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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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동화/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활동가 다음달 6월이면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이하 아디)에서 상근한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다른 단체와 마찬가지로 아디도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기에 사람들을 만날 때 부지런히 단체와 활동을 소개하고 후원을 요청한다. “아디는 아시아 분쟁지역에서의 피해자와 현지 활동가를 지원하는 활동을 합니다. 어쩌고저쩌고” 그럴때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상대방이 갸우뚱하는 느낌을 받는다. ‘뭔 소린지는 알겠는데 정확히 무슨 활동을 하는지는 모르겠다’는 그런 느낌?^^ 그리고 그 분들 중 일부는 순수한 취지로 “이런 활동(아시아연대)을 왜 하세요? 무슨 이유(계기)때문이에요?” 라고 묻거나, 일부는 “아시아 연대가 의미 있는지는 알겠는데, 한국에도 필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게 우리랑 무슨(어떤) 상관이에요?”라는 질문을 한다. 한국의 사회문제가 아닌 아시아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연대를 한다는 것이 많이 낯설고 그 필요성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연하고 충분히 이해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질문들에 답을 하고자 한다. 먼저 개인적 이야기를 풀자면, 국제연대 활동을 처음 접한 건 2003년 이라크 전쟁 때였다. 당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했고 그 부당한 전쟁에 한국정부가 참전하였다. 한국군의 파병결정은 많은 국민들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전쟁반대 파병반대를 외쳤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이라크에 직접 방문했을 때 나는 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사진과 글, 영상과 자료를 통해서만 접했던 이라크와 이라크인 들을 실제로 만났던 순간이다. 그 지역의 요르단 사람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만나 그들의 어려움과 문제를 알게 되고 공감했다. 소위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국제연대 활동가가 된 이유였다. 이라크 바그다드 알마시텔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사진 출처 - 필자 ‘아시아 연대활동’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낯설고 무겁게 여긴다. 쉽사리 함께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관점을 바꿔서, 아시아 연대활동을 ‘활동’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으면 어떨까? 아시아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 어쩌면 가족일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 나눴던 그런 ‘사람’ 말이다. 아시아 연대를 생각지 말고 그 ‘사람’과의 연대라고 상상해 보자. 그 사람이 한밤 중 폭탄이 떨어져 온 가족이 죽고 자기만 살아남은 전쟁의 공포 속에 두려움에 떤다면? 본인이 믿는 종교와 신념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살해 위협을 받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아시아 연대활동은 내가 잘 알고 있는 ‘그들’과의 연대이다. 왜인지, 어떤 이유인지 중요치 않다. 앞서 받았던 질문 중 “한국에도 해결해야할 사안이 많다”라는 이야기는 너무 당연하고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혹시나 그 문장속에 한국인 우선이라는 폐쇄성과 배타성이 담겨 있다면 그건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내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여성, 노동, 환경, 장애, 아동, 빈민, 교육 등등)에 대해서 어느 운동이 우선순위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운동은 자신의 영역이 항상 시급하고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연대활동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의 어려움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건 비겁하고 운동의 원칙에도 맞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연대하고 배려하며 함께 해야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시아의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 정도로 성장하고 정치와 사회, 문화가 현재의 위치까지 오게 된 데에는 외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518광주민주화항쟁에서 함께 했던 국제인권단체와 외국인 저널리스트의 노력, 군사정권시기에 한국의 양심수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던 많은 국제사회의 도움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시민사회는 여전히 한국의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수준에서 국제연대를 이해하고 있다. 또한, 요즘 한국내에서 이민자와 이주노동자,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차별들이 커지고 있다. 노동, 여성, 환경, 민주주의 등 지키고 개선해야 할 사회적 가치들이 위협을 받는 이 현상은 한 국가 차원을 넘어선 많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사회문제는 갈수로 세계화 되는데 그에 대한 저항이 한 국가 내에서만 이뤄진다면, 그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아시아 연대활동은 한국사회와 많은 연관이 있고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2017년 5월 2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97 | 추천: 0
10년, 인권교육에게 보내는 일기 같은 반성문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아빠가 담배를 비벼 끄고는 새 담배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슈나이더 씨의 말을 들으며 계속 머리를 흔들었다. “슈나이더 씨, 평화를 믿지 마세요.”」 한스 페터 리히터(Hans Peter Richter)의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중에서』   # 인권교육가는 인권적인 사람인가?, 인권의 전문가인가? 교육의 전문가인가? 글쓴이가 인권교육이란 이름을 걸고 강의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5년 즈음부터이다. 특수교육 등 장애인 교육법 시행으로 학교 현장에서 장애인 통합을 위해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인권교육을 시작하였고 장애인 활동보조인교육에서 비장애인 대중들에게 장애인 인권을 알렸다. 그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렇게 10년 넘게 심한 장애인 당사자로서 ‘인권’이란 이름으로 교육을 했지만 그동안 세상은, 사람들은 과연 인권적인 세상으로 인권적인 사람들로 변화하였는가? 보수 정권을 지나면서 인권은 정책도, 예산도, 인식도 모든 것이 퇴행하고 인권교육은 인성교육이란 이름으로 왜곡되기도 했지만 장애인 분야에서 인권 교육은 매일매일 터지는 학대와 착취, 시설비리등으로 양적으로는 많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소식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도가니(2011)로 환기된 사회적 인식에도, -당시 사건 피해자가 다른 시설로 간 이후에도 최근에 다시 폭행을 당하는 등 또다시 인권침해가 불거졌다- 장애인 시설, 기관에서의 성범죄는 더 창궐하고 더 잔인해진 것만 같고 사람들은 인권침해와 차별을 더욱 은폐하고 교묘해졌다. 그렇게 인권교육은 오히려 처벌하고 단죄해야 할 인권의 문제를,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단순히 인권교육으로만 무마하려는 것은 아닌가? 개인의 인격의 문제로만 풀어내려는 것은 아닌가? 장애인 인권교육이 반대로 장애인 인권을 저해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장애인 인권교육을 통해서 그동안 비장애인들이 외진 곳까지 찾아가야만 겨우 만날 수 있는 장애인들을 이제 우리는 지역 사회에서 주민으로 직장 동료로 만나고 갈등하고 심지어 경쟁한다. 과거에는 차별 혹은 무시를 당할 기회조차도 없었던 장애인들의 인권적인 등장이 많아졌다. 또한 그 장애인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당사자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며 큰 소리로 외치며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가장 큰 저항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권유린의 소식이 많이 들린다고 해서 무작정 슬퍼하거나 절망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회에게 장애와 장애인에 대하여 더 많이 더 크게 더 자세히 시시콜콜 모조리 다 이야기해야 한다. 인권은 인권적 성찰과 인권적 공감과 인권적 실천의 반복적인 과정 그 자체이다. 바위로 계란을 쳐서 바위를 깨뜨리는 결과 아니라 바위에 던져진 계란의 흔적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저 차별과 반인권의 바위를 깨드려야 하는 것을 깨닫고 무엇인가를 던지게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이런 원칙을 스스로 잘 지키고 있는가? 나는 장애인이자 남성으로서 이성애자로서, 비장애인이나 여성이나 동성애자 성소수자의 문제와 고통 차별을 공감하며 실천하고 있는가? 사적이든 공적이든 누구랑 있든, 혼자 있든 항상 매 순간 인권의 스위치를 켜고 행동하고 있는가? 그것을 끌어내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늘 반성하고 질문 하면서도 지레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 어떤 교육이 장애인 당사자에게 자부심을 주는가? 사진 출처 - 필자 인권침해와 차별을 구조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교육으로 방지하고 구제할 수 있는가?있다면 어떤 교육이, 어떤 교육가가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는가? 작금의 장애관련 인권교육이 그것에 충실한가? 남성들이 여성학을 열심히 공부만 한다고 해서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가사 분담과 육아를 공동으로 잘 실천할 수 있는가? 그리고 여성들이 여성학을 공부하고 페미니즘을 알면 자신이 여성인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하고 도리어 남성이 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여성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는가?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장애는 예방되어야 하고 고통이자 불행이라고 하면서, 장애인을 존중하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장애인을 공포의 존재로 만들고 있지 않는가? 과연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고 90년대부터 시작한 ‘장애인인식개선’ 이라 이름붙인 운동이나 교육들이 실제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 시켰는가? 그리고 비장애인들의 ‘인식’만 개선되면 인식이 개선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사랑과 배려의 마음으로 고용을 늘리고 지역 사회에 특수학교와 생활이용시설을 유치했는가? 인권이란 단어에 대한 거부감과 이념의 알레르기 반응으로 대신 쓰기 시작한 장애이해교육은 진실로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을까? 그리고 그렇게 이해가 증진되면 장애인의 억압과 차별은 사라질 수 있을까? 넘쳐나는 장애관련 정보들이 오히려 효과적인 차별과 혐오의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가? 명문대학을 다니고 있는 장애인 대학생의 인권과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의 인권은 동일한 것일까? 대학생들이 시설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반성하면서 탈시설을 실천하거나 시설로 들어가 변화시키려 하는가? 장애체험교육은 장애로 인한 고통을 체험하는 것인가? 아니면 장애로 인한 차별과 부조리를 경험하는 것인가? 다시 묻는다.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장애인 당사자가 바라보면 장애인으로서 자부심이 생기는가? 아니면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고 비장애인으로 환생하기를 꿈꾸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에게 장애인 자녀를 낳는 것도 장애인 부모가 되는 것도 생물학적으로는 슬프지만 사회적으로는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깨닫게 할 수 있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고용할 수 있는 힘과 가치를 주고 있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에게 장애인과 같이 연애하는 법을, 가족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하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이 시간이 흘러 여러 가지 일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이며 나름 즐겁게 살 수 있는 힘과 길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다시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권’변호사가 이제 대통령이 되었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고 취임사에서 밝혔다. 아직 당신의 입에서 ‘인권’은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후보시절에는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부정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를 이유로 인권에게 나중이라고 외쳤다. 그래 원래 정치는 그렇다.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은 늘 그랬고 인권적인 사람이라던 문재인은 정치인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은 원래 그렇다. 핵심은 우리다. 인권을 신념으로, 인권을 직업으로, 인권을 활동으로 하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그에 대한 기대가 연예인의 팬클럽처럼 치솟는 지금, 그런 지지자들의 여론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기사 토씨 하나하나 민감한 그들에게, 그들은 인권의 기준으로, 인권의 원칙으로 인권감수성, 장애 감수성을 민감하게 가지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부터 인권활동가는 신발끈을 조여야 한다. 주먹을 높이 들고 깃발을 올려야 한다. 그게 인권 대통령을 만드는 길이다. 나중은 없다. 양보도 없다. 모든 사람에게 인권으로 자부심을 가지도록. 사진 출처 - 필자 덧붙임) 2007년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 일명 NAP, 2007~2011)수립 이후 공공기관에서의 인권교육이 의무화되었다. 그러나 포괄적인 인권교육은 국가 정책이나 지침으로 의무화되거나 국가인권위원회법 안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작 국회를 통과한 인권교육 관련법은 2014년 유승민 의원이 발의하고 스스로 폐기한 이후 단 하나도 없다. 단지 세월호 참사 핑계로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과 같은 국가주의와 가부장주의를 강요하며 만들어진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이 오히려 교육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기관과 단체에서는 법정의무교육이란 이름으로 인권과 관련한 여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기도 하고 법적인 기관 평가에 반영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직장내성희롱예방교육,개인정보보호교육,성매매,성폭력예방교육 등이 공통적인 교육이고 기관의 특성에 따라 받아야 할 추가 교육 등이 관련 법이나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다. 장애인식개 교육과 종사자인권교육과 같은 장애인 인권교육은 장애인 복지법, 발달장애인법, 장애인차별금지법, 특수교육법 등에 개별 명시되어 있지만 그 강제성이나 실효성은 낮은편이다. 과태료와 같은 처벌조항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인권교육은 모든 인권교육의 길로 향해 있어야 한다. 장애인 인권교육을 하면 할수록 다른 인권들도 함께 실천되어야 한다. 다른 인권교육이 잘 수행된다면 장애인 인권도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한다. 사진 출처 - 필자 「교육의 목적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에 있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 것인가를 가르치는 데 있다.」 (삐디이)
2017-07-12 | hrights | 조회: 851 | 추천: 2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선거가 끝났습니다. 인수위 기간이 없는 선거라 그런지 하루 만에 주요 내각과 대통령비서실장의 인선이 발표되고 그 밖의 내각 세평도 언론과 주변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습니다. 후보 면면과 서로 누구를 찍었는지에 대한 후일담도 만나는 사람마다 한창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1번, 5번을 찍었다고 하며 저는 누구를 찍었는지 물어봅니다. 저는 5번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각종 선거에서 아내와 투표하는 후보가 항상 같았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서로 달랐습니다. 아내의 선택도 합리적이라 생각되어서 서로 지지 후보를 가지고 다투는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왜 5번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을까요? 저는 선거 초반에 이미 이번 대선은 정의당에 투표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간 지역 문제를 처리하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아쉬움과 그에 비해 정의당이 보여준 남다른 헌신과 진정성이었습니다. 대전지역의 주택 보급률이 2015년 기준 100%를 넘은 상황인데도 더불어 민주당 소속의 권선택 대전시장은 도시의 허파 구실을 하는 월평공원 녹지를 개발해 수천 가구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환경단체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최근에 심해진 미세먼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도심 속 녹지의 가치는 훨씬 더 중요해졌는데도 불구하고 대전시는 요지부동으로 아파트 분양을 위한 과정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 개발문제에 대해 환경단체 외에 지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반대를 하는 정당은 정의당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비단 월평공원 난개발 문제뿐만이 아니라 지역의 각종 갈등 사안에 대한 시의회 다수 정당이며 시장 소속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일회성 의정활동과 관심 부족을 접할 때마다 대전의 원외 정당인 정의당의 지속적인 관심과 활동은 많은 부분에서 비교되었습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로 꼽았던 ‘을지로위원회’ 활동도 지역에서는 위원장만 있었지 구체적인 활동은 볼 수 없었습니다. 대전학생인권조례는 개신교와 일부 극우단체의 터무니없는 공세 속에 대전시의회 교육상임위원회에서 눈치 보기만 하다가 3개월 사이에 결국 보류만 두 번을 해버려 사실상 안 자체가 폐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웃한 충남도의회가 보수적인 자유한국당 일색인 것에 비해 의회와 상임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 황망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의당은 학생인권조례안 자체뿐만 아니라 개신교계의 동성애혐오 공세에 대해서도 당 차원에서 대응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정의당과 당원들은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캠페인과 리본 만들기, 지난겨울 동안 벌어졌던 촛불 항쟁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하고 노동운동의 현장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누군가는 국정운영을 하는 대통령선거에 당의 지역 활동을 투표근거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국정운영만 그럴듯하고 정작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의 지역 활동은 미비하거나 태만하다면 그것도 비정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국정운영의 지역화란 측면에서 지역에서의 당 활동도 충분히 대통령선택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출처 - 청소년이 직접 뽑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운동본부 블로그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 진보정당에 투표하자고 했고, 또 누군가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며 거대 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언제나 그랬듯이 진보정당의 양보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래’라는 추상적인 가치보다는 정의당의 과거 활동을 보고 대한민국의 현재를 위해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한국의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가 제1야당에게는 5년마다 타 먹는 정기적금도 아닐 터인데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정권교체를 위해 자당 후보에게 양보하라는 꾸준한 염치없음도 귀에 담지 않았습니다. 한국YMCA전국연맹에서 19세 미만 청소년 5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투표결과에서 심상정 후보는 1만 8,629표(36.02%)를 얻어 문재인 대통령과 불과 3% 차이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오늘의 분투가 계속 이어진다면 진보정당의 미래도 밝으리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당원은 아니지만, 그간 부족한 선거자금으로 헌신적인 선거운동을 벌여왔던 정의당 당원들과 안보와 경제, 복지, 인권 등에 있어 진보의 가치를 제대로 각인시켜준 심상정 후보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합니다. 이 글은 2017년 5월 1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90 | 추천: 1
신혜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연 10억 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부양의무제는 기초생활수급자를 거르는 기준 중 하나다. 수급권자가 되려면 자신의 부양의무자(자녀 및 그들의 배우자)가 부양능력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만일 부양의무자 중 한 명이라도 소득과 재산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수급권이 박탈된다. 이 제도 때문에 2010년 기준으로 117만 명이 기초생활수급자 심사에서 탈락했다. 연락이 두절된 자녀를 둔 노인들이 주로 피해를 봤다. 일부러 부양책임을 미루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부양의무자 소득인정액 기준이 너무 낮은 탓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남을 돌볼 처지가 아닌 형제가 경제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가난한 가족들이 ‘연대책임’을 지기 일쑤였다. 워낙 문제가 많은 제도다 보니, 부양의무제 폐지는 선거 단골공약이 된 지 오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물론 그가 내세웠던 다른 공약들(기초연금, 반값등록금 등)과 마찬가지로 실천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 대선에 나선 후보들도 각기 부양의무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상황은 고무적이다. 문재인, 심상정, 유승민 후보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겠다고 확답했고, 안철수, 홍준표 후보는 단계적 도입을 내걸었다. 대선 후보들이 하나같이 부양의무제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시민단체 연합인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행동’이 각 후보에게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문 후보는 국민적 동의와 재원 확보,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 후보도 정부 지원으로 인해 가족들이 노인을 부양하는 경우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내며 부양의무자 범위 축소 및 부양능력 기준 완화 등 우회로를 제안했다. 홍 후보는 ‘효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다’고 유보적 의견을 드러냈다. 즉각적인 폐지를 말하는 후보는 없었다. 부양의무제 폐지 공약을 명확히 밝히고 당선된 후보자도 이미 공약을 뒤엎은 전례가 있다. 누가 당선되든 부양의무제 폐지는 매우 느린 걸음으로 진척될 게 뻔하다. 작년 1월, 4월 총선을 앞두고 장애인 단체와 빈민 단체가 모여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당’을 만들었다.  사진 출처 - 비마이너 후보들의 미적지근한 입장에 반해, 부양의무제 폐지는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다. 타당성, 민주성, 정의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 여기서 타당성은 경제에서 말하는 효율성과는 다른 개념이다. 효율성이 비용 대비 효용을 측정한 수치인 반면, 타당성은 ‘사안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비용 투입 여부를 검토한다. 효율성은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활용하기 적합하다.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쓰기 적합한 지표는 아니다. 예컨대 한정된 예산을 교육 예산에 투입할지, 토목 사업에 투입할지 결정할 때는 효율성이 아니라 타당성을 따져야 한다. 교육과 토목 사업을 ‘일자리 창출 효과’, ‘세수 증대’ 등 항목으로 나눠 경쟁시킬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단기적 효용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부분에 예산을 투입하도록 하는 게 타당성이다. 부양의무제 폐지는 타당성이 있는 공약이다. 작년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가별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추산치 비중에서 한국은 10.4%로, 35개 회원국 중 34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적은 국가는 멕시코뿐이다. OECD 평균은 21%였다. 복지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출 여력도 있다. 한국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0%에 불과해 일본(245%)과 미국(123%)에 비하면 한참 낮다. OECD를 비롯한 국제기관들이 한국에 재정 확대를 조언하는 배경이다. 당장 올해 추가경정예산으로 배정된 금액이 11조다. 일부 후보들은 복지 공약만 보면 ‘포퓰리즘’을 연발한다. 그 뜻을 해석하면 이렇다. ‘우매한 군중들을 선동해 도입한 제도이니, 복지 정책은 정당성이 없다.’ 보수언론은 복지 공약을 ‘매표행위’로 단정 짓고 ‘표’퓰리즘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정치는 자원의 분배과정이다. ‘1인 1표’로 작동하는 정치체제를 이용해 대다수 중, 저소득층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펴는 건 민주주의의 본래 뜻에 맞는 일이다. 포퓰리즘은 ‘민중주의’라는 뜻으로, 데모크라시와 어원상 의미가 같다. 소수 부자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펴는 정부는 민주적이지 않다. 한국이 꼭 그렇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4년 OECD 자료를 분석해보니 한국은 조세정책을 통한 빈곤율 완화 효과가 2.4%포인트에 그쳤다. 프랑스(26.8), 독일(23.5)과 10배 정도 차이가 난다. 한국 빈곤율은 세금을 거두기 전 17.3%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았지만, 세금을 걷은 후에는 14.9%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국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부양의무제 폐지 없이 민주주의를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보건복지부가 만든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 홍보 리플렛. 박근혜 정부는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부양의무제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고 홍보했다. 사진 출처 - 보건복지부 부양의무제 폐지는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자에게 합당한 몫을 나눠주는 것’이 정의라고 말했다. 세계시민사회 차원에서 보면 모든 인간이 천부적 인권을 보장받는 것이 정의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모든 국민이 시민권을 보장받는 게 정의다. 영국 사회학자 마셜은 ‘사회에서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권리’를 뜻하는 ‘사회적 시민권’을 현대 사회의 시민권으로 규정했다. 현대 국가는 사회적 시민권을 지키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한다. 한국에서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IMF 금융위기라는 충격 이후 ‘최소한의 경제 안전망’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생긴 복지제도다. 당시 뉴스에는 중산층 가족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는 모습이 드물지 않게 등장했다. 오갈 곳이 없어 길거리에 텐트를 친 4인 가족에게 시민권은 없었다. 이를 지키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생겼다. 2016년 기준으로 정부가 책정한 4인 가족 최저생계비는 170만 원. ‘정의’를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나마도 지키려면 부양의무자 기준을 피해가야 한다. 부양의무자 폐지는 한국 사회 복지논쟁의 축약본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최하위 사회안전망의 구멍을 메우자는 논의다. 이에 대해 ‘세금 낭비’, ‘포퓰리즘’, ‘부정 수급 등 도덕적 해이 우려’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양의무제 폐지를 말하는 대선 후보들 역시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단계적 추진’을 말한다. 세 가지 비판은 각기 타당성, 민주성, 정의 측면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에 대해 ‘예산을 줄일 방법이 있다’, ‘소득심사를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 ‘부정수급을 감시해 공정하게 하겠다’는 논리로 맞서는 건 프레임에 휘말리는 꼴이다.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부양의무제 폐지를 시작으로 모든 복지 공약에서 이 같은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돈이 들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돈 되는 사업만 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대다수 국민을 위한 일이고,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게 정치다’, ‘지금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건 117만 명의 수급권 박탈자들이다’라고 정면 대응하는 걸 권한다. 연 10억 원. 큰돈이 맞지만, 한 국가 국민의 인권과 바꾸기에는 적은 돈이다. 이 글은 2017년 5월 10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01 | 추천: 1
손상훈/ 교단자정센터 원장 불교 총무원장을 만나면 득표에 도움이 될까. 현재는 아니다. 오히려 만나는 횟수만큼 표가 떨어질 것이다. 만약 오차범위 내 접전이라면 더 그렇다. 사회과학적인 세밀한 분석은 아니다. 시민의 한사람으로 상식의 잣대로 지켜봐온 감이다. 조계종 사찰에서 거의 매년 수십억 원의 국고보조금 횡령 사건이 일어나고, 생떼를 써 가며 대기업에 보상비를 요구하는 조계종 총무원 언저리에 대선후보가 찾아가는 것을 좋아할 불교신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부정부패를 일상화하고, 종교권력의 상위 1%가 자기 밥그릇을 챙겨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극소수 종교 세력의 분리수거가 필요하다. 특히 국고보조금을 자기 지갑처럼 사용하거나 도박 등 유흥비로 탕진하는 종교지도자에게 대법원의 양형기준도 바꾸고 검찰의 종교비리 조사도 더 엄정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왜 불교계의 국고보조금 횡령사건은 거의 매년 일어나는데 대부분 불구속 수사이고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될까. 또한 2013년 경주지청은 총무원장과 같이 도박을 했다고 자수를 했는데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고 검찰은 스스로 궁색해졌을까. 현재 진행 중인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의 반복적인 성추행 사건 등 종교계에 반복되는 부끄러운 일이 근절되려면 검찰의 엄정한 잣대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조사결과가 나와야 한다. 교비횡령으로 C대학 총장은 입건되었는데, 같은 사안인 동국대 총장의 교비횡령 사건은 6개월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성남지청의 모습을 대선후보에게 묻고 싶다. 지난 3월30일. 성남지청 앞에서, 동대총장 사퇴를 주장하며 50일 단식한 김건중 전 동국대부총학생회장이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왼쪽에서 네 번째) 사진 출처 - 불교닷컴 건강한 정신을 갉아 먹는 부패한 극소수 종교권력에 대해 어떻게 분리수거해 나갈 것인지, 고액의 정치 후원금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종교관련 사건에 대해 검찰과 재판부가 엄정한 기준과 절차를 가지고 국민들을 납득시키게 할 것인지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해 보고 싶다. 그래서 상상해 보고 질문해 본다.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종교계를 향해 내는 공약이 하나도 없는 선거는 불가능할까. 아니 언제 가능할까.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같은 특정종교행사에 대권후보들이 참석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은 어떨까. 교회나 성당에 방문하지 않는 것도 포함해서. 만약 종교시설에 가지 않는다면 그 시간에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을 만나고 이들을 위한 예산확보 방안이나 공약을 세우는 일이 더 늘어난다면 어떨까. 부활절이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의미가 더 기분 좋아질 것 같다. 특히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국민들은 더 행복해 질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교 총무원장 앞으로, 전통문화예산을 명분삼아 먼저 만나러 가는 후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의 경우 정치후원금의 늘리기에는 도움이 될 것이기에 신도가 많은 대형 사찰이나 총무원장을 만나러 갈 것이다. 그러나 지난 총선 직전에 서울광장에서 조계종이 든 피켓과 현수막을 꼭 기억하고 만나길 바란다. 불교인터넷언론을 탄압하고, 광고를 끊게 만들어 생존을 위협하는 조계종 총무원에 대해 꼭 기억하고 총무원장을 만나길 당부한다. 그리고 기록하고 평가해야 한다. 조계종한전부지 환수위원회의 더민주 총선필패. 피켓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최근 조계종 총무원 안팎 핵심 관계자들은 유력한 대선 후보 캠프에 양다리로 인적관계를 만드는데 많은 애정을 쏟고 있고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그룹에 모두 인간관계를 만들었고 누가 당선되더라도 조계종이 원하는 공약은 챙겨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런 조계종 총무원과 중앙종회 등 소위 중앙종무기관들의 태평성대를 깨는 주장과 발언을 조계종 선원수좌회와 적명스님이 하고 있다. 승려대회를 열자고도 한다. 1994년처럼 아래로부터 ‘혁명’을 하자는 뜻으로 이해된다. 찻잔속의 태풍이 될지 실패한 민란이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이 글은 2017년 4월 1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13 | 추천: 1
- 우리 삶을 바꿔줄 진짜 민주주의로 가자! 이현정/ 꽃씨네농작물 농부 불과 몇 달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박근혜와 이재용이 피의자 신분으로 구치소에 갇혔다. 김기춘 등 그 부역자들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들이다. 촛불 혁명이다. 광장의 힘이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광장민주주의의 힘이다. 이로 인해 급작스럽게 장미 대선이 시작되었다. 정권교체다 시대교체다 말이 많다. 그러나 난 솔직히 우려된다. 과연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촛불 혁명으로 불리워지는 광장민주주의. 이제 일상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정권교체만으로는 어렵다. 지지율 1, 2위 후보들이 내놓는 정책과 주변 사람들을 보면 어려운 얘기다. 시민들의 힘, 광장의 힘이 모이는 민주주주의가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을 과거와는 다른 것으로 바꾸는 그런 민주주의 말이다. 요즘 유시민 작가가 많이 회자된다. 그가 지금 이 시대에 던지는 화두는 ‘국가와 민주주의’였다. 어려운 주제다. 그런데 방송에서 예능 형식으로 편하게 던져진다. 당연히 시청자들에겐 쉽게 다가온다. 그는 시민 권력이 중심이 되고, 각 권력의 제한, 분산, 상호견제 장치를 두는 민주주의 제도를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과연 시민 권력이 중심일까. 언제나 정치인 바라기다. 지금 대선 국면도 마찬가지다. 결국 시민들의 투표로 대통령이 선출되지만, 거기까지 일 뿐이다. 좀 더 한다면 광장에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갖는 것뿐이다. 우리에게 행복추구권, 평등권, 노동권 같은 기본권을 되찾아야 한다. 새로 만들자는 게 아니라, 헌법에 있는걸 재확인하고, 되찾으면 된다. 시민권력이 주인 노릇을 하자. 결국 일상 속에서 내 삶의 민주주의를 되찾자. 나와 가족, 우리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되찾자. 나와 우리의 평등을 얘기하자. 직업, 재산, 권력 그리고 피부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지 말자. 우리의 노동권을 얘기하자.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을 귀하게 여기고 대우해주자. 그리고 다른 이들의 비정규직 노동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함께 바꾸자. 위 얘기는 현행 헌법에서 모두 다루고 있다. 바쁜 일상에 이 헌법 정신을 모두 잊어버리고 살았을 뿐이다. 더불어 살면서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었다. 이제 우리가 직접 해보자. 헌법 읽기와 헌법정신 실천모임을 지역에서, 마을에서 만들자. 함께 떠들고 배우자. 그리고 나와 우리 주변부터 시민 권력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하나씩 하나씩 바꾸자. 필자도 낯선 곳 제주 중산간마을로 내려온 지 2년이 조금 지났다. 조금씩 적응을 해가고 있다. 요즘엔 콜라비*브로콜리 농사를 끝내고, 새로운 농산물을 심으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곳 주변에서도 위와 같은 모임을 시작해야겠다. 혹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제주 서쪽에 사는 분들에게 소개도 해주셨으면 한다. 이제 우리 삶을 바꿔줄 진짜 민주주의로 가자. 조금씩 하나씩 바꿔보자. 작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나누고 더 연대하는, 그래서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이 조화로운 행복한 마을과 지역을 꿈꾸자. 이게 87년 체제 이후의 새로운 진짜 민주주의였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의 말이 떠오른다. “민주주의자 없이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이 글은 2017년 4월 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63 | 추천: 1
이동화/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활동가 미얀마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라킨주 북부지역, 그곳에는 로힝야(Rohingya)라고 불리는 민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며 미얀마 내 수많은 소수민족 중 하나이다. 슬프게도 이들을 설명하는 또 다른 수식어가 있는데, 그건 ‘세상에서 가장 박해를 받는 무국적 난민 소수민족’이라는 것이다. 로힝야 사람들은 미얀마의 군사독재시절부터 심각한 인권침해에 노출되었는데, 최근 미얀마 군에 의해서 수 백 명이 학살당하고도 7만 명 이상의 로힝야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내쫓긴 너무도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5개월 전으로 거슬러간다. 2016년 10월 9일, 미얀마 라킨주 국경지역 초소가 괴한들에 의해 공격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미얀마 경찰 9명이 사망했다. 미얀마 정부는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사건의 배후를 로힝야 무장 세력으로 단정하고 대대적인 로힝야 토벌작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적개심을 품은 미얀마 군인들은 범인색출을 빌미로 마을에 침입하여 마을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아디가 올해 2월,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서 만난 피해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미얀마 군은 헬리콥터를 타고 마을 위에서 주민들을 조준사격하며 살해했고, 여성을 성폭행하면서 2살 난 아이를 땅에 내동댕이쳐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피해생존자 쏨쏠님. 사진 및 영상촬영은 본인의 동의하에 진행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아디 또한 마을의 건장한 청년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고문을 하거나 살해하였다. 가족 내 남자들이 군인에 의해 끌려간 이후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 피해생존자들은 실종된 가족들이 모두 살해 되었을 거라 여기고 있다. 법과 질서는 사라졌고 오직 폭력과 공포만이 가득했다. 피해증언자들은 하나같이 미얀마 군인들이 로힝야 사람들을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진행된 군사작전으로 로힝야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맨몸으로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 난민이 되었다. 최악의 인권탄압 사건을 맞아 국제인권단체와 국제사회는 미얀마 정부에게 즉각적인 군사작전 중지를 요구하며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미얀마 민간정부를 압박했지만, 미얀마 정부는 무책임하고 실망스러운 반응을 내놓았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미얀마 정부는 도리어 군사작전으로 인한 로힝야 주민의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미얀마 라킨 주 내 로힝야 주민의 이동을 제한하며 외부로부터 접근도 막았다. 정부의 조직적 방해와 탄압으로 인해 로힝야 주민들의 정확한 피해 규모는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해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2017년 2월 유엔은 로힝야 인권침해 보고서를 제출했고, 3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이양희 유엔인권보고관이 로힝야 사람들의 인권참상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한 3월 16일에는 미얀마 로힝야족 문제해결을 위한 자문위원회 수장인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이 미얀마 양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로힝야족에 대한 ‘범죄’에 대한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만난 로힝야 피해생존자들의 실상은 절망적이었다. 순식간에 7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피난 와서 캠프촌을 생성하였기에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다. 로힝야 사람들이 다시 돌아갈 마을도 집도 사라졌다. 당장의 죽음의 공포는 막막한 생존의 공포로 바뀌었다. 긴급구호가 절실하지만 도움의 손길은 보이지 않았다. 아디가 만난 피해생존자들도 공포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했지만 현재의 어려움도 많이 토로했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미얀마 군에 의한 군사작전은 중지됐지만 인권탄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얀마 정부는 여전히 사건자체를 부인하며 로힝야 주민들을 미얀마국민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인접국인 방글라데시조차 난민의 유입을 꺼려하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버마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아웅산 수치여사는 해당사건에 침묵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와 국제사회가 계속 침묵한다면 철저하게 고립된 로힝야 사람들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다. “제발 우리를 기억해 달라” 피해생존자 중 한 명이 증언 말미에 던진 덤덤하지만 처절한 외침이 가슴에 울린다. 이 글은 2017년 3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02 | 추천: 1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뭍에서 살기 전까지는 경남 남해안의 섬에서만 살았습니다. 집안 사정 때문에 한 곳에서만 산 것이 아니라 세 군데 섬을 옮겨 다녔는데 그중에서 다섯 살 무렵에 살았던 두 번째 섬에 관한 희미한 기억입니다. 그 섬은 다른 두 곳의 섬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작았는데 전국지도는 물론이고 경남의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작았습니다. 가구 수는 우리 집을 포함해서 달랑 두 가구였습니다. 집이 한 채 더 있기는 했는데 그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라서 꼬마들의 놀이터 역할을 했습니다. 그 섬에 살았던 총인구수는 우리 집에 3명,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이들이 많았던 이웃집에 6~7명으로 섬에 사는 모든 사람 수가 10여 명 정도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섬이 작다 보니 전기는 당연히 들어오지 않았고, 가끔 식수도 모자라서 이웃한 큰 섬에서 커다란 통에 물을 실어오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1970년대, 크기도 작고 거주하는 사람도 적었던 그 섬에 학교가 있었습니다. 이웃집의 자녀 2명만 국민(초등)학교에 다니는 연령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그 섬에 있었던 겁니다. 희미한 기억 속의 그때 그 학교 교실은 3-4평 정도 크기였고 정식학생은 2명뿐이었지만 취학연령이 되지 않은 저와 이웃집 아이들도 교실 뒤편에서 수업을 같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수업내용은 이해되지 않았고 지루하기도 했겠지만, 저와 이웃집 꼬마들은 오전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앉아있었습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수업이 마치면 선생님께서 꼬마들에게 누런색 종이 포장지에 담겨있던 건빵을 나눠 주셨기 때문입니다. 두 명만 수업을 듣는 삭막한 수업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선생님의 시도와 군것질할 작은 점방 하나 없는 섬에서, 단것에 굶주려 있던 꼬마들의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진 풍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몇 년 후 뭍에서 학교에 다닐 때 저를 알아본 그때 그 선생님과 반갑게 해후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저의 유년시절 기억을 불러내온 계기는 최근에 지역 언론을 통해 접한 기사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충남교육청은 충남 보령시의 작은 섬 녹도의 분교가 2006년 학생 수 감소로 폐쇄된 이후 10년 만에 순회교육 학습장 형식으로 다시 열기로 했다고 합니다. 녹도에 사는 올해 초등학교 유일한 입학생이자 재학생인 류찬희 군을 위해 충남교육청에서 어려운 결정을 해준 것인데 폐교됐던 지역에서 학교 교육이 다시 시작된 것은 전국 최초의 일이라고 합니다. 녹도의 주민들은 마을잔치를 열어 10년 만에 재개된 마을에서의 공교육을 환영했다고 합니다.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모든 것이 효율성과 경제성만을 따지는 세태에 보기 드문 풍경이라 기사를 읽는 내내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이민철 청파초등학교장이 지난 3일 호도분교 녹도학습장에서 류찬희군(오른쪽)과 옆 섬마을 호도분교 고가은양의 입학허가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충남교육청 이 기사를 읽고 나서 생각의 끈은 지난 연말연시에 있었던 대전의 변두리 학교인 기성초등학교 길헌분교의 통폐합 논란에까지 닿았습니다. 길헌분교는 전교생이 22명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입니다. 지난 연말 대전교육청은 학생 수가 적어서 두 학년씩 같이 수업을 진행하고, 조리실이 따로 없어 급식도 본교에서 가져다 먹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길헌분교를 폐쇄하고 본교와의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길헌분교 학부모 18명 전원은 대전교육청이 통폐합 기준인 학부모 75% 이상의 동의를 얻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폐합을 추진한다면서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학부모들은 도심의 큰 학교가 싫어서 일부러 길헌분교에 아이를 보낸 분도 있고 통합되면 먼 기성초등학교까지 통학의 어려움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은 무시하고 무리하게 통폐합하는 것이 교육부로부터 지원받는 인센티브 30억 원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주장했습니다. 학부모와 지역 시민단체가 통합반대운동을 펼친 결과, 지난 1월 대전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기성초 길헌분교장 통폐합을 다룬 대전시립학교 설치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은 학부모와 주민의 의견수렴 부족 등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부결됐습니다. 한 명의 학생을 위해 10년 만에 폐교를 되살린 충남교육청과 학생, 학부모 모두가 반대하지만 22명의 학생을 강제로 본교와 통폐합하려고 한 대전교육청의 정책추진은 많이 다릅니다. 몇 달여 사이에 공교롭게도 이웃한 두 교육청에서 소규모 학교에 대해서 전혀 상반된 모습이 나온 것이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1970년대와 40년이 훌쩍 지나버린 현재를 비교해보면 각종 경제발전 수치에서 대한민국은 비약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커진 빈부 격차와 소득 격차, 그리고 도농 간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실질적 차이는 발전의 과실을 어떤 특정세력과 지역만이 가져간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대한민국의 섬에 사는 주민들에게 1970년대에는 가능했던 학생 한두 명도 학교를 갈 수 있게 책임지는 공교육이 2017년에는 가능하지 않다면 그런 발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31조는 교육권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민은 자녀에게 의무교육을 받게 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자녀가 의무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라면 국민이 어디에 거주하고 있더라도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녹도로 이사 온 류찬희 군은 섬에 학교가 없어 이웃 섬마을 학교인 청파초 호도분교로 매일 배를 타고 통학해야 할 처지였다고 합니다. 마땅한 통학수단이 없자 찬희 부모님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지난해 충남교육청에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은 함께 해야 하며, 의무교육 대상자인 찬희를 국가가 책임져 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에 충남교육청은 재정적 어려움과 효율성 보다는 한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행정이 평등한 교육의 출발선이라며 어려운 논의 끝에 녹도에도 학습장을 여는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한 명의 초등학교 입학생을 위해 10년 만에 학습장을 연 충남교육청의 결정이 22명의 초등학생과 그 학부모 모두가 반대하는데도 폐교를 추진한 대전교육청의 교육행정보다 훨씬 인권적이고 헌법 가치에 충실한 교육행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2017년 3월 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34 | 추천: 1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설 연휴를 마치고 첫 출근날. 점심을 먹으려고 모인 여성 동료들 사이에서 명절 스트레스에 대한 얘기가 쏟아졌다. 명절 내내 설거지 하느라고 허리가 휠 것 같았다거나, 열심히 일하는데 낮잠 자고 있는 남자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얘기는 지겹게도 반복된다. 누구네 시댁은 시골인데 남자들에게만 밥상을 차려주고 여자들은 비좁은 부엌에서 따로 밥을 먹는다더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시대가 바뀌어도 시댁 풍경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나는 예외였다. 가까운 곳에 사는 시어머니는 설 음식을 간단하게 준비할 테니 굳이 전날에 와서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설날 아침을 먹은 뒤에는 시아주버니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점심에는 남편이 설거지를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설에는 잔심부름 외에 공식적인 주방 일에서 해방됐다. 이런 얘기를 하니 여성 동료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감탄사가 나왔다. 시댁이 남녀평등을 실천하는 훌륭한 가정으로 비쳐진다는 것에 대해 괜히 우쭐해졌다. 그때 동료 한 명이 이런 얘기를 했다. “명절 음식은 결국 시어머니 혼자 다 했겠네.” 아뿔싸. 그랬다. ‘시어머니의 노동’을 잊고 있었다. 묵묵하게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차례 음식을 준비한 것은 다름 아닌 시어머니였다. 아들들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쉴 틈 없이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자식들 집에 싸 보낼 음식을 분류했다. 나조차도 그런 시어머니의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우쭐했던 마음이 급격하게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단지 며느리 한 명을 주방 일에서 해방시켰다고 남녀평등이 실천된 것은 아니다. 뒷감당은 결국 여성인 시어머니의 몫이었다. 시어머니는 대학을 졸업한 뒤 교편을 잡다가 결혼과 동시에 전업 주부가 되었다. 시어머니의 노동으로 시아버지는 직장에 전념할 수 있었고 세 명의 자식은 잘 자랐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그런 시어머니의 노동을 지금껏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시어머니는 원래부터가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손맛이 깃든 요리를 하고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보람을 느끼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런데 만약 그런 시어머니에게도 ‘아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든 집안일을 감당해주고 아이를 키워주고 바깥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교사 일을 계속 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적성에 맞는 새로운 일을 찾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 옆에 ‘아내’가 있었다면. 우리는 왜 지금까지 그런 상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까? 사진 출처 - 한겨레 호주의 저널리스트이자 정치평론가인 애너벨 크랩이 쓴 책 <아내 가뭄>은 이렇게 말한다. “여자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고. 여성의 사회 진출은 늘었지만 여전히 리더로서의 여성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주당 70시간 근무가 성공의 열쇠가 되는 직업군에서 아내가 있다는 것이 어째서 지랄 맞게 유용한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아내를 가질 확률은 현저히 낮고 그 자신이 아내가 될 확률은 월등히 높은) 여성들이 이러한 회사의 높은 자리에 오르는 빈도가 남성들 근처에도 못 미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시대에는 오로지 여성이 아내의 역할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맞벌이 시대인 지금은 서로가 서로의 아내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은 여전히 지독히도 힘들다. <아내 가뭄>에는 워킹맘들이 겪는 어려움뿐 아니라 워킹대디들이 집안일을 위해 직장의 양해를 구할 때 부딪치는 장벽도 다루고 있다. 육아와 가사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남성을 사회가 ‘사회적 패자’ 취급을 하는 것, 전업주부 남편이 받는 차별과 사회적 폭력 등도 함께 다룬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남성만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집안일을 아내에게 맡긴 채 야근을 하는 남자에게 “역시 남자가 일을 더 잘하지”라고 말하는 것, 칼퇴근을 하고 어린이집으로 달려가는 여자를 두고 “역시 여자는 이래서 안 돼”라고 생각하는 일 따위를 그만 둬야 한다. 남자에게도 육아와 집안일을 위해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권리를, ‘아내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그래야 함께 살 수 있다. 여자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 이 글은 2017년 2월 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794 | 추천: 1
이동화/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팀장 시리아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2011년 3월 ‘쟈스민 혁명’, ‘아랍의 봄’으로 불리었던 중동지역에서의 민중봉기는 시리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시리아를 독재했던 알 아사드 정권, 그 독재정권을 향해 시리아 민중은 거리로 나와 독재정권의 퇴진을 외치며 다른 중동지역 국가처럼 정권교체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독재정권은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하였고,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으며, 체포, 고문, 감금, 살해 등의 방식으로 잔혹하게 탄압하였습니다. 계속되는 탄압에 시리아내 민병대와 주변 국가들의 군벌들, 다양한 세력의 군사조직이 반군이라는 깃발아래 모여 독재정권의 정부군과 전쟁을 벌였고, 시리아 각 지역에서 일진일퇴하며 내전은 심화되었습니다. 거기에 잔혹한 민간인 학살과 테러를 자행하는 IS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며 시리아를 둘러싼 전쟁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됩니다. 이후 정부군을 러시아와 이란이 지원하고, 터키와 주변 아랍국가, 나아가 미국이 반군세력을 지원하면서 시리아 내전은 국제전 양상을 띄게 되며 시리아인들에게 시리아는 죽음의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2016년 12월 30일 러시아와 터키의 중재로 정부군과 반군은 휴전에 돌입하였지만 여전히 정부군측의 공습과 산발적 교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6년 10월 21일 유엔인권이사회 발표에 따르면 650만 명의 시리아 내부난민(Internally displaced)이 있고, 480만 명의 해외난민이 세계 각지를 떠돌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인접국인 터키에 270만 명, 레바논에 100만명 그리고 요르단에 66만명이 머무르고 있고, 수십만명이 유럽과 인근 아랍국가들, 아시아, 한국, 일본, 미국 등으로 목숨을 건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2011년 시리아 사태가 발생했을 때 시리아 인구가 2300만 명이고 유엔이 발표한 난민수가 1130만명이니 전체 인구의 절반이 난민입니다. 재앙입니다. 또한 시리아인권관측소(Syrian Observatory for Human Rights)는 2016년 12월 현재 시리아 내전으로 사망한 인원이 31만 2001명에 이르며, 그 중 민간인 희생자는 9만 명, 어린이는 1만 6천명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유엔시리아 특사인 스테판 데 미스투라씨는 2016년 4월 한 외교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시리아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40만명이 넘었을 거라고 전했고, 2016년 2월 민간단체인 시리아정책연구센터는 희생자를 47만명으로 추산하였습니다. 지구 한편에서 지옥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을 때 한국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2016년 2월 영국에서 개최된 시리아 공여국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120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하며,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 인도주의 외교를 브랜드화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시리아 사태 이후 한국 정부는 시리아 난민신청자 중 668명에게 인도적 체류 자격을 부여하고 3명을 난민으로 인정하였다고 발표하며 ‘인류애 귀감’이라고 자체 평가를 하였습니다. 참으로 낯 뜨거운 발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겠지만 2015년 하반기 시리아 출신, 주로 알레포 출신의 시리아 난민들은 무려 8개월 동안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채 사실상 구금 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국내 뉴스뿐만 아니라 CNN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다행이 국내 난민지원 단체와 법률가 단체에 의해 현재 난민인정 소송을 진행하면서 구금은 풀린 상황이지요. 또한 정부가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인도적 체류허가란 것도 난민지위와는 달리 추방만 되지 않을 뿐 6개월마다 비자연장심사를 거쳐야 하고 건강보험 등의 혜택은 받을 수 없으며 단순노무직외의 직장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또한 2015년 12월 31일 기준 한국의 난민인정율은 3.8%이고 가족결합과 행정소송 승소건을 제외하면 1.9%에 불과합니다. 어디 나가서 난민관련해서 인류애를 이야기할 수 없는 최저 수준입니다. 또한 정부가 밝힌 인도적 지원도 일본의 지원금액의 1/10수준이고,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와 비교했을 때도 한참 떨어지는 금액입니다. 물론 2012년부터 한국 정부가 약속한 금액은 꾸준히 늘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점이지만 시리아에 인도적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매년 약속한 금액이 제대로 다 납부되었는지,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유엔직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미국 및 유럽, 아랍 국가, 한국 등이 약속한 금액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아서 시리아 난민 지원사업이 매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생색내기용 약속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사진 출처 - 쿠르디와 옴란 돌아와서, 시리아의 전쟁과 난민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2015년 지중해 연안에서 잠이든 듯이 하늘나라로 간 쿠르디, 알레포 폭격에서 구조되어 얼굴이 피칠갑이고 먼지투성이였던 옴란의 모습은 전세계 많은 이들의 분노와 슬픔을 자아냈습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시리아 전쟁의 해결책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전세계의 수많은 개인들은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국가의 경우 안타깝고 무기력해서만은 안 됩니다. 전쟁을 막기위한 외교적 정치적 방법을 찾아보고 시리아 난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수용할 방법을 찾고 관련 자원들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이 한국 정부가 스스로 밝힌 국제사회의 중견국(?)으로서의 자세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시리아는 한국에서 수천 킬로 떨어진 먼 국가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도 1950년 전쟁을 겪었고 그 폐허 속에서 여기까지 성장하였습니다. 한국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전쟁당시와 전쟁이후에 국제사회의 도움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정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약속한 인도주의 약속을 지키고 이 돈이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개인들이 할 수 없는 영역의 일들을 해야 하고 그것이 정부의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21세기 최대의 재앙을 막기 위해 외교적 수사속에서 면피하려는 모습을 버리고 유엔 회원국으로서, 인권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중요한 역할자로서 의무를 다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정부의 의무이행을 위해 한국의 시민사회도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안타까움고 무기력함을 넘어 고통으로 눈물흘리는 이들의 곁을 지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글은 2017년 1월 2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41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