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인권연대
> 활동소식 > 언론에 비친 인권연대
[경향신문] 오항녕의 독사관견 讀史管見 율곡이 트럼프를 만났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올린 트윗은 이 나라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살기 시작했다는 징표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 땅의 역사는 이제 회복된 인지상정 위에서 꼬이지 않은 심성으로,
또 낯설지 않게 율곡과 연암의 글을 읽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 여자초등학교에 대한 미국 폭격에 인간에 대한 절망으로 흔들렸는데,
그 불안과 낙담 속에서 길어 올린 작지 않을 듯한 희망이다"
개, 돼지 같은 황제
“한고조는 본래 게으르고 무례하며, 그가 부리던 자들은 부귀공명에만 마음이 있던 자들입니다. 한 문제는 그저 편안하고 조용한 것에만 안주하면서 근근이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데만 그친 인물이었습니다. 광무제는 그릇이 한고조에 미치지 못합니다. 국정을 삼정승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가 다 하려고 했던 인물입니다. 당 태종은 아버지를 위협하고 군사를 일으켜 형을 죽이고 황제의 자리를 빼앗았으며, 동생의 처를 빼앗았으니, 개, 돼지와 같습니다.”
율곡 이이가 쓴 <동호문답(東湖問答)> 중 한 부분이다. 율곡은 34세(1569·선조 2) 때 홍문관 관원으로 독서당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에 들어갔다. 홍문관은 임금의 자문, 강의를 담당하는 관청이고, 거기서 관원들에게 공부하라고 휴가를 주었다. 그러니 독서당은 홍문관 소속 연구소인 셈인데, 율곡 때에는 한강 동호대교 초입인 옥수동에 있었다. 독서당 자리에 옥수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동호문답>은 연구 기간 중 제출한 월별 과제였다. 주인과 손님이 문답하는 구성인데, 율곡은 이 보고서에서 정치의 원칙, 목표, 방법부터 당시의 현안까지 망라해, 갓 즉위한 임금 선조에게 바쳤다. 선조는 율곡보다 열여섯 살 어렸으니, 아들뻘이었다.
율곡은 조선 정치가 지향할 목표로 첫째, 백성이 편안한 세상, 둘째, 이를 위해 임금과 신하가 서로 존중하며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에 두었다. 대부분의 진리가 그렇듯 사람들의 이상은 보편적일수록 간명하다. 물론 그 단순한 이상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정작 ‘어렵다는 생각’이야말로 이상의 실현을 더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맘을 굳게 먹는 입지(立志)가 첫걸음이다.
낯선 사대(事大)
어떤 모임에서 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끌어주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우리가 사대(事大)라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던 거 같아… 중국 황제를 저렇게 대놓고 비판하는 걸 보면… 요즘도 저렇게 못하지 않나?”
조선의 사대주의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터에, 율곡이 중국 황제를 옆집 사람 흉보듯 말하니까 어색했던 것이다. 사대란 말이 새삼 낯선 모습으로 다시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이상이 있어야 정치가다
율곡이 거론한 중국 황제들은 모두 역사상 셀럽 황제들이었다. 한고조는 항우와 패권을 다투다 한나라를 건립한 유방이다. 율곡이 한고조를 비판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현인 역이기를 만날 때 의자에 걸터앉아 발을 씻기며 맞았기 때문이다.
이때 역이기는 간단히 목례만 하고 “그런 태도로 현자를 대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없다”고 직언을 했다. 그제서야 유방은 자세를 바꾸고 옷도 차려입은 뒤 다시 정중히 맞았다고 한다. 사실 한고조의 경우는 율곡의 비판이 억울할 수 있다. 역이기에게 사과까지 하고 잘못을 바로잡았는데 율곡에게 지적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 태종은 윤리적인 흠결이 있기에 율곡의 말에 토를 달기 어렵다. 무엇보다 당 태종의 평가에는, 지난달 칼럼의 주제이기도 했던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간접 비평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당 태종은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안시성 싸움에서 양만춘 장군에게 패하고 돌아갔다고 국사 시간에 배웠기에 좀 급이 낮은 군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의 재위 시대는 중국사에서 ‘정관지치(貞觀之治)’라고 부를 정도로 치세를 이룬 인물로 평가되곤 한다. 나중에 <정관정요(貞觀政要)>라는 책도 발간되어 후대 군주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정관은 당 태종의 연호이고, 정요란 정치의 핵심이라는 말이니까, 당나라 스타일의 국조보감(國朝寶鑑)인 셈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으나, 세조가 폐지한 집현전을 성종 때 다시 설치하면서 이름붙인 홍문관이라는 명칭은 당 태종이 진왕(秦王)으로 있을 때 싱크탱크 이름이기도 했다.
교과서의 맹목성
내가 보기에 율곡의 중국 황제에 대한 비평은 당시 자료를 조금이라도 차분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그리 낯선 장면이 아니다. 조선과 중국 사람이 직접 만난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 연행록(燕行錄·북경 다녀온 기록)이나 외교사절로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보고만 보더라도 그렇다.
명청(明淸) 교체기, 만주족의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중국 사신으로 다녀왔던 청음 김상헌은 “명나라 조정은 내관(內官·환관)이 정권을 독단하며 능력 있는 인물이 배척받고 언관(言官)이 파면되어 조정을 떠난다”고 보고했다. 이어 병자호란 뒤에 “숭정 황제(명나라 마지막 황제 신종(神宗))가 국정에 나태하여 나라를 망친 일을 거울로 삼으라”고 인조에게 주문했다. 율곡이나 청음뿐 아니라, 그 많은 연행록을 아무리 보아도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맹목적 사대주의’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맹목적인 시각을 다른 데서 발견했다. 2020년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검토하던 중 ‘친명 의식에 빠진 양반들을 비판하다’라는 타이틀 아래 제시된 사료를 보았다. “7월28일. 아하! 명나라 왕의 은택은 이미 다 말라버렸다. 중국에 사는 선비들이 자발적으로 오랑캐의 제도를 좇아서 변발을 한 지도 백 년이나 되었건만, 그래도 오매불망 가슴을 치며 명나라 왕실을 생각하는 까닭은 무슨 이유인가? 중국을 차마 잊지 않으려는 까닭이다.”
내 안의 냉소와 폭력
이 사료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7월28일, ‘관내정사(關內程史)’에 나오는, 그 유명한 ‘호질(虎叱)’의 일부분으로, 연암이 변발하지 않은 중국인을 만난 뒤 자신의 소감을 적은 글이다. 이 글은 교과서 집필자들이 붙인 제목과는 달리, 연암이 청나라 정부가 변발을 강요하는 것을 수준 낮은 방책이라고 비판하면서 했던 말이다. 여기서 연암의 ‘친명 의식에 대한 비판’은 찾을 수 없다.
이처럼 교과서의 타이틀과 사료가 일치하지 않았던, 아니 정반대로 왜곡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집필자 마음에 자리 잡은 조선 사람들의 사대주의에 대한 냉소에 있다고 생각한다. 집필자들은 연암의 글에서 무리하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대주의’를 벗어난 흔적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이 냉소와 조바심의 배후에는 빨리 근대화되었으면, 하는 서구식 근대주의에 대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새로운 시대의 예감
최근 뉴스 하나가 세계 많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4월10일 SNS에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추락시킨 사진을 공유하며 올린 글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문제 삼는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 없다.” 아마 한국 정치가가 미국과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에서 일어난 행위의 부당성을 지적한 첫 발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후 추가 트윗이 나왔는데, 그중 다음 말을 나는 시민들과 기억하고 싶다. “내가 아프면 타인도 그만큼 아픕니다. 나의 필요 때문에 누군가 고통받으면 미안한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 보편적 인권과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습니다.” 이런 인지상정이야말로 냉소와 폭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국익에 앞서 인권을 가치로 제시한 점도 뿌듯하다. 이익과 실용도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두어야 당당하기 때문이다.
역사학도로서 감히 예언하자면, 이재명 대통령이 올린 트윗은 이 나라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살기 시작했다는 징표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제 서서히 이 땅의 역사는 회복된 인지상정과 상식 위에서 꼬이지 않은 심성으로, 또 더 이상 낯설지 않게 율곡과 연암의 글을 읽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 샤자레 타예베 여자초등학교에 대한 미국의 폭격을 보며 그동안 인간에 대한 절망으로 흔들렸는데, 그 불안과 낙담 속에서 길어 올린 결코 작지 않을 듯한 희망이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 4112 |
[경향신문] 오항녕의 독사관견 讀史管見 율곡이 트럼프를 만났을 때
hrights
|
2026.04.28
|
|
조회 25
|
hrights | 2026.04.28 | 25 |
| 4111 |
[경향신문] ‘해직교사 복직’ 시위자에게 “비누 없다” “수갑 차라”는 경찰···유치장 인권 괜찮나
hrights
|
2026.04.21
|
|
조회 141
|
hrights | 2026.04.21 | 141 |
| 4110 |
[경향신문]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쟁, 혹시 ‘게으른 사이다’는 아닐까?
hrights
|
2026.04.17
|
|
조회 131
|
hrights | 2026.04.17 | 131 |
| 4109 |
[한겨레TV] 최초 ‘홍세화상’ 시상식 현장!! 수상자는…?
hrights
|
2026.04.16
|
|
조회 172
|
hrights | 2026.04.16 | 172 |
| 4108 |
[한겨레21] 투기와 싸우다 불혹 넘긴 제주의 청년활동가
hrights
|
2026.04.16
|
|
조회 153
|
hrights | 2026.04.16 | 153 |
| 4107 |
[미디어제주] 박유라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국장, 제1회 홍세화 상 수상
hrights
|
2026.04.08
|
|
조회 459
|
hrights | 2026.04.08 | 459 |
| 4106 |
[제주의소리] 제1회 ‘홍세화 상’에 박유라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국장
hrights
|
2026.04.07
|
|
조회 554
|
hrights | 2026.04.07 | 554 |
| 4105 |
[헤드라인제주] 박유라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국장, 제1회 홍세화상 수상
hrights
|
2026.04.07
|
|
조회 453
|
hrights | 2026.04.07 | 453 |
| 4104 |
[서울신문] 촉법소년 논란 속 전문가들 제언…“연령 하향보다 안전망 복구 먼저”
hrights
|
2026.04.07
|
|
조회 522
|
hrights | 2026.04.07 | 522 |
| 4103 |
[서울신문] “촉법소년 연령, 신중한 접근 필요”…인권연대, 6일 국회 토론회 개최
hrights
|
2026.04.02
|
|
조회 630
|
hrights | 2026.04.02 | 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