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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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길주희(인권연대 연구원),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라영(문화평론가), 이승은(행정사),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약 2달에 걸친 이스라엘의 공습과 폭격이 중단되었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무기한 휴전이라고 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지냈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의해 좌지우지될 휴전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하기만 합니다. 지난 6월 8일, 3개월간의 안식월을 보내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향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제연대활동을 시작했을 때의 초심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지요. 팔레스타인에 도착하여 짐 정리도 마무리 못했던 6월 12일,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민 불법정착촌 3명이 납치되었다고 발표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와 마을을 공격하였습니다. 매일 밤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과 국경수비대원들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전역의 마을에 난입하여 무차별적으로 집에 쳐들어가서 사람들을 위협하고, 가구를 부수고, 돈을 몰수하며 저항하는 사람들을 구타하고 체포하였습니다. 체포이후에도 어디에 수감되어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기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납치된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지요. 이러한 반인권적이고 무법천지의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지프차나 장갑차에 돌을 던지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군인들은 최루탄 또는 고무탄, 때때로 실탄을 발포하였고, 이로 인해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그렇게 20여일이 지나서 납치된 3명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자 이스라엘은 가장 먼저 납치된 지역 인근의 마을에 쳐들어가서 하마스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집 2채를 날려버리고 수십 명을 체포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바처럼 가자지구를 51일 동안 공습하고 포탄을 쏟아 부었습니다. 가자지구는 가로 40킬로미터, 세로 5~10킬로미터 크기로, 전체 인구가 180만 명으로 세계적으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며, 도시 전체가 10미터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있고, 콘크리트 벽으로부터 500미터 이내의 지역은 출입통제구역으로 무단으로 들어가면 이스라엘 군인이 발포하는 끔직한 구역입니다. 또한 가자지구로 출입할 수 있는 통로는 고작 3군데에 불과하고 이 역시 이스라엘에 의해 출입이 통제되며, 2달간의 공습기간에 이 곳을 막아버려서 가자지구의 사람들은 피난을 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 이스라엘은 51일 동안 수천발의 미사일과 포탄을 쏟아 부었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인권단체인 PCHR(Palestine Center for Human Rights)에 따르면 2달간의 이스라엘 군사행동으로 가자지구에서만 2,168명이 사망하였고(이중 519명은 아이들이고 297명은 여성이었음), 10,895명이 부상당했고, 수천채의 가옥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공중 폭격으로 부서진 가자지구 건물 사진 출처 - ISM 팔레스타인에서 체류했던 5주 동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반인권, 전쟁범죄 앞에 무엇이라도 해야 했기에 원래의 계획을 접고 팔레스타인 내에서 활동하는 인권단체에서 자원 활동을 지원하였습니다. 돌을 던지며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사람 옆에서 그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서 체포되거나 희생되지 않게 하는 활동, 이스라엘 정착민과 군인들에 의한 직접 피해를 당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에 함께 있었고, 또한 피해를 받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외부에 알리는 활동 등을 하였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만난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통해서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가족 중 1~2명은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희생당했고, 수 명이 현재 감옥에 복역 중이거나 수감생활을 한 적이 있다는 나라 전체차원의 공통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수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점령 전쟁에 저항하며 지내왔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외부 사람들은 이 지역에서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혼동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테러를 저지르고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최소한의 수준으로 군사대응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의 주요한 언론이 사실과 진실에 부합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번 가지지구 침공을 통해 더욱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이 자꾸 현재의 상황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전쟁 또는 분쟁으로 묘사를 하는데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마치 양측이 어느 정도 대등한 위치 또는 수위의 군사력이 있고, 이 비극의 책임이 쌍방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하게 생각하게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았던 모습은 언론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이거나 적어도 이 비극을 만들고 유지하며 확대하는 쪽은 쌍방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한 휴전선언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보여주었던 사진과 뉴스는 점차 사라져 가고, 더불어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서서히 희미해져 갈 것입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 아직 평화는 오지 않았고, 2천명이 넘는 사망자와 만 명 이상의 부상자, 그리고 그 수배에 달하는 사상자들의 가족들은 그 슬픔을 치유할 새도 없이 여전히 이스라엘 총구 아래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점령 종식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바라는 것은 허무한 주장입니다.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살고 있던 땅에서 쫓겨난 채 자신들 앞마당에 어느 날 폭탄이 떨어져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치부 받는 이 현실 속에서 5주 동안 짧게 보았던 것은 그 곳에서 여전히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싸우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저항과 그들의 의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점령이 끝나는 그날까지 저항하며 싸울 것입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75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   변양호라는 사람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 때는 총망 받던 금융관료였고, 얼마 전까지는 금융시장에서 큰 손으로 활약을 했던 사람이다. 1954년생이니, 올해로 60 갑자를 산 사람이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미국 노던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가 되어 귀국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모두 밟을 정도로 학벌이 무척 높다. 그리고, 관운도 좋았다. 행정고시 19회를 수석으로 합격하였고, 재경부에서 금융관료로서 승승장구 했다. 이른바, ‘모피아’ - 금융 마피아의 일원이다. 그보다, 그의 선배 모피아 중에 유명한 이헌재에 대해 알아야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헌재는 70년 전 중국 상해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울대를 나와 미국 유학을 했고, 1968년도에는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 후, 재경부 모피아로서 승승장구하여 재정경제부 장관을 2번, 부총리를 1번,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2번 역임했다. 관운이 참 좋은 자이다. 그러다 보니, 그를 따르는 모피아 관료집단이 있는데, 이른바 ‘이헌재 사단’이라고 한다. 그와 그의 집단이 유명한 것은 IMF사태를 당한 한국에서 기업의 구조조정과 해외 매각, 금융자유화, 그에 따른 정리해고 등을 그들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금융·투기자본의 본거지인 미국 월스트리트에서는 환호했고, IMF의 관료들이 당시 남긴 보고서에는 ‘김대중 정권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경제개방, 재벌개혁, 해외매각 등을 매우 잘 한다’라는 칭찬이 남았다. 이헌재는 IMF사태 당시 김대중 정권이 신설한 ‘금융감독위원회’ 초대 위원장이었다. 얼마 전, 귀국한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당시 대우자동차, 대우전자 등의 해외매각과 “국부유출”을 거론하며, 이헌재 사단과 당시 김대중 정권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헌재는 인기 많은 정치인 안철수의 “멘토”로 소개되는 등 여전히 살아 있다. 아무튼, 당시 정권이 한 악행은 역사에 뚜렷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어서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그의 동지들이 ‘무식’해서,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모피아 관료집단’에게 속아서 이런 짓들을 했다는, 얼토당토 않는 평가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자 한다. 그것은 마치 왕조시대에 “왕은 천성적으로 좋은 성품을 지니셨지만, 주변의 ‘간신들’ 때문에 ‘혼군’이 되었다”는 말처럼, 웃기는 소리일 뿐 이다. 그들의 정치 -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 이미 친연성을 가진 상태에서, 자본주의의 세계적 동향에 대한 고급 정보를 가진 관료들, 학자들에게 쉽게 동화되어서 한국의 국부를 금융·투기자본에게 헐값으로 팔아넘긴 것이다. 이것이 소위, “민주정부”에 대한 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헌재 사단의 총아가 바로 변양호였다. 관료들의 익명성을 넘어 그가 언론과 세상에 노출된 것은 ‘론스타게이트’사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드러나면서 부터이다. 2003년 당시 변양호는 시중 은행을 관리감독 하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었다. 실무적으로 그가 주도하여 투기자본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불법적으로 매각을 한 것이다.(참고로, 당시 김진표 재경부 장관-이후, 새정치연합소속의원-은 검찰조사만 받고 풀려나 그의 뒷선은 의혹이 여전히 남는다.) 2006년, 검찰이 그를 기소한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실은행이 아닌 외환은행을 법에도 없는 “예외승인”을 하여 ‘사모펀드’인 론스타에게 매각한 것, 그 과정에서 외환은행 회계(BIS비율) 조작, 인수가에서 특혜 등등에 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론스타로부터 뇌물수수를 한 혐의이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관료의 정책결정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론스타 측의 뇌물을 전달한 하종선 변호사(현대해상 전 회장)가 구체적으로 자신의 범죄사실을 법정 진술했음에도 “수뢰 당사자가 뇌물로 생각하지 않으면 뇌물이 아니다”식으로 무죄판결이 났다. 생각할수록 웃기는 대법원 판사들이다. 나는 당시 론스타게이트 사건 재판을 참관하면서 그를 처음 보았다. 그때 받은 두 가지 인상은 지금도 내게 강하게 남아있다. 단언컨대, 그는 ‘확신범’이다. 자신이 외환은행을 불법적으로 투기자본 론스타에게 매각을 하여 천문학적인 “국부유출”이 일어났고, 은행공공성이 무너지고 노동자와 시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그는 그것이 올바른 정책결정이었다고 재판 내내 주장했다. 최후 진술에서도 당시 발생한 ‘남대문 화재’ 사건을 예로 들며, 자신이 선제적으로 외환은행을 해외매각을 하여 한국경제 전반으로 번질 불안정성을 잠재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시민단체(내가 일하는 투기자본감시센터를 의미하는 듯)에 의해 고발당해서 억울한 구속과 재판을 받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중국 드라마 ‘강호풍운정’에서 명나라 신종의 의심으로 죽은 명장이며 충신인 원숭환(袁崇煥)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했다. 훗날, 자서전 『변양호 신드롬-긴급체포로 만난 하나님』에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 했다. 되돌아보면, 참 가소로운 소리이다. 내가 보기에는 변양호의 일생은 같은 시기를 산 오삼계(吳三桂)와 오히려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오삼계는 젊은 나이에 황제의 신임을 얻어 대치중인 청나라와의 최전선인 산해관 수문장이 되었지만, 청나라의 앞잡이가 되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관문을 열고 청나라 군대를 맞이하고 “대명천지(大明天地)”를 청나라에 바치며 출세했고, 평서왕(平西王)에 올라 운남성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청나라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망하고 자살했다. 변양호에 대한 또 다른 인상은 그에 대한 후배 모피아들의 존경심이 엄청 크다는 것이다. 그의 뇌물수수 재판에서 안 사실이 있다. 그의 생일이 7월 30일인데, 해마다 매년(!), 그의 생일날에는 재정경제부 후배 모피아들이 주축이 되어 생일잔치가 열린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의 학교 동기동창 변호사들도 초대되어 온다고 한다. 뇌물을 전달한 하종선도 손님이고, 변양호를 변호하는 변호사들도 손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생일잔칫날에 변양호가 소위 ‘스폰서(sponsor)’ 노릇을 해준다는 여가수가 등장을 했다.(이때, 나는 연예인 X파일이 대부분 진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당일, 그 여가수의 옷값으로 쓰라고 수백만 원짜리 수표를 하종선이 변양호에게 줬는데, 그 수표를 가지고 여가수는 실제로 옷을 샀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변양호를 위해 증언석에 앉은 후배, 현직 모피아는 검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순수한’ 스폰서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아마도, 법정에서 재판참관 중이던 변양호의 아내와 딸에게서 선배 변양호를 변호하고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표현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변양호의 인격에 흠집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후배 모피아의 태도와 그런 모피아들이 현직을 떠난 지 꽤 된 선배 모피아를 위해 매년 잊지 않고 그의 생일잔치에 모인다는 그들 패거리 내의 갸륵한 ‘의리’를 난 보았다. 아마도, 같은 생일잔치는 지금도 열리고 있을 것이다. 변양호가 모피아로서 관료사회는 물론, 우리사회에 남긴 것 중에는 “변양호 신드롬”이란 말이 있다. 이 조어는 중앙일보에서 처음 생산해낸 것인데, 변양호 이후 세상의 비난이 두려운 관료들이 소신 있는 정책결정을 못한다는 의미란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인허가권을 가진 고위 관료가 권한을 사용하지 않아 자본이 시장에서 수익을 남기지 못했다는 의미, 고수익의 기회를 놓친 소수의 자본, 금융·투기자본들이 내는 안타깝다는 목소리일 것이다. 이런 유치한 조어가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 조어가 주요 시사용어라고 해서 언론과 기업 등에서 입사 문제로 출제된다는 소문을 들고 아연실색 한 적이 있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변양호는 2005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을 끝으로 잘 나가던 관료의 길을 접고, 같은 9월 2일 ‘보고 펀드’라는 사모펀드를 설립, 금융감독위원회에 등록을 했다. 바로 이 때문에 후배 모피아들은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된 것이다. 보고 펀드의 출자금은 대부분 자신의 현직 모피아 시절 관리감독을 하던 시중은행에서 받은 것이다. 당시 외환은행의 경우, 그에게 은혜를 입은 론스타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400억 원을 출자했다. 이 때문에 “사후 뇌물”이라고 검찰 고발을 한 바도 있다. 거기에 실제 수익률은 형편이 없음에도 고가의 수수료를 은행들은 매년 그에게 바쳤다. 여전히 ‘갑-을 관계’인 것이다. 또한, 한국의 자유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언론은 이 보고 펀드에 대해 우호적인 보도를 쏟아냈었다. 론스타 등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의 금융기관과 기업을 지키면서, 고수익도 내게 되었다고 호평을 한 것이다. 보고 펀드의 “보고”도 신라 말 해상왕 장보고(張保皐)에서 따온 것이라니, 얼마나 좋은 것이냐는 것이다. 이른바, 투기자본에 맞서는 ‘토종 펀드’라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고수익을 내기 위해 생산과 고용을 파괴하고, 납세조차 회피하는 사모펀드의 본질을 왜곡하는 보도일 뿐이다. 도둑놈, 강도도 외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면 다 좋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만들어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보고 펀드가 드디어 망했다. 2006년 동양생명보험, 노비타, 2007년 아이리버, LG실트론, 2009년 비씨카드, 2011년 한국 버거킹을 운영하는 BKR, 2013년 미국 셰일오일과 가스를 생산하는 아나다코, DSLR용 카메라의 교환렌즈를 생산하는 삼양옵틱스 등에 대해 공격적인 투자를 했었다. 또한, 설립 파트너로 리먼 브라더스의 전 한국 대표 이재우, 모건 스탠리 한국지사 신재하, 2010년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박병무를 불러 모았는데, 모두가 투기자본 먹튀에 조력한 한국인들이다. 그런데, LG실트론 등에서 수 조 원의 투자실패가 발생했다. 그리고, 투자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변양호가 최근 보고펀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천년만년 흥청망청 할 수 는 없는 법이다. 보고펀드의 존립도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에게 출자한 시중은행들은 엄청난 손해를 입었음에도, 그의 투자실패에 대해 책임을 묻는 그 어떤 법적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불만의 소리조차 없다. 오히려, 그를 찬양했던 언론은 변양호와 그가 만든 국내 1호 토종펀드가 실패했지만 사모펀드 전성시대가 저문 것은 아니라고, 열심히 “쉴드(shield)”를 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애쓴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모피아의 총아, 변양호의 성장, 출세, 위기, 도약, 그리고 몰락을 내가 아는 바대로 짧게나마 정리해 보았다. 그는 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시대를 살다간 전형적인 엘리트 모피아였다. 그의 극적인 몰락을 보며, 이 시대는 소멸해 가고 있고, 이 시대의 전형도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마치, 빚더미 호화주택 풀장에서 오지 않는 옛 애인의 전화를 전전긍긍 기다리다 복수의 총탄으로 허무하게 죽어간 영화 속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아직도 사라진 그 전형을 그리워하며, 헛된 꿈을 꾸고 있는 후배 모피아들, 그들의 동료들 - 자유주의 정치인, 금융자본을 대리하는 교수, 기자, 변호사, 온갖 사이비 전문가 등등은 아직 많이 있다고 보인다. 여전히 “사모펀드 활성화”야 말로 위기의 한국경제를 구원할 것이라고 떠들고 있다. 이제, 곧 가을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가을이다. 더는, 끼리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까불며 세상을 농락하지 말고, 부디 자숙하기 바랄 뿐이다. 더는 과거가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941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기자 군대. 보통의 삶에서 군대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조금 껄끄러운 일이다. 내 주변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거의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이 군대를 경험했기 때문에, 군대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하면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수년이 지났어도 군대에서 경험한 일들을 무용담(?)처럼 얘기하거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 그랬다. 나는 군대가 싫었다. 지금도 그렇다. 어렸을 때 주입 당했던 것처럼 ‘군인 아저씨’들이 나라를 지켜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같이 버튼 하나로 도시 전체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시대에 매년 팔팔한 청춘들로 군대 내 머릿수를 채운다 한들 국방이 더 튼튼해진다고 믿지 않는다. ‘군대를 다녀와야 진정한 남자가 된다’는 말은 결국 자기 위안과 합리화일 뿐이다. 나는 대한민국 모든 남자가 군대에 감으로써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징병제와 모병제에 관한 것은 여기에선 차치하도록 하자. 오로지 군대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 곳곳에 군대 문화가 스며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지독한 위계와 토론 아닌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그렇다. 다수가 소수를 짓밟고, 다양성 보다는 획일을 강조하고,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전형적인 집단이 군대다. (생물학적 구분으로) 남과 여를 반반으로 본다면, 인구의 절반이 군대를 경험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회에 군대 문화가 퍼질 수밖에 없다. 특히 군대는 효율적이고 손쉬운 방법으로 사람을 통제할 수 있어, 대부분의 조직에 군대 문화가 스며 있다. 나는 군대를 직접 경험한 바 없지만, 사람들이 군대와 비슷한 문화를 경험하는 건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땐 당연하게 여겼는데, 조회시간마다 운동장에 아이들을 전후좌우로 일렬로 세워놓고 앞으로 나란히, 좌우로 나란히를 시켰는지 모르겠다. 반듯하게 줄을 잘 서야만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요즘 학교도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차렷, 경례, 뒤로 돌아, 좌로 한발, 우로 한발, 앞으로 가’와 같은 통제의 언어와, 엎드려뻗쳐, 선착순 달리기 등 아무런 상황 설정을 두지 않는다면, 이게 학교의 모습인지, 군대의 모습인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선배와 후배 사이도 그랬다. 나는 여고 출신인데 동아리 활동을 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선배들의 ‘쪼임’에 시달려야 했다. ‘왜 90도로 인사를 하지 않느냐’부터 시작해서 별의 별 것으로 후배들을 쪼아대는 선배들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선배들이 혼낼 땐 절대 선배의 눈을 쳐다봐서는 안 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야만 했다. 더 큰 문제였던 건, 그렇게 선배에 대한 불만과 분노 속에 1학년을 보낸 아이들이 2학년이 돼서 신입생에게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언어)폭력과 정신적 스트레스의 대물림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해마다 이어졌다. 군대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여고생들이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문화를 그렇게 체득해 갔다. 전남 화순군 북면 금호리조트 옆 빈 공터에서 광주·전남지역 대학 신입생들이 선배들로부터 팔굽혀펴기, 귀잡고 뜀뛰기 같은 얼차려를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대학에 입학하니 MT때마다 남학생들은 선배들 앞에서 엎드려뻗쳐와 같은 얼차려를 받았다. 내가 속한 학과의 경우 그나마 여학생들은 얼차려에서 제외됐는데, 갓 입학한 남학생들은 군대를 다녀온 선배들로부터 ‘이 새끼’ 소리부터 들어야 했다. 학생들은 얼차려 때문에 뉴스에 나온 다른 학생들을 그저 운이 없는 ‘놈’들 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많은 대학에서 해마다, 지속적이고 보편적으로 얼차려가 행해졌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남자들 사이에선 나이에 따라, 직급에 따라 어딘지 모를 불편한 문화가 자꾸만 눈에 띈다. ‘윤 일병 사건’으로 다시 군대를 생각한다. 나는 윤 일병을 악마처럼 괴롭힌 이 병장과 가해자들이 윤 일병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병장은 또 다른 윤 일병이다. 윤 일병이 그 ‘군대 문화’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살아남았다면, 그는 또 다른 이 병장이 됐을지도 모른다. 군대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인구의 절반이 군대를 가고 수개월 동안 폭력적인 문화를 체득해야 한다면, 이는 고스란히 사회 곳곳에 이식될 수밖에 없다. 군대 문화의 폭력성은 계속해서 대물림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결국 체제에 순응하면서 익숙한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윤 일병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난 한조각의 비참한 단면이다. 군대 체제가 변하든지, 군대의 문화가 변하든지, 혹은 한국 사회가 변하든지, 악순환을 끊기 위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2
2017-07-12 | hrights | 조회: 589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최근 결혼 선물로 받은 카세트 플레이어 덕분에 10년도 더 된 카세트 테잎를 꺼내 들었다. 대학교 때 선배가 선물로 만들어준 것이었다. 주로 저항 시인들이 쓴 시를 가사로 붙여 만든 곡들이 이 안에 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소리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 가수 안치환의 목소리로 부른 김남주 시인의 <자유>가 나오자 같이 듣던 누군가가 지금의 상황과 너무 흡사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적극 공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얘기다. 새정치연합은 공천 파행을 거듭하다 7·30 재보선에서 대패하더니 최근에는 껍데기뿐인 세월호 특별법에 덜컥 합의했다. 유가족들은 순식간에 뒤통수를 맞았고 이를 지켜보던 야당 지지자들도 등을 돌렸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호남에서조차 30%대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여러 가지 진단이 나온다. 당내 계파싸움이 원인이라거나, 야당으로서의 선명성을 드러내지 못했다거나, 거꾸로 너무 반대만 하는 모습을 보였다거나….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정답은 김남주 시인의 시 안에 들어 있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130명의 새정치연합 의원들, 그들이 문제다.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마련된 세월호 유가족 단식농성장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정치권 안팎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얘기가 있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정권교체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골치 아픈 여당보다는 여러모로 야당이 의정생활을 하기에 편하고, 정권을 획득하지 못 하더라도 어차피 지역을 기반으로 한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참 어이가 없다. 7·30 재보선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전남 순천·곡성 지역에서 당선된 것은 지역민들이 새정치연합의 이런 인식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들만 모르고 있다.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그들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어느샌가 권력에 안주하고 변화를 두려워하기 시작한 새정치연합은 스스로 보수가 됐다. 그들이 이제껏 내세웠던 ‘혁신’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국민들이 내린 평가다. 새정치연합은 큰 선거에서 패할 때마다 혁신보고서를 작성해왔는데 벌써 4개나 있다. 그때마다 반복해서 했던 말은 ‘뼈를 깎는 쇄신’이다. 이제 새정치연합에는 ‘그때마다 뼈를 깎았으면 지금쯤 이쑤시개가 됐을 것’이라는 비웃음만 남아 있다. 이제 어찌해야 할까. 기득권 지키기가 문제였다면 해결책은 단순하다. 기득권을 내려놓으면 된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이 바로 선거제도 개편이다. 이 시점에서 새정치연합이 추구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에는 “보편적 복지를 통한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돼 있다. 이들의 최종 목표가 복지국가라면 다른 선진 복지국가들이 어떻게 이를 실현해왔는지를 봐야 한다. 특히 이들의 정치제도에 집중해서 본다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이들 모두가 비례대표제와 다당제, 그리고 연립정부 형태의 권력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최태욱, <‘경쟁력을 위한 사회합의주의’ 발전의 정치제도 조건>) 이러한 공통점은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핵심요소가 노·사·정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합의주의’라는데 기초한다. ‘사회적합의주의’는 우리나라와 같은 양당제보다는 다당제에서 실현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양당제의 경우 승자 독식이라는 구조 때문에 ‘합의’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일단 선거에서 승리한 쪽이 장관을 비롯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지지 기반이 되는 특정 계층만 대변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새누리당이 바로 그렇다. 반면, 다당제의 경우 특정 정치세력이 권력을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각각의 정치세력들간의 합의가 중요해진다. 자연히 ‘사회합의주의’를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 새정치연합 스스로도 이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새정치연합 출범 직후 만들어진 ‘새정치비전위원회’는 <국민을 위한 새정치>라는 보고서에 “지금까지 우리의 정당체제는 지역기반 양대 정당의 독과점체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체제에서는 정당이 민주적 시장경제와 복지국가 건설 같은 전국적 개혁 이슈에 혼신의 힘을 다해 매진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양당제의 폐해를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해결책도 제시했다.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크게 높여야 한다. 그래서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지금의 독과점적 정당체제를 타파하고 민의 반영이 충분히 이뤄지는, 즉 다양한 사회 경제적 이해관계를 포괄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정당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새정치연합은 이러한 가치를 ‘지향’은 하지만 ‘실행’은 하고 있지 않다.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고 지역주의를 타파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새정치연합의 분열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도 한계가 왔다. 이제는 놓을 때다.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명량>이 최단기간 1000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순신은 ‘필사즉생 필생즉사(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것이 지금 새정치연합에 가장 필요한 정신이 아닐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494 | 추천: 0
전국완/ 중학교 교사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도 벌써 넉 달이 되어 가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개조', '적폐 척결' 등의 어마어마한 용어를 써 가며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확실히 달라져야 하고 달라지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무엇 하나 미더운 게 없다. 진상조사도, 특별법 제정도 그들의 정치적 계산 앞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7.30 보궐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이제는 경제를 살리자’며 노골적으로 손을 털고 있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노숙자’ 운운하며 비난하는 여당의원들의 뻔뻔함에도 치가 떨리지만, 선거참패로 특별법 제정은커녕 자신들 코가 석자인 야당의 지리멸렬에 더 절망스럽다. 살아가는 이유였을 자식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 가슴이 찢어지고 피가 끓었을 유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재발방지를 위해 엄정한 진상규명과 이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일이 정치인들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모든 방송에서 클로우즈업해 보여주었던 ‘대통령의 눈물’. 그는 화면 속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주르르 눈물을 흘렸고, 우리는 그 눈물에서 희망을 가져보려 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다. 100일이 넘도록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절규하는 그들을 어쩌면 이리도 철저하게 외면할 수 있는지……. 세월호 사건 100일 째 있었던 추모제가 끝나고, 행진을 시도했던 유족들의 절절한 요구에 정부당국은 수백 대의 경찰차와 병력으로 응대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겠지만, 끊이지 않고 터지는 군 내 폭행사건을 처리하는 군 당국의 태도도 똑같다. 사건이 터지면 진상조사보다는 은폐하기에 급급하고, 은폐에 실패하면 뒤늦게 찔끔찔끔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하고,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고 사건은 또 터지고……. 사건의 진상규명과 실질적인 재발방지보다는 숨길 때까지 숨겼다가 시간을 끌고 사람들의 건망증을 이용해 차고앉은 자리를 보전하는 게 먼저인 것이다. 실질적으로 개선된 것은 없는데, 자고 일어나면 뻥뻥 터지는 대형 사고들 덕에 많은 사람들이 이제 웬만한 인명사고에는 눈 하나 깜박 안 하는 담대함(?)을 가지게 된 건 아닌지 싶다. 이런 담대함과 건망증이 아니고서는 이 사회에서 살아내기가 어려울 테니 말이다. 어처구니없는 사건과 사고들이 줄을 잇고, 제대로 된 해결도 대책도 무망하다면 정치는 왜 필요한 건지, 피같은 세금은 왜 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몇 해 전 모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의 대사가 떠오른다. 현실 속에서 “정치란 정당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것, 정 떨어지고 치 떨리는 것, 정기적으로 치사한 짓 하는 것, 정 줄만 하면 뒤통수치는 것, 정상인은 없고 치기배만 가득한 것, …… 정리하면 정마담 치마폭보다 더 구린 것.”이란다. 지난 7월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가 열린 서울 시청광장에서 가수 김장훈씨가 이보미양이 생전에 남겨놓은 영상과 함께 <거위의 꿈>을 부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세월호 사건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기는커녕 한쪽에선 ‘보상금’ 들먹이며 ‘시체장사’로 폄훼하고 있고, 정부와 여당은 이런 분위기를 나서서 조장하고 있다. 특별법 타령은 그만하고 보상금이나 챙겨서 꺼지라는 투다. 이제 그만 경제를 살려야한다는 거다. 도대체 누구의 경제를 살리려는 건가? 정치가 이런 것이고, 정치인들이 이런 족속들이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권력을 주어선 안 되 는 거였다. 그들이 ‘국민’을 내세워 사욕을 채우고 우리 위에 군림하도록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눈곱만큼의 진정성도 없는 자들이 거짓시늉으로 권력을 휘두르게 놔둬서는 안 되는 거였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고, 정치가란 작자들도 원래 그런 거라고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세월호 100일 째에 진행된 문화제에서 고인이 된 이보미양은 가수 김장훈씨와 함께 ‘거위의 꿈’을 듀엣으로 불렀다. 영상 속에서 노래하는 딸아이를 바라보며 실신할 듯이 절규했던 어머니의 모습에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20일이 넘도록 단식을 끝내지 못하는 세월호 유족의 모습을 외면하지 못하고, 함께 단식에 참여한 가수 김장훈씨를 보며 우리 정치가 저버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 기대고 지탱해 주어야 살아갈 수 있기에 ‘人’일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드라마 속 주인공이 바라는 정치는 이런 것이었다. “근데 내가 바라는 정치는 정성껏 국민의 삶을 치유하는 것, 그거예요.” “정치요? 그까짓 게 뭔데요? 못사는 사람은 잘 살게, 잘 사는 사람 베풀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옳고 그름이 바로 서지 않는 지금, 기득권자들이 ‘국민’의 이름을 훔쳐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짓밟는 지금, ‘정치’란 함께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매순간의 삶이며, 그래서 결국 우리 개개인 모두가 지고 가야 할 우리들의 몫이라는 걸 무겁게 깨달아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07 | 추천: 0
허창영/ 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 최근 들어 ‘안전’이라는 말 참 많이 보고 듣습니다. 지금도 그저 기가 막히기만 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사회는 안전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6․4 지방선거에서도 거의 모든 후보가 빠트리지 않고 얘기했던 말이 안전이었습니다. 시장은 안전한 도시를, 교육감은 안전한 교육환경을 약속했습니다. 정부부처에서도 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우리사회는 정말로 안전한 사회가 되어 ‘안전할 권리’가 충분하게 보장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지금 나오고 있는 안전과 관련한 정책들이 하나같이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현 정부가 집권 초기에 국민의 안전을 강화하겠다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만들었던 삽질과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삽질은 이제 ‘국가안전처’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가고 있는데, 이것조차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다들 안전과 관련한 부서를 만들겠다, 위원회를 만들겠다, TFT를 구성하겠다는 발상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답답합니다. 그 답답함을 얘기하기 전에 우선 하나 묻겠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재난’인가요? 아니면 원칙 없는 규제 완화와 자본의 탐욕, 관료들의 불감증, 석연찮은 의문들이 복합적으로 만든 ‘인위적 위험’에 의해 발생한 ‘인재’인가요? 사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우리사회가 ‘인재’라는 결론에는 어느 정도 합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응은 ‘재난방지’ 또는 ‘사고예방’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재난을 방지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체계를 만들고 최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교육하는 일도 빼 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수영 등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것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요. 필요하면 한 달에 한 번 하는 ‘민방위 훈련’을 전 시민이 참여하는 ‘재난대응 훈련’으로 한다고 해도 막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다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까요? 정말로 안전들 하신 겁니까? ‘인위적 위험’이 만든 일에 ‘재난대응’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냐 말입니다.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 보다는 위험이 발생한 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느낌입니다. 자본의 탐욕스런 작동이 가능하게 했던 원칙 없는 규제 완화와 관료들의 불감증은 쳐다보지도 않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세월호 특별법’에서 국민들은 ‘진실규명’을 외치는 반면, ‘교통사고’라고 생각하는 한심한 작자들은 ‘목숨값 문제’나 ‘특례’로 몰고 가려는 것이겠지요. 애초부터 그 이면의 진실은 캐고 싶지도 않았고, 인위적 위험을 제거하려는 의지는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유가족들의 빈소에서 사진이나 찍는 작자들 아닙니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서울 광화문 광장 단식 농성장의 모습. 사진 출처 - 민중의 소리 우리사회는 이미 ‘총체적 위험사회’입니다. 세월호 참사도 거기에서 비롯됐고, 이를 풀기 위한 해법도 그 위험요인을 줄이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무너지려는 둑을 손으로 막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위험요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원인을 알 수 없으면 결과 역시 막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교육만 해도 그렇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것은 학생들이었습니다. 때문에 교육 당국의 충격은 매우 컸고, 반성과 대안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대책이라고 하는 것들이 수학여행을 보내지 않는다거나,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안전관리 체계를 수립하겠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재난에 대한 대응 외에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늘 어떤 사고가 벌어지면 나오는 얘기들 딱 그 수준입니다. 하지만 학교를, 또는 아이들을 정말로 위험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미 우리사회에서는 한 해 200여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광주에서는 지난 21일에도 한 꽃다운 18살 청춘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죽음을 선택하도록 만든 우리사회의 책임은 회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계속되는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교육에 대한 총체적 고민 없이 재난대응을 잘 한다고 이런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일까요? 지금은 사회 전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몇 몇 주변부적인 일들을 ‘땜빵’한 것으로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 참사가, 294명의 억울한 죽음이 주는 교훈은 제대로 된 ‘국가개조’를 하라는 것입니다. 자본의 탐욕을 제어하고, 이를 확고하게 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기업의 부품으로 전락한 교육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소수의 기득권에 의해 권력이 동종 교배되는 현상도 막아야 합니다. 그 출발이 바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입니다. 어느 날 너무도 당혹스러운 시신으로 나타난 유병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워서도 안 됩니다. 우리 국민들은 ‘사실’ 뒤에 숨어 있는 ‘실체적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수사권과 기소권 하나 내놓지 못하면서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것도 웃기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그것도 못한다면……, 차라리 국가를 포기해야겠지요.
2017-07-12 | hrights | 조회: 497 | 추천: 0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부장 고등학생 수 십 명이 지금 국회를 향해 도보행진 중이다. 바로 4.16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이다. 어제 출발하여 오늘 새벽 2시까지 걷고, 다시 아침부터 걷고 있다. 이 글이 나가는 시점에서는 국회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국회에서 단식, 노숙 농성 중인 부모님들과 희생당한 친구 부모님들을 만난다. 끝내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무늬만 특별법으로 누더기로 만드려는 것에 나섰다. 더 이상 정부와 국회를 믿을 수 없다는, 희생당한 친구들과 선생님을 향한 간절한 몸부림이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여름의 아스팔트를 걷는 학생들은 힘들어했다. 그러나 수 백 명의 시민이 함께 걸어주고, 또 거리에 나와 박수와 간식으로 응원해주니 힘들어도 지치지는 않는단다. 그러면서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며 1박2일 도보행진을 펼쳤다. 도보행진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난 이 학생들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의 ‘좋은 시민’이라고 본다. 한나 아렌트의 책 <공화국의 위기>에 언급된 것처럼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시민불복종은 위법행위이거나 과격한 행동이 아니다. 좋은 시민으로서의 존재방식이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이주자 추방을 반대코자, 또 자신들의 수업시간 연장에 반대코자 거리에 나와 집회시위를 펼친다. 이들 또한 좋은 시민의 존재방식을 이렇게 표출해왔다. 어느덧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무관심 또는 혐오 속에서 ‘도망자 민주주의’가 되어버렸다. 셀든 윌린의 얘기처럼, 우리 사회의 대의민주주의제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극도로 제한해버렸다. 이러한 제한된 틀에서 시민 스스로가 사유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뿐인가. 민주주의가 도망쳐버린 자리에 시민들은 정치엘리트들의 비민주적 행태에도 그냥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한국 사회도 슬프게도 구경꾼 민주주의로 확장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최근 위법적인 절차와 공권력이 남용되는 밀양 송전탑 설치, 강정 해군기지 건설, 쌍용자동차 불법 해고 등에서 시민들은 구경꾼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지난달 밀양에서 경찰 수 천 명이 765,000v 송전탑 설치 반대 농성 중이던 70, 80대 동네 노인들과 기도중인 수녀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움막은 강제 철거되었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할머니들은 옷 하나 걸치지 않고, 온 몸에 쇠사슬을 묶어 더 이상 억압하지 말라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당시 할머니 편지에는 이는 국가사업이 아닌 개인사업이고, 발전소 핵폭발하면 누가 책임질 것이며, 국가가 법도에 어긋날 일을 하지 말고, 물질만 탐하지 말고 좋은 나라를 만들며,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는 이유 있는 항변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경찰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진압되었고, 노인들의 부상 후송이 있었다. 이후 나는 여기에서 소름끼치는 사진을 보았다. 강제 집행 이후, 여경들은 그 현장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기념촬영을 한 것이다. 무서웠다. 저 ‘사유 없는 복종’이. 좌측: 할머니 진압 / 우측: 경찰 기념촬영 모습 사진 출처 - 프레시안 한나 아렌트는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태인 학살 범죄자 아이히만의 재판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악의 평범성’을 강조하였다. 군인으로서 상사의 명령을 따랐던 아이히만의 근면성 자체가 범죄는 아니었으나,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사유하지 않은 것이 큰 범죄라는 것이었다. 결국 아렌트가 강조한 것은 사유 없는 복종에서 나오는 인간의 ‘악의 평범성’이었다. 저 밀양 여경들의 모습은 다르지 않은 건지. 또 하나. 난 2011년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인권유린 장면이 기억난다. 불빛이 강한 영화조명을 켜놓고 카메라와 기자들 앞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 알몸 목욕을 시키던 그 끔찍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너무 큰 충격이었다. 이것이 진정 장애아 복지정책 홍보활동이었던가. 그걸 지켜보는 유권자들이 그들의 진정성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녀가 이번에 7.30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면서 국가를 위해 나왔다던데, 진정으로 권력을 위한 국가가 아닌 시민국가 모습을 생각해달라는건 무리일까 반문해본다. 앞서 말한 단원고 학생들의 국회행 1박 2일 도보행진, 그리고 유가족들의 국회 앞 단식과 노숙농성은 좋은 정치를 펼치지 못하는 대의제 불신에서 나온 시민들의 불복종 운동이다. 좋은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존재방식을 직접행동으로 표출한 것이다. 현재 무늬만 특별법이 되어가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야당이 요구한 269건 자료 중 단 13건만 제출하였다. 대통령은 4.16 사고 당일 행방이 묘연하다. 여당 의원은 유가족들에게 막말을 해댄다. MBC 방송국은 증인 출석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사유하는 시민으로서 희생자 가족들과 생존자 가족, 학생들이 앞장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도망자, 구경꾼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은 ‘시민적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아픔을 공유하고, 스스로 끊임없이 사유하고, 정의를 얘기하고, 시민불복종 행동을 펼쳐야 할 때이다. 더 이상 도망자로, 구경꾼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숭고한 시민적 지위’를 스스로 내팽개치는 꼴이 되겠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많은 사회적 문제점들에 나서자. 그럼 우리 사회는 분명코 시민적 지혜가 더 많이 발현되는 좋은 곳으로 바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가 바로 그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인용해본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우리 도망자, 구경꾼 민주주의를 벗어던지자. 그리고 끊임없이 사유하자.
2017-07-12 | hrights | 조회: 568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길게는 1년여 전부터 후보자의 하마평과 선거구도, 여야의 이해득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술 안주거리를 제공해 주던 선거가 끝나니 어느덧 올해의 상반기도 훌쩍 지나가 버렸다. 충청지역은 대체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선전한 것으로 평가받는 분위기이다. 대전시장과 세종시장선거에서 처음으로 새정치민주연합(구 민주당계열 포함)의 후보가 당선되었고 충남과 충북도지사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충청지역 지방선거의 가장 놀라운 결과는 이른바 진보교육감 후보의 대거 당선일 것이다. 대전시를 제외한 세종시와 충남, 충북에서 진보성향의 후보들이 사상 처음으로 지방 교육행정의 수장이 되었다. 대전도 이런 분위기속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4년 전 선거에서는 후보를 구하지도 못했던 진보후보가, 이번 선거에서는 두 명이나 나와서 시민들을 헷갈리게 하더니 결국 2,3위로 나란히 낙선하고 말았다. 대전의 결과야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다른 충청지역 세 곳에서는 당당히 진보교육감들이 첫발을 내딛었는데 지역 교육정책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학부모와 시민들은 기대와 호기심어린 심정으로 진보교육감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당선된 진보교육감들의 공약을 살펴보고 나니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온다. 한국사회에 진보교육감에 대한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었던 대표적인 정책은 ‘혁신학교’와 ‘학생인권조례’일 것이다. 충남, 충북, 세종에서 당선된 교육감의 공통적이며 대표적인 공약은 ‘혁신학교’의 도입이지만 ‘학생인권조례’는 충남을 제외한 두 곳의 공약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나마 충남의 김지철 교육감은 ‘학교가기 좋은날! 폭력 없는 학교’라는 큰 공약카테고리 안에 있는 여러 실천공약중의 하나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및 교권보호정책 추진’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아예 문구조차 찾아볼 수 없는 다른 두 지역 보다야 낫지만 학생인권조례의 참의미를 살릴 수 있을지, 또 다른 공약과의 비중을 비교해볼 때 과연 제정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사회의 학생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렵고 불편한 현실들을 감안할 때 ‘학생인권조례’는 여전히 유의미하며 강력하게 요구되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진보’를 표방하는 교육감후보들이 이번 선거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애써 무시하거나 비중을 약하게 두었을까? 각 선거캠프가 내 놓은 공약 하나 하나의 전후 사정을 완벽하게 파악 할 수 없는 내 처지에서는 그 이유를 뭐라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라도 추측하자면 ‘부담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전과 충남은 전국적으로도 교육집행부나 시민사회단체에서 ‘학생인권조례’나 그 비슷한 것도 제대로 추진한 적이 없는 학생인권만 놓고 보면 아주 보수적인 지역에 속한다. 충북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주민발의 충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를 결성하고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했지만 2013년 당시 이기용 교육감이 충북교육청법제심의위원회의 결정을 구실삼아 충북학생인권조례안을 최종 각하 처분해버리고 말았다. 작년까지 ‘충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았던 김병우 신임 충북교육감 당선자는 이 과정에서 지역의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했던 강력한 보수여론을 의식한 때문인지 교육감직 인수위원회 공식 의견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재추진하는 것은 아니고 ‘교육주체권리헌장'을 만드는 것이 정확한 공약이라는 발표까지 했다. 경기도와 서울에서도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 때 진보교육정책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학생인권조례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진보교육감 후보에게 부담스런 정책이 돼 버린 것이다.   충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가 지난 2013년 3월28일 충북도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국 최초로 주민의 권리 행사로 성사된 학생인권조례안을 각하 처리한 이기용 교육감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사진 출처 - 충청일보 한국사회에서 학생과 청소년이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인권’이 가야할 길은 아직까지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데 진보교육감의 공약에서도 제대로 된 ‘학생인권조례’를 찾지 못하는 심정은 안타깝기만 하다. 학생은 학교안의 독립적인 구성원인 주체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감시하고 보호받아야만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 학교현장의 현실이다.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의 경우만 해도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학생에 대한 체벌, 언어폭력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의 의견이다. 이미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지역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학생인권조례’의 부작용과 피로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근대적인 교육정책이 시행된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던 것이 우리 사회의 ‘학교’라는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 속에 학생인권조례를 정착시키려고 한다면 일정 정도의 진통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그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정치 공간에서의 ‘프레임(frame)’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위력을 발휘한 ‘세금폭탄’ 논쟁과 같이 옳고 그름을 떠나 상대가 설치해 놓은 프레임에 갇혀 버리면 ‘사실’은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프레임은 사실을 이긴다. 프레임은 유지되고 사실은 튕겨나간다.” 는 것이다. ‘학생인권을 강화하면 할수록 교권은 더 추락 한다’, ‘청소년은 권리주체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은 너무 진보적이고 불안하다’는 명제들은 사실이 아님을 교육 선진국의 사례나 많은 교육 전문가의 견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프레임에 갇혀서 치른 선거가 지난 6·4 교육감선거는 아니었는지 우려스럽다. 지역의 진보교육감들이 허구의 프레임을 과감히 깨고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시행을 통해 제대로 된 진보 교육정책을 펼쳐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앞으로 4년 내내 가져볼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62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정부 고위공무원인 A 씨는 틈날 때마다 자리를 옮길만한 곳을 알아본다. 요즘 들어 부쩍 ‘언제 옷을 벗어야 할까’ 불안하다. ‘차라리 7급에서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는 이제 50대 초반이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다. 20년 넘게 일해 전문성도 있다고 자부한다. 등산이나 하며 늙기엔 눈이 너무 높아져 버렸다. 더구나 둘째는 이제 대학생이 된다. 십중팔구 그는 산하기관이나 유관업체로 재취업할 것이다. 세상은 그를 ‘관피아’라고 부른다. A 씨는 주변에서 만나거나 들은 고위공무원 사례를 조합해 가상으로 구성한 인물이다. 최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고위공직자가 퇴직 뒤 산하기관에 취업하는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관료와 마피아를 합성한 ‘관피아’란 신조어도 유행한다. 하지만 틀어막으려는 논의만 활발할 뿐 근본원인을 진단하는 노력은 미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산하기관 재취업 문제는 사실 정부에서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다. 임원승진에 실패한 대기업 간부가 명예퇴직 뒤 협력업체로 자리를 옮기는 건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도 특징이다. 하나같이 계급제 문화가 강력하다. 후배를 위해 선배가 물러나야 한다는 ‘용퇴’ 관행도 있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선배에게 생계수단을 보장해주는 것은 결국 조직 전체를 위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공직사회에 대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신분보장도 없고 노동 유연성도 극대화하는 대신 공인으로서 의무를 요구하지 않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에선 '관피아'라고 비판할 필요도 없고 그런 비판을 하는 것 자체가 명예훼손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모델은 공공부문에 존중과 신분보장을 주고 그 반대급부로 사익추구를 강력히 규제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이 방식에선 공무원들에게 적절한 (십중팔구 높은 수준으로) 급여를 줘야 하고 정규직 위주로 정년을 보장해줘야 한다. 우리는 신분보장은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사익추구 금지만 강화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여성인권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남편을 따라죽을 선택권'을 옹호하는 것만큼이나 자기모순이다. 일전에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이계수 교수가 지적했듯이 “고위공무원단과 개방형 임용제도에서 보듯 ‘경영마인드’라는 이름으로 유연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공무원 신분 자체는 갈수록 ‘회사원’과 비슷해지는 반면 각종 의무는 ‘공직자’ 기준을 요구하는 모순”을 되돌아봐야 한다. 그는 “현 제도에서는 줄 세우기와 사익추구를 막을 방법이 없고, 심지어 정치적 중립도 위협받는다”고 지적한다. 공무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대표하는 게 이른바 철밥통 담론이다. 여기에는 “하는 일 없이”, “정년보장도 되면서”, “임금삭감도 안 하는” 기득권층이라는 비난 혹은 질시를 담고 있다. 민간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노동조건 악화와 비정규직화 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정규직이고 정년보장까지 받는 공무원을 향해 돌을 던지게 하는 건 아닐까.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철밥통 담론을 구성하는 세 가지 논거는 달리 생각할 여지가 너무 많다. 하는 일 없다는 비판에는 민원처리 비효율이나 시간외수당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모든 공무원이 노동 강도가 강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나본 공무원들 상당수는 꽤 많이 일한다. 특히 중앙부처 간부들 중에는 주말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저녁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상당수다. 공무원들이 받는 시간외수당 역시 민간기업과 비교하면 매우 낮게 책정돼 있다. 공무원연금도 비판 대상이다. 장기적으로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거나 국민연금과 통합시켜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 편이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대목도 있다. 공무원들은 퇴직금을 받지 않는다. 지금이야 공무원 평균임금이 대기업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공무원들은 박봉에 시달렸다. 높은 공무원연금보장은 낮은 임금에 대한 반대급부였다. 공무원에게 정년을 보장하고 적절한 신분보장을 하는 건 역사적인 맥락을 따져봐야 한다. 막스 베버가 지적했듯이 신분을 보장하는 직업공무원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 관료제가 형성된 이유는 전문성과 소명의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패방지와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헌법 역시 정치적 중립을 위해 공무원 신분보장을 규정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년보장은 오히려 민간에서 확대해야 할 문제다. 민간기업에서 신분보장이 악화하니까 공무원 너희도 신분보장 받지 말라고 하는 건 ‘자해공갈’이자 ‘바닥을 향한 폭주’일 뿐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공무원을 비난하고 정부를 불신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정부가 제구실을 못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공무원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마치 자기는 공무원 아닌 척 공무원들을 비난하고 욕보이는데 우리가 부화뇌동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부실과 난맥상은 백번 비판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목적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제대로 된 정부’를 만드는 것인지, ‘나는 사오정 오륙도 걱정하는데 자기들만 정규직에 정년 보장되는 공무원’을 때려잡아서 하향 평준화하자는 것인지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공직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공공성과 ‘국가의 역할’ 회복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서둘러 정책 발표하면 ‘졸속행정’이라 비난하다가 신중하게 정책 검토하면 ‘늑장행정’이라 욕하는 방식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좋은 정부’를 만들 수 없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13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   1. 이완용 이래로 정책 실패를 저지른 관료는 법적, 정치적, 역사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달 말, 전 현직 경제관료(일명, 모피아) 5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주요한 혐의는 두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2003년 투기자본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과 그 이후 론스타에게 특혜를 주고 국가에 큰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그동안, 외환은행 매각과정에서 불법성 즉, 사모펀드에게 예외승인을 한 것이 불법이 아닌가, 외환은행의 부실은 조작된 것이 아닌가, 론스타는 자본시장법 상의 금융주력자인가, 등등을 제기해 왔다. 반면에, 이번 고발을 통해 규명하고자 한 것은 당시 경제 관료들이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매각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힌 행위를 규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2003년부터 2006년 사이, 정부가 수출입은행과 한국은행을 통하여 소유한 국유재산인 외환은행 주식 1.6억 주인 43.17%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경영권을 단 돈 1,667억 원에 팔아치운 사기 사건으로, 국가에게 총 1조 7,426억 원의 손해를 입힌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다. 2003년 국가보유 주식가를 저가로 결정, 콜옵션, 드래그 얼롱 등을 담아 국가를 상대로 사기를 친 내용으로 론스타와 계약을 맺었고, 이것을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인 변양호가 주도했다. 더 하여, 주요 공범은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 제1국장 김석동과 재경부 경제협력국장인 임영록이다. 변양호가 금융정책국장을 그만 둔 뒤인 2004년에는 김석동이,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는 임영록이 금융정책국장을 이어 받아 계약대로 론스타에게 국유재산을 퍼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도 묵인한 자들도 있다. 2003년도 당시의 재경부 장관 김진표와 수출입은행의 행장인 이영회 등이다. 그렇다면, 국가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힌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변양호는 2005년 “보고펀드”라는 사모펀드를 조성해서 금융시장의 큰 손이 되었다. 펀드의 이름은 “해상왕 장보고”에서 따 왔다는데, 외국자본에 맞서는 “토종” 펀드라는 것이다. 불쌍한 노예를 구출하고자 해적들과 싸운 장보고를 생각하면 참으로 가소로운 이름이다. 동료 파트너로 리먼 브라더스 한국 대표이던 이재우와 모건 스탠리 한국지사 기업금융부문 대표이던 신재하, 2010년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박병무가 합류했다. 보고펀드가 대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거나 경영권을 인수한 기업은 동양생명보험, 노비타, 아이리버, LG실트론, 비씨카드, 한국 버거킹 사업을 운영하는 BKR, 미국 셰일오일 및 가스를 생산하는 아나다코, DSLR용 카메라의 교환렌즈를 생산하는 삼양옵틱스, 대표적인 온라인 모바일 쇼핑 가격비교서비스인 에누리닷컴 등이며, 총 운용자산 규모는 2014년 1분기 말 기준으로 약 2조 원에 이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보고펀드에 최초로 투자된 자금의 성격이다. 그가 과거 재경부 관료로서 관리하던 시중은행으로부터 고가의 수수료를 챙기며 거액을 투자받은 것이다. 이것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밝혀진 사실이다. 김석동도 그 후, 관료로서 승승장구하여 2007년 재정경제부 1차관을 지냈고, 고액 연봉 시비가 일었던 농협의 경제연구소 대표를 역임했다. 정권이 바뀐 후에도 다시 고관대작이 되었는데, 2011년에서 2013년까지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금융위원장 시절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 일이다. 하나는 저축은행 부도파산이 현실화 되는 시점에도 그런 현실을 오도하며 저축은행사태 피해자들을 우롱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론스타의 먹튀를 승인하여 그들이 4조 원을 챙겨 한국을 탈출하도록 조력했다는 사실이다. 임영록 역시 그 후, 관료로서 승승장구하여 2007년 재정경제부 2차관을 지냈다. 그리고 그 기간에 저축은행 사태가 잉태되고 있었다. 2002년 상호신용금고는 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2005년 12월 금융당국은 감독 규정을 바꿔, 사모투자펀드 투자 등을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여신비율 8%이하, BIS비율 8%이상인 저축은행을 우량은행으로 규정한 '88클럽'에 해당하는 곳에 대규모 대출이 가능하도록 허가했고, 저축은행 간 인수 합병을 가능케 해 덩치를 불릴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서 저축은행은 부동산 PF대출에 대거 뛰어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퇴직한 금융당국 고위 관료들이 저축은행의 고문, 감사, 주주가 되었다. 그 결과 감독 기능은 무력화되고,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했다. 저축은행의 대주주들과 퇴직해 ‘낙하산’으로 저축은행에 들어온 금융관료들이 공모해서 저축은행의 자본금 2조 1,680억 원 이상을 불법 대출 등으로 빼돌렸고, 그 결과 저축은행은 부실해졌고 무수히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저축은행사태 피해자들은 평균 나이가 63세이고 평균소득 115만 원의 가난한 시민들로, 그들은 노년의 삶을 통째로 강탈당한 것이다. 예금자보호한도인 5,000만 원을 넘는 피해금액은 1인당 평균 540만 원 정도이다. 지금까지도 어떤 정부기관도 나서서 피해구제를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에는 저축은행 사태를 당하여 저항했던 피해자들을 검찰이 기소하여 처벌을 노리고 있다. 반면에, 저축은행 대주주들과 결탁해서 뇌물수수 비리를 저지른 정치 권력자들, 금융관료들에게 사법당국은 무죄 방면과 면죄부를 주고 있다. 아무튼, 그런 임영록이 현직 경제 관료로서 자신의 후배인 금융위원회 위원장 신제윤에 의해 낙하산으로 KB금융지주의 회장이 되었다(이 건으로 신제윤도 고발). 임영록이 2013년 6월 KB금융지주의 회장이 된 이래로 국민은행에서는 끊이지 않고 대형 금융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 압권은 대량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일 것이다. 지금도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내부 갈등 중이다. 2003년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주식매각 계약에 관련 된 조연급들의 다른 인물들을 보면, 그들도 위에서 거론한 자들처럼 별 일 없이 잘 산다. 먼저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로서 지금도 존경을 받는 경제계의 원로로 대접을 받으며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고, 이영희 수출입은행장은 아시아자산신탁 대표이사회장을 지내는 등 금융계의 큰 손이며, 김진표 재경부 장관은 야당의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대한민국에서 뜨거운 ‘이슈’는 소위, “관피아(관료+마피아)”일 것이다. 지금 언론과 대통령, 정치권, 입 달린 모든 사람은 “관피아”를 말하고 있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에서 ‘끼리끼리’ 패거리를 지어 이익을 챙기는 짓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국가를 대신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관료가 민간의 특정 자본가(또는 집단)와 결탁해서 사익을 챙기는 짓을 하는 것은 범죄이다. 범죄인데도 두루뭉술하게 “정책 실패”라고 고상하게도 말 한다. 아무튼, 그 결과 국가와 사회, 노동자와 시민들에게는 큰 손해를 입힌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그런 범죄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의 역사에서 “정책 실패”를 저지른 관료들은 제대로 처벌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뇌물을 직접 수수하지 않는 한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다. 정치적으로도 대통령이나 선출된 정치인은 권력을 잃으면 비판을 받거나 처벌을 받지만, 익명의 관료들은 정치권력이 교체되면 그냥 망각되고 그 지위를 유지하며 별 일 없이 잘 산다. 당연히 역사적인 처벌도 없다. 막연히,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군부 독재 시대, 신자유주의 시대가 나쁘다고 한다. 그냥, 사회구조 탓, 세월 탓을 한다. 구체적으로 누구누구가 그러한 정책실패 - 범죄를 기획하고 집행을 하여, 무수히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했는지, 실명을 거론하며 단죄하는 역사책도 거의 본 적이 없다. 만약에,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처벌을 요구하면, 저급한 행동인 것으로 말해지거나, 싸구려 “음모론”으로 취급당하기도 한다. 그나마 실명이 거론되는 것이 일제 강점기 식민지 관료였던 “친일파”다. 하지만,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적시하기도 어렵고, 그 범죄의 결과로 그 후손이 지금 사회적으로 여전히 지배계급의 지위에 있다고 말하는 순간, 정치권의 흔한 정쟁거리 이거나 술자리 안주로 전락하기 쉽다. 그러한 한국에서 관료들은 선출되지 않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주인으로 남은 것이다. 앞에서 거론한 자들은 그들 중 일부이며, 그 나마도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유명한 사건을 저질렀기에 이 정도의 추적과 고발이 가능한 것이다. 어떤 과오에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한국의 관료 신화는 이제 깨져야 한다. 동양그룹 사태와 관련한 5개 회사의 제2차 관계인집회가 열린 지난 3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제3별관에서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집회에 참관하기 위해 접수를 하고 있다. 이날 회생계획안은 담보 채권액 95%, 무담보 채권액 69%의 채권자 찬성으로 가결됐다. 사진 출처 - 한겨레 2. “관피아” 개혁은 누가 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난 4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금융정책, 금융감독체계 개혁을 둘러싸고 한편의 “막장 드라마”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2012년 11월 9일, 투기자본감센터가 여의도 점령운동을 함께 했던 여러 단체들과 준비한 “금융소비자위원회 독립설치”와 “금융정책감독기구의 민주적 개혁”을 위한 두 가지 법률안을 당시 민주당 김기준 의원 등이 발의한 것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법률을 준비한 주체인데, 금융피해자 단체들과 금융권 노조, 금융관련 시민단체들이 그들이다. 서로의 다른 입장을 넘어 금융시스템의 소외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6개월 여간 치열한 내부 토론을 통해 정리한 것을 법안에 담았다. 한마디로, ‘금융수탈을 당하는 99%가 1%를 위한 금융시스템에 침투해서 싸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민주당인가 하면,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공약으로 그 법안의 내용이 채택되어 대통령선거에서 쟁점이 되길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선거에서 금융관련 쟁점 자체가 부재한 이유로 부각되지 못했다. 2013년 1월에서 2월 경, 현 박근혜 정권수립 당시 정부조직 개편과 맞물려 다시 부각되길 희망했지만, 금융관료들의 “금융부 신설”과 현 금융감독원을 분리해 금융위원회 산하에 “금융소비자원”을 설치하자는 안을 제기하여 그것을 저지하고자 노력했다. 그 이유는 그 안이 금융관료들의 이해와 욕망을 노골적으로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기구를 두는 목적이 무엇인가! 탐욕스러운 금융자본과 부패무능한 금융관료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금융소비자 보호 기구를 금융관료 자신들이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로 나서는 역겨운 법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기자본감시센터 등 여론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다시 사라졌다. 아무튼, 그런 논쟁 속에서 금융수탈을 당하는 99%가 주도적으로 제기한 최초의 금융감독기구 개혁법안은 주목받지도 못했고, 결국 잊혀졌다. 그러던 중, 2013년 10월 이후 “동양그룹 사태” 발생으로 다시 금융소비자 보호기구 설치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러자, 금융관료들이 새누리당을 통해 새롭게 관련 법안을 내놓았다. 기존의 것에서 “금융부 신설”은 제외하고, 금융위원회 산하에 “금융소비자원”을 설치하자는 원래의 법안을 다시 제안했다. 한편,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의원(이후, 새정치연합)들도 관련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했지만 별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어떤 법안도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를 넘겼다. 그런데, 2014년 2월, 김기식 의원이 새누리당의 안, 즉 금융관료들의 안을 받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전해서 들은 이유는 납득이 잘 가질 않는데, 대강 “동양사태”로 여론이 비등하니 일단 금융소비자기구를 어설프게나마 만드는 것이 국회의 도리(?)라는 것이다. 금융관료의 법안 내용을 보면, 형식적으로는 “쌍봉형” 체계를 하고 있지만, 현 금융위원회 산하의 금융감독원을 둘로 쪼개 금융소비자원을 신설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금융소비자위원회의 구성에서도 인사권을 모피아들이 행사하게 한 것, 금융소비자위원회가 법안조차 발의를 하지 못하고, 법이나 시행령의 하위개념인 “규정의 개정 권한”만 가지는 것 등의 문제가 드러난다. 한마디로, 개악이었다. 철저하게 금융관료들의 이해와 욕망의 법률안이 김기식 의원의 찬성으로 상정되어 표결을 통해 정무위원회 통과를 목전에 두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기준 의원 등이 격렬히 반대하였고, 김기식 의원은 자신의 주장을 일단 철회하였다. 그 결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해당 금융관료들의 법률안은 다룰 수 없게 되었다. 3월에 들어서자 기존의 민주당 의원들의 법률안들을 이종걸, 민병두 의원의 법안 중심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새정치연합 내의 입장이 정리되었다. 그런 강한 압력이 김기준 의원에게 들어오자, “금융소비자위원회 독립설치”와 “금융정책감독기구의 민주적 개혁”을 위한 두 가지 법률안은 확실하게 폐기하게 된다. 나는 화가 나서 물었다. “왜, 하필, 금융에 대해 문외한이 만드는 안을 중심으로 통합되어야 하는가?”, “또, 아직 완성된 법안도 아닌 이종걸 안을 중심으로 당론을 정하는 것은 웃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이에 대해 의원실 관계자는 “당에서 공천 줄 때는 금융전문가이지만, 국회에서는 초선 의원은 다선 의원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란다. 국회도 결국 ‘짬밥 순’인가! 웃기는 것은, 4월 14일,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그 때까지도 성안이 되지 않았던 이종걸 의원 안을 지지한다고, 일부 노조와 피해자 단체 대표를 국회로 불러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그중에 일부는 투기자본감시센터와 함께 앞에서 말한 “금융소비자위원회 독립설치”와 “금융정책감독기구의 민주적 개혁”을 위한 두 가지 법률안을 준비한 주체도 있었다. 그런 기자회견에 내용도 살피지 않고 얼굴 내미는 정신없는 노조 위원장과 궁박한 상황의 금융피해자 단체 대표도 한심하지만, 이러한 처지의 사람들을 자신들의 정치수단으로 이용하는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더욱 나쁜 놈들이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이런 관계라면, 민주주의는 “개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끝내 이종걸 안은 성안되지 않았다. 그러자, 금융관료들의 안을 받기로 새정치연합의 당론이 정해졌다는 것이다. 그 날이 세월호 참사 와중인 4월 28일이다. 금융관료 안의 통과를 목적으로 정무위원회 범안심사소위원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결국, 같은 당 소속 김기준 의원의 공개적인 반발로 당일에 상정되지는 않았다. 일단, 다행이다. 하지만, 나는 국회 정무위원회 새정치연합 의원들을 여전히 ‘감시’ 중이다. 나는 평소, 부패 무능한 관료들이 패거리를 지어서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막을 자는 ‘선출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시민들에게 선출된 정치인이 관료를 통제할 권위를 가지는 것은 ‘민주주의에 부합’된다고 본다. 또한, 무수히 많은 관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선출직 정치인이 더욱 많아져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확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 소신이다. 그런데, 지난 4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일어난 소동을 볼 때, 이 말이 맞을까? 자신들의 이해와 욕망을 추구하는데 능수능란한 자들이 관료들이다. 그들에게 처음 포섭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인 새누리당이다. 그리고 이에 대항해야할 야당인 새정치연합도 포섭되었다. 아마도 그 포섭의 기술은 오랜 세월 금융정책을 주물러 온 “경험”, “금융자유화” 같은 교활한 논리일 것이다. 이 기술이 경험이 부족한 국회의원들, 자유주의 정치를 지향하는 여야의 정치인들을 포섭한 것이다. 관료들이 여야 가릴 것이 없이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60여 년 동안 선출된 정치인들을 포섭하고, 민의를 우롱했다는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우리사회는 “정치개혁”이란 미명으로 선거 때마다 정당들에게 대규모 의원 “물갈이”를 요구해 왔었다. 또,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자유주의” 정치인을 지지해왔다. 그런 것을 목적으로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들도 있다. 그 결과, 경험이 미숙한 초선 국회의원을 양산했다. 숨어 있는 관료의 위험성은 보지도 못하고, 모든 책임은 여당 또는 야당, 대통령이라는 식의 정쟁에 익숙한 정치인들만이 국회를 장악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그런 정치권이 “관피아”를 개혁한다고? 난 정말 모르겠다. 그런 수준의 정치인만 선출하는 시민사회가 미숙한 것인지, 선출된 정치인들을 가지고 노는 관료들이 시민사회보다 더 영악한 것인지... 분명한 것은 우리사회 곳곳이 ‘세월호’라는 것이다. 위험한 자본과 부패한 관료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더는 미숙하고 질 낮은 정치인을 선출하면 안 된다. 우선은 시민사회부터 관료를 통제하는 방법, 자본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막강한 관료와 자본에 맞서서 자신을 선출해준 노동자, 시민들을 지킬 수 있는 진정한 ‘호민관’이 선출될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54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