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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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지난 2014년 여름 한 달 반 동안 자원활동을 했던 ISM(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 팔레스타인인권 국제연대단체)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전(前) ISM 활동가였던 케일라 뮬러(Kayla Mueller) 씨가 IS(Islamic State)에 의해 살해당했고,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난민을 위해 활동했던 그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고 팔레스타인에서 뵌 적은 없었지만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마감했을 그분의 마지막을 떠올리니 한동안 멍 하면서 가슴이 아렸다. 전 ISM 활동가였던 케일라 뮬러씨, 생전 ISM 숙소에서의 모습. 사진 출처 - ISM 홈페이지 IS에 의해 살해당한 사례는 케일라 씨 뿐 아니다. 올해 2월 초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이자 활동가인 고토 겐지 씨는 참혹하게 참수 당했고, 2월 3일 요르단출신의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 씨는 산채로 불에 타 살해당했다. 그 영상들은 Youtube에 공개되었고 전 세계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개인적으로 이 소식을 접하면서 힘들게 묻어두었던 김선일 씨 기억이 떠올랐다. 2003년 당시 김선일 씨를 참수했던 조직이 현재의 IS이다. 그리고 최근 한국인 한명이 IS에 가담하였다는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요르단은 IS 점령지역에 공습을 이어갔고, 미국과 이라크는 지상군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온통 IS이다. 2001년 9.11 사건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다. 침공을 개시한지 40일도 안돼서 미국은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종전을 선언한다. 미국의 승리로 마무리된 듯 했다. 하지만 진정한 전쟁은 미국의 점령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은 수도 바그다드와 주요 유전도시들을 장악하며 정치권력을 시아파에게 넘겨주었고 권력에서 축출되었던 세력들과 미국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던 중동 지역 일대의 무장 세력들은 이라크에서 무장투쟁활동을 하였고, 이라크내 다양한 종족별, 종파별 무장그룹들은 그 세를 키웠다. 점령초기 미국 및 점령군에게 집중되었던 공격은 2003년 후반부터 점차 이라크 내 정치인과 권력자들에게로 확장되었고, 2004년 중반부터는 특정세력이나 권력자에 집중되지 않고 자신의 종파가 아니면 공격하고 그 공격받은 세력은 또 보복을 하는, 모두가 모두를 두려워하는 극심한 혼동의 상태로 되어버렸다. 2003년 팔루자, 사마라,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그 세를 키웠던 IS는 2004년 미군의 팔루자 군사작전으로 인하여 수천 명의 이라크인들이 사망하면서 본인 활동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하였다. 하지만 이후 무슬림과 소수의 타종교인들도 살해하는 극단성을 보이며 당시의 알카에다 이라크 조직으로부터 축출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지속되면서 IS는 그 세력을 확장하였고 시리아와 맞닿아 있는 이라크 북부지역까지 점령하며 이 지역의 유전을 중심으로 수십 억 불의 자금을 챙기며 어마어마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신념과 목표에 반하는 세력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잔인하게 포로들을 살해하며 그 동영상을 공개하여 전 세계인들을 경악케 하였다. 이제 IS는 2003년 부시가 이야기 했던 또 다른 ‘악의 축’이 되었다. IS로 인하여 또다시 이슬람종교와 이를 믿는 무슬림들은 극단주의자들로 폭력의 종교로 오해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모든 무슬림 친구들은 IS를 규탄하고 IS의 어떠한 행동도 이슬람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는 광신도 극단주의자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IS의 잔혹한 영상과 메시지에 묻힌다. 2001년 이후 미국에 의한 ‘테러와의 전쟁’은 또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IS와의 전쟁이다. 언론을 통해 IS에 대한 비난의 수위가 높아진다는 것은 미국과 그 동맹국에 의한 지상군 투입의 시점이 임박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2004년 팔루자에서 그러하였듯 미국에 의한 지상군 투입은 한시적으로 IS를 이라크 몇 도시로부터 쫓아낼 수는 있어도 IS의 존재를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이스라엘을 지원하며 팔레스타인 점령에는 관심 없고, 석유와 군사기지 확대에만 관심 있는 미국이 존재하는 한 그 지역에서의 반미감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고, 이를 숙주로 삼고 있는 IS를 비롯한 여러 무장단체들은 그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부시 정권의 테러와의 전쟁은 역설적으로 전 세계를 테러와의 전쟁으로 밀어 넣은 계기가 된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31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대통령 박근혜는 2012년 선거 당시 각종 복지정책과 경제민주화 담론을 통해 적어도 복지정책 부분에선 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는 위치를 잡았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민주당보다 더 급진적인 복지정책도 내놨다. '모든 노인에게 소득과 상관없이'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던 기초연금은 사실 진보신당 의원 조승수가 대표 발의한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보다도 '과격'했다. 문제는 재원이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내세웠던 것은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축소, 세출구조조정이었다. 사실 '증세없는 복지'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부터 논쟁 대상이었지만 박근혜는 "증세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역사에 공짜는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증세라는 부담스런 정책도 피해가고, 복지공약으로 중도층 표심까지 얻는 전술은 선거에선 무척 성공적이었지만 선거 이후 실제 정책을 펴는 데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됐다. 사실 재정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근혜 대선공약이 자기모순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애초에 새누리당은 각종 복지공약으로 치장한 두툼한 정책자료집을 냈지만 자료집 어디에도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법은 적어놓지 않았다. 거기다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에선 활로를 못 찾고, 비과세감면은 지지부진하며, 세출구조조정은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과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모두 외과 수술하듯이 단번에 환부만 도려낼 수가 없는 문제다. 모두 전체적인 조세재정제도라는 큰 틀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신용카드 활성화와 현금영수증 제도의 의의를 과소평가하지만 두 제도는 세원투명성 강화를 통한 증세 효과 뿐 아니라 지하경제 양성화 효과도 적지 않았다. 당장 뭔가 대단한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비과세감면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큰 논란이 되는 연말정산이 바로 비과세감면을 통한 사실상 증세 효과를 위한 정책이다. 이를 두고 벌어지는 민심이반은 비과세감면이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잘 보여준다.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같은 사실상 대기업 특혜를 종료시키는 것은 좋은 정책방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정부의 지지기반을 건드려야 하기 때문에 선택하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세출구조조정은 더 어렵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포기할 수 있을까? 각종 도로건설 예산을 포기할 수 있을까?. 당장 국회와 지자체, 재계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한국 재정제도는 기본적으로 점증주의다. "예산항목을 원점재검토하겠다"는 선언은 정치적 수사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정책에선 원점재검토 대상일 뿐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조차도 선택과 집중 지점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다. 전략이 없으면 구조조정도 없다. 더 큰 문제는 복지와 무관하게 증세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11일자 신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수결손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경기침체도 원인이 아닌건 아니지만, 좀 더 본질적인 원인은 먼저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소득세 법인세 감세와 종부세 축소, 비과세감면 확대에서 찾아야 한다. 거기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정부가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과장하는 것이 세수결손 규모를 키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 '증세없는 복지'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데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증세없는 복지' 논쟁은 허깨비에 불과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증세없는 복지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복지확대를 안 해도 증세가 불가피한데 복지확대까지 하려면 당연히 증세를 해야 한다. 그걸 갖고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한국사회 담론지형이 왜곡돼 있는지 알 수 있다. '복지없는 증세'는 논쟁의 핵심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이 담론은 '증세를 할래, 아니면 복지를 포기할래'라는 대국민 협박에 불과하다. 이건 두 가지 면에서 혹세무민을 한다. 먼저, 연말정산 논란과 담뱃값 인상에서 보듯 정부가 이미 증세를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복지확대를 한 것인 양 눈속임을 한다는 점이다. 세대 간 불평등을 전제로 한 기초연금, 2012년에 여야합의로 확대한 무상보육 말고 정부가 무슨 대단한 복지확대를 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국민들은 왜 분노하는가. 복지패널조사 등 여러 조사, 무상급식 주민투표, 폭발적인 복지논의가 지배한 총선과 대선 등을 통해 보면 국민여론은 복지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는 곧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증세를 감당하겠다는 여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결국, 현재 논란은 '복지없는 증세'가 초래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해법은 '복지있는 증세'에 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28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   “13월의 보너스”, 세금환급을 기대했던 노동자들이 “세금 폭탄”을 맞았다. 노동자들은 열 받고, 시중 여론은 비등하였다. 정부의 설명은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서 불가피하게 일어난 일이고, 당장은 어렵지만 ‘소득재분배’라는 정책목표는 달성할 것이라며, 참으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당장 힘든 노동자에게는 분할 납부를 하게 해줄 것이고, 소급 입법을 통해 공제 항목들을 다시 원래대로 복원한다고도 한다. 급기야는 “대독 총리”라는 정홍원이 국무총리에서 물러나고, 야당과 협상을 잘한다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총리에 내정하였다. 그런데, 정초의 “담배세 인상”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세금이란 유사 이래로, 또는 본질적으로 계급 차별적’인 것이라는 것 말이다. 아무리 여론이 비등해도 대기업에 쌓여있는 천문학적인 유보금에 대해서는 “감세 정책”이라는 정부 입장은 완고하다. 그러면서, 세수부족분을 오로지 노동자와 서민에게만 전가해서 수조 원의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실질소득은 나날이 줄고 있지만 가파른 세 부담으로 등골이 휠대로 휜 노동자들에게 말이다. 한편, 이번에 세금폭탄을 맞은 노동자들은 주로 5인 이상 가구이거나 노후연금 가입자들인데, 이는 그동안 정부 시책과는 정면으로 배치가 되는 것이다. 이를 다시 조령모개(朝令暮改)식의 소급 입법을 통해 원래대로 본원 한다는데, 정부가 노동자, 서민에 대한 증세에 급급한 나머지 정책혼선, 신뢰붕괴를 자초한 것이다. 다음은 국민들의 노후생활을 위한다는 “국민연금과 각종 연기금, 공적기금”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난해 우리사회는 하반기 케이블 방송 씨앤앰(C&M, 이하 씨앤엠)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떠들썩했다. 드러난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의 문제이지만, 이면에는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공적 기금과 감독하는 금융기관의 수익성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케이블 방송 씨앤앰의 큰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2008년 호주의 사모펀드 맥쿼리와 정체불명의 MBK파트너스가 씨앤앰을 인수하는 것을 방송통신위원회가 승인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방송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의 위반사항이 분명하다. 씨앤앰의 다른 문제는 MBK파트너스가 인수방식인 차입매수(LBO : Leveraged Buy-Out)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장차 인수할 씨앤엠의 주식을 담보로 2조 1,500억 원을 신한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아서 인수했는데, 채무만기 때까지 씨앤엠의 수익금 상당액은 이 채무상환으로 충당될 것이므로 재정건전성 악화는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또한, MBK파트너스는 씨앤앰 뿐 아니라 한미캐피탈, HK저축은행 등 구내 금융기관들과 중국, 일본, 대만의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를 하고 있는데, 대개 신한은행 등 국내 유수의 금융기관들이거나 국민연금 같은 공적 연기금의 대출과 투자를 받아서 차입매수를 한 것이다. 국민연금 등의 수익성이 높아야 국민들의 노후가 행복한 것이고, 은행의 수익성이 좋아야 예금자 등 금융소비자들도 보다 많은 이자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다. 자, 국민연금 등의 수익성을 보다 더 높이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다 수익성 높은 사업에 투자해야 하는 것인데, 그 답은 고수익을 노리는 투기자본가(대체로 사모펀드의 운영자)에게 투자하고, 그 투기자본가들이 먹튀에 성공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를 뒤집어 보면, 어떤 노동자들의 노후를 위해 다른 어떤(보다 약한) 노동자들은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이러한 현상은 씨앤앰 뿐 아니라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기업체, 은행 등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연기금들도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서울 지하철 9호선에서 “세금 도둑질”을 한다는 투기자본 맥쿼리와 투쟁을 할 때 일이다. 맥쿼리는 주로 신한은행과 군인공제회의 투자를 받아 사회간접시설을 운영하며 수익을 낸다. 맥쿼리의 상무가 해명을 하겠다며 우리센터를 찾아와 “자신들이 투기자본이 아닌 이유”에 대해 말했다. 다른 말은 억지이거나 궤변이라서 다 반박을 했지만, 마지막 주장에서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투기자본감시센터의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 정부가 가장 큰 투기자본인데, 왜 작은 우리만 비판을 하는가!”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정부는 직접 운영하는 공적 기금과 관리하는 금융기관의 자금을 동원해서 투기자본-사모펀드에게 대출 또는 투자를 하고, 투기자본의 불법적 고수익을 정부가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정부가 곧 투기자본인 것이고, 정부는 국내 최대의 투기자본인 것이다! 해고자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인근 전광판 위에서 50일 동안 고공 농성을 해 온 케이블방송 씨앤앰(C&M)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지난해 말부터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겠다고 나섰고, 공무원노조와 노동운동계는 저지투쟁에 나섰다. 공무원노조의 주장이 대부분 공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억울하다는 그들의 주장을 이해한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으로는 “노후 보장”이 되지 않으므로, 모든 연기금을 통합해서 전체적인 국민연금의 “수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실상은 “개인부담금”으로 적립된 현실을 볼 때, 그 수급률을 높이는 것이 곧 투기자본의 먹튀에 전국민이 동참하는 것이라는 것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옛날의 어느 중이 했다는 “갈대 구멍으로 세상을 본다(葦管窺天)”는 말이 생각난다. 문제는 “복지”이다. 이 모든 것이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한 대통령의 사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단견이다. 복지라는 것은 본래 어떤 것인지, 특히 세금을 내는 노동자 입장에서 먼저 규명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끼리 세금을 더 내서 복지 수요를 충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먼저 드는 의문은 복지는 ‘있지도 않는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 빈곤이 현 체제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에 대비해 노동자들 중에 일부 극빈층들에게 약간의 위로금, 공적 서비스를 주어서 불만을 무마하려는 것일까? 즉, 국방비 같은 일종의 ‘체제 유지비’같은 것인가? 물론, 지금의 사회적 불만은 정부가 “근로소득세”를 내는 노동자들 여러 층위로 나누어 놓고, 보다 소득이 많은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그보다 소득이 낮은 노동자에게 약간의 보조금을 주는 것에 있다. 이를 두고 ‘소득재분배’라는 것이다. 일부 “운동권” ‘식자’들도 이런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은 “귀족노동자”의 욕심으로 일자리를 나누지 못해서 비정규직 양산과 청년 실업이 생겼다는 정부와 자본의 궤변이 확장된 것이라고 본다. 복지의 비용을 노동자들이, 노동자들 각각이, 또는 그 중 상위 소득자들이 부담하는 것, 자체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현대 국가들이 복지정책을 시행한 이유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같은 ‘노동자 혁명에 대한 예방’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후, 불황 속에서 유럽의 노동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중투쟁을 했다. 그때, 러시아처럼 국가권력을 내줄 수 없었던 유럽의 자본가들, 국가의 지배자들은 그 반대급부로 “복지”를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그 비용의 상당부분도 자본과 국가의 부담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근대적인 국가보험이라는 독일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도 당시 성장하는 독일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예방차원에서 노동자들에게 시행한 것이다. 즉, 복지란 노동자들이 강력한 투쟁을 통해 ‘자본과 국가로부터 쟁취한 권리’인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진짜 복지’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맥락의 “복지”가 논쟁 중이다. 주로 노동자 개인에게 세금을 지금보다 조금 더 걷어서, 한국의 노령화 사회와 저출산 문제에 대비하자는 식이다. 즉, 체제유지를 위한 노동자 재생산이 복지가 된 것이다. 마치, 지난 김대중 정권의 “생산적 복지”가 재현된 듯하다. 복지비용을 일종의 ‘체제 유지비’라고 하는 것은 복지의 유래를 생각해볼 때, 합당한 말이다. 그리고 그 체제 유지비는 당연히 현 체제에서 큰 수혜를 입는 자본이 전부 또는 대부분을 부담해야 옳다. “국민 모두가 공평하게 의무”를 져야 한다는 헛소리는 말아야 한다. “우연히 이 나라에 태어나서 그냥 산 것 뿐이고, 지금까지도 충분히 불공평한 이 나라가 뭘 더 나에게 요구하는가!”, “당신들의 나라, 이제는 당신들이 부담을 해서 지켜라!” 이렇게 주장하며 노동자는 싸워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8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요새 ‘세상은 엉망진창’이란 말이 유행이다. 말 그대로 그렇다. 새해 희망에 대한 얘기 대신에 오른 담뱃값에 대한 걱정이나 나이만 한 살 더 먹은 취업준비생들의 한탄, 안 그래도 낮은 출산율에 공포스러운 어린이집 구타 소식만 들려온다.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진보를 지지하던 이들은 지난해 말 이뤄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절망을 느꼈고, 중도층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부진함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보수층들이라도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돌부처식’ 반응에 그 공고하던 지지층들의 마음도 조금씩 금이 가는 중이다. 아무도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 새해는, 달력의 날짜가 바뀐다는 사실을 빼고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녁이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삶을 개탄하고 이 나라 정치를 비판하고 차라리 이민을 가고 싶다며 입에 쓴 소주를 털어넣는다. 알만큼 아는 사람들은 얘기한다. 정부가 어떻게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교통 사고’로 위장했는지, ‘정윤회 문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어떻게 ‘청와대의 개’가 됐는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논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찬바람 맞으며 굴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러나 그들은 또 얘기한다. 이렇게 한탄한다고 대체 뭐가 달라질까. 그래서 사람들은 몇 시간의 한풀이를 마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살아갈 채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월호 참사 현장이나 쌍용차 굴뚝 농성장이나 이 사회의 비참한 현장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어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의 존재가 미약하고, 조용하고, 언론에서조차 주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거기엔 사람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현장에는 사고 충격에 우왕좌왕하는 희생자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방향키를 잡아준 민변 변호사들이 있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청소라도 하겠다며 나선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도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폭식 투쟁의 조롱을 견디며 유가족들과 함께 단식에 나선 이름 없는 이들이 있었다. 쌍용차 굴뚝 농성을 응원하는 가수 이효리 씨도 있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얼음 바닥에 몸을 누이는 ‘오체투지단’도 있다. 상식 있는 헌법학자들과 민주주의 연구가들은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에 대해 ‘종북딱지’가 붙을 것을 감수해가며 그 결정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짚었다. 우리가 이들의 노력을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지난 1월20일 <한겨레 독자·시민 특강>에 나선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밭에 잡초가 너무 많은 것을 한탄하기만 한다. 아무리 잡초를 뽑아봐야 어차피 다 뽑지 못할 것이라며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서서 잡초를 하나라도 뽑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하더라도 잡초는 그만큼 없어진다.” 홍 이사장은 먼저 자신들의 주변에 있는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가진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부터 설득하라고 제안했다. 당장 몸을 치료할 의료비가 없어 걱정해야 할 이들이 ‘무상 의료’에 대해 말하면 “그 많은 돈을 나라에서 대주다가 나라 살림이 거덜나면 어쩌느냐”고 걱정하는 ‘아이러니’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권력자들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국민들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일 자신이 없다면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는 “지금의 정당정치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마음속 미래의 정당을 꿈꾸면 좋겠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조직에 참여해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권력 견제를 지속하면서도 대안 정당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세상이 더럽다고 해서 사회를 외면해버리지는 말자는 얘기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추이를 지켜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가 왔을 때 세상을 변화시킬 힘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그 잠재력의 다른 말이 바로 ‘희망’이 아닐까. 엉망진창 2015년, 그래도 ‘희망’을 놓지 말자.
2017-07-12 | hrights | 조회: 370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기자   여전히 안녕들 하신지. 1년 전, 안녕하냐는 한 대학생의 물음에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시 1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안녕하지 못하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정말로 안녕하지 못했다. 300명의 목숨이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 우리는 정말로 참혹했고 비참했다. 갑과 을,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갈등이 사람의 생명을 두고도 유효했다. 보편적인 ‘인권’ 조차 사회적 갈등 앞에 무너져 내렸다. 정치 논리와 이념적 대립 앞에서 본질은 없었다. 그렇게 2014년의 봄이 지났고, 다시 차가운 겨울이 올 때까지 사회는 매한가지, 변한 게 없었다. 땅콩 한 봉지를 두고 ‘갑질’하는 재벌 집 딸을 보면서 사람들은 손가락질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억울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을 은연 중에 다시 학습해야만 했다. 맞다가 죽은 이등병과 그를 짐승보다 더 못한 존재처럼 취급하던 병장처럼, 아주 작은 권력조차도 한국사회에서는 ‘사는 부류’에 있을 것인지, ‘죽는 부류’에 있을 것인지 그 위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돼버렸고, 지난 1년간 우리는 그 사실을 가슴 아프게 확인해야만 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갑과 을이라는 계급으로 촘촘하게 나눠진 현실에서는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 평등할 권리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높게 올라가야만 나를 지켜낼 수 있었다. 소수였지만 시민들로 이뤄진 하나의 정당이 허무하게 해체될 때, 담배값을 비롯해 온갖 세금이 오르면서 시민들에게만 부담이 가중될 때, 나는 정말 대한민국이 ‘나쁜 나라’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약자들은 권리를 보호받는 것을 기대하기는커녕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권력은 힘없는 ‘을’들의 서글픈 눈물을 짜내 유지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현실은 ‘나쁜 나라’의 모습이 지역사회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뉴스 속에 나오는 거물급 인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로 인해 살기 팍팍해진 보통의 사람들도 나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쁜 일들에 가담한다.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면서. 그렇게 살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사회인 것이다. 1년 전 지역에서는 멀쩡한 소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수억 원의 보험금을 타낸 보험사기 행각으로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150여 명에 달하는 축주들과 축협·낙협 직원, 수의사, 소 운반상 등이 수년에 걸쳐 조직적으로 가담한 일이었다. 이들은 소의 다리를 린치에 묶어 허공으로 들어 올려 걷지 못하게 만들었고, 수의사는 가짜로 진단서를 끊었으며, 축·낙협 직원들은 허위로 보험서류를 작성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건 가축재해보험을 담당하는 농협중앙회와 농림축산식품부의 부실한 관리와 감사 때문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취재·보도한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세월호 사고가 났는데, 선장과 승무원들의 대처, 선박에 대한 허술한 관리, 한 종교단체와 정치의 유착 등 캐면 캘수록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나는 부조리가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도 너무나 빼닮았다고 생각했다. 위부터 아래까지, 서울부터 지역까지 썩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남해안 최고 해돋이 광경을 자랑하는 전남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 일출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새해를 맞을 때마다 인사한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시라고, 내년 한 해에는 좋은 일 가득하시라고. 안녕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또 다시 해넘이와 해맞이를 앞두고 있다. 딱히 더 나은 삶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체념하듯 살아가지만, 그러나 여전히 꿈꾸며 인사한다. 부디 안녕하시길, 2014년보다는 행복하시길.
2017-07-12 | hrights | 조회: 314 | 추천: 0
허창영/ 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   ‘박원순 서울시장’과 ‘동성애’ 문제가 일으킨 파장이 아직 식지 않고 있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의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지향’을 포함할지의 여부가 본질과 다르게 동성애 문제로 번졌다. 보수 개신교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들은 ‘성적지향’을 포함하는 것이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이 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급기야 헌장 제정이 무산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헌장 제정이 무산된 것도 아쉽지만, 이 과정에서 보여준 박 시장의 태도는 그야말로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모임에서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이에 대한 ‘합의’ 없이는 헌장 제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이 크게 반발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직 서울시장이라는 엄중한 현실, 갈등의 조정자로서 사명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심경을 토로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지향’을 포함하는 것이 ‘동성애’ 문제로만 왜곡된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짚지 못했다. 오히려 그 자신이 ‘성적지향=동성애’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동성애를 포함하는 성소수자 문제가 지지 또는 반대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한 판단착오가 있었다. 인권의 기준에서 당연하게 인정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의 문제를 찬성 또는 반대할 수 있는 문제로 폄하했다. 이런 태도라면 다른 인권문제 역시 언제라도 반대가 많으면 포기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흔히 민주주의적 인권이 아니라 인권적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얘기는 현재의 박 시장에게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갈등’과 ‘야만적 테러’를 구분하지 못했다. 동성애 혐오는 ‘혐오범죄’일 뿐 다른 의견일 수 없다. 이를 갈등으로 이해하는 순간 인권의 진전은 그저 먼 일이 되고 만다. 서울시청을 점거한 ‘무지개농성단’은 면담을 거부하던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사과를 받고 농성을 마쳤다. 그리고 지난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시장이 아닌 시민에 의해 선포됐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많은 이들이 ‘박원순의 변심’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박 시장 개인이 과거와 태도를 달리했다는 것에 있지 않다. 박 시장이 과거에 인권변호사, NGO 활동가였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서울시장’이다. 그리고 그는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서 인권제도화를 열심히 추진했던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서울시는 이미 인권담당부서를 설치하고 인권옴부즈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공무원 인권행정 강령을 선포했고, 인권정책기본계획 역시 수립했다. 광주광역시와 함께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선도적으로 인권제도화를 추진해온 곳이었다. 하지만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포기함으로써 인권제도화에는 일정한 제동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헌장이 없다고 해도 다른 인권제도들은 유지가 되는 것이니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헌장 제정을 포기하는 것이 그저 헌장을 포기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 의문이다. 오히려 1기 박 시장 체제를 치장했던 ‘인권’이라는 포장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던 1기와 달리 보다 큰 어떤 그림을 위해 이제는 인권을 양보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2기 공약에서 인권이라는 말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의구심을 가중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에서 쌓았던 인권제도화가 모래성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자체에서의 인권제도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다수의 지자체가 인권조례를 제정하고 관련 부서나 위원회,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억압받고 소외받는 이들의 목소리였던 인권이 제도권의 언어가 되면서 마치 인권친화적인 지역사회가 될 것만 같은 착각을 갖게 만들고 있다. 물론 국가의 목적이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데 있는 것이니 행정이 나서서 인권을 얘기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영받을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양보할 수 없다는 인권의 본질이 행정에 녹아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인권이 다른 업무들처럼 양보되거나 합의의 영역으로 전락된다면 그것은 정치일 뿐 인권이 아니다. 인권제도화에 동의하고 있는 여러 지자체의 장들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구나 시민시장임을 내세우고 있는 모 지자체장은 인권 업무를 전임자의 색깔로 이해하고 이를 희석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본인 스스로를 인권전문가로 자임하면서도 인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선에 성공한 지자체장 중 2기에도 인권제도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인권을 전면화하기 보다는 인권을 내세우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모두들 인권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지지 또는 반대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지금이 중요하다. 하물며 인권변호사였던 박 시장도 흔들렸다. 인권제도화가 추진되고 있는 지역의 인권활동가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환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광주에서도 ‘성적지향’을 포함하고 있는 광주인권헌장과 광주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인권이 정치를 위해 그저 쓰고 버릴 수 있는 일회용품 정도로 취급되는 저열함에 희롱당할 수 있다. 지금이 지역에서의 인권제도화에 있어 가장 큰 위기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29 | 추천: 0
<모집> 평화길라잡이 8기 활동에 함께 하실래요?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부장   당신의 평화와 인권은 안녕하신가요? 물론 나에게도 되묻는 물음이다. 보통 우리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한다. 그렇다면 분단체제인 우리 사회도 평화롭지 않다. 더불어 소득격차 심화, 비정규직 증대, 인권 탄압 등 우리를 둘러싼 구조적 폭력들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그냥 지나쳐버린다. 심지어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무시하는 이들도 꽤 많다. 그러나 이는 당신과 가족, 그리고 우리의 삶을 더 불행하게 할 것이다. 평화(平和)와 인권(人權). 말 그대로 모두 쌀을 골고루 나눠먹고, 인간을 존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다르다. 오늘이 세계인권선언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다.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고만 한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이 논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얘기처럼,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살아간다. 정글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습들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그렇다면 다시금 반문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조금 더 평화와 인권이 숨 쉬게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약육강식의 논리인 정글만이 답일까? 그렇지 않다. 서로 존중하면서 쌀을 골고루 나눠먹을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을 우리 모두는 실천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인권연대 회원들은 그 작은 실천으로 인권연대를 후원하고 지지해주고 있다. 거대 담론을 다루는 것도 있어야 하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해가는 인권연대 회원활동도 너무 소중하다. 여기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또 다른 평화와 인권운동을 소개해본다. 바로 평화길라잡이 활동이다. KYC(한국청년연합) 사회단체가 10년째 추진하고 있는 평화와 인권 안내․해설 활동이다. 필자는 2005년 1기 활동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참여하고 있다.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남영동 대공분실 시민안내 해설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그동안 용산 전쟁기념관,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도 평화와 인권이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안내를 해왔었다. 필자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시민들에게 평화와 인권을 안내 · 해설하는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이 평화길라잡이가 이번에 8기를 모집한다. 1월 8일까지 접수를 받는다. 평화와 인권, 그리고 역사에 관심 있는 귀한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1월부터 8월까지 다양한 교육을 진행한다. 내용으로는 평화, 인권, 역사를 주제로 한 기본교육과 심화교육, 그리고 답사 활동을 펼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도 강사로 모신다. 자세한 교육 일정표는 아래를 참조하시면 되겠다. 또한 8월 교육활동 수료식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시민안내를 펼친다. 일반적인 도슨트가 아니라 시민들에게 평화와 인권, 그리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해주는 매우 중요한 해설활동이다. 매주 일요일 진행하나, 각자 길라잡이는 원하시는 시간 중에 월 1회 진행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평화길라잡이로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회참여활동도 함께한다. (참가 신청 및 세부내용 보기 : http://seoulkyc.or.kr/blog/admin/3342) 교육 일정표 사진 출처 - 필자 인권연대 단체 웹진에 타 단체 프로그램을 소개해서 어색하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연대가 담고 있는 소중한 가치인 인권정신의 확산을 고려해주시면 좋겠다. 세미나실에서 전문가들끼리, 교육장에서 수강생들과 우리의 평화와 인권을 지켜가기 위한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평화와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시민들과 만나가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매우 중요한 평화인권 운동이 된다. 평화길라잡이가 매주 일요일 평균 100여 명을 만나왔으니, 지난 10년여 동안 얼마나 많은 시민들과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나눴는지 짐작이 간다. 어린 아이부터 청소년, 그리고 부모세대들과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 분들까지 다양한 시민들과 현장에서 바로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끝으로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라는 문구를 강조하고 싶다. 이 땅의 평화와 인권을 지켜가고, 그 혜택을 받는 것은 우리 보통의 시민들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권력자 누구 하나가 결정하고, 또 그 혜택은 기득권만이 누려야하는 것이 결단코 아니다. 바로 지금부터 당신과 우리, 시민들과 함께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하자. 이것이 바로 반평화와 반인권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40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정말 이대로 한 해가 지나가려나 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무엇 하나 확실하게 밝혀진 것도, 재발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도 세워진 것이 없는 가운데 여전히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인명사고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데 말이다. OECD 가입국가중 노인자살률 1위, 노동자 노동시간 2위, 아동의 삶 만족도와 출산율 등이 최하위인 상황에서 최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율 역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결과에도 말이다. 군대에서는 잊을만하면 청년들이 죽고, 성추행을 당하고, 학대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지만, 책임자와 가해자들이 처벌을 면하기 일쑤인 상황은 거의 변함이 없는데도 갑오년 2014년은 야속하게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어 간첩사건을 조작하는 국가정보원과 걸핏하면 국가보안법을 들먹이며 민변소속 변호사까지 탄압하는 검찰의 행태는 새삼 달력을 봐야만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21세기가 맞는지를 알게 해 준다. 죽음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 아파트 경비원의 기사를 읽고 눈시울을 붉혔지만 얼마 후 그 아파트 경비직 모두가 계약해지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에서 우리는 돈만이 최고라는 신자유주의국가 대한민국의 결코 변하지 않는 속살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개선하고 변화시켜달라고 기대해야할 야당의 무력함 또한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큰 원인이다. 바라는 것이 꺾이는, 절망(絶望)의 순간들로 채워진 시간들이 시나브로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어두운 현실의 어디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어떻게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일까? 사회변혁에 대한 거대한 개혁담론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찾아야 할 구체적인 희망의 근거는 매일 접하는 소식과 가까운 주변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막돼먹은 국가정보원과 막무가내 검찰에 맞서 억울한 시민들의 인권을 보호해온 변호사들, 거대기업에서 일하다 죽거나 병을 얻은 노동자들을 위해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온 단체, 불평등한 벌금제 개혁을 통해 힘없는 서민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꾸준히 활동을 벌여온 단체, 복지국가의 비전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해온 단체, 4대강 사업의 허상을 파헤치고 보다나은 환경을 위해 힘써온 단체, 지역에 뿌리박고 지역과 지역민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온 단체, 그 밖에 사람들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써온 수많은 단체들과 이 단체들의 활동소식은 물론 정권과 권력의 탄압에도 굴함 없이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좋은 언론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눈을 들어 세상을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현실들뿐이지만, 그 속으로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그러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싸우고 연구하는 수많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상투적인 헌사로 들리겠지만 매서운 추위 앞에 선 현실에서 굳이 희망을 찾으라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여전히 움직이고 싸우며 변화하는 이 수 많은 운동단체들에게서 희망의 근거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몇 해 전 나온 김상봉, 서경식 선생의 대담집 <만남>을 보면 서경식 선생이 팔레스타인의 얼굴도 모르는 한 어린이를 위해 매월 얼마씩 후원하고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팔레스타인의 얼굴도 모르는 한 아이를 후원하고부터는 신문 국제면에서 보는 팔레스타인이 폭격 당했다는 기사가 그냥 넘어가지지 않더라는 서경식 선생의 말은 참 인상적이었다. 내 방식대로 해석을 하자면 말로만 외치는 연대보다 적지만 얼마라도 실질적인 후원을 동반하는 연대가 주는 구체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SNS를 통해 하루에도 수많은 사연을 접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인상적인 사연을 꼽으라면 한겨레신문 안수찬 기자가 전한 홍세화 선생의 사연이었다. 안 기자가 직접들은 바에 의하면, 홍세화 선생이 한 달에 이런저런 시민단체와 조직에 후원하는 금액이 70만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책을 판매하고 받는 인세 이외 정기적인 수입이 없는 분에게 한 달 70만원의 후원은 분명 무척 큰 금액일 것이다. 수입의 십일조 이상은 후원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던 나로서는 홍세화선생의 사연을 접하자마자 부끄러움과 존경의 탄성이 함께 나왔었다. 구체성과 대안이 없을 때 절망은 쉽게 현실화되지만 반대로 희망은 구체적인 연대성을 양분으로 성장할 수 있다. 희망이 지워지는 시대에 희망을 다시 만드는 제일 좋은 방법은 희망의 근거지를 만들어 가는 좋은 단체에게 후원을 하는 것이며, 단체에 대한 후원은 우리들 스스로도 희망이 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절망스러운 올해가 빨리 가기를 바라며 희망의 2015년을 준비하자’라는 상투적인 인사가 현실의 희망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남은 한 달 동안 좋은 단체 몇 곳에게 더 후원하고, 좋은 언론을 한 부 더 구독하자. 그것이 희망의 2015년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일 것이다. 홍세화 선생이 한겨레신문 구독을 권유하며 인용한 볼테르의 말을 빌려 글을 마친다.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 있는 자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65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2014년 11월 3일, 이집트 정부는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판사 56명에 대해 자격정지처분을 내렸다. 또한 미얀마(버마) 군사정권은 2009년 5월 18일, 아웅산 수지 여사를 만나기 위해 잠입한 미국인과 아웅산 수지 여사를 기소하고, 이들의 변호를 신청한 아웅 테인 변호사의 자격을 박탈하였다. 국제적으로 민주주의가 요원하고 권력이 독재화된 국가에서 양심수와 정치범을 비호하고 사법정의를 부르짖는 변호사들은 징계와 탄압의 대상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유사한 사례가 최근에 발생하였다. 2014년 11월 5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민변 소속 회원 7명(권영국, 이덕우, 송영섭, 김태욱, 김유정, 장경욱, 김인숙)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개시 신청을 하였다. 그 이유로 7인 중 권영국 변호사는 2013년 7월 대한문 앞에서 경찰을 밀치고 상해를 입혔고, 이덕우, 송영섭, 김태욱, 김유정 변호사는 동일한 시기에 경찰간부를 체포하고 상해를 입혔으며, 장경욱 변호사는 간첩사건 피고인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종용했고 마지막으로 김인숙 변호사는 시위참가 피고인(당시는 피의자)에게 ‘적극적’으로 진술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대한민국의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자타공인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다. 한국의 전직대통령의 운명도 본인들에 의해 좌지우지 될 정도의 기관인데 이런 검찰이 재판상 상대측인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신청하였다. 그리고 이미 권영국 변호사를 비롯한 5명의 변호사는 불구속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다. 참으로 어이없고 터무니없게 느껴진다. 검찰의 징계신청에 따른 민변 긴급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하지만 조금만 더 징계절차를 세밀히 따져보면 검찰의 의중이 파악된다. 절차상 대한변협에서 어떠한 징계심사 결정이 나온다 하여도 이 결정에 대해 징계개시신청인인 검찰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법무부 징계위원회에서 이 사안을 다시 다루고 자체 징계를 결정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법무부 징계위원회는 전체 위원 9명 중 6명이 법무부측(법무부장관, 검사 2명, 법무부장관 임명 3명) 사람들이다. 변협에서 검찰에 불리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최종적으로 법무부에서 징계할 수 있기에 검찰에게 변협 징계 신청은 꽤 괜찮은 수단인 것이다. 또한 검찰은 징계조사 및 심사, 법무부에서의 심의 그 지난한 과정에서 보수언론을 통한 온갖 흑색선전을 할 것이고 그러면 본인들이 목적으로 하는 바는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더 심각하게 우려되는 것은, 언론에 따르면 징계신청이 있은 시기에 검찰은 국가안보를 위해 증거를 쉽게 수집할 수 있는 애국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소위 국가안보를 위해서 검찰의 압수수색 요건이 완화되고, 위법하게 취득한 증거(도청 등)도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려 했던 것이다. 결국 검찰의 징계신청은 민변의 변호사들을 제압함을 외형으로 하지만 속내는 누구에게나 보장받아야 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무력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동안 변협에 의한 변호사의 징계는 소송의뢰인과 변호인과의 관계에서 제대로 계약을 이행하지 않거나 재판과정에서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는 변호사에 대해 진행되었다. 하지만 징계대상이 된 민변의 변호사들이 불구속 기소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안자체가 경찰의 부당한 집회방해 및 권한 남용에 따른 민변 회원들의 정당한 대응이었음이 서울지방변호사회 조사를 통해 밝혀졌고, 피의자에 대해 묵비권 행사 및 진술에 대한 변호인의 조력은 굳이 국제 인권기준을 차치하고서라도 국내 헌법상의 권리이기에 이번 검찰의 징계신청은 부당하다 못해 왜 검찰이 전면적인 개혁의 대상인지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조금 우려스러운 것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니 검찰 뿐만 아니라 보수언론과 종편은 연일 민변에 대한 흠집 내기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변호사가 경찰을 폭행하고 심지어 연행하였고, 간첩이 명백하고 범법자가 확실한데도 허위진술과 묵비를 강요했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민변은 나쁘다’라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각인하는 작업을 하는 듯하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먹힐 것이고 당분간 민변 앞에서 보수 어르신들이 꽤나 시끄럽게 집회하며 민변 사무처를 괴롭힐 것 같다. 그래도 검찰의 무리한 징계신청은 그 과정의 지난함과 주변언론의 공세로 한동안 힘이 들 수는 있지만 신청 내용의 허접스러움과 부당함으로 끝까지 유지되지는 못할 것이고, 또한 역사적으로도 권력에 의한 변호사에 대한 부당한 탄압은 인권변호사의 탄생과 다수 국민들의 지지라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민변을 포함한 여러 인권시민단체들은 이번 징계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 검찰에 의한 공안정국 조성 및 애국법 제정시도를 막아낼 것이다. 이 와중에 안타까운 것은 검찰의 월급을 우리 국민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세금을 내는데 이 돈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젠장...
2017-07-12 | hrights | 조회: 486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후속조치로 발의돼 국회를 통과했던 ‘유병언법’, ‘세월호특별법’, 정부조직법 등 이른바 ‘세월호3법’을 의결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 이후 216일만이다. 이에 따라 재난안전관리를 총괄하던 안전행정부는 출범한지 2년도 안 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국민안전처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은 모두 국민안전처로 흡수됐다. 국민안전처 앞에는 적지 않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세월호 참사 역풍으로 바닥까지 떨어지는 사기를 추스르고 재난안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기존에 재난안전 총괄기구였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 가운데 세월호 참사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이 국민안전처로 옮기면서 사실상 승진에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는 따가운 비판도 있다. 국민안전처 조직구성 자체도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크게 미흡해 보인다. 재난관리를 전공한 이동규 동아대학교 석당인재학부 원장에게 물어봤다. “한마디로 한지붕 세가족이고 ‘적과의 동침’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재난관리를 위한 일사불란한 총괄기구에 너무 초점을 맞춘 것 아닌가 싶다”면서 “당장 조직화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국무총리가 중앙대책본부장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어차피 총리는 대통령에게 보고를 할 테니, 결국 보고체계만 복잡해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이런 비판은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간판 말고 정부에서 바뀐 게 무엇이냐는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사실 그동안 정부여당에선 세월호 기억을 지워버리는데 급급했고 이를 위해 유족에 대한 인신공격과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유족들에게 언제라도 만나겠다며 특검과 특별법을 언급했던 대통령은 7월 지방선거가 끝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태도를 바꿨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사회를 바꿔놓은 가장 치명적인 변화는 안타깝게도 국가에 대한 신뢰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고 책임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스스로 훼손했다. 5월 대국민담화에서 각종 후속대책을 발표하고 대국민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정작 그 이후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후속대책은 정부·여당의 반대에 막혀 수개월간 표류했다. 4월 16일 하루에만 수십 차례 세월호 관련 보고를 받았다는 대통령은 정작 오후 5시쯤 중대본에선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물었다. 실종자들이 바다에 떠있는 게 아니라 침몰한 배 안에 갇혔다는 기본적인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에 출석해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발언함으로써 ‘사라진 7시간’에 대한 논란에 불을 붙였다. 그래놓고는 극우신문 산케이를 언론자유투사로 만들어주는 건 또 무슨 경우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기소를 할 거라면 조선일보 칼럼을 먼저 기소해야 할 텐데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대한민국 소음공해 1번지가 돼 버린 동아일보사 앞을 지나가는데 현수막 걸려있는 게 나를 웃겼다. “박근혜 대통령 성희롱한 산케이 지국장 구속하라.” 한국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마지막 기회는 아마도 세월호 특별법을 통해 내년 1월1일부터 최장 18개월간 활동하는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위)가 될 것이다.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규명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없다면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사회자본 침몰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2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