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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아빠’ 얼굴 공개? 그들이 말하는 ‘알 권리’에 현혹되지 마세요 (한겨레, 2017.10.2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1:18
조회
346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하루에도 여러번 동거 중인 고양이들의 사진을 공개된 에스엔에스(SNS)에 올려 그들의 냥격권(?)과 초상권을 침해하고 있는 토요판팀 박현철 기자입니다. 고양이들의 신상 공개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 그중에서도 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좀 친절하지 못한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경찰은 여중생인 딸의 친구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어금니 아빠’ 이아무개(35)씨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했습니다. 지난 10월12일이었죠. 피의자 이씨가 혐의를 시인하고 현장 검증을 마친 다음날이었습니다. 경찰은 이씨의 신상을 공개한 이유를 따로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관련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8조의 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는 “△범행이 잔인하고 △증거가 충분하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및 공익에 필요한 경우 피의자의 얼굴이나 이름, 나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특정강력범죄’란 살인, 강간, 강도 등 이 법이 규정한 죄를 말합니다. 공개의 주체는 수사기관입니다. 피의자 신상 공개 조항은 2010년 4월 만들어졌습니다. 법무부를 포함해 법 개정을 찬성했던 쪽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범죄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다”(개정법률안 제안 이유 2009. 7. 21)고 강조했습니다. 헌법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범죄자로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면 의도와 무관하게 범인으로 낙인찍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반대했지만 여론을 등에 업은 정부와 여당의 기세를 누를 순 없었습니다. 야당 의원들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2009년 경기서남부지역 연쇄살인범 강호순씨의 실명과 사진을 ‘선제 보도’한 <중앙일보>는 이번 어금니 아빠 사건에서도 경찰보다 하루 앞서 그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했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범죄 피의자의 인권보다 국민의 알 권리와 사회 안전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랐다고 합니다. 경찰이 근거로 삼은 특례법 조항과 같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사회 안전의 가치)을 위한다는.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경찰과 언론이 알아서 챙겨주는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알 권리(right to know)라는 말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알려주지 않으려는 ‘누군가’를 상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서 ‘누군가’는 바로 정부입니다. 결국 알 권리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정부에 대한 정보 공개를 구할 권리”(헌법재판소 판례)를 말합니다. 정부에 권력을 위임한 시민(국민)은 정부가 공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가 보유한 정보는 당연히 ‘공적 정보’여야 할 겁니다. 이씨의 얼굴과 이름이 공적 정보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지만(당연히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의 공개 대상 정보엔 해당하지 않습니다), ‘알려주지 않는’ 습성을 지닌 정부에 소속된 경찰이 국민의 ‘알 권리’를 먼저 생각해주는 듯한 모습은 더 의문스럽습니다. 가까이는 2015년 백남기 농민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멀리는 2009년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용산참사),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실들을 숨기느라 급급했던 그 경찰이 말이지요. 이번 어금니 아빠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발뺌하느라 급급한 경찰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기 대응에 문제가 많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신상 공개를 통해 ‘나쁜 놈’에 대한 증오를 집중시켜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려는 의도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가 있진 않은지,  “범죄에 대한 국민의 울분을 해소시켜 관심을 돌리려는 목적”(강동욱 동국대 교수)이 있진 않은지. 어금니 아빠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한 시민들에게 어떤 ‘공익’이 발생했는지. 어금니 아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해서 이익을 얻는 쪽은 누구일까요?

그럼 언론은 왜 그러냐고요? 어금니 아빠의 사연을 미담으로 포장하느라 사실 확인에 소홀했던 책임에서 언론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선 경찰과 한배를 탄 셈입니다. 2009년 조두순씨의 신상 공개 보도 당시 “106만명이 클릭했다”며 자랑했던 <중앙일보> 사례에서 보듯 ‘클릭 장사’를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공개의) 근거가 되는 법도 있겠다, 어금니 아빠나 그 가족이 명예훼손 소송을 걸 가능성도 거의 없으니 딱히 공개 ‘못 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자폭’이나 마찬가지라 언론에 대한 얘긴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박현철 토요판팀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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