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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신상 공개 보도 무엇을 남겼나 (미디어오늘, 2020.04.0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4-03 09:45
조회
76

“언론이 알 권리 판단할 문제” vs “기본권 침해하는 ‘명예형벌’”


언론사 내부 논의 거쳐 수용자에게 ‘판단 준거’ 제공 필요성도


언론이 말하는 ‘알 권리’란 무엇일까. 공동체를 위한 이익과 헌법적 기본권 사이에는 어떤 원칙이 세워져야 하는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소위 ‘n번방 사건’)을 계기로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촉발됐다. 언론의 자율적 판단이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부터, ‘명예형벌’ 성격이 짙은 행위에 공익을 앞세워선 안 된다는 시각까지 의견이 다양하다.


발단은 지난달 23일 SBS ‘8뉴스’ 보도였다. SBS는 “[단독] ‘박사방’ 운영자 신상공개… 25살 조주빈”이라는 제목으로 성착취가 이뤄진 텔레그램방 운영자 중 한 명(닉네임 ‘박사’)인 조씨 실명과 나이·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김현우 앵커는 “SBS는 이번 사건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인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중대한 범죄라고 판단했다”며 “추가 피해를 막고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저희가 단독 취재한 내용과 함께 구속된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은 서울지방경찰청의 신상공개위원회 구성 바로 전날이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제25조)은 성폭력범죄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 얼굴·성명 및 나이 등 피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서울경찰청은 24일 신상공개위에서 조씨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25일 검찰 송치를 앞두고 서울종로경찰서 포토라인에 선 조씨의 얼굴은 신문·방송을 대대적으로 장식했다.


이로 인한 쟁점 중 하나는 수사기관의 신상 공개 결정에 앞선 언론의 보도가 적절하냐는 문제다. 2012년 한국기자협회가 국가인권위원회와 만든 성폭력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에 따르면 “언론은 성범죄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정보를 관련 법률에 의해 공식적으로 공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손지은 ‘오픈넷’ 변호사는 신상 공개가 경찰 결정에 앞섰다는 것이 비난받을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 손 변호사는 “언론윤리에 따라 (신상공개가) 국민의 알 권리와 연관됐다고 판단되고, 그 정보로 인해 시민의 알 권리가 충족된다면 그 보도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과도하게 실명 공개를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명예훼손 처벌 법제 문제가 심각하다보니 익명 취재원 인용 등 보도 관행이 양산돼 ‘비실명 보도’가 원칙처럼 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조씨 사례를 비롯한 흉악범 신상공개 자체가 수사 진행 상황에 도움이 될 것인가는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그동안 대부분 신상 공개는 범인을 이미 검거한 다음에 이뤄졌기 때문에 재범 우려를 불식시키는 효과가 거의 없었다. 이 사건의 경우 다양한 범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재범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평소 피의자 신상 공개에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반대 입장의 글도 많이 썼는데 이번 사건으로 입장이 많이 바뀌었다. 피해자들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사회가 답을 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연쇄살인, 살인 범행을 위주로 이뤄졌던 피의자 신상 공개 제도와 관행 자체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하루 차이를 두고 방송사가 먼저 공개한 것이 공익적 측면에서 어떤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결정을 기다린 뒤 판단해도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SBS 공개를 시작으로 다른 언론도 무차별적으로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개인신상, 신변보도에 경쟁적으로 열중했다. 결국 ‘조주빈’이라는 이름 세 글자만 부각 되고 사건의 실체, 사건이 발생한 구조, 피해자를 위한 구제 문제보다 ‘가해자 파헤치기’의 계기가 됐다”고 비판했다. “‘반짝 현안 중심’의 가해자 중심 보도 태도가 우리 사회 성범죄를 줄이는 데 도움이 안 됐다”는 것이다.


피의자의 헌법상 기본권 침해 차원에서 신상 공개를 지양해야 한다는 관점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장 출신의 이강혁 변호사는 “기존 법적 절차에 대해서도 제도적 위헌성을 고민해봐야 하는데 이조차 거치지 않고 개별 언론사가 독자적 판단을 했다는 것은 정당화되기 쉽지 않고 언론 관행 측면에서도 권장할 대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천인공노할 자의 신상이라도 공개해 사회적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느냐는 ‘명예 형(刑)’ 논리가 공공연하게 깔린 위헌적 선택은 곤란하다”는 의미다.


앞서 민변 언론위원회는 2016년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해 호기심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 실익이 불분명하고 법원 판단을 받지 않은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헌법적 근거도 희박하다며 관련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다만 모든 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금지하는 게 아닌 실질적 추가 피해 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엄격한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는 게 이 변호사의 생각이다. 피의자 얼굴 공개로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제보를 얻을 수 있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윤석빈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신상 공개 보도의 옳고 그름을 일률적으로 재단하기에 앞서 신상 공개 보도 과정에서 언론사가 지향하는 인권중심 가치를 중점으로 내부적인 공감대를 이루고, 그 결정은 회사에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보도까지의 과정과 결과를 충분히 독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윤석빈 위원장은 “언론사가 관련 배경을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옳고 그름의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경찰의 신상 공개 결정 이후에도 조씨 얼굴을 싣지 않고 있는 한겨레 결정은 주목할 만하다. 임석규 한겨레 편집국장은 “한겨레는 2010년 만든 ‘범죄 수사 및 재판 취재보도 시행 세칙’을 지켜왔다. 공인일 경우 실명 또는 얼굴을 공개하지만 조씨는 공인이 아니다”라며 “(조씨) 얼굴을 비공개하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신미희 사무처장은 “냄비 저널리즘과 같이 여론이 거세 공개했다고 하면 그 기준이나 공익성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신문사의 독자위원회, 방송사의 시청자위원회 의견 등을 참조하거나 시민사회 의견을 반영해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면 언론사의 자의적 기준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현행 법·제도의 허점을 고려해 언론계 안팎에서 이번 기회에 관련 보도 원칙을 공론화할 필요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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