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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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책’이 쉽게 출간되지 못하고, 출간 된다 해도 독자들을 만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인권 책’이 단 한권이라도 더 출간되고, 단 한명의 독자라도 더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보다 자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책’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나눌 만한 책을 소개해주실 각계의 연구자, 선생님, 언론인을 모셨습니다.
‘인권-책 위원회’에는 강대중(서울대 교수), 김상미(너머북스 대표), 김종진(삼인출판사 편집장), 김진규(초등교사), 방효신(초등교사), 서유석(호원대 교수), 손하담(중등교사), 안혜초(중등교사), 은종복(서점 ‘풀무질’), 이광조(CBS 피디), 이제이(방송작가), 장의훈(중등교사), 정상용(초등교사), 주윤아(중등교사), 최보길(중등교사), 홍성수(숙명여대 교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열다섯 살의 용기> 필립 후즈 지음, 김민석 역 - 정상용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5:07
조회
1007
「열다섯 살의 용기」 필립 후즈 지음, 김민석 역, 출판사 돌베게
“아니라고 생각할 때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렴”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인 버스 보이콧 운동을 말하자면 얼마 전 미국 의회에 흉상이 세워진 로자 파크스나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떠올린다. 로자나 킹 목사는 흑인 민권운동단체의 활동가, 또는 지역사회의 지도자로 흑백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싸웠던 주역으로서 인권운동사에 그 찬란한 이름이 전해진다.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두 사람과 함께 싸웠다. 이 책은 그 두 사람과 함께 싸웠던 이름 없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1955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시에서 한 흑인 소녀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운전사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로 경찰관에게 체포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 당시에 버스를 타면 백인은 앞자리에서부터 앉고 흑인은 뒷자리에 앉고, 자리가 차면 흑인이 백인에게 자리를 내 주어야 하는 것이 법이었다. 버스운전사는 좌석이 없어 서 있어야 하는 백인을 위해 흑인소녀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했고 이 소녀는 그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이 작은 거부의 몸짓이 얼마나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그 소녀가 그 유명한 로자 파크스가 아닐까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소녀의 이름은 당시 열다섯 살로, 고등학생이었던 클로뎃 콜빈이다. 클로뎃은 로자보다 정확하게 9개월 앞서 버스 보이콧 운동의 역사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클로뎃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서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다는 소식은 지역사회에 빠르게 퍼져나갔고 흑인사회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더럽고 불결하다는 편견 때문에 옷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도 입어보지 못하고, 자기 발의 모양을 본 뜬 그림을 가져가야만 마음에 드는 신발을 살 수 있었던 흑인사회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일로 클로뎃은 흑인사회의 영웅이 되었지만 이런 분위기를 즐길 수는 없었다. 50년 전 처럼 백인에게 무례했다고 살해당하고 불태워져 나무에 매달려 이상한 열매로 조롱당하는 꼴은 되지 않겠지만, 언제 클로뎃의 집에 폭탄이 날아들고 길 가다가 린치를 당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 안 한 무례를 사과하고 조용히 해결할까? 그러면 오늘 바로 경찰서를 나와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을 거야. 내일 학교에 갈 수 도 있겠지. 재판에서 지면 범죄자 신분으로 살아갈텐데 일자리는 제대로 구할 수 있을까?’
당시로서는 승산 없는 싸움에 변호인으로 함께 한 변호사 프레드 그레이, 교회 목사님, 흑인민권운동단체에서 일하던 로자 파크스, 킹 목사 까지, 많은 사람들이 망설이던 클로뎃에게 힘을 주었다. 열다섯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짐이었지만 그녀는 짐을 지고 두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뜨거운 주목을 받으며 진행된 재판에서 클로뎃은 졌고 범죄자가 되었다. 하지만 클로뎃이 두려움에 가슴 졸이며 힘겹게 걸어갔던 그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같이 걸으면서 두려움도 사라졌다. 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로자 파크스다. 브라우더 대 게일 소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흑백차별철폐 싸움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클로뎃이 어렵게 살려놓은 불씨가 로자 파크스라는 장작을 만나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몽고메리시 버스승객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흑인이었던 조건에서 버스 보이콧운동은 언뜻 보면 쉽게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매일 버스를 타고 백인 마을에 가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흑인들에게 그것은 그리 만만한 싸움이 아니었다.
그들은 짓밟힌 그들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서 걸었다. 자가용을 가진 수많은 흑인들이 카풀에 동참했고 부유한 흑인들도 기름 값을 기부했다. 381일 이라는 길고 지루한 싸움 끝에 드디어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시장과 버스회사의 항복선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 승리한 것이다.
처음에 클로뎃은 버스보이콧 운동의 현장에서 약간 떨어져있었다. 재판에 져서 범죄자 신분이 된데다가 원치 않은 임신으로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칠 수 없었던 것이다. 미성년자인 고등학생이 아이를 가졌다는 것은 당시 미국사회에서 학교에서 퇴학당할 정도로 용납할 수 없는 도덕적 문제였다. 운동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아이를 키우고 있던 그녀에게도 드디어 역할이 주어진다. 버스보이콧운동이 몽고메리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을 때 법원에서는 흑백 인종차별 정책을 법정에 세운 브라우더 대 게일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클로뎃은 이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 줄 것을 요청받았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상처받은 당사자로서 그녀는 당당하게 재판에 응했고, 재판에서 이길 수 있도록 역할을 다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용감하게 싸운 장수와 병사의 이름을 남겨서 그 뜻을 기리는 법이다. 1950년대 미국 흑인 민권운동을 이끈 인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로자 파크스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이다. 두 사람은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싸워 승리함으로써 세계인권운동사에 찬란한 이름을 남겼다.
그러면 맨 처음 버스 보이콧을 시도했던 흑인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등학교를 그만 둔 클로뎃은 고향인 몽고메리를 떠나 뉴욕으로 와서 간호보조원으로 아비 없는 아이를 키우며 살았다. 비록 승리한 싸움이긴 하지만 클로뎃은 백인과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따위의 이런저런 불이익을 받았고 결국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도시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고향을 떠난 지 40여년이 흐른 뒤에, 할머니가 된 클로뎃은 고향인 몽고메리 시로 돌아와서 40년 전 자신의 또래 학생들을 앞에 놓고 강연을 하게 된다.
“아니라고 생각할 때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렴”
그녀가 강연장에서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 말은 50년 전 버스운전사의 위협과 경찰의 협박에 가슴 졸이던 연약한 열다섯 흑인소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나마 흔들리지 않고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열쇳말이다.
“아니라고 생각할 때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렴”
정상용/ 서울 구산초등학교 교사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인 버스 보이콧 운동을 말하자면 얼마 전 미국 의회에 흉상이 세워진 로자 파크스나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떠올린다. 로자나 킹 목사는 흑인 민권운동단체의 활동가, 또는 지역사회의 지도자로 흑백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싸웠던 주역으로서 인권운동사에 그 찬란한 이름이 전해진다.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두 사람과 함께 싸웠다. 이 책은 그 두 사람과 함께 싸웠던 이름 없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1955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시에서 한 흑인 소녀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운전사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로 경찰관에게 체포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 당시에 버스를 타면 백인은 앞자리에서부터 앉고 흑인은 뒷자리에 앉고, 자리가 차면 흑인이 백인에게 자리를 내 주어야 하는 것이 법이었다. 버스운전사는 좌석이 없어 서 있어야 하는 백인을 위해 흑인소녀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했고 이 소녀는 그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이 작은 거부의 몸짓이 얼마나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그 소녀가 그 유명한 로자 파크스가 아닐까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소녀의 이름은 당시 열다섯 살로, 고등학생이었던 클로뎃 콜빈이다. 클로뎃은 로자보다 정확하게 9개월 앞서 버스 보이콧 운동의 역사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사진 출처 - yes24
클로뎃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서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다는 소식은 지역사회에 빠르게 퍼져나갔고 흑인사회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더럽고 불결하다는 편견 때문에 옷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도 입어보지 못하고, 자기 발의 모양을 본 뜬 그림을 가져가야만 마음에 드는 신발을 살 수 있었던 흑인사회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일로 클로뎃은 흑인사회의 영웅이 되었지만 이런 분위기를 즐길 수는 없었다. 50년 전 처럼 백인에게 무례했다고 살해당하고 불태워져 나무에 매달려 이상한 열매로 조롱당하는 꼴은 되지 않겠지만, 언제 클로뎃의 집에 폭탄이 날아들고 길 가다가 린치를 당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 안 한 무례를 사과하고 조용히 해결할까? 그러면 오늘 바로 경찰서를 나와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을 거야. 내일 학교에 갈 수 도 있겠지. 재판에서 지면 범죄자 신분으로 살아갈텐데 일자리는 제대로 구할 수 있을까?’
당시로서는 승산 없는 싸움에 변호인으로 함께 한 변호사 프레드 그레이, 교회 목사님, 흑인민권운동단체에서 일하던 로자 파크스, 킹 목사 까지, 많은 사람들이 망설이던 클로뎃에게 힘을 주었다. 열다섯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짐이었지만 그녀는 짐을 지고 두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뜨거운 주목을 받으며 진행된 재판에서 클로뎃은 졌고 범죄자가 되었다. 하지만 클로뎃이 두려움에 가슴 졸이며 힘겹게 걸어갔던 그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같이 걸으면서 두려움도 사라졌다. 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로자 파크스다. 브라우더 대 게일 소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흑백차별철폐 싸움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클로뎃이 어렵게 살려놓은 불씨가 로자 파크스라는 장작을 만나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몽고메리시 버스승객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흑인이었던 조건에서 버스 보이콧운동은 언뜻 보면 쉽게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매일 버스를 타고 백인 마을에 가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흑인들에게 그것은 그리 만만한 싸움이 아니었다.
그들은 짓밟힌 그들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서 걸었다. 자가용을 가진 수많은 흑인들이 카풀에 동참했고 부유한 흑인들도 기름 값을 기부했다. 381일 이라는 길고 지루한 싸움 끝에 드디어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시장과 버스회사의 항복선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 승리한 것이다.
처음에 클로뎃은 버스보이콧 운동의 현장에서 약간 떨어져있었다. 재판에 져서 범죄자 신분이 된데다가 원치 않은 임신으로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칠 수 없었던 것이다. 미성년자인 고등학생이 아이를 가졌다는 것은 당시 미국사회에서 학교에서 퇴학당할 정도로 용납할 수 없는 도덕적 문제였다. 운동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아이를 키우고 있던 그녀에게도 드디어 역할이 주어진다. 버스보이콧운동이 몽고메리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을 때 법원에서는 흑백 인종차별 정책을 법정에 세운 브라우더 대 게일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클로뎃은 이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 줄 것을 요청받았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상처받은 당사자로서 그녀는 당당하게 재판에 응했고, 재판에서 이길 수 있도록 역할을 다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용감하게 싸운 장수와 병사의 이름을 남겨서 그 뜻을 기리는 법이다. 1950년대 미국 흑인 민권운동을 이끈 인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로자 파크스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이다. 두 사람은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싸워 승리함으로써 세계인권운동사에 찬란한 이름을 남겼다.
그러면 맨 처음 버스 보이콧을 시도했던 흑인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등학교를 그만 둔 클로뎃은 고향인 몽고메리를 떠나 뉴욕으로 와서 간호보조원으로 아비 없는 아이를 키우며 살았다. 비록 승리한 싸움이긴 하지만 클로뎃은 백인과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따위의 이런저런 불이익을 받았고 결국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도시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고향을 떠난 지 40여년이 흐른 뒤에, 할머니가 된 클로뎃은 고향인 몽고메리 시로 돌아와서 40년 전 자신의 또래 학생들을 앞에 놓고 강연을 하게 된다.
“아니라고 생각할 때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렴”
그녀가 강연장에서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 말은 50년 전 버스운전사의 위협과 경찰의 협박에 가슴 졸이던 연약한 열다섯 흑인소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나마 흔들리지 않고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열쇳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