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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의 국가인권기구안, 무엇이 문제인가? 2000/10/25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0 10:28
조회
259

법무부의 국가인권기구안, 무엇이 문제인가?
곽노현(방송대, 법학)

지난 9월 9일 법무부는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국가인권기구협의회에서 한국은 금년 중으로 인권법을 제정할 방침이며 내년 6월경에 국가인권기구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살짝 선보인 법무부안에 따르면 향후 설치될 국가인권기구는 특수법인의 형태로 운영되며 권고적 권한만 가질 모양이다. 쉽게 말해서 법무부가 그려놓은 국가인권기구는 소비자보호원류의 위상에 고충처리위원회류의 권한을 갖는 약체 법정기구가 될 전망이다.

위에서 살펴본 법무부안의 골간은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과 실효성 보장의 관점에서 볼 때 결정적인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다. 첫째, 법무부안은 합목적적이지 못하다. 법무부의 설명에 따르면 국가인권기구를 특수법인으로 하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근거법령에 의해 특수법인 형태로 설립된 각종 공기업들이 과연 독립성과 자율성을 향유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실제로 법무부가 힌트를 얻었다는 소비자보호원만 해도 안팍의 평가가 모두 재경부의 산하기관이라는데 일치하고 있는 형편이다. 진실로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생각이라면 얼마든지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인권위원회 구성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실질적 임명권이 과반수를 넘지 못하게 규정하고 인권위원들의 신분을 법관의 예에 따라 보장해주면 되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인권침해 여부를 감시하고 시정하는 국가인권기구의 성격상 국가권력의 실질적 수장인 대통령의 국가인권기구 장악을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이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감시대상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감시하게 하는 모순에 빠질 터이다. 법리상으로도 이는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마련인 거래당사자 쌍방을 동시에 대리할 수 없다는 쌍방대리금지원칙이나 자기 자신을 대리할 수 없다는 자기대리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 결과를 낳는다. 요컨대 사법권한을 지닌 모든 국가기관에 요구되는 강력한 독립성과 자율성은 전반적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 임명권한과 절차의 민주화 정도, 강력한 신분보장제도의 완비, 그리고 기관구성원의 결연한 수호의지에 따라 보장되는 것이지 특수법인화로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법무부가 타산지석으로 삼았다는 뉴질랜드 인권위원회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민간단체들은 특수법인의 성격상 아무래도 정식 국가기구보다는 위상이 낮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특히 차별금지의 실효성 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삼는 이른바 선진국형 인권위원회에 속하는 뉴질랜드 인권위원회의 경우 정부의 위신에 관련되는 민감한 사안들을 다룰 것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의 모델로 삼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다.

특수법인 형식의 적합성 여부에 대한 실질적 잣대는 특수법인 형태의 국가인권기구가 과연 국가인권기구의 헌법기구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있다. 국가인권기구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등 기존의 통치구조로는 국민의 인권 보장에 커다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법체계론적 성찰의 결과로 유엔인권기구가 고안해낸 인권보장 전담 국가기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권력에 의한 구조적 인권침해를 오랜 기간 강도높게 경험한 국가일수록, 다시 말해서 근대헌법의 일반적 기본권 보장장치의 무기력과 한계를 절감한 국가일수록 국가인권기구를 헌법에 규정하려는 노력을 하게 마련이다. 민주화 이행기의 헌법 전면개정을 통해 국가인권기구를 헌법기구화한 필리핀과 남아공이 좋은 예다. 국가인권기구가 헌법기구로 올라있건 단순히 법정기구이건 상관없이 국가인권기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헌법기관을 위시한 모든 국가기관들의 인권침해 여부를 감시하고 인권침해의 사전예방과 사후구제에 힘쓰는 기능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인권기구의 본질적 기능은 바로 국제인권법과 헌법이 정한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입법, 사법, 행정부등 기존의 헌법기관들을 감시, 견인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국가인권기구의 법체계적 지위는 기존의 헌법기관들보다도 실질적으로 상위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옳다. 언제든지 인권 억압자로 돌변할 수 있는 국가권력을 국가기관의 자리낮춤과 국민인권의 자리높임에 의해 국가권력을 확실하게 국민인권의 전방위적 봉사기관으로 위치지우는 것, 바로 이것이 국가인권기구의 법체계적 사명이자 법적 본성이라고 할 수있다. 이 점은 국가인권기구를 헌법에 의해 설치하건 법률에 의해 설치하건 전혀 변함이 없다. 국가인권기구의 법적 속성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설사 우리나라의 국가인권기구가 헌법개정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헌법이 아닌 법률에 근거를 둔다고 해도 그 실질적 기능이 최소한 다른 국가기관들의 감시, 견제에 있다는 점에서 일반 법정 국가기구보다는 한차원 높은 준헌법기구적 위상을 갖는 것으로 봐야 마땅할 것이고, 근거법률에서 도출되는 국가인권기구의 법적 위상도 준헌법기구로서의 실질적 위상에 근접해야만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국가인권기구의 위상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국가인권기구가 실질적으로는 세계헌법의 기본권편에 해당하는 국제인권법의 요청에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국제인권법의 국내적 실효성 확보를 위한 국가 차원의 기구로서 존재하는 것이 국가인권기구이기 때문이다.

법무부안이 예정하는 특수법인 형태의 국가인권기구가 과연 국가인권기구 본연의 준헌법적 혹은 국제법적 위상에 부합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선 특수법인이라고 하면 법리상 반드시 법인 업무와 관련된 주무부서, 곧 감독관청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특수법인은 감독관청의 산하기구화하며 독립성을 잃기 쉽다. 국가인권기구의 경우 감독관청은 법무부가 된다. 수사와 행형과정에서 법무당국의 인권침해를 감시할 기능을 부여받은 기구가 정작 법무당국의 감독을 받는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인권현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이 가장 우려하고 냉소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국가인권기구에 필요한 것은 독립성과 양립할 수 없는 감독관청의 존재가 아니라 눈을 부릅뜬 깨어있는 국민과 민간단체의 존재다. 아무튼 특수법인의 형태로는 일반적 법정 국가기구의 위상에도 미치지 못하기 쉽다.

권한도 문제다. 권고적 효력을 부여하는데 그친 이유를 법무부는 같은 국가기관으로서 다른 국가기관에게 시정명령을 내리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혹시 국가기관의 산하 특수법인이 정식 국가기관들에 대해 무슨 수로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겠느냐고 한다면 이해가 간다. 그렇지 않다면 한 국가기관이 다른 국가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까지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법리가 있어야 하는데 과문한 탓인지 아직까지 이런 법리를 들어본 바 없다. 이런 법리가 성립한다면 법원도 존재할 수 없다. 물론 국가인권기구는 엄밀한 의미의 법원이 아니다. 법관으로 구성되는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관으로 구성되지 않은 기구도 공정거래위원회나 노동위원회처럼 준사법권을 가질 수 있다. 국가인권기구도 준사법권을 갖는 것이니 이 점에서 차이는 없다. 물론 주로 사기업에 대해 발동되는 공정거래위원회나 노동위원회의 준사법권과는 달리 국가인권위원회의 준사법권은 주로 국가기관에 대해 발동되는 것이 사실이다. 법무부는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에 국가인권기구에 시정명령권을 부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를 경우 같은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시정권고를, 사인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해야 한다. 형식적으로는 같은 사안이라 할지라도 침해자의 성격에 따라 처벌의 강도를 달리하는 부당한 차별일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는 전근대적인 관존민비 사상의 발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실제로도 법리로 보건 법감정으로 보건 법치와 민주주의에 보다 투철해야 마땅한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를 더욱 엄하게 다스려야 옳다. 마지막으로 국가인권기구는 그 속성상 다른 법정 국가기구보다 한단계 상위 차원의 준헌법적 기구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기구들의 인권침해행위에 대해 과감하게 시정명령을 내려도 법리상으로도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

한편 시정명령과는 달리 구속력이 없는 시정권고를 내려도 국가기관들이 거의 모든 경우에 따를 것이라는 법무부의 예측도 정부와 인권단체들간에 사태 인식과 법적 판단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예컨대 준법서약제와 같이 정부의 대내외적 위신이 걸려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시정권고를 되풀이해도 아무런 실효성이 없을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비자보호원류의 위상에 고충처리위원회류의 권한을 가진 법무부의 국가인권기구안은 너무 약체 기구를 상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인권보장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독립성과 실효성 양자에서 크게 함량 미달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여당이 지금에라도 국가인권기구의 헌법보완적 성격과 준헌법기구적 위상을 인식하는 가운데 그에 걸맞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인권법안을 손질하기 촉구한다. 이렇게 할 때만이 민주적 정권교체 원년과 헌법제정 및 세계인권선언 반세기를 맞아 인권과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데 필요한 커다란 초석 하나를 놓은 것으로 역사가 기억하고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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