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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독립 선언’?(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4-21 10:41
조회
213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대통령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대외적으로 국민 모두를 대표한다. 어떤 사안에 대한 그의 대외적인 발언은 추상적으로는 국가 공동체 전체를 보편적으로 대변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구체적으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대변하기도 한다. 국민 중 누군가가 그의 발언은 나의 의사와는 전적으로 무관하다고 사적으로는 주장할 수 있을지라도 공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 이러한 사정은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에게도 적용되고,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적용된다.

 

2.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가 이란을 불법적으로 침략해 전쟁을 일으킨 것은 공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미국이 이란에 대해 불법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고, 굳이 따지자면 미국 국민이 이란 국민을 불법적으로 공격한 것이다. 그렇기에 모르긴 해도 트럼프의 대이란 침략 전쟁에 대해 미국민 중에 그 불법성과 반인권성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인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미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저는 양심상 현재 진행 중인 이란과의 전쟁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직한 미국의 ‘국가 대테러 센터장’인 조 켄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같이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전쟁을 일으키고 그것에 관련해서 자기로서는 위장 전술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거짓말인 수 없는 말 바꿈을 했다. 그래서 전쟁 초기에 트럼프가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국제적으로는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불평과 불만이 자자할 정도였다. 심지어 트럼프 본인도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거 아니냐, 하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였다. 급기야 미국 내에서 트럼프의 치매 논란마저 등장했다. 결국에는 세계 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은 것 역시 크게 문제가 되거니와 무엇보다 미사일과 드론에 의한 공격과 반격이 수없이 이루어지면서 중동 전역에서 군인들은 물론이고 아무 잘못 없는 수많은 민간인이 살상되었고, 도시 주거지들을 여지없이 파괴됨으로써 셀 수 없는 피난민들을 만들어냈다.

국제적으로 전혀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 전쟁이었고, 이에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관련해 트럼프가 파병 제안을 했을 때 나토 동맹국들, 특히 그동안 미국의 거의 어떤 국제적인 행위이건 찬동하고 동참했던 영국마저도 노골적으로 거부했다. 마찬가지로 일본과 호주 그리고 한국도 거부했다. 그 와중에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수를 2배 가까이 부풀려 말하면서 한국의 불참을 콕 짚어 기억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동안 미국의 패권주의가 억지로라도 통용되었던 건 적어도 외관으로나마 자유와 인권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번 이란 전쟁의 배경에는 이란의 신정 체제의 독재 정부가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으로 이란 국민을 살육하면서 잔인하게 진압한 게 포함된다. 물론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미국의 CIA와 이스라엘의 모사드 요원들이 가담해 특히 이들의 지원을 받은 쿠르드 밀집 지역에서 유혈 충돌이 일어나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보도도 있다. 그런데 어쨌거나 트럼프-네타냐후가 이란에 대해 선전포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게다가 협상 중에 이란 지도부 40여 명을 표적으로 삼아 살해한 행위가, 얼마 전에 있었던 베네수엘라의 주권 침해가 명확한 미국 특공대에 의한 경호원들의 대량 살상을 수반한 마두로 대통령의 불법적인 체포와 겹쳐, 국제적으로 워낙 불법성이 크다 보니, 저 이란의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가혹한 진압에 대해 ‘잔인한 반인권적인 조치’라고 비판할 수 있는데도 아예 문제조차 되지 않을 지경이 된 것이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우크라이나 침략에 책임을 져야 마땅한 것으로 이야기되던 러시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할 정도로 그 책임이 희석되는 형편이다. 더군다나 세계 원유 시장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미국의 트럼프가 러시아의 원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게 되니, 더욱 그러한 상황이다.

 

3.

이 와중에 대한민국의 이재명 대통령이 비록 ‘X’라는 SNS를 통해서이긴 하나, 심지어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하여 지붕에서 내던졌다는 팔레스타인인의 글을 리트윗하면서(나중에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조금 다행이라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신이었다는 점이지만, 시신이라도 이와 같은 처우는 국제법 위반입니다.”라고 수정해서 다시 비판함) 이스라엘에의 반인권적이고 반국제법적인 전쟁 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 인간의 존엄성 역시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 지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수많은 비극은 인권의 소중함이 무엇보다 최고이자 최선의 가치임을 배워야 한다는 것, 홀로코스트와 같은 뼈아픈 상처 위에 남겨진 교훈을 반복된 참혹극으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래야만 인류 모두가 상생하는 화해와 협력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되어야 하며, 인권 즉 인간의 존엄성 역시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그야말로 ‘인간의 씨를 말리는 식’으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비인간적인 살육을 벌여온 데다 미국의 트럼프를 ‘꼬드겨’ 일방적으로 이란을 공격한 이스라엘의 총리 네타냐후가 종전이고 휴전이고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확전을 기하면서 중동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 더군다나 그 네타냐후는 부정부패 혐의로 재판받아야 할 때마다 전쟁을 일으키는 정말이지 악마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이러한 네타냐후의 전쟁광 놀음을 이스라엘 국민 70% 가까이가 찬성한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제 나름 선진국으로서 발돋움함으로써 세계의 참극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러한 악행을 보다 못해 비판의 발언을 한 것이다. 이스라엘 외무부에서 이러한 이재명 대통령의 비판에 대해 반성 없는 반박 성명을 했고,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끊임없는 반인권적 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들의 지적을 한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입니다. 내가 아프면 타인도 그만큼 아픕니다. 나의 필요 때문에 누군가 고통받으면 미안한 것이 인지상정입니다.”라고 전혀 물러섬이 없이 어쩌면 상식이라고 할 수도 있는, 외교적인 수사를 동원한 영국, 독일, 프랑스, 유럽연합(EU) 등의 온건한 비판과는 전혀 결이 다른 비판을 이어갔다.

 


MBC 뉴스데스크 영상 갈무리


 

4.

한때 1973년 12월쯤에 박정희 정부가 팔레스타인 난민 존중과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를 요구했고,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이에 대한 항의로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을 철수하고 주일이스라엘대사관이 대한민국 업무를 겸임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보편적 인권을 기조로 한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그 맥락이 전혀 다르다. 그것은 그저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을 겨냥한 게 아니라, 암암리에 트럼프의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4월 15일 자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4월 14일에 <조선일보>의 워싱턴 특파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X 발언에 대해 이를 어떻게 보느냐고 미국 국무부에 입장을 질의했는데, 미국 국무부가 이란 정권의 대미 적대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이스라엘의 자국 방어권을 지지한다고만 했을 뿐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이른바 동문서답을 했다고 한다. 이는 미국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미국 내지는 트럼프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게 아닌 쪽으로 굳이 해석하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거기에 함의되어 있음이 분명한, 트럼프 내지는 미국을 향한 이재명 대통령의 항의를 짐짓 삭제하고자 한 것이라 할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파병을 거절한 한국을 기억하겠다고 짐짓 엄포를 놓은 트럼프가 이재명 대통령의 저 발언을 무심코 넘길 일은 만무하고, 모르긴 해도 ‘이걸 어찌 그냥 두고 볼 것인가?’ 하고서 내심 분노의 염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동안 거의 80년 동안 미국 패권주의를 자동으로 맹종하던 대한민국이 독자 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자기에게 ‘신라의 면류관’을 선물로 주길래 윤석열과는 다르긴 해도 뭐 크게 차이가 나겠어, 하고서 생각했는데, 이렇게 나의 뒤통수를 치다니! 하고서 ‘속에 열불이 날’ 것이다: ‘주한미군을 철수한다고 해 버릴까? 철수할 테면 하라. 말리지 않을 테니까, 어차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잖아, 하면 어쩌지?’ ― ‘관세를 50%로 올린다고 해 버릴까? 그러면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해 미국 경제에만 손해가 날 텐데 알아서 하라, 하면 어쩌지?’ ― ‘핵잠수함 허용 없던 일로 해 버릴까?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함부로 간섭하지 말라, 하면 어쩌지?’ ― ‘북한처럼 미국 은행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아예 금융 제재를 가해 버릴까? 우리가 잘못한 게 전혀 없는데 그게 국제적으로 과연 합법하다고 인정될까? 오히려 미국이 고립되지 않을까? 하면서 버티면 어쩌지?’ ― ‘첨단 무기를 팔지 않는다고 하려니 그럴 것도 별달리 없고, 아 어쩌지?’ 하는 등의 각종 심보를 꺼냈다가 넣었다가 하지 않을까?

 

5.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을 통한 트럼프 미국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 그동안 오랜 세월 습관으로 굳어온 우리 국민의 미국에의 심리적인 예속으로부터 해방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몇 년 동안 K-팝, K-영화 및 드라마, K-뷰티, K-푸드 그리고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등을 통해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미국에의 심리적인 예속에서부터 많이 탈피했다. 그리고 최근 AI의 대대적인 확산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의 급격한 수요 증가를 비롯한 과학기술의 영역에서도 그렇고, K-방산의 국제적 위상의 제고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알게 모르게 충분히 유의미할 정도로 미국에의 심리적인 예속에서 많이 탈피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혀 유혈 사태 없이 불법한 현직 대통령을 두 번이나 탄핵함으로써 K-민주주의의 명실상부한 모범적인 위업을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정치 체제 면에서도 미국에의 심리적 예속에서부터 많이 탈피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전시작전 통제권, 주한미군 문제 등을 볼 때, 군사 외교적으로는 미국에 실질적으로 상당 부분 예속해 있어 진정 자주적으로 완성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는, 이번 보편적 인권과 인류 평화 공존의 원칙을 앞세운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을 통해 군사 외교적으로도 미국에의 예속으로부터 적어도 심리적인 차원에서만큼은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해방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것이다.

1948년 정부를 수립한 이후 80년 가까이, 21세기도 사반세기를 지난 이때 이같이 기묘한 방식으로나마 또 한 번의 ‘독립 선언’을 한 건 처음이라 할 것이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 100년도 더 지닌 <3·1 독립선언서>의 첫 번째 두 문장이 급하게 떠오른다. 더욱더 우리 모두 지혜로운 대한 국민으로서 집단지성을 모아야 할 때다.