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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죽여야 합니까?" -경햡잡지 2001.12월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0 11:22
조회
545

끝내 죽여야 합니까?

인권운동을 하다보니, 날마다 이러저러한 사연들과 만나고, 사회여론을 환기시켜야 할 일도 자주 생기기 마련이다. 평소 일 때문에 자주 출연하게 된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의 요청을 받아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생방송을 위해 스튜디오에 앉게 되었다.
비록 30분뿐이지만, 생방송이 만만한 것은 아니어서, 준비한 원고를 읽으면서도 조심스럽다. 조심스러움은 이내 건조함으로 이어지지만, 그래도 방송사고를 일으키는 것보다는 안전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는 그야말로 방송사고를 쳐버렸다.
그날도 네댓 개쯤의 주제를 준비하였는데, 첫번째 주제를 진행하다가,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해서, 나머지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약속된 30분이 금새 지나버렸다. 벌써 2년 넘은 고정출연인데, 화만 내고 끝내다니. 그날 첫번째 소식은 국회의원 과반수가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는 것이었다. 소식만 전하기 아쉬워서 사형제도의 폐해에 대해 한두
가지만 지적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했다가 그만 일을 저질렀는데, 바로 김용제라는 젊은이 때문이었다.
세간에 여의도 차량질주 사건으로 알려진 김용제 씨는 1997년 12월 30일, 임기가 두 달도 채 안 남은 김영삼 정권이 사형수 23명의 사형을 집행할 때, 함께 목숨을 잃었다.
김씨는 지독한 약시여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중국집 배달원으로 취직을 해보기도 하고, 공사판을 전전하기도 하였지만, 시력 때문에 며칠도 버틸 수 없었다. 이제 겨우 스물인데 사회는 그에게 한없이 냉랭하였고, 그의 앞길은 꽉 막혀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누구나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남의 차를 훔쳐서 그냥 죽어버리겠다며 차를 몰았지만, 어처구니없게 한 아이가 희생되었다. 정말 이렇게 하려던 것은 아닌데….
현장에서 체포된 김용제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아무리 훔친 차량을 몰았다고 해도 사형까지 갈 만한 사건은 아니었는데, 심한 죄책감에서 최소한의 자기방어도 없이 사형판결을 감수하고 만다. 10년 전의 우리 사회는 그도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외면한 채, 사회에 불만을 품고 어린이를 죽인 나쁜 놈이라고만 몰아갔다. 아무도 그에 대해 배려하지 않았고, 그의 하나뿐인 목숨에 대해서 염려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범행 이전이나 사형수가 되어서나 언제나 혼자였을 뿐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희생된 어린이의 할머니가 나선 것이다. 손주를 위해 대신 죽으라고 해도 기꺼이 그렇게 했을 정도로 손주를 아꼈던 할머니가 살인자를 용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할머니는 용서만 한 것이 아니었다.
옥바라지도 하고, 김용제 씨에 대한 구명운동도 전개하였다. 나중에는 추기경님을 모시고 가서 세례를 받아 요셉이란 이름도 얻게 하였다.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한 번 뿌려진 불행의 씨앗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이번에는 며느리가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었다. 손주가 죽고 난 다음, 가슴이 찢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조심조심 상처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 온 터였는데, “애야 또 낳으면 되지 않느냐.”며 날마다 용기를 주곤 했는데, 자식을 잃은 고통이 결국 몹쓸 병을 심어놓았나 보다.
며느리마저 죽자 이제는 김용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무리 하느님께 의탁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해도, 사회에서 버림받은 불쌍한 용제라고 해도, 손주에다 며느리까지 빼앗아간 집안의 원수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그냥 잊고 지내자며 마음을 다잡았고, 시간은 훌쩍 지나버렸다.
그렇지만 그 누구의 관심조차 없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용제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다시 용기를 내었다. 손주와 며느리가 목숨을 잃은 것도 다 하느님의 섭리라 여기며 하느님께서 이런 참혹한 고통을 통해 뜻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2년 만에 용제를 찾아나섰고, 용제는 눈물로 진심어린 참회를 했다. 그래, 이제는 아예 용제를 내 양자로 삼아야지. 그리고는 마치 배아파 생산한 아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성어린 옥바라지를 했다. 손주와 며느리까지 잃고서 얻은 아들인데, 이 아들마저 사형제도 때문에 잃을 수는 없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용제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용제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였고, 마치 수도자처럼 경건하였다. 늘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으며, 교도소에서도 교도관들과 동료 재소자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죽음을 예비하고 있어서일까. 용제는 자신이 죽게 되면 자신의 모든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997년 12월 18일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한때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아 사형수까지 되었던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 아, 이제는 정말 용제가 살아날 길이 생겼다. 사형수 출신의 대통령이, 인권을 강조하는 대통령이 용제의 목숨을 앗아갈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처음으로 신자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다.
성탄도 지나고 모두들 연말연시의 기분에 들떠있던 12월 30일 아침, 갑자기 교도소에서 연락이 왔다. 용제를 만나러 들어오라는 거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생일도 성탄도 아닌데 왜 갑자기 들어오라는 걸까.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교도소에 들어서니 담당관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오늘인가요?”
고개만 끄덕거리는 담당 교도관.
용제는 그렇게 죽어갔다. 용제의 마지막 소원은 장기기증으로 죽어가는 목숨을 살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교정당국은 그 간절한 소원마저 거부했다. 사형집행은 교도소에서만 해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장기적출을 못한다는 것이다. 장기를 기증받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도 이렇게까지 몰인정하다니.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할머니의 마음이 되어버렸다. 씩씩 화를 내면서 세상의 몰인정, 하나뿐인 생명을 앗아간 국가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않았다. 겨우 한마디 말을 보태는 것으로 방송을 끝낼 수 있었다.
“피해자의 가족까지 용서를 했는데, 또 자기 범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데도 끝내 죽여버려야 한다면 그건 잔인한 이기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형은 이미 확인된 것처럼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없고, 그저 보복일 뿐입니다. 김용제씨를 꼭 죽여할 만큼 우리 사회가 잔인한 것입니까!”
대림2주일은 인권주일이다. 하느님이 사람에게 주신 좋은 선물의 의미를 되새기고 인권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으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자는 것이다. 여러 산적한 인권문제야 그렇다치고, 사람이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제도를 그냥 두고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건가.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인권은 그저 화려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이미 평시는 물론이고 전쟁과정에서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로 했다. 사형제도가 요지부동인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또 인권운동가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기만 하다.

오창익 루가 / 인권실천 시민연대 사무국장


*김용제 씨 이야기는 지난 11월 1-10일 서울 명동 마루소극장에서 ‘아침새는 아침이 없다’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한 이 연극은 사형제도 폐지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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