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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호] 두 종류의 호국영령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6-24 15:43
조회
93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호국영령의 역사
 ‘호국영령(護國英靈)’, ‘나라를 수호하다 죽은 꽃다운 영혼’이라는 뜻이다. 오래된 우리식 사자성어 같지만, 메이지유신 시기 일본에서 만들어져 한국까지 퍼진 언어다. 19세기 후반 서세동점의 혼란기 일본에서는 하급 무사들이 메이지 천황을 내세워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국가의 사상적 통일을 위해 민중적 정령 신앙 전통인 신도(神道)를 근간으로 하는 조상 제사 형식을 보급해 통합의 근간으로 삼았다. 후손이 조상의 혼령을 모시듯이, 일본인이라면 일본의 기원이 되는 신과 그 후손인 천황을 모시고 숭배해야 한다는 정책을 펼쳤다.


 그렇게 새 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각종 전란이 벌어졌다. 이 때 죽은 이의 영혼을 국가 차원에서 제사하는 일종의 ‘제사의 정치학’으로 사회를 통합해나갔다. 이런 배경 속에서 ‘호국영령’이라는 언어와 개념도 발명되었다.


 ‘영령’은 메이지 초기 군대에서 특수하게 사용되던 용어였다. 그러다가 일본이 국운을 걸고 벌인 러일전쟁(1904-1905) 당시 언론들이 자국 전사자에 대한 존칭으로 ‘영령’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자 ‘영령’은 ‘호국’의 이미지가 부여된 ‘전몰자의 영혼’을 지칭하는 일반 언어로 바뀌었다. 이 말이 일본의 지배를 당했던 한국에도 전해져 이제까지 사용되고 있다.


일본의 영령이 지키고자 했던 제국주의
 호국영령에는 두 가지 차원이 들어있다. 그것은 영령이 수호하고자 했던[護] 국가의 성격[國]과 관련된다. 메이지 정부가 만들려는 국가는 천황제 중심의 수직적 국가였다. 메이지 정부는 강력한 부국강병책으로 군국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청일전쟁을 시작으로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을 일으켰다. 유럽 열강이 걸었던 제국주의의 길을 따라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을 점령하고 지배했다. 태평양전쟁 때는 ‘온 세계가 한 집’이라는 ‘팔굉일우’(八紘一宇)를 모토로 내세우며, 그 한 집이 바로 일본이라는 정서를 확장시켰다. 그 과정에 희생된 이들, 특히 군인들을 ‘호국영령’으로 칭송하며 군사주의를 고양시켰고, 전쟁을 정당화하며 국가적 통일성을 견지해나갔다. 메이지 시대부터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영령’이 지키고자 했던, 아니 영령을 내세워 만들고자 했던 국가는 제국주의, 군국주의적 국가였다.


 패전 이후 시대가 바뀌었고 지금은 역사에 대한 일본 내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이 과거에 누렸던 일본 중심의 세계, 그 길 혹은 그 정서를 고수하는 세력도 여전히 크다. 일본의 우익은 대체로 이런 정서를 공유하는 흐름이다. 우익 세력을 근저에서부터 좌우하며 현재의 아베 내각에 동력을 제공하는 이른바 ‘일본회의’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조직이다. 그렇게 일본의 제국주의적 역사와 경험은 여전히 국내외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른 호국의 길, 고토쿠와 안중근의 평화
 같은 일본이지만 다른 호국의 길도 있었다. 가령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 같은 평화주의자들은 러일전쟁 당시 강력하게 반전(反戰)을 외쳤다. 그는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는 이토 히로부미 내각에 반대하며 내내 비전(非戰)을 설파했고, 잘못된 애국심에 기반한 군국주의를 비판했다. 급기야 메이지 천황을 암살하려 모의했다가 발각되어 사형당했다. 일본의 주류는 국가적 팽창주의에 동의하고 환호하기도 했지만, 고토쿠와 같은 평화주의자들은 전쟁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계급차별을 넘어 공평한 세계를 이루려 했다. 팽창적 대국(大國)주의보다는 상대를 인정할 줄 아는 소국(小國)주의를 추구했다. 이들이 지키고 만들려던 국가는 한 마디로 평화국가였다.


 비슷한 희망을 갖고 일제의 강점에 저항하던 한국인은 물론 더 많았다. 메이지 정부의 정치적 건설자였던 이토 히로부미 총독을 암살하고 사형당한 안중근이 대표적이다. 안중근의 이상도 평화였다. 그는 한국을 넘어 일본, 중국이 함께 하는 ‘동양평화’를 꿈꿨다. 공동의 은행과 화폐를 만들고, 공동 회의체를 구성하자는 제안도 했다.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난제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공통 지점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평화를 이루려 했다. 현대 일본 평화학계에서 고토쿠 같은 이들을 연구하고, 안중근이 사형 직전 옥중에서 저술한 『동양평화론』이 한국 평화학의 기본 자료로 쓰이게 된 것도 평화에의 헌신을 반영한다.


 “사형판결이 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던, 아들의 당당한 죽음이 “경기감사를 한 것 보다 더 기쁘다”던 어머니 조마리아도 아들 이상 가는 인물이었다. 이들 한국의 ‘영령들’은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던 영령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영령’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셈이다.



사진 출처 - 국립대전현충원


한국의 영령이 지키려던 나라
 한국의 영령이 지키려던 나라[護國]의 성격을 생각해야 하는 지점도 여기다. 관례적 어법을 따르자면, 한국 보훈 분야에서 ‘호국영령’은 주로 전쟁에 나섰다가 희생당한 이들이다.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이들은 ‘순국선열’이라 부른다.(그렇다면 안중근은 ‘호국영령’이라기보다는 ‘순국선열’에 해당하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 어법에서 이들 간 차이는 별로 없다. 이들 용어가 지시하는 세계와 가치는 대동소이하다. 이 글에서도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굳이 구분하지 않으려 한다.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의 영령들이 추구하던 국가를 현재에 어울리게 재생시키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시 평화국가이다.


 과거 일본식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정부가 추구했던 국가는 당연히 아니다. 한국의 영령은 침략에 저항하고 자유를 지키려 했다. 동양의 평화를 위해 순국의 길을 갔던 안중근,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한반도의 통일에 매진했던 백범 김구가 추구했던 국가는 반제국, 반군국을 넘어, 반독재, 탈분단국가이다.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 통일국가이고, 헌법의 표현대로 적극적으로 규정하면, 민주공화국가라고도 할 수도 있겠다. ‘평화국가’로 집약해내도 문제없겠다.


‘충’을 ‘현’한다는 것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한다. 그 중에 6일은 현충일이다. 국가에 충성[忠]하다 희생당한 이들의 삶과 정신을 현창[顯]하는 날이다. 24절기 중 망종에 제사를 지내던 관례에 근거해 1956년 망종의 양력 날짜를 현충일로 지정했다고 한다. 순국선열 혹은 호국영령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고 듣는 날이기도 하다. 자칫 상투적인 이념 언어로 흘려보내기 쉽다.


 하지만 그 희생에 보답하고 기억하고 선양하는 일은 국가적 차원에서 필수적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부처가 국가보훈처다. 가족이 다치면 다른 가족이 돌보듯, 부모와 조상의 기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가족 공동체가 유지되듯, 큰 틀에서 국가도 다를 바 없다. 보훈처는 국가 구성원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이 때 평화라는 미래를 꿈꾸는 새 일본의 건설자들과도 연대할 필요가 있다. 침략적 영령이 아니라 평화적 영령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 공통의 지점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북한과의 전쟁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위로와 보상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 과제와도 연결된다. 그것이 한국의 영령과 선열의 이상을 구체화하는 길이고, 거대하지만 불가피한 과제이다. 우리는 과연 어느 ‘호국’의 길에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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