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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죽음-기계에 관한 단상, 남영동 대공분실을 둘러보고(수유너머 웹진, 08.0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03 04:55
조회
129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칭송받았던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을 “살기 위한 기계”라고 불렀다.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개념이지만, 코르뷔지에 당대에 그 말은 대단히 낯선, 하나의 프로파간다 같은 것이었다. “살기 위한 기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고 하는 그의 질문은 건축이 인간적 기반과 척도 위에서 필요와 기능, 그리고 감동을 동시에 생산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Time지가 “한국의 로렌초 메디치”라는 헌사를 바쳤던 건축가 김수근은 “건축은 빛과 벽돌로 짓는 시”라고 말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붉은 색 벽돌로 지어진 집들은, 확실히  한편의 잘 쓴 모더니즘 시처럼 단정하고 품위 있다.

그가 지은 붉은 벽돌집들 중 몇몇은 내게 특별히 의미 있는 장소들 속에 놓여 있다. 수험생활의 지긋지긋함을 피해서 도망치던 곳이 원서동의 공간 사옥이었고, 연구실이 대학로에 있던 시절에는 그가 만든 아르코 예술극장과 미술관, 샘터 사옥과 국제 협력단 건물 앞을 하루에도 몇 번 씩 지나다녔다. 지금, 남산 연구실 뒤쪽에는 그가 지은 가정집을 개조한 파스타 가게 일 비노 로소가 있다. 물론 김수근이 벽돌로만 집을 지었던 것은 아니다. 근대 건축의 상징인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국회의사당과 세운상가, 자유센터 등도 그의 ‘작품'이다. 하지만, 역시 붉은 벽돌 옷을 입었을 때, 김수근의 건축물은 ‘시적인' 것이 된다.

남영동 대공 분실을 지을 때, 김수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붉은 벽돌에 검은 칠을 했다. 검게 염색한 벽돌은, 그 집의 실제 용법에 대한 김수근 나름의 암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쓰여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그런 시들이 있다. 서정주에게 「오장 마쓰이 히데오」가 그랬듯이, 김수근에게는 「남영동 대공 분실」이 그렇다.


1974년에 완공된 남영동 대공 분실은 2005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그 용법이 바뀔 때까지 악명 높은 ‘권력기관'으로 기능했다. 그 곳에서 많은 조직 사건과 간첩단 사건이 만들어졌고, 능력 있는 좌파 활동가들이 고문, 회유, 협박 속에서 망가져갔다. 그 곳은 ‘살기 위한 기계'가 아니라, 무수한 거짓과 허위 혹은 죽음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그 집'은 겉보기에 번듯하다. 말끔하게 손질된 정원과 쾌적한 테니스 코트, 넓은 주차공간까지 거느린 7층짜리 건물(그리고 옆으로 연결된, 그 성격을 알 수 없는 2층짜리 부속건물)은 단정하고 미적인 품격을 뽐낸다. 하지만 그 번듯함이야 말로 사건을 위장하고 조작하며 ‘음지를 지향'하는 것이 목적인 그 집의 성격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 집의 ‘번듯한 앞면'을 지나쳐 ‘뒷면'으로 돌아가면, 집의 성격이 조금은 더 확실하게 눈에 들어온다. 예전 같았으면, 수사관이나 피의자가 아니라면 접근 불가능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피의자'들은 밖에서는 절대로 열 수 없는, 최소 50cm두께의 푸른 색 철문을 통과하여, 집의 뒷면에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짙은 색 ‘전용철문'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선 후, 그들이 묵게 될 5층으로 입장하게 된다. 이 집의 뒷면에 설치되어 있는 엘리베이터는 1층과 5층만 왕복운행 하며, 그 옆에 설치되어 있는 철제 나선형 계단 역시 5층까지만 연결되어 있다.

어두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좁은 사각의 공간, 그리고 다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주치게 되는 비좁은 엘리베이터와 짙은 색 철제 나선형 계단. 누군가 ‘피의자' 신분으로 이곳으로 끌려왔을 때, 처음 마주치게 되는 냉기와 공포감, 그리고 극도의 불안감은 여기서부터 만들어진다.(우리는 이 공간에서 수사관들이 어떻게 ‘피의자들'을 ‘모셨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인권실천 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이 첫인상의 강렬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 감각과 공간 감각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공간의 피해자들은 자신이 건물의 3층 혹은 7층이나 9층에서 심문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공간 자체가 이미 감각, 그리고 의식과 의지의 상실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김수근은 누구보다도 ‘공간의 무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중요시 했던 건축가였다. 그는 자신의 책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에서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근 10개월간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얻은 ‘공간 무드'에 나면서부터 죽는 날까지 본능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서, “훌륭하고 좋은 무드의 의사당이나 정부청사에서는 밝은 정치나 서정쇄신이 이루어질 것이고, 깨끗한 무드의 학교는 올바른 교육을 실현케 해 줄 것이며, 깨끗한 거리의 무드는 교통위반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 입각해서 그는 대공 분실을 지었고,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김수근은 그 집을 대충 짓지 않았다. 철저하게 ‘공간 무드'론 에 입각해서 지어진 그 집의 외피는 김수근 특유의 미학적 공간분할과 미의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각각의 내부 공간은 그 공간의 용도에 맞게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다. ‘피의자'들을 심문하기 위해 만들어진 5층 공간에는 길고 어두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어긋나게 배열된 문들 안쪽으로 약 3평 남짓의 원룸들이 늘어서 있다. 문들의 어긋난 배치는 혹시 문이 열렸을 때 ‘피의자'들이 서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배제하기 위한 ‘배려'이며, 성인의 머리가 채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좁은 창(건물 밖에서 보면 5층만 창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데, 그것을 감추기 위해 같은 크기의 창들을 세로 줄로 불필요하게 내기도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위장술조차 미적으로 배열되어 있다)과 철망으로 채워진 형광등, 지면에 단단하게 박혀있는 사무용 가구들과 침대 등도 ‘피의자'들의 ‘안전'을 고려해서 배치되었다. 물론, 값비싼 수입 자재라든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도록 설치된 도어 아이, 방음벽, 감시카메라, 철제 욕조, 방 안 어디서나 잘 보이는 위치에 만들어진 탁 트인 화장실 등은 국가자본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실현불가능 했을 구성들이다. 하지만, ‘감시와 처벌'이 목적인 이 공간에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어떤 ‘고문도구'도 없다. 전기 콘센트와 욕조가 원래의 자기 기능을 이탈하곤 했을 뿐이다.

반면, 수사관들이 근무했던 사무공간은 평범한 여타의 사무공간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다. 넓은 복도와 나무 재질의 출입문은 물론, 양란화분이라도 키울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이중창을 보면 채광과 전망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혹은 아수라백작의 공간, 남영동 대공 분실의 밝은 쪽은 ‘살기 위한 기계'의 무드를 갖고 있고, 어두운 뒤쪽과 5층은 권력의 악랄함과 공포, 그리고 거짓을 생산하는 ‘죽음-기계'의 무드를 갖고 있다.


남영동 대공 분실이 완공되던 그 해에 김수근은 세검정에 자신의 집을 짓고 이름을 ‘洗耳'장이라고 붙였다. 귀를 씻고 싶을 만큼, 대공 분실은 그에게도 하나의 악몽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이력에서 남영동을 지워버렸고, 그가 했던 대부분의 활동은, “한국의 메디치 로렌초”라는 수사에 값하는 것이었다. 그가 죽고 나서 1년 후,  남영동 대공 분실의 5층 9호실에서 한 젊은이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그가 살아 있었더라면, 그 자신이 ‘억' 소리를 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젊은이의 이름은 박종철이었고, 그 이름이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남영동 대공 분실과 같은 어두운 시대의 유물들은 아직도 전국적으로 42개가량이나 남아 있다. 지난 10년간의 ‘정치적 무드' 속에서 독재정권 시절의 ‘공간무드'는 이미 탈각되었지만, 그 공간들의 용법을 전환시키지 않는 한, 언제 다시 과거의 무드를 회복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때문에 오창익 사무국장의 말처럼, 이러한 공간들을 ‘공공'의 것으로 환수하는 것, 이를테면 어린이 도서관이나 공원 등으로 용도변경 시키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공간은, 그것의 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생산한다. 벤야민이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탐사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푸리에라는 인물에 주목했던 것도, 그가 ‘상품들의 신전'이었던 아케이드를 코뮨의 주거공간으로 용도 변경하는 상상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권용선 연구원
Posted at 200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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