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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호] <총독의 소리> 광고방송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9-20 13:30
조회
21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인훈 추모 1주기에 즈음하여 <달과 소년병>이 출간되었다 하여 구해 읽었다. 최인훈의 단편과 중편 소설들을 모아놓은 그 책에서 제일 눈길이 가는 작품은 <총독의 소리>였다. <구운몽>, <서유기>와 같은 문제작들도 실려 있지만, 텍스트 읽기라는 게 콘텍스트 속에서 이루어진 작업인지라 아베 정권의 경제 도발과 그로 인한 ‘NO 일제(日製)’의 분위기에서는 <총독의 소리>에 먼저 관심이 갔다. 이번에 다시 읽고 나니 소설의 파격적 형식은 물론이고, ‘일제(日帝)’에 대한 최인훈의 풍자적 비판과 통찰을 조금이라도 널리 알리고 싶어졌다. 오늘 나는 내 욕망에 패배했다. 문학의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총독의 소리> ‘광고’에 나선다.


 <총독의 소리>는 네 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이다. 1과 2는 1967년, 3은 1968년, 4는 1976년에 각각 발표되었다. 네 편 모두가 서사문학의 기본 요소들인 인물, 배경, 플롯은 극소화되고, ‘총독에 의해 말해지는 소리’라는 담론만이 극대화된 매우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에서 “총독의 소리”는 “조선총독부 지하부”에서 내보내는 유령해적방송으로, “조선총독부 지하부”는 해방 이후에도 해체되지 않고 지하에 숨어서 한반도의 재식민화를 획책하는 일제로 상정되어 있다. 네 편의 소설에서 “총독의 소리”가 내보내는 담화는 실제 사건을 계기로 전개된다. 1은 박정희가 부정선거 끝에 당선한 6대 대통령선거를, 2는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침투 사건인 1․21사태를, 3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그리고 4는 미국과 소련간의 데탕트에 대해 방송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연작의 각 소설은 “충용한 제국(帝國) 신민(臣民)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 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 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浪人) 여러분”으로 시작하여 “제국의 반도 만세”로 끝남으로써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 야욕의 현재성을 환기시킨다. 비록 총독이 “귀축영미(鬼畜 英美, 영국과 미국)”, 적마호비(赤魔胡匪, 러시아와 중국), “충용한 신민” 등 일제 말기에 쓰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실감을 자아내지만, 작가는 지하에 숨어 권토중래를 꿈꾸는 총독을 가상(假想)의 담화의 주체로 설정함으로써 독자들이 자유롭게-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반성적으로 “총독의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배려한다.



사진 출처 - 구글


 최인훈은 <총독의 소리>가 특히 한일협정에 대한 반응으로 쓴 것이라며 소설의 집필 배경과 형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총독의 소리>는 한일협정이라는 해방 후 정치사화사의 새 장을 여는 사건에 대한 한 지식인의 충격과 혼란과 위기의식을 폭발적으로 내놓기 위해서 소설의 통념적인 형식을 벗어나 보려고” 했다.(「나의 문학, 나의 소설작법」) 그는 표현을 바꿔 이렇게도 설명한다. “첫째는 나는 이 소설에서 문학의 형식을 파괴하면서라도 온몸으로 부딪쳐야 할 위기의식을 느꼈다. 둘째는 그렇다면 정말 문학의 장르의 테두리를 넘었느냐 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형식은 별다를 것 없는 풍자소설의 적통적자다. 적의 입을 빌려 우리를 깨우치는 형식이다. 빙적이아(憑敵利我)이다.” (「원시인이 되기 위한 문명한 의식」, 강조는 인용자)


 그렇다. 이 소설은 총독이라는 적(敵)의 입장을 통해, 그것도 여과 없이 내면의식을 드러내기 쉬운 독백형식의 말하기를 통해, 일제의 도착적 사고와 우리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짜여있다. “총독의 소리” 방송은 일제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대동아전쟁’ 전의 영광스럽던 제국으로 회귀할 것을 꿈꾸며, 조선을 다시 제국의 식민지로 만들고자 한다. “총독의 소리”는 말한다. “반도의 영유는 제국의 비밀이었습니다. 영혼의 꿈이었습니다.…오늘날 제국은 이 비밀을 잃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실지회복, 반도의 재영유, 이것이 제국의 꿈입니다.…반도는 제국의 제단이었으며 반도인은 제물이었던 것입니다.”(현재 아베 정권과 일본회의의 주도세력의 꿈도 이런 성질의 것이지 싶다.)

 그렇다면 “총독”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민주주의가 점점 확고하게 뿌리를 내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교류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를 다시 식민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총독은 그런 움직임에 매우 불안해한다. 그러나 총독은 <총독의 소리1>이 발표된 1967년 당시 남한의 선거과정을 지켜보며 안도한다. 금권 부정선거로 얼룩진 선거가 보여주듯이 ‘반도인’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버거워하고 오히려 제국의 식민지 노예이기를 바란다는 도착적 논리를 펴면서. 그리고 총독은 “반도를 이데올로기의 대립의 형태로 양극화하여 대립 갈등케 하여 피로곤비(疲勞困憊)케 하고 제국은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이쪽저쪽 손보아주면서 실속을 차리는 것만이 반도에 영원한 이해관계를 가진 제국”의 부동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실토한다.


 <총독의 소리>에서는 일제의 사고착란(思考錯亂)에 대한 비판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도 읽을 수 있다. 일제가 우리를 자신의 우월성을 비춰보는 거울로 상정했듯이, 우리도 인종, 성, 종교, 피부 등의 차이를 내세워 누군가를(/자신을) 열등한 타자로 소외시킬 수 있다. 발화 주체를 총독에서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바꾼 <주석의 소리>에서 최인훈은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는 그 누구를 찾아내고자 노력하십시오.…정치와 직장에서 소외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책임은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있습니다.…우리가 인간일 수 있게 하라고 상황에 요구할 권리를 가짐과 동시에 우리 자신이 인간임을 개인으로서 증명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합시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이 개별적 주체로서 인간임을 증명할 의무가 있다! 총독의 소리보다는 주석의 소리가 옳다. -지금까지 <총독의 소리> 광고방송이었습니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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