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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호]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는 힘? - 버티기 그리고 (비)인간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1-27 17:48
조회
209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바이러스 앞에 인간은 평등하다’는 헛소리
 ‘팬데믹’ 상황이 벌써 10개월, 전 세계 사람 중 52,300,000여 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그중 1,280,000여 명이 죽었다(11월 13일 오전 6시경 통계). 확진자 수는 세계에서 꽤 큰 나라 전체 인구와 비슷하고 사망자 수는 한 도시 인구다. 사실 죽은 사람들과 끼니를 못 챙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어린이, 여성, 장애인 그리고 세계의 가난한 이들의 삶에 어떤 파괴적 효과를 내고 있는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바이러스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헛소리는 이제는 잘 들리지 않지만, 감염도 치료도, 미증유의 팬데믹 상황에서의 죽음도, 삶도, 평등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다. 재난 이전의 삶이 지극히 불평등한 것이었는데, 위기 가운데서 삶이 평등하리라는 생각 자체가 엉터리 아닌가?


 한국에서도 (나 같은) 중산층 정규직은 별일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 시대’라지만 그럭저럭 할 일을 하고 꼬박꼬박 월급도 받는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 여행과 회식을 자제하는 것 정도를 갖고 엄살을 떨 수는 없다. 온라인 수업에도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한국사회 전체에서 자살률이 다시 늘고, 특히 20-30대 여성 자살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실업급여는 무려 70% 넘게 급증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다.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청년층이 있다는 믿기 어려운 뉴스는 또 어떻게 된 것인가? ‘K-방역’의 성공도 그저 상대적이고 자위적인 이야기일 뿐이지 않을까?


 엄청난 불평등과 재난이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기에 인권연대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코로나 시대의 극복을 위한 방책으로 ‘연대’를 화두로 삼고 있다. 우리 동네 학자들이나 문재인 대통령뿐 아니라,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유발 하라리도 슬라보예 지젝도 그렇게 말한다. 좋은 제안이고 당연한 화두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다른 듯하다. 진짜 연대의 의지는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실제로 어디에서 어떤 연대나 협력이 있는가? 그것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 사이에서 무엇을 매개로(‘어떻게’) 가능할까? 연대의 조건을 생각하니 세계적인 재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인간이 가진 자원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이 이어 떠오른다.


 인간의 각자도생 & 국가들의 각자도생
 아마도 ‘연대’란 개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부조나 돌봄(조력)을 뜻하든지, 국제적 연대(국가와 국가 사이의)를 말하는 것일 테다.


 우선 ‘국가들’부터 생각해보자. 시민단체의 국제적 활동이나 WHO, 세계식량기구 같은 UN 기구의 활동은 미미하다. 팬데믹 상황은 ‘국제 연대’의 파괴를 초래했다. 나라들 사이의 공조는커녕 국경을 걸어 닫기가 급선무였고 아직도 국경을 넘기가 매우 어렵다. 미국을 위시한 슈퍼파워, 그리고 기존의 소위 ‘선진국’들은 자기 코가 석자라 ‘리더십’을 잃었다. UN이나 유럽연합(EU) 같은 초국가적 네트워크는 애초에 인륜성과 인류 공통의 문명을 전제로 한 이상의 산물이었는데, 평시에도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코로나 국면에서는 더했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UN 사무총장은 지난 9월 BBC-TV에 출연해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각자도생하는 회원국들의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오히려 유럽의 ‘선진국’ 사례들에서 보듯 이제까지 세계의 ‘지도국’이었던 나라들이 정신없이 고전하고 있다. 예컨대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인권과 혁명의 나라’로 여겨지는 프랑스의 소식은 참담하다. 프랑스의 확진자 수는 인구가 몇 배는 되는 미국, 브라질, 인도 다음이고, 11월 11일 현재 하루 6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 의료 체계 자체가 위기에 빠져 비행기로 환자를 다른 나라로 실어날라야 할 형편이란다. 프랑스 정부는 12월 첫 주까지 ‘봉쇄’ 조치를 내려 바와 카페의 영업을 중지시켰다. 야간 통금도 실시되고 모든 집회가 금지되었다. 기본권의 보장도 방역도 실패하고 있으니, 타국을 돕기는커녕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회의 마스크나 동선 추적 앱을 비판할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요컨대 ‘인간 조건 자체’가 처절하게 문제되는 상황에서 ‘국가들’은 의외로 약하고 고립분산적이라는 사실을 한번 확인하게 된다(그래도 EU가 있는 유럽은 낫다. EU 정상회의는 지난 7월, 1천 30조 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경제회복기금 출연에 합의했다. 또 EU 집행위원회는 10월의 재확산 상황에서 회원국들이 코로나19 재확산에 준비돼 있지 않다면서 새로운 봉쇄를 피하기 위한 조치를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초국적’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그나마 유럽에는 있는 셈이다).


 개별 인간들은 서로를 어떻게 돕고 있는가? ‘접촉에 의한 감염’이라는 상황에서 ‘거리 두기’와 ‘돕기’(연대, 돌봄)는 개념 자체가 상충한다. 자식들도 병원이나 요양원에 있는 늙은 부모를 만나러 갈 수 없고, ‘격리’ 중에는 가족끼리도 (대면) 접촉과 ‘돌봄’이 불가능해진다.


 코로나 시대에 인간 사이의 거리는 기본적으로 더 멀어지고 있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말대로 인간들이 만나게 만드는 ‘환대의 공간’은 사라지고, 혼술·혼삶·혼밥이 ‘보편화’하고 있다. 만남도, 연애도, 결혼도 적어진다(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은 이런 상황의 부대효과 중 하나일 것이다). 코로나 이후, ‘가족’의 의미와 유대(친밀성)의 구조가 변화할 것이라 짐작해본다.


 ‘돌봄’도 그렇다. 현재 ‘돌봄’은 오직 전문적 의료 인력과 공무원들의 손과 희생에 맡겨져 있다. 의학자 최은경의 말처럼 ‘돌봄 없는 돌봄’ 즉 관료적 돌봄(치안)은 넘쳐나지만 ‘돌봄’은 착취되고 위기에 처한다. 의료가 한계에 처하자, 우생학적 아이디어가 나타나고 혐오와 차별이 늘고 있다는 것도 전 세계적인 ‘현실’ 그 자체다. 어떤 나라들에서처럼 의료 체계와 자원의 동원이 위기에 빠지면 만성 질환자,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요양원의 환자들은 버려질지도 모른다. ‘돌봄’의 최전선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돌봄’은 코로나 이후 더이상 ‘가족’의 일이 아니라 치안과 외주업체의 일이 될 가능성이 더 농후해졌다. 이 각자도생의 상황에서 우리가 위기에 빠진 다른 개인들에 연대하는 방법에 어떤 것이 있나?


 버티기 그리고 인간의 야만성
 따라서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국가를 포함해도 세계 전체를 보면 인류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것이라 결코 말할 수 없고,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 코로나 사태를 통해 새삼 인류가 ‘야만’적 동물이며, ‘문명’이라는 것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해도 될지 모른다. 다음과 같은 예들을 들고 싶다.


치료 없는 투병과 임종 없는 홀로 죽음/ 장례 없는 시신의 집단 매장/ 남미 등지의 페미사이드/ 자살공화국 한국의 자살률 재증가/ 인도, 브라질 등의 코로나 위기/ 스웨덴의 집단면역과 ‘고려장’/ 우생학과 혐오의 일반화…


 일일이 설명하기엔 너무 시간이 없어 간단히만 말한다. 만약 ‘죽음’을 대하고 처리하는 것이 인륜성의 한 척도라면 팬데믹은 인륜성의 핵심이 (일시) 붕괴했음을 보여준다. 뉴욕의 거리에서 트럭에 실려 썩고 있던 시체(2020년 4월)들의 사례나 에콰도르 등에서 집과 거리에 방치된 시신(2020년 4월)도 있었다. 이번 겨울에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재확산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임종, 장례 없는 죽음의 만연은 인륜성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인도에서는 코로나 여파로 2억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멈추고 최악의 경제 부진을 기록할 예정이라는 인도에서 사실 코로나 확진자 수는 실제보다 10배 많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많은 가난한 나라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한편 ‘코로나 베이비’가 수십만 명 태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가정 폭력의 증가로 여성들이 엄청난 규모로 희생되고 있다는 뉴스도 함께 들리는데 말이다. 남아시아든 남미든, 어린이건 노인이건 약자가 재난의 피해자가 된다.



사진 출처 - freepik


 인간종의 자원과 대항력 = 재난자본주의, 종교, 독재가 아닌 것
 열거한 것 같은 미증유의 위기는 ‘인간’의 한계를 낱낱이 드러낸다. 그렇기에 동시에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자원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된다. 다시금 새로 물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니면 ‘극복’은커녕 피해를 줄이고 인간다움 자체를 유지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은 국가와 공동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기존의 국가와는 다른 국가와 새로운 국가간 연대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국가들의 ‘힘’과 협력적 힘을 통해 인류에게 ‘공통적인 것’을 확장해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확장을 통해 국가를 민의 의지와 법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재난에 처한 와중에도 인간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저자 스티븐 핑커의 말처럼 인간의 양면 중 선하고 합리적인 쪽에 기댈 수밖에 없다. 매일매일 사투를 벌이며 ‘돌봄’을 수행하는 의료진이나 공무원들, 그리고 택배 노동자들처럼 소비와 일상을 유지하도록 목숨을 걸고 일하는 이들 외에도 할 수 있는 연대와 공동체를 위한 행동의 양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 행동의 양식을 정하는 데 있어 국가나 전문가들만이 옳을 수 없기에 이 문제가 어렵다. 독단과 독선으로 처리하지 말고 끝없이 토론해야 한다. 그 토론을 뒷받침하는 원칙은 다시금 민주주의와 과학(방역과 백신)이다. 전문가들의 말과 과학적 합리성에 따라 ‘방역’의 방침을 정하되, 시민적 토론을 그치지 않아야 한다.


 ‘국가에 의한 자유의 유보’를 주장하거나 반대의 목소리를 억압하지 않고 진정한 공동선과 공익을 위한 최선의 방책을 설득해야 한다. 실패할 경우 마스크에 대한 거부처럼 방역에 실패하고 사회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마스크는 그 자체가 싫고 귀찮을 수 있지만, 더 싫은 것은 끼라는 명령과 명령의 주체, 체계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그 불신은 미국의 경우에는 진영정치, 프랑스나 일부 유럽국가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문화의 문제일 것이다. 일부 잘못된 담론도 일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난자본주의, 종교적 독단(가짜뉴스, 비합리적 신앙), 독재가 재난을 극복하는 힘처럼 사용되지 않게 하는 것이 ‘문명’에 필요한 일이다. 태극기집회나 극우 종교의 집회시위, ‘방역’을 핑계로 민주주의에 재갈을 물리는 권력과 자본의 의도와 다른 길을 말하는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은 재난을 이겨내는 중요한 다른 힘이다.


 재난자본주의를 넘는 아이디어와 실행이 필요하다. 공유와 공공선의 원리를 체화한 새로운 사회적 주체성의 필요를 절감한다. 기본소득, 기본 자산(피케티) 등의 아이디어가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번져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런 아이디어가 소중한 것은 인간을 자본과 불평등 앞에서 다시 주체화하고, 기존의 틀을 넘은 사회를 상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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