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학교

묻혀진 역사를 찾아서 최명진/ 인권학교 3기 수료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3:19
조회
432
최명진/ 인권학교 3기 수료생

30년 된 건물답지 않게 꽤나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의 자세한 용도를 알기 전까지는 그저 편안한 마음이었다. 육중하게 자리 잡은 검은 색의 안정적인 자리매김과 정성스런 손질이 계속되었을 정돈된 앞마당. 도로변의 시끄러운 소음과 밀집한 회색빛 건물들의 홍수 속에서 ‘남영동 보안분실’은 그렇게 서 있었다. 서울이라는 혼잡한 대륙의 한 가운데에 마치 시간과 공간의 혼돈을 모두 잠재우고 있는 듯한 하나의 외딴 섬으로.

내부에 들어가서도 당시의 자세한 상황을 생각해보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마음이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니 건물 곳곳의 어두운 곳에서 소름끼침과 살벌함의 놀라운 감정들이 심하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그곳을 나온 지금도 내내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곳은 정말 몸서리 쳐지는 그런 곳이었다.

검은 벽돌의 그 건물은 유명한 건축가의 이름부터 소개가 시작됐다. 마치 위에서 쏟아지는 듯한 위압감을 주는 구조를 취하는 건물은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 보는 우리들을 엄습해왔다. 1층부터 7층까지 각 층의 외관은 일관되며 정형화된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그 속은 전혀 상이했다. 각 층마다 오밀조밀한 각기 다른 구조와 협소한 공간들이 낯선 발걸음의 손님들을 조롱이나 하듯이 하나의 ‘비밀’처럼 숨어 있었다. 공간의 구조는 업무적·심리적·경험적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한 듯 복합적이고 세밀한 형태였으며, 밖에서는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이중 구조로 이루어진 것처럼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보였다.

건물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 이야기에 다가서는 기분으로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상상력을 동원해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보니 심히 잔인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닭장같은 5층의 고문실 복도에 이르러 우리는 故 박종철 열사를 떠올렸다. 당시의 모습대로 남아있다고 하는 509호를 들어가 보았다. 가혹한 고문을 받으며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었던 故 박종철 열사의 무수히 많은 恨이 서려 있을 그 장소, 아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故 박종철 열사의 부친께서 피눈물을 흘렸을 그 장소. 덩그러니 남겨진 그곳의 빛바랜 꽃 한 다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원처럼 길었을 고문의 시간, 그리고 지금까지 남겨진 고문의 여운의 무게에 눌리듯 우리는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051130nam02.jpg


5층 조사실에 있는 것은 온통 특수한 것들뿐이었다. 특수한 벽, 특수한 문, 특수한 전등, 특수한 감시용 시설, 특수한 창, 특수한 탁자 그리고 의자와 침대들. 결코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꿈꾸는 서울 한복판에 비밀의 베일로 둘러싸인 특수한 섬이 그렇게 놓여 있었다. 가히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5층 조사실로 직결되는 원형 계단 아래에 섰다. 보일 듯 말 듯 은폐되어 있는 건물의 후문과 바로 직결돼 있는 이 곳은 많은 피조사자들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끌려와 서 있을 그곳이었으리라. 어두운 밤. 무엇을 잘못했고, 어디로 가며, 언제 올지도 모를 의문의 공포감에 휩싸인 피조사자들은 한명이 겨우 지나갈 듯한 폭의 이 원형 철제 계단을 오르며 오히려 땅속으로 꺼져 가는 느낌을 가졌으리라. 자신이 몇 층 높이를 오르고 있는지조차 감 잡을 수 없게 설계된 이 계단의 끝에 5층의 경악스런 조사실들이 대기하고 있으리라고 누가 짐작할 수 있었을까. 아래가 훤히 보이는 좁은 원통형 철계단을 올라가보며 당시의 희생자분들과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그랬었겠구나’ 라는 공포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051130nam03.jpg


감시와 통제 그리고 고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련된 파렴치한 장치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7층의 체력단련실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국가안보, 민생치안, 질서유지 등 누구나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과업을 위한 체력 단련이었으면 좋으련만, 결과적으로 단련된 체력이 남긴 것은 힘없고 죄 없는 민중의 억울한 죽음과 고통, 삶의 파괴뿐이었다. 더욱이 원상태 그대로 보존되어야 마땅할 그 치를 떨만한 고문의 장소가 몇 년 전 모두 리모델링 되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사실이다. 세월 속에 묻혀져 갈 뻔했지만 이젠 단순히 ‘과거의 일’ 이라고 쉽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몰랐으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검은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고통과 恨의 남영동 보안분실은 이제 그 닫힌 장막을 걷고 우리 앞에, 열사의 염원이 꿈틀대는 역사의 흐름에 놓인 우리 앞에 서 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도의적 차원까지는 아니지만 서로에게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예의’정도는 갖추었으면 좋겠다. 실제 있었던 역사를 일부러 묻을 필요는 없다. 묻는다고 한들 완전히 잊혀질 역사도 아니며, 과거 없이 현실이 있을 수 없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와 함께 ‘있는 그대로’를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다.

몸서리 쳐지는 그 시대의 그 모습을 우리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아픔의 역사 속 진실을 우리는 어루만질 필요가 있다. 알고 어루만지려는 의지와 실천을 통해 아픈 과거의 고통이 치유되길 기원하며,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미래의 시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