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저는 누구를 대표하고 싶었을까요?(김형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4-09 14:47
조회
110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바야흐로 정치와 선거의 계절이다. 국회로 가겠다는 우리 동네 후보들은 은평구 주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고, 장애인 등을 대표하겠다는 장애인 당사자 비례대표들도 속속 출사표를 내고 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 의원 당선된 소아마비 지체장애인 이성재 의원을 시작으로 최초의 시각장애인 시의원 17대 국회의원 정화원씨도 있었지만 장애인 당사자 목소리를 내며 지역에서 국회로 입성한 장애인은 아직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국회에 있던 그의 아들도 고문으로 장애를 얻었지만 그 중 어느 현역 정치인 중에서 공식적으로 장애인 등록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어떤 이도 우리들을 장애인들을, 특히 증증 장애인을 대표해주지 않는다는 절망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곳곳에 선거인 명부가 붙고 있다. 각 건물에 붙은 저 벽보를 자세히 접할 수 있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 시각 장애인 동네 시민이 있을까? 입후보자가 아니라 투표하는 개개인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선거 운동을 직접 할 수 있는 거주 시설의 장애인은 몇이나 될까? 


내가 가진 뇌병변의 장애인은 누가 대표하지? 이제까지 그나마 사회 활동이 왕성하고 비장애인과 다를바 없는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시각장애인과 일부 지체 장애인들만 입법 활동을 해왔다. 외국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청각 장애인이나 뇌병변 장애인 중에서 시의원 조차 나온 적이 없다. 내가 만나는 중증의 발달장애인들은 누가 대표하지? 지금 활동하고 있는 후보들 중에서 몇몇 이라도 발달 장애인과 직접 대화를 하고 선거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수많은 근육 장애 벗들은 과연 누가 대표하고 있지? 얼마 전 민주당 장애인 위원회 위원장인 근육장애를 가진 당사자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많은 분들이 슬픔에 빠졌지만 민주당은 그 슬픈 죽음에 대해 공식적인 추모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동네 굽어보는 곳에 있는 생활주거시설에 사는 장애인 분들의 이해 관계와 인권은 누가 대표할 수 있을까? 거기 당사자분들에게 주거에 대한 권리와 재산권을 행사하게 하겠다는 국회의원은 아직 없다. 산책하는 마을 주민들도 자유롭게 만나기 힘든 저 넓디 넓은 시설에 사는 장애인 분들의 목소리는 누가 듣고 있지? 덩그러이 혼자 살면서 매일 매일 아침에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걱정하는 자립 주택 등의 1인 생활 장애인은 누가 대표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반려 동물과 반려 식물을 키우고 싶지만 제대로 물은 줄 수 있을지, 산책이나 가능할런지 고민해야 하는 누워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의 바람들은 누가 공유하고 있을까 고민한다. 우리가 대중들에게 세련되거나 충분히 잘나 보이지는 않았을지라도 지금 여기 이렇게 각 정당의 후보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장애인 당사지 분들이 비록 직접 정해진 권력은 얻지 못해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장애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음을, 우리의 장애인 인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계속 외쳐야 한다. 정권 심판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당사자가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도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를 출퇴근하고 학교를 다니고 지역 사회에 살아 가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우리의 대표가 필요하다. 저 국회 안의 300명 모두 알 수 있도록 실천할 수 있도록 장애를 낫지 않고도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다양한 가족을 이룰 수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부디 각 정당의 장애인 비례대표 후보님들은 보다 다양한, 보다 중한 장애인들이, 국회에서 정치 무대에서 일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아 진정한 정치 세력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주길 바란다. 정치나 권력의 유불리를 떠나 장애인을 대표하여 소수자들을 대표하여 다음 국회에는 보다 다양한 장애 유형를 가진 대표자들이, LGBT분들이, 이중언어 사용자 분들이, 몸이 많이 아픈 분들도, 청소년들도 국회에 진출할 수 있기를 계속 꿈꾼다.


우리를 대표할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를 대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누군가들에게 스스로 '대표'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보여주고 싶어 국회 비례대표 후보 공개선발에 지원 했다. 사실 공개 선발 형식으로 이뤄진 이번 국민 경선은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는 다소 불리한 과정이었다. 현장 무대에는 경사로도 없었고 심지어 장애인 화장실조차 제대로 찾기 어려웠다. 단상은 목발을 사용하면서 나자신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고정되어 있어서 안전을 위해서 밝은 조명을 두고 한발 물러나야 했다.


사실 경선에서 우위에 올라야 겠다는 생각보다 무대에서 어떤 경우에도 꽈당 넘어지지 말아야 겠다는 각오가 더 했다. 물론 주최 측은 시간도 없었고 후보들은 대학 수능 시험 때보다 더 민감하니 모든 것을 준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미 경선 후보 중에 장애인 당사자 후보가 있고 장애인과 오랫동안 같이 연대해온 시민 사회와 민주당이 준비한 만큼 최소한 오줌쌀 권리와 안전하게 자신을 홍보할 권리는 앞으로 좀더 확실하게 보장하길 바란다.


내가 어느 이들과 함께 '대표'하겠다. 결심을 한 것은 올해 초 인권연대 교사 연수 강의에서 만난 '우리는 그 어떤 이도 우리들을 대표해주지 않는다는 절망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는 존경하는 강사의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남들처럼 미용실도 가서 훤한 이마도 열고 화장도 받아야 대중들이 호감을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나와 같은 장애인들은 아침 출근길에 남들보다 한두시간 더 걸리는 지하철 리프트를 타기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타기 위해 그런 사치를 부리지 않기에, 우리를 손님으로 진정 환영하는 미용실도 찾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무대에 올라 미리 옷을 입고 잠을 자고 무도한 계단을 넘어지지 않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시커먼 등산화를 신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호흡조차 버겁기만 했지만 저는 숨이 막혀 컥컥 거려도 마스크를 잡고 끝까지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몸이 아무리 아프고 아무리 힘들어도 호흡기 사용으로 숨쉬기도 괴롭고 가래 때문에 말하기 조차 힘든 사람들도, 대중들 앞에서 '대표'할 수 있음을, 우리 모두를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표사진은 흑백이었다. 내 주변에는 색깔을 정확하게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 주변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나는 불리하더라도 나를 보고 있는 그 분들에게 당신들을 생각하는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도 비례 후보 한명은 당신을 위해 흑백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 외치고 싶었다. 경선 발표 장소에서 내가 올린 화면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 밖에 없었다. 발표 자료가 성의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화면을 보는 누군가는 내가 왜 그렇게 흑백 대비가 크게 자료를 만들었는지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감히 그 '누군가를' 몇 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발표하고 싶었다. 언어장애가 심하고 안면 장애를 가지고 휘청휘청한 걸음을 가지고 의원이 되겠다 외칠 수 있음을,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입술을 읽는 의정 생활을 할 수 있음을. 자폐나 지적 장애나 다운 증후군을 가지고 멋지게 입법 활동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늘 대중들에게 너는 이것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너는 저것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대학을 가는 것도 모두 그러했다. 대학에 경사로 하나 만드는 것도 장애인 시설비리 철폐를 위해 싸우는 것도 군가산점 위헌 심판을 받는 것도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했다. 큰 단체의 대표도 없고 인기많은 활동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무너질듯한 쏟아질듯한 몸을 가지고도 중증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도 쟁쟁한 후보들과 경쟁할 수 있음을 호소하고 싶었다. 비록 정해진 권력은 얻지 못해도 우리의 정치를. 우리의 장애가 사람들을 구할수 있음을, 우리의 인권이 세상을 바꿀수 있음을, 계속 외쳐야 한다. 정권 심판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도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를 출퇴근하고 학교를 다니고 지역 사회에 살아 갈 수 있음을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