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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호] 한국판 뉴딜, 국민건강에 돈 쓰기 싫습니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8-19 15:57
조회
68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디에 돈을 쓰는지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옷을 예로 들어보자. 한 지인은 이제껏 제 돈으로 옷 비슷한 거라고는 양말 한 켤레 사 본적이 없다. 이 사람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외모를 꾸미는데 별반 관심이 없기 때문에 옷을 사는데 돈을 쓰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패션은 고사하고 단정하게 입고 다니기도 쉽지 않은, '손이 많이 가는' 부류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다른 지인은 주말에 처자식을 집에 남겨놓고 혼자서 차를 몰고 대형할인매장에 가서 자신이 입을 옷을 직접 쇼핑한다. 그는 아내가 자기 옷차림에 이러니 저러니 간섭하는 것도 싫어할 정도로 패션에 관한 확고한 소신이 있는 부류다.


 옷뿐만이 아니다. 책이나 그림, 도자기, 하다못해 건담 프라모델에 이르기까지 각자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주저 없이 돈을 낸다. 캠핑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몇백 만원짜리 캠핑 장비를 살 수도 있다. 야구 좋아하는 사람에겐 축구화가, 축구 좋아하는 사람에겐 글러브가 아무 짝에 쓸모없는 낭비로 비칠 수도 있다. 물론 마권 사는데 월급을 쓸어담는다거나, 주말만 되면 강원랜드로 달려가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눈이 벌개지는 사람들 역시 최소한 자신들이 생각하는 우선순위를 확고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


 개개인이 돈쓰는 문제를 계모임이나 회사로 확장시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수익 대부분을 연구개발투자에 지출하는 회사와 주주배당에 지출하는 회사는 각자가 생각하는 기업경영의 철학을 반영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국가가 어디에 얼마나 돈을 쓰고 어느 곳에 돈을 안 쓰는지 보여주는 예산문제는 그 국가의 지향점, 그 국가를 움직이는 이들의 철학과 수준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떤 국가가 인권문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시금석으로 예산만한게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틈만 나면 '대북 퍼주기' 비난을 받았다. 대북 퍼주기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소리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실제 10년간 북한에 ‘퍼주기’한 돈은 식량차관을 포함해도 2조 683억 원이다. 1년에 약 2000억 원, 대한민국 국민 1인당 1년에 5000원 가량이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비교를 해보자. 아라뱃길이란 쌩뚱맞은 간판을 달고 있는 경인운하 건설예산이 2조 2500억 원이었다. 최근 대법원 판결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은 예산 낭비의 끝판왕 용인 경전철을 짓는데 9288억원 들었다. 용인 경전철 하나면 대북 퍼주기를 5년 넘게 할 수 있다. 경인운하를 만들지 않았으면 대북 퍼주기 10년간 하고도 돈이 남았다. 참 많이도 퍼줬다.


 경인운하 만든다고 땅 팔 돈은 있어도 대북 인도적 지원에 쓸 돈은 없다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사실 명확한 국정철학을 제시한 셈이다. '(어차피 곧 망할 텐데) 북한에 커피 값만큼도 주기 싫다.'


 코로나19 위협에 시달린 지 반년이 넘었다. 미국만도 못한 공공의료 시스템 속에서도 신속하게 (의료 관계자들의 땀과 노력을 갈아 넣은 노력으로) 지금까진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불안하고 대응수준은 취약하다. 선별진료소 운영과 확진환자 치료, 역학조사, 지역사회 예방조치 등 코로나19 대응은 전적으로 공공의료 시스템과 헌신에 힘입었다. 그런 이유로 신속하게 공공병상을 확충하고, 공공의료 인력과 방역인력을 갖추지 않으면 언제라도 위기국면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은 이 정부가 생각하는 코로나19 대응 지향점과 전략, 더 나아가 코로나19 이후 한국을 어떻게 바꿀지 극명하게 보여주지 않나 싶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한국판 뉴딜' 어디에도 공공의료 얘기는 없다. 정말이지 단 한 글자도 없다. 반면 스마트병원, 비대면 의료 얘기만 잔뜩 들어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가 발표한 성명은 '한국판 뉴딜'의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인력 확충과 공공병원 호소에 대통령은 ‘감염내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전문의가 없는 병원과 디지털로 협진 하겠다’고 답했다...감염내과 전문의가 없는 병원에는 최첨단 모니터가 아니라 감염내과 전문의가 필요하다.”


 사실 한국에서 '뉴딜'은 노무현 정부부터 역대 정권마다 비슷비슷한 이름으로 내놨다. 내용은 더 비슷했다. 이번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그린뉴딜'은 이명박 정부 '녹색뉴딜' 시즌2이고, '스마트뉴딜' 역시 박근혜 정부 '디지털 뉴딜' 시즌2라고 할 수 있다. '한국판 뉴딜' 발표문 제목을 '창조경제'로 바꾸고 2020년을 2016년으로 바꿔놓으면 청와대 관계자들조차 깜빡 속아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반면 노무현 정부 뉴딜에 들어있던 사회투자계획은 물론, 2012년 대선 당시 제시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강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판 뉴딜' 공약도 온데간데없다. 뉴딜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단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연장선에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러저러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결국은 '거기다 돈 쓰기 싫다'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당장 위기극복을 위한 추경을 한다면서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의 연가보상비를 전액 삭감해버린게 문재인 정부다. 왜 그랬을까. 그 돈이 아깝거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응 일선에 있는 의료진이나 역학조사관들이 체력고갈로 쓰러지지 않도록 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하다못해 지자체에서 그 잘난 K-방역을 위해 계약직 공무원 2명이라도 추가로 고용하려면 1년에 1억 원 돈이 든다. 공공병상 확충을 위한 많은 계획들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돈 쓰기 싫은 것 말고 어떤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문재인 정부는 한국판 뉴딜 발표를 통해 '노오력'과 '열정페이' 말고는 국민건강을 위한 더 좋은 제도를 갖추는데 돈쓰기 싫다고, 돈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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