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책위원회
> 인권연대세상읽기 > 인권-책위원회
‘인권 책’이 쉽게 출간되지 못하고, 출간 된다 해도 독자들을 만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인권 책’이 단 한권이라도 더 출간되고, 단 한명의 독자라도 더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보다 자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책’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나눌 만한 책을 소개해주실 각계의 연구자, 선생님, 언론인을 모셨습니다.
‘인권-책 위원회’에는 강대중(서울대 교수), 김상미(너머북스 대표), 김종진(삼인출판사 편집장), 김진규(초등교사), 방효신(초등교사), 서유석(호원대 교수), 손하담(중등교사), 안혜초(중등교사), 은종복(서점 ‘풀무질’), 이광조(CBS 피디), 이제이(방송작가), 장의훈(중등교사), 정상용(초등교사), 주윤아(중등교사), 최보길(중등교사), 홍성수(숙명여대 교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예쁘게 진실을 말하는 방법> 패트리샤 맥키삭 지음, 마음물꼬 역 - 강대중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5:18
조회
2126
「나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예쁘게 진실을 말하는 방법」 패트리샤 맥키삭 글/지젤 포터 그림/마음물꼬 역, 고래이야기
2013년에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교육학 전공자인 나에게는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떤 관점에서 기술된 지식이 역사 교과서에 담겨야 하는지가 학계와 사회의 건강한 토론이 아니라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는 일이 벌어졌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의 출제 오류 문제 제기에 교육당국이 내놓은 교과서 내용이 우선시된다는 취지의 해명도 법정에서 그 정당성을 심판받게 되었다. 교과서 문제가 법정으로 간 것도 착잡하지만 우리의 학습 생활에 소위 ‘교과서’적인 지식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새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우리의 학습 생활은 누군가 인터넷에 잘 정리해 공유하는 정보나 저명한 학자나 저술가가 공들여 쓴 책에 담긴 이론적 지식에 크게 의존한다. 학교의 교과서도 따지고 보면 이런 정보와 지식 가운데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선별한 것을 담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삶의 가치관이나 방향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학습은 교과서보다는 일상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예쁘게 진실을 말하는 방법>(패트리샤 맥키삭 글. 지젤 포터 그림. 마음물꼬 옮김. 고래이야기)의 주인공 리비에게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그 사람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말해주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일상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리비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크게 혼난 뒤에 반드시 사실만을 말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 날 이후 리비는 친구들과 이웃 어른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사람들은 사실만을 말한 자신을 피하고 싫어하게 된다. 혼란에 빠진 리비에게 엄마는 “사실대로 말하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단다. 때가 적당하지 않거나,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나쁜 속셈일 경우에 그렇지. 그러면 사람들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어. 하지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실을 말하면 문제될 게 없단다.”고 말해주지만 리비의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그런데 리비에게도 다른 사람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바람에 마음이 상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경험을 한 뒤 리비는 진심을 담아 사실을 예쁘게 말하는 법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
초등학교 2학년인 큰 딸 은혜와 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운다. 은혜는 아마도 아빠와 함께 읽은 이 책 <나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보다는 반 친구와의 말다툼 사건을 회상하면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게 되었을 것 같다. 의미 있는 학습은 확실히 자기 삶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책에 담긴 지식도 이 삶의 경험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저 빈껍데기일 뿐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경험을 통해 아무리 많이 배웠더라도 도대체 사실을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 사실을 말하는 문제로 작금의 우리 시대는, 어른들의 사회는 얼마나 많은 반목과 질시에 시달리고 있는가? 상대방을 배려하며 진심을 담아 사실을 말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아니 그것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사실인지 아닌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만들고 여러 사람을 기분 상하게 말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일에 한 사회의 공기라는 언론이 앞장서는 일은 또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소통의 어려움, 소통의 부재가 세간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언젠가 공직에 계신 분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통!통!통!”하는 건배사를 들은 적이 있다. 기억력이 신통치 못해 그게 무엇의 줄임말이었는지는 오래 전에 잊어버렸지만 건배사 배경 설명에 “소통”이라는 두 글자가 여러 번 등장했던 사실만은 또렷이 마음에 남아있다.
인간이 자아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되는 것은 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생후 18개월 전후부터라고 한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놀이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알아보는 시기가 이 무렵부터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아를 알게 된 인간은 타인도 자신처럼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우리에게는 ‘거울 뉴런’이라는 것이 있어서 타인의 고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거울 뉴런 덕분에 우리는 타인도 자아가 존중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각자가 존중 받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타인을 배려하며 서로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요 모든 정치 행위의 근본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살아가는 첫 걸음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정치적인 동물이라면 그것은 권력 투쟁으로 세상을 볼 줄 안다기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안다는 의미로 먼저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 혼자 혹은 내 가족만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어울려 사는 정치공동체인 사회 자체를 잘 가꾸어야한다는 책임감도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남에게 피해주는 나쁜 짓을 안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가꾸고 돌보는 것이 윤리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자세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이웃 어른에게 진심을 담아 사실을 예쁘게 말하는 법을 깨달은 주인공 리비처럼, 제 물건을 가져갔던 친구와 말다툼을 벌였던 일을 이 책을 읽고 기억해낸 큰 딸 은혜처럼, 우리 사회도 2013년에 겪은 많은 경험으로부터 진정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저무는 한 해가 그저 아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경험으로부터 배운다
강대중/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2013년에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교육학 전공자인 나에게는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떤 관점에서 기술된 지식이 역사 교과서에 담겨야 하는지가 학계와 사회의 건강한 토론이 아니라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는 일이 벌어졌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의 출제 오류 문제 제기에 교육당국이 내놓은 교과서 내용이 우선시된다는 취지의 해명도 법정에서 그 정당성을 심판받게 되었다. 교과서 문제가 법정으로 간 것도 착잡하지만 우리의 학습 생활에 소위 ‘교과서’적인 지식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새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우리의 학습 생활은 누군가 인터넷에 잘 정리해 공유하는 정보나 저명한 학자나 저술가가 공들여 쓴 책에 담긴 이론적 지식에 크게 의존한다. 학교의 교과서도 따지고 보면 이런 정보와 지식 가운데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선별한 것을 담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삶의 가치관이나 방향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학습은 교과서보다는 일상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예쁘게 진실을 말하는 방법>(패트리샤 맥키삭 글. 지젤 포터 그림. 마음물꼬 옮김. 고래이야기)의 주인공 리비에게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그 사람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말해주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일상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리비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크게 혼난 뒤에 반드시 사실만을 말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 날 이후 리비는 친구들과 이웃 어른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사람들은 사실만을 말한 자신을 피하고 싫어하게 된다. 혼란에 빠진 리비에게 엄마는 “사실대로 말하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단다. 때가 적당하지 않거나,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나쁜 속셈일 경우에 그렇지. 그러면 사람들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어. 하지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실을 말하면 문제될 게 없단다.”고 말해주지만 리비의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그런데 리비에게도 다른 사람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바람에 마음이 상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경험을 한 뒤 리비는 진심을 담아 사실을 예쁘게 말하는 법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
초등학교 2학년인 큰 딸 은혜와 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 혹시 은혜는 학교나 동네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리비 같은 일이 없었니?
큰딸: (심드렁하게) 기억이 안나.
아빠: (실망한 내색을 감추며) 그러면 리비 친구들이 리비가 사실을 말했을 때 어땠을 것 같아?
큰딸: 마음을 상하게 해서 좋지 않았을 것 같아.
아빠: (책에서 좋은 것, 즉 ‘교과서’적인 지식을 배웠겠지 기대하면서) 그럼 은혜는 어떻게 할 것 같아?
큰딸: 뭐, 귓속말로 해야겠지.
아빠: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어떤 아이가 나쁜 일, 가령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하는 것을 은혜가 보게 되면 그 사실은 어떻게 얘기하는 게 좋을까?
큰딸: (여전히 심드렁하다) 선생님께 얘기해야지.
아빠: (웃음기를 거두고) 그런데 선생님께 얘기했다고 나중에 그 아이가 은혜를 때리거나 하면 어떻게 하지?
큰딸: 그건 117에 신고해야지.
아빠: 117이 뭔데?
큰딸: 학교폭력신고전화.
아빠: 아하. (딸에게 확실히 하나 배웠다)
큰딸: (갑작스럽게 뭐가 생각난 듯이) 그런데 얼마 전에 은혜 장난감 담긴 작은 병을 은혜반 아이가 가 져가는 걸 봤었어.
아빠: (깜짝 놀라서) 엉, 그래서 어떻게 했어?
큰딸: 말싸움을 했는데 자세한 건 까먹었어.
아빠: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그 아이에게 직접 얘기했어?
큰딸: 응. 근데 자기가 훔쳐간 거 아니라고 우겼어.
아빠: (이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큰딸: 우겨서 서로 말싸움한 건데 좀 있다가 은혜 책상 위에 다시 가져다 놓으면서 “여기 있네.”라고 그 랬어. 그래서 끝났어.
아빠: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랬구나.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운다. 은혜는 아마도 아빠와 함께 읽은 이 책 <나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보다는 반 친구와의 말다툼 사건을 회상하면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게 되었을 것 같다. 의미 있는 학습은 확실히 자기 삶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책에 담긴 지식도 이 삶의 경험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저 빈껍데기일 뿐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경험을 통해 아무리 많이 배웠더라도 도대체 사실을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 사실을 말하는 문제로 작금의 우리 시대는, 어른들의 사회는 얼마나 많은 반목과 질시에 시달리고 있는가? 상대방을 배려하며 진심을 담아 사실을 말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아니 그것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사실인지 아닌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만들고 여러 사람을 기분 상하게 말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일에 한 사회의 공기라는 언론이 앞장서는 일은 또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소통의 어려움, 소통의 부재가 세간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언젠가 공직에 계신 분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통!통!통!”하는 건배사를 들은 적이 있다. 기억력이 신통치 못해 그게 무엇의 줄임말이었는지는 오래 전에 잊어버렸지만 건배사 배경 설명에 “소통”이라는 두 글자가 여러 번 등장했던 사실만은 또렷이 마음에 남아있다.
사진 출처 - yes24
인간이 자아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되는 것은 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생후 18개월 전후부터라고 한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놀이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알아보는 시기가 이 무렵부터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아를 알게 된 인간은 타인도 자신처럼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우리에게는 ‘거울 뉴런’이라는 것이 있어서 타인의 고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거울 뉴런 덕분에 우리는 타인도 자아가 존중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각자가 존중 받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타인을 배려하며 서로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요 모든 정치 행위의 근본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살아가는 첫 걸음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정치적인 동물이라면 그것은 권력 투쟁으로 세상을 볼 줄 안다기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안다는 의미로 먼저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 혼자 혹은 내 가족만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어울려 사는 정치공동체인 사회 자체를 잘 가꾸어야한다는 책임감도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남에게 피해주는 나쁜 짓을 안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가꾸고 돌보는 것이 윤리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자세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이웃 어른에게 진심을 담아 사실을 예쁘게 말하는 법을 깨달은 주인공 리비처럼, 제 물건을 가져갔던 친구와 말다툼을 벌였던 일을 이 책을 읽고 기억해낸 큰 딸 은혜처럼, 우리 사회도 2013년에 겪은 많은 경험으로부터 진정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저무는 한 해가 그저 아쉽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