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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은 갔지만, 그 자리는 남아 -박종철열사 19주기, 남영동 대공분실 추모행사(2006.01.14, 프로메테우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18:06
조회
1389

그 사람은 갔지만 그 자리는 남아


[박종철열사 19주기] 남영동 대공분실 추모행사


올해로 박종철열사가 경찰의 물고문으로 우리 곁을 떠난 지 19주년이 됐다. 마석 묘소 참배 및 추모제 행사를 하루 앞둔 13일 오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추모행사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박종철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 외에 40여명이 함께 했다.대공분실 7층 소강당에서 김희선 집행국장(박종철열사 19주기 추모사업준비위, 서울대 인문대 국문과 04학번)의 사회로 추모행사가 시작됐다. 먼저 박종철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인사말이 있었다.


박정기씨는 “고맙다. ‘그 때 그 장소’에 여러분들과 함께 이 자리에 오게 됐다. 반갑다는 말보다 먼저 고맙다. 14일이 종철이가 간 날이다. 지금 이 시간엔 아직 살아 있다.”라고 했다.이어 “원래 이 시간엔 학교에서 행사를 했는데 올해는 여기를 꼭 들러서 가고 싶다고 했고 학생들이 참여해주었다.”고 했다. 예년에는 추모행사를 서울대에서 했는데 올해는 특별히 남영동 대공분실에서만 하기로 한 것이다.

박정기씨는 “그 사람은 갔지만 그 자리는 그대로 남아있다. 그 자리를 봐주는 것도 아버지로서는 영광이다. 일생에 이런 일이 두 번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한번만 있어도 역사적으로 뇌리에 남겨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종철의 죽음이 민주화를 이뤄냈다

이어 박경서 경찰청 인권수호위원장이 인사말을 했다. 그는 “내가 경찰청 인권수호위원장으로 있다니까 나를 경찰로 아는데 나는 경찰이 아닌 공민이다. 우리나라의 인권대사를 하고 있다. 유엔에 가서 우리나라 인권상황을 연설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우리나라 경찰이 인권경찰로 거듭나기 위해 사람 몇 분이 오셔서 인권수호위원회가 만들어졌다.”고 소개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내가 스위스 제네바에 있을 때 박종철 사건이 터졌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감이 생겼다. 예수님의 죽음이 부활했듯이 박종철의 죽음이 민주화를 이뤄냈다. 박종철열사의 뜻을 기리는 일이 무엇인가. 그 방을 그대로 보존하자. 그래서 다른 방은 조금씩 개조했지만 그 방만은 그대로 보존했다. 다른 공간은 국민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고 509호의 보존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우리 경찰청에서도 이 공간과 관련해 추모행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아버님이 올해는 박종철열사의 친구, 선배, 후배 학생들과 함께 행사를 하겠다고 하셔서 뵈러 왔다”고 했다. 경찰청에서도 박종철열사와 관련하여 기념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해왔다는 것이다.

끝으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할 일은 열사의 그 뜻을 어떻게 쓸 것인가, 머리를 모아 힘을 합해야 한다. 15만 경찰도 인권경찰로 거듭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아버님이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시길 바란다.”고 했다.
“그때 그 자리가 오늘로서 19년째다. 19년이 지나도록 이 자리를 원상 그대로 확보해주시고 관리해주신 경찰당국에 먼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왜냐하면 그 때 그 장소 그 형상이 없어져도 누구도 탓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당국은 이것이 귀중한 보물이어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사정을 남겨 두고두고 후세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확보했을 것이다.”라고 했다.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모두들 역사의 현장인 5층 9호실로 이동했다. 한 사람씩 차례로 빈소가 차려진 509호 취조실에 들어가 국화 한 송이씩을 내려놓고 묵념을 했다. 참석자들의 헌화가 끝나고 박정기씨는 9호실 입구에서 다시 인사말을 했다.

이어 “인권수호위원장께서 참석해 주셔서 뜻 깊고 고맙다. 학생여러분들이 이것을 봐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 하나 가져간다면 그것이 드릴 수 있는 선물이다.”라고 했다.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참석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조영권 사회당 서울시위원회 위원장은 “박종철열사 추모제는 많이 참석했었지만 509호에는 처음 와봤다. 아버님이 몇 번이나 말씀하셨듯이 이런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박종철열사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열사라는 이름으로 떠나갔다. 작년에도 농민 2명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고 했다.

이어 조 위원장은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말이 있다. 참석한 우리들이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기를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이어 고려대에서 온 한 학생은 “오늘은 그간 몇 번 왔을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박종철열사를 추모하는 자리는 세상을 바꿔가는 사람들에게 결의를 다지는 자리다. 올해는 배워가는 것이 더 많다.”고 했다.

실질적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열사의 소망일 것이다

김학규 박종철열사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19년째다. 나이로 따지자면 여러분은 20년 후배 정도 될 것이다. 박종철과 내가 대학에 들어갈 당시 4·19에 대해 많은 고민과 이야기를 했었지만 멀게 느껴졌었다. 지금 학생들도 그럴 것이다. 6월 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한 열사의 죽음을 생각하고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형식적 민주화는 많이 이뤄졌지만 실질적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열사의 소망일 것이다.”라고 했다.

참석자들의 발언이 끝나고 모두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합창하고 추모 행사를 마쳤다. 행사 개요와 가사가 적힌 안내문을 들은 학생들은 대부분 그 노래를 모르는 것 같았다.
오 사무국장은 “70년대에는 2층짜리 대공분실 건물이 있었고 주로 간첩을 취조하는 곳이었으나 실질적인 증거는 없고 김근태, 이해찬 등 많은 운동권 출신들이 잡혀와 고문을 당한 곳이다. 너무 많이 잡혀와 자리가 모자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가야호텔을 빌려서 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공포심을 주기 위해 설계된 건물남영동 대공분실에 처음 온 참석자들을 위해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이 정문에서부터 안내하며 건물의 내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 건물은 김수근이라는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다. 간판은 없지만 해양연구소, 경동실업 등의 이름으로 주소를 표기하여 우편물이 왔다고 한다.

“잡아 올 때는 눈을 가리고 데려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왔는지 전혀 알 수 없게 했다. 피조사자들은 앞문으로 다니지 않고 뒤쪽에 문이 따로 있었다. 뒷문으로 가는 길의 건물 옆벽이 높아질수록 넓어져서 검은 벽돌의 건물이 쏟아지는 느낌을 주는데 피조사자들을 겁주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5층으로만 연결된 나선형의 통로

이어 “건물 뒷문을 열고 들어가면 S자로 꺾어서 들어가는 구조가 나온다. 역시 겁을 주기 위해서다. S자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 들어가는 공간이 있는데 여기서 눈을 풀어준다. 엘리베이터는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이다. 계단은 나선형으로 이곳부터 5층까지만 연결되어 있고 다른 곳과는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나선형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자신이 몇 층을 올라가는 지도 알 수 없다. 모두 피조사자를 겁먹게 하기 위한 치밀한 장치다.”라고 설명했다.그렇게 이날의 참석자들은 과거 대공분실에 끌려왔던 민주인사들이 느꼈을 공포를 간접적이나마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일 12시에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소 앞에서 추모제가 열린다.


※ 박종철열사 약력

1965년 4월 1일 부산 서구 아미동 출생
1983년 2월 혜광고등학교 졸업
1984년 3월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입학
1986년 4월 11일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 참가로 구속
1986년 7월 15일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으로 출소
1987년 1월 13일 치안본부 대공분실 요원에 의해 연행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폭행으로 22세의 나이로 숨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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