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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제도는 야만이다 2001/09/25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0 10:40
조회
290

김 동 훈 (국민대 법대 교수)

로스쿨 문제와 관련되어 말이 많던 사법시험은 결국 사법시험법이 제정되고 시험의 주관부서가 법무부로 이관하는 선에서 개편이 이루어졌다. 새로이 일을 떠맡게 된 법무부는 별도의 주무부서를 설치하고 그 간의 시험을 둘러싼 여러 소송 등으로 실추된 사법시험의 권위를 회복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듯 하다.

특히 문제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출제위원들에게 평소보다 3-4배의 출제수당을 지급하고 또 문제유형도 종래의 단순한 5지선다형에서 탈피하여 정답조합형, 괄호넣기형 등 다양한 방식의 출제를 주문하고 있다. 뜹뜨름한 것은 새로운 유형이라는 것이 결국은 일본의 사법시험문제 유형을 본 뜬 것이라는 것이고 친절하게도 출제자료에는 일본의 문제샘플을 자세히 수록한 책자도 끼어있었다. 필자도 올 여름 문제은행의 출제를 의뢰받아 이삼주일을 머리를 썩이면서 갖게되는 단상은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출제자측에서는 항상 새롭고 변별력이 있고 공정한 시험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머리를 짜내고 수험생 측에서는 보다 빨리 그러한 정보를 알아내고 출제경향에 적응하기 위하여 안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틈을 노려 각종 수험장사가 활개를 친다. 학원가에서는 신출제경향 대비 운운하면서 불안한 수험생들을 호객하고 수험서들도 새로운 수요에 맞추어 넘쳐난다. 꼭 사법시험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는 가히 시험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각종 시험이 난무한다. 대학입학시험, 편입시험, 각종 국가고시, 입사시험, 승진시험 하다못해 직장에서 감원을 할 때도 시험을 치루어서 성적나쁜 순으로 자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시험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사고에는 몇 가지 허점이 있다.

첫째로 시험은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라는 믿음이다. 저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능력이 배양되고 고난도의 치열한 경쟁시험을 통해 선발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우수함을 증명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천여년동안 과거시험이라는 절차를 통해 국가관리를 선발해왔고 과거의 장원급제자들이 정치가와 관료가 되어 나라를 지배해왔는데 이것의 바탕에는 시험에 의한 능력자의 선발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

그러나 실제로 시험을 준비해보고 또 우수한 성적으로의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어본 사람들 자신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시험제도의 허구성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시험이라는 것은 아주 단순한 능력의 테스트가 아닌 이상 인간의 재능을 측정하는데는 너무나 미비한 제도이다. 더구나 그 시험이 일정한 시기에 단번에 이루어지고 정형화 된 것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시험제도라는 것은 그 존재자체로 인간의 모든 사고와 에너지를 묶어버리는 족쇄와 같은 것이다. 수험생들은 저마다 최소의 노력을 투입하여 우수성적 합격이라는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시험 자체가 지상목적이 되는 것이다. 시험제도는 그 시험을 통해 우수한 능력자를 선발하기도 힘들지만 또한 그 시험의 준비과정을 통하여 치열한 시험일수록 수험생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철저한 소모적인 싸움에 불과하다.

둘째로 시험은 공정하다는 사고이다. 시험은 모든 참가자에게 동일한 조건아래서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평가하여 성적순으로 석차를 매겨 선발하니 그 과정에 문제가 없는한 누구도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시험제도의 진정한 존재이유는 능력자의 선발이라는 실질적 목적이라기 보다는 단지 절차적 공정성의 담보라는 데 있는 것이다. 즉 시험은 흔히 말하는대로 '승복(承服)의 기제'일 뿐이다. 스포츠경기에서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하듯이 시험에서도 성적순 석차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패자는 할 말이 없고 승자는 영광을 누린다.

그러나 단순한 승복의 기제로서 시험제도가 제공하는 절차적 공정성이란 너무나 값싼 것이다. 그것은 마치 경찰관 입회하에 복권을 추첨하여 승부를 정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그것은 실질의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해 나갈 모든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며 그에 따르는 인간으로서의 고귀하고 가치있는 모든 판단행위를 포기하고 인간을 한낮 시험의 객체로서 격하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능력을 그것도 잠재적이고 복잡한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고도 미묘한 것이다. 그것은 평가자의 전 인격이 반영되는 문제이다. 또한 많은 재량의 여지가, 또 부정적으로는 정실이나 부패의 여지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안일하게 시험제도에 기대는 것은 우리 사회를 영원히 미숙아의 상태로, 원색적이고 소모적인 경쟁의 상태로 남아있게 할 뿐이다.

셋째로 국가가 주관하는 전국단위의 통일적 시험이란 바로 국가의 통제이데올로기의 통로라는 점이다. 과거시험 제도를 도입한 당나라의 태종은 이제 이나라의 귀족들은 새장안에 든 새들과 같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국가가 중앙집권적인 통제력을 가장 손쉽게 유지하는 방법은 이처럼 관리가 되는 전국단위의 공개경쟁선발시험제도를 손에 쥐고 통제하는 것이다. 국가가 교육에 대해 통제하는 가장 쉬운 길은 국가가 전국단위의 입시제도를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옛날의 운동권 출신의 여러 젊은이들이 결국은 사법시험 등을 준비하여 제도권에 들어오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다. 국가에 대한 비판적인 지성들이 국가가 시행하는 고달픈 수험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경쟁시험에서 선발해준 국가의 은혜를 되새기며 국가주의의 충실한 전도사로 변신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를 진정한 시민사회로 가는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바로 고시제도이고 그 중심에 서있는 것이 사법시험제도이다. 국가시험제도는 시민이 아니라 국가의 신민(臣民)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면에 다름아닌 것이다.

시험제도는 한마디로 야만이다. 시험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훼손이며 인간의 무한한 능력에 대한 폄하이다. 시험제도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그 사회의 지적 미성숙을 나타내는 척도일 뿐이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한 걸음씩 이 시험제도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이 일생에 치를만한 시험이란 운전면허시험 정도면 족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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