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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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현정/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부대표 ‘이명박근혜’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의 나쁜 정책과 부정 권력의 연속성을 비꼬는 말이다. 역시 최근에 환경문제에서도 또 드러났다. 바로 이 정부가 내놓은 ‘산악관광 활성화 대책’ 계획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산악관광이라 쓰고, 환경파괴와 대기업 정책이라 읽는다. 이명박도 대운하가 어려워지니 그럴싸하게 포장한 4대강 사업으로 30조 원 세금도 날리고, 심각한 환경파괴를 가져왔다. 지금 이 정부가 하는 짓도 똑같다. 강으로 향했던 삽이 단지 산으로 간 것이다. 휴양시설 확충, 관광사업 확대, 일자리 창출 등 언급하는 내용이 4대강 사업 시작과 영 똑같다. 이제 그 약발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저들은 또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러니 막아야 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제주도. 이곳 또한 환경파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자들 대다수는 제주를 청정의 섬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제주 또한 크게 신음하고 있다. 국제자유도시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제주는 현재 곳곳에서 환경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한 번 들여다보자. 지금 제주도정의 최고 비전은 국제자유도시 건설이다. 그런데 이 국제자유도시가 뭐냐. 바로 사람, 상품, 자본을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다. 자본의 무서운 폐부를. 자본은 심장이 없기에 결국 단기간에 최대 수익을 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지금 제주 환경파괴의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먼저 지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제주는 국제자유도시 1차 계획을 마쳤다. 제주를 홍콩, 싱가포르처럼 금융, 자본, 물류 항구를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 2012년부터 2021년까지 2차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외국자본 유입을 크게 확대하는 것이었다. 마치 마카오와 같이. 그러면서 랜드마크적 복합리조트를 제주 곳곳에, 특히 개발되지 않은 중산간 지역에 세우게 된다. 여기에 우근민 전 도지사는 외국인이 5억 원 이상을 제주에 투자하면 영구적 영주권까지 주는 매우 파격적인 특혜까지 제공하였다. 이른바 부동산이민투자제도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법인이 50억 원 이상 투자하면 각종 세금 감면과 국공유재산 무상사용까지 해주는 투자진흥지구제도까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희룡 도정은 버젓이 이것이 ‘제주의 환경자원을 활용한 창조경제 구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결국 중국 및 동남아 화교자본의 부동산 투기꾼들이 모였다. 이러면서 그들은 보다 큰 땅을 원했고, 보전 지역인 중산간 지역 곳곳에 분양형 콘도와 카지노를 짓고 있다. 울창한 숲이었던 이곳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무서운 것은 바로 카지노 사업이다. 기존 총 8곳의 카지노는 호텔 부대시설로 밀폐형 작은 규모였는데, 이제는 대규모 카지노를 운영하기 위해 숙박시설이 들어서는 것이다. 자본 입맛에 맞는 카지노 운영규모는 매우 커졌다. 드림타워, 신화역사공원, 이호랜드까지 카지노 설을립 준비 중이다. 결국 투자진흥의 결과가 제주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외국, 특히 중국의 투기로 이어지면서 제주도의 환경파괴는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이로 인해 토지 잠식과 난개발이 커져가고 있다. 도 행정은 외국인 토지소유가 제주도의 1%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한라산 등 개발제한구역이 많기에 1% 소유는 매우 심각하다. 도 행정이 매우 기만적이다. 현재 제주도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유명한 관광지인 송악산의 경우, 화산지대라서 지반이 약해 계속 무너져가고 있는데 중국자본 휴양지 공사로 30미터를 더 파겠다고 했다. 이곳이 절대보전지역인 오름임에도 이것을 해제시키고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에 다행히 재검토에 들어가긴 했으나 안심할 것은 못 된다. 남원읍 위미지역 공동장의 경우, 중국 자본이 단기 수익을 위해 싸고 넓은 땅인 중산간 지역을 개발하였고, 분양이 되지 않아 유령 마을이 되어 환경파괴 흔적만 고스란히 남아있는 형국이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해발 500m 중산간지역에서 아덴힐리조트 개발이 한창이다. 이 사업은 오름과 산방산 등 제주 천혜의 자연환경과 경관을 훼손하고 있다는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중국 투기자본에는 어둠이 많다. 중국 관광객이 폭증했지만, 결국 제주 내에 있는 중국업체들만 살찌웠다. 도민들에게 돌아간 것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제주에서 중국인 여행객 80여 퍼센트가 이렇게 운영된다. 저가로 많이 데려온 후에 중국업체 쇼핑센터로 데려가니 경제적 낙수효과는 크지 않다. 제주도정은 일자리 창출, 경기부양 효과, 건설업 소득증대 효과를 강조하지만, 매우 비현실적이다. 일용직 증대만 늘어났고, 오히려 투자진흥지구제도로 취득세, 소득세 등 감면 혜택이 더 크다. 경기부양 효과를 언급하지만, 하와이에서 원주민들이 일본 자본에 쫓겨나듯이 주민들이 중국 자본에 밀려날 수 있다. 현재 제주에 종합개발업체가 약 800여 곳인데, 공룡처럼 많아져서 부동산 거품이 사라지면 모두 공멸할 우려도 있다. 다행인 것은 최근에 반가운 판결이 나왔다. 서귀포 예래동 유원지 건설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결국 주민 공공복리에 기초한 유원지 개발계획이 필요하다는 점.. (중략) 이미 공사 중인 유원지를 제외하고도 공사가 진척되지 않은 유원지 사업에 대해서도 공익성이 확보된 유원지 계획이 다시 이뤄져야 한다.”고 원인 무효 판결을 내렸다. 현재 한라산 바로 밑의 산록도로 위쪽으로는 처음 개발되는 애월읍 상가리 관광단지 건설에도 제동을 걸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필자는 며칠 전 저지리 동네주민들과 함께 표선읍 가시리 마을을 답사하였다. 그곳이 지난 몇 년 동안 마을사업을 어떻게 이끌어왔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 살펴보고자였다. 마을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마을이 운영할 수 있는 공동소유 토지가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주변 마을 목장들이 골프장 등 개발사업에 모두 부득이하게 팔려갔다면, 이곳 가시리는 3명의 역대 이장들이 대법원 재판까지 가면서 약 220만 평의 마을공동목장을 지켜냈다. 재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을 오름 한 곳을 파는 아픔까지 겪으면서 주민들이 마을목장을 꿋꿋이 지켜냈다. 현재 가시리 마을은 이러한 공간으로 조랑말체험공원, 유채꽃 플라자 등의 다양한 마을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쳐가고 있다. 물론 사업 수익은 고스란히 마을에 바로 들어가는 구조이다. 여기에 환경까지 지켜가면서 말이다. 반면에 박근혜 정부는 환경파괴를 시도하고, 원희룡 도정은 환경 보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산악관광이라는 거짓 포장으로 산을 파괴하려고 한다. 막아야 한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지리산, 한라산 등 아름다운 국립공원들이 계속 파괴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현재 제주도 환경파괴는 위에서 살펴봤듯이 더 심각한 수준이다. 원희룡 도정이 재검토를 하겠다고 하지만 대책을 내놓는 게 없다. 제주도정이 몇 가지 과제를 바로 실천해야 할 때이다. 첫째로 국제자유도시 비전을 수정해야 한다. 이는 환경파괴와 투기자본 유입만 늘어날 뿐이다. 오히려 세계환경수도로 비전을 바꿔야 한다. 둘째로 기존 투자진흥지구와 부동산투자이민제도를 없애야 한다. 셋째로 도민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필요하다. 생태관광 확대만이 환경 보전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것이다.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 슬로건이 부끄럽지 않은 제주도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많은 것을 잃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 이 글은 2015년 8월 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80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초등학교 다닐 적 이맘때 여름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남해의 작은 섬에 있는 외가댁에서 며칠씩 놀다 오곤 했다. 그때를 기억하면 오가는 여객선에서 마주하는 섬, 바다, 하늘은 언제나 설레고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불러내온 기억 중의 하나는 여객선이 지나는 섬마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 아저씨다. 그분의 누런색 집배원 가죽가방에는 신문, 각종 고지서는 물론이고 아마 해안보초를 서는 군인들의 연애편지까지 담겼을 것이다. 내가 특별히 그 집배원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이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애인이셨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둘러맨 집배원 가방이 휘청거릴 정도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섬 이곳저곳을 다니는 모습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몇 달 전에 새로 이사한 사무실은 20층이 넘는 건물이다. 당연히 입주해 있는 각종 사무실도 이전 건물보다 훨씬 많다. 택배 물량도 많기 때문인지 1층 주차장에는 택배 차량의 주차와 이동을 원활하게 하려고 따로 지정 주차구역을 만들어 놨다. 승강기에서 만나는 택배 기사들의 모습은 언제나 비슷하다. 연신 땀을 훔치며 자신의 키보다 높이 쌓아올린 화물을 이동 수레에 싣고 열심히 운송장을 살피는 모습들 말이다. 얼마 전에는 한 택배 기사가 자신이 일하는 회사는 택배 업무 외에 물류작업까지 떠맡으면서 오전 6시부터 네 시간 이상의 무임금 추가노동에 힘들어한다는 사연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이런 사연 외에도 택배와 관련된 언론 기사는 과중한 노동시간, 불합리한 요금구조, 불친절 등이 주를 이룬다. 해가 갈수록 택배 물량은 늘어나는 데 비해 택배 회사의 화물처리량은 한계가 있다 보니 이를 택배 노동자들의 과다노동, 건당 택배 비용저하 등으로 대체하는 악순환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택배 화물은 하루, 적어도 이틀이면 도착한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턴가 택배 회사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비스개선이라는 명목으로 배달 속도경쟁이 붙으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책 같은 경우 오전 일찍 주문하면 오후에 받아보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된다. 이렇게 빨리 화물을 받을 수 있지만, 우체국 우편요금체계인 빠른 등기, 익일특급과 같이 빠르게 보낼수록 요금을 더 내는 일은 없다. 택배 회사에서는 좀 더 선진화된 배송시스템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택배 노동자의 고강도 노동은 애써 감추어 버린다. 언젠가 중고사이트에서 책을 주문하고 토요일이라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택배가 도착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배송조회를 해보니 배송 절차가 금요일에 멈추어 있었다. 그 택배 회사는 우체국이었는데 우체국은 토요일 배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주 5일제 노동자인 나는 그동안 타인의 주 6일제 근무를 너무나 당연히 수용하고 있었다(우정사업본부는 지난 6월 토요일 택배를 재개하겠다고 밝혔으나 노동조합에서는 1,000여 명의 인력을 감축한 상태에서 토요일 택배를 재개하는 것은 집배원 모두를 죽이는 정책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참세상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체제는 속도를 그 기본조건으로 하는 것 같다. 인터넷, 배달음식, 교통수단, 택배에서부터 심지어 아이들의 공부까지 선행학습이란 기묘한 이름으로 속도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내가 받는 질 좋은 서비스가 누군가의 고통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서비스는 부당하다. 불의하다. 택배, 인터넷, 음식배달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열악해지는 것만큼 빨라진 서비스라면 이제 그러한 속도에 의문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빨라지는 속도만큼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이 소외되는 사회라면 그것은 위험한 속도경쟁이 아닐까? 다시 기억을 옛날로 돌려본다. 검게 그을린 얼굴의 집배원 아저씨가 외가가 있는 섬에서 내린다. 언제나처럼 휘청대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마을회관에 들른 다음 이집 저집에 들러 우편물을 전한다.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온 우편물은 옆집에다 맡기고 늦은 점심을 국수로 때우는 집에서 국수도 한 그릇 얻어먹는다. 술판이 벌어진 가게 앞에서는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며 마지막 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여객선을 기다린다. 혹시 우리가 꿈꾸는 노동의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속도가 아니고 말이다. 이 글은 2015년 7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20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지난 6월 23일 서울에 유엔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 Office-Seoul)가 문을 열었다. 유엔인권사무소의 기원은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3월 21일, 유엔인권이사회는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침해관련 조사를 위해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DPRK)를 구성하였고, 이후 1년간의 조사활동을 통해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유엔인권이사회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인권이사회는 2014년 3월, 결의안을 채택하며,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권고사항에 대한 후속조치의 조속한 이행과 현장사무소 설치를 요청하였다. 이후 유엔인권최고대표실과 한국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서울에 유엔인권사무소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유엔인권사무소는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현황 및 자료 수집, 관련 시민사회와의 참여와 협력 등 중장기적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언론을 통하여 유엔인권사무소의 개소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드러났다. 북한의 경우는 이 사무소 설치에 거세게 반발 하며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그리고 한국 내 일부 진보단체는 개소 즈음한 기자회견을 통해 “체제대결을 부추기고 남북관계를 파탄 내는 북한인권사무소는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사무소 설치를 통해 한반도의 갈등과 긴장이 더욱 격화돼 보다 심각한 인권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에 보수 쪽 북한인권단체들은 “유엔(북한)인권사무소의 서울 개소를 환영하며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한다”고 지지의 뜻을 밝히는 성명을 연달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일부 진보언론에서는 “이 (유엔인권)사무소가 상징성 외에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어떤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며 “현실적으로 탈북자 인터뷰와 정리, 선전 외에는 북한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수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유엔인권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유엔인권최고대표인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여기서부터는 개인적 입장임을 전제로 이야기하면, 필자가 소속한 단체도 유엔인권메커니즘을 적극 활용하기에, 단체 내부에 유엔인권사무소 개소에 따른 입장(?)을 개인적으로 물었는데, 대부분 시큰둥하거나 입장 표명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국제연대활동을 하는 몇 분의 활동가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했더니 단체 내부입장과 비슷하거나 부정적인 경우가 더 많았다. 아마도 인권사무소가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미지수인 상황에서의 신중한 입장이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예측도 해보지만, 솔직히 그간의 경험에 오는 여러 우려는 떨칠 수 없었다. 사실 종북프레임과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는 한국 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고, 그 진위가 곡해될 여지가 많으며, 실제로 처벌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과 분단, 그리고 수 십 년 동안 남과 북의 정치체제를 비방하고 적대시하는 것이 상호체제 존립 근거가 된 특수한 정치적인 상황들이 존재하고, 이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인권으로만 접근하기에는 어떤 진일보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는 인식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류(?)의 논리와 해석이 틀렸다고 생각되지 않으며, 일리 있고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는 게 최선일까? 그리고 내심 ‘이러한 입장은 결과적으로 보수단체에서 주장하는 ‘북한인권에는 침묵하는’ 모습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하는 물음이 항상 존재했다. 한마디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물론 북한 인권 문제를 섣불리 이야기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 관련 여러 인권 사안이 터졌을 때 진보단체와 활동가들은 그에 상응하는 의견을 밝히고 입장을 표명한 기억이 있는가?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연평도에 포탄을 쏘았을 때, 장성택이라는 고위 관료가 공정한 재판과정 없이 자의적 처벌을 받았을 때 등 이런 주요한 순간순간에 소위 진보단체들이 적절하고, 일반 국민의 상식 수준에서의 부합하는 의견을 밝혔는지는 의문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종북프레임에 우리 스스로도 갇혀서 북한에 대한 여러 중요한 지점들에 대해 발언할 시점을 놓치고 또 이러한 모습에 역풍을 맞아 일반 국민들로부터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되지 않았나 싶다. 시민사회영역에서의 책임과 역할은 방관한 채 정치의 영역에 모든 것을 맡기려는 경향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북한에 인권문제가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여러 맥락을 잘 고려하여 현명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되 중요한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언급하고 요구해야 한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최대한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다른 국가들(이집트나 미얀마, 중국 등)에게 했던 것만큼이라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사회의 주장이 균형감을 찾고 힘이 실릴 것이다. 유엔인권사무소에도 탈북자들이 무조건 3~6개월 동안 국정원이 운영하는 기관에 감금되어 다양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현실, 국가보안법에 의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 및 기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상황에 대해 적극 어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유엔인권사무소도 한쪽으로 치우쳐진 정보로 인해 균형 잡힌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이상 북한 인권을 상대적이고 특수하게 바라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은 2015년 7월 1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84 | 추천: 0
허창영/ 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 우리사회의 여러 난맥상을 푸는데 중요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시민성 회복’이다. 여기서의 시민성은 윤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리의식에 기초해 책임과 참여하는 자로서의 시민의 자세를 의미한다. 시민성을 상실한 시민들의 사회는 결국 ‘복종하는 국민’들만 존재하게 되고, 역으로 국가는 더욱 굳건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핍으로 인해 도전보다는 안존을, 공적 이익보다는 사적 이익에 집착하는 개인들을 양산한다고 진단한다. 우리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한 이후 시민성을 갖추도록 하는데 소홀했다는 반성에서 나온 얘기이다. 이러한 지적에서 교육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교육 역시 성장하는 세대가 시민성을 갖도록 하기 위한 일정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시민으로의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답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다시 ‘어떻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지금 한국사회의 교육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시민으로의 성장은 읽고, 듣고, 쓰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다양한 경험과 도전, 비판과 성찰, 대화와 토론, 공간에 대한 경계 허물기와 넘나들기 등 복합적인 상호 소통과 교류로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 공간, 관계에 갇힌 한국사회의 교육은 시민으로의 성장보다는 복종하는 국민을 강요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정답을 찾는 데만 급급한 우리의 교육에서 시민으로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새로운 교육체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용적 변화’만으로는 새로운 교육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접근한다고 해도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다시 얘기하면 교육의 전환은 틀을 뒤집거나 판을 새로 짜는 사고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 얘기되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상상이자 시도이다. 교육을 위해서는 온 마을이, 또는 도시 전체가 교육의 공간 또는 교육자로 서야 한다는 얘기이다. 사실 ‘마을이 학교다’라는 말은 이미 상식의 언어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아직도 학교 안에 굳게 갇혀 있다. 설령 지역사회에 문을 두드린다고 해도 지역사회 역시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은 그저 학교 또는 교육당국의 문제로만 치부되고 있고, 마을, 지역, 도시는 외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학교 안에 갇힌 교육을 지역을 향해 열고, 도시 안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올바르게 실현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런 왜곡된 구조 속에서 아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5월 16일 열린 <2015 세계인권도시포럼> ‘도시와 어린이·청소년 회의’가 ‘도시와 교육의 만남 :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상상’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의 반영이었다. 교육을 학교 안에 가두지 말고 도시와 교육의 만남을, 마을학교 또는 마을교육공동체, 혹은 교육적 도시에 대한 꿈을 꾸어 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야콥 헥트는 위로부터 전달받아 아래로 전달하는 ‘피라미드식 교육’을 벗어나 ‘모든 학생이 선생’이라는 전제 아래 서로의 장점들이 상호 소통하는 ‘네트워크식 교육’으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학교라는 울타리는 무의미해지고 학습공동체 또는 ‘커다란 학교’로서의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기관, 교육기관, 지역사회, 시민 등의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후스토 멘데즈는 교육이 어린이청소년과 인권의 맥락에서 기획되어야 하며, 교육과 도시의 만남을 통해 자율성에 기초한 책임 있는 시민, 참여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교육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안교육은 삶을 바꾸지만, 공교육은 국가를 바꾼다.”는 기조였다. 화두는 던져졌고, 방향에 대한 공감도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막하다. 회의에 참가했던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올해부터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이날 회의에 패널로 참석했던 광주시청 참여혁신단장 역시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포럼이 끝나고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의사도 타진해왔다. 회의에 참석했던 시민사회 역시 의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나가기로 했다. 교육과 도시가 만나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다. 학생들이 닫힌 교문을 열고 지역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도시와 마을은 이러한 학생들에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할 과제가 남았다. 비록 지금은 막연하지만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될 일이다. 아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하고, 시민으로 살도록 하기 위한 전환의 길목에 우리는 함께 서 있다. ※ 이 글은 ‘광주교육정책연구소’의 소식지 <교육정책 공감톡톡> 2015년 7월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이 글은 2015년 7월 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93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프로리그나 국가대표 축구팀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역할은 어느 정도일까? 감독 하나만 바꾸면 꼴등하던 팀도 명문구단이 될 수 있을까? 혹시 감독교체 효과라는 건 사실 감독 교체가 주는 긴장감 때문에 선수들이 더 열심히 뛰었기 때문인 것이고, 감독의 역량 자체는 둘째 문제인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12년 전에는 사스 대응 모범국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국가가 12년 만에 메르스로 국제사회 민폐국이 된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예선탈락 뒤 홍명보 감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빗발쳤다. 결국 홍명보는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차범근이나 핌 베어벡 사례에서 보듯 큰 대회에서 성적만 나쁘면 재발하는 고질병인 '이게 다 감독 때문이야' 증세가 또 도졌다. 왜 현장 책임자만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감독인 슈틸리케가 보여주는 지도력과 위기관리능력을 보면서 현장 야전사령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메르스 대응을 위해 현장에서 뛰는 정부 조직을 축구팀에 비유해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내 눈에는 20여 년 전쯤 졸전을 펼치던 브라질 팀이 보인다. 당시 브라질팀은 뛰어난 개인기와 형편없는 조직력으로 욕먹는 팀이었다. 세대교체도 안 되고 동기부여도 안됐다. 축구의 기본인 패스도 안되니 경기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하지만 감독이 바뀌고 규율을 세우자 브라질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우승후보 면모를 금세 되찾았다. 메르스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 조직은 어떨까? 축구대표팀에 빗댄다면 브라질이나 스페인까진 아니어도 월드컵 16강은 거뜬한 수준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공무원도 많고, 그걸 받쳐줄 교육 시스템과 채용 시스템, 업무지원 시스템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단점도 많다. 메르스에서 드러난 전문 인력과 공공병상 문제는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예산과 정부규모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이 글 참조/ 자작나무통신-공무원 숫자가 적어서 문제다). 더 심각하고도 근본적인 건 외람되게도 ‘감독’ 문제다. 그건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부처 고위급과 대화하면서 들은 충격적인 사태분석과 맞닿아 있다. 그 분이 진단하길 “지시를 못 받으니까 일을 못한다”고 했다. 그는 “권한은 내리고 책임은 올리라고 했는데 지금 정부는 정반대”라면서 “권한이 없으니까 청와대 눈치만 보는데 정작 청와대에선 지시가 내려오질 않는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슛을 때릴 기회가 와도 감독 지시만 기다려야 하는 축구팀인 셈이다 (여기를 참조/ 자작나무통신-세월호와 용기 있는 공무원 죽이기). 안타까운 건 메르스 대응에 실패한 건 초등학교 축구팀이 아니라 국가대표팀이었다. 우리는 축구대표팀 경기에서 똑같은 선수들로 경기를 하는데도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경기력을 보이는 사례를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지시랍시고 “열심히 해! 패스해! 잘 막아!”라는 하나마나한 고함만 지르다가, 실점하고 패배하고 나서는 “선수들이 내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심 끝에 국가대표팀을 해체하겠다)!”라고 폭탄선언하는 감독 책임도 상당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17일 오후 세종시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세월호도 그렇고 메르스에서도 정부에서 가장 큰 문제는 컨트롤타워가 제구실을 못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정부에 지역 상황을 보고하는 데 각 부처마다 따로 보고서를 요구한다. 보고서 작성과 전화 보고에 몇 시간씩 매달리느라 정작 급한 일이 뒤로 밀린다”고 말했다. “유언비어 단속이 아니라 신뢰를 쌓아야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 ”는 훈수까지 나온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컨트롤타워라며 만든 국민안전처는 ‘투명인간’이 돼 버렸다. 국민안전처 한 과장은 “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구성하지 않고 법에도 없는 ‘대책지원본부’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중대본을 구성했더라도 메르스 사태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답했다. 다른 정부부처 한 과장은 이에 대해 “안전처는 중앙-지방 공조체계 구축을 위한 마땅한 수단도 없다”면서 “더 중요한건 그럴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그렇다고 정부 공무원들이 마냥 놀았느냐 하면 절대 그건 아니다. 대책본부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은 “밥은 모두 도시락으로 때우고 잠은 3시간 정도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한 고위공무원이 “현장 공무원들끼리 ‘자가격리되면 좋겠다. 집에서 잠이라도 푹 잘 수 있잖아’라고 농담하는 얘길 하는 걸 들었다”고 전했다. 비록 경기에 패배하더라도,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리뛰고 저리뛰는 현장 수들의 땀과 눈물 자체는 인정해주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 글은 2015년 7월 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65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TV조선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건 언론이 아니라 사회악이야.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조선일보를 세무조사해서 없애는 거야.” “보수 정권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그 이상으로 휘두르고 있는데 진보 정권에서는 그걸 제대로 못 했어. 진보는 권력을 좀 더 확실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해.” 최근 진보 진영 지지자임을 자처하는 지인들을 만나서 들은 얘기다. 스스로 소위 ‘깨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하는 얘기 치고는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놀라운 의견들이었다. 이들의 감정은 격해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거였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부터 시작해 세월호 사건, 정윤회 문건, 성완종 리스트, 메르스 사태까지 정부의 무능을 질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중도·진보 진영이 선거 때마다 지는 이유를 이들은 종편의 횡포, 한쪽으로 쏠린 권력구도 등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찾았다. 결국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진보도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정권이 당신들이 싫어하는 보수 정권과 도대체 다를 게 무엇이냐”고 되물었지만 이 질문은 그저 메아리로 돌아왔다.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이 한참동안 이어졌지만 결론은 없었다. 진보 진영이 민주주의를 위한 명분이나 지나친 도덕주의에 집착해 권력을 계속해서 잃느니 이것들을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은 다음에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권위주의에 대한 대안을 또 다른 권위주의에서 찾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반박은 그저 ‘교과서적인 주장’으로 치부됐다. 답답한 표정을 짓자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몇 년 전엔 너와 똑같은 얘기를 했어. 그런데 계속 그런 모범답안 같은 주장만 하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한심하고 답답하지 않아?” 최근 또 다른 지인은 <한겨레>가 쓴 성남시 비판 기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왔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성남시가 정작 지역 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자 이 사실을 11시간 동안 숨겼다는 게 주요 기사 내용이었다.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를 이유로 보수 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지인이 제기한 불만의 요점은 이거였다. “같은 진보끼리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 비판해서 보수 세력이 더욱 판을 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면 어떡하나?” 둘 사이에 저널리즘에 대한 논쟁이 한참동안 이어졌지만 역시 결론은 없었다. ‘팩트’에 입각한 기사의 중요성과 언론이 대상에 따라 이중 잣대를 들이댔을 때의 문제점을 설명했지만 그를 설득시킬 수는 없었다. 그는 끝까지 <한겨레>에 대한 서운함을 표시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이 싫어서일까. 진보세력을 싸잡아 ‘종북’으로 몰아가는 종편 채널이 꼴보기 싫어서일까. 보수는 무능하고 진보는 유능하다고 믿기 때문일까. 물론 이들을 아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오죽 답답하면 저렇게 말할까 싶다. 결국 이들은 노동자와 서민들의 고통을 보듬어주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해주며 국민을 속이지 않는 정의로운 정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바로 그들이 원하는 ‘진보적 가치’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 절차와 정당성을 지키지 못 한 채 권력만 마음껏 휘두르는 세력이 과연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까. ‘진보 세력’의 승리를 위해 원래의 목적이었던 ‘진보적 가치’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4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재보선 결과에 대해 사과하려고 마이크 앞에 서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누가 한때는 합리적이었던 나의 지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130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진보적 가치’를 뿌리내리는 데 실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이들은 아직도 ‘안티 박근혜’ 구호 뒤에 숨어 ‘사회·경제적 대안 없음’이라는 자신들의 무능력함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지인들을 포함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느낀다. 문제는 보수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92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취재팀장   최근 당진지역의 가장 큰 이슈는 매립지 관할권을 둘러싼 평택시와의 분쟁이다. 두 지방자치단체 해상 경계에 매립한 토지를 어느 지자체에 귀속시켜야 하는지를 두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소송을 청구한 상태다. 충청남도 당진시와 경기도 평택시는 아산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평택·당진항을 개발하면서 이곳 아산만에 제방을 쌓고 땅을 매립해 왔다. 1990년대 말, 당시에 매립한 토지를 등록하기 위해 평택지방항만청은 평택시에 토지등록을 신청했고, 이곳은 평택시로 등록됐다. 그러나 매립지는 해상경계상 충남도계 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당진시(당시 당진군)는 이에 반발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당진시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소송을 내고 4년여 간의 지루한 법정 싸움을 이어간 끝에 해당 매립지가 당진시 관할이라는 것을 확인받았다. 헌법재판소는 관습적으로 수백 년간 지켜온 해상경계를 확정하면서 당진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후에 매립된 토지와 제방 등은 헌재 판결에 따라 자연스럽게 당진시에 등록돼 당진시가 관할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최근 평택시는 다시 이 문제를 두고 행정자치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에 관할권 청구 심판을 요청했다. 평택시는 2009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을 근거로, 2009년 이후에 매립된 토지에 대해서는 행정자치부 장관의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해당 매립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택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접근성·연접성·행정의 효율성 등을 근거로 평택시에서 관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행정자치부는 평택시의 주장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서 판결한 매립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평택시 관할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당진시는 땅을 빼앗긴 억울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당진시대 행정자치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여러 가지 오류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몰지각과 지역이 계속해서 소외되는 수도권 중심의 정부 정책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한 국가에는 그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영해·영공이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자치단체의 행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 간 경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자치부는 이 같은 경계를 무시하고, 단지 지리적인 연접성과 접근성, 편의성 등을 근거로 해당 매립지를 평택시에서 관할해야 한다고 결정 내렸다. 이는 지방자치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곧 간척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국 곳곳이 간척과 매립을 통해 지형 자체가 상당히 변했다. 이에 따라 당진시와 평택시 간의 분쟁과 같은 갈등이 일어날 곳이 너무나도 많다. 헌법재판소가 수백 년간 이어져온 관습법상의 경계를 이미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자치부 산하의 위원회가 법리적 판단을 무시한 결정을 내린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훼손한 것이다. 지역민들이 수도권 중심의 정부 정책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 것은 단지 이번 사안 때문만은 아니다. 당진시는 ‘철탑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송전철탑이 세워져 있다. 그로인한 지역민들의 건강상·재산상 피해는 상당하다. 몇 해 전부터 정부에서는 당진 송악부터 아산 탕정까지 이어지는 송전선로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은 더 이상의 송전탑 건설은 반대한다며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5.5km 구간만이라도 지중화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한국전력은 비용 문제로 이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평택시 고덕산단에 조성될 삼성전자 반도체 단지에 필요한 전기 공급에 대해서는 38km 전 구간을 지중화(해저터널 포함)할 예정이다. 특히 이 구간 송전을 위해 변환소를 새로 짓고 발열과 전력손실이 적은 직류 방식으로 송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이처럼 일관성 없는 지역 차별적인 정부 정책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 완화로 기업유치가 둔화돼 경제적 피해를 크게 입고 있는 것 역시 지역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수도권,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여전히 지역의 자치단체는 정부의 법과 예산에 손발이 묶여 지역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지역민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는 송전탑이나 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 등의 환경 유해 시설들을 지역에 건설함으로써 지역을 계속해서 소비한다. 이 같은 지역의 현실을 정부가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지역과 함께 가는 정책을 펼치길 바라는 건 이 정부에 대한 너무 큰 기대일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362 | 추천: 0
이현정/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부대표   메르스 사태가 커져간다. 사람들이 크게 불안해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21세기의 풍경이 아니다. 마치 조선시대 역병 시대에 사는 듯하다. 사실 그 시대만도 못하다. 당시에는 동네에 금줄을 치고, 왕래를 막기라도 했다. 초기 대응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금도 비공개로 처리한다. 그리고는 괴담을 퍼트리는 자는 사법처리하겠다고 국민들을 협박한다. 박근혜 정부, 뭐 항상 이런 패턴이다. 세월호 사건도 결국 사고에서 사태로 키운 건 정부의 무능력과 강압통치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정치는 없다. 오로지 ‘통치’ 뿐이다. 국민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란다. 그리고 입법기관인 국회에도 나서지 말란다. 사법부는 정당 해산까지 시켰다. 그리고 대통령은 항상 유체이탈 화법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7시간이나 잠적해놓고, 왜 못 구하냐고 따지기만 한다. 역시 장기 독재집권자 딸이다. 그리고 그 경험에서 나온 작품들이 있다. 바로 대통령 곁에는 공안*안보*문고리 세력들이 득실거린다. 대선 이전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강조하던데, 도대체 무엇을 준비한 정권인지 알 길이 없다. 아, 그들만의 ‘영구적이고 지속가능한’ 통치를 준비한 것일지도. 메르스 사태가 커지면서 반대로 묻힌 것들이 많다. 굵직한 사건들마저 덮어준 꼴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 메르스 사태가 약간 진정되면, 박근혜 정권을 살려주는 계기가 된다고. 많은 곳에서 메르스를 언급하고 있으니, 우리가 지금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살펴보자. 단상 하나. 황교안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다.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메르스 사태 확산 속에서 유야무야 박근혜의 임명 강행이 이어질 전망으로 보인다. 현재 국민적 관심도가 낮은 상태에서 야당도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런데 황교안 총리 임명 저지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수상한 병역 면제, 세금 상습 체납, 지나친 개신교 보수주의, 불법 전관예우, 불법 변호사 수임료 등이 문제만이 아니다. 총리 절대 불가 이유는 바로 기춘대원군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즉 박근혜 정부 후반부는 공안 통치의 정점을 달리게 된다. 황교안은 근대현사 속에서 친일-친미-반공의 연결점인 김창룡, 노덕술, 이후락, 김기춘의 또 다른 아이콘이다. 이들이 벌렸던 일들을 봐라. 반민특위 해체, 국회 프락치 사건, 전쟁 후 시민 학살(부역자 처벌), 간첩 대량 ‘생산’, 각종 내란음모*국가보안법 처벌, 초원복집 사건, 민주 시민*학생*노동자 공안 처벌, 유신 헌법, 91년 유서 대필 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최근엔 정당 해산까지. 이런 공안 통치 역사를 이어가는 황교안이 국무총리가 되겠다고? 또 얼마나 많은 시민들과 야당 정치인들을 잡아 가두게 될까. 또 시민들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옥죌까. 그래서 우리는 황교안 총리 임명을 꼭 막아야 한다. 그들의 민주주의 법치는 국민을 향한 게 아니다. 오로지 공안 통치의 법치만을 따질뿐. 단상 둘. 박근혜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 사태와 세월호 시행령 문제이다. 국회에서 여야 절대 다수 합의로 통과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했다.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의 활동을 옥죄려는 정부 시행령과 이를 바꾸려는 야당의 문제제기와 기타 정부 시행령에 대해서 국회는 기존 통보 권한에서 수정변경 요구 권한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삼권 분립의 헌법에 위배된다며 묵살했다. 현재 청와대, 새누리당, 그리고 야당 등은 큰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총론을 다루는 국회에서 각론을 행하는 대통령 시행령과의 관계는 총론 국회법이 상위에 존재한다. 이러함에도 현 정부는 입법기관인 국회마저도 무시하는 형국이니, 힘없는 일반 시민들은 설 자리도 없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은 문제가 심각하다. 결국 도둑이 도둑을 잡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무력화시키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유가족과 국민들이 진실을 밝혀달라고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라, 그리고 괴담 유포자들을 처벌하겠다고 외친다. 지금의 메르스 사태를 대하는 태도와 똑같다. 역시 진정한 반성이 없는 귀머거리 정권이다. 단상 셋. 박근혜 대선*새누리당 불법정치자금 사건이다. 이는 성완종 리스트 프레임이 아니다. 분명코 박근혜 현직 대통령과 측근들, 그리고 새누리당 지도부의 불법정치자금 사건이 본질이다. 그런데 검찰과 보수 언론은 성완종 리스트 프레임으로만 짜맞춰가고 있다. 수사과정을 보면 뻔히 보인다. 이완구, 홍준표 만이 표적이다.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끝내려고 한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잠잠하다. 결국 홍문종, 서병수, 유정복,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의 친박 핵심 6인에게는 검찰이 서면질의서와 자료제출요청서를 보낸 게 전부다. 박근혜가 아직 살아있는 권력임을 증명한다. 물론 질의 내용도 해명성 답변만 가능한 것들이 즐비하다. 더불어 6명에 대한 계좌 추적도 하지 않았다. 검찰이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해괴망측한 해고를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상 넷. 우리가 또 잊지 말아야 할 단상들이 떠오른다. 헌법재판소에 이어 오늘 결국 대법원 판결로 전교조는 합법노조 지위를 잃게 되었다. 억울하게 해직 당한 조합원 9명 때문에 6만여 명의 조합원이 있는 전교조가 불법노조가 되는 현실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 비판 전단지를 뿌린 시민들이 검찰과 강력계에 의해 잡혀가고 있다. 허위사실 유포죄도 아닌 건물침입죄 명목 하에, 그리고 강력계가 나서는 형국이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수백 만 원의 벌금과 구속 형벌을 내리고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치명적이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더 치명적인 것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독선 통치다. 그러기에 더더욱 황교안 총리 임명을 막아야 하고, 세월호 시행령을 바꿔야만 한다. 단순히 총리 임명과 세월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민주주의와 삶의 질을 높여가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 또 기록하고 널리 알리자. 그리고 실천하자.
2017-07-12 | hrights | 조회: 359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오는 7월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다고 한다. 단순한 법의 이름만으로는 무슨 의도로 만든 법인지 짐작하기 힘든 이 법의 목적은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 법을 초안한 사람들은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이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꼴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 바로 떠오르기 때문에 이런 법을 만들었겠지만, 평범한 필부에 지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국가보안법 7조의 반국가단체의 찬양, 고무죄 만큼이나 모호하고 어렵기만 하다.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그것이 단순 교육을 통해 ‘육성’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하물며 그렇게 육성된 인성이 무려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놀랍기까지 하다. 궁금해서 인터넷 사전으로 찾아본 인성의 사전적 의미는 ①사람의 성품, ②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사고(思考)와 태도 및 행동의 특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성(人性)을 사람의 성품이라고 하던,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의 특성이라고 하던, 이 정의에 따른다면 한 사람의 인성이란 적어도 단시일 내에 규정되거나 길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 법의 시행에 맞춰 이미 ‘인성평가 자가진단표’란 것을 만들어 이번 학기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성을 진단하고 있다고 한다. 그 진단 항목 중의 몇 가지를 보면 “나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태극기, 무궁화 등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질문지에 전혀 아니다’에서 ‘매우 그렇다’까지 1점에서 5점까지 학생 스스로 매겨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학생의 인성을 진단하고 지도한단다. 이러한 질문지로 개인의 인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더구나 대학입시에서 인성·적성을 반영하고 수시모집에서 ‘인성면접’을 실시하는 대학이 생긴다는 마당에 자가진단표에서 1-2점을 선택하는 모험과 장난(?)을 할 학생이 얼마나 될까?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교육현장에 문제가 생기면 땜질식 처방이후에 시간이 흘러 사안 자체가 흐지부지 해지길 기다리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 관료들의 문제해결 특징이었다. 난데없는 인성교육진흥법 실시도 연이은 학생자살사건과 어린이집의 유아 폭행사건이후 일부 보수단체와 정치권의 주장으로 현실화 되었다. OECD국가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대한민국의 학생자살률과 어린이집의 유아보호에 대한 불안을 인성교육강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교육 관료와 정치권의 해법 또한 그동안 늘 해오던 임기응변식 처리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교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당사자인 학생은 혼란과 부담감만 더해졌고 혜택은 오히려 교육과 관련된 시장(市場)에서 가져갔다. 당장 이 법안의 통과에 따라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해야 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교육 업체가 ‘인성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교육부 인증을 따기 위해 경쟁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논술시험이 부활하면 논술학원이, 영어교육이 강화되면 영어학원이, 방과후 수업이 실시되면 방과후프로그램 전문기업이 돈을 버는 것과 똑같은 교육부와 사교육시장의 사이좋은 행진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하루 10시간 이상씩 공부에만 매달리는 과도한 입시경쟁체제와 그렇게 공부해도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미래와 사회구조 앞에 놓여 있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학생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놔두고 사교육시장에 의존하는 껍데기뿐인 인성교육을 외치는 정치인과 교육 관료들을 지켜보는 심정은 갑갑하기만 하다. 정말로 학생들의 인성(人性)을 키우고 싶다면 타인의 아픔과 처지에 공감하는 것을 힘들게 하고, 배우고 느낀 것에 대한 실천을 가로막는 현 교육체제 전반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성찰이 진정성 있는 것이라면 현재 시행하려고 하는 ‘인성교육진흥법’과 같은 내용과 방식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인성은 그따위 교육방식으로 길러지지도 측정되지도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참된 인성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84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최근 3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 호치민, 껀터, 다낭, 호이안 도시를 다녀왔다. 민변 아시아인권팀에서는 올해 7월 말부터 6박 7일 동안 베트남 평화기행을 준비 중인데, 이를 위한 사전답사로 다녀오게 된 것이다. 5월초 한국 같으면 계절의 여왕이겠지만, 베트남은 예상대로 덥고 습했다. 거기에 계시는 현지 분들은 우기가 시작되어서 날씨가 서늘한 편이라고 하는데, 맙소사 개인적으로 베트남은 월남전, 신흥 관광지, 동남아경제 성장국 등의 이미지를 가진 국가였는데, 민변 아시아인권팀은 작년 말부터 베트남 전쟁 시 있었던 수많은 전쟁범죄, 그중에서도 한국 군인에 의한 전쟁범죄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였고, 여러 법률적 쟁점을 연구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올해 베트남에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한국 군인에 의한 베트남양민학살 사건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소수의 언론인과 용기 있는 활동가들에 의해 한국 사회에 그 실체가 드러났고, 당시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까지 크게 반향과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악(?)한 베트콩으로부터 선(?)한 베트남정부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이미지는 그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다. 3박 5일이라는 짧은 일정동안 가야할 곳도 많고 만나야할 사람들도 많았다. 가장 먼저 방문하고 만난 곳은 전쟁증적박물관(War Remnant Museum)이었다. 그곳에는 베트남 전쟁관련 사진과 자료, 실재 전쟁 시 사용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네이팜탄 폭격으로 울부짖는 소녀사진, 베트콩 장교를 노상에서 권총으로 사살하는 사진, 미군의 미라이 학살보도 사진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 참전군인에 대한 자료도 볼 수 있었다. 그 자료속의 한국군인은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미국의 용병으로 가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의 무용담이 베트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했을까 섬뜩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비교해 놓은 표를 보고선 ‘왜 한국인은 베트남 전을 통해 경제성장을 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여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박물관장인 후인 응 옥 번 님을 만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분은 베트남 전쟁만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베트남 독립을 위한 전쟁은 19세기부터 시작되었고 당시 프랑스와의 전쟁, 그리고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미국과 연합국과의 전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전쟁, 이 오랜 기간 베트남인들이 어떻게 저항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러면서 평화를 위한 기억, 평화를 위한 노력이 현재에도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며, 최근 한국 방문 시에 경험했던 베트남 고엽제피해군인들의 행사방해와 집회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쟁증적박물관에 한국인에 의한 전시를 꽤나 바랬는데, 당일 박물관에는 일본인 사진작가에 의한 특별전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후 방문 시에는 박물관 측에서 한국 참가자들과 베트남 전쟁의 여러 피해자들과의 미팅을 주선해 준다는 제안을 해 주었다. 다음으로 껀터에 있는 인민위원회를 방문하여 베트남 여성들 중 한국인과 결혼하였다가 이혼 또는 여러 사유로 인하여 다시 베트남으로 귀환하신 분들의 현실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뤘으면 하고, 다음 일정으로 미라이(학살) 박물관에 방문하였다. 미라이 학살은 이미 언론을 통하여 많이 알려진 사건이지만 간략히 이야기하면, 1968년 3월 16일 남베트남 미라이(베트남어 손 미)지역에서 미군에 의해 민간인 347명에서 504명까지의 대량학살이 발생하였고 상당수는 여성과 아동이었으며 사건에 가담한 미군 26명 중 1인만이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건이다. 개인적으로 너무 놀랐던 것은 박물관 옆에 학살 시점의 논두렁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는데 그 발자국들에게서 당시의 긴박함과 공포, 다급함, 애처로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발자국, 그 옆의 자전거 바퀴자국, 그리고 그 뒤를 쫓고 학살 했을 군화 발자국까지... 순간 멈춰서 넋을 놓았다. 미라이(학살)박물관 옆에 보존되어 있는 마을 논두렁길 사진 출처 - 필자 마지막 일정으로 한국의 진보언론과 자료를 통해 공개된 한국군 증오비(위령비)를 찾고 피해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사전 한국에서의 자료는 한국어 또는 영어로 적혀 있고, 베트남 자료가 있다 하더라도 이해를 할 수 없어 증오비로 알려진 사진, 자료, 원문 자료를 잔뜩 들고 찾아 나섰지만 생각보다는 그 위치를 찾기 너무 어려웠다. 마치 서울 서초구 서초동까지 나와 있는 주소와 관련 사진만으로 서초동 아주 작은 마을에 깊숙이 위치한 묘비를 하나 찾아가는 식이었다. 수십 번의 질문과 시행착오 끝에 정말 운이 좋게 꾸이보마을의 위령비를 찾았고, 그 위령비 인근에 거주하시는 할아버님을 통해 퐁니마을의 위령비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령비에 적혀진 피해자들의 이름, 주소, 나이를 보았는데, 아직 이름도 짓지 못한 1살짜리 아이가 올려진 모습을 보고 다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에 쫓기듯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방문 전에 전쟁범죄라는 활자를 통해 건조하게 베트남을 접근하였고, 방문했을 때 여러 일정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었지만, 현지에서 느꼈던 충격과 참혹함은 기존의 내 기억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한국 전쟁이라는 트라우마를 사회구성원 전체가 나눠지고 있는 한국에서 성장한 나이지만, 사실 전쟁을 자기방식대로 기억하고 파악하고 있는 내면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피해자라는 입장에 서 있다가 갑자가 가해자임이 밝혀지는 순간 그 사실을 부인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본다. 비단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법률가단체의 관점에서 베트남 전쟁을 접근하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7월 방문도 진행하겠지만, 답사를 통해 여러 문제의식과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그리고 답사기간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은 ‘잊어서는 안 되겠다. 잊지 않기 위한 방문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2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