 그들은 노년의 시민이고, 생활하는 노동자이거나 그들을 고용한 소상공인이다. 금융 1번지 여의도 거리에서 만난 그들의 하루하루는 지옥이었다. 이들에 대해서 한국의 금융자본주의는 피해보상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아마도, 금융자본과 관료들은 이들이 소수이고 분노도 조직할 수 없어서 며칠 시끄러워도 곧 사라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 금융 시스템은 평범한 금융 소비자를 피해자로 만들어 거리로 내몰고 있다. 결국, 여의도에는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직 희생되지 않는 다수의 금융 소비자들, 자각하지 못해 행동하지 않는 99%의 처지는 어떨까? 답은 없다. 앞으로도 여전히 금융수탈 시스템 하에서 빚으로 허덕이며 살아가고, 복지 시스템이 부재한 한국에서 노년을 위해 모아 노은 알량한 금융자산도 금융자본에게 잃기 쉽다. 모두가 불안하다. 부디, 불안들 딛고 1% 금융수탈자들, 그들의 금융 시스템을 정확히 인식하고 싸우기를 바랄 뿐이다. 금융피해자들과 함께 여의도를 점령하라!
2017-07-12 | hrights | 조회: 306 | 추천: 0
김현진/ 에세이스트   얼마 전 시인이자 르포 작가인 송기역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허세욱 평전 <별이 된 택시운전사>, 요셉 조성만 평전 <사랑 때문이다>와 무너져가는 4대강을 기록한 <흐르는 강물처럼> 등의 책을 썼고, 최근에는 박종철 열사 아버님인 박정기 선생님을 인터뷰해 한겨레신문에 기고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는 생소한 르포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다 르포작가로서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점이 뭐냐고 물으니 그는 ‘인권 감수성’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에서는 인권도 생소하고 감수성도 생소한데, 그 두 가지를 합친 인권 감수성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송기역 작가는 평전을 쓰기로 하고 초고까지 다 쓴 다음에 인터뷰이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연락이 왔을 때 그동안의 수고를 생각지 않고 단칼에 인터뷰 원고를 버린 셈 치기로 하고 포기했다고 한다. 어디에 소속된 기자라든가 자기 수고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애써서 쓴 원고를 통째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인터뷰이, 그러니까 인터뷰 당하는 이의 인권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그는 그런 결단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게 그가 말하는 인권 감수성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 자칫하면 내가 쓴 글 한 줄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부연 설명이었다. 르포를 쓰지는 않지만 가끔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입장에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나라에 인권감수성이라는 말은 참 낯설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감수성은 커녕 인권이라는 말도 참 낯설다. 얼마 전 대구에서 있었던 중학생 자살 사건도 그렇고, 꾸준히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 사건도 인권 의식은 커녕 인권 감수성,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 되었을 때 어땠을까 하는 감수성이 없는 것이 근원이지 싶다. 괴롭히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아마 크게 괴롭힌다는 의식이 없었을 것 같다. 괴롭히는 애들 입장은 다 그렇지 싶다. 우리 같이 재미있게 놀았을 뿐인데, 그냥 짓궂게 굴었을 뿐인데, 뭐 그런 것. 인권 감수성이란 게 그럴 때 참 애매하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웬 남자가 특정 부위를 계속 들이밀고 비벼 대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2호선 사당, 교대역을 지나느라 복잡해서 그렇겠지 싶어 읽고 있던 책에 열중하느라 잘 몰랐는데, 흘끗 보니 지하철이 드문드문한데 이 남자가 바짝 붙어서 그러고 있는 거였다. 그런데 이것도 참 뭐라고 하기가 애매한 게 문제다 싶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되는지 내가 잘못 느낀 건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보던 책을 탁 덮고 빤히 봤더니 남자는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튀어나가듯 내렸다. 그 모습을 보자 아, 성추행 맞구나 싶었다. 인권 문제는 너무 이렇게 애매하다. 인터넷에서 남의 이야기를 보고, K양이 어떻고 M군이 어떻고 이니셜 놀이를 할 때 킬킬거리고 재미있어하면 서도 여기에 인권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진 출처 - 스포츠서울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연습이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연습인 것 같은데, 우리는 참 남의 입장이 되는 연습을 못 한다. 어려서부터 못 배우고 큰다. 인터넷에서 남의 이야기를 보고, K양이 어떻고 M군이 어떻고 이니셜 놀이를 할 때 킬킬거리고 재미있어하면서도 여기에 인권 생각은 하지 않는다. 쟤들은 공인이니까, 즉 돈을 많이 버니까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이 특별히 이기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남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나는 즐겁게 같이 놀았다고 느꼈지만 저 아이 입장에서는 왕따, 나는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했지만 저 여자 입장에서는 성희롱, 인권 감수성이란 나만 즐거우면 다 즐겁다고 생각해 버리는 거구나,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은 줄 아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새삼 했다. 그래서 첫 번째 결심으로 남 얘기 하면서 시시덕거리지 않기로 했다. 연예인이든, 아는 사람이든, 일단 그것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남의 뒷말 안하기부터 시작하면 상태가 훨씬 나아질 것 같다. 트위터 같은 SNS가 발달하면서 남의 뒷말 하기가 너무 편하고 좋아져서, 이걸 줄이는 건 사실 꽤나 힘들겠지만. 사실 이것만 안 해도 우리 삶의 저열함이 조금은 나아지지 싶다. 나부터 입 좀 다물어야겠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84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