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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방어적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한다.(장은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6-01 18:23
조회
126

장은주/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파문에 이어 일부 극우 청년들의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롱 놀이 사건으로 ‘혐오 표현’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부터 나서 아주 강한 어조로 우려를 표명하고 ‘일베’ 같은 혐오 사이트를 폐쇄하는 문제도 공론화해 보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 사회가 진작부터 깊이 토론하고 대책을 내놓아야 했을 사안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적거린 문제였는데, 이제라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사실 이미 늦은 감도 있다. 처음에는 사회의 한쪽 구석에서 극소수에게만 퍼져 있던 극우적 혐오 문화가 지금은 벌써 주류 보수 정당마저 포획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스타벅스의 비뚤어진 상술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불매운동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그 결과 스타벅스는 극우와 우파에게 좌파의 부당한 공격을 받는 ‘순교자’ 같은 대상으로 자리 잡는 양상을 보이며 엉뚱한 정치적 분열을 낳고 있다. 일베 사이트를 폐쇄하자고는 하지만 그 정당성은 물론이고 효과도 의심스러운 게, 이미 많은 극우 성향의 청년들은 ‘펨코’ 등과 같은 다른 여러 사이트로 흩어져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다 폐쇄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5.18 특별법’ 같이 아주 제한된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는 법률 말고는 큰 잡음 없이 혐오 표현을 제재할 법률적 근거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이다. 아니, 사실 우리 사회에는 혐오 표현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혐오 표현이며 왜 그것을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없다.

물론 이런 사정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보여줄 뿐 그래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아예 손을 놓고 있어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문제는 그냥 무시해도 좋을 극소수 극우 세력의 도를 넘는 단속적 혐오 표출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주류가 되고 정권마저 잡을 수 있는 파시즘 세력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도전이다. 이 세력이 짧았던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사회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사이 이미 많은 청년과 시민을 포섭하고 있었고 보수 정당 내부에도 깊숙이 침투했다는 게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12.3 내란 직후 일어난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 선거에서도 ‘윤어게인’ 세력에 대한 지지세가 만만치 않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극우적 에너지를 경계하고 이를 소진할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스타벅스 홈페이지 갈무리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독일이 채택하고 있는 ‘방어적(전투적) 민주주의’를 오늘날의 한국적 상황에 맞게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이 민주주의 개념은 민주주의의 적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민주적 기본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이에 따라 독일은 헌법재판소가 주관하는 위헌 정당 해산 제도부터 홀로코스트 부정에 대한 법적 제제 같은 조치를 거쳐 극우 세력에 대한 체계적 감시를 주된 임무로 삼는 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의 설립까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기 위한 아주 적극적인 제도적, 법적 방어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이런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비판적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는 이를 더 정교화하고 단지 극우 세력에 대한 사후적 제재를 넘어 사전적, 예방적 차원에서부터 그 성장을 막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법적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헌을 통해 우리의 민주적 헌정 체제 자체를 파시즘에 맞서 견딜 수 있도록 재설계하고 재정비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가령 혐오 사이트나 극우 유튜브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공적 체계와 기관을 만들고, 의도적 ‘가짜 뉴스’나 혐오 표현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또 극우 인사들이 정계에 진입할 수 없도록 하는 법적 장벽을 정교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공적으로 혐오나 선동 발언을 할 때 이를 폭로하고 비판함으로써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는 시민사회적 문화와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시민사회가 말하자면 디지털 세계로 옮겨 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형 방어적 민주주의는 특히 어떻게 하면 이 공간에서 극우적 사상과 혐오 표현이 시민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도록 할지를 여러모로 고민해야 한다. 유럽의 ‘디지털서비스법’같이 플랫폼이 혐오나 폭력 선동 게시물 등을 항시적으로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물론, 청소년을 포함한 시민들이 강한 ‘디지털 문해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체계적인 ‘민주 시민 교육’의 강화도 절실하다.

‘수정헌법1조’를 들먹이며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혐오 표현의 사회적 확산을 방치하기만 했던 미국은 지금 그 환경에서 성장한 극우 세력의 정권이 들어서 트럼프를 풍자했다고 방송 프로그램 폐지를 위협하고 비판적 언론의 백악관 출입을 제한하는 등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도 밴스 부통령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이들은 유럽에 가서 ‘독일을 위한 대안(AfD)’ 같은 극우 정당을 감시하고 혐오 표현을 통제하는 법이 자유를 침해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다녔다. 이런 종류의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가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혐오 표현에 대한 합당한 규제는 물론 다양한 차원에서 적극적인 민주주의 방어 메커니즘을 만드는 일에 온 사회가 나서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