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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살인과 고문의 기억 - 보안분실을 가다. 남영동 보안분실, 인간의 존엄성 기억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4:52
조회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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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그곳에 다녀왔다.


남영동, 홍제동 등 동네 이름으로만 불리던 곳, 공포와 조작의 상징 보안분실(前 대공분실). 그동안 인권운동을 하면서 만났던 숱한 민주화운동가들이 붙잡혀가 고초를 당한 곳. 눈을 가린채 어디로 끌고 가는지도 모른채 끌려가서 짧게는 며칠씩, 길게는 두세달씩 저들이 원하는 것을 내놓을 때까지 고문이 계속되던 곳. 그러다 서울대생 박종철을 고문으로 죽인 악명높은 대공분실에 다녀온 것이다.


<남영동 보안분실>


 6월 1일 아침 9시, 남영동 보안분실의 육중한 철문이 드디어 열렸다.


 지난 2001년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이 박열사에 대한 위령제를 드리기 위해 들렸던 것을 제외하고, 멀쩡히 걸어서 남영동 보안분실에 들어간 민간인은 우리가 처음이었다. 인권연대에서 허창영 간사와 나, 민주노동당의 이영순 의원과 보좌관이 일행이었다.


 여닫이 식의 철문 뒤에 있는 너비 50cm 가량의 미닫이 식 철문까지 열고 들어간 보안분실에서 처음 눈에 띈 것은 잘 꾸며진 정원이었다. 누군가 꼼꼼한 손질을 한 것으로 보였다. 정문에서 볼 때, 오른편에 7층 짜리 본관이, 본관 바로 옆에는 2층의 부속 건물이 있었고, 그 왼편으로 식당으로 쓰이는 2층 규모의 별관이, 별관 뒤편에는 테니스코트 2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남영동 보안분실은 무시무시한 공포의 상징이었지만, 검은색 벽돌건물이 주는 음침한 분위기를 빼고는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곳도 별천지가 아님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바로 옆 철길을 지나는 열차 소리와 한강로를 지나는 차량의 소음에서 이곳도 자유롭지 않았다.


 본관 앞에서 보안분실 요원들과 수인사를 나눈 다음 출입명부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적었다. 보안시설로 들어가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곧바로 7층에 자리한 과장실(보안분실장실)로 올라갔다.


 과장은 건물과 3과의 업무에 대해 브리핑을 하였다. 주로 방첩(防諜) 업무를 담당하고, 이곳의 주소가 용산구 갈월동 98번지인데, 남영역 바로 뒤편에 있어서 ‘남영동’으로 불리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대지 3,026평에 건평 1,600평 규모에 근무하는 인원은 모두 51명이니, 1인당 차지하는 공간은 50평이나 되었다.


 브리핑을 마치고 시설을 둘러보았다. 다른 층에는 사무공간이 있었다. 사무공간은 쾌적했다. 책상과 의자, 책장 등은 모두 새것이었고, 약 40평의 사무실에 근무하는 인원은 겨우 6명에 지나지 않았다. 넓은 사무실은 업무용 책상과 소파, 회의용 탁자, 수납장, 책장을 배치하고도 공간은 남아돌았다.


 5층에는 문제의 조사실이 있었다. 모두 18개였는데, 경찰이 대조사실이라고 부르는 큰 규모의 조사실이 2개였고, 나머지 조사실은 같은 규모였다. 조사실은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2000년에 새로 공사를 했기 때문이다. 조사실에는 변기와 세면대, 조사용 책상과 의자 2개씩이 배치되어 있었다. 피의자를 재우기도 하고, 칠성판으로 사용하면서 고문을 하기도 했던 침대나 물고문을 했던 욕조는 그곳에 없었다.


 18개의 조사실 가운데쯤에 9호실이라는 간판이 붙은 조사실만은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곳에는 ‘욕조’도 있었다. 바로 박종철 열사가 숨져간 곳이었다. 지난 2000년 남영동 보안분실 리모델링을 하면서 그 방만은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그대로 보존했단다. 9호실에 들어서니 숨이 막혔다.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이었지만, 그곳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참담한 분노는 고마움과 뒤섞였고 그 방에서 내내 어쩔 줄을 몰랐다.


 본관 바로 옆에 붙은 부속건물 1층에는 20평 규모의 전시실이 있었다. 북한이 보낸 간첩이 사용한다는 난수표, 각종 무기, 독침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죽거나 죽이기 위한 무시무시한 장비들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안보전시관처럼 구태의연했다.


 남영동 보안분실의 시계는 1980년대 초반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노획 장비와 함께 오봉옥의 시집 ‘붉은산 검은피’ 등의 책을 이적 표현물이라고 전시해 놓은 것도 구태의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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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제동 보안분실>


 홍제동 보안분실은 최근 문제가 된, 이미 1999년에 폐지되어 직제에도 없는 경찰청 보안4과의 청사이다. 보안4과는 1983년 남영동에서 그 활동을 시작하였다가 1988년 홍제동 분실의 신축으로 이곳으로 이전하였고, 대지 5,196평에 지상 3층, 지하 1층의 건평 1,600평 규모이고, 30개의 조사실과 10개의 사무실, 헬스클럽, 식당, 전경 내무반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홍제동의 조사실은 3층에 있었다. 남영동과 달리 홍제동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욕조와 침대는 모두 들어낸 상태였다. 침대를 들어낸 자리에는 자국이 그대로 있었다. 30개의 조사실 가운데 20개의 조사실에는 폐쇄회로 텔레비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가혹행위를 막기 위해서란다.


 남영동이나 홍제동이나 조사실은 벌써 몇 년째 개점휴업 상태였고, 직원들도 탈북자, 사이버 침투 등의 새로운 역할이 강화되었다는 강변에도 불구하고 할일이 없어 보였다. 더구나 1인당 50평 넘게 차지하는 넓은 공간 배치는 상당히 눈에 거슬렸다. 서민들은 어려운 경제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는데, 공무원들은 보안시설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서 이렇게 넓은 공간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다니 화가 날 지경이었다. 남영동의 인력과 시설을 통째로 홍제동으로 옮긴다 해도, 시설은 넉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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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8일 열린 토론회에서 우리는 달라진 시대 상황에 맞는 보안경찰의 변화를 촉구했다. 국가 안보, 인간 안보, 사회 안보, 생태 안보 등 보안경찰이 전문성을 쌓고 더 치밀하게 더 열심히 일해야 할 영역이 많고 할 일도 많은데, 만만한 한총련 대학생들만을 노리고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란 지적을 했다. 군사대국화를 서두르는 일본이나 쓰나미와 같은 생태적 재해가 위험한지, 스무살 나이의 대학생들이 더 위험한지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를 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안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보안경찰의 역할과 임무를 혁신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감시받지도 통제받지도 않는 권력이 스스로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더 큰 저항에 직면하기 전에 보안경찰이 스스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류애로서 인권을 중시하겠다는 허준영 경찰청장이 고문과 조작의 상징인 남영동 보안분실을 국민에게 내놓겠다고 발표하고, 그곳이 인간의 존엄성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거듭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가권력에 아들을 잃은 박정기 아버님과 독재의 상처로 신음하는 모든 분들께 얼마나 큰 위로가 될 것인가. 그리고 경찰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거둬내고 새롭게 출발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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