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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화의 이해 2 - 지상중계] 1강 '왜 지금 이슬람인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4:27
조회
597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나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에 저항감이 들어서 도전적인 자세로 접근해보고자 이슬람을 공부하게 되었다. 터키에서 유학할 당시, 외국에서 온 귀한 손님에게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모자를 선물하고자 큰 정성을 쏟는 사람들에게 감동한 나는 이슬람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되었다.
관용적이며 페미니스트적인 사회, 이슬람.
세계 4대 고대문명권의 3개(이집트-메소포타미아, 인더스)가 속해 있고, 세계 최대의 종교인구를 갖고 있는 세계, 이슬람. 이러한 이슬람 세계에 대해 우리는 미국과 협력관계 하에서 무관심했고, 그 동안 배척해왔다. 그러나 이슬람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 문화적 무지 상태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진정한 지구촌 공동체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대체적으로 이슬람은 관용적, 포용적, 다중문화의 모습을 보인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며 극단화된 이슬람의 모습은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부정적이고 왜곡된 이슬람 정신의 표상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습을 서구의 눈으로 바라본 결과이다.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의 운전면허증 허용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이유는, 부녀자 혼자서는 외출도 할 수 없고 다른 남자와 이야기는 물론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사회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남자 교통경찰과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극히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뿐, 실제로 파키스탄에서는 민선 여성수상이 2번이나 당선되었고 이란에서는 여자 부통령이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이란에서는 우리나라의 약 2.5배에 이르는 여성들이 국회에서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터키에서는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처럼 결혼해서도 자기 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유산을 상속받을 때도 여자, 남자 구별없이 50대 50으로 받는다. 현재 ‘남편도 아내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터키의 야당당수, 탄수 칠레르(Tansu Ciller)의 “나는 이슬람의 딸이다. 나의 존재가치는 이슬람이다. 꾸란 속에 이를 금하는 조항이 있어 유권해석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법 조항을 포기하겠다.” 이러한 발언에 이슬람의 율법학자들이 꾸란을 샅샅이 뒤졌으나 결국 찾지 못해 포기하였다. 이처럼 이슬람 문명이 여성을 억압한다는 편견은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서구 이데올로기에서 바라본 여성억압이라는 문제도 이슬람 이데올로기에서의 실체적 진실과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터키에서 이슬람의 이름으로 여성을 억압한다는 것은 이슬람의 진정한 이데올로기에 벗어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보다 더 페미니스트적인 사회일 수도 있다.
인식의 전환을 통한 이슬람의 접근을 강조한 이희수 교수
‘아랍=이슬람’ 이란 공식이 과연 옳은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랍=이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랍이 이슬람을 대표한다는 생각은 초보적인 상식의 오류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도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이며 태국, 중국을 포함하여 아시아의 약 12억의 인구가 이슬람을 믿고 있다.
이슬람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용어를 설명하자면, 첫째로 아랍이라는 것은 문화적인 개념으로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이슬람을 믿으며 흑인, 동양인 피부색 구별 없이 자기 스스로 아랍인으로 정체성을 표현하는 모두를 포함한다. 둘째, 중동은 동쪽을 극동, 중동, 근동으로 나눈 지정학적 개념으로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절, 영국이 지배하기 편하도록 정한 정치적 용어로서 군사전략적 개념이다. 셋째, 서아시아는 중앙아시아, 동아시아와 더불어 역사학계에서 쓰는 역사적 개념이고, 서남아시아는 지리학계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종교문화적 개념으로 이슬람을 말한다면 14억 57개국이 포함되고 지리적 개념으로 보아 아랍어를 쓰는 중동에만 국한시킨다면 리비아, 모로코를 포함하여 22개국이 해당한다.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야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슬람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두 단어, 성실과 근면으로 압축하여 볼 수 있다. 우리가 중동에서 건설 붐을 일으킬 당시, 낮에는 너무 더워서 일을 할 수 없어 중동 사람들이 ‘시에스따(낮잠)’를 잘 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였던 그 모습이 아직도 중동사람들 뇌리에 박혀있다. 이러한 한국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한국을, 한국 사람을, 한국문화를, 한국상품을,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선호하고 요즘 한류열풍을 불게 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그 예로, 지금 카이로를 포함한 중동지역에서는 한국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다. 이렇게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반(反)서구에 대한 가치를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유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동안 이슬람과 적대적 이해관계에 있는 미국과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을 통해서만 이슬람을 들여다 보았다. 그 때문에 이슬람과 이슬람사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적 편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단지 9.11 테러에서 나타난 3%에 지나지 않는 극소수의 급진 테러조직을 이슬람 전체 조직으로 인식해서는 곤란하다. 지금까지는 이슬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알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우호적인 태도로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슬람은 단순히 종교를 넘어서서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인 문화다. 세계의 약 1/4을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해 지금처럼 적대적인 시선을 계속 유지한다면 세계 사회에서 점차 생존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진정한 지구촌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인식을 전환하여 보다 유연한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고 이슬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정리 - 정유진(인권연대 인턴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