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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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도재형(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세대라는 섬(박상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8-11 10:26
조회
289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1.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다니던 회사에 정식 직원이 되었는데, 수원에서 출퇴근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어 독립도 시킬 겸 회사 근처에 오피스텔을 구했다고 했다. 전세 사기가 뉴스에 오르내리던 때라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단다. 다행히 거리도 괜찮고 오피스텔도 쓸 만하고 아들도 마음에 들어 해서 계약을 마치고, 며칠을 쫓아다니며 살림을 갖췄다.
그렇게 정신없이 다니다 살림 규모가 얼추 갖춰졌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집 구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묘한 위화감이 들더란다. 저녁 무렵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가 그 이유를 알았다. 동네가 온통 아들 또래 젊은 사람들로만 차 있었던 것이다. 보통 저녁이면 차분히 가라앉아야 할 동네 분위기가, 젊은 기운으로 묘하게 들떠 있었다. 친구는 아들에게 귓등으로 듣지도 않을 당부를 했단다. “술 많이 먹지 말고 너무 늦게까지 다니지 말고, 어딘가 휘말리면 큰 말썽이 날 것 같으니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제는 놀이만이 아니라 사는 곳조차 세대별로 나뉘는구나.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끼리, 노인은 노인끼리 사는 세상이 되었구나.
2.
수영 마스터반은 보통 실력이 완성 단계에 오른 사람들, 고인물처럼 남아 계속 수영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그런데 저녁 8시 마스터반, 이곳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십 대부터 팔십 대 어르신까지, 쉰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물놀이를 한다. 실력과 체력이 월등한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실력은 있으나 체력이 부치는 장년도 있고, 마스터반을 만드는 데 공을 세웠으나 이제는 실력도 체력도 예전만 못한 어르신도 있다. 그렇게 다른 세대가 날마다 함께 물살을 가른다.
올해 팔순인 정순 할머니는 나이든 자신도 함께 수영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며 팔순 턱으로 음료수를 내셨다. 장가간다고 인사한 젊은 친구는 이바지떡을 내왔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효진이는 음료수로 자축했다. 아르바이트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녀석이 합격해 타지로 떠날 때는, 섭섭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다 함께 손뼉을 쳐주었다. 오랫동안 나오지 않던 고등학생 승현이가 나오자, 모두 안부 인사를 묻는다. 가끔은 이 좁은 물속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AI 생성 이미지
3.
사회가 점점 더 세대별로 섬처럼 나뉘어 서로를 고립시키는 느낌이다. 젊은이들의 공간과 노인들의 공간이 나뉘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온라인 공간에선 더 살벌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가. 알고리즘은 우리를 취향과 세대가 비슷한 사람끼리 묶어놓고, 그 바깥의 목소리는 점점 낯설고 불편해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면서 같은 사회에 산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서로에 대한 위화감은 커지고 소통은 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외려 모순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4.
수영장의 물속 같은 공간이 삶의 공간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알고 이해하려면 결국 어울려 살아야 한다. 눈을 흘기는 일이 생기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