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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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내 신통치 않은 기억력으로도 생각이 나는데 아마 1980년대 중반 정도였던 것 같다. 그즈음 가끔 TV뉴스에 일본 정부가 실시했던 ‘외국인 지문 날인제도’를 거부하는 피켓시위나 기자회견 따위의 장면들이 나왔던 적이 있었다. 뭐 특별한 사회적 문제의식이라곤 거의 없었던 때였다. 매일 학교 가서 그날 주번이 누구인지, 요일, 날짜 등을 치밀하게 계산해서 자리 잡는 것 따위에 온 정열을 쏟았던 복지부동, 무사안일의 시간이 반복되는 시절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외국인 지문 날인제도’에 대해 관심을 가질 리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일본 거주 외국인을 범죄인 취급하며 지문을 등록하는 아주 악랄한 제도라는 설명을 해주셨다. 짧은 순간이나마 차별받는 재일동포의 현실에 설움이 아주 잠깐 복받쳐 왔고, 그때 당시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했을 법한 “C8 역시 쪽00다운 짓이야!”라는 말을 뱉으며 극렬한 반일 감정을 지닌 민족주의자로 변하곤 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했듯이 나도 만17세가 되어 동사무소에 가서 주사 아저씨의 친절한 설명에 따라 열손가락을 전부 다 '지문날인’을 하고 말았다. 솔직히 그때 당시야 성인인증을 받았다는 희열에 우쭐함까지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침조례 시간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고자 다짐했던 대한민국으로부터 예비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만 것은 사실이었다. 피켓시위를 하던 아저씨 아줌마도, 일본에서의 ‘외국인 지문 날인제도’의 부당함을 설명하셨던 선생님도 열손가락, 특히 엄지손가락은 180도 돌려가며 확실하게 지문 날인을 하며 주민등록증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본정부를 비판하는 그 엄청난 자신감과 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던 것일까? 계속적인 반대 운동 때문에 2000년 일본정부는 ‘외국인 지문날인제도’를 완전 폐지했다. 혹시 이전 대한해협을 넘어 간간히 들리는 폐지요구에 대해 이런 속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우리는 엄지손가락만 한다.” 일본 도쿄 중심가의 황궁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쿄돔 야구장의 2배 크기로 1869년 메이지 천황시절 황군의 혼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국가 신사로 지어졌으며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진 무진전쟁이후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11개 전쟁 전몰자 중 총 246만여 명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의 정문을 들어서면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고 불리 우는 ‘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이 서 있으며 그 오른쪽으로는 가미가제 돌격대원의 동상, 야마토(大和) 전함의 포탄, 군마(軍馬), 군견(軍犬)의 위령탑 등이 즐비해 있으며 그 뒤쪽으로는 “군인칙유(천황이 내린 제국 군인의 덕목) 비석과 유슈칸(遊就館)이라는 일종의 전쟁박물관도 볼 수 있다고 하니 특히 한국 사람으로서는 간담이 서늘해 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이쯤 되면 대강 짐작을 했겠지만 이곳은 그 유명한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설명이다. 이곳이 동북아 주변국의 집중적인 관심을 끈 시점은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1970년 후반 이후라고 한다. 그 당시 야스쿠니 신사의 참배가 일본의 침략전쟁 정당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주변국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이후로는 신사참배는 한동안 중단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1년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때부터 다시 일본의 유력한 우익 정치인들이 꾸준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어 주변국들의 심한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서춘은 매일신보와 각종 잡지에 친일 논조를 주장하고 친일잡지 ‘태양’을 만든 대표적인 친일언론인이었고 김창룡은 만주에서 독립군을 잡았던 일제관동군출신으로 백범 김구선생 암살의 명백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유학성은 12.12쿠데타의 핵심인물로 1997년 전두환, 노태우와 함께 반란모의참여, 반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모의 참여 등의 죄목으로 6년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대법원 확정판결 2주전에 사망하고 만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사후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는 것이다.(서춘의 묘는 독립유공자 서훈취소 8년만인 2004년에야 국립묘지에서 이장되어 나갔다.) 현충일을 맞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유학성 전 의원의 묘지앞에 국군기무사령관(오른쪽 4번째) 등 이름으로 놓인 조화(2007년)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일본 정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한반도 일제 강점과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후안무치(厚顔無恥-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한 행위임에 틀림없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광복 60년을 훨씬 넘긴 이 시점에서도 일본 고위관료들에 의해 여전히 무슨 월별행사처럼 침략전쟁 정당화 발언과 위안부 등에 대한 망언이 터져 나오는 참담한 현실 앞에 우리는 놓여있다. 국립묘지(國立墓地)란, 나라(國)에서 세운(立) 묘지(墓地)를 말한다. 친일파와 내란죄로 유죄를 받은 자를 국립묘지에 눕혀놓고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우리의 자화상은 왠지 서글프기까지 하다. 오히려 일본의 한반도 강점에 대한 ‘확신범적인’ 당당한 태도는 우리가 빌미를 제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확신에 찬 의구심을 가져본다. 마지막 임시정부요인이셨던 조경한 선생은 1993년 임종에 앞서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로 바뀌어 함께 묻혀있는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나라에서 세운 국립묘지에 나라 팔아먹은 자와 반란 가담자가 버젓이 누워있는 신비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광복 67주년을 넘긴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과거사에 대해 혼란스러운 것은 우리의 현대사가 질곡의 순간마다 파내야 될 것을 파내지 못한 ‘삽질’의 역사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한민국의 국립묘지는 제대로 된 삽질이 필요하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73 | 추천: 0
전국완/ 중학교 교사   얼마 전 교내 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출석하여 반 아이에 대해 진술을 했다.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에 실패한 그 아이는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아이가 없다보니 늘 움츠러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괴롭힘을 당한 기억도 친구들과의 관계를 힘들게 하는 요인인 것 같았다. 입을 열어 말을 할 때 욕부터 시작하며, 말에는 늘 분노가 담겨 있다. 이런 행동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듯하다. 자신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친구가 없다 보니 일단 자신감이 없어지고, 또 다른 아이들로부터 공격을 받을까봐 미리 공격적으로 방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소외감이 분노로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들어서 동료교사들과 자주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 해가 다르게 심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약을 처방받아 먹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은 부모님, 친구와의 문제이다. 예전에는 주로 1학년 아이들 사이에 왕따 문제가 주로 발생하다가 2학년부터는 차츰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문제가 학년과 상관없이 고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초등학교시절 왕따를 당한 학생은 ‘왕따’였다는 이유로 중학교에 들어와서도, 2,3학년이 되어도 계속 기피대상으로 남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삶의 순간에서 ‘친구’란 정말 의미 있는 존재지만, 특히 학창시절에 ‘친구’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환경이다. 몸과 마음에 엄청난 변화를 겪으며 성장통을 앓는 이 시기에 동일한 경험을 하는 또래친구의 존재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건이다. 내 학창시절을 돌이켜봐도 부모님이나 선생님도 중요하지만, ‘친구’야말로 학교생활의 든든한 빽이다. 마음 맞는 친구들의 울타리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비로소 자기를 발현할 에너지를 얻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중요한 친구 사귀는 방법을,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고 지켜가야 하는지를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예전에는 그래도 그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열 명 가까이 되는 식구들과의 일상 속에서 인간관계의 기본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방과후 집에 오자마자 책가방은 집에 던져두고 밖으로 몰려나와 온 동네를 쏘다니며 엄마가 ‘이제 그만 들어와 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까지 미친 듯이 놀았던 기억이 난다. ‘만세잡기’, ‘여우야 여우야’, ‘우리 집에 왜 왔니’, ‘망까기’, ‘많은공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놀이를 하며 우리는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매너와 자질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던 것이다. 물론 요즘 아이들도 학원에서, PC방에서 또래끼리 ‘놀이’를 한다.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하고, 게임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실제 체온이 느껴지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보다는 ‘가상공간’과 ‘가상인물’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또한 3~4명 정도 되는 식구들은 모두 바빠서 한자리에서 식사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이 분명 아이들의 건강한 ‘관계 맺기’에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10대 소년들의 관계를 날카롭게 다른 영화 <파수꾼> 사진 출처 - 씨네21 거기에다 ‘학교폭력’ 관련 사건이 자주 발생하면서 아이들과 학부모 모두 일말의 ‘불안’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학교 친구들의 행동을 ‘이건 폭력인가, 아닌가’의 시선으로 보게 되고, ‘피해자, 가해자’라는 단어가 아이들의 일상어가 되면서 친구간의 신의나 우정 대신에 ‘불신’이 자리잡게 된 게 학교 현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되는 학생 사안들을 겪으면서 드는 생각은 ‘아이들을 이대로 놔둬도 될까?’ 하는 위기감이다. ‘관계 맺기’의 미숙함과 실패, 그로 인한 부적응을 사춘기 아이들의 일시적인 성장통으로만 봐선 안 된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른이 되어 직장인이 되고 부모가 되어서 우리 사회에, 그리고 자신의 아이양육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면서 또 다른 갈등과 상처를 재생산해 나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OECD 가입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청소년 자살률은 세계 1위), 출산률은 세계 꼴찌’ 등의 지표는 우리 사회의 건강수준이 얼마나 위험수위에 왔는지를 말해 준다. 엊그제 본교 교육과정협의회결과가 문자로 통보되었다. ‘2학기부터 스포츠활동 주당 4시간 의무시행으로 인해 주당 1시간이 증가되어…….’ 학교폭력 예방의 일환으로 교과부가 내놓은 대책으로, 또 무작정 밀어부친다. 사춘기 아이들의 에너지를 운동으로 발산시켜 폭력적으로 쓰이는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스포츠시간을 늘리는 것 자체는 일단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좁은 교실에서 바르게 앉아 힘든 교과수업을 받는 것보다는 뛰면서 땀을 흘리다보면 몸과 마음이 맑아질 수 있으니까. 다만 이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학교폭력의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근본적으로 교정하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고민은 진정성 있게 하고 있는 건지.. 독일에서는 ‘아이들에게 공부 시키지 않기’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 현실과는 너무 먼 이야기지만 이게 정답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 ‘국영수사과’만 가르칠 게 아니라, 이제 세상살이에 정말 필요한 ‘관계 맺기’에 대한 수업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연중행사로 치러지는 수련회 시간에만 할 것이 아니라, 정규 수업시간으로 설정해서 레크리에이션도 도입하고 공기놀이, 우리집에 왜 왔니 등을 해 보면 안 될까? 노래방도 들여놓고, 춤추는 시간도 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도 실컷 불러보게 하면 안 될까? 몇 년 전부터 교과부가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줄여주겠다며 밀어부친 ‘집중이수제’는 결과적으로 실패다. 진정 학업부담을 줄이겠다면 좀 획기적으로 바꾸면 좋겠다. 철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일반교과목수업은 하루 4~5시간만 하고, 오후에는 동아리 활동을 하게 하면 어떨까? (아이들이 그래도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 동아리활동인데, 주 5일제가 되면서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그리고 학교나 교육당국만이 아니라, 범시민사회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문제를 분석하고 교정하려는 노력이 일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이들의 문제는 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아이들을 이윤창출을 위한 마케팅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물질만능’으로 몰고가는 기업과 이들의 자극적인 상업광고를 무한정 복사해대는 언론매체의 행태는 심각하게 반성해야 될 부분이라 생각된다. 우리의 아이들이 극도의 경쟁과 불신 속에서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더불어 성장해 가는 ‘친구’로서의 관계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도 좀 ‘운동’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2017-07-12 | hrights | 조회: 331 | 추천: -1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최근 어떤 사람이 “재벌가 손자 보육지원이 공정사회에 맞는가. 지금 같은 보육지원 시스템이 과연 지속가능할 것인가 검토해야 한다.”란 말을 했다. 올해부터 시행중인 0~2세 보육료지원정책이 최근 한창 논란을 일으키자 나온 말이다. 문제의 시발점인 작년 12월30일로 가보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0~2세 보육료지원 예산이 갑자기 안전으로 올라오자 한 민주당 의원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이렇게 답했다. “보육예산을 대폭 늘렸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대안을 저희들이 검토하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들과 협의했습니다.” 간단한 문제를 내보자. 현행 무상보육을 공격한 사람은 누구이고 방어한 사람은 누구일까. 비판한 사람은 기획재정부 제2차관 김동연이고 방어한 사람은 기획재정부 장관 박재완이다. 물론 김동연도 작년 12월엔 박재완 옆에서 민주당 의원 비판을 열심히 반박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두 사람이 1년도 안 돼 왜 이렇게 말이 달라졌을까. 물정 모르는 나만 해도 ‘이러다 지방재정 위기온다’는 얘길 처음 들은 게 1월이었는데 그동안 장관과 차관은 신문도 안 봤나? 그래놓고는 이제와서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보육료를 지원하는 건 틀렸다며 말을 싹 바꿔버리는 건 공정사회에 맞는 것일까?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달을 보라고 했더니 보라는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사안의 핵심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나 형식처럼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더 신경을 쓰는 행태를 꼬집을 때 주로 쓰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을 좀 비틀어보자. 시민들에게 달을 가리키며 시민들의 관심을 특정한 사안에 고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정부 정치지도자 재벌총수 언론 전문가집단 등 이른바 정치경제적 헤게모니를 쥔 사람들, 쉽게 말해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고 여러 현안을 관통하는 생각틀, 이른바 프레임을 제시한다.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건 이들에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끊임없이 ‘세금폭탄’을 외치며 결국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시킬 때나 2008년 공격적인 소득세·법인세 감세를 추진할 때 현 집권 세력은 ‘감세를 하면 부유층 소비가 늘어나고 그러면 경기가 활성화돼 경제가 좋아진다’는 낙수효과 프레임을 끊임없이 유포시켰다. 줄어든 세금 덕분에 실제로 늘어난 건 부유층 사교육비요 부동산투기라는 증거를 아무리 들이밀어도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2008년 당시 신문기사를 조금만 검색해본다면 재정건전성이란 주로 부자감세를 비판하는 이들이 주로 사용했던 담론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들은 ‘부자감세를 하면 세입이 급감해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747이니 줄푸세를 외쳤던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은 하나같이 재정건전성 비판에 입을 다물면서 ‘감세야말로 선진화로 가는 길’이라고 했을 뿐이다. 그랬던 이들이 그리스 등 남유럽 위기가 불거지기 시작한 2010년 벽두부터 재정건전성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진단은 전혀 달랐다. 헤게모니를 쥔 세력들은 ‘복지를 늘리면 세출이 급증해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자 감세 할 돈이면 보편복지 할 수 있다는 반론은 외면한 채 대통령까지 나서서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치졸한 프로파간다로 공론장을 도배해버렸다.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며 부자감세를 비판하던 이들이 어느 순간 재정건전성은 안중에도 없이 복지 포퓰리즘만 주장하는 나라 망칠 세력이 됐다. 재정건전성이고 뭐고 ‘닥치고 감세!’라고 하던 집단은 나라를 망치는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싸우자고 대중들을 선동했다. 그렇게 분위기를 몰아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그러고도 민심을 오판한 채 2011년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결국 그 날 주민투표는 서울에 거주하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한 명 한 명 투표소에서 전수조사해 이들을 커밍아웃시키는 희한한 이벤트로 끝났다. 보편복지는 집권세력도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일단 선거는 이기고 볼 일이다. 추가 감세까지 철회하며 복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마다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 ‘무상보육’ 논란은 그 와중에 태어난 사생아였다. 그렇게 집권세력은 한편으론 정당 간판을 바꿔달고 로고 색깔을 빨간색 국그릇 모양으로 바꾸고 보편복지와 반값등록금 경제민주화를 옹호하는 양 포장해 대안담론과 물타기를 했고 다른 한쪽에선 재정건전성을 무기삼아 ‘나라 말아먹는 복지 포퓰리즘’을 외치며 대안담론을 물먹였다. 사생결단 권력의지가 느껴지는 치밀한 역할분담이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삽질과 자리다툼을 거듭하며 지리멸렬했던 건 내 심장 건강을 위해 더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을 쳐다보느냐며 달을 볼 것을 채근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에 집중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보통 말한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달을 가리키는 사람과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봐야 하는 사람은 항상 정해져 있다. 만약 해를 가리키면서 달이라고 우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뭔가 깊은 뜻이 있으려니 하고 그걸 모르는 우리의 무지를 탓해야 할까? 대통령이 ‘감세만이 살길’이라고 가리키면 거기만 쳐다보고 ‘재정건전성에 나라의 운명이 달렸다’라고 가리키면 재정건전성이 100만큼 중요한지 50만큼 중요한지 토론하는 게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이제는 높으신 선생이 달을 가리킬 때 그가 왜 하필 지금 달을 가리키는지, 달을 가리키는 모양은 예전과 어떻게 다른지, 말투는 어떻게 변했는지, 달을 안쳐다볼 때 반응은 어떤지 그런 것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달을 가리키는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자. 달을 가리킨다고 달만 쳐다보는 바보는 되지 말자.
2017-07-12 | hrights | 조회: 347 | 추천: 1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최근언론보도를 통해서 대한민국내의 전체 이주민의 숫자가 150만 명에 도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단일민족의 신화에 가려 그동안 그 존재가 미비했던 이주민들도 이제는 그 수치나 역할을 보더라도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있고 정부에서도 앞 다투어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수없이 많은 정책과 조치를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한국 정부는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 The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 이하 위원회)에 한국정부가 비준 가입한 인종차별철폐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f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 이하 협약)의 이행상황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는 한국정부가 비준한 국제협약 중 하나인 인종차별철폐협약상의 가입국의무사항으로 2006부터 2010년까지의 대한민국 내 이주노동자, 이주아동, 결혼이민자를 포함한 전체 이주민과 귀화인, 난민들의 전반적인 인권상황을 담고, 이에 대한 정부의 입법적, 행정적, 사법적 조치들을 나열하고 있다. 정부가 작성한 보고서이다보니 기본적으로 그 내용은 정부의 정책과 입법조치들‘만’ 담겨있고, 그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후하다. 거칠게 내용을 정리하면 오늘날 한국사회 이주민들은 법과 제도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으며, 또한 한국 정부는 이주민들이 한국 내에서 차별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다. 아 증말 김C의 발 같은... 특히 정부는 “합법”이주민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차별”이 존재하고 있지 않으며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인종”을 기반으로 하는 범죄가 “역사”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단언하며 만약 “인종”을 기반으로 하는 범죄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현행법상으로 처벌이 다 가능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에게는 헌법상으로 동일한 권리가 부여되기에 “인종차별”에 대한 정의도, 그에 대한 법률도, 법률에 따른 처벌규정도 불필요하며, “인종”을 기반으로 하는 법률적 상이한 “대우”도 “범죄”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아 놔..증말..그러면서도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정부정책과 조치는 보고서 2/3을 할애하여 구구절절 밝히고 있다. ▲ 2009년 7월, 성공회대 후세인 연구교수의 인종차별피해이후 결성된 ‘성,인종차별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장면. 출처: 사회투자지원재단 희망인프라 홈페이지 정부의 보고서만 놓고 보면 보고서의 2/3를 차지하는 정부의 정책과 조치는 도대체 왜 그렇게 불필요하게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앞에서는 차별이 없다고 하면서 뒷부분은 현실적 차별을 막기 위한 조치를 자랑처럼 나열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뿐더러 조잡하기 그지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구성상의 문제가 아닌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는 한국 내에서 심각하게 야기되고 있는 “인종”을 기반으로 하는 차별들에서는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으며,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 정부가 한국사회의 문화적 편견을 야기하고 있는 ‘단일민족과 순혈’을 그 근간에 놓고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들 정도이다. 정부보고서 보기 http://minbyun.org/?mid=un2&document_srl=580321&listStyle=&cpage= 올해 8월 21~2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이 정부보고서를 가지고 위원회에서 회의를 열어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심의(Review)를 받고 그 결과로 최종권고(Concluding Observation)를 받는다. 위원회에서 보고서만 놓고 보면 한국 내 이주민의 인권상황은 나쁘지 않고, 상당한 수준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오해를 할 것이다. 또한 그 이유가 정부가 역할을 잘 했기 때문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러한 어이없는 결과를 막고 유엔차원에서 한국의 이주민을 비롯한 협약이 규정하고 있는 대상자(난민, 귀화자, 화교 등)들의 정확한 인권현실을 알리기 위해 한국내 인권시민사회단체는 자체의 반박보고서를 준비 중에 있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재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지만 최소한의 상식과 현실에 기반으로 하여 이주민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한다면 정부보고서의 내용과는 다른 유엔차원에서의 권고를 받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하며 다행히 그리 된다면 그 공을 형편없는 보고서를 작성한 정부의 당국자들에게 고스란히 넘기고 싶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25 | 추천: 1
이현정/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부장   얼마 전 제주해군기지 건설 공사 중인 강정마을을 5일 동안 찾았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그곳에 더 큰 상처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잠깐이었지만 불법과 폭력이 난무한 그 현장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여기에 담아본다. 가장 먼저 우리와 함께 울어준 해군기지 공사장 레미콘 기사님이 잊혀지지 않는다. 하루에 수십 대씩의 레미콘이 공사장에 출입하는데, 그 기사님들께 매일 같이 인사하고, 눈물과 편지로 호소하는 강정지킴이들이 항상 공사장 앞에 있다. 그 날도 그러했다. 그러다가 우리 일행들 약 20여 명이 도로 위 한 대의 레미콘 앞에서 평화의 절을 올렸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약 40여 분간 레미콘 기사님께 절을 올렸다. 순간 레미콘 기사님이 눈물을 훔치신다. 절을 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옆에서 전 날 사제가 돼 첫 예배를 보던 성공회대 신부님들도 모두 함께 울었다. 그리고 기사님은 죄송해서인지 시선을 못 마주치신다. 담배만을 피워대시면서 그 40여 분을 묵묵히 기다려주신다. 옆에 다가간 우리 일행에게 말씀하신다. “나도 마음이 아퍼~ 먹고 살라니 어쩔 수 없구만.. 나한테 이러지 말고, 회사에 얘기를 해줘. 근데 그 놈들이 무서운 놈들이여~” 어느덧 레미콘 예닐곱 대가 그 뒤에 섰고, 그렇게 40여 분간 해군기지 공사는 멈춰졌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평화의 교감을 나눴다. 당시 사진을 못 찍었던 나는 누군가로부터 사진을 받고 이 내용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김미화씨가 RT를 해주면서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기도 하였다. 한 강정지킴이로부터 이전에 양심에 가책을 느낀 레미콘 기사님이 그만 두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불법과 파괴가 난무하는 이 강정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흘린 이 눈물이 오늘의 강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라 더욱 더 슬프다. ▲ 강정해군기지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레미콘 앞에서 평화의 절을 올리는 이들과 기사님의 눈물 낮부터 저녁까지 매일 같이 강정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열심히 하는 한 50대 남성을 만났다. 사실 이 분은 강정마을 옆 주민이었고, 본인이 쓴 표현을 조금 섞으면 해군에 포섭돼 해군기지 찬성 선동활동을 앞장서서 했던 바람잡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제는 완전히 바뀌어 이렇게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계실까? 먼저 찬성 주민들도 현재 해군, 제주도가 처음 본인들에게 얘기했던 것들(민군복합 관광미항, 지원금 등)이 조금씩 거짓이라는걸 알고 있단다. 그런데 이 주민들이 왜 반대로 돌아서지 못하나? 해군이 찬성하면 보상으로 1억원을 준다고 하였고. 벌써 지급받은 사람이 있어 집 고친 사람도 있고, 아직 못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물질하는 강정 해녀들이 초기에 적극 찬성을 했단다. 이유로는 해군이 화순에서 해녀들이 해군기지를 적극 반대해 실패한 경험이 있어 해녀들부터 1억원을 준다고 적극적으로 포섭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차피 강정해녀들은 기지건설 내용을 잘 몰랐고 나이가 있어 물질을 못하니 1억원 보상 조건으로 적극 찬성하였단다. 초창기 해군이 주민투표를 할 때 이렇게 찬성하는 해녀들과 포섭된 주민들만을 대상으로 매우 소수만 데리고 했던 것이란다. 이 아저씨 얘기로는 현재 돈 받은 사람이 있지만, 아직 못 받은 사람이 많고, 해군 꼼수로 아마 못 받을거라 한다. 그렇다면 왜 이 분은 해군기지 적극 찬성에서 적극 반대로 돌아섰을까? 바로 앞서 얘기했듯이 해군, 제주도가 해가는 것이 처음 약속과는 달리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이 힘 없는 노인, 여성에게 폭언과 발길질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럼 자기들을 고소하라면서까지 협박을 했다고 한다. 거기에 반대활동을 위해 전국 곳곳에서 모이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의 진심을 보았고 너무 미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50대 중년남성은 이렇게 해군기지 적극 찬성에서 적극반대로 뛰고 계신다고 하셨다. 또한 강정포구의 한 횟집 사장님은 처음에 찬성측이었다가 반대측으로 돌아선 것이 구럼비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면서였다고 한다. 이렇듯 지금은 처음에 찬성했던 소수 주민들도 민군복합관광미항이 아닌 일방적 해군기지 건설과 갖은 폭력과 파괴 등으로 찬성측에서 마음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강정마을에서 만난 주민 대다수와 강동균 마을회장, 노인회장, 부녀회장, 청년회장까지 모두 강정해군기지를 적극 반대하고 계셨다. 또 지난 5월에는 마을의 몇 분이 제주도청 앞에서 삭발까지 하셨다. 이게 진짜 강정 주민의 날것 그대로의 여론이다. 주민들을 대표하는 이 분들 얘기를 좀 더 해보련다. 강정 부녀회장이 말씀하셨다. 해군기지 이전에는 그렇게 사이 좋았던 주민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지나가는 찬성측 주민에게 "삼촌~ 어디 갔다 옴쑤까?" 인사해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집 제사 때에도 형제, 사촌 간에 의견이 다르면 제사만 지내고 훅 가버리는 현실이라며 너무 아프다고 한다. 마을 큰 길에 슈퍼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하나는 반대측 주민의 조금 큰 일반 슈퍼, 그리고 하나는 찬성측 주민의 조금 작은 나들가게(기관의 저소득층 지원 가게)가 있었다. 어느덧 이 슈퍼에 출입하는 손님들도 반대, 찬성 주민들이 나뉘어져 이용한다고 한다. 슈퍼에 물건 하나 사러 가는데도 이렇게 갈라질 정도로 마을공동체 또한 파괴되었다고 한다. 주민 간에 정이 사라졌고, 흥겨운 민요가 없어졌고, 한바탕 웃음을 잃어버린 파괴의 현장이었다. 강정민속보존회장님도 말씀하시길 옛날에 전국민속대회에 가서 상도 받을 정도로 참 정겨운 마을이었는데 어떡하다가 이렇게까지 됐느냐 하면서 슬퍼하신다. 청년회장님도 한 말씀 하신다. 지금 찬성측 주민들이 소수인데, 그 분들의 다수가 사실 이 곳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착실히 지었던 분들이기보다는 선거 때 왔다갔다하는 그런 분들이 많다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연세가 많으셨던 노인회장님의 안내를 따라 마을 한 바퀴를 돌았다. 해안가 달팽이카페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며 쉼을 갖는 올레꾼의 모습도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런데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 우리들 모자가 계속 날라다녔다. 그러자 노인회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나마 오늘은 바람이 적게 부는 날이여. 근데 여기가 바람이 많이 부니까 해군 계획으로는 그때는 군함을 못 띄운다고 하더라구. 거기에 태풍이라도 오면 군함이 기지에 정박을 해놓아도 위험하기 때문에 다른 항구로 옮긴댜~ 그렇다면 고런 것이 무슨 놈의 해군기지여! 제대로나 나라 지키겄어!" 하며 강하게 쓴소리를 내뱉으셨다. 60대 여성으로서 지난 5월 제주도청 앞에서 삭발을 하신 강정마을해군기지여성대책위원장이 호소하셨다. “강정에서 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된 후 투쟁, 데모를 모르던 보수적이고 평범한 내가 이제는 진보가 되었고, 깨우침에는 나이가 없듯이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테니 여러분들 좀 도와주십시오~” 평범한 60대 이 여성 주민의 말씀이 마음 깊숙이 들어온다. ▲ 강정해군기지 공사장 앞의 경찰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지난 달 초에 경찰로부터 방송차량이 뺏겼다는 소식을 듣고, 목포에서 두 분이 방송무대차량을 끌고 제주해협을 건너오셨다. 그리고 6월 초까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울고 웃고 하신다. 또 마을에는 30~40여명의 강정지킴이들이 살고 있다. 원래 주민이 아니라 강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하나둘씩 모여든 평화지킴이들이다. 사연도, 나이대도 참 다양하다. 강정에 잠깐 들렸다가 이곳의 현실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눌러 앉아버린 이. 문정현 신부님이 계셔서 잠깐 있다가 가려다가 1년 동안 지내고 있는 이. 또 이 분 때문에 마음이 아파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이. 비정규직 노조운동을 하다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아내에게 석 달의 위로휴가를 받아 이곳에 내려온 이. 외국에 나가있는 아버지 몰래 이 곳에 왔고, 한국에 잠깐 들리는 아버지 때문에 잠깐 서울에 갔다올 이. 그리고 사제는 고통받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며 이곳에 찾아온 문정현 신부님. 여균동 감독님 등 모두 다양한 이유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강정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활동하고 계신다. 이곳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주민만이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파괴되는 뭇생명들이 너무 많다. 강정천에는 매년 5월 강정은어축제를 한다. 그러나 올 해는 축제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해군기지공사로 은어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100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 3만 년된 구럼비 바위를 파괴하고, 붉은발말똥게, 은어, 남방큰돌고래, 맹꽁이 등 수 없이 많은 귀한 생태계가 다치고 깨지고 사라지고 있었다. 결국 해군의 국가안보논리는 허구이고, 민군복합관광미항도 모두 거짓말이다. 설계에도 치명적인 오류가 있고, 현장에 15만톤 크루즈호도 못 오고, 강한 풍속과 유속으로 군함 두 대의 교차출입도 어렵고, 그 관할권도 도지사가 아니라 해군사령부에 있다는게 이미 밝혀졌다. 거기에 지난 주에는 한국 해역(제주 남방해역)에서 최초로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이 펼쳐졌듯이 지금의 강정해군기지는 향후 미국의 태평양 해군기지로 이용됨으로써 평화의섬 제주가 매우 위험해지는 것이다. 거기에 제주관광객 70%가 중국인, 화교계까지 포함하면 80~90%인 상황에서 미중간에 갈등이 생겨날 시 제주도 관광수입에 오히려 막대한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크다. 제주 도민 여론도 민군복합항이 아닐 경우에는 70% 이상이 강정해군기지를 반대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 강정주민, 종교인들, 지킴이들에게 행하는 해군과 경찰의 폭력과 체포, 구속, 또한 절대보전지구인 강정 생태계 파괴와 모든 공사절차 위법 등 결국 강정해군기지는 총체적으로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한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지금이라도 해군과 제주도, 그리고 해당 건설업체들은 불법과 파괴가 난무하는 강정해군기지 건설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 강정명랑운동회에서 함께 즐겁게 어울리는 강정주민, 제주도민들 강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생명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역시 답은 현장에 있었다. 현장의 날것 그대로가 진실이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곧 정의였다. 그렇다면 해군이 말하는 강정해군기지 건설은 정의도 안보도 아니었고, 그 진실은 불법, 폭력, 파괴만이 난무한 곳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5년 동안 싸워왔다. 그냥 끝낼게 못 된다. 그리고 공사도 25% 정도 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또 다른 도가니가 되어버린 강정마을을 살려내야 한다. 주민들의 소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 슬픈 현실. 주민들이 왜 반대하는지, 왜 소송을 제기하는지, 왜 체포되고 구속되는지에 대해 아무도 들어주지 않지만, 강동균 마을회장이 주민, 지킴이들과 함께 하는 구호는 여전히 혼이 실려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해냈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세계평화는 강정에서부터! 지화자 좋다!” 이들을 사랑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49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나는 흡연자다. 원래는 술을 마실 때만 남에게 빌려 피우는 ‘비상시적’ 흡연자였지만 지난해 정치부로 옮긴 뒤부터는 ‘상시적’ 흡연자가 됐다. 여성으로서 ‘나 흡연자요’라고 선언하는 것은 놀랍게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대수로운 일이다. 물론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던 암울했던 여성 흡연자의 시대는 진작에 갔다. 이제는 여자든 남자든 웬만한 화장실은 모두 금연이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이 흡연자임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나처럼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여성은 아직도 따가운 시선과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도 서울에서는 워낙 눈에 보이는 여성 흡연자들이 많고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이 비교적 잘 구분돼 있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다. 실외 흡연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면 흘끗 쳐다보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거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지역에만 내려가면 여전히 담배 피우는 여성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지난 총선 때 취재차 부산에 내려갔는데 엄연히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음에도 주민들로부터 손가락질과 혀차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지난달 김두관 경남도지사를 인터뷰하러 경남도청을 방문했을 때는 도청 공무원에게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최근 한 여기자가 경남도청에 왔었는데, 밖에서 담배를 피우더라. 우리 도청에서 담배를 피운 최초의 여자가 됐다. 대단하다.” 도청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운 것이 신기록으로 남은 것이다. ▲ 여성의 흡연모습은 각인된다. 영화 <타짜>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더구나 최근 들어 혐연권이 강조되면서 남녀를 떠나 일반 흡연자에 대한 인식이 자체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 언젠가부터는 방송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오지 않게 되어 버렸다. 버스나 기차에서 담배를 피웠던 시절에는 흡연에 자체 대해서는 관대했지만 남성주의 문화가 강했기 때문에 여성 흡연이 백안시됐었다면, 지금은 혐연권이 강조되면서 동시에 여성 흡연에 대한 거부감은 바뀌지 않아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런 거부감에는 임신과 출산 등 건강에 대한 우려를 동반한 과도한 ‘여성 보호’가 포함돼 있어서 여성 흡연 자체가 ‘악’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흡연으로 인한 가장 난감한 상황은 내가 출입하는 국회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난다. 국회 기자실 출입구 옆에 흡연구역이 마련돼 있는데, 하필이면 그곳이 국회에 견학온 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봄이 되면서부터 하루에도 몇번씩 전국에서 올라온 초·중·고등학생, 심지어 유치원생들이 두줄로 길게 늘어서 걸어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열맞춰 걸어가는 수십명의 학생들 가운데 나를 쳐다보지 않는 학생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들 가운데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 매우 충격적인 장면을 본 듯이 놀라거나, “저거 봐. 저 여자 담배 피운다”라고 큰소리로 떠드는 아이들도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어른들로부터의 손가락질이야 별 일 아닌듯 넘어가면 되지만, 아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 참 난감한 기분이 든다. 흡연은 무조건 나쁘고 건강에 해로우니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기 보다는, 흡연도 개인의 기호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존중받아야 마땅한 권리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여성 흡연 ‘커밍아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길 기원하며, 나도 이제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해야겠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408 | 추천: 17
임아연/ 당진시대 기자 나는 항상 B급, 아니 C급이었다. 몇 편 안되는 나의 지난 글들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다한)’ 지방대학 출신에 가난한 두부장사의 막내딸로, 천 만 원이 넘는 학자금대출 빚을 안고 작은 지역 언론사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그야말로 B급도 안 되는 ‘C급 인생’이다. 실력 탓이 크겠다. 썩 좋지 않은 머리로 ‘죽어라’ 공부하지 않았으니 지방대를 갔던 것이고, 이렇다 할 스펙도 없으니 중앙 언론사엔 고개도 못 내밀었다. ‘A급 인생’을 꿈꿔보지 않은 건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성공에 대한 욕심이 없던 것도 아니다. 비겁하게도 나는 'A급 인생'을 살기위해선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경쟁에 뛰어드는 게 자신 없었다. 길게 줄 세워진 대열에서 차라리 뒤부터 세는 게 편할지도 모르는 내 위치를 확인하는 게 나는 솔직히 두렵기도 하고 ‘존심 상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지 않는 것”처럼 ‘C급 인생 지질이’라고 해서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니까. 우습지만 이런 나 역시 초등학교를 거쳐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시험 점수 1, 2점 가지고 웃었다, 울었다 했다. 경쟁은 상위권에서만 피터지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중위권에서도, 하위권에서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자신을 발견하기위해 모두가 아등바등 했다. 누군가를 누르고 올라서고 싶어 안달하고 그 목적이 달성되면 뭔지 모를 짜릿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 쾌감은 이내 또 다른 경쟁으로 무너지곤 했다. 우리의 존재감은 매순간, 경쟁을 통해서만 확인됐다. ▲ 사진 출처 -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비교와 경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10대 땐 점수로, 20대 취업 전엔 '스펙'으로, 취업 후엔 결혼으로, 30대 땐 연봉, 4~50대엔 재산과 자식으로, 그렇게 사회에서 값이 매겨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데 경쟁사회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경쟁과 비교로 미쳐있는 세상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으로 나는 'C급 인생'을 자처하기로 했다. 당신들이 정해 놓은 낙인을 내게도 찍어 놓길 바란다면, 어떻게든 A급 도장 받으려고 쫒아 다니거나, 하급 도장 피하려 도망 다니지 않겠다. 그냥 나는 행복한 'C급'으로 살겠다. '함께', 그리고 '연대'라는 말을 생각한다. 누군가가 이기면 지는 사람이 생기고, 누군가가 우월감을 가지면 열등감을 갖는 이들이 있다. 때로는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을 에너지로 쓰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편에선 도태된 자신에 대한 실망과 피해의식으로 절망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함께 연대하자"는 말은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말이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경쟁을 통해 줄 세우는 게 아니라,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부축해 함께 가는 것이다. 좀 모자라고 초라한 나 같은 이들도 서로 다독이며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였음 싶다. 나이, 외모, 학벌, 재산, 부모에 까지 점수를 내고 급수를 매겨 결혼하는 세상에서 최상급은 언제나 주목 받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다른 '언론고시생'들에 비하면 길지만은 않은 몇 달간의 서울살이를 접고, 당진이라는 작은 도시로 내려왔다. 한창 땅을 파헤치고 바다를 메워 공장 짓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아직까지는 소박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로 가득한 곳이다. 지긋지긋했던 경쟁으로부터 도망쳐 '오프로드'로 밀려난 내가 이들과 부데 끼며 살게 될 날들이 정말로 기대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24 | 추천: 0
손상훈/ 소셜리서치앤멘토르 기획국장 종교인 도박, 혁신과 용퇴사이만의 문제인가 2년간 은둔과 잠적을 했던 수경스님과 불교계의 선방스님들이 조계종 총무원장 용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성명서 발표이후 계획은 없고 현 총무원장의 반응과 평신도인 재가불자들의 입장을 보고 판단하겠단다. 시나브로 종교를 갖고 있는 53%종교인들도 우리 자신들이 믿는 종교계지도자들은 도박이나 성매매에 자유로운지 같이 살펴볼 일이다. 친종교성향을 갖는 무종교인들은 정보가 없으니 더 괴롭다. 종교비판에 자유로운 온전한 무종교인들은 배설적인 비판과 즐겁게 관전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때 쓴 소리를 시기적절하게 했던 종교계 시민단체 현직 일꾼이나 전직 활동가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걸까! 현재까진 성명서와 겹치는 조직 출범밖에 없다. 주요한 불교단체의 평신도 지도자들은 눈치만 보고 있거나 ‘재수가 없었다’거나 ‘상습도박이 아니어서 무죄판결을 받는다’는 등 국민의 눈높이와 동 떨어진 이야기만 들린다. 무능한 활동가였던 내가 보기에도 한심하거니와 처량해 보이기도 하다. 내가 몸담았던 교단자정센터는 개점 휴업상태이고, 심지어 주변에선 폐업했다는 주장까지 한다. 부끄럽고 가슴이 아프고 쓰리다. 종교의 가르침이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수경스님을 비롯한 열 분의 스님들 주장만이 전부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현 총무원장스님은 자신의 자리를 걸고 용퇴하거나 그동안의 삶을 반성하고 죽을 각오로 해결을 할 의지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저 최고경영자인 시이오(CEO)자리에서 난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나의 진정성을 믿어달라는 것이다. 진정성은 이미 보여준 현 총무원장 스님이다. 역대 총무원장이 하지 못한 다양한 소통과 인내도 보여주었다. 여기까지다. 아무리 진정성을 앞세워 조계종을 잘 먹여 살리겠다고 해도 실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벼락같은 혁신의 모습이 부족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당선이후 벌인 다양한 수익사업들의 수치가 보여준다. 모든 것을 걸어야 새로운 길이 보이는 법이다. 총무원장 스님의 이런 모습도 확인하지 않는 불교시민사회가 더 안타깝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간단한다. 그동안의 장점인 진정성을 살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추상같은 혁신을 하던지, 선방스님들의 주장처럼 수임기구를 만들어 질서 있게 용퇴하는 방법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도 아쉽다면 황당한 꿈을 ‘목에가시’처럼 상상해보면 어떨까! 개그콘서트를 만들어 국민들을 위로하는 천재들이 나타나 네 가지를 만든다. 모든 종교계 지도자들 가운데 도박을 했거나 평신도들이 용납하기 힘든 부정행위를 했다면 스님, 신부님, 목사님 모두 나서서 ‘반성박람회’를 개최하게 평신도들이 나서는 것이다. 개그콘서트 '네가지‘처럼 같이 공감하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내실 있는 종교인들의 큰 반성의 울림이 평범한 종교인들의 다친 가슴을 치유할 수 있게 크게 웃고 우는 축제를 열어보는 상상이다. 밤새워 놀이문화, 친교라는 허울로 밤새워 화투, 포커를 했던 모든 종교지도자분들이 공명하고 화답해 주기를 말이다. 2010년 문수스님 입적 후 은둔에 든 수경스님. 평신도인 재가지도자, 불교시민사회 제 역할 못해 더 실망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처럼 불교계 시민단체의 지도자였고, 조계종을 대표하던 사찰의 주지를 맡았던 이가 도박사건에 연류된 것은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불교계 시민사회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나를 비롯해 더 반성해야 하는 재가불자 지도자들이 더 큰 문제다. 최근 몇 주 사이에 모두 현 총무원장에 의존하거나 눈치 보는 입장 말고는 들어보질 못했다. 폭로하는 사람들만을 비판하거나 비난한다. 불교계시민단체를 이끌어온 대표나 현직 활동가들은 ‘교단자정센터’에서 10여 년간 추진했던 종교자정 메뉴얼과 내부규정의 절차인 당사자 확인도 하지 않고, 구체적인 활동계획도 없이 관망만 하겠단다. 관망이란 회원들에게 향후 계획을 제시하는 예상지도에 따라 여지를 두고 지켜보는 방식이다. 교단자정센터의 내부적인 활동계획도 없이 관망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뿐만 아니라 대응시기를 놓쳐 종교계 시민사회 전체를 먹칠하거나 똥칠하는 일이다. 종교계 자정을 10여 년간 이끌어 왔던 평신도 재가불자조직이 활동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를 함께 했던 평신도 종교지도자 활동가들은 지금 당장 새로운 제안을 위한 모임을 주선해야 한다. 이게 마중물이고 품앗이, 두레이다. 모든 종교계 평신도, 지도자, 시민사회 함께 나서야 불교계 시민사회가 제대로 종교자정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같이 한다면, 광화문광장이나 시청마당, 큰 사찰에서 조직적이고 공개적인 반성운동이 이웃종교와 함께 기획되고 제안해야 한다. 교단을 개혁하려는 모든 양심적인 종교인들이 모여 만민 공청회를 열어 허물을 드러내길 바란다. 수경스님 등 선방스님들이 던진 ‘용퇴’를 재가불자 지도자들은 어떻게 화답할까! 뼈를 깎는 쇄신과 혁신으로 이어갈까, ‘네가지’를 만들까! 눈 밝고 지혜로운 평신도들의 지혜가 융합되길 지켜볼 일이다. 더 뜨거워져 통제 불가능한 여름이 오기 전에..
2017-07-12 | hrights | 조회: 309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 세금 퍼주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세 대륙에 걸친 오스만 터키라는 거대한 제국이 있었다. 모든 것의 발단은 제국이 끝내 이긴 크림전쟁이었다. 크림전쟁으로 국채를 발행했는데, 그 국채를 사들인 영국과 프랑스가 채권회수를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핑계는 제국의 조세제도도 못 믿겠고, 야만의 동양의 전제왕정국이라서 제국의 신용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수도 이스탄불에 직접 “공채관리국(Public Debt Administration)”을 세워 5,000명의 관리(직원?)를 고용하여 제국 전역에서 세금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세가 부족하게 되고, 그 때문에 국가재정이 다시 어려워지자 제국은 국채를 더 발행했다. 다시 이를 사들인 영국과 프랑스는 공채관리국을 통해 더 많은 제국의 세금을 빼앗아갔다. 그런 악순환이 30년, 40년 지속되자 제국은 서서히 망해갔다. 더 이상, 제국의 근대적 발전을 위한 투자는커녕, 자신의 고유 영역조차 방비할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지금의 터키반도와 이스탄불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차례차례 영국과 프랑스의 것이 되었다. 그렇게, 오스만 터키는 망했다. 국가재산 바치기 500년이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왕국이 있었다. 너무 길어서 아놀드 토인비 같은 서양학자는 비웃었지만 말이다. 그런 500년의 조선 왕이 어느 날 밤에 자신의 궁궐에서 일본 제국주의 용병과 그들의 앞잡이인 자신이 만든 최신식 군대에 의해 죽음에 내몰렸다. 그냥 공포가 아니라 그의 부인, 민자영은 그날 밤 침입자들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그날 이후, 죽음의 공포와 불신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그의 침상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 외국의 공사들과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이 있어야 편히 잠이 들었다. 급기야는 죽음의 공포를 피해 자신의 궁궐에서 도망쳐 외국 공관으로 도피하여 살았다. 이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명복, 즉 고종과 을미사변, 아관파천이란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데, 자신의 잠자리를 지킨 대가를 외국인들에게 주어야 했다. 국가의 주요 광산과 전기 같은 국책사업, 철도 같은 기간 교통망, 산림, 토지를 다 내주어야 했다. 잠자리를 제공한 러시아에게는 통 크게 가장 많이 내주었다. 친절한 미국에게는 운산의 금광과 경인선을 내주었다. 잠자리의 안전을 지킨 대가치고는 너무 큰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노다지’의 어원이 평안도 운산의 금광에서 노동하는 조선인 노동자에게 미국인 광산주가 “no touch!”라고 하는 야멸찬 멸시의 말이라고 한다. 심지어 광산주가 지역토지를 강탈하고 지역농민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대한제국”이고, “광무황제”라고 한다. 그리고 “광무개혁”을 해서 근대화를 하겠다고 떠들어 댔다. 물론, 당시에도 이 터무니없는 국가자산의 외국자본 침탈에 저항이 많았다. 조선 최초의 시민단체인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라는, 종로에서의 대중 집회를 열어 담당 대신들과 공개토론회를 여는 등 반대여론을 이끌었다. 하지만, 국가 자산을 헐값 또는 공짜로 외국 자본에게 퍼준 조선의 왕은 독립협회를 무력으로 해산시켰다. 그리고도 개혁을 한다고 꼴값을 떨었다. 하지만 국가 재산과 시민을 망가트리며 한 그 개혁은 필연적으로 실패했다. 그리고 망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강해서가 아니라 왕이 잘못해서 조선은 망했다. 맥쿼리와 민자사업 이번 기고의 시작을 두 나라의 망국으로 한 것은 요즘, 같은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건이 있어서이다. 맥쿼리와 소위 민자사업 문제이다. 지하철 9호선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50% 고율의 요금인상 문제로 시끄러워지며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더욱 가관인 것인 서울시가 만류함에도 막무가내로 강행하겠다고 나서니 그 배경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의 공공재인 지하철 그리고 그것을 운영하는 민간회사와의 부조화와 파열음에는 “맥쿼리”라는 호주의 투자은행, 투기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맥쿼리는 한국에 진출해, 2002년 12월에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Macquarie Korea Infrastructure Fund, MKIF) 또는 약칭 맥쿼리 코리아를 설립했다. 아시아 최대 상장 인프라 펀드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민간투자법에서 허용하는 대한민국의 인프라 자산에 투자를 하는 회사다. 문제는 이들의 수익구조에 있다. 맥쿼리는 서울메트로 9호선(주)에 투자해서 대주주가 된 뒤 그 회사에 고금리 대출을 했고, 수익구조가 악화돼도 정부 보조금으로 그 수익을 보전하게 되어있다.(최소운영수입보장제(MRG)) 서울도시철도 9호선에 연간 영업손실이 26억 원에 불과하지만 맥쿼리 등 채권자에 물어주는 이자는 461억 원이나 된다. 그뿐이 아니다. 국가 재정으로 수익을 내는 것에 만족을 못하는 맥쿼리나 서울도시철도 9호선을 운영하는 여타 자본들은 이용료를 시민들에게 직접 받고 있다. 그것이 이번 고율요금 인상이다. 또, 같은 방식으로 민간자본이 운영하는 고가의 유료도로마다 시민들 원성이 자자한 것이다. 맥쿼리는 전국 8도 주요 14개 교통망 사업에 1조7000억 원을 투자했는데 작년에만 1,628억 원의 이자수익을 올렸다. 앞으로도 짧게는 24년에서 길게는 30년을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퍼주어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고가의 이용 요금을 직접 걷고 있다. 이 때문에 이용하는 시민들과 곳곳에서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현재의 민자사업이 가지는 자체의 문제가 있고, 둘째, 투기자본으로서의 맥쿼리 자본의 문제, 셋째, 경제관료, 김앤장 법 등 전문가 집단과 관련된 부패의 문제가 있다. 특히, 맥쿼리 코리아의 이사인 김앤장 출신의 조대현, 세계은행 출신의 송경순, 임대형 민자사업 제도(BTL)를 도입한 경제관료 출신의 윤대희. 이 3인의 역할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해법 국가의 인프라 건설과 유지는 국가 스스로 세금으로 해야 옳다. 꼭 필요하다면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 지금같이 민간자본, 그것도 외국계 투기자본에게 내맡긴다면, 재정낭비, 세금 퍼주기를 계속 하면, 그 폐해는 상상이상으로 크다. 위에서 거론한 오스만 터키나 조선같이 망국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피해는 다수 시민들이 짊어져야하므로 부당한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민자사업 방식에 대한 폐기 또는 전면적 개혁, 투기자본 맥쿼리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필요하다. 또, 전관예우와 회전문인사로 연결된 전현직 경제관료들의 투기자본과의 결탁 의혹도 규명이 필요하며, 재발방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9 | 추천: 0
김현진/ 자유기고가 오원춘 사건은 물론 끔찍하고 무섭다. 게다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가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다 변을 당한 젊은 비정규직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경찰의 무능력이 한참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외국에 다녀온 사람들은 한국의 치안 수준은 세계적인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는 외국에 나가 본 적이 없으나 범죄자 검거율이 높다는 통계를 봤으므로 그 말이 맞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검거율에 기여하는 것은 CCTV 설치나 전 국민이 필수적으로 지문을 국가에 등록해야 하는, 국민을 감시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발상에 큰 몫이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가 안전하다고 좋아하기에는 찜찜한 점이다. 최근 이자스민씨가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는 등 이른바 ‘다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 대부분 혐오로 불탄다. 다문화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단문화일까? 주부들이 주로 방문하는 대형 커뮤니티에는 정부의 다문화 정책 반대에 서명해 달라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도 실업 때문에 고통받는데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이 일할 자리를 다 빼앗아 버린다는 주장이 가장 흔하고 그 다음으로는 안산이나 가리봉 등 거리 분위기를 외국인들이 다 망친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기 전에는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는데, 외국인 노동자가 신고제라니 일하고 싶은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모양새는 아닌 셈이다. 즉, 외국인이 꾸역꾸역 입국해서 일자리를 선점해 일하고 싶은 한국인에게서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가 일할 내국인이 없으니 이만큼의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합니다, 라고 국가에 신청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내가 태어나서 먹어 본 것 중 가장 황홀한 중국음식은 가리봉동 <미미식당>의 음식이었다. 한국어가 씌어 있는 메뉴판도 없었다. 어쨌거나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면서 이런 장점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이런 말을 할라치면 너나, 네 가족이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이 바로 돌아온다. 물론 내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은 망가질 것이고, 아마 나는 가해자를 평생 미워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 혹은 조선족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라는 종을 미워할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마음 먹으면 여자 하나 죽이는 건 쉬운 사회다. 특히 보호자 없는 젊은 여성 하나 죽이는 건 쉽다. 그러니 <살인의 추억> 같은 사건이 아직 미제로 남았을 것이다. 여자 뿐 아니라 아이도 그렇다. 한국 사회가 더욱 강퍅해지면서 힘센 놈이 마음만 먹으면 저보다 약한 것 짓밟는 것이 점점 쉬워진다. 사회의 정글화가 심화된다. 얼마 전에도 성폭행당한 후 가해자를 신고했다가 신원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아 앙심을 품은 가해자에게 피해 여성이 결국 살해당했다. 남자친구의 힘을 빌려 염산 테러를 한 사건도 그렇다. 십대들도 토막 살인 후 땅에 묻었다. 남자와 여자 구도로 갈라서 보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부자와 빈자뿐 아니라 강자와 약자간의 거리 역시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 경기도 안산 중앙역 앞에 서 있는 수코초(인도네시아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 젖어들고 싶어 하지만 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 때문에 한국 사람들로 붐비는 번화가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이런 사회일수록 증오범죄가 늘어난다는 것은 상식이다. 오원춘은 경제적으로는 약자였지만 완력으로는 강자였으므로, 그가 광적인 증오를 표출하고자 했을 때 노동에 지쳐 집으로 돌아가는 젊은 여성은 간단히 희생되었다. 경찰은 그 여성을 구해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의 경우에도 통계상 살해당한 여성의 대다수가 현재, 혹은 과거의 파트너에 의해 희생당했다고 한다. 점점 약한 사람이 희생당하기 쉬워지는 나라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려면, 밟기 쉬워지는 나라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려면 우리 사회 구조에 대해 처음부터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은 아주 귀찮고 성가신 일이다. 대신에 조선족이 문제야! 중국 놈이 문제야! 라고 말해 버리는 것은 쉽고 간단하다. 오원춘 사건은 그가 미친놈이었기 때문이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한국인이었다고 해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습게도, 외국인 노동자는 무섭고 혐오스러운 존재지만 영어 학원의 백인 강사들은 무섭지 않다. 그들도 외국인 노동자가 틀림없지만, 젊은 층이 주로 하는 ‘랭귀지 익스체인지’에서 백인들은 어떤 동네에서 왔든 인기 만점이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도 프랑스인 제빵사가 손수 빵을 굽는다고 소문이 난 서래마을은 누구나 가고 싶어한다. 한국에 살고 있는 영어권의 백인이라면 설사 그가 불법체류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다들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된 적이 있는 이태원 역시 여전히 인기다. 서래마을과 이태원은 좋지만 가리봉과 안산은 싫은 것이다. 최근 어느 광역시를 방문했다가 침체되어가는 상가를 살리기 위한 시의 계획이 실린 팸플릿을 읽었다. ‘영어마을’을 모델로 한 것 같은 ‘영어상점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카페나 식당, 옷이나 액세서리 가게 등 여러 가지 상점을 유치하되 모든 점원을 원어민으로 고용하겠다는 내용이 그 팸플릿에서 가장 큰 글씨로 씌어 있었다. 아마 그들이 말하는 영어에 능한 원어민이란, 절대로 영어를 모국어로 쓴 필리핀은 아닐 것이다. 아까 가 본 대형 커뮤니티에서 어떤 사람들은 요즘 조선족 가정부들이 서로 담합해서 휴일을 요구하고 임금을 올리자고 한다며 무조건 가정부 여권을 주인이 틀어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는 사장들이 풀어 줘서 그렇다, 무섭게 할 때는 찍 소리도 못하던 것들이 인권센터(아마 그들 생각에 인권연대 같은 곳은 아마 '주적'일 것이다) 같은 인권팔이(그들의 표현이다)가 끼면서 제 세상인 듯 날뛴다는 의견도 흔했다. 결국 차마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아,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구나. 불과 몇십 년 전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중동 지역에 노동자로 떠났던 한국인들도 외국인 노동자였건만 그새 우리나라가 참 잘살게 되긴 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게 꼭 좋은 일 같지만은 않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55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