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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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전국완/ 중학교 교사   온 나라를 슬픔에 빠지게 한 참사가 일어난 지도 어느 덧 한 달을 훌쩍 넘기고 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18명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지 싶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함께 절규하던 다른 가족들은 시신을 안고 하나 둘 떠나고, 텅 빈 체육관에 덩그마니 남겨졌을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뉴스에서도 세월호 소식은 점점 줄어들고, 사람들은 다시 방송되기 시작한 드라마와 예능을 보며 이제는 웃고 떠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20여 일 후에는 월드컵도 개막된다. 유족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건 함께 울어주던 사람들이 이 일을 잊어버리게 되는 일일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로 들끓고 있는 동안 무능한 정부는 책임 떠넘기기와 ‘충격상쇄용 아이템 개발’에 여념이 없다가, 자식 같은 학생들의 무참한 죽음에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교사들에 대해서는 발 빠르게 징계에 착수하며 청와대 심기보좌에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 중이다. 청와대는 여론 눈치봐가며 찔끔 찔끔 사과에 ‘적폐일소’ 운운하며 남 탓하기 바쁘고, 주범은 놓치고 겨우 박봉의 비정규직 선장과 선원 몇 명에게 살인죄를 씌워 구속시킨 검찰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거기다가 ‘기레기’떼들은 현장상황과 동떨어진 ‘받아 적기’와 부나방처럼 선정적인 기사만을 좇아 몰려다니고…….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종북으로 몰아 맞불집회를 열고 호통치는 어르신들. 떨어지는 대통령의 지지율에 유족들을 ‘몰지각한’으로 몰아붙이며 ‘대통령 구조’에 나선 자들의 개소리들. 이 와중에 ‘질서’를 내세우며 집회참가자들을 100여 명이나 연행하고는 ‘사법처리’ 들먹이며 국민이 아닌 정권의 보호에만 충실한 경찰. 그나마 있는 야당은 공천문제로 자중지란에 빠져 존재감도 없고……. 어째 이러다가 세월 따라 세월호도, 세월호 희생자도 아무 의미 없이 흐지부지 묻힐까봐 두렵다. ‘시스템 실패를 탓하지 않고 개인들 책임만 묻는다면……, 한바탕 난리로 끝날 것’이라던 울리히 벡 교수의 경고(한겨레신문)가 결국 현실이 될까봐 두렵다. 그림 출처 - 한겨레 그림판 지금까지 순진했던 우리 백성들은 그저 ‘나라 경제가 살아야 …, 기업이 살아야 …, 국익을 위해서 …’라는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양보도 했다. 그 결과 기업들은 점점 더 많은 이윤을 내고 커졌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각종 규제를 풀고, 고용의 유연성을 위해 이 나라 노동자의 반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었다. 그러고도 끝을 모르는 기업들의 탐욕스런 이윤추구는 자본이 사람들의 목숨보다 우위의 지위를 얻게 만들었다. 정권창출이 지상목표인 정치인들은 불법까지 동원해 가며 정권을 차지했고, 전리품으로 얻은 자리는 끼리끼리 나누어 가졌다. 그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는 애초부터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었던 거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어이없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 이번 사태를 대하는 정부관계자들의 모습에서 하나같이 진정성이라는 게 보이지 않았던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건 국민이 아니라 청와대이고, 자신들이 쥐고 있는 알량한 기득권이었던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대통령과 정부는 재벌들의 마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박노자 교수의 지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처음에는 참담하고 가슴이 아프더니, 이제는 점점 화가 나고 분노가 치민다. 울리히 벡 교수의 말처럼 권력집단은 결코 자신들의 체질을 스스로 바꾸진 못할 것이다. 우리는 길고 긴 줄을 서서 분향을 하고, 노란 리본에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고 적었다. 이것을 분위기상 한 번 해 본 허언으로 그치기에는 떠나보낸 목숨들이 너무 아깝고 아프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목숨들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자리, 또 주변에서 우리는 세월호와 너무도 많이 닮은 모습들을 본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누리고 사는 데에 열중하느라 어느 덧 소중한 가치들 위에 ‘돈’이 군림하게 된 가치전도의 세상을. 나와 내 가족의 출세와 성장의 단꿈에 젖어 이웃들의 불행을 외면하고 침묵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부조리가 이렇게 조직화하는 데에 일조했다는 성찰과 반성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정부가 이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대충 넘어간다든가 오히려 ‘국가개조’를 명분삼아 국민 통제로 방향을 잘못 틀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사회분열’, ‘경제’, ‘안보’ 등을 내세워 본질을 흐리더라도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말이다. 저기 저 권력자들이 우리 소시민들을 두려워하게 할 수 있는 건 진실을 제대로 아는 것일 게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 엄청난 일들에 대해 관심과 시선을 오래도록 거두지 말고 제대로 알자. 그러기 위해서라도 사실은폐와 정권홍보에 급급한 공중파 언론의 추한 민낯을 보게 해준 대안언론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자. 우리가 가진 또 다른 힘은 머릿수다. 그들이 선거 때마다 우리의 한 표를 아쉬워하지 않는가. 함께 모여 함께 분노하자. 이번엔 쉽사리 분노를 거둬선 안 될 것 같다. 돌아오지 못한 18명의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사태관련자들이 모두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을 때까지, 재발방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나올 때까지, 유족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을 때까지. 방송에선 벌써 월드컵 기간 시청률 올리기 경쟁에 돌입한 것 같다. 예년처럼 모든 채널에서 월드컵 경기를 밤낮없이 중계하고, 거리마다 붉은 티를 입고 모여 앉아 ‘대한민국’을 외쳐대는 상황이 이번에는 오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기다리다가 돌이 될 지경인 애끓는 어버이들이 있다. 그리고 가족을 떠나보낸 분들의 눈물도 채 마르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분향소 옆에서 집단적으로 거리응원을 하는 건 도무지 지켜보지 못할 것 같다. 며칠 전 스승의 날이라고 졸업한 제자들이 찾아왔더랬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의젓한 모습을 보며 마음이 또 뭉클했다. 중학교 때가 좋았다고, 공부가 어렵다고 죽는 소리를 하면서도 서로 학교자랑을 하던 아이들. 이 귀하고 예쁜 아이들을 더 이상은 잃어선 안 되지 않겠나.
2017-07-12 | hrights | 조회: 309 | 추천: 0
허창영/ 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 인권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 중 하나가 ‘천부인권’이다. 천부인권은 왕에게만 독점되었던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로 되돌려 준 중요한 근거였다. 왕 또는 국가권력에 앞서 모든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리를 갖고 있다는 논리는 인류의 역사를 바꿀 만큼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이 천부인권은 마치 인권이 ‘한 상 제대로 차려져 있는 밥상’ 같다는 느낌을 준다는 데 함정이 있다. 우리들은 그저 그 밥상에 숟가락을 얹고 먹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인권은 험난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투쟁’에 의해 ‘쟁취’되어 왔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풀어헤쳐진 선물보따리의 실상은 밥과 국 정도가 놓여 있는 가난한 밥상에 불과했다. 그 밥상 위에 무엇을 놓고 먹을지는 인간의 선택과 투쟁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늘려왔다. 국가가 함부로 간섭하지 말라는 ‘자유’에서부터 ‘사회적 생존’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아가 집단적인 것도 인권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권이라는 밥상은 바로 그 ‘인간의 역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인권의 역사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역사’ ‘사람의 범주에 들기 위한 역사’라고도 얘기한다. 기본적으로 인권은 ‘누구나’라고 하는 보편성을 가장 큰 원칙 중 하나로 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권을 가지고 있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인권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인간의 권리를 확인받았던 근대 시민혁명시기, 그 거대한 역사적 전환기의 열매는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영국의 권리장전, 미국 독립선언서, 프랑스 인권선언에 적힌 인간의 권리는 소위 ‘제3신분’에게까지만 해당되었다. 가난하고 평범한 시민들, 유색인종에게 인권은 그저 문헌상의 치장에 불과했다. 어느 계급에 속해있건 여성은 ‘모든 사람’에 포함되지 않았다. 소위 소수자 또는 사회적 약자들은 인권의 달콤한 열매를 먹지 못했던 것이다. 1789년 6월 20일 베르사유 궁전 인근의 실내 테니스코트에 모여 서약을 낭독하고 있는 제3신분 대표들. 자크 다비드 그림. /소장=파리 카르나발레 박물관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후 인권의 역사는 ‘모든 사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사람으로 확인받기 위한 역사였다. 사회주의 혁명기를 거치면서 가난한 사람들까지, 양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여성들까지 사람으로 확인되었다. 노예제가 폐지되고 나서도 한참 후인 흑백분리,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나서야 비로소 유색인종에게까지도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었다. 장애인, 어린이·청소년, 성소수자, 노인, 이주민 등은 여전히 사람임을 확인해달라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의 역사를 권리주체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묻고 싶다. 과연 우리는 진정한 사람인가?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는 인권이 얘기하는 그 ‘사람’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다. 인류의 역사가 근대 시민혁명 이후 차근차근 사람의 범주를 넓혀왔지만, 대한민국은 과연 그 근대 시민혁명 이후의 과정을 밟고 있는가 말이다. 밀양과 강정에서는 촌로들이 삶터를 짓밟히고 있고,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내몰려 있다.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조차도 지켜주지 못하는 무책임한 권력 앞에서 나라 전체가 집단패닉에 빠져있다. 그런데도 자본은 이윤을 위한 더러운 셈법에 혈안이고, 국가권력은 진정어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권력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과연 사람인가?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비교적 명료한 인권의 가르침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사람의 권리를 토대로 만들어진 근대국가의 정당성은 분명하게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에서 나온다. 우리 헌법에서도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이 사람임을 확인하지 않는 정부,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는 이미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 인권에서는 그러한 정부와 국가권력을 위해 친절하게도 ‘압제에 저항할 권리’를 확인하고 있다. 왕에게 독점된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되돌리면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 중에 하나다. 실제로 인권은, 사람이라는 확인은 사실 그 어떤 것도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예외 없이 모두가 인정투쟁의 결과물이었다. 사람다운 삶을 보장하지 않아 사람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는 자본과 권력을 향해 끊임없이 ‘우리도 사람이다.’는 저항을 통해 얻어진 결과였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 아닌 국민’인 우리에게는 지금 이러한 인권의 가르침이 절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를 향해 극히 상식적인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26 | 추천: 0
세월호 사태 진상규명과 대통령을 포함한 책임자 징계가 답이다.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부장 며칠째 제주에 머물고 있다. 한라산 서쪽의 한 중산간마을에서 지내고 있고, 여기에서 글을 쓴다. 제주의 중산간마을들은 과거 제주 4.3사건으로 씻을 수 없는 큰 상처가 남은 곳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는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지역에서 이동하는 모든 사람들을 사살하는 강경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중산간마을의 95% 정도가 불타버렸으며, 아이부터 노인까지 양민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당시 제주도민 10% 이상이 학살되었는데, 그 행동대장들은 바로 경찰, 군인, 그리고 서북청년회였다. 2003년 가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며 사과를 했다. 많은 제주도민이 눈물을 흘렸다. 반세기가 넘은 과거의 일이지만, 국정책임자의 진심어린 사과에 처절한 분노와 앙금이 풀렸던 것이다. 반면, 2014년 4월 30일 아침으로 돌아와 본다. 29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통령의 사과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오늘 청와대가 유감이라고 밝혔다. 국무위원들 앞에 앉아 나무라는 듯 한 태도를 보인 저 비공개 사과를 못 받겠다는 유가족들을 향한 경고 메시지다. 분노가 치민다. 4월 16일 사고를 결국 ‘사태’로 오게 한 국정책임자가 보여주는 저 비겁함과 무능함에 진저리가 난다. 결국 이번 사태는 무능한 정부, 비겁한 정권, 부패한 자본, 쓰레기 언론이 만든 것이다. 이것은 갑자기 생긴 건 아니다. 교묘하게 감춰져있던 것이 흉악한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희생이 너무 크다. 세월호 사망자와 유가족, 그리고 슬퍼하는 많은 국민들까지. 사진 출처 - 페이스북 무능한 정부. ‘안전’행정부로 바꾸면서까지 안전을 강조하던 박근혜 정부의 무능이 드러났다. 국민을 보지 않고, 박근혜의 입만을 쳐다보는 1인 권력 시스템의 결과이다. 관료들이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다. 사고 이후 상황대책본부가 보여준 모습이 이를 반증한다.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국방부, 해경 등이 보여준 건 우왕좌왕 부실한 초동대응이었다. 결국 사고를 사태로 키운 건 박근혜 정부인 것이다. 그럼에도 또 국가안전처 신설을 얘기한다. 답이 없는 무능한 정부다. 비겁한 정권. 청와대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있다. 구차하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데 관계없는 집단임을 자인한 것이다. 행정이 아닌 통치를 하고 있고, 국민을 섬기겠다고 하더니 결국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못된 집단임을 보여주었다. 실종자 300여명이 차가운 물속에서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 때, 대통령과 관료들이 수색 구조를 지연시켰다. 해경, 상황실 등이 보여주는 자료가 계속 거짓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진실을 계속 덮으려 하고 있다. 진실을 얘기하려는 이들에게는 윽박을 지르고 있다. 비겁한 정권이다. 부패한 자본. 구조가 계속 더뎌졌다. 유가족들과 민간 잠수부들이 계속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드러난 것은 해경 및 해양수산부 기관과 청해진해운, 그리고 구조팀 언딘이 보여준 정경유착이 포착되었다. 관료 퇴임 후, 해운조합 등 최고관리자에 등장한 해양마피아 커넥션이 드러났다. 돈 문제로 구조작업이 더뎌지는 비참한 현실도 목격했다. 더불어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해운과 모기업 자본들의 부실과 부정 운영도 밝혀졌다. 쓰레기 언론. 뭐 길게 쓸 것도 없다. 쓰레기 언론의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들의 입이 국민을 향해 있지 않고, 비겁한 정권과 부패한 자본에 쏠려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무능한 정부, 비겁한 정권, 부패한 자본, 쓰레기 언론 모두 처벌받아야 한다. 해운 회사 측에 모든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고로 진실규명과 더불어 국정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관계자들에게 모두 책임성 징계가 내려져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재발방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정홍원 총리 사퇴로 끝나서는 안 된다. 유가족과 국민들이 그 책임을 물으면 된다. 사고 후 동네에서 실종자 무사귀환 촛불문화제가 있었다. 눈물을 흘리던 동네 주민들이 준비했다. 지금 전국에서 촛불과 노란리본이 물결치는 것도 이와 같은 마음일 게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 때 발언으로 했던 얘기를 던지고 싶다. "이 못된 정부 개xx들아!"
2017-07-12 | hrights | 조회: 344 | 추천: -1
손상훈/ 소셜리서치앤멘토르 기획국장   제3세계나 오지마을을 돕는 '국제개발협력'에서 주목받았거나 이용되고 있는 '적정기술'이 한국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휴대용 빨대 정수기, 타이어 바퀴모양의 물동이 등 전기가 없거나 가난해서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나눔’에서 시작된 중간기술이다. 중간기술, 적정기술이란 개념은 대기업에서 만든 ‘하이테크기술’과 전통적인 기술의 중간을 말하고, 일본을 거쳐 번역되어 적당·적절하게 누구나 이용 가능한 기술이란 표현인 ‘적정기술’로 한국에 전해졌다. 한국에서는 개신교계 ‘국제구호, 협력’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들이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나 대기업 사회공헌기금으로 제3세계에 기여하였다. 또한, 2009년 국립 한밭대 홍성욱 교수가 중심이 되어 ‘적정기술연구소’와 ‘적정미래포럼’을 설립하여 '적정기술'을 본격적으로 알렸는데 이는 널리 사용해오고 있는 표현이자 기술 철학적 개념이다. (http://approtech.or.kr/) 위 사진 - ‘큐 드럼’. 물부족 지역에서 물을 쉽게 길러 오는 물수레. 아래 사진 - ‘라이프 스트로우’ 오염된 물을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빨대 모양의 휴대용 정수기 한국형 적정기술의 키워드는 '뽁뽁이'다. 비닐포장지이고 비닐에어캡이라는 근사한 말도 있는데 최근 몇 년 새 '붙이기'가 유행이다. 2002년 월드컵 때 빨간 티셔츠를 입고 나온 것처럼, 붙여보니 따뜻한 게 체감되고 난방비가 아껴지더라. 입소문을 타고 언론에도 나오더니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운 '전직 국무총리'보다 사랑받는다. 전통한지나 창호지가 전통기술이라면 대기업에서 만든 고효율 단열재가 하이테크기 이다. 하이테크기술은 당연히 비싸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쉽게 구매가능하고 동네 철물점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만 원대의 ‘뽁뽁이’가 생활지혜, 적당기술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적정기술의 유래는 간디를 존경했던 영국의 경제학자 슈마허가 중간기술이란 개념으로 시작한 기술철학이며, 유럽을 중심으로 출발했다. 적정기술은 1966년 개발도상국에 적합한 소규모 기술 개발을 위한 중간기술개발그룹, 즉 영국에 ‘ITDG(현재는 Practical Action)’라는 조직을 설립한 것이 현대적인 시초이다. 슈마허는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과 사람이 스스로 직접 만들거나 고칠 수 있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이라고도 한다. 제3세계, 오지에 사는 현지 사람들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수 있는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10%만을 위한 제품이 아닌 90%를 위한 기술이다.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통해 이것을 강조했다. 제어할 수 있는 적정기술을 통해 첨단기술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1970년 미국 카터정부는 국가기구까지 만들어 적정기술을 보급하려 했으나 정부가 바뀌면서 실패했다. 당시 미국의 적정기술주의자들은 ‘잘 만든 쥐덫은 산속에서 팔아도 찾아온다며 오판했다. 미국의 적정기 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고 외면당했다. 한국형 적정기술은 어떻게 될까. 대학 연구소를 제외하고, 농촌형과 도시형으로 나눠볼 때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과 ’마을기술센터 핸즈‘ 두 곳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농작물이나 시골집 난방을 위한 전환기술은 시골 군수의 지원과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작은손기술협동조합‘ 등 지역밀착형 전문가들이 결합되었다. 농촌이나 산촌에서 실험해 보거나 적당하게 시도하는 일은 도시보다 수월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다 험난하지만 말이다. 도시형 적정기술 사랑받을까 창동 마을예술창작소 창고 실내형 햇빛온풍기 워크숍_핸즈 홈페이지 http://handz.or.kr 그러나 세모녀 사건에서 보듯 ‘비인간적인 도시’에서 ’적당기술‘은 힘이 더 든다. 봉화에 귀촌하였다 최근 영등포에 자리를 튼 ’핸즈‘는 최근 몇 개 학교에서 실내형 햇빛온풍기를 제작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학생이나 특히 교사들의 관심이 뜨겁단다. 짧은 시간에 온풍기의 구조와 원리를 전달하고,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속에서 햇빛온풍기를 접근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하여 실내형 온풍기를 만들고 있다. 공간난방의 보조열원으로 유럽에서 하는 방법을 한국형으로 서울도시에 맞게 시도해 보는 것이다. 이 기술의 핵심은 창문에 걸어두고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볍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저렴해야 한다. 또 태양광 셀을 이용해서 공기흐름을 만들어 주고, 구체적인 성능과 온도를 확인하며 집안으로 들어 온 햇빛을 최대한 이용해보고자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핸즈’에서는 앞으로 더 단순화(경량화) 시키고, 효율도 높여나갈 계획이다. ’핸즈‘의 실험이 지속가능하도록 소셜리서치와 소셜펀딩을 통해 적극 도와주고 싶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68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2년 전 고향에서 초등학생이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범인이 잡히고 전모가 밝혀지고 난 후 사건을 다룬 기사와 인터넷 게시판에는 역시나 많은 수의 댓글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난 후에 흔히 볼 수 있는 지역을 비하하는 댓글 내용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시골마을의 면단위 이름까지 소상하게 밝혀주는 친절한(?) 언론사 때문에 근처 초등학교 앞에서 조그만 문방구를 하고 계시는 외삼촌과 숙모님 내외분이 선뜻 떠올랐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거의 잊힐 때쯤 다른 일로 전화를 드렸다가 숙모님께 그 사건에 대해서도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예상대로 동네사람들이 그 일로 엄청 분노하고 창피해 한다는 얘기를 거의 30여분 가까이 하셨다. 죽은 학생은 숙모님도 아는 학생이라 마지막에는 눈물바람까지 보이셨다. 시골마을, 한 학년에 한반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 주변이라 그 사건이 가져왔을 파장이 얼마나 컸을지는 굳이 숙모님과의 대화가 아니었더라도 대강은 짐작이 되었다. 말씀을 듣고 나니 피해학생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마을 주민들의 분노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고향에서 일어난 사건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왜 이런 끔찍한 사건의 언론 기사 제목은 항상 앞에 지역 명을 붙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사건을 상세히 보도해서 독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려는 언론 본연의 임무에 대해서 뭐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언론이 ‘서울살인사건’ ‘서울성폭행사건’이라고 제목을 뽑은 것을 나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런데 왜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에서는 지역 이름을 앞에 두고 제목을 뽑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혹시 언론사에 입사하면 신입기자 교육 때 사건 제목은 서울 외 지역의 경우에는 특정지역이름을 넣어서 뽑도록 매뉴얼이 되어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유력한 사건 용의자가 구속된 상황에서 사건 제목을 붙이려면 사건가해자의 이름 이니셜 정도와 사건유형 정도만 표기해도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경우 무슨 동이라고 해도 사건이 일어난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작은 규모의 시군단위 경우 동과 면단위만 적시해도 사건이 일어난 위치를 금방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이상으로 상세하게 위치를 알려주는 기사내용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도시생활의 특성상 자기일이 아니면 관심도 가지지 않을뿐더러 쉽게 잊히기도 하지만 아직 이런저런 연줄로 연결되어 있고 공동체문화가 남아있는 작은 시군단위에서 일어난 중범죄는 주변 사람들이 입는 상처도 여러 가지 면에서 크고 깊을 수밖에 없다. 우리 언론이 중한 범죄사실을 보도하는데서 이해할 수 없는 처사 중의 하나는 미성년자 피해자의 이름사용도 있다. 성인들 사건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미성년자 특히 초등학생이하 어린 피해자의 사건경우에는 피해 어린이의 이름을 붙여 ‘00이 사건’과 같은 제목을 붙이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피해자 아동의 이름을 인용한 ‘00이 법’을 제정하겠다고 호들갑을 떤다. 중범죄일수록 굳이 사건 이름을 붙이자면 가해자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야 할 것이고 그것도 피해자가 어린이라면 남아있는 가족들의 상처를 생각해서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범죄 사건이 크던 작던 간에 어떤 범죄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우리는 그 사건을 통해서 사회적 교훈을 얻고 다시는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 시스템일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특정지역과 특정인이 고통 받게 되는 시스템이라면 우리는 그 과정에 대해 한번 점검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경북 모 지역에서 일어난 어린이 살해사건의 제목은 역시나 지역이름이 앞에 들어간 ‘00 계모 사건’이다. 지역이름도 문제지만 ‘계모’ 역시 문제다. 친모, 친부 사건이란 기사 제목은 들어보지 못했지만 ‘계모’와 ‘계부’가 자식에게 불미스런 사건을 일으켰을 때는 어김없이 그 제목이 붙는다. 결혼하는 다섯 쌍 중 한 쌍이 초혼과 재혼, 혹은 재혼과 재혼의 결혼인 상황에서 재혼가족들이 저런 기사를 보는 기분은 어떨까 싶다. 언론에서 아름답고 훌륭한 미담기사가 많이 나오는 사회가 힘들다면 불편한 기사로 힘들어 하거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언론환경이었으면 좋겠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69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당 안팎에서 터져 나오는 비판과 철회 압력에 결국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8일 기존 입장에서 후퇴했다. 당 ‘전당원투표 및 국민여론조사 관리위원회’가 9일 여론조사와 전당원투표를 실시해 기초선거 정당공천폐지 여부를 50%대 50%으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합산한다. 조사 결과는 10일 발표할 예정이다. 안철수는 기자회견장에서 “국민과 당원이 선거 유불리를 떠나 약속을 지키는 정치에 대해 흔쾌히 지지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회견 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정치생명을 걸고 이번 문제를 돌파하겠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먼저 몇 가지 정리해야 할 게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나 안철수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무공천을 공약으로 제시할 때만 해도 나 역시 무공천이 지방자치를 위해 더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무공천은 보수 양당이 풀뿌리까지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도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상식처럼 여기듯이, 그저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게 깨지기 시작한 건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당공천폐지는 풀뿌리민주주의에도 반하고 정치발전에도 역행한다는 강력한 반론을 진보정당에서 고군분투하는 당직한테 들으면서부터다. 다행히도 당시 나는 서울시와 6개 구청 담당기자였다. 구청장과 구의원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틈날 때마다 정당공천에 대해 물어봤다. 대다수는 정당공천제에 부정적이었다. 거의 항상 등장하는 폐해는 바로 ‘공천권을 쥔 지역구 의원이 일삼는 전횡’이었다. 의원 사무실 뒤치다꺼리부터 선거운동원 노릇, 심지어 상납 얘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 표현했듯이 “지주와 소작인”관계였다. 아울러 ‘소속 정당에 따라 극한 대립을 일삼다 보니 구의회가 파행을 겪는다’는 의견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었다. 여성 구의원들은 대체로 정당공천을 지지했다. 풀뿌리 정치가 발전하려면 여성 등 사회적 약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기초의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91년 첫 지방선거 이후 여성 당선자는 전국을 통틀어 40명(0.9%) 뿐이었다. 1995년에는 72명(1.6%), 1998년에는 56명(1.6%), 2002년에는 77명(2.2%)에 그쳤다. 그런데 2006년 지방선거에선 여성 기초의원 당선자가 434명(15.1%)으로 늘었다. 2010년에는 600명을 넘어서면서 21.6%까지 치솟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2006년부터 도입된 지방의회 비례대표 제도가 있기에 가능했다. 비례대표제도란 말 그대로 100% 정당공천이다. 각 정당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노선, 지향점에 따라 비례대표 후보들을 내세우고 지지를 호소한다. 유권자들은 지지하는 정당과 노선 등에 따라 정당에게 투표하고 지지율만큼 ‘정당공천’을 받은 후보들이 국회의원 혹은 기초의원이 된다. 북유럽이나 독일처럼 정당명부 비례대표를 중시하는 선거제도를 가진 나라는 여성의원 비중이 높고, 그렇지 않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여성의원 비중이 낮다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현재 여성 구의원들은 거의 비례대표로 구의회에 진출했다. 그러므로 정당공천폐지는 여성의원 증가라는 개혁의제와 충돌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원과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지역구 의원 전횡도 모든 곳에서 공통된 얘기는 아니다. 지역구 의원이 누구냐에 따라 의원과 구의원의 관계는 천지차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생전에 김근태 의원은 도봉구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는데 그를 따랐던 한 도봉구 구의원에 따르면 김근태는 오히려 기초선거 출마자들에게 어떻게든 지원을 해주려고 노력했고 많은 지원을 못해주는 걸 미안해했다고 한다. 결국 현실에서 문제는 정당공천이 아니라 ‘지역구의원 공천’인 셈이다. 그건 정당공천을 강화하고 지역구 의원이 전횡을 일삼지 못하도록 ‘규제’를 가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정당공천이라는게 그렇게 오래된 제도도 아니다. 1991년 첫 지방선거부터 2002년 지방선거까지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이 아예 없었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한 건 두 번밖에 안 된다. 햇수만 따지면 정당공천을 한 것보다 정당공천을 하지 않은 기간이 더 길었다. 정당공천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은 정당공천 없던 기초의회가 지금보다 더 좋았던 옛 시절이라고 볼 근거가 하나라도 있는지 답해야 한다. 정당공천 없는 구의회와 정당공천 있는 구의회를 모두 경험한 현직 구의원에게 물어보니 그 분 대답은 “정당공천이 생기고 나서 더 좋아졌다”고 답했다. 그 구의원이 얘기해준 요지는 이렇다. 정당공천이 없을 때는 모든 구의원이 무소속이다. 하지만 빨간 넥타이 매고 다니는 무소속과 파란 넥타이 혹은 노란 넥타이 매고 다니는, 무늬만 무소속이다. 여성 구의원 얘기도 했지만 실제 지역 기득권층이 구의회를 완전히 장악하는 곳에서 생활정치는 다만 ‘지역토호들 생활을 보살피는 정치’일 뿐이다. 선거는 혼탁해지고 지역대표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정당 소속이라는 건 어쨌든 일탈을 제어하고 의원 간 경쟁을 유도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오히려 일당독재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당 색깔을 분명히 유권자들에게 알리는게 더 좋다. 의회가 맨날 싸운다며 비판하는 분들이 있다. 내 생각은 정 반대다. 오히려 더 많이 싸워야 하는것 아닌가. 영국이나 미국 역사를 보면 과거에는 의사당에서 의원끼리 주먹싸움, 심지어 칼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21세기에 직접적인 폭력은 불법이다. 그러므로 의원들은 말로 싸운다. 그게 정치다. 무상급식은 치열한 담론투쟁과 격렬한 논쟁을 거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만약 아무런 고민도 없이 무상급식을 실시했다면 언제라도 없어지는 취약한 제도가 됐을 것이다. 비판받아야 할 자들은 오히려 자기들은 깨끗한 척, 선량한 피해자인척 하며 자기 책임은 성찰하지 않는 언론과 국민들이다. 그런 맥락에서 1년 넘게 논쟁중인 기초연금은 더 많은 논쟁을 하지 않는걸 아쉬워해야 한다. 무인기 발견에 따른 방공체계 문제나 국정원·검찰 증거조작 사건, 국정원 선거개입, 늘어나는 자살률과 줄어드는 출산율, 핵발전소 안정성 문제 등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수많은 현안이 있는데도 국회와 지방의회, 언론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 많이 논쟁하고 더 많이 싸워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다만 그 논쟁이란 미래지향적인 방향이어야 한다는 분명한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정당공천 폐지는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게 정치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 정당공천 폐지를 새정치로 내세운 것부터가 비생산적인 논쟁을 촉발시켰다. 내 눈에는 차라리 ‘의원 공천’ 같은 걸 억제하면서 정당 차원에서 공정한 공천제도를 가다듬어서 제대로 된 후보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게 새정치에 가까워 보인다. 잠재적인 후보군을 조직해서 중앙당 차원에서 교육하고 훈련시켜 기초의원부터 경력을 쌓게 하고 장차 국회에 진출시켜 차세대 지도자들로 육성시키는 유럽 사회민주당 방식을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없고 경제성장도 없다. 정당공천 폐지는 정치를 부정하는 인식에 기반해 있다. 정당공천 폐지는 정치를 위한 초석인 정당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결과는 지역토호 강화로 귀결될 것이다. 아까운 시간을 많이 허비하긴 했지만 2006년 지방선거 같은 결과를 원치 않는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이제라도 정당공천 폐지 입장을 백지화하고 복지와 경제민주화 같은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으로 승부하길 기대할 뿐이다. 국민들에게 더 이롭고 정치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은 정당공천 폐지가 아니라 ‘정당공천 강화’라고 믿기 때문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1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   지난 주, 2조 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기업어음·회사채를 변제할 능력이나 의사도 없이 사기로 발행하고, 판매한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 동양증권의 정진석 사장 등에 대한 공판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직접적인 피해자만도 5만 여명으로 추정되는,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 사건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대법정은 만원이었다. 방청석 칸막이 앞에는 현재현 등 11명(주로 동양그룹 계열사 사장과 회계·재정관련 중요 간부)의 피고와 피고들을 대리하여 각각의 피고당 약 3명의 유명 로펌 변호사들과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부하’같은 어린 변호사들로 가득 했다. 칸막이 바로 뒤에는 ‘불황’이라서 기업어음·회사채를 발행해서 연명하고 있는 같은 처지의 자본들을 대신하여 눈과 귀, 때론 입이 되어 주는 언론·방송사 기자들이 재판의 귀추에 촉각을 잔뜩 세우고 있었다. 그 뒤로, 방청석 번호표를 나누어 받고, 철저한 검문검색 끝에 입장한 수십 명의 피해자들이 흥분된 얼굴로 입장해 앉았다. 맞은 편 꼭대기에는 그런 피해자들을 불안한 표정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는 판사들. 그리고 검사 약간 명. 그리고 우리센터 공동대표인 변호사와 나. 법원 경비가 “판사님께서 들어오십니다. 일동 기립!” 하니 모두가 일어섰다가, 판사가 좌정 한 후 “모두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니 재판정 모두는 비로소 자기 자리에 앉았다. “국기 하강식” 같은 ‘판사님 하강식’이 끝나자, 푸른색 수의 차림의 현재현 등 피고들이 입장했다. 그러자, 분노한 피해자들이 울부짖으며, “살인마”, “내 돈 내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등등의 절규를 토해 냈다. 그러자, 판사는 황급히 소리를 질러댄다. “거기 떠드는 사람 끌어내! 저기도!” 법원 경비들이 피해자들에게 우르르 달려들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통곡소리는 계속 커지고. 일부는 법원 경비 팔에 매달려 울고. 누군가 말했다. “판사님. 죄송해요. 한번만 봐주세요. 그 돈은 딸...” 그녀는 두 손을 모아 빌고 있었고, 얼굴에는 벌써 눈물이 범벅이다. 다른 쪽 방청석에서도 경비에게 끌려 나가면서 “다시는 안그럴께요. 현재현을 보고 너무 흥분해서요... 한번만..”, 신음처럼, 판사에게 빌고, 또 빌고, 한참을 빌고... 판사가 노여움이 좀 가라앉았는지, “그럼 이번만 봐 주겠습니다. 다시, 또 그러면 무조건 퇴정조치 하겠습니다!” 하며 경비들에게 풀어주라고 한다. 그리고 훈계를 한다. “억울한 심정은 알겠지만, ‘공정한 재판’을 할테니 믿고 기다리기 바랍니다.”라고. 조용해지는 것도 잠시일 뿐이었다. 검사가 ‘상환능력이 없음’에도 동양증권에 대한 피해자 일반의 신뢰를 이용하여 기업어음·회사채를 현재현과 정진석 등이 동양그룹이 공모해서 발행, 판매한 행위가 바로 사기죄에 해당된다며, 이를 위해 회계조작, 부실 계열사 기업어음·회사채를 매입한 배임행위 등의 범죄에 대한 공소장 요지를 발표하였다. 그 사기의 목적 - 사기범죄의 수익금은 현재현 일가의 동양그룹 지배권 유지의 비용으로 쓰였다 - 즉, 현재현 일가의 탐욕을 위한 제물로 5만여 피해자들이 쓰인 것이다. 변호사들과 피고들은 ‘미안하지만, 난 모르고 모든 것은 현재현이 했다’식의 공소장 부인을 하였고, 다시 현재현은 ‘사기의사는 없었고, 매각 등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쳐서 갑자기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결과적으로 피해가 발생했다, 따라서 그 결과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는 식의 변론을 이어 나갔다. 결과적으로, 11명의 피고들은 모두 범행을 부인한 것이다. 그러자, 곳곳에서 피해자들의 탄식과 한숨,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동양사태' 현재현 회장 등 4명 구속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현재현과 11명의 피고들이 유죄가 선고되어야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가능하다. 특히, 피해배상을 해야 할 자들이 감옥에 들어가야 소위, 동양그룹 사태가 해결될 것이다. 지난, LIG그룹의 기업어음 사기사건에서도 주범인 구자원 회장 등 대주주 일가들이 감옥에 들어가자 피해배상금을 내놓고 피해자들과 화해를 한 후, 피고들의 감형과 조기석방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거대 금융자본과의 투쟁에서 그런 승리를 쟁취한 것은 우리센터와 피해자들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검찰과 판사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검찰의 현재현 등에 대한 기소는 철저하지 못하다. 사기범죄 기간을 축소해서 피해금액을 축소하였다. 또, 동양그룹 사기사건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고, 특히 비자금 해외유출 의혹이 있는 이혜경 등 다른 일가들에 대해서는 구속은커녕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아울러, 동양그룹을 4차례 감사하고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식의 발표를 한 금융감독원, 위험한 등급의 기업어음 발행규제 조치를 6개월 이상 유예하며 그 실내용과 대상을 기관투자자들에게는 알렸지만 개인 금융소비자들에게는 비밀로 한 금융위원회, 대통령 해외순방 때마다 현재현을 동반하여 피해자들에게 혼란을 준 청와대, 산업은행 등 명백히 이 사건을 방조한 금융감독기관 관료들에 대해서도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난해 현재현 등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담당했던 여환섭 검사가 지방으로 발령이 났고, 2007년 “BBK사건”으로 곤란에 빠진 이명박 여당 대선후보에게 면죄부를 줬던 김후곤 검사가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 현재현 측의 변호사도 만만치 않다. 법조 브로커에게 뇌물을 받고 사건처리를 해서 구속된 최초의 현직 부장판사로 유명했던 조관행이 변호사다. 그런 자여서인지, “변론 준비기일”만 무려 한 달을 이례적으로 판사에게서 받아내어 “방어권”인지는 몰라도 재판 승리를 위한 시간을 철저하게 확보한 영악한 변호사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위현석 판사도 걱정이다. “대리점 밀어내기” 로 공정거래법 위반을 한 남양유업 김웅 대표에게 집행유예 선고, 일반 사업자에게 장애인복지회 명의를 빌려줘 수의계약을 맺도록 하고 수수료 명목으로 수억 원을 받아 사기죄를 저지른 단체 회장에게 집행유예 선고, 주식워런트증권(ELW) 거래 과정에서 불법매매로 백억 원대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 자본시장통합법으로 기소된 스캘퍼(초단타 매매자)들에게 또 무죄 고, 여성 피의자와 서울동부지검 검사실 등에서 성관계(그냥 전형적인 성폭력 사건으로 보이지만)를 가진 검사의 구속영장 기각 등등이 인터넷에서 관련 검색으로 뜬다. 아무튼, 판사도 걱정이다. 검사, 판사, 변호사 모두가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아서 재판이 걱정이다. 이런 종류의 우울한 재판을 겪으면 상념이 많아진다. 기소한 검사는 피해자의 고통에 통감하며 정의감을 가지고 대리할 수 있을까? 판사는 피해자가 겪은 상처에 합당한 벌을 가해자에게 내릴 만큼 현명한 지혜를 소유했을까? 전관예우(前官禮遇)의 대우로 고액의 수임료를 받은 변호사는 가해자를 위해 재판정 바깥에서는 무슨 일을 할까? 진정으로 공정한 재판은 있을 수 있을까? 법에 호소하는 피해자를 ‘밥벌이’ 수단으로 삼고, 두꺼운 법전 속 조야한 법 조항에서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찾는 작업에 능숙한 소수의 엘리트들에게만 재판을 맡겨도 되는가? 차라리, 피해자가 가해자를 재판하고 처벌하는 것이 더 공정하지는 않을까? 그것이 더 정의에 가깝지 않을까? 이런 고민은 역사 이래로 있어 왔을 것이다. 아마, 태초의 정당한 형벌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하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즉, 복수! 제3자 없이, 피해 - 가해의 당사자가 쌓인 원한을 해결하는 것만이 공정하다고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복수는 실제 피해보다 남용이 될 위험이 있고, 남용되면 새로운 복수를 불러왔을 것이다. 잘못하면, 모두가 절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위험을 피하고자 생각해낸 것이 공동체 성원 모두가 검사와 판사가 되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로마법 상의 “인민재판(judicia populi)” 일 것이다. 처음에는 구두변론 형식에 의하여 절차가 행하여졌으나, 뒤에는 비밀투표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다시 사문회(査問會)에 의한 절차가 제정되자 인민재판은 점차 제한되었고, 공화정이 폐지되고 제정기(帝政期)에 들어서서는 완전히 없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러시아 혁명 때 이 인민재판은 다시 부활했다. 인민이 직접 선출한 자의 손에 재판을 맡기고, 다수 인민을 배심으로 심리·처결하는 재판이었다. 중요한 것은 직업적 ·관료적인 법관이 아니라, 인민 중에서 선출된 자가 법관이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인민재판은 “빨갱이”들의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혁명이후 옛 소련이나 지금의 북한은 직업적·관료적인 법관들이 그들만의 사법기구를 만들어 ‘인민들에게 형벌권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인민재판의 중요한 부분인 판·검사를 인민들이 직접 선출하고, 인민들이 배심원으로서 직접 재판에 참여 하는 것을 지금도 제도로써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로스쿨을 졸업하면 모두 변호사가 되고, 다시 5년 정도의 경력을 쌓으면 판·검사로 선출될 피선거권을 가진다. 즉, 다수 인민이 선출한 자들이 판·검사가 되는 것이다. 더하여, 인민들이 재판 또는 기소에 참여하여 사실문제에 관한 평결(評決)을 하는 배심원 제도도 시행을 하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나라에서 이러한 “판·검사 선출제”와 “배심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처럼, 직업적·관료적인 판·검사와 돈만 아는 변호사들만이 재판을 진행하는 후진적인 나라는 지구상에 몇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법개혁”이란 것을 하여도 피해자들의 눈물이 그칠까. 그건 모르겠다. 이제 계절은 화창한 봄이 왔다. 하지만, 어떤 이는 그런 봄이 몹시도 ‘슬픈 법’이다. 특히, 사기피해로 이미 삶이 크게 망가진 이들에게는 슬픈 봄날일 것이고, 앞으로 해가 바뀌어 화창한 봄날이 다시 온다고 해도 슬프기만 할 것이다. 남당(南唐)의 망국 군주, 이욱(李煜)은 그런 봄날을 이렇게 노래(詞)했다. 그는 슬픔이 얼마나 많기에 동으로 흐르는 장강(長江)의 불어난 봄의 강물이 꼭 자신의 슬픔과 같다고 했을까.(問君能有幾多愁 恰似一江春水向東流.) 또, 맞이할수록 슬프기만 한 “봄날의 화사한 꽃들, 가을날의 밝은 달을 보는 이 세월은 언제나 끝나려는가? (春花秋月何時了 * 출처 :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64894 83 )”라고도 했을까. 오늘도 동양그룹 사기사건 피해자들의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는 피해당사자들이 직접 쓴 재판 참관기를 보며, 꽃피는 봄은 계절이 바뀌어 다시 늘 오지만 늘어나는 것은 금융피해자들의 슬픔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런 날들은 언제나 끝나려는지.
2017-07-12 | hrights | 조회: 384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지난 3월 10일부터 1주일 기간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25차 유엔인권이사회에 다녀왔다. 연 3회 정기적으로 회의가 소집되는 유엔인권이사회는 매년 3월 정기세션이 가장 길고 많은 인권 사안들을 논의하고 의견을 결정한다. 이번 25차 세션에는 작년 5월에 한국을 조사 방문했던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이 그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민변과 참여연대는 여러 시민단체를 대표하여 구두발언(oral statement)과 부대행사를 기획, 참석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이 처음 제네바행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나름 비장하고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상황은 계속 후퇴되고 있고,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권력 남용과 국내 정치개입으로 인한 사회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특히 소속된 단체와 많은 연관이 있는 검찰과 국정원의 간첩증거조작 사건은 굉장히 심각한 사안이었기에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국내의 상황을 정확히 알려야 하는 책임이 맡겨진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유엔인권이사회에 NGO들이 활동(개입)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회기 전 서면의견서(written statement) 제출, 회기 중 구두발언(oral statement) 발표, 비공식적인 부대행사(parallel event)를 개최로 3가지가 있는데 민변은 구두발언과 부대행사 개최, 그리고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유엔인권관련 특별보고관과의 면담을 주 활동으로 계획하였다. 첫 번째로 구두발언과 관련하여 인터넷 사전등록으로 민변과 참여연대는 3분간 발언을 배정받았다. 이에 민변과 참여연대는 총 6분의 시간을 활용하여 최대한의 내용을 담기위해 발표전날 종일 문구를 고치고 또 고쳤다. 최종 발언문에 민변은 국가보안법이 국제사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의적으로 적용하여 인권옹호자들의 활동을 위축하고 있고, 국정원 관련하여 간첩조작 사건과 국정원직원에 의한 민변 회원 3인 명예훼손 민사손해배상 청구 사례, 그리고 노동조합이 헌법상 보장된 노동권을 주장하는데 이에 대한 손배청구와 같은 경제적 압박을 이야기 하며 쌍용차 노조 사례를 담았다. 그리고 참여연대도 국정원의 대선개입, 정부의 종북몰이, 그리고 밀양, 강정에서 드러난 인권침해사례를 발언했다. 한국 정부도 뜨끔했는지 이후 답변권을 이용하여 국정원대선개입은 조사 중이고 국가보안법은 자의적 적용되지 않으며, 간첩증거조작 사건은 국제인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생뚱맞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음으로 국제인권단체, 인종옹호자 특보와 함께 아시아에서의 인권옹호자 상황을 주제로 한 부대행사를 이사회가 열리는 회의장 바로 맞은편에서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는 생각보다 많은 유엔 관계자와 국제인권단체 담당자들, 주제네바 한국대표부 검사, 그리고 다른 국가 대표부 사람들이 참석하였는데 이 자리를 통해 한국 단체측은 최근 인권옹호자 관련 웬만한 이슈는 다 발표하였다. 각종 법률의 악의적 적용(집시법, 국가보안법, 기부금품법 등), 손배청구, 벌금부과와 같은 경제적 압박, 공권력의 과도한 물리력 사용, 경찰의 자의적 집회 시위방해조치, 종북몰이, 국정원 등 정부기관과 기업의 광범위한 사찰, 국가인권위 이슈들을 발표하였으며 사전에 준비된 영상물과 PPT를 적절히 사용하여 시각적 효과도 높였다. 한국의 경제적 수준으로 인권상황을 예상했던 많은 참가자들은 눈앞에 보여 지는 여러 참담한 모습에 당황하고 우려하였다. 특히 국가인권위 관련하여 인권옹호자 특보는 단호하게 국가인권위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사진 출처 - 필자 이후에도 삼성직업병 피해자 사례를 진정했던 건강권 특별보고관 담당자 미팅, 집회결사 특별보고관 미팅, 인종차별 관련 특별보고관 미팅, 과거사 특별보고관 담당자 미팅 등 유엔 주제별 특별절차상의 특별보고관 또는 담당자와의 미팅을 가졌으며, 이를 통해 한국의 다양한 인권이슈에 대해 전달을 하며 유엔차원 관심과 협력 방안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솔직히 이번 인권이사회 참석을 통해 기존의 조약기구와 UPR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 그러면서 인권이사회가 조금은 NGO들에게 불친절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권이사회에 NGO가 참여할 수 있는 방안들 중에는 구두 발언이 중요한데 구두발언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인터넷상 선착순 신청을 해야 하고 최종 확정은 직접 유엔인권이사회에 와서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제네바가 서울 옆 수원도 아니고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NGO로서는 너무도 부담되는 금액과 시간, 노력이 필요한데 직접 오기 전에는 구두발언 자체가 불확실한 시스템이 무척 불편하고 불친절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지만 이번 참석을 통해 인권이사회에서 NGO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해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번 1주일간의 시간은 좀 더 NGO로서 유엔의 다양한 인권구제절차를 어떻게 협력하고 나갈 것인지에 대한 숙제와 고민을 던져준 시간이기도 하다. 다녀오고 나니 정리하고 추후 작업해야할 것이 또 산더미이다. 다시 일상에 파묻힌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7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기자   아직 나무에 움도 트지 않은 겨울 끝자락에 찾아간 지리산 언저리. 버스엔 아무도 없었다. 적막한 버스 안에서 운전하는 아저씨와 둘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아저씨는 왜 아무 볼 것도 없는 이 겨울에 지리산을 찾아 왔냐고 물었다. 별다른 의미는 없었기에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때부터 아저씨는 한참동안 지리산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쪽 동네는 구례의 산수유가 만발하는 3월 말부터 가장 아름답다는 얘기부터 전주부터 구례까지 섬진강 줄기를 타고 벚꽃이 만발하는 길이 장관이라는 것까지 버스가 지나는 길목 길목 마다 아저씨의 안내가 이어졌다. 적막한 산골을 오가는 일이 심심했던지 아저씨는 번호 하나 저장해 두고 지리산에 올 일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말했다. 나는 무심코 “아저씨 그럼 명함 하나만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아저씨는 “버스 기사한테 명함이 어디있느냐”고 답했다. 아저씨는 그냥 ‘지리산 버스 아저씨’라고 저장해 두라 했다. 하루에도 십 수 명의 사람을 만나면서 명함을 주고받는 것을 일상적으로 여겼던 내게 아저씨의 대답은 괜히 나를 부끄럽게 했다. 생각해 보니 세상엔 명함 없이, 별다른 직함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저씨의 모습에서 두부를 파는 내 부모님이 스쳐지나갔다. 모르긴 몰라도 평생 명함 한 장 파본 적 없이 60년을 살았을 거다. 사진 출처 - 매일신문 일을 하면서 만나는 어떤 이는 각기 다른 조직과 직함이 박힌 명함을 두 세 장 씩 주는 이도 있었다. 명문대를 졸업한 어떤 이는 명함에 출신 학교의 로고를 박아 두기도 했다. 명함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름과 연락처를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자신이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인지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초면에 명함을 주고받으면 큰 고민 없이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명확해 졌고, 자연스럽게 서열(?)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했다. 소개하고픈 직함과 경력이 넘쳐흐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별달리 내세울 것 없이 그냥 ‘아줌마’, ‘아저씨’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명함 하나 파는 거 그다지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만 어느 경우에 있어서는 처음 보는 낯선 이들에게 서로의 신분을 꺼내놓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명함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는 명함을 주고받는 순간이 퍽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명함을 통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느 지위에 있는지, 사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상황까지 가늠한다고 한다. 명함은 그 사람의 얼굴이니, 작은 이력서니 하는 얘기들도 들어봤다. 그래서였는지 지나치게 자신의 이력을 구구절절 다 적어 둔 사람이나, 자랑스럽게 학력까지 새겨 둔 명함을 받으면 ‘과시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명함 한 장으로 사람의 여러 가지를 짐작하고 판단하는 사회에서 이름 한 번 알려본 적 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내세울 만한 게 없다는 그들이지만 빛도 들지 않는 세상 구석구석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성실히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어떤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있을까? 명함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름은 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79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이케아 세대’라는 말이 있다.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 유학을 경험해 해외 문화에 익숙하고 높은 안목을 지니고 있으나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세련됐지만 내구성 약한 스웨덴 가구브랜드 이케아’로 절충해 2년마다 거처를 옮기며 살아가는 30대를 뜻한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가 만든 이 말은 “치솟는 물가에 고용은 불안해 결혼, 출산, 양육, 내집 마련 등 어느 것 하나 온전히 감당하기가 버거운” 세대를 상징한다. 전 교수는 <이케아 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녀가 재화일 수는 없지만 출산이란 선택에 유무형의 경제학적 함수가 동원된다면 ‘무자식 상팔자’ 판단은 단언컨대 옳다.” “걸어야 할 사막은 넓어지고 짐도 무거워지는데 새끼를 낳으라고 재촉하면서 아이에게 젖줄 시간도 주지 않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한국나이 35살 결혼 4개월차 여성 앞에 닥친 인생 최대 고민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 내 인생은 통째로 바뀌게 될 거라는 건 주변을 통해 수없이 목도해온 바다. 그 선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친정·시댁 할 것 없이 지난 설에 만난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빨리 아이를 낳으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결혼 뒤 출산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며, 요즘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분노’ 비슷한 감정까지 느끼고 있었다. “애 키우기가 힘들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철없는 짓” 혹은 “자기만 생각하고 가족이나 사회는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짓”으로 여기는 듯했다.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아니 낳지 않는 쪽으로 사실상 마음을 정한 나와 남편은 졸지에 이기적인 사람들로 낙인찍혔다. 사회에서는 아이를 일부러 낳지 않는 부부를 ‘딩크(DINK)족’으로 분류한다. Double Income No Kid. 즉 아이는 낳지 않으면서 수입은 두 배로 챙기는 맞벌이 부부란 뜻이다. 이 단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돈 많이 벌어서 여행을 즐기고 풍족한 삶을 영위하며 본인들만 잘 먹고 잘 산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어르신들이 보기엔 우리가 바로 딩크족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억울하다. 우린 이기적인 딩크족이 아니다. 결혼해서 수입은 2배로 늘었지만 전혀 풍족하지 않다. 하루하루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살아낸다. 두 사람 모두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노동현장에서 시달리느라 아이를 낳을 여유도, 그 아이를 키울 여력도 안 된다. 남들보다 눈을 한껏 낮춰 저렴한 전셋집을 구했지만 여전히 빚이 있고, 2년 뒤 더 나쁜 환경의 집으로 쫓겨 가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돈을 모아야 한다. 집을 구할 때 부동산으로부터 “주인이 아이 있는 부부는 안 된다더라”는 얘기를 들었으니, 아이가 생기면 다른 전셋집을 구하기도 벅찬 일이 될 것이다. 고독사, 부부동반 자살 등 노인 빈곤에 대한 뉴스라도 나오는 날이면 “죽기 직전까지 ‘인간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젊을 때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위기감이 작동한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은 생존에 대한 ‘위협’일 뿐이다. 당장 지금 상황에서 아이를 낳으면 빚이 늘어난다. 건강보험관리공단에 의하면 임신부터 출산까지 드는 비용은 200만원이다. 거기에 나 같은 고령 산모에게 필수인 추가 검사는 하나에 1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산후조리원은 2주에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아이를 낳으면 키워줄 사람이 없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모두 써야 하는데 그만큼 수입이 줄어든다. 육아휴직이 끝난 뒤에는? 괜찮은 어린이집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야 하고 아이가 클수록 교육비는 늘어간다. 내가 자라면서 부모에게 얼마나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어깨가 더 무거워진다. 대학을 졸업한 뒤로도 대학원에 들어가 등록금 부담을 부모에 떠넘겼고, 심지어 유학까지 보내달라고 한 적도 있다. (물론 단칼에 거절당했다.) 대학원 졸업 후에도 취직이 안 되는 동안 생활비를 받았고 결혼할 때도 어느 정도 손을 빌렸다. 나 같은 딸을 낳는다면 우린 정말 파산이다. 더구나 최근 어린 자녀를 죽이고 스스로 자살하는 부모들에 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쯤되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더이상 ‘축복’이 아니라 ‘공포’다. 사람들은 말한다. 일단 낳으면 다 해결된다고. 어떻게든 키우게 돼 있다고. 자식 때문에 힘든 일보다는 기쁜 일이 훨씬 더 많다고. 그러나 이런 말들은 나에게 한없이 무책임하게 들릴 뿐이다. 출산·육아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프랑스는 “일단 낳으면 그 다음은 국가가 양육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다고 한다. 2007년 프랑스 대선에 출마했었던 세골렌 루아얄은 결혼하지 않은 채 4명의 자녀를 두었다. 당시 프랑스 대선을 지켜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이 바로 이점이었다. 대체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주길래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임신에서부터 출산 과정 대부분의 의료비가 무료고, 낳으면 격려금, 키울 땐 자녀 숫자별로 보조금이 나온다. 할인마트에 임산부 전용 계산대가 따로 있을 정도로 출산·임신을 배려하는 문화가 곳곳에 녹아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대선에서 한 후보가 내건 ‘저녁 있는 삶’라는 선거 슬로건 정도에 열광하는 상황이다. 더 이상 출산을 강요하지 말자. 한국의 커플들에겐 ‘노키드’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법칙’이다. 정부가 아이를 책임져줄 자신이 없다면, 출산을 통해 경제 성장률 높이려는 계획보다는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를 준비하는 게 훨씬 빠를 것 같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738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