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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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제주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은 미래 한국의 모델이다 이현정/ 꽃씨네농작물 대표 에너지 민주주의. 생소한 말이다. 최근에 부쩍 많이 등장한다. 관련 책도 나왔고, 주장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에서도 그렇다. 말 그대로 에너지와 민주주의의 결합어다. 에너지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주민)들의 참여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이 왜 나왔을까? 결국 누군가는 뺏기고, 또 누군가는 혜택을 누리는 게 과연 정의로운가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작년 11월 11일, 무슨 날이었을까. 아, 특정 과자 날이기도 하지만, 이 날은 에너지 민주주의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다. 바로 영덕 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의 날이었다. 이틀 동안의 투표 결과는 91.7%의 압도적인 반대였다. 물론 현재 정부와 영덕군은 투표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주민투표법상 효력을 발휘하는 전체 유권자의 1/3 투표율에 부족하다는 이유다(당시 투표율 32.5%). 그러나 투표인명부 기준으로는 60%, 부재자를 제외한 총 유권자 대비로는 41%를 기록할 정도로 영덕 주민들의 투표율은 매우 높았다. 당시 영덕 지역사회는 투표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영덕의 미래는 우리의 손으로”라는 목소리를 냈다.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인식하고, 공유하고, 여기에 투표로써 의사표현을 하였다. 핵발전소라는 에너지 문제가 동반되었기에 결국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의 확장이었다. 민간주도 주민투표의 특성상 부재자를 제외한다면, 실제 투표율도 41%라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최근에는 핵발전소 유치 무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에너지 기업 이익 추구에만 집중된 작금의 현실에서 거주민의 당연한 권리를 되찾아가는 영덕 시민사회에 경의를 표한다. 영덕 핵발전소 주민 찬반투표 사진 출처 - 뉴시스 우린 또 하나의 위대한 저항을 기억하고 있다. 바로 밀양 할매, 할배들의 초고압 송전탑 반대 투쟁이었다. 7년 동안 주민 2명이 스스로 생명을 던졌고, 수백 명이 입건까지 될 정도로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결국 2년 전, 공권력의 강제 행정대집행으로 송전탑은 끝내 건설되었다. 하지만 이후 한전이 신울진-신경기 765㎸ 송전선로 사업을 포기하였고, 야간 행정대집행 제한 법안도 만들어졌다. 더불어 지금도 주민들은 한전 합의금 수령을 거부하면서 끝까지 싸우고 있다. 밀양 할매와 할배들, 그리고 함께한 연대한 분들을 존경한다. 이런 반면에, 우리는 최근 매우 나쁜 소식을 접했다. 이명박 정부가 해외자원개발, 4대강 공사에 에너지 공기업들을 무분별하게 동원해 부채가 급증했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로써 국민들의 빚이 또 쌓여간다. 결국 축소와 폐업을 한다는데, 그렇게되면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에너지 분야 또한 민영화 수순을 밟거나 일부 대기업에 특혜를 줄 수도 있다. 잘못은 이명박 패거리들이 저질러 놓았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을 처지다. 이렇듯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의 투명한 정보공개와 시민(주민)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에너지 정책과 산업은 전문적이고 큰 자본이 들어가다 보니 엘리트들이 밀실에서 추진한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은 중요하다. 더불어 이 운동은 과정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간다. 예를 들면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는 핵발전소를 없애지 않는 한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 대안으로 지역 분산형 에너지를 준비해야 한다. 필요한 지역별로 풍력과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만드는 것을 확대해야 한다. 결국 자기 동네가 쓸 것은 지역에서 만들어 쓰는 게 가장 최우선 과제이다. 이제 제주도로 눈을 한 번 돌려보자. 왜냐고?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체제의 미래 축소판이 어찌 보면 이 곳 제주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분단된 섬나라다. 제주도와 다르지 않다. 현재 제주도는 풍력과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작년에 9.3%를 차지하면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육지는 보통 4~5% 정도다. 또한 추가적으로 화력과 핵발전소 건설이 아니라, 지역분산형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이 제주도 모델이 결국 몇 년 뒤 육지 모습이기에 제주의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의 확장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 제주도가 잘하고 있는지 한 번 보자. 제주도정은 현재 카본프리아일랜드2030 정책을 펼치고 있다. 즉 2030년에는 탄소가 없는 섬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그 내용이 달라진다. 2008년, 2012년 발표 때와 2015년이 다르다. 2012년 발표 때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100%로 채우겠다더니, 작년 발표 때는 약하게 궤도를 수정했다. 중요한 에너지 정책이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다. 기술적으로 너무 무리한 목표 설정이었다. 또한 예산 확보도 제대로 안 되면서 장밋빛 선전만 앞세웠다. 최근엔 제주 풍력, 즉 바람에너지 공유화에 대한 주장도 있다. 현재는 에너지 개발이익이 에너지 기업에 크게 돌아간다. 제주도민의 이익은 없다. 해당 마을 주민들에게 약간의 보상금이 주어지고 있지만, 전체 도민을 위한 것은 아니다. 또한 에너지 기업이 중산간 지역이나 바다에 무분별한 막개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에너지공사가 이처럼 하니 풍력발전 개발대행회사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결국 풍력과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확장과 제주에 부는 바람은 제주의 공동 자산이 되어야 한다. 제주 풍력발전단지 사진 출처 - 시사제주 결국 제주에서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앞서 봤듯이 제주는 우리나라 에너지 체제의 하나의 축소판이자 미래 모습이다. 정보 공개를 바탕으로 한 시민(주민) 참여가 에너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 지역 에너지 자원 이익은 지역에 환원돼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확장되어야 한다. 제주에서 부는 바람은 제주도의 공동 자산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은 2016년 6월 1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94 | 추천: 0
다솜/ 미디어 활동가 이 시대 청년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년작)을 떠올렸다. 4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청년들이 살아가던 모습은 어땠을지 다시 한 번 제대로 관찰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청년들의 삶은, 과연 지금과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달랐을까. 우선 <바보들의 행진>은 입영을 앞둔 청년들이 신체검사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겨우 속옷만 하나 걸친 벌거벗은 몸이 화면을 메운다. 가진 거라곤 맨몸뚱이밖에 없는 청년들의 이미지다. 이어서 장면은 청년들이 서둘러 미팅을 조직하는 모습으로 전환된다. “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짝짓기에 몰두했”다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라는 곡이 저절로 생각난다. 혐오감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경찰이 긴 머리를 단속하던 권위주의 시대, 병태와 영철은 혐오스러운 장발을 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경찰서에 끌려간다. 둘은 경찰의 훈계를 듣고 있는 와중에도 혹여나 미팅 시간에 지각이라도 할까 벌벌 떤다. 그러던 두 사람이 경찰의 감시를 피해 도망간 곳은 ‘낙궁’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미팅의 성지다. 즐거울 락에 집 궁이라는 한자를 떠올리게 하는 ‘낙궁’은 상실감과 우울이 청년들을 잠식한 시대, 유일한 즐거움은 연애가 아니었을까 하는 궁금증마저 심어준다. 그도 그럴 것이, 술집에서 그야말로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버린 주인공이 읊조리는 대사가 바로 “내 힘으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어요”, “우리는 쪼다예요” 같은 자조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씨네21 사귈 듯 말 듯 끊임없이 친구와 연인 사이의 긴장을 넘나드는 병태와 영자의 모습은 연애를 할 야성도, 돈도, 여유도 없어 ‘썸 탄다’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과 기묘하게 겹쳐진다. 결혼을 꿈꾸는 영자에게 병태는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고, 그런 병태에게 영자는 철학과 나와서 어떻게 돈을 버냐고 묻는다. 그리고 둘은 “이 다음에 우리들의 시대가 왔을 때” 결혼을 할 거라며 깔깔 웃는다. 영자에게 키스하려다 거절 당한 병태는 “지금 키스하는 놈들 다 뒈져라!”라고 외치며 거리를 질주한다. 이 장면은 “몽땅 망해라”라고 연애에 빠진 사람들에게 엿을 날리는 10cm의 ‘봄이 좋냐’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파서일까. 여자로 태어난 걸 후회한다는 대사를 들으면서는 얼마 전 강남역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이 떠오르고, 영자가 병태와 데이트하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장면에서는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삶을 마감한 청년이 떠오른다. 피를 팔아 돈을 버는 영화 속 청년들을 보면서는 가진 거라곤 몸밖에 없는 청년들이 가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인지, 질문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스크린 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이고 이 시대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내 친구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해피엔딩을 제시하지 않는다. 가진 건 몸뚱이 뿐인 청년들. 앞으로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청년들.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그 시대 특유의 잿빛 분위기에 가위눌려 오직 빨리 취하는 것이 목적인 음주를 하는 청년들을 보며 가슴이 아려온다. 그런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는 종착지는 결국 군대와 자살이다. <바보들의 행진>에 등장하는 청년들은 모두 대학생이다. 대학이 취업학원이 되어버린 시대, 그렇게 취업준비를 열심히 하고도 일자리를 얻기가 어려워 많은 이들이 무력감에 빠져버린 요즘을 생각한다. 자식이 짊어진 짐과 함께 미숙련 저임금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는 부모들을 생각한다. 그런 잔혹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대학생이 될 기회조차 박탈당한 청년들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살아 숨 쉴 기회마저도 빼앗겨 일찍이 스러져가버린 더운 목숨들을 생각한다. 이 글은 2016년 6월 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12 | 추천: 0
신혜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누군가를 당신의 종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라.” 이 오래된 격언은 우리가 살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의 핵심을 찌른다. 주거, 의료, 교육 등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빚을 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두고, 남은 삶은 평생 그 빚을 갚으며 살도록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탓에 개인은 사회의 명령에 복종하며 자유를 반납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투항한다. 단지 빚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이렇게나 고분고분해진다.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영화에서 등록금 대출을 갚기 위해 질 낮은 일터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미국 청년들의 현실을 풍자했다. 한국인들의 삶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계부채가 1200조에 육박하고, 빚쟁이 신세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 채무자가 2만 명에 이른다. 보장률이 50%에 못 미치는 의료보험체계,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대학 등록금, 월급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내 집 마련에 30년이 넘게 걸리는 주거비 부담이 이런 현실을 만들었다. 세상에 살면서 아프지 않고, 교육받지 않아도 괜찮고, 집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살기 위해 빚을 졌다지만, 사실상 한국인들은 빚을 갚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지난 달 9일, 20대 국회 입성을 앞둔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을 만났다. 서민금융전문가로 알려진 그는 지난 10년간 서민들을 빚의 굴레로 모는 ‘약탈적 금융사회’를 고발해왔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는 사회가 바로 제 의원이 말하는 약탈적 금융사회다. 복지가 필요한 계층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주면서 ‘서민금융’이라고 포장하는 정부 금융정책이 대표적이다. 생활비가 없어서 이자를 못 내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대출을 해주는 건 결국 서민들 빚만 늘리는 정책이라는 얘기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은행 문턱을 낮춰 돈을 빌려주는 건 정책이 아닙니다. 돈을 안 빌려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정책이죠." 제 의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가 국회 입성 후 첫 과제로 내세운 법안은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이다.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사고팔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여기서 채권은 ‘돈을 받아낼 권리’와 같다. 현행법상 채권은 엄연히 소멸시효가 있지만 채무자가 빚을 갚을 의사를 표현하거나 채권자가 소송을 걸면 빚이 되살아날 수 있다. 이런 탓에 은행은 받아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부실 채권을 대부업체에게 헐값에 팔아넘기고, 대부업체는 악독한 채권추심(빚 독촉)을 통해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아내 이윤을 남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는 채무자의 인권보호에 대한 인식이 낮아 방문추심도 흔하게 이뤄진다. 아이들 앞에서 채권 추심을 당하고, 직장에 찾아온 대부업체 직원 탓에 망신을 당하는 등 인권침해가 속출하는 이유다. 제윤경 의원(사진 맨 오른쪽)이 참여한 ‘주빌리은행’ 출범식. 사진 출처 - 쥬빌리은행 페이스북 주빌리 은행은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는 부실채권을 매입해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곳이다. 제 의원은 “주빌리은행은 ‘부실채권 시장의 민낯’을 국민들에게 폭로하는 계기가 됐다.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통념에 국민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2013년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수상작인 소설 <청춘파산>은 집안 사정으로 20대부터 빚을 지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빚 독촉을 피하느라 주거지를 옮겨가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주인공의 삶이 공간의 이동과 함께 전개된다.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이 “21세기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고 평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소설이 작가의 경험담이란 점이다. 빚을 받기 위해 집에 찾아와 문신한 팔뚝을 내보이던 ‘빚쟁이’들과의 만남까지도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빚에 좇기며 살아온 작가의 20대는 한 편의 살아있는 소설이었다. 현대판 구보씨는 고시원 총무로,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학원 시간 강사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빚을 피해 조용히 숨을 몰아쉴 뿐이다. “산다는 건 좋은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가수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에 갈수록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사회권에 대한 인식이 약한 한국사회에서 산다는 건 곧 빚을 지는 일이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마이너스 인생이다. 나에게 돈을 빌려주고 종으로 부리려는 세력이 있는 것만 같다. 노예가 어떻게 감히 인권을 말할까. 다만 주인에게 종속돼 살아갈 뿐이다. 빚더미 사회에서 인권을 찾기는 그래서 어렵다. 이제 빚 권하는 사회에 맞서 시민권을 되찾는 운동을 할 때다. 20대 국회는 부디 한국 국민들의 잃어버린 시민권을 되찾는 데 힘이 돼 주길 바란다.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은 좋은 출발점이 될 거다. 이 글은 2016년 6월 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97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우리는 어떤 사람을 언급할 때 직책을 붙이는 걸 당연시한다. 그냥 이름 석자만 붙이는 건 뭔가 예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직책을 붙이는 것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제대로 붙이면 핵심을 꿰뚫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지만 반대 사례도 흔하다. 성완종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과 성완종 전 의원은 같은 인물이지만 어떤 직책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완종 게이트'는 천지차이로 성격이 달라진다. 그런 이유로 나는 기본적으로 이름만 표기하는 걸 좋아한다. 사람은 자기 이름으로 평가받는 것이지 직책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 정종섭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다. 세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직책을 붙인다면 그는 교수였고, 장관이었고, 국회의원 당선자다. 각 직책은 꽤나 다른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가 장관으로 취임할 당시부터 퇴임할 때까지 행정자치부 출입 기자였던 덕분에 그를 나름대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부터 나는 정종섭이라는 인물을 생각할 때면 항상 머리에 떠오르는 낱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산림(山林)이고 다른 하나는 곡학아세(曲學阿世)다. 역사용어와 고사성어가 떠오른 건 아마도 그가 아버지한테서 한학을 배웠고 개인전을 열 정도로 서예에 조예가 깊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정종섭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에서 헌법을 가르쳤다. 지방재정이나 지방행정에 문외한이다. 행자부에선 전례가 없는 장관 이력이었다. 이 때문에 박근혜가 개헌을 하기 위해 정종섭을 장관으로 임명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다. 실명을 밝힐 수 없는 한 로스쿨 교수가 정종섭 '교수'를 평한 게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헌법학을 전공한 그 분은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까진 '진보'인양 하고 다니더니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보수'로 확 돌아섰다. 한 자리 하려는 욕심이 대단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종섭 '교수'는 책임총리제, 특별검사제, 예산법률주의 등을 주창했던 분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있고 나서 안전행정부는 행정자치부와 인사혁신처, 국민안전처로 쪼개졌다. 정종섭은 마지막 안전행정부 장관이자 첫 행정자치부 장관이었다. 인사청문회에서 그가 1985년 군법무관으로 입대해 군복무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군대 갔다 온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수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얄궂게도 그는 참여정부 당시 인사청문회 도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2014년 여름쯤 만난 한 학자는 "정 교수를 얼마전에 만났는데 '현재 인사청문회 제도가 너무 엄격하다. 제도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다. 어쨌든 그는 장관이 됐다. 하급직원들 사이에선 인기가 괜찮았다. 하급직들 신경을 많이 써주려 했다. 회의를 줄여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줬다. 실국장들 브리핑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도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대외적으로는 여러 차례 문제를 드러냈다. 국회에서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하는 바람에 주민세 인상 문제가 물 건너간 것은 작은 사례일 뿐이다(참고로, 나는 주민세 인상 지지한다). 대표작은 2015년 8월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만찬 건배사로 '총선 필승'을 외친 게 아닐까 싶다(그 후로 한동안 '총선 필승'은 내 단골 건배사가 됐다. 주어는 없다). 정종섭 '장관'은 당시 새누리당 연찬회에 초대받지도 않았다. 제 발로 찾아갔다. 그것도 비서실에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며 수행비서 없이 혼자서 찾아갔다고 들었다. 공식 해명은 '의원들이 건배사를 시켜서 당황해서...'였지만 다른 증언도 있다. '뒤풀이 자리에서 지역구별로 있는 자리에 자기가 먼저 와서는 건배사를 제창했다.' 보도가 나오고 일요일 아침 8시쯤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11시에 기자회견 준비해라"고 시켰다. 덕분에 대변인은 기자들 원성에 시달렸다. 그날 기자회견에서 나는 '국회의원 출마 의지'를 재차 물었다. 그는 그때 분명히 대답했다. 자신은 국회의원 출마할 생각 없다고. 물론 그 말을 믿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 2015년 11월 8일 긴급 브리핑을 갖고 장관직 사의를 표명하고 있는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정종섭 '장관'은 2015년 11월 8일 장관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발전과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다하겠다고 했다. 총선 출마 질문에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말대로라면 그는 꽤나 성급하게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었다. 류성걸을 경선에서 제치고 대구 동구 갑 선거구에서 공천을 받았다. 무소속 류성걸 후보를 꺾고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류성걸과 경북고 동기동창이다. 그는 경선 당시부터 '진실한 친박' 이른바 '진박'으로 자신을 알렸다. 그는 자타공인 '진박'이다. 정종섭은 아마 자신이 조선 시대 '산림'같은 존재처럼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본다. 정치권은 날이면 날마다 욕만 먹는 존재이고, 정부 관료들은 무능하다, 이런 때 국가를 운영할 역량은 오히려 자신 같은 이에게 더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산림이란 학식과 덕은 높지만, 과거에 응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해 존경을 받는 선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산림은 특히 조선 후기 공론을 좌지우지하면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검소하게 살자' '공부 열심히 하자' '바르게 살자'는 평론가 정치로 경세치용(經世致用)이 될 턱이 없다. 대표적 산림인 김집이 대동법 시행을 반대하며 김육과 치열한 논쟁을 벌인 건 유명한 일화다. 조선 시대 산림은 재야에서 고고한 척이라도 했지만 정종섭 '의원'은 친박 돌격대로 마음을 굳힌 듯하다. 그는 24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청문회 활성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의회독재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위헌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그는 2005년 4월 국회 공청회에선 "국정운영 중심은 대통령에서 국회로 전환돼야 한다"며 상시 청문회를 지지했다. 그는 교수 시절 '헌법학 원론'에서는 정부시행령에 대한 국회 통제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썼으면서도 지난해 6월 국회법 개정안 논란에선 침묵을 지켰다. 내 눈에 비친 정종섭은 산림에서 발탁된 선비가 아니다. 그는 ‘사기(史記)’에 나오는, "학문을 굽혀 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한다"는 '곡학아세'하는 사람일뿐이다. 그러고 보면 그는 정치인의 기본 자질 가운데 하나인 '권력의지' 하나만큼은 확실한 분인 듯싶다. 이 글은 2016년 5월 2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30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이라크를 처음 방문했을 때, 전쟁으로 온 나라가 황폐화되고 삶의 조건이 붕괴되었던 그곳에서 만났던 이라크인 살람은 자신들의 고통이 한국에 전해지길 바랐다. 그리고 한국의 군대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2004년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 있던 팔레스타인, 그 곳의 칼리드도 자신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국 사람들이 알기를 바랐다.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많지 않다. 여전히 이라크도 시리아도 팔레스타인의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했던 기억과 경험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되어 국제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2007년 1월부터 민변이라는 법률가 단체에서 국제연대 활동가로 지내고 있다. 민변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 30대 초반이었는데 지금은 40대 초반이다. 30대의 대부분을 민변에서 보냈다. 되돌아보면 한미 FTA 반대, 광우병 촛불집회, 4대강 공사 반대 활동, 용산참사, 나꼼수 표현의 자유 억압, 제주강정마을 기지반대, 세월호 사태 등 보수정권 하에서 기본적 인권이 후퇴되었던 한국 상황에서 많은 이슈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강구하였다. 여전히 한국 인권상황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 한다. 충분히 공감한다. 국내에서의 국제연대 활동은 주로 한국의 이슈를 알리고 이에 대한 연대를 요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다른 국가에서 벌어지는 이슈에 대해 한국에서 활동하고자 할 때 주위에서 ‘국내 상황도 안 좋은데’ 라는 반응도 있고, ‘국내에서 해야 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라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이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했는데 주변 어르신 한 분은 우리보고 종북이라고 북한으로 가라고 했다. 황당하였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비단 국제연대 활동뿐만 아니라 전체 운동이 편협하게 해석되는 건 다반사이니깐. 사진 출처 - 충북일보 사실 국내의 많은 분들은 국제연대라고 하면 대단히 거창하거나 하기 어려운(영어가 가능해야 하는) 활동이라 생각한다.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국제연대 활동에 관심이 없거나 그 주제가 공감할 수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대한 국내 반전 운동, 2009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시의 한국 시민사회의 연대활동은 충분히 우리 안에서 제대로 된 사실 전달만 있다면 그 사안에 공감하고 무엇인가를 연대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해 주었다. 문제는 그 현장과 한국의 시민사회를 이을 수 있는 계기이다. 이제 곧 민변에서의 국제연대 활동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주변에서 무슨 안 좋은 일 있냐고 한다. 무슨 일 없다. 아니 무슨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민변에서의 일이 아니라, 그 이전 이라크에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졌던 일 때문이다. 주위의 몇몇 좋은 사람들과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려 한다. 아시아(사람들이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이 아시아인줄 몰랐다고들 한다.)의 상시 분쟁과 인권침해지역의 활동가를 발굴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며, 현장과 한국의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활동을 해 보려 한다. 주변에서 걱정이 많다. 모아둔 돈은 있냐고, 단체 재정은 어찌할 거냐고, 솔직히 그건 나도 걱정이다. 돈을 많이 벌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고, 가정도 있는데... 그래도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을 할 생각이다. 더 힘들고 더 열악한 곳에서 치열하게 지내고 있는 그들을 생각하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제 아시아 곳곳의 사람들과의 연대를 위한 국제연대 활동을 시작하려 한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사람 때문에 시작한 운동이다. 다시 그들을 바라보고 한 걸음 나아가는,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이 글은 2016년 5월 1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50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기억 하나 2004년쯤이었을 거다. 지역의 한 선배가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적이 있었다. 그 선배의 선거사무소 개소식 자리에 갔었는데 오랜 시민단체 경력 때문인지 전국에서 온 축하 손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런저런 식순 끝에 당시에 꽤 지명도가 있었던 교수 한 분이 축하 인사말을 했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의 노무현 정부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가벼운 질책성 내용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당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일어나서 그 교수에게 거칠게 항의를 했다. 자기가 속한 당을 비판하지 말라는 거였다. 전반적인 축하 인사말 끝에 나온 짧은 비판이었지만 그 사람에게는 거슬렸던 것이다. 식장은 한참을 술렁거렸고 순식간에 개소식 분위기는 차가워지고 말았다. 기억 둘 올해 4.13총선 기간 동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호남 민심을 붙잡기 위해 광주, 전남지역을 방문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등을 돌린 호남 민심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문 전 대표와 동행한 인터넷신문의 생방송을 잠시 시청했다. 문재인 대표에게 기자가 질문했다.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데…….” 그 순간 문재인 대표를 둘러싸고 있던 지지자 중의 한 사람이 화를 내며 기자에게 항의했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무슨 지지를 받고 있단 말입니까? 그거 다 종편에서 조작질한 거예요, 질문 똑바로 해요.” 당황한 기자는 질문을 바꿔서 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의 그 선배는 당내 경선에서 떨어졌고 종편의 조작질이라고 주장하던 호남 민심은 실제로 국민의당 압승의 결과를 보여줬다. 2000년 이후 한국 정치현장에서 정치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이른바 무슨 무슨 ‘빠’라는 명칭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듣게 된다. ‘노빠’ ‘문빠’ ‘안빠’ 등 어감도 그렇지만 실제 이 단어를 사용하는 맥락도 긍정적인 것보다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자들을 일컫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사례처럼 ‘빠’들의 특징은 맹목적인 지지이다. 지지하는 정치인의 무오류를 주장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약간의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다. 지지 정치인의 조그마한 정치적 행보는 유치할 정도로 크게 의미를 두어 해석하는 반면, 라이벌 정치인이나 반대정당은 폄하하고 깎아내린다. 특히 선거가 다가오면 이러한 움직임은 훨씬 심해지는데 지난 4.13총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문재인과 안철수로 대표되는 거물 야당 정치인을 두고 양쪽의 ‘빠’들이 펼치는 SNS상의 네거티브 공세는 극에 달했다.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을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보다는 서로 상대진영의 대표 정치인들이 이런 저런 흠결이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날 선 공격만이 가열됐던 선거기간이었다. 그 여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아마도 내년 대선 때까지는 날로 더 치열해질 것 같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현실에서의 선거는 무엇일까? 선거는 상대 후보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투표행위를 하게 해야 성공하는 정치행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내 공약을 모르는 사람들을 알게 만들어야 하며, 기존에 지지하던 사람들에게도 계속해서 그 지지를 확인해야 한다.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고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나를 지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표의 확장성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지지자 외에 무관심층과 반대편의 지지까지 끌어오기 위해서는 후보인 나와 지지자들이 표를 끌어올 수 있는 확장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빠’는 그 확장성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다.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만을 거듭 확인하면서 중도층이나 반대편에서 표를 끌어올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없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나 당에 대한 조금의 부정적인 의견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반대편에 지지를 물어볼 의사도 없는 것이다. 표를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해봤자 자기와 같은 지지자들로만 연결되어 있는 SNS상에서 서로 격려하고 ‘좋아요’를 누르며 현실 선거에서의 표 확장성과는 의미가 없는 행위들만 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빠’가 아니라 포용력 있는 ‘지지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정말로 지지하는 후보가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원한다면 좋아하는 정치인에 대한 감성팔이를 하고 있는 시간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제대로 된 언론 기사 한 대목이라도 단체 대화방이나 문자로 보내려고 노력하기를 권유한다. 다른 당 특히 같은 야당 정치인 흠집 내기는 제발 그만하고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이나 정책을 알리는 것이 지지후보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저 정치인은 저래서 안돼라고 욕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집권하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사람들이 더 호응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는 속성상 성인군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인의 비판과 비난은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판하면 왜 그런 비판과 욕을 얻어먹는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이명박, 박근혜의 10년은 4대강과 세월호, 그리고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점철된 민중잔혹사로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그 잔인한 세월을 끝내고 싶은 현실적인 방안의 한편을 끼적거려 보았다. 이 글은 2016년 5월 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71 | 추천: 0
해군은 강정 주민 다 죽이고, 강정 재산 다 가져가라! 이현정/ 꽃씨네농작물 대표 어제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모두 모여라는 뜻의 ‘모다들엉, 평화!’ 슬로건으로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10개국 34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평화포럼, 북콘서트, 거리 공연 등의 다양한 행사로 구성된 첫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해군기지로 파괴된 강정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 제주섬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취지로 영화인들과 주민들이 이끌었다. 지금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사건을 다룬 <업사이드 다운> 개막작 상영도 인상적이었다. 내년 2회 영화제도 기대해볼만하다. 그러나 개막식이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갑작스럽게 서귀포성당으로 바뀌었던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서귀포시에서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개막 전 주에 불허한다고 ‘일방적 통보’를 했다. 그렇다. 아무리 영화제라도 강정마을의 문제는 어느덧 시끄러운 ‘정치 사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안다. 이 짓을 누가 시작했고, 지금도 치졸하게 끌고가고 있는 주모자가 누구인지를. 대한민국 정부와 해군의 치졸함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3월 28일에 해군은 강정 주민, 성직자 121명과 관련 5개 단체를 상대로 34여억 원의 구상금 청구 소송을 냈다. 제주 해군기지 공사 방해로 공사가 지연되었으니 배상하라는 거다. 저들이 뻔뻔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치졸함의 민낯을 또 드러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조경철 마을회장은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회복될까 말까 한데 아예 강정주민들을 다 죽이려고 작정한 것이며, 주민들이 더 이상은 참지 않고 다시 일어나 저항할 것’이라 밝혔다. 또 마을회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거짓말과 협박, 폭력이 난무했고, 강제수용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는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땅을 빼앗았고, 농사짓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농민들에게 군복을 입은 해군 장교들이 십 수 명씩 몰려다니며 위협을 가해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고 역설했다. 결국 국가와 대형 건설사들이 공권력을 앞세워 불법적으로 공사를 강행해 마을이 파괴되었는데, 또 죽이려 한다. 사진 출처 - 제주의소리 그런데 현재 해군의 구상금 청구 소송은 문제점이 많다. 첫째, 공사가 예정보다 지연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사업 적법성에 대한 법적 논란과 소송 싸움, 불법공사로 인한 제주도의 아홉 차례 공사 중지 명령, 바람이 강한 지형과 태풍 등으로 인한 공사 구조물 파손과 유실 등이 주된 이유였다. 즉 주민들이 공사장 정문 앞에서 잠깐 동안 공사차량을 막아서 공사가 지연되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둘째, 해군의 청구 소장 자체가 불법이다. 해군이 민사소송 준비를 위해 검찰에서 강정 주민의 형사사건 기록을 열람하고 등사한 것은 불법이다. 해당 재판이 아니면 본인 외에는 열람할 수 없는데, 특히 다른 민사소송을 위해 검찰이 해군에게 기록을 넘겼다는 것은 형사소송법과 개인정보보호법까지 어긴 불법이 된다고 민변은 밝혔다. 셋째, 일부는 소장 요건도 갖추지 못 했다. 60여 퍼센트의 피고인들 주민번호와 주소를 '불명'으로 처리했으므로 소장 조건 자체도 성립되지 못한다. 해군이 얼마나 무리하게 강행하는지 알 수 있다.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밝혔듯이, 노동운동의 가장 큰 고통은 감옥살이가 아니라 바로 재산 가압류이다. 많은 노동자들을 옥죄고 결국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는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번 해군의 비용 청구 목적도 다르지 않다. 강정해군기지에 반대하는 마을 주민과 단체들에 대한 협박용일 수 있다. 민변에서도 ‘원고인 대한민국이 국민을 상대로 소송을 남용한 것이며, 그 목적은 국책사업 반대 국민들을 협박하기 위한 것이며, 정말로 돈을 받기 위한 소송이 아니라 국민을 겁주기 위한 국가의 폭력이자 야비한 수법’이라고 적극적인 대응을 해주고 있다. 반문을 해본다. 삶의 터전이 불법적으로 짓밟혀 공권력에 저항하는 결과가 이렇게도 힘들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들 누구라도 싸웠을 것이다. 평화로운 생존권을 위협받아 저항하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당연한 헌법상 권리이고, 또 마땅히 보장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많은 주민이 현재 범법자로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34억 원 구상금 청구까지. 이 고통의 끝은 어디일까. 다행스럽게도 현재 민변에서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주고 있어 주민들은 외롭지 않다. 또 이번에 선출된 3명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제주 시민사회단체에서도 해군 구상금 청구 소송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강정 주민들은 현재 처절하게 외치고 있다. “해군은 강정 주민 다 죽이고, 강정 재산 다 가져가라!”고. 치졸한 대한민국 정부와 해군, 그리고 이에 침묵하고 있는 제주도정은 주민들의 피 끓는 절규를 들어라. 그리고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를 당장 멈춰라! 이 글은 2016년 4월 2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76 | 추천: 0
다솜/ 미디어 활동가 얼마 전, SNS를 뜨겁게 달군 하나의 이미지가 있었다. 고카페인이 함유되어 한 번 마시면 다음 날 아침까지 잠들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한 우유였다. 각성제로 유명한 음료보다 몇 배 많은 카페인 함유량을 자랑한다는 그 우유는 특히 중간고사 기간의 대학생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내 마음이 착잡해졌다. 언제부터 우리는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는 것을 당연한 것, 혹은 젊은 날의 열정으로 포장하게 된 걸까? 언제부터 우리는 스스로의 몸을 망쳐가면서까지 공부를 하게 되었을까? 충분히 잠 잘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대학생만이 아니다. 한창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는 중고등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늘 잠이 부족해 허덕이고, 밥 먹을 시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편의점의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뿐인가? 오전에 지하철을 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난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아침부터 꾸벅꾸벅 졸고 있는지. 지하철 역사 안에 하나둘 자리 잡은 카페는 그래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고개를 떨군 채 졸고 있거나 퀭한 눈으로 커피잔을 붙잡고 있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스스로를 소진시켜가며 살고 있는 걸까?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해 얻은 대가가 다시 잠도 자지 못하며 끝없이 일해야 하는 삶이라니 이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사진 출처 - 매일경제 저녁, 다시 지하철에 오른다. 공교롭게도 내 양옆의 사람이 모두 조는 바람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들 삶의 무게가 내 몸에 전해져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잠깐 동안 누리는 그들의 ‘휴식’을 방해할 수 없다는 마음에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혹여나 내 몸짓이 그들의 잠을 방해할까 염려했다. 그러면서 더더욱 이 칼럼을 써야 할 명분을 얻게 되었다. 언젠가 짜증 섞인 일상이 주는 피로함과 술 냄새 및 고기 냄새로 찌든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가는 길에 붐비는 대중교통 안에서 앉을 자리 하나 얻지 못해 그 비좁은 공간을 또 서서 가야 하는 걸 보며 '이런 게 삶이라면 이건 곧 형벌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고문 중에는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우리 사회의 학생, 노동자들은 잠 안 재우는 고문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고문을 중단하라. 그리고 잠 잘 권리를 허하라! 이 글은 2016년 4월 2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95 | 추천: 0
신혜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타워팰리스와 포이동 판자촌이 나란히 놓인 장면을 보면, 누구나 이질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선거철 유세 차량과 그 뒤에 모여앉아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만큼 극명한 이질감을 주는 장면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 간의 빈부 격차는 어느 정도 허용 가능한 현상인지 몰라도, 최소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유권자와 피선거인의 관계는 변해서는 안 될 최후의 보루다. 선거판을 뛰고 있는 후보자는 사실상 유권자의 권리 대행에 지나지 않는다. 대리인은 시내 전체가 들썩이도록 유세 음악을 튼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데, 정작 권리의 주인들은 오늘도 길바닥 위에 눌러앉아 생계를 위한 노동을 계속해야 한다. 머슴이 주인 위에서 날뛰는 희한한 모양새다. 이런 풍경은 413 총선을 앞둔 한국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다. 머슴이 이토록 날뛰는 이유는 한국의 지역주의 정치 탓이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지역주의는 보통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하려는 지역의 독자적인 움직임이다. 예를 들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스코틀랜드가 그렇다. 반면 한국의 지역주의는 중앙을 바라보는 ‘권력바라기형’ 지역주의다. 수도권의 중앙 권력에 더 가까이 다가갈 ‘연줄’로서, 가장 힘 있는 지역구 의원을 당기는 게 지역구 총선에서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중앙과 멀어지면 지역 개발이 멈추고, 지역 경제가 죽어버린다는 생각에 주민들은 필사적이다. ‘중앙에서 내려주신’ 힘 있는 후보들에게 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제천 단양 지역구 총선 유세 현장의 모습. 유세 차량 뒤편에서 할머니들이 나물을 팔고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내가 다니는 학교는 충청북도 제천에 있다. ‘단양팔경’으로 유명한 이 지역은, 노인 인구가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여당의 텃밭이다. 새누리당 소속의 전임 국회의원은 지역구에서 4선을 하다가 비리 혐의로 구속돼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여당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새로 공천받은 새누리당 후보는 20년이 넘게 국토부에서 중앙 관료를 지내다 첫 선거에 도전하는 정치 신인이다. 그는 지금 제천 단양 지역구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다. 이 후보는 자신의 7대 공약을 정리한 홍보물에 “행정고시, 국토부 인맥을 총동원하여 정부예산을 대폭 끌어오겠습니다”라고 크게 써 붙였다. 그의 제1 공약은 단양 지역 관광 활성화다. 단양팔경에 흐르는 2m 물길을 4m로 높이고, 유람선을 띄우겠다고 한다. 이후에는 홍보관, 선착장, 생태공원, 조경탑 등을 건설할 생각이다. 단양이 유명 관광 도시가 된다면, 더 이상 주민들이 알던 그 단양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두 번째 공약으로는 도로망 확충을 내걸었다. 5개 구간 철도도로를 개통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 실현 가능한 것인지 물었다. “2018년이면 대부분 실현 가능하다”는 자신만만한 대답에서, “4년이면 준공은 불가능하고 일부 착공 정도 가능하다”고 답변이 바뀌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화려한 발전 계획은 말 그대로 ‘공약’이었던 셈이다. 제천 단양 지역 새누리당 후보의 7대 공약 홍보물. “행정고시, 국토부 인맥을 총 동원하여 정부예산을 대폭 끌어오겠습니다”라고 크게 쓰여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그럼에도 개발 공약은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주민들은 제천 지역의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를 걱정했다. “야당에서 정말 ‘센’ 후보를 내려주지 않으면 아마 계속 여당이 당선될걸.” 택시기사의 진단은 옳았다. 그러나 제천 주민들의 선택은 옳다고 보기 힘들다.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높은 다섯 군데는 인천, 세종, 광주, 대구, 부산이다. 이중 세종시를 제외한 지방자치단체들의 공통점은 대형국제행사를 유치했다는 점이다. 중앙 권력을 끌어당겨 국제행사를 유치하고, 불필요한 공항이나 도로를 신설해도 지자체에 남는 건 빚뿐이다. 설령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하더라도 환경을 잃게 된다. 주민들의 삶이 나아질지도 확신할 수 없다.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려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 실현성 없고 명분도 없는 지역 개발 사업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복지 공약을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하다. 힘 있는 정치인에게 머리를 조아려 중앙정부 사업을 받아내는 일은 지역주민을 행복하게 하지도 않을뿐더러, 필요한 예산이 적재적소에 쓰이지 못하니 국가 전체로도 불행한 선택이다. 앞으로는 허공에 흩어질 공약을 떵떵거리며 외쳐대는 유세 차량은 그만 보고 싶다. 그보다는 길가에서 나물을 파는 허리 굽은 할머니를 돌보는 게 민주주의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이 글은 2016년 4월 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53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휴가를 나온 사병들이 사람들로 붐비는 기차역에서 수군거리고 있다. “우와! 쟤네 군복 좀 봐라. 각이 장난이 아닌데. 각이 쫙 잡힌 게 잘못 만지면 손 베겠다.” 이들이 바라보는 건 다른 부대 소속 사병이다. 뭔가 모르게 각을 잘 잡은 A급 군복을 두고 “줄을 세 줄을 잡았네, 네 줄을 잡았네.”하며 자기들과 비교도 하고 나름대로 분석도 한다. 여기까지는 사병들 시선이다. 기차역에 있는 민간인들 시선으로 그 상황을 정리하면 어떤 모습일까. 그냥 ‘군바리들이 있나 보다’ 딱 그 정도다. 남들 눈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당사자에겐 매우 중요한 차이인 게 있다. 그 중에는 전북 고창이 고향이라고 했더니 “나도 고창 알아요. 고추장이 유명한 곳이죠?”라고 해서 대학 새내기를 당황시켰던 어떤 선배처럼 웃음을 주는 차이도 있다. 사실 고창이나 순창이나 다른 지역 사람이 보기엔 다 같은 전북이다. 하지만 어떤 건 그 정도가 꽤 심각하기도 하다. 바르셀로나로 유학 간 한국인 학생이 “왜 스페인어로 수업하지 않나요?”라고 묻자 교수가 “그럼 스페인으로 가던가.”라며 핀잔을 줬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카탈루냐와 카스티야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신경이 부른 패착이 아닐까 싶다. 유학생 입장에선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왜 그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를 조금만 알면 그런 말이 안 나올테니 말이다. 그럼 한국 진보정당은 어떨까. 이번 20대 총선에 참여한 진보정당으로는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이 있다. 무려 셋으로 나뉜 이 진보정당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각 당 관계자들은 그 차이를 부각시킬 것이고, 독자적인 조직을 유지하는 당위성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 관점에선 어떨까. 민간인 눈에 비친 ‘군바리 군복 각 잡는 방법’ 정도 차이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문제 핵심은 세 진보정당이 과연 서로 얼마나 다르냐 같으냐 하는 게 아니다. 정당은 정권창출과 유지를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권력획득을 위해서는 국회에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선거제도는 과장 없이 말해서 개판 그 자체다. 그 흔한 다수결도 아니다 보니 공천신청자가 한 명밖에 없어서 선거도 하기 전에 당선이 확정되는 코미디가 현실이 된다. 대부분 50%가 넘는 표는 ‘죽은 표’가 되고 민의는 상습적으로 왜곡된다. 결선투표제나 선호투표제도 없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 없으니 진보정당 지지자들로선 선거 때마다 ‘비판적 지지’라는 굴레 앞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제19대 총선(2012년)은 야권연대 덕분에 그런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번 총선에선 그마저도 힘들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정당 해산판결로 인해 상황은 더 엉켜버렸다. 남는 건 결국 독자노선이요 자력갱생이다. 그런데 흔히 얘기하는 야권연대와 별개로 진보정당 간 연대조차 안 하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시 강조하지만 정당이라면 비례 의석 하나라도 더 확보해서 정치를 바꾸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 정의당은 다섯 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불안하고, 노동당과 녹색당은 원내 진출은 고사하고 존재 자체를 모르는 국민이 대부분인 게 냉정한 현실이다. 그리고 힘을 합쳐 비례대표 한자리라도 더 만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각자도생이요 각개전투다. 그리고 그 결말은 각개격파가 될 거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1일 서울 종로구 거리에 20대 총선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빼곡히 걸려 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다시 강조하는데 진보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길 간절히 원한다. 지도부에 속한 분들 중에는 지인도 여럿 있다. 그분들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걸 폄하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용감하게 싸운다’가 아니라 ‘따로 떨어져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 군사들이 수많은 적군과 싸운다’는 데 있다. 해법은 없을까? 지극히 원론적인 해법이 있긴 하다. 진보정당 관계자나 당원이라면 십중팔구 ‘단결투쟁가’와 ‘연대투쟁가’를 좋아할 거라고 믿는다. 사실 연대투쟁과 단결투쟁은 식상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정작 진보정당들은 그러질 않는다. 선거제도가 승자독식을 초래한다는 걸 그리 비판하면서도 분열해서 다 같이 망하는 길로 각자 달려간다. 이유를 들어보면 결국 그 잘난 선명성과 진정성 문제다. 구동존이(求同存異)와 화이부동(和而不同)까진 바라지도 않겠다. 프랑스 인민전선이나 국공합작, ‘반파쇼 통일전선’을 학습할 때는 다들 합심해서 졸기라도 했단 말인가? 새누리당은 열 가지가 달라도 하나가 같으면 ‘우리가 남이가’ 하는데 이른바 야권이니 진보진영이니 하는 분들은 열 개가 같아도 하나가 다르면 ‘우리는 노선이 다르다’고 한다. 그런 식이니 맨 새누리당한테 지면서도 항상 또 그런 식이다. 그렇게 서로 ‘구별 짓기’를 꼭 해야겠다면 브라질 노동자당처럼 당내 분파를 아예 공식 인정하는 건 어떨까 싶다. 가령 진보대연합을 구성하고 그 안에 정의 분파, 노동 분파, 녹색 분파를 공식적으로 결성하는 거다. 대의원대회에서 아예 분파별 선거를 해서 일정 수준 이상 득표를 한 분파에겐 중앙위원회나 상임집행위원회에 지분을 아예 배분해주는 방식도 좋지 않을까 싶다. 소선거구제처럼 하지 말고 득표율도 최대한 지분으로 반영해주고, 지도부도 각 분파별 쿼터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방식도 괜찮을 것 같다. 비례대표 후보도 당원투표로 뽑힌 후보와 각 분파별 쿼터를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선거 때마다 탈당하고 분당하고 창당하는 꼴 안 봐도 되지 않겠나 말이다. 힘을 합쳐 덩치를 키워서 다수결 투표제(결선투표제)나 선호투표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 도입하자. 그리고 나서 분당하는 건 상관하지 않겠다. 헬조선을 사는 민초들은 답답하다. 무능력과 무책임, 염치없음 삼박자를 고루 갖춘 박근혜 정권은 ‘대한민국호’를 침몰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넘길 것으로 대부분 예측하고 있다. 180석을 넘겨 개헌한 다음에 박근혜 총리가 취임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안철수는 총선 목표가 야권 전멸이냐는 비판을 받는다. 안철수를 비판하는 그 논리를 진보정당에 대입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이 글은 2016년 4월 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4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