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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차 수요대화모임(10.03.25) 정리- 곽노현(방송대 법학과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0:53
조회
423
학교교육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칠 것인가?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 교수



학교가 20:80으로 재편되었다. 학교뿐만 아니라 교실 속의 학생들도 그렇다. 민사고, 자사고부터, 외국어고, 과학고, 그 밑에는 자율형사립고, 공립고, 일반 인문계, 실업계, 서울과 지역 등 고등학교마저 완벽한 서열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학교와 학생들이 완벽하게 한 줄 세우기 무한경쟁 때문에 서열로 나눠졌고, 다수인 80%가 20%의 들러리로 전락해버렸다.

학생들은 자유, 존중, 참여를 배우기는커녕, 온 몸으로 차별과 배제, 그리고 체벌을 배울 뿐이다. 학교체제는 학생들도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유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저 잘못된 서열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순응하도록 하는 무기력한 학생들만을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을 돌려주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의 꿈을 돌려주어야 한다.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고, 다수를 패배자로 만들고, 주체성을 말살하는 교육은 없어져야 한다. 차별과 배제, 그리고 체벌에 깃들여진 학생들, 그리고 무의미한 경쟁에서 패배한 학생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넘어지고 다친 학생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넘어진 학생들, 조금 느린 학생들, 장애가 있거나 부모의 소득이 낮거나 다른 불편함이 있는 학생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공교육이고, 연대이다.

지금은 공공성에 기초한 공교육이 무너진 상황이고, 우리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연대성의 원리도 해체된 상황이다. 그래서 시민들이 너나없이 교육문제 전문가가 될 정도로 교육이 엉망이 되었다.

국영수 중심의 한 줄 세우기 교육은 그저 폭력일 뿐이고, 교육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교육을 바꾸려면, 교육문제를 고치려면, 지금의 ‘한 줄 점수 경쟁’을 ‘백 줄, 천 줄 재량 발현’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 체제에서는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더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여전히 저복지국가에 머물고 있다. 사회보장이 별로 안되고, 사회는 불안하기만 하다. 개인의 미래 역시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신분을 유지하거나 보다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교육경쟁을 통해 더 높은 점수를 받고,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갈 수 있는 학교에 진학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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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체제에서는 그저 암기 위주로 일방적 주입식 강의를 하며, 점수를 끌어 올리는 방식의 교육같지 않은 교육만이 요구될 뿐이다. 교육자로서의 전문성이나, 원리에 대한 이해, 자기주도형 학습은 필요없게 된다. 당연히 입시만을 염두에 두고, 소수의 학생들 가르치는, 사교육이 더 강점을 보이고 있다. 지금의 교교와 대학의 서열구조와 대학입시체계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교육문제는 더 악화되기만 할 것이다.

전면적인 교육개혁이 당장 진행되지 않더라도, 초중등 학교 차원에서도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 학생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꾸준히 시도되어야 한다.

먼저 정규수업과 평가방식을 바꿔야 한다. 가히 ‘교육혁명’이라 불릴만한 대대적인 개혁이 진행되어야 한다. 암기를 넘어 그룹식, 협동식, 문제해결식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한 줄 세우기만 강요하는 일제고사는 당장 없어져야 한다.

학생들에게 최대한 자유를 보장하고, 학생들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

학교 문을 열어 지역사회와 함께 배움이 일어나고, 배움을 실천하는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 교육활동 전반에서 무상급식을 비롯한 보편적 복지가 실천되어야 한다.

교장은 학부모와 교사가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내부형 또는 개방형 교장 선출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교육재정이 확충되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한국의 교육은 조금씩 고쳐봐야 효과도 나지 않을 정도로 중병을 앓고 있다. 진짜 변화를 원한다면, 제대로 고치려면 혁명이 필요하다.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는 책임 교육, 누구도 낙오하지 않는, 낙오할 까닭도 없는 맞춤형 교실, 한 줄이 아니라, 천 줄, 만 줄을 설 수 있는 교육, 수직서열화가 아니라, 수평다양화가 실현되는 교육으로의 혁명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